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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책 리뷰] 전설적 형사로 은유하는 홍콩 경찰의 슬픈 역사 ~ 13.67(찬호께이)

13.67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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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형사로 은유하는 홍콩 경찰의 슬픈 역사

Original Title: 13.67 by 陳浩基
“그 여덟 장은 금고 안에 남겨뒀습니다. 범인이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데 못 줄 것도 없죠. 난 손안의 패를 상대방이 못 보게 감추는 것보다 대범하게 다 보여주는 편을 좋아합니다. 상대방은 내 손만 보고 그게 내 패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난 의자 밑에 그것보다 열 배가 넘는 패를 숨겨놓고 있거든요. 그래야 더 재미있어지는 겁니다.” (『13.67』, p562)

격동의 홍콩을 은유하는 형사 ‘관전둬’

리 소설로는 드물게 미스터리의 엄밀함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텍스트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로부터는 “무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찬호께이(陳浩基)의 또 다른 작품 『13.67』은 홍콩의 전설적인 천재 형사 관전둬의 이야기다. 물론 관전둬는 실존 인물은 아니다. 그는 찬호께이가 홍콩 경찰의 어둡고 씁쓸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줄곧 아시아 속의 ‘작은 서양’으로 존재하다가 급성장한 신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부침하는 격동의 시기를 보낸 홍콩을 은유하고자 창조한 인물이다. (솔직히 난 홍콩/중국 영화에 경찰로 멋지게 등장하는 배우들을 통해 봤던 모습들을 제외하고는 홍콩 경찰이나 홍콩 역사에 대해서는 쥐뿔만큼도 모르지만) 찬호께이는 ─ 소설 『13.67』 집필 시기인 ─ 2013년에 와서도 홍콩 경찰의 이미지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강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용감하며 시민을 위해 온 마음으로 일하는, 그래서 홍콩 어린이들의 자랑거리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홍콩 경찰은 이제 온데간데없으며, 1967년 무렵의 괴상하고 추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찬호께이에게는 홍콩 경찰이 전성기를 누렸던 때 같은 신뢰를 시민으로부터 다시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하지만, 관전둬의 파란만장한 형사의 삶 속에는 홍콩 사회와 홍콩 경찰이 겪었던 혼돈과 격동의 시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고, 또한 그가 백 퍼센트 해결률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형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자는 홍콩 경찰을 은유하는 관전둬를 통해 홍콩 경찰의 암울한 현재를 어떻게든 빨리 떨쳐버리고 싶다는 무언의 희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희망 속에는 다시 홍콩 경찰이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고, 시민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지원군이 되어 줄 가까운 미래도 포함되어 있을 듯싶다.

‘관전둬’의 사명감 속에 새겨진 홍콩 경찰의 밝은 미래

설의 제목이 ‘13.67’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오늘날, 즉 20 13 년의 홍콩이 19 67 년의 홍콩처럼 똑같이 괴상하며, 홍콩 경찰 역시 그때처럼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온갖 부정, 부패, 특권이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으며 본토의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사회적으로도 혼란하고 과격한 시기를 보냈던 때가 1967년임을 고려하면 저자가 탄식하며 걱정하는 홍콩 사회의 현재(2013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관전둬가 경찰로서 갖는 사명감이다. 관전둬는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홍콩경찰선서에 어긋나더라도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찰의 가장 우선적이자 진정한 임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형사로서 남긴 발자취에 깊이 새겨 넣은 부동의 신념이기도 하다. 제도가 무고한 시민에게 피해를 주거나 정의를 표방하지 못한다면, 경찰은 분명한 근거를 내세우면서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관전둬는 교활하고 음험한 범죄자에 맞서고자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찬호께이가 괜히 관전둬를 심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기에 바쁜 현재의 홍콩 경찰(이 고질적인 병폐는 비단 홍콩 경찰뿐이겠는가!)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비대해지기 전에 옳은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관전둬 형사를 통해 은근히 내비치는 것이다. 참고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을 정도로 경찰 조직에 부패가 만연했던 1970년대에 홍콩 정부는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HongKong : Independent Commission)라는 외부 조직을 만들어 ─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5장 빌려온 공간」의 배경이기도 하다 ─ 부패한 경찰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을 내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기 전에 홍콩 경찰이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고, 시민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는 날이 다시 오기를, 선의를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할만한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의 경찰도 그렇게 되기를, 찬호께이와 함께 소망해본다.

뭐라고 씨부렁거리던 추리 소설의 묘미를 온전히 갖춘 수작이다!

전 작품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에선 볼 수 없었던 ‘사회파 미스터리’ 같은 요소가 소설 『13.67』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추리 소설의 묘미는 ‘미스터리’, ‘트릭’, ‘추리’, ‘반전’이라는 점에서 볼 때 『13.67』은 앞서 말한 모든 요소에 형사와 범인과의 뛰어난 두뇌 대결까지 갖춘 추리 소설의 완벽한 ‘풀세트’다. 마치 고수들이 바둑을 두는 것처럼 상대의 여러 수를 넘겨보고, 크고 작은 승패에 얽매이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같은 동료와 심지어는 소속된 조직까지 속일 정도로 대담한 계략으로 도박사 같은 승부수를 던지는 관전둬와 지능범과의 치밀한 두뇌 대결은 관전둬 형사의 뛰어난 후배라고 할 수 있는 뤄샤오밍 형사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종잡을 수 없다. 그만큼 관전둬 형사의 두뇌 플레이는 ‘역대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며, 추리력 역시 Sherlock Holmes(셜록 홈스)가 홍콩에서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카롭기 그지없다.

한편, 그는 ‘사고 기계(The Thinking Machine)’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밴 두젠(Augustus S.F.X. Van Dusen) 교수(작가 잭 푸트렐이 창조한 인물), 할머니라는 혼화한 마스크 속에 번득이는 사고력을 감춘 미스 마플(Jane Marple),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가 창조한 반신불수의 은퇴한 경찰 링컨 라임(Lincoln Rhyme) 같은 유형의 안락의자 탐정(Armchair detective)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가 행동하기를 싫어하는 게으른 유형의 형사라는 것은 아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젊었을 때 그는 액션 영화에서나 볼법한 불꽃 튀는 추격전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가끔 관전둬는 동료가 수집한 자료나 정보를 종합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현장 업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역순의 연대기 형식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여섯 편의 단편은 ‘관전둬 사건 일지’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 정도로 독립적이며 하나하나가 훌륭한 단편 추리 소설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접했을 때 받게 될, 마치 죽음의 신의 휘두른 거대한 낫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몸서리쳐지는 서늘함을 접하게 되었을 때, 독자는 찬호께이의 천재적인 플롯 구성, 그리고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플롯의 엄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또 한 명의 ‘관전둬’가 될 수도 있었을 법한 비범한 인물이 한 개인을 은은하게 짓누르는 역사와 기회와 운에 교묘하게 지배받는 인생이라는 격랑 속에서 교활한 범죄자로 타락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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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3일 일요일

[책 리뷰] 진실 뒤에 숨은 지독한 이기심 ~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우타노 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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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뒤에 숨은 지독한 이기심

Original Title: 家守 連作推理小說 by 歌野晶午
“ … 닥치는 대로 정보를 공개해서 질서를 혼란시키는 게 정의일까? 세상에는 ‘필요악’이라든지 '거짓도 방편’이라는 말이 있어. 사람이라는 생물은 거짓말이나 악을 잘 이용해서 지금까지 계속 번성해 왔지.”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p306~p307)

늘 소개하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家守 連作推理小說)』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수백 편의 추리 소설 중 최고의 반전 펀치를 날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작가 우타노 쇼고(歌野晶午)의 단편 소설집이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모두 가정집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밀실 살인 사건을 주된 테마로 하는 듯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의 숨겨진 묘미는 ‘의도치 않은 살인’이 반 박자 늦게 불러오는 ‘섬뜩함’이다. 보통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는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 범죄를 엉킨 실타래 풀듯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데 있지만(물론 이 소설에도 의도적인 살인이 한 건 등장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들처럼 우연하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의도치 않은 살인이 불러오는 예기치 못한 섬뜩함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나니 속 빈 강정처럼 뭔가 싱겁게 들린다. 과실치사라고 불려도 무방한, 살인 사건 같지 않은 살인 사건들 속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처럼 미스터리한 맛이 무엇 있겠으며, 또한 명탐정 김전일처럼 명쾌하게 추리할 만한, 명석한 두뇌를 가진 독자들의 탐정 기질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는 건더기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넘겨짚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 우타노 쇼고도 그 점을 생각했는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신문기사처럼 그저 보이는 대로 싱겁고 맹숭맹숭하게 독자 앞에 갖다 바치는 대신 ‘우연’, 혹은 ‘우발성’이라는 범죄 아닌 범죄 속에 묻힌 사람들의 본능처럼 발동하는 이기심을 간과하지 않으며 그 뒤에 살포시 은폐된 진실을 들여다본다. 마치 악마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선 집에 함부로 들락날락한 것을 부모님에게 들켜 혼나는 것이 무서워 친구가 낯선 집에서 숨바꼭질하다 실종된 것을 숨긴 소년들(인형사의 집), 수십 년 전에 유괴된 동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도로 개발에 반대하며 집을 팔지 않고 버티다가 보상금에 눈이 먼 남편에게 살해된 아내와 그 아내가 유괴된 것으로 믿었던 동생의 비밀(집 지키는 사람), 고액에 혹해서 치매 노인의 가짜 아들 역할을 맡았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청년(즐거운 나의 집), 시골 마을 사람들의 집단 이기심에 의해 계획적으로 은폐되고 날조된 살인 사건(산골 마을), 복권처럼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프로버빌리티(probability) 범죄’로 아내를 가혹하게 다룬 남편의 예기치 못한 비극적 결말(거주지 불명) 등 총 다섯 편의 이야기는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반전의 파괴성이나 기발한 맛은 덜하지만, 사람의 죽음조차 태연하게 덮어버리려는 지독한 이기심을 예기치 못한 살인을 은폐하려는 인물들의 비겁한 행위 속으로 잘 녹아내리게 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호소력이 있다.

지막으로, ─ 오늘 했던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 다섯 편의 단편 중 마지막 편인 「거주지 불명」에서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내어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집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로 아내를 겁주던 남편 도시미쓰는 아내가 집을 되팔자는 성화에 일일이 답변하다가 이런 말을 내뱉는다.

“ … 아파트는 싫어. 정원도 없는 집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도미시쓰가 사는 일본의 바로 옆 나라는 애초 집 살 때 정원 같은 거 고려할 생각조차 못 한다. 소음에 시달려 신경병 환자가 되고 먼지를 잔뜩 먹어 목이 막혀도 상관없다. 다만, 장래에 집값이 얼마나 오를 것인가만을 따져본다. 도시미쓰를 보면 한국의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단지 정부와 대기업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 판에 놀아나는 무지한 국민도 문제이다. 우리보단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일본의 주택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내 집 앞 골목이나 인도에서조차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가 없는 한국의 불량하고 비인간적인 주택 환경에 분노가 치밀기도 하여 별 시답지도 않은 몇 마디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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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일 일요일

[책 리뷰] ‘유령 탐정’, 자신을 죽인 자를 추적하다! ~ 생사의 강(차이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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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탐정’, 자신을 죽인 자를 추적하다!

Original Title: 生死河 by 蔡駿
“모든 아이들은 태어날 때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대요.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히 죽었든, 기구하게 살다가 비명횡사했든, 아니면 일찍이 요절했든 그 기억이 남아 있다죠. 기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힘든 기억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거예요. 갓난아기들이 밤에 잠도 안 자고 우는 게 바로 그 때문이래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들이 점점 희미해져 나중엔 다 잊어버리고 순수한 아이가 되는 거죠.” (『생사의 강』, p200~p201)

맹파탕(孟婆湯)을 토하고 기억을 간직하다

떠한 종류의 어느 정도 고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과 그런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하고 있을 때 누군가로부터 위로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혼자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좀 두렵지만, 나는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그것은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땐 이미 존재 여부와 존재의 소멸을 느껴야 할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으니까. 그렇더라고는 해도 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 사후 세계가 어떤 식으로 존재할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마저 매몰차게 떨쳐버리기는 어렵다. 이러한 호기심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영적이고 문화적인 존재인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근원적이고 문학적인 상상력을 사유로 한다.

사실과 실험으로써 진리를 이해하려는 엄격한 과학은 사후 세계와 환생을 설명하려고도 않지만, 우주의 막연함과 경이로움 앞에 여전히 작은 존재인 인류의 지식이 아직 밝히지 못한, 아니면 결코 밝힐 수 없는 환생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든 작동하고 있다면,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태어나는 사람들은 그 환생 시스템에서 아주 가끔 일어나는 오류일지도 모른다. 혹은 누구처럼 삼켜야 할 맹파탕(孟婆湯)을 토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생사의 강(生死河)』에는 이런 전설이 나온다. 사람이 죽으면 귀문관(鬼門關)을 건너 황천길로 들어서는데 저승과 이승의 사이에 망천수(忘川水)라는 강이 있고, 그 강에 있는 나하교(奈何橋)를 건너면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나하교를 건너려면 나하교 옆에 앉아 있는 맹파(孟婆)라는 노파가 주는 맹파탕을 마셔야 한다. 맹파탕을 마시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하교를 건너자마자 좀 전에 먹은 맹파탕을 토해낸 불량한 영혼이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리고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자신을 죽인 사람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죽어야만 했던 그 원한도 그대로 이어받은 채 환생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 생애에서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는 ‘유령 탐정’이 된다. 그는 바로 차이쥔(蔡駿) 추리 소설 『생사의 강』에 등장하는 요절한 주인공 선밍이다.

사람의 복잡한 삶을 축소해 놓은 듯한 사건의 복잡성

난 추리 소설이다. 선밍이 학생들에게 ‘마녀 구역’이라 불리는 음침하고 캄캄한 지하실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뒤에서 급습하여 칼로 찔러 죽인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이지만, 살해된 사람이 전생의 기억과 원한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환생하여 자칭 ‘유령 탐정’ 노릇을 한다는 점은 추리 소설이기보다는 괴기 소설에 더 가깝다. 살해된 영혼이 다른 인물로 환생하여 전생의 ‘나’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만 놓고 보면 ‘전설의 고향’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읽어보면 선밍이 살해된 사건 전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내기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생사의 강(生死河)』에 등장하는 살인자는 한두 명이 아니고, 그에 따라 피해자도 여러 명이다. 선밍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도 살해된 피해자이기에 앞서 분노와 증오로 눈이 먼 나머지 애꿎은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명백한 살인자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인과응보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소설이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살인처럼 『생사의 강』 속 살인자들도 시기, 질투, 탐욕, 증오, 비밀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다. 언뜻 보면 각각의 살인은 개별적으로 보일 정도로 사건들을 서로 이어주는 동기나 연결성은 쉽게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언뜻 개별적으로 보이는 각각의 사건과 선밍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어떤 것은 거미줄처럼 매우 가늘고, 어떤 것은 동아줄처럼 매우 굵은 등의 서로 차이를 보일 수는 있어도 사건들의 중심에는 선밍이 있다는 것이다.

거의 이십 년에 가까운 길고도 긴 수사 과정을 거친 끝에 마침내 선밍을 죽인 살인자는 밝혀진다. 선밍의 죽음에 직 • 간접적으로 무수히 얽힌 복잡하기 그지없는 우여곡절은 사람의 다사다난하고 복잡한 삶을 축소해 놓은 듯 매우 압축적이며 조밀하다. 독자의 가슴을 찢어발길 수도 있는 선민의 죽음에 얽힌 우연적 요소는 잔인한 운명의 장난 때문에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비극적인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등장인물 간에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은원관계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쉽게 갈무리가 안 될 정도다. 마침내 선밍을 죽인 사람이 누구였는지 밝혀지는 순간, 그 운명의 잔인함과 불가해함에 할 말을 잃고, 그런 복잡한 난제를 소설로 풀어쓸 수 있었던 차이쥔(蔡駿)의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주인을 서서히 갉아먹는 비밀

지고 보면 이렇게 삶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개씩 품고 사는 ‘비밀’이다. 선밍의 영혼이 씌운, 한마디로 귀신 들린 소년 쓰왕의 말처럼 누군가는 그 비밀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넣고자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비밀을 숨기려고 살인까지 저지르며 비밀을 알고 있는 자의 입을 막기도 한다. 물론 아름다운 비밀을 간직한 사람도 있겠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자신의 삶을 하루아침에 파멸시킬 수 있는 치명적이고 범죄적인 비밀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비밀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약점으로 잡히는 순간 그 주인에게도 매우 치명적이기에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의 수단과 방법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수단은 바로 살인이다. 그래서 치명적인 비밀을 품는 등장인물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생사의 강』에서는 살인도 많이 일어난다.

치명적인 비밀을 품고 산다는 것은 자신의 몸속에 흰개미를 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의 삶은 흰개미에 의해 서서히 갉아 먹힐 테고, 그래서 언젠가는 약간의 타격만으로 쉽게 허물어지게 된다. 그것은 운이 나쁘면 비극적인 죽음이 될 것이고, 운이 좋다면 절망과 좌절에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서서히 세상으로부터 잊히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두 결과 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살면서 그런 치명적인 비밀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 그럴 땐 어찌해야 할까? 나라고 별수 있나? 나도 모르겠다.

마치면서...

이쥔(蔡駿)의 『생사의 강』은 지금까지 읽어본 추리 소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건 배경을 가진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복잡성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머릿속으로 작품을 정리하면서 음미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만, 한편으론 무상하고 기만적인 운명의 얄궂은 장난을 보는 것 같아 알싸한 슬픔에 젖게 한다. 아무튼, 데구루루 굴러가면서 저절로 풀어지기도 하는 실뭉치를 신기한 듯 따라가는 고양이처럼 문장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본능적으로 따라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소설이다. 굴러가던 실뭉치가 고르지 못한 바닥 때문에 요리 튀고 저리 튈 때마다 고양이가 춤을 추는 것처럼 독자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에 따라 감정이 요동치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현대 중국 소설을 읽다 보면 생소하면서도 어딘지 낯익은 과거를 보는 듯한 이채로운 도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2000년대 초에 우체국에서 아직도 주판을 사용하는 것과 자가용 불법 택시, 중학교 근처에 생뚱맞게 자리한 고급 술집은 꼭 우리의 멀지 않은 과거를 보는 것 같다. 반면에,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는데) 중국에는 크리스마스 휴일이 없다는 사실과 고등학교 1학년 첫 어문 수업(우리나라로 따지면 국어?)에 마오쩌둥의 글을 배운다는 점은 역시 혁명으로 탄생한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색을 드러내는 것 같아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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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7일 일요일

[책 리뷰] ‘빵 맛’을 잃고 ‘숲 전체’를 놓친 나, 그래도 ~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우타노 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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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맛’을 잃고 ‘숲 전체’를 놓친 나, 그래도 만족스러운 감동

Original Title: 春から夏、やがて冬 by 歌野 晶午
내선전화가 울렸다. 히라타가 수화기를 들어 두세 마디 응대했다. “현실이란 것은 이런 식으로 인정사정없어. 한참 심각한 얘기 중에 ‘십 분 남았는데 연장하시겠습니까?’라는군.” 스에나가 마스미는 움쩍도 하지 않았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春から夏,やがて冬)』, p189)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세계가 반전’한다!

표지 바로 뒷면에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春から夏,やがて冬)』의 저자 우타노 쇼고(歌野 晶午)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마지막 5페이지에서 세계가 반전한다!’라는 강렬한 문구가 쓰여 있다. 실로 엄청난 자신감이 내포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이 문구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엄청난 기대감을 품게 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런 자극적인 문구로 선전하는지 비판의 날을 세우게 한다. 마치 어느 제과점에서 세계 어느 빵집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새로운 빵이라고 신제품을 선전하는 것이 거뜬히 세 끼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늘 굶주려 있는 사람들의 탐욕스러운 입을 걸쭉한 침의 바다로 만듦과 동시에 이들의 세련될 대로 세련된 미각의 경계심을 곧추세우는 것과 같다. 결국엔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지갑을 털어 신제품 빵을 한입 베어먹는다. 약간의 놀람 속에서 ‘그럼 그렇지.’ 귀신처럼 익숙한 맛을 찾아낸다. 그러면서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우쭐대는 것이 이들의 취미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배고픈 사람이 그 빵을 먹었더라면 아마 세계 최고의 빵이라는데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빵을 먹어치운 미식가답게 조금은 젠체하며 맛을 꼼꼼하게 음미하려다 보니 전체적인 ‘빵 맛’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빵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의 연구원처럼 분석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너무 세심한데 신경 쓰다 보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가 반전’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즉, 너무 기대한 나머지 잔뜩 긴장한 채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가 반전’해야 할 것이 그냥 어느 동네 한구석이 반전해 버리는 시시콜콜한 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기 때문이리라.

내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 작가 중 한 사람

타노 쇼고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을 안겨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葉桜の季節に君を想うということ)』라는 소설로 단박에 내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잠시 다른 책들은 젖혀두고 도서관에 있는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로만 독서 욕구를 연달아 충족시켰던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하다. 『시체를 사는 남자』,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여왕님과 나』, 『밀실살인게임』, 『해피엔드에 안녕을』, 『밀실살인게임 2.0』, 『긴 집의 살인』, 『흰 집의 살인』, 『움직이는 집의 살인』까지 단숨에 탐독했었다. 여기서 그친 것은 도서관에 있던 우타노 쇼고의 소설이 그땐 그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수년 전 이야기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잠시 잊고 있다가 오래간만에 괜찮은 추리 소설이 읽고 싶어 그를 찾았고, 역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때론 생각이 지나치게 많으면 재미가 반감된다!

러나 ‘마지막 5페이지에서 세계가 반전한다!’에 너무 현혹된 나머지 전체를 놓치고 말았다. 이번엔 나도 작가가 준비한 트릭이나 구성에 쉽게 속지 않고자 나름의 각오를 다졌다. 그리하여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고 꼼꼼하게 추려내어 뭔가 성과를 올려보겠다는, 되지도 않는 오기와 공염불한 의지가 발동된 것이다. 그런 시기적절하지 않은 의지와 오기 덕분에 작가가 준비한 떡밥을 (물론 이 모든 것이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덥석 물지 못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런 각오에도, 끝내 마지막 반전의 묘수는 완벽하게 간과하지는 못했다. 결말을 봤지만 (이해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잠을 푹 자고 난 것 같은 개운함보다는 자는 도중에 갑자기 깬 것 같은 찌뿌둥함과 ‘이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고로 이것이 끝이 아니다, 뭔가 더 있다!’라는 석연치 않은 의심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같은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는 기막힌 반전은 만끽하지 못했다. 독자의 지나친 의심과 경계가 추리 소설의 묘미를 맛보는데 제약이 된 경우였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런 독자의 의심과 경계를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했더라도 의심과 경계를 흐트러트릴 수 있는 적절한 방책을 마련하지 못한 작가의 실수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세계의 반전’은 만끽하지 못했지만, 그 대신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슬픈 빵을 먹은 것 같은 가슴 언저리에 뭔가 묵직한 비극의 체증을 맛보았다. 그것은 보은의 도리가 낳은 거짓말이 예기치 않게 불러온 오해와 그 오해로 말미암은 흘리게 된 눈물과 피에 젖은 빵이었다.

내가 본 ‘두 개의 떡밥’, 그리고 놓친 ‘세계의 반전’

가 보기엔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에는 커다란 두 개의 떡밥이 나온다. 첫 번째는 보통 사람이 그렇게 다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초등학생이 다리를 건너다 무심결에 지나가는 사람을 건드렸는데 어쩌다 보니 그 사람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생은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침착하게 행동한다. 초등학생은 숙련된 범죄자처럼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주변을 살핀다. 목격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초등학생은 죽은 사람을 사고가 아닌 자살로 죽은 것으로 교묘하게 꾸민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설정이다. 두 번째는 추리 소설에서 잘못 사용하거나 지나치면 재미와 트릭의 질을 떨어트리면서 개연성까지 잃게 하는 지나친 우연성이다.

이 두 경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떡밥일 수도 있다. 그것은 상대가 우타노 쇼고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설마 그가 이런 허술한 설정으로 독자를 속여 넘길 생각은 아니겠지?’ 하는 이유 있는 경계심이 내 의심의 촉각을 더욱 곤두세웠고, 그로 말미암아 끝까지 경계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던 나는 ‘세계의 반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만약 내가 우타노 쇼고를 전혀 모르는 독자였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을 강렬한 반전이 일으킨 흥분에 휩싸여 횡설수설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반면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떡밥이 작가의 준비성 부족이거나 반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성실의 결과였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치명적인 실수다.

마치면서...

래도 추리 소설에서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서늘한 바람이 가슴 한구석을 휑하니 휘젓고 지나간 것 같은 가슴을 아련히 시리게 하는 씁쓸하고 서글픈 감동은 ‘빵 맛’을 잃고 ‘숲 전체’를 놓친 나에게 그나마 다행이고 위안으로 다가온다. 또한,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내 독서 인생 중 단 몇 시간 만에 일독한 아주 소수의 책 중 하나다. 초반엔 그 흔한 살인도 없고, 그래서 범인을 추리하는 전개도 없는 전혀 추리 소설 같지 않은 전개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다음의 회상이지 정말이지 그땐 그런 것조차 생각할 정황이 없었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막상 다 읽고 나면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반전은 둘째치고 단순 명쾌한 문장으로 직선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상당하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요즘 후덥지근한 장마철 날씨에 시달리던 빈약한 육체였지만, 이 책 덕분에 잠시나마 더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말한다면 과언일까(이 리뷰는 2018년 여름에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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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5일 월요일

[책 리뷰] 정직하지만 교묘한 ‘심리 트릭’에 매혹되다 ~ 불연속 살인사건(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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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지만 교묘한 ‘심리 트릭’에 매혹되다

Original Title: 不連続殺人事件 by 坂口 安吾
“ … 문에 끈을 달아 저절로 닫히게 한다거나 밀실살인을 가장하는 그런 잔재주는 그 자체로 결국 흔적을 남기고 마니까요 잔재주를 일체 배제한 점이 바로 범인의 어떤 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지요. 그는 자기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걸 무엇보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조심조심하고 있지요 그런 침착성과 침묵은 범인이 천재적인 살인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범인의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살인이 범인의 진짜 목적일까요? … ” - 교세이 (『불연속 살인사건(不連続殺人事件)』, p186)

오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던

1947년 9월호부터 다음 해 8월호까지 잡지에 연재된 『불연속 살인사건(不連続殺人事件)』은 사카구치 안고(坂口 安吾)의 첫 추리 소설이다. 소년 시절부터 반 다인(S.S. Van Dine)과 엘러리 퀸(Ellery Queen), 그리고 애거사 크리스티(Dame Agatha Christie) 등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던 사카구치는 성인이 되어 문인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동료 문인들과 함께 추리 소설의 범인 맞추기 게임을 했는데, 그는 누구보다 게임에 열심히 임했음에도 범인을 맞춘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 매번 지기만 해서 오기가 발동했는지, 아무튼 그는 ‘자네들이 절대 알아맞히지 못할 추리 소설을 내가 꼭 쓸 테니까, 어디 두고 보게’라는 전설 같은 말을 남기고 훌쩍 사라졌다가 어느 날 약 350장의 원고용지 묶음을 가지고 잡지 편집부에 나타났고, 그렇게 탄생한 소설이 바로 『불연속 살인사건』이다. 또한, 이 소설이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엘러리 퀸(Ellery Queen) 추리 소설만의 별미인 ‘독자에게 도전’을 본떠 범인 맞추기 현상금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 범인 맞추기 대회에는 우리도 익히 그 명성을 아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 乱歩) 등 쟁쟁한 문인들이 도전했는데, 뜻밖에도 1등은 도쿄 물리 학교의 한 학생이 차지했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탐정 교세이와 긴다이치

렸을 때부터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음에도 동료와의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는 번번이 실력 발휘를 못 한 한이 맺혔던지 『불연속 살인사건』에서 활약하는 탐정 교세이(巨勢)는 사카구치처럼 문인일 뿐만 아니라 소설이 엉성하니까 범죄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즉 소설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탐정의 자질이 있다는 어딘가 역설적인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것은 마치 사카구치 자신은 범인 맞추기 게임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은 잘 쓸 수 있다고 동료에게 해명하면서도, 한편으론 늘 범인 맞추기 게임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신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구차한 해명을 굳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소설은 ‘심리 트릭’을 기가 막히게 활용했다.

탐정 교세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이 소설이 연재되기 바로 1년 전에 요코미조 세이시(横溝 正史)의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 시리즈 첫 소설인 혼징 살인사건(本陣殺人事件)이 나왔다는 점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두 소설 모두 살인 잔치라도 벌이듯 대량 살인이 처참하게 벌어진다는 점과 얄궂게도 범인이 계획한 모든 살인이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진상이 밝혀진다는 점(대부분의 추리 소설 이야기 구성이 이와 비슷하겠지만)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긴다이치와 교세이 역시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면모를 풍긴다는 점이다. 앞으로 나서서 적극적으로 활약하기보다는 좋게 말하면 겸손하게,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소심하게 경찰 수사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한편, 어딘지 미덥지 못한 어수룩하고 능청 떠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죽을 사람이 다 죽고 난 후에야 마침 기다렸다는 듯 진상을 밝힌다. 아마도 추리 소설 마니아였던 사카구치로서는 『불연속 살인사건』을 준비하면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것이 첫 추리 소설을 쓰는 부담감을 조금 덜어주는 의미에서 약간의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장을 애욕의 산란장으로 전락시키는 문인들

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있는 산장에서 무려 8번이나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문인들이다. 이 소설 속에서 문인들은 서로 노골적으로 야유하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비꼬고 업신여기고 놀리고 모독하고 험담하는 등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주 무대가 되는 산장을 애욕의 산란장으로 전락시키는 등 문명과 문화를 대변한다는 문인들이 홍등가에서조차 보고 듣기 어려운 파렴치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한다. 패전의 영향으로 치부하기엔 정도가 지나친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문인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의식과 각자의 작품특성이나 성격을 두고 일어나는 논쟁에서 비롯한 날카로운 대립의식 때문에 문인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픈 자포자기적인 심정을 반영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별생각 없이 보면 마구 내뱉는 말처럼 보이는 거칠게 오가는 설전 속에 의미심장한 가시를 심어두는 문인들의 그럴듯한 말재주를 음미하는 재미도 가히 쏠쏠하고, 그런 설전 속에서 뒤틀리고 왜곡된 인간의 심성을 은연중에 부각시키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심리 트릭’에 푹 빠지다

지막으로 『불연속 살인사건』은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범인 맞추기 현상금 대회를 시작했을 정도로 독자 앞에 정직하고 공정한 소설이다. 고로 눈치 빠른 독자는 네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쯤 심증만으로 진범을 추려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트릭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연속적인 일곱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알리바이 조사를 통한 공통된 용의자도, 살해된 사람들의 신상 관계를 통한 공통된 동기를 가진 용의자도 추려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독자는 이 일곱 사건이 서로 다른 범인에 의해 계획된 개별적인 사건인지, 아니면 같은 범인에 의해 계획된 연쇄 살인인지 혼란에 빠진다. 아니면 일곱 사건 중 그중 몇 가지는 범인의 진짜 목적과 들어맞는 살인이고 나머지 살인은 잔악하게도 그 목적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정도 떠올려볼 수 있다. 힌트를 주자면 이 소설이 준비한 트릭은 밀실이나 알리바이 같은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트릭이 아니라 매우 교묘한 심리적인 트릭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자연스러워 보여도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언행이 바로 정답이다. 그 매혹적인 ‘심리 트릭’에 푹 빠져버리지 못한 당신은 더는 추리 소설을 읽을 자격이 없다는 말을 끝으로 지루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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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0일 수요일

[책 리뷰] 환상적인 미스터리와 과학적 엄밀함으로 빚어낸 ~ 기억나지 않음, 형사(찬호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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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미스터리와 과학적 엄밀함으로 빚어낸

Original Title: 遺忘.刑警 by 陳浩基
갑자기 등줄기가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아친이 꺼낸 말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건드렸다. 나는 수첩을 꺼내 펼쳤다.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적나라하게 거기 있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정말로 6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거라면 내 수첩에 적힌 내용이 왜 6년 전 사건인 걸까요?”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 p128)

독자를 현혹하는 두 개의 미스터리

자는 자그마치 무려 두 개의 미스터리를 추적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전형적인 홍콩의 소시민층이었던 임산부와 그녀의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두 번째는 시간 터널을 통해 6년을 점프한 것인지 아니면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2)」처럼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즉 지난 6년간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은 한 남자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두 개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실마리는 엉킨 실타래처럼 서로 긴밀하고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마치 눈앞에서 미치광이가 춤을 추는 것처럼 독자를 현혹하는 텍스트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안개 낀 것처럼 모호하게 흩뿌려놓는다. 한편으론 엄밀한 과학적 추론을 끌어들이는 텍스트의 간곡한 의지는 미스터리와 미스터리를 연결하는 논리성과 개연성을 증대시킨다. 이처럼 환상 속으로 밀어붙이려는 원심력과 과학적 논리를 추구하려는 구심력은 독자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도록 혼란과 의문을 가중시킨다. 함정인 걸 알면서도 함정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운명의 가혹한 힘에 떠밀린 독자는 작가가 친절하게 준비한 교묘한 서술에 중독되고, 관능적인 텍스트에 놀아나며 갈팡질팡하는 독자가 가련하고 보기에 딱했던지 멀찌감치 떨어져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관조하던 미스터리는 그제야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흩어졌던 미스터리가 점점 한 점으로 응축되면서 드디어 미스터리가 더는 미스터리가 아니게 되는 순간, 독자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싹한 한기와 미세하게 떨리는 전율은 그동안의 혼란과 좌절을 십분 보상해주고도 남을 터이다.

환상과 과학의 명확한 경계를 논리로 무너트리다

리 소설에서는 기름과 물처럼 섞이기 어려운 존재인 환상과 과학의 확고부동한 경계를 명쾌한 논리로 무너트림으로써 완성된 찬호께이(陳浩基)의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는 미스터리의 엄밀함과 (그동안 장르 소설에서는 도외시되었던) 문학성을 추구하는 텍스트로 잠수하기 전에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독자를 한껏 빨아들인다. 그러다가 그렇게 미스터리의 중심까지 빨려온 독자를 기가 막힌 반전으로 재채기하듯 힘껏 내쳐 버린다. 이로써 미스터리의 윤곽을 서서히 잡아간다고 의기양양했던 독자를 또다시 미스터리의 한복판으로 날려 보내 어리벙벙하게 만드는 실로 놀라운 작품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제대로 된 추리 소설이었다. 한편으로는 읽는 내내 찬호께이(陳浩基)라는 대단한 작가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흥분에 겨워 책을 잡은 두 손이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리는 것처럼 떨기도 했다. 사실 영화나 소설 등 많은 대중적인 작품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억 상실을 소재로 삼아왔기 때문에 식상하지 않을까, 혹은 너무 쉽게 미스터리의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으나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둬도 될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걱정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역시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기억나지 않은, 형사』를 읽는 내내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나 다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무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창조력을 가진 인류의 놀라운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찬호께이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로부터는 “무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단지 ‘중국인이 이런 내용을 써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의심 때문에 타이완 추리작가협회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영어권 작품을 번역해서 고쳐 쓴 게 아닐까 하는 표절 의혹을 샀을 정도로 중국어권 추리소설계에서 용처럼 솟아오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찬사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고 못마땅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고 나면 비록 백 퍼센트는 아닐지라도 많은 사람이 특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이유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찬호께이는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에 투고할 때 덧붙인 글에서 미스터리의 환상성과 전통적 관념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방법론, 그리고 21세기적 새로운 과학지식으로 작품을 지탱해야 한다는 21세기 본격추리 창작의 조건에 대해 언급했다고 한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이로써 독특하면서도 엄중한 자신만의 창작 가치관을 지닌 작가를 만나게 된 독자는 반갑기 그지없다. 시마다 소지의 심사평대로 ‘21세기 본격추리’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특출난 작품이다.

마치면서...

반적인 문학 작품은 탐독 전에 약간의 스포일러를 안고 가도 보통은 작품 감상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말 한마디가 단서가 되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추리 소설, 그것도 본격파 추리 소설 같은 경우는 다르다. 특히 이 소설처럼 굉장히 세밀하고 엄격한 논리로 구성된 경우 리뷰를 쓰는 사람이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도 머리 회전이 빠르고 눈치가 뛰어난 독자에겐 김 새게 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일부러 줄거리나 본문 중 극히 작은 부분이라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삼갔다. 좀 더 많은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심을 불러들이고자 소설의 세부내용을 언급할 수도 있었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에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한다면 지금까지의 지리멸렬한 내 글은 깡그리 무시해도 좋지만, 당신이 만약 추리 소설 마니아라면, 특히 나 같은 본격파 류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정말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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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일요일

[책 리뷰] 유감스러웠던 독일 국민작가와의 첫 만남 ~ 신데렐라 카니발(안드레아스 프란츠)

Todesmelodi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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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웠던 독일 국민작가와의 첫 만남

Original Title: Todesmelodie by Andreas Franz, Daniel Holbe
그러나 그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사실은 변태적인 욕구에 눈이 멀어 엄청난 돈을 주고라도 이런 비디오를 살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대서양 이쪽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요에 따라 가격이 책정된다는 점에서는 섹스도 마약이나 무기 와 마찬가지였다. (『신데렐라 카니발』, p406)

원작자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소설

스터리 스릴러 소설 『신데렐라 카니발(Todesmelodie: Ein neuer Fall fuer Julia Durant)』은 절반 정도 완성된 안드레아스 프란츠(Andreas Franz)의 유작을 작가이자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팬이기도 한 다니엘 홀베(Daniel Holbe)가 이어 완성한 작품이다. 의도치 않은 공동 집필이니만큼 약간의 매끄럽지 않은 진행이나 탄탄치 못한 구성을 어느 정도 예상했음에도,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이나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인 설정은 약간의 미흡함을 넘어서 작품의 완성도나 격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독일의 유명한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 안드레아스 프란츠와의 첫 만남치곤 매우 유감스러운 자리가 되어버렸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다른 소설은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신데렐라 카니발』의 밋밋하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한 범인 설정이 프란츠의 죽음이 초래한 원작자의 집필 의도나 구성의 상실이 가져온 부작용인지, 혹은 미완성 유작을 이어받은 다니엘 홀베의 미숙함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프란츠 작품은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소설 읽기의 참맛을 개연성 있는 추리 과정이나 개연성 있는 범인의 의외성에서 찾는 나로서는 소설 앞부분에 지나가는 말투로 딱 한 번 언급된 인물이 막판에 범인으로 등장하는 무성의한 설정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내가 원하는 개연성 있는 추리 과정이란 모래성을 쌓듯 크고 작은 단서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범인의 윤곽을 조금씩 조금씩 그려나가는 것인데, 이 소설은 단박에 ‘짠’하고 튀어나와 버린다. 다시 말해 소설 초반에 아주 잠깐 언급되고 나서 마지막 범인으로 지목되기까지의 공백은 LA와 뉴욕만큼이나 너무나도 크게 떨어져 있다. 범인을 뒤쫓거나 특정 인물로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은 밋밋하고, 그래서 조각들을 모아 퍼즐을 완성하듯 뭔가를 풀어나가는 재미도 없다. 한마디로 범인 찾기 놀이의 미스터리한 재미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다. 한편으론 (정체는 아직 드러내지 않은) 범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범행 동기가 부여되는 시점과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관한 서술을 좀 더 추가하거나, 아니면 이것을 좀 더 일찍 등장시켜 형사들의 수사 활동과 교차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봐줄 만한 사회파 미스터리적인 요소

런 고로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추리가 번득이거나 재치가 넘치는 것도 아니다. 추리적 요소보다는 (전편을 못 봐 정확한 앞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던 율리아 뒤랑(Julia Durant) 형사의 힘겨운 복귀 드라마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지는 과거와 트라우마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에 따르는 파트너와의 갈등,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새로운 살인 사건이 주는 압박감 등 삼중고에 시달리면서도 수사11반의 동료와 더불어 다른 지역 경찰과의 협조 수사도 유연하게 이끈 율리아 형사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뼈를 깎는 인고의 노력과 자기희생 정신이 빛을 발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변태적이고 이상야릇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스너프 필름’에 얽힌 잔악무도한 범죄를 묘사한 범죄 소설일 뿐이다. 아무리 미완성 유작이라지만, 독일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그렇고 그런 평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가혹한 평가에 공감하지 않는 독자가 더 많겠지만, 아마도 내가 『신데렐라 카니발』에 실망이 큰 이유에는 엄청난 작가라는 선전에 현혹되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다른 소설은 어떤지 읽어봐야겠다는 호기심과 다른 소설들도 이처럼 실망스러우면 어쩌지 하는 망설임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성인 비디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 놓고 발산하는 『신데렐라 카니발』은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사회를 향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스너프 필름’은 마치 도시 전설처럼 어둠의 세계 속에서 기생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변태적인 욕망을 먹고 산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그물망처럼 얽힌 인터넷으로 범죄에 국경이 없어진 덕분에 ‘스너프 필름’의 더러운 생명을 끈질기게 유지해주는 줄기와 뿌리는 쉽게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고, ‘스너프 필름’의 밥그릇은 사람들의 구역질 나는 추한 욕망으로 철철 흘러넘친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즉, ‘스너프 필름’ 전설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좀비처럼 그것을 찾아 헤매는 수요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남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단호하게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개탄할 만한 현실에 대해 가공할 충격과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성범죄를 직접 겪은 피해자이고도 한 율리아 뒤랑 형사는 말한다. “자기가 강간 살해를 하는 장면을 녹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정도면 대체 얼마나 미쳐야 하는 거야?” 그녀의 일침이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일어날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성 상실을 경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상실된 보편적 도덕성을 저주하고 한탄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자신도 뒤랑 형사의 일침이 가늠하는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면서...

담으로 율리아 형사가 속한 프랑크푸르트 수사11반의 강력계 형사들의 성비는 좀처럼 보기 드문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내근하는 베르거 과장을 제외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5명의 형사 중 무려 3명이 여성이다. 선진국이라 그런 것일까? 한국인이 보기에 형사 업무 중 가장 고되고 거친 일을 하는 강력계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은 진보적이다 못해 가히 혁명적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나이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활달하고 매력적이지만, 좀처럼 사적인 면모는 드러내지 않는 베일에 싸인 20대 후반의 자비네 카우프만(Sabine Kaufmann) 형사, 늦은 임신으로 조심스럽게 행복에 겨워하는 30대 후반의 도리스 자이델(Doris Seidel) 형사, 그리고 40대 중반임에도 여전히 매력을 발산하고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과거의 일로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겪는 율리아 뒤랑 형사가 있다. 나머지 두 남자 형사는 도리스와 드림팀을 구성하는 팀 동료이자 동거인인 페터 쿨머(Peter Culmer) 형사, 뒤랑 형사의 오랜 파트너이자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프랑크 헬머(Frank Helmer) 형사가 있다.

소설 마지막에 싸움에 익숙한 범인을 추적하던 도리스와 율리아 형사가 되레 범인에게 육체적으로 제압당하는 장면을 보듯, 여성 셋, 남성 둘이라는 남녀평등에 충실한 강력계 팀은 이색적인 구성인 것은 맞지만, 어떤 면에서는 취약한 구성이다. 결국, 범인은 현장에 출동한 다른 경찰관에 의해 제압당하고 이보다 앞서 범인의 정확한 신원은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밝힌다. 율리아 팀은 나름 훌륭한 팀워크와 직무에 충실한 형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범죄를 다룬 여타 소설처럼 영웅은 없다. 사건 해결은 약간의 운과 근면 성실함, 그리고 다른 지역 경찰들의 협조 덕분에 어줍게나마 마무리된다. 그들 하나하나는 나름 유능하지만 그렇다고 특별나지는 않은 보통 형사들이다. 철저하게 1인 영웅 놀이를 배제한 구성은 평범함 속에서 현실성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또한 영웅 놀이의 속물성과 그것에 동반하는 상업성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의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이다. 한편으론, 과거에 ‘위대한 지도자’의 영웅 놀이에 독일 전체가 참가했다가 쓴맛을 톡톡히 본 독일 역사가 남긴 교훈이 아직도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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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9일 일요일

[책 리뷰] 한국 추리소설 계보의 시작을 알리는 ~ 마인(김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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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소설 계보의 시작을 알리는

Original Title: 魔人 by 김내성

그러나 아아, 그 사흘 동안이야 말로 유탐정에게 있어서는 실로 여러가지 의미로 초조와 번민의 연쇄였다.

첫째로는 사건을 하루 바삐 해결해야 되겠다는, 말하자면 탐정으로서의 초조였고 둘째로는 한개의 연애자(戀愛者)로서의 번민이었다.

더구나 오상억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주은몽의 눈 앞에 나타난 이 즈음,

그리고 전과는 달라서 주은몽의 태도가 지극히 애매하여진 이 지음이 아닌가. (『마인(魔人), 下권 中에서』

시대를 떠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잘 쓰인 소설

제나 난 (작품성이니 문학성이니 등의 전문적 비평은 제쳐두고 단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의 시점에서) 잘 쓰인 글은 시대를 초월하여 재미나게 읽힐 수 있다는 지론을 묵묵히 머릿속에 담아왔는데, 김내성의 추리소설 『마인(魔人)』이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마인』은 거의 100여 년이나 지난 소설임에도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멋들어지게 잘 쓰인 추리소설이다. 그렇다고 『마인』에서 요즘의 읽을만한 추리소설이라면 당연시하는 과학적 엄밀성이나 치밀한 트릭, 아니면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사회파 미스터리’ 같은 것을 기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반드시 갖춰야 할 첫 번째 재능이 ‘트릭’이 아니라 ‘추리’에 있다고 보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줄 만한 소설이다. 무엇보다 요즘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소위 ‘라이트 노벨’이라고 불리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소설’이라는 딱지조차 가당치도 않은 졸렬한 텍스트로 가득한 책들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을 갖춘 책이 『마인』이며, 요즘의 잘 나가는 추리소설보다 트릭의 구성이나 범죄의 치밀한 면은 뒤질 수 있지만, 문장삼이(文章三易)를 고루 갖춘 유창한 문장과 민첩한 재기가 돋보이는 필치는 이들보다 한 수 위다. 아마 내용만으로 평가한다면 다소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장르 소설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텍스트 읽기의 재미가 스펀지에 스며든 감로수처럼 촉촉이 스며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한 고전 추리소설

전이니만큼 변칙과 응용에 능한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기본에 충실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독자가 ‘모든 불가능한 일을 제하고 남는 것이 그 수수께끼의 해결’이라고 하는, 추리소설을 제법 읽어본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법칙으로 범인을 쉽게 추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다시 말해 『마인』에서 펼쳐지는 ‘세계범죄 사상에 잊을 수 없는 일’ 들 중에서 가능성이 없는 경우, 혹은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가면서 범인을 유추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사건 A에서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사람이 ‘가’, ‘나’, ‘다’이고,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라’, ‘마’이며, 사건 B에서는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사람이 ‘가’, ‘나’, ‘마’이고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이 ‘다’, ‘라’일 때, 그리고 두 사건의 범인이 한 사람이라면 두 사건 모두에서 알리바이가 없는 ‘라’가 범인이라는 추리다. 물론 현대 추리소설에서는 알리바이 트릭으로 사건 정황을 교란시켜 추리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알리바이 트릭이 간파된다면, 역시 앞서 거론한 방법으로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최후의 1인, 즉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비단 『마인』에서뿐만 아니라 ‘범인은 우리 중에 있다!’라는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명제가 성립되는 추리소설에서 두루 써먹는 익숙한 추리이기도 하다.

『마인』에서 독자가 범인을 솎아낼 수 있는 실마리이자 ‘세계범죄 사상에 잊을 수 없는 일’ 이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조선 최초의 가장무도회에서 주은몽을 해치려 하던 어릿광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일, 주은몽에게 버림받은 연인 김수일 화가를 대신하여 무도회에 나타난 이선배란 화가가 주은몽 살해 미수 사건 직후 막다른 골목에서 사라진 일, 세계적인 무희 주은몽과 백만장자 백영호와의 결혼식장에 나타난 (주은몽과 어렸을 때 잠깐 알고 지내던) 해월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춘 일, 그리고 백영호와 그의 두 자녀의 잇따른 죽음이다. 나 같은 경우 이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커텐에 비친 두 그림자’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겨놓고 살해당한 백영호의 사건 정황을 듣고 범인을 정확히 유추해냈다.

반면에 범죄 동기는 셜록 홈스라도 절대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이 제공될 뿐이며, 이후 탐정들의 활약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는 과거로부터 서서히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게 된다. 동기는 탐욕과 증오, 원한과 복수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지독한 감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진부하기도 하다. 다만,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마인』에는 여러 탐정이 등장하고,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금기시되는 탐정의 연애도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이 연애 감정으로 (그것도 삼각관계에 빠진 탐정의 질투!) 말미암아 추리와 판단에 혼선을 빚기까지 하는 초풍할 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탐정 유불란은 사랑과 질투에 빠진 나머지 사건 해결에 지리멸렬했던 자신이 못 미더웠던지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는 다시는 범죄사건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한국 추리소설 역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

느덧 오늘의 리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간이 왔다. 『마인』은 무려 100여 년 전에 제법 괜찮은 추리소설을 내놓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 문단을 새롭게 보게 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그때 소설들을 일일이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과 오해 속에 묻혔던 일제강점기 시절 작품 중에서 지금 꺼내 읽어도 제법 재미가 쏠쏠한 작품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한국 추리소설의 잠재성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이후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한국식 사회파 미스터리’의 첫 작품이라 여겨지는 김성종의 대표작 『최후의 증인』을 거쳐, 지금은 어떤 이가 이들 대가의 계보를 잇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치밀한 트릭이 돋보이는 일본 추리소설과 이야기가 풍부한 서양 추리소설의 장점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 낸 한국 추리소설만의 특징이 새겨진 작품이 나올 때도 된 것 같다. 벌써 나왔는지도 모르고, 벌써 나왔다면 반드시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소설이 있다면, 죽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마인』이 요즘의 추리소설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바늘에 실 가듯 추리소설에 반드시 따라붙어야 할 논리성마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물며 트릭이나 반전의 치밀함은 떨어질지라도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만큼은 그물망처럼 잘 짜여 있다. 여기에 톡톡 튀는 필치가 옹골지다. 마지막에 범인이 애드벌룬을 타고 도망치는 액션 장면은 영화로 봤다면 (실제로 1957년에 개봉한 한형모 감독의 영화 ’마인‘이 존재하지만, 분노스럽게도 필름은 소실된 모양이다!)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로라도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일제강점기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동기가 완전히 숨겨져 있고 짐작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공정하지는 않지만, 베일에 싸인 과거와 의혹으로 똘똘 뭉친 동기의 실타래를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맛은 제법이다. 다만, 그 동기에 얽힌 사연이나 내막이 (그 당시로는 신선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러한 사정을 소재로 한 것들이 여기저기에 질리도록 넘쳐난다는 점에서) 신파극처럼 유치하고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자, 그렇다면 읽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만약 당신에게 그것이 문제라면, 정말로 그것이 문제라서 갈팡질팡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여기서 약소하게나마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겠다. 나는 『마인』이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읽을 생각을 못 했다. 왜냐하면, 그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 소설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단박에 찾아 읽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한국 추리소설 계보의 시작을 온 세상에 알렸던 독보적인 존재니까. 꼭, 그것만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의 탐정이 되어보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시원하게 톡 쏘는 뜻밖의 청량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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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일요일

[책 리뷰] 비장함에 반하고 비감함에 취하다 ~ 제물의 야회(가노 료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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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함에 반하고 비감함에 취하다

Original Title: 贄の夜会 by 香納諒一

미나미가 죽고 자신이 살아서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다니, 그에게는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일로 생각되어 견딜 수 없었다. 전혀 상정하고 있지 않던 예상외의 사태다. 어째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제물의 야회』, p75)

“그 녀석이, 미나미가 없는 인생은 시시해…….” (『제물의 야회』, p649)

타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맛보지 못한 비장함으로 홀딱 반하게 만든 『환상의 여자(幻の女)』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자마자 바로 찾은 가노 료이치(香納諒一)의 또 다른 작품 『제물의 야회(贄の夜会)』. 무려 6년이라는 집필 기간이 말해주듯 저자 가노 료이치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닌 『제물의 야회』는 질풍처럼 내달리는 텍스트 사이사이로 다양한 사회 문제를 언뜻언뜻 내비침으로써 단순한 추리소설로 남기를 과감히 거부한다. 문명의 시대를 비웃는 듯 잊을만하면 벌어지는 엽기적인 범죄, 도려내고 도려내도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부정부패,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존재 목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경찰 업무, 범죄 피해자나 그 가족들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챙기려는 몰상식한 언론, 살인을 즐기는 살인마와 직업적으로 살인하는 살인청부업자가 바라보는 죽음과 살인에 대한 심리적 제반 사항, 그리고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대처 문제 등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심리적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격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고 『제물의 야회』가 추리소설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오지랖 넓게 나서기만 함으로써 진짜 재미를 놓친 것은 아니냐고 의심한다면 그야말로 헛다리 짚은 것이다. 명실상부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답게 고통과 범죄에 대한 거칠고 세밀한 묘사는 비정한 분위기를 냉정하게 발산하면서도 때론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거부감이 들게 할 정도로 과감하다. 또한, 추리소설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범죄자와 범죄 동기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풍부한 미스터리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여기에 수프에 후춧가루를 뿌리듯 살짝 가미된 범죄 성향에 대한 심리 분석도 볼만하다.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일어난 갈등들을 깔끔하게 없애는 대신 일말의 미해결을 남겨둠으로써 미해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각성을 요구하고,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은 인물에 대해선 비감한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등 과감한 마지막 한 수를 두고 있다.

에 읽은 『환상의 여자』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마음속을 텅 비우는 듯한 허전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비감함이다. 『환상의 여자』에서는 5년 만에 우연히 재회했지만, 재회의 기쁨을 누릴 짬도 없이 바로 그날 살해된 옛 애인의 가닥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과거사를 좇는 삐딱이 변호사가 등장했다면, 『제물의 야회』에는 한 냉혹한 살인청부업자가 순전히 위장 차원에서 결혼한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집요한 복수가 등장한다. 연인, 혹은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연인을 맞아들이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요즘, 과거는 과거에 묻고 죽은 사람은 마음속에 묻은 채 세월에 모든 것을 맡겨두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냉정하고 현실적인 사람에겐 두 주인공의 작태가 궁상맞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에 대한 두 남자의 감정은 사랑, 혹은 집착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그렇다고 확실하게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어려운 묵직한 뭔가가 끈적끈적하게 녹아들어 있다. 사랑이지만 마냥 달콤하지 않고 슬픔이지만 마냥 쓰지 않은 그 뭔가가 두 남자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고, 이 두 남자를 동정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나로선 그들에게서 지독하게 풍기는 비감함에 취한다.

로답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왔던 그가, 그저 편리하게 신분을 위장하고자 결혼한 한 여자의 죽음에서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그토록 복수심에 불타오를까? 그리고 경찰이 그보다 먼저 용의자를 체포할 것인가? 아니면 아내를 잃은 살인청부업자의 분노로 달아오른 뜨거운 총알이 먼저 용의자의 심장을 향해 발사될 것인가? 광기와 총명함의 구분을 넘어서는 지능적인 범죄자를 추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칠맛 나지만, 한 범죄자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살인청부업자가 다투는 양산도 놓칠 수 없는 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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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6일 일요일

[책 리뷰] 미스터리가 품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과거로부터의 속박 ~ 환상의 여자(가노 료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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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가 품은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과거로부터의 속박

Original Title: 幻の女 by 香納 諒一

“그녀는 내가 자신의 과거를 알기를 바라는 걸까?” (『환상의 여자(幻の女)』, p404)

“있잖아, 스모토 씨. 그 아이는 고바야시 료코로 그냥 이대로 묻어 줘. 고바야시 가의 묘에 넣는 게 꺼려지면 새로 묘지를 수배해 주겠어? 그 아이는 과거의 인생을 버린 거야 당신은 도망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도망치면 안 돼? 살아 있는 동안은 어느 쪽이든 과거를 떠안고 있잖아 …… ” (『환상의 여자(幻の女)』, p620)

을부터 겨울에 걸친 반년도 못 되는 기간을 함께 보냈다. 어떤 날에는 돌아올 따뜻한 봄과 뜨거운 여름에 함께 나눌 소소하지만 달콤한 계획들을 속삭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봄과 여름은 오지 않았다.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한마디 말도 없이 남자 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창 열중하던 일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갑작스레 그만두어야 할 때의 아쉬움과 찝찝함, 허탈함과 상실감, 그리고 이 모든 감정으로부터 회오리바람처럼 몰아붙이는 뼈에 사무치는 미련은 사랑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그런 강렬한 감정이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매듭을 확실히 짓지 못한 이별은 ‘일시 정지’ 상태로 의식 속에 착잡하게 침잠한다. 어떤 계기가 미꾸라지처럼 의식 속을 헤집게 되면 머릿속은 잊은 줄 알았던 진흙탕 같은 과거로 다시 혼탁해진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5년은 무언가를 깜빡 잊기에는 충분할지는 몰라도, 무감각해질 정도로 완전히 잊기에는 충분치 않은, 언제든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설쳐댄다면 과거가 현재를 혼탁하게 흐려놓을 수 있는 애매한 시간이다.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5년 만에 만난 고바야시 료코. 잠깐 차라도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누려는 옛 남자의 처량한 제의를 거절하고, 연락처만 주고받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리 속 무뚝뚝한 사람들 속으로 차분하게 사라진 그녀. 남자의 자동응답기에 한 가지 상담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고, 그래서 내일 다시 전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영원한 과거 속으로 영영 사라진 그녀. 어제만큼은 냉정하게 자신의 발걸음을 내디뎠던, 아직 몸속에서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던 그녀가 오늘은 시체안치소의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다. 이렇게 추억 속의 그녀가, 과거 속의 그녀가 마치 환상 속의 실루엣처럼 그에게로 다가왔다가 뜬구름처럼 사라진다. 이제 남은 일은 사라지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 없으면 지금의 삶에 관여할 리가 없는 과거가 우연과 찰나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5년 만의 재회를 계기로 미꾸라지 같은 헤살꾼이 되어 그 남자, 변호사 스모토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는 일이다.

찰은 로쿄의 죽음을 클럽을 경영하던 마담과 조폭이 얽힌 치정에 의한 그렇고 그런 살인 사건이라고 단정 짓지만, 스모토는 료코의 어린 시절을 추적하던 중 호적상의 ‘고바야시 료코’가 자신이 아는 그녀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맡은 사건과 의뢰를 모두 팽개치고 료코 사건에 매달린다는, 몇십 년 동안 눈물 한 번 흘린 적이 없다는 삐딱한 변호사 스모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정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는 하드보일드 풍의 추리 소설이 바로 가노 료이치(香納 諒一)의 『환상의 여자(幻の女)』다.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깊고도 깊은 미스터리가 진국이지만, 짧은 만남 속에서 평생을 간직할 수 있는 길고도 긴 여운을 맺은 스모토와 로쿄의 애틋하고 서글픈 사랑이 한껏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는, 팽이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피곤한 삶 속에서 무뎌질 대로 무뎌진 현대인의 감성을 살포시 자극하는 작품이다.

군가를 처음으로 만나 서로 알고 지내게 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과거를 모르면 할 수 없지만, 만약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과거가 내심 그 사람에 대해 내린 앞선 판단과 완전히 어긋난다 해도 당신은 그 사람의 과거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는가. 과거는 언제든지 지나가 버리지만, 때론 『환상의 여자』처럼 유령처럼 스리슬쩍 다가와 진흙탕 속 미꾸라지처럼 현실을 흐려놓으면서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도피하기는 쉬워도 과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상의 여자』는 설령 그로 말미암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과거에 집착하고 사는지, 또한, 과거로부터 얼마나 큰 속박을 받고 사는지를 미스터리 속에서 가늠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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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8일 일요일

[책 리뷰] 먹장어 점액 같은 끈적끈적한 긴장감 ~ 흉가(미쓰다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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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장어 점액 같은 끈적끈적한 긴장감

원제: 凶宅 by 三津田信三
터무니없이 기묘한 산, 흉측하고 검은 숲,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집 근처에 방치된 세 구획의 주택지, 수수께끼의 노파, 소름끼치는 폐허 저택, 정체불명의 히히노, 왠지 무서운 사람의 형체. (『흉가(凶宅)』, 70쪽)

년 쇼타에겐 앞으로 닥칠 불길한 일을 어렴풋이 예지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저주 같은 능력이 시골로 이사하는 날 도쿄 역에서 탄 신칸센 안에서도 그만 발동되고 만다. 이유 없는 불안감,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섬뜩함, 이로 말미암은 초조함 등으로 묘사되는 소년의 예지력으로 말미암은 파토스적인 격정은 몇 시간 후 도착한 새집에서 절정에 달한다. 산을 깎아 만든 새 주택지에 마련된, 3년 전에 완공되어 이미 세 가구나 살다 간 그 집에서 쇼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환영들과 마주친다. 집에 깃든 유령인가? 아니면 산에서 내려온 요괴인가. 어른인가? 아니면 아이인가? 쇼타는 나름 머리를 굴려 추리해보지만, 도무지 그들이 나타난 이유와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새집보다 조금 아래 산자락에 있는 연립주택에 사는 또래 코헤이와 사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새집에 강하게 들러붙은 불길함의 원인과 정체를 밝히고자 동분서주한다.

미쓰다 신조(三津田信三)의 『흉가(凶宅)』는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간 10살 소년이 새집에서 겪는 괴상하고 참혹한 경험을 다룬 공포 미스터리물이다. 소년의 눈높이로, 소년의 사고력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라 그런지 간결하고 신속하며 직선적인 사건의 흐름으로 여타 추리 소설보다 더욱더 쉬운 읽기가 가능하다. 반면에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직선적이고 단순한 텍스트는 뭔가 더 깊은맛을 원한 독자에겐 식상함과 함께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또한, 어린 소년이 할 수 있는 일과 사고력에 한계가 그어져 있듯, 소설에서도 소년들은 제약된 행동 범위와 소년 특유의 치기 어린 어수룩함, 그리고 그런 것들이 종종 불러들이곤 하는 치밀함의 부족으로 조금 밋밋한 추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소설의 결말에도 영향을 끼친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쇼타는 흉가의 정체를 깨닫게 되고, 쇼타의 추리에 몰입한 채 정신없이 흉가의 정체를 함께 캐내던 독자는 어디서 날아온 지도 알 수 없는 펀치에 한 방을 얻어맞고 번쩍이는 별을 본 격이 되고 만다. 물론 그전에 쇼타가 목격한 것들과 발견한 단서들을 조합하여 흉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가능성 제로는 아니지만, 일종의 서술 트릭처럼 작용한 쇼타에 대한 몰입과 그에 따르는 일심동체화는 독자의 뇌기능마저 소년 시절로 되돌려버려 좀 무리일 수도 있다.

『흉가(凶宅)』는 크게 대단할 것은 없고, 마지막 결말 역시 조금은 어이가 없고 쇼타 또한 안타깝기도 하지만, 조만간 뭔가 터질 것, 일어날 것 같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사는 소년의 짓눌린 공포와 두려움이 먹장어 점액 같은 끈적끈적한 긴장감으로 독자를 사로잡아 결국 끝을 보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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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3일 일요일

[책 리뷰]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1천만 명을 죽이는 ~ 사악한 최면술사(저우하오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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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적인 방법으로 1천만 명을 죽이는 방법

원제: 邪惡催眠師 by 周浩暉
샤멍야오가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링밍딩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과거를 좋아한다는 건 그들이 현재 행복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429쪽)

최면술사, 대량 살인을 예고하다

씨년스러운 추위가 느껴지는 깊은 가을 저녁. 룽저우의 한 조간신문에 무시무시한 머리기사가 눈에 띄었다. ‘얼굴 뜯어먹는 좀비, 시내에 출몰하다!’. 한 좀비광이 병원에서 항T바이러스혈청(좀비 게임레지던트 이블에 등장하는 약)을 찾다가 (당연히) 구하지 못하자 거리로 나가 길거리의 행인들에게 난폭한 짓을 저질렀다. 거리 CCTV에 찍힌 피의자는 좀비처럼 두 다리를 질질 끌며 느릿느릿 비틀거렸다. 머리와 상체는 살짝 앞으로 기울었으며 두 팔은 앞으로 축 늘어뜨렸다. 그는 지나치는 차들은 무시한 채 흐느적거리며 도로를 가로지르다 자신을 피하려고 급정거한 자동차의 운전자를 덮쳤다. 그는 운전자의 얼굴 반쪽을 물어뜯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부검할 때 그의 목덜미에는 사람의 이빨 자국으로 보이는 상처가 발견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음 날에는 어느 비둘기광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죽은 사람은 평소처럼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었는데, 그때 비둘기들이 거리에서 울린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자 비둘기광은 마치 자신이 비둘기라도 된 것처럼 두 팔을 날개처럼 활짝 벌려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그런데 비둘기광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인터넷에는 ‘너희들의 생사가 내 손에 달려 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나는 세계 최고의 최면술사다. 너희들의 생사가 내 손에 달려 있다.
어제는 좀비를 훈련시키고 오늘은 비둘기를 조련했다.
나는 지금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룽저우에 와 있다. (『사악한 최면술사』, 53쪽)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빚어낸 형사 뤄페이

군가 괜찮은 추리소설 몇 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바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東野 圭吾)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중국에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고 한다. 바로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리는 저우하오후이(周浩暉)이다. 그리고 『사악한 최면술사(邪惡催眠師)』는 저우하오후이의 많은 작품 중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첫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 속 첫 사건이 2012년 6월 29일 중국 저장성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는 점. 해당 사건은 소설처럼 실제로 한 남성이 마치 영화 속 좀비처럼 거리에서 여성을 공격한 다음 얼굴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가가 형사가 있다면, 저우하오후이는 형사대장 뤄페이가 있다. 나이는 대충 마흔 살쯤 되어 보이고 짧은 머리에 널찍한 이마, 각진 얼굴에 짙은 눈썹 등 왠지 중국 공안, 혹은 인민해방군 하면 떠오를법한 딱딱한 이미지를 쏙 빼다박았다. 키는 가가 형사처럼 크지 않고 체격도 건장한 편은 아니다. 캐주얼한 차림에 더부룩한 머리카락, 윤곽이 뚜렷한 얼굴, 인상이 남는 울림 좋은 목소리, 하얀 이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 등 피의자나 피해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전해주는 가가 형사와는 상당히 다른 어딘지 느낌의 형사다. 팍팍한 외모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 작품에서만큼은 형사 뤄페이에게서 인간적인 따듯한 정은 느끼기 어렵다. 마오쩌둥이 자신의 이상주의에 희생된 인민들을 바라보던 냉혹한 시선처럼 뤄페이에게 사람은 끊임없는 관찰과 분석의 대상일 뿐이다 . 형사 뤄페이의 인간적인 면의 부족함이 저자 저우하오후이의 의도이든, 아니면 작품 구성의 2% 부족함 때문이든, (마치 마르크스주의 신봉자 같은) 기계적이며 과학적인 그의 사고방식은 사건과 관련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정에 휩쓸리는 것을 방어해 준다. 덕분에 그는 미모의 최면술사 앞에서도 냉철하게 수사를 진행해나간다 .

그리고 마흔 살이라는 연륜이 나타내듯 뤄페이에게는 현재의 그를 만들고 현재 그의 사고방식의 끄트머리를 이어주는 과거가 있으며 고로 그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이 존재한다. 현재 한국에서 형사 뤄페이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사악한 최면술사』 하나지만, 만약 그의 활약을 다룬 다른 작품들도 번역된다면, 소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 잠깐 내비친 뤄페이의 쓸쓸하고 어두운 과거에 얽힌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은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물론 앞으로 일어난 사건의 실마리를 숨겨둔 에필로그 덕분에 다음 편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최면술은 잠을 재우는 것이다?

비처럼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이야기를 질질 끄는 것 같으면서도 독고구검처럼 변화무쌍한 전개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들 때문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추리소설이다. 특히 좀처럼 물증을 잡기 어려운 최면술을 소재로 범죄를 구성한 면이 독특하고 흥미로우며, 상당한 지면을 최면술 소개에 할애한 저우하오후이의 각별한 배려는 최면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로써 ‘최면술은 잠을 재우는 것이다’라는 최면술에 대한 케케묵은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사악한 최면술사』에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사소한 몇몇 장면들이 눈에 띈다. 형사 뤄페이가 병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나 심문 과정을 비디오 카메라, 녹음기, 워드프로세서가 아닌 수기로 직접 기록하는 등 중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뭔가 동떨어지는 듯한 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는데 중국 추리소설에만 발견할 수 있는 이런 독특한 장면들을 찾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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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1일 금요일

[책 리뷰] 정신착란, 살인, 도피, 그리고... ~ 웨딩드레스(피에르 르메트르)

시간 나면 읽어볼 만한 책

정신착란, 살인, 도피, 그리고 범인과의 맞대결

원제: Robe de Marie by Pierre Lemaitre
그 여자에게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본능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웨딩드레스』, 257쪽)

건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장소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 소피는 도무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편의 생일선물도, 조금 전에 주차한 차도 자신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기억이 없는 물건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 갑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산만해진 행동 때문에 소피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결정타가 터졌다.

소피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서로 격렬하게 증오하던 시어머니의 등을 힘껏 떠밀어 계단에서 굴러 떨어뜨렸다. 앙상한 시어머니의 등을 떠밀은 순간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인 꿈이었다. 그리고 소피는 진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유도 없이 반수 상태에 빠져들었고, 깨어나고 나서 시어머니가 소피의 꿈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처방약을 먹어도 호전되기는커녕 여전히 소피의 기억은 들쑥날쑥했고 정신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 남편마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죽자 소피는 누가 봐도 정신이 멀쩡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은 소피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르베 댁의 가정부로 취업했다. 근무시간이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제르베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6살짜리 외아들 레오도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소피는 아무리 늦게 일이 끝나도 제르베 부인이 집에서 자고 가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이 날은 너무 피곤해 제르베 부인의 권유대로 처음으로 주인집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르베 부부가 출근하고 나서 레오의 싸늘한 시체를 발견했다. 레오의 죽음으로 정신이 나간 소피지만, 아이의 가느다란 목을 휘감은 밤색 끈이 자신의 등산화 끈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상에서 늘 발생하는 사소한 분실, 소피의 정신착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에 자신의 꿈과 그 꿈대로 죽은 시어머니 소식 사이의 시간과 기억의 단절은 그녀를 죄의식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증세를 추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던 남편이 의문의 자살로 죽자, 그녀의 죄의식은 병적인 죄책감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최후의 결정타로 가정부로 일하던 주인댁의 6살짜리 외아들 레오가 자신의 등산화 끈으로 목 졸려 죽는다. 이로써 그동안 기억도, 정신도 없이 몽롱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겨우겨우 연명해온 소피의 삶은 무수한 폭탄 세례를 맞은 아파트처럼 힘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정신이 멀쩡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던 소피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행동은 매우 의외였다.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싸고 나온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은행 마감 시간에 턱걸이하여 예금된 돈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 역으로 향한다. 역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의 살인 사건에도 얽히게 되지만, 결국 소피는 도피 생활에 성공한다. 동선은 최대한으로 넓히고 한 도피처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피처를 바꾸고 보잘 것 없지만 급여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일자리만 찾는 등 그녀는 프로 같은 치밀한 계획으로 2년 넘게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린다. 그러다 소피는 도피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몇 개월 동안 통용 가능한 위조 출생증명서를 암시장에서 산 다음 결혼소개소를 통해 적당한 남자와 결혼하여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레오가 죽기 전에 보여주었던 소피의 행동만을 보면 단순히 칠칠치 못한 것을 넘어 그녀는 누가 봐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녀는 도피생활에서 그전에 보여주었던 산만함과 흐리멍덩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떨쳐버리고 제정신을 가진 보통 사람도 흉내 내기 어려운 치밀함과 결연함을 보여준다. 당연히 독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미친 여자라고 봐도 무방했던 한 여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2년이나 넘게 도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그녀가 진짜로 미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어떤 의도를 가졌든 가짜로 미친 척할 수는 있다. 그러나 소피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만약 그녀는 실제로는 미치지 않았지만, 그녀를 정신착란으로 이끌었던 그녀와 그녀 주변에서 일어난 악몽과도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범인은 무슨 의도로 소피의 인생을 망친 것일까? 복수인가? 놀이인가? 아니면 쾌락인가? 그도 아니면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다른 의도나 계획이 숨어 있는 걸까?

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피에르 르메트르의 『웨딩드레스』에서 범인은 일찌감치 공개된다. 고로 범인 찾기 놀이는 싱겁게 끝난다. 대신 왜 범인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같은 방법으로 소피의 인생을 망치는, 범인의 표현을 빌리면 ‘개조’하는 악랄한 계획을 실행하는지 독자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눈치 빠른 독자는 ‘프란츠’의 일기에서 범인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지만, 이때쯤이면 협력과 대립이 뒤섞인 소피와 프란츠의 기묘한 관계가 어떠한 결말로 끝날지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궁금증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된다.

소설 『웨딩드레스』는 타인의 악의적인 조작으로 평범했던 한 사람의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광기의 개인사를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한 점도 흥미롭지만, 보통의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탐정 또는 형사와 대립하는 범인의 구도가 아니라, 범인과 피해자가 서로 은밀하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고받는 묘한 구도가 이 작품의 묘미다(이 책은 일부 전자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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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책 리뷰]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 능숙한 솜씨(피에르 르메트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원제: Travail soigné by Pierre Lemaitre
“현실은 결국 허구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지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나로 말미암아 예술과 세상 현실의 혼융이 이루어지는 셈이었습니다.” (『능숙한 솜씨』, 243쪽)

명의 여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토막’이라는 섬뜩한 단어조차 내장까지 파헤쳐진 시신의 처참한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할 정도로 현장은 피와 살점의 아수라장이었다.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벽에 못 박힌 젊은 여자의 머리통은 차마 말은 못하고 눈물 대신 피를 흘리며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하소연하는듯했다. 대담한 범인은 희생자의 혈흔으로 “내가 돌아왔다”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벽 위에 남겼다. 그리고 서명을 남기듯 가짜 손가락 지문도 남겼다. 이 지문은 미해결 사건인 일명 ‘비극적인 쓰레기하치장’ 사건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범인의 살해 방식과 현장 구성이 특정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한 형사들은 앞의 두 사건을 포함해 다섯 권의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다섯 건의 미해결 살인 사건을 찾아낸다.

리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나 탐정들은 소설의 주인공이니만큼 하나같이 평범하지는 않다. 독특한 성장 배경, 유난히 튀거나 까칠한 성격, 박학한 지식, 비범한 추리 능력 등 주로 내적이고 지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가끔은 이런 점에 덧붙여 더벅머리를 긁적거리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긴다이치 코스케, 헌칠한 키에 말쑥한 옷차림을 한 신사인 엘러리 퀸 등 부가적으로 외모적인 독특함이 추가되기도 한다. 물론 외모가 좀 어수룩하다고 해서 두뇌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인을 쫓는 추격전과 주먹 다툼이 일상 다반사로 일어나는 험난한 강력계에서 겨우 키 145cm의 형사가 반장으로 현장을 지휘한다니,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능숙한 솜씨』는 카미유 반장의 과히 유별난 외모에서부터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줄담배 때문에 야기된 발육부진이 그가 마땅히 얻어야 할 ‘높이’를 까먹은 대신에 다른 특별한 재능을 준 것도 아니다. 그는 명실공히 주인공임에도 작은 키를 제외하고는 비범한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타고난 여타 소설의 형사나 탐정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점도 없다. 그래서 독자는 더욱 당혹스럽다.

그러나 더욱 독자를 당혹스럽다 못해 혼란하게 하는 것은 허를 찌르는 충격적인 반전이다. 범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범죄 소설에 등장하는 살해 방식과 그 현장을 수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마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는 영화감독처럼 책 속의 허구를 현실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범인은 더 대범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성공한다. 범인이 ‘능숙한 솜씨’로 준비한 완벽한 반전 앞에서 카미유 반장을 비롯한 강력반의 형사들은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범인이 마련한 무대에서의 꼭두각시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다. 범인과 작가가 공모하고 작품의 반 이상을 할애해서 준비한 대범한 반전 앞에서 ‘서술 트릭’은 애들 장난일 뿐이었으며, 독자는 녹다운된다. ‘텍스트’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이 완전무결한 반전이야말로 이 작품의 빛나는 가치다.

리소설을 중간쯤 읽고 나면 독자는 작품 속의 형사나 탐정이 되어 지금까지의 단서를 가지고 범인을 추리해 본다. 그러나 거꾸로 범인이 되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형사나 탐정을 농락하고 어떻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지 등 범인의 처지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추리소설은 많지 않다. ‘역할 바꾸기’ 또한 범인을 추리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능숙한 솜씨』를 읽으며 범인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문명이라는 얄팍한 껍질 속에 감춰진 사람의 야성을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 『능숙한 솜씨』에 등장하는 잔혹한 살해 방법 중 몇몇은 실제 살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실제로 행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렇게 재구성한 소설을 읽으며 즐긴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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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0일 목요일

[책 리뷰] 독자의 기우에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미스터리 ~ 거지왕(올리퍼 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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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기우에 허를 찌르는 또 다른 미스터리

원제: Die Henkerstochter und der König der Bettler by Oliver Pötzsch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 (『거지왕』, 248쪽)

달갑지 않은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악몽

가우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목욕탕 주인과 결혼해서 오래전에 먼 제국 도시 레겐스부르크로 떠난 누이동생 리즈베트가 중병에 걸려 위급하다는 급보였다. 다급한 퀴슬은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치료에 쓸 약을 챙겨 급하게 숀가우를 떠난다. 그러나 퀴슬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교묘하고 악의적인 함정과 가혹한 고문이었다.

한편, 숀가우의 제빵업자이자 시의원인 미하엘 베르히틀트는 자신의 하녀를 임신시키고, 하녀는 아무도 모르게 낙태하는 과정에서 시의원이 준 약초를 과다복용하고는 죽는다.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던 지몬과 퀴슬의 딸 막달레나는 음흉한 베르히톨트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지만, 마을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사형집행인의 딸, 그리고 그 딸과 놀아나는 지몬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베르히톨트는 막달레나가 더는 이 일을 떠들지 못하게 사람들을 선동하여 위협을 가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막달레나의 고모 리즈베트처럼 도시를 떠나기로 한다. 목적지는 고모가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정하고 간단하게 짐을 꾸린 두 사람은 도나우 강 위를 흐르는 뗏목에 몸을 싣는다.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맛이 조금은 느껴지는

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은 아담한 숀가우를 벗어나 제국을 이끄는 거대한 중세 도시 레겐스부르크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예나 다름없는 우리의 고집 세고 호기심 많은 주인공들은 제국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는 음흉하고 거대한 음모에 맞서느냐 어느 때와 다름 없이 험난한 시련과 마주친다. 고문의 대가 퀴슬은 얼핏 이름만으로는 어떤 고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처녀의 무릎’, ‘스페인 당나귀’, ‘못된 리즐’ 등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고문 도구의 희생양이 되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함정에 빠진 퀴슬은 감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하지도 않은 짓에 대해 자백을 강요당하고, 뒤늦게 도시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막달레나와 지몬은 퀴슬을 구하고자 안간힘을 짜내며 고군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이번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자 재미다.

숀가우를 떠나 도시에 도착한 막달레나와 지몬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뗏목 마스터이자 외의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카를 게스너이다. 그다음으로 카를 게스너의 소개로 찾아간 고래 여관에서 만나는 베네치아 대사 실비오 콘타리니가 있다. 그리고 지몬의 치료를 받은 거지의 소개로 만나게 된 ‘거지왕’ 나탄, 마지막으로 주인공들과는 그리 긴밀하게 접촉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레겐스부르크의 회계국장이자 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파울루스 맴밍거가 있다.

이번 작품의 묘미는 주인공들과 얽히고설키는 주변 인물 중에서 누가 정의의 편이고 누가 악마의 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뜻 보면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한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쉽사리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을 시종일관 유지하기 때문에 누가 정의의 편인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일반적인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한,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제국을 파괴하려는 음모의 핵심을 추리할 수 있는 소재를 작품 초반에 드러내는 대담성을 과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 있기 때문에 독자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한여름이 훨씬 지났음에도 손은 올챙이들이 헤엄칠 정도로 땀으로 웅덩이를 이룰 것이다. 물론 아둔한 나는 모든 단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완성된 지그소 퍼즐처럼 보기 좋게 맞추어진 다음에야 사건의 진상을 깨닫기는 했지만, 눈치 빠른 독자는 꼭 내가 밟은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드디어 드러나는 퀴슬의 과거

작들처럼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도 역사적 검증을 거쳤으며 거대한 부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육중한 유력자들의 주택, 깨끗하게 포장된 거리, 위엄 있는 의회 건물과 성당으로 장식한 도시와 그 이면에 감춰진 지저분하고 악취 나는 그늘지고 후미진 골목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천대받는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곰팡이처럼 기생하는 도시의 이중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놀랍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도시의 그늘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도시가 제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자비한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론 적대적이기도 한 도시 속의 이 두 체계가 놀라우니만큼 조화를 이루고 산다는 것을.

아무튼, 『거지왕』에서 주인공들의 삶에 많은 변화가 오고 그들의 어둡고 침침했던 과거의 베일도 어느 정도 걷힌다. 특히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숀가우를 과감하게 뛰쳐나온 막달레나와 지몬의 운명이 어떻게든 결정되며, 그리고 15살에 아버지가 물려준 양손검을 등에 메고 용병으로 군에 입대한 퀴슬이 ‘두 사람 몫’을 한다는 이유로 하사관으로 승진하고 그런 와중에 겪은 악몽 같은 전쟁 경험이 퀴슬이 빠진 함정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쓸쓸하게 회상된다. 그것은 주변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지옥처럼 불길이 타오르는 전쟁 중에 만난 아내 안나와의 금기시돼왔던 과거의 베일이 조금씩 걷히기도 하는 불편한 되새김질이기도 하다.

올리퍼 푀치의 전작 두 편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거지왕』 역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특히 앞의 두 작품의 주요 소재였던 ‘보물찾기’와는 전혀 다른 미스터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이유 있는 기우를 갖은 독자라면 아무 걱정 없이 이 작품의 첫 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2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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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책 리뷰] 우아한 美 vs 야성적인 美 ~ 검은 수도사(올리퍼 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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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美 vs 야성적인 美

원제: Die Henkerstochter und der schwarze Moench by Oliver Pötzsch
“저는 비명이라면 이미 질릴 만큼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치유 쪽에 좀 신경을 쓰고 싶어서요.” (『검은 수도사』, 267쪽)

자상한 신부의 죽음으로 드러난 보물의 수수께끼

로렌츠 성당의 코프마이어 신부가 독살당했다. 지나친 식탐으로 유명한 신부이기는 하지만, 이 뚱뚱한 신부는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서민을 보살필 정도로 자상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독살당해야 할 만큼 원한을 살 위인은 되지 못했다. 처음으로 신부의 시신을 살핀 지몬과 지몬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숀가우(Schongau)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Jakob Kuisl)은 신부가 죽으면서 남긴 작은 메시지를 통해 지하에 오랫동안 숨겨져 왔던 납골당을 발견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신부의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 베네딕타를 통해 신부가 성당 개축 공사 중 발견한 납골당에 대해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와 베네딕타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베네딕타는 오빠의 편지를 받자마자 말을 타고 달려왔지만 살아있는 오빠를 만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납골당의 먼지 쌓인 옛 무덤에는 템플기사로 보이는 유해가 담긴 무거운 석관이 있었고, 지몬과 야콥뿐만 아니라 검은 수도복을 입은 낯선 세 사람도 템플기사의의 비밀을 추적하고 있었다.

한편, 코프마이어 사건으로부터 사형집행인을 떼놓으라는 뇌물을 받은 숀가우 서기 요한 레흐너는 때마침 극성을 부리고 있던 강도단 토벌을 위해 결성한 토벌단의 대장으로 사형집행인을 임명한다. 야콥을 빼앗긴 지몬은 베네딕타와 함께 코프마이어 신부의 독살 사건을 추적하고 지몬의 민첩한 두뇌가 곧 두각을 나타내면서 놀라운 사실들을 하나둘씩 발견하게 된다.

한 때 템플기사단은 교황에게까지 돈을 빌려주었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부에 눈이 먼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의 음모 때문에 템플기사단은 모조리 소탕당했다. 그러나 기사단의 재산은 일부만이 발견되었을 뿐, 나머지는 종적을 감추었다. 지몬은 이 나머지 보물, 세상의 어느 나라 왕좌든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에 대한 수수께끼의 시작이 납골당에서 발견한 템플기사의 유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야성적인 막달레나, 우아한 강적을 만나다

작 『사형집행인의 딸(The Hangman s Daughter)』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소설 『검은 수도사(Die Henkerstochter und der schwarze Moench)』의 주 미스터리도 보물찾기다. 약탈의 시대 ‘중세’와 보물찾기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일지 모르겠지만, 아직 읽지 않은 세 번째 이야기 『거지왕(Die Henkerstochter und der Koenig der Bettler)』에서도 보물찾기를 들고 나온다면 글쎄, 조금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든다. 기우는 기우일 뿐, 간만에 발견한 색다른 추리소설을 어디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특히 아버지 사형집행인처럼 한 성격 하는 막달레나와 뜨거운 학구열만큼이나 최신 유행에 겉멋이 잔뜩 든 땅딸막한 지몬 사이의 줄타기처럼 위태위태한 사랑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편을 안 읽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 같다. 『검은 수도사』에서는 투박하고 거친 야성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막달레나의 강적으로 프랑스적인 우아함에 라틴어도 술술 외우는 지성미까지 갖춘 베네딕타가 등장함으로써 지몬과 막달레나의 사이는 예측불허의 위기로 치닫고, 두 사람의 관계는 가시밭을 걷는 것처럼 끊임없이 위기가 닥쳐온다. 지몬처럼 호기심의 갈증을 해갈시키고자 온몸을 위험 속에 던질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호기심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다음 편에서 이 불협화음 연인이 또다시 어떤 운명의 시련을 맞이하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회적 최하층인 사형집행인의 딸과 앞날이 창창한 의사 지몬의 결합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최악의 궁합이지만, 신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사람의 신분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할지, 아니면 결국 높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사회적 요구에 순응하며 각각 다른 운명을 걷게 될지. 그래도 흐름을 놓고 보면 어떻게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것 같기는 하지만, 뻔한 결말의 통속극을 보는 시청자들처럼 결말이 불을 보듯 분명할지라도 눈으로 기필코 확인해야 속이 후련한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 아닌가.

마치면서...

지막으로, 『사형집행인의 딸』 후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실제로 존재했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의 후손 중 한 사람으로서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쳐 작품의 배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디테일 속에는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가 상당한 자부심을 품는 가문의 조상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검은 수도사』를 포함한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숀가우를 중심으로 한 경제, 문화, 사회, 정치에 대해 광범위한 묘사는 독자가 17세기 숀가우의 한 시민이 된다면 하루일과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데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며, 만약 중세를 갈망하는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독자라면 이만한 작품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리뷰는 2016년 10월 13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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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책 리뷰] 역사적 고증으로 한 단계 수준을 높인 중세 추리 ~ 사형집행인의 딸(올리퍼 푀치)

The Hangman s Daughte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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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고증으로 한 단계 수준을 높인 중세 추리물의 걸작

원제: The Hangman s Daughter by Oliver Pötzsch
“고생하는 건 엉뚱한 사람들이야,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엉뚱한 사람들이라고!” (『사형집행인의 딸』, 189쪽)

마녀 사냥에 맞서는 사형집행인

기 1659년 4월 24일 화요일 아침 화요일,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숀가우(Schongau) 앞을 힘차게 흐르는 레흐 강 위로 자그마한 한 소년이 나뭇잎처럼 빙빙 돌면서 떠내려오고 있었다. 숀가우 짐마차꾼의 아들로 알려진 소년은 다행히도 강둑에 있던 나무꾼에 의해 발견된다. 소년은 아우크스부르크로 첫 항해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뗏목 사공들의 도움으로 숀가우로 옮겨져 오지만,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던 가운데 곧 숨지고 만다. 젊은 의사 지몬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의 소년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아이가 놀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익사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두부에 둔기로 강타당한 흔적과 심장 주위에 나 있는 일곱 군데의 자상은 소년이 누군가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것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지몬과 마을 주민들의 시선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소년의 한쪽 어깨뼈 아래에 문신처럼 새겨진 기호였다. 빛바랜 보라색 원 밑에 불 쑥 튀어나온 십자가가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마녀의 상징이었다.

이 확연한 상징으로 말미암아 숀가우 주민들과 도시를 지배하는 유력자들은 일말의 수사도 없이 숀가우의 산파 마르타 슈테흘린을 마녀로 지목하고는 감옥에 가둔다. 마을은 마녀를 불태우라는 광분에 휩싸였고 유력자들은 마녀를 화형에 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Jakob Kuisl)에게 고문할 것을 명한다.

퀴슬은 망설였다. 이 여인은 퀴슬의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고,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애써도 죽은 소년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어머니가 없었던 소년 역시 엄마처럼 따랐던 산파가 소년에게 그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오랫동안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직업을 대물림받았던 퀴슬 가문은 생계가 고문과 사형집행에 달렸다. 그래서 사형집행은 산파에게 몰래 약속한다. 조금만 참고 견디라고, 그러하면 자신이 곧 진범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이다.

산파가 감옥에 갇혔음에도 또 다른 사건들은 연달아 일어난다. 산파를 엄마처럼 따르던 다른 고아 소년들도 잇달아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이뿐만 아니라 화재, 납치, 파괴 등 참혹한 사건들이 연달아 마을을 덮친다. 전쟁 이후 겨우 제자리를 찾았던 마을의 평화가 마녀와 악마에 의해 깨어지는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더군다나 마녀들이 숲에서 춤을 추며 악마와 짝짓기를 한다는 발푸르기스의 밤인 4월 30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만이라는 암흑을 거부하는 단 하나의 빛

리 소설 『사형집행인의 딸(The Hangman s Daughter)』 은 비록 단아한 한 편의 추리소설이지만, 배경과 등장인물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은 실존인물이며 놀랍게도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이 퀴슬 가문의 후손이라고 한다. 또한, 작품에서 종종 언급되던 1589년의 숀가우 마녀재판은 실제 있었던 비극으로 당시 60건 이상의 사형이 또 다른 퀴슬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배경은 몰입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 아래 야만이 횡횡하고 암흑이 지배하던 시대, 사람들은 정확한 증거를 기초로 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건 해결을 추구하기보다는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두려움과 흥분도 가라앉히고 더불어 눈요깃거리도 제공할 수 있는 마녀 재판을 선택했다. 여기에도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경제성의 원리가 적용된 것일까. 그들은 희생자가 무고한 사람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모든 나쁜 일은 마녀와 악마 탓으로 돌리면 골치 아프게 머리를 따로 굴릴 필요가 없었고 사건 해결에 드는 시간과 돈도 절약되었다. 또한, 이 기회에 평소에 행동이 의심스럽거나 평판이 좋지 못한 적당한 먹잇감을 골라 마녀로 몰아세운 다음 제거함으로써 눈에 가시거리도 제거할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 누구라도 혹독한 고문 아래서는 평생 책 한 권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눈물겨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없는 죄도 술술 만들어 내기 마련이니 이 어찌 간단명료한 해결책이 아닌가. 한편으로 마녀 화형식은 오락거리에 굶주린 대중을 모처럼 위로하고, 그로 말미암아 지배층을 향한 존경심도 다소 고양할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였다. 장작불에서 통구이가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말 누구 하나 손해 볼 것 없는 장사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사람으로 응당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동정심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 바로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이다. 사람을 죽이는 법의 하수인이면서도, 그 뒤꽁무니로는 사람을 살리는 의학과 약초학에도 능한 그는 부조리한 유력자들의 횡포에 맞선다. 그는 자신을 닮아 괄괄한 딸과 이상야릇한 소문으로 자자한 젊은 의사 지몬과 함께 사건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다시금 마을에 들이닥쳐 모든 것을 황폐화시킬지 모르는 마녀 사냥을 막고 마을을 구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불에 태우자고 외치는 사람이나 이 부조리한 일을 막으려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의 신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퀴슬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나머지는 쾌락과 탐욕,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심성이 순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너그러운 분으로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엄하게 죄를 꾸짖는 심판자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면서...

무튼, 추리소설은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한 일본 작가들 위주로 읽어왔는데,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올리퍼 푀치의 『사형집행인의 딸』은 지금까지 봐왔던 추리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역사적 고증과 개연성에 상당한 고심한 저자의 노력이 그냥 묻히지 않고 전체적인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상당하면서도 독특한 몫을 해낸 것이며, 명탐정의 직업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사형집행인이라는 점도 만고에 없는 이 작품만의 멋이다 .

이 리뷰는 2016년 9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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