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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책 리뷰] 만약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 높은 성의 사내(필립 K. 딕)

The Man in the High Castl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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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원제: The Man in the High Castle by Philip K. Dick

조가 말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면 그들이 저지른 짓을 그대로 했을 거야. 그들은 공산주의로부터 세계를 구했어. 독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빨갱이 세상에서 살았겠지. 지금보다 더 끔찍했을 거야.”

“아무렇게나 말하네. 라디오처럼, 횡설수설.”

줄리아나가 말했다. (『높은 성의 사내』, 150쪽)

실만을 연구하는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사실만을 나열하면 사서(史書)가 되고 여기에 문학적 상상력을 보태면 역사소설이 된다. 하지만, 역사를 다양하게 읽고 싶은 일반인의 처지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중요 사건에 ‘만약’과 ‘문학적 상상력’ 도입하여 파생된 새로운 역사를 상상하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일도 없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만인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질문은 ‘만약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군의 승리로 끝났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이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전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할지라도 사석에서 농담삼아 한 번쯤은 던져봤을법한 질문이지 않은가?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유빅(Ubik)』의 작가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또 다른 작품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는 일반적인 SF 소설과는 달리 미래가 아니라 가상의 역사를 그렸다. 그 가상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추축군의 승리로 끝난 역사다. 진지한 역사학자들은 이 작품에 일말의 가치를 두기는커녕 냉소로 일관하겠지만,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객처럼 호기심 따라 여러 장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오가는 필자 같은 방랑독서가들에겐 『높은 성의 사내』 같은 작품들은 별종을 맛본다는 점에서 반갑기 그지없다. 고로 『높은 성의 사내』를 펼쳐들기 전에 나름의 역사적 지식과 추론 능력을 총동원하여 추축군의 승리로 끝난 세계는 과연 어떤 세상일지 미리 상상해보고 나서 작품을 탐독하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

전국이 대체로 승전국의 문화를 흡수하듯 (승전국) 일본의 (패전국) 미국 점령지역에서는 미래의 운명을 점지해 주는 주역이 유행이다. 상류층인 일본인부터 하층계급인 백인까지 주인공들은 무슨 중요한 일, 혹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주역으로 점을 친다. 점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현실처럼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좋듯, 점을 친 사람들은 점괘에서 나름의 설명과 해법을 구한다. 점괘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수수께끼 같은 점괘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점을 친 사람의 바람과 이해득실이 무의식중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설 『높은 성의 사내』 속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세상을 그린 아벤젠의 소설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를 두고 점을 친 결과에 대한 릴리아나의 해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아벤젠의 책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겐 연합군이 승리한 세상이 진실이고 자신들이 사는 세상은 거짓이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릴리아나처럼 일본에 점령당한 현실이 우울하면 우울할수록 믿음은 더욱더 현실도피적인 경향을 띠기 마련이다. 하지만, 릴리아나의 집념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점령국인 일본 고위관료 다고미가 사후세계라고 착각한 환상 속에서 잠시 겪는 또 다른 세상이 바로 릴리아나가 믿는 연합군이 승리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은 상반된 두 세계 중 어느 세계가 실제이고 허구인지 더는 파헤치지 않는다. 다양한 현실과 그에 따른 다양한 미래가 존재한다는 평행현실, 평행우주 이론은 이 작품에서는 밋밋하게 마무리되지만, 이후 작품인 『유빅』에서는 주요 소재로 등장하여 독자를 매료시킨다.

행현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도(道), 선과 악, 음과 양, 해탈과 죽음, 실재와 환상 등 소설가를 꿈꾼 철학자(혹은, 철학자를 꿈꾼 소설가)답게 철학적인 요소들이 표면적으로나마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터미널이나 기차역 간이 매점에서 종종 사서 읽는 가벼운 라이트소설로 생각하고 무심히 펼쳤다간 당황하고 실망할 수 있는 소설이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내』이다. 하지만, ‘만약’으로 시작된 단문의 가정에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고 상상력을 덧붙여 ‘대체 역사소설’이라는 한 장르로 완결지은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솔직히 소설 속 세상은 별로 반갑지는 않지만, 안전하게 소설로만 즐기는 것은 충분히 봐줄 만한 일이며 혹자에겐 재미있는 읽을거리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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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9일 월요일

[책 리뷰] 삶이 가진 예측 불가능함의 필연성 ~ 작년을 기다리며(필립 K. 딕)

Now Wait for Last Yea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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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가진 예측 불가능함의 필연성

원제: Now Wait for Last Year by Philip K. Dick
“그놈의 시간여행 약을 먹고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자네 앞에서 작고 하찮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어? 옆이나 뒤가 아니라? 혹시 작년이 다시 되돌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거야?” 에릭은 손을 뻗어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작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시 와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작년을 기다리며』, 358쪽)

소위 말하는 순수문학이든, 아니면 추리소설, SF소설 등을 한데 묶는 장르소설이든, 소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그 자체와 그 인간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사회와 그 사회가 생산하는 문화에 대한 다각적 관찰과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SF소설은 현실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래서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소재로 인간을 설명하고 인간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접근할 수 있다. SF소설이라고 해서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나 고찰이 빠진 채 그저 과학적 • 기술적 상상력을 발흥하여 단순한 흥밋거리를 제공하는 것에만 그친다면 그저 그런 삼류소설과 다름없다.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작품들이 그의 사후에도 꾸준히 재평가를 받으며 재판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은 시간 보내기 용이나 흥미 위주의 SF 소설이 아니라 제한적이며 규격화된 현실의 상황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의 내면과 실존 문제를 파헤치는데 SF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SF소설의 품격과 위상을 높인 그만의 독특한 혜안이 있었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다.

금까지 읽은 필립 K. 딕의 작품 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유빅』에 이어 세 번째인 『작년을 기다리며(Now Wait for Last Year)』에는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이후 인간 사회에 끊이지 않는 논란과 문젯거리를 제공해 온 ‘결혼’에 실패한 인공장기 이식 전문의 에릭 스위트센트가 등장한다. 그는 아내의 사악한 계략에 걸려 JJ-180이라는, 외계 문명과 전쟁 중인 지구에서 적국을 섬멸하고자 만든 최악의 마약을 복용한다. 덕분에 그는 평행우주의 실체를 몸소 체험하고 다양한 미래를 경험하게 되면서 현실과 평행한 또 다른 세계에 사는 미래의 ‘나’를 만난다. 미래의 또 다른 에릭들은 거두절미하고 마약 때문에 폐인이 된 아내 캐시와의 관계를 일찌감치 끊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야만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릭은 미래를 여행함으로써 마약에 찌든 아내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그것이 자신에게도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나’의 강고한 조언이 있었음에도 아내를 저버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떤 결말이 올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그것이 설령 파국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일으킬지라도 인간은 종종 그러한 선택을 자행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적 • 과학적 설명도 필요 없으며 들어맞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율제어식 택시의 말대로 인생은 그런 식으로 구성된 현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악독하고 파렴치한 여자라 할지라도 병든 아내를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인지상정은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일 수도 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러한 인간성 때문에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작년을 기다리며』는 아무리 많은 미래를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연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임을 환기시켜 준다. 예상한 대로, 예측한 대로 인간이 행동하고 사회가 기능한다면, 그것은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이는 로봇의 삶과 다름없으며 허무와 권태의 극치이다. 삶이 가진 예측 불가능함의 불가결함을 다중현실이라는 SF적 요소에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와 깊이 있는 안목을 결합시켜 완성시켰다는 점이 바로 필립 K. 딕의 『작년을 기다리며』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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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책 리뷰] 생명의 소실과 엔트로피 증가, 그리고 실존 ~ 유빅(필립 K. 딕)

Ubik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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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실과 엔트로피 증가, 그리고 실존

원제: Ubik by Philip K. Dick

“UN은 반생명을 금지해야 해.” 조는 말했다. “생과 사의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에 간섭하는 그런 기술 따위는.” (138쪽)

“손님 같은 분은 안 오시면 좋겠군요. "스피커가 말했다. 조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언젠가 때가 오면 나 같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서 너 같은 놈들을 쫓아낼 거야. 자동조절식기계의 횡포가 종언을 맞고, 인간적 가치, 인정, 따스함의 시대가 되돌아오는 거지. 그러면 힘든 일을 겪은 뒤에 기운을 차리고 억지로 일하기 위해서라도 한 잔의 뜨거운 커피가 절실하게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은 1포스크레드가 있든 없든 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될걸.” 그는 크림이 든 조그만 용기를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런데 너, 이 크림인지 우유인지 모를 게 썩었다는 거 알아?” 스피커는 침묵을 지켰다. (『유빅(Ubik)』, 141~142쪽)

주의 대법칙인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따라 엔트로피(entropy), 즉 무질서도는 시간에 따라 보존되지 않고 증가한다. 이 법칙은 우주뿐만 아니라 사람의 육체를 포함한 생명체에도 적용된다. 오스트리아의 양자물리학자인 슈뢰딩거(Schrödinger)는 생명을 아주 넓은 의미에서 즉각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 즉 연기가 대기로 흩어지는 것처럼 무질서하게 빠르게 흩어져버리는 상태로 소멸되지 않는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생명은 엔트로피가 무한정 증가하는 것을 억제하는 균형이나 질서, 혹은 그런 질서를 유발하는 흐름이나 효과이며 이것을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생리학자 루돌프 쇤하이머(Rudolph Schoenheimer)는 동적 평형(動的平衡, dynamic equilibrium)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생명체에게 있어 무질서도의 증가는 노화와 죽음을 의미한다.

리는 통상적으로 심장이 작동을 멈추면 죽음을 선고한다. 그렇다면 심장이 멈춘 직전과 직후의 엔트로피 값 차이는 얼마나 날까. 정말로 영혼의 무게가 던컨 맥두걸(Duncan MacDougall) 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에 발표한 연구 논문대로 21g이라고 한다면 그 차이는 미미하다. 이 말은 지금 막 심장이 멈춘 사람은 비록 듣지도, 보지도, 말도 못한다 할지라도 엔트로피 수치상으로는 완전히 분해된 우주 속 먼지보다는 아직은 생명에 가깝다는 뜻이다. 죽음이 선고되었을 때, 그리고 엔트로피가 급격히 증가하기 전, 좀 더 실재적인 말로 설명하자면 부패를 겪기 전에 그 사람을 급속 냉동시킨다면, 비록 그 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은 육체적 기능의 정지로 일반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아직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생명의 질서, 혹은 흐름의 잔흔은 남아있지 않을까. 이른바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공상과학 소설 『유빅(Ubik)』에서 말하는 반(半)생명 상태에서 감지할 수 있는 영자(靈子) 같은 것 말이다.

『유빅』에서는 냉동으로 보존된 반생자(半生者)의 희미한 대뇌 작용, 즉 영자를 감지하는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치 전화기로 통화하듯 대화를 나눈다. 소설 『유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산 자들만이 경험하는 현실이 존재하듯, 반생자에게도 그들만의 현실을 배정한다. 반생자들은 냉동된 상태에서 산 자의 세계와 격리된 채 잠자며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산 자의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그리고 산 자들의 세계의 살벌한 약육강식의 법칙도 그대로 물려받은,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현실처럼 만만치 않은 또 다른 세상에서 투쟁적이고 위태로운 제2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산 자와 반생자의 삶에서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이고 어느 쪽에서의 죽음이 진짜 죽음인가. 그리고 그 사람의 실존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상하는 사람의 관점이나 가치관에 따라 SF 영화는 특수 효과가 생명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겐 오래된 SF 영화는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의 영화가 될 수는 있지만, 요즘 영화 같은 스펙타클한 감흥을 맛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대를 개의치 않는 탁월한 상상력과 기발함을 생명으로 탄생한 SF 문학은 다르다. 오히려 너무 시대를 앞지른 상상력 때문에 첫 발간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가 훗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과 과학적 가치관이 뒷받침되는 시대를 맞이하고서야 인정받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필립 K. 딕의 작품이 그러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유빅』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엄숙한 경계를 독창적인 상상력이 안무하는 리듬에 맞춰 냉정하게 춤추는 순발력 있는 필치로 뒤흔드는 SF 요소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도 개운하게 가시지 않는 미스터리 요소를 훌륭하게 접목시킨, 안 보면 두고두고 후회할 작품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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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일요일

[책 리뷰] ‘영화가 건드리지 못한 수많은 이야깃거리’ ~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필립 K. 딕)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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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건드리지 못한 수많은 이야깃거리’

원제: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by Philip K. Dick
“당신의 양은 진짜인가요?”라고 묻는 것은, 누군가에게 당신의 치아나 머리카락이나 내부 장기가 검사를 통해 진짜인지 확인받았느냐고 묻는 것보다도 더 무례한 행위였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21쪽)

영화의 빛나는 영광의 그늘 속에 숨은 원작

SF 영화광치고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가 주연한 불후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를 두 번 이상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렴풋한 기억으로 더듬어봐도 최소 세 번은 본 것 같은데, 그만큼 이 영화는 SF 장르에서 조지 루커스(George Walton Lucas Jr.)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전설적인 영화다. 하지만, 영화에 감명받은 나머지 영화의 원작 소실인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까지 읽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작품성을 따지고자 할 때 영화와 그 영화의 원작은 별개로 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원작을 각색한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감상을 고려할 때, 서로 완전히 떨어져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화만 봤을 때 확실하게 이해할 수 없거나 진행과 구성에서 뭔가 띄엄띄엄 넘어간다고 생각했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원작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오롯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원작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 혹은 의도적인 생략과 변형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원작을 보지 않고서는 영화에서의 뭔가 매끄럽지 못한 점이나 모호함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상업 영화가 추구하는) 화려한 영상미와 빠르고 긴박한 진행, 그리고 교묘한 편집에 감춰지기에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은 그러한 모순이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영화가 무엇을 건지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럼에도, 난 「블레이드 러너」는 매우 훌륭한 SF 영화라고 본다. 특히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과는 달리 식민지에서 사람을 죽이고 지구로 탈출한 복제 인간(원작의 ‘안드로이드’) 로이를 자신(복제 인간)을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 데커드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복제 인간의 숙명과 그 숙명이 빚어낼 수밖에 없는 비극적 한계를 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에만 있는 또 다른 이야깃거리인 데커드가 (원래 그의 직업이긴 하지만) 그날따라 왜 안드로이드를 사냥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과 가짜 동물과 진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했음에도 이 이야기들을 알아야만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화가 - 실수인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고스란히 삽입되어 있다 . 바로 데커드가 복제 이간을 제조하는 타이럴(원작의 ‘로즌’) 회사에서 레이첼과 나눈 대화 중 올빼미(혹은 부엉이)에 대한 이야기다. 두 사람은 사무실에 있는 올빼미가 인조인지 진짜인지, 그리고 가격은 얼마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눈다. 원작에서 올빼미는 레이첼이 현재 지구에서 하나뿐인 진짜라고 데커드를 속이면서까지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다. 영화에서는 레이첼이 바로 가짜라고 인정하면서 가격은 아주 비싸다고 덧붙이는 것으로 가짜 동물에 대한 이야기는 싱겁게 끝난다.

(원작에서) 데커드는 그날 출근하면서 옆집 사는 이웃 바버가 키우는 진짜 살아있는 페르슈롱 말을 보며 자신도 진짜 동물을 갖고 싶다는 욕구와 희망을 품는다. 사실 데커드는 이전부터 양을 한 마리 키우고 있었지만, 그것은 1년 전에 죽은 진짜 양을 대신한 가짜 동물인 전기양이다. 세계최종대전으로 사람을 제외한 생명체 대부분이 멸종된 지구에는 진짜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유행으로 자리 잡았으며 동물이 희귀할수록, 그리고 더 클수록 부의 상징이 되었다. 지구를 황폐화시킨 인류가 황폐한 지구에 살면서 황폐한 마음을 달래주고, 한편으로는 인류가 처한 황폐한 상황에도 여전히 왕성한 허영심도 채워줄 위안거리로 선택된 것이 살아있는 진짜 동물인 것이다. 그래서 그날 데커드는 진짜 동물을 장만할 자금을 마련하고자 굳이 안드로이드 사냥을 나선 것이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레이첼은 올빼미를 미끼로 데커드를 유혹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옮긴이의 지적대로 원작에는 영화가 건드리지 못한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더 있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을 읽어야만 진정으로 영화가 무엇을 건지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 수 있다 . 여기에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영화를 인상깊게 본 관객이라면 원작도 인상적일 정도로 괜찮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소설의 메시지

설이 발표되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그래서 사람들의 과학적 눈높이가 올라갈수록 퇴색될 수 있는 것이 SF라는 장르가 가진 단점이지만, 꼭 모든 SF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다. 50여 전에 발표한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 제시한 안드로이드라는 소재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인류의 꿈이자 소망이기에 여전히 매력적이고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또한, 소설이 안드로이드와 인류 사이의 대립과 갈등, 가짜 동물로는 결코 충족시켜줄 수 없는 사람과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로 기대할 수 있는 감정 교류 등이 시사하고자 했던 쟁점들은 오히려 발표 당시보다 더 두드러졌다. 왜냐하면, 소설이 발표될 당시에는 단지 막연한 꿈이었던, 그래서 단순한 재미와 흥밋거리로만 읽혔던 안드로이드라는 소재가 이제는 언젠가는 실현될 미래 기술 중 하나로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안드로이드도 사람처럼 꿈을 꾼다면 그 꿈에 나타나는 동물이 전기양일지 혹은 진짜 양일지에 대한 다소 황당한 호기심에서부터, 안드로이드가 비록 사람 같은 내밀한 감정은 없더라도 정교하게 프로그램화된 감정을 통해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면 데커드가 고민했던 것처럼 과연 사람은 그 안드로이드를 기계로 대할 수 있을지 등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시대에 앞서 한 번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문을 자아내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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