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 괴담엔 이치 따윈 없다!
난도 높은 책은 적당히!
제프리 버튼 러셀의 『악의 역사』를 읽고 나서 소설을 읽으니, 마치 실내 자전거 페달 강도 20단에서 1단으로 내린 것처럼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봄기운이 살짝 묻어나는 3월의 새벽바람을 헤치면서 달릴 때처럼 시원하기 짝이 없다. 나름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악의 역사』처럼 지능의 한계를 철벽처럼 느끼게 하는 책 앞에선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본들 속수무책이다. 고양이 앞에 선 생쥐 꼴이다. 주눅이 든다.
『악의 역사』 같은 책들은 독해력 유지와 향상을 위해서라도 읽어줄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모하게 너무 자주 도전하면 자칫하다간 독서에 염증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격이다. 몸에 좋은 약도 적당히 먹어야 보신이 되고, 지나치면 부작용에 시달린다. 당분간은 좀 더 가벼운 책과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의 시대소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숙명의 한일전에서 역전 골을 넣었을 때 마시는 맥주처럼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는 문장들은 바로 이 맛이야, 하는 감탄을 꺼~억 하는 트림처럼 부지불식간에 올라오게 만든다. 맛있는 케이크를 아껴먹듯 ‘이번 장만 읽고 다음 장은 나중에 읽어야지’하는 당찬 각오로 책장을 넘기지만 책장을 덮었을 땐 그것이 마지막 페이지가 되고 마는, 작품에 퐁당 빠지면 귀신에게 홀린 듯 저도 모르게 다 읽어버리고 마는 그런 소설이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本所深川ふしぎ草紙)』이다. 벌써 다 읽었다는 허망함과 아쉬움에 가슴 한구석이 괜스레 편치 못하지만, 아직 못다 읽은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의 작품이 꽤 남아 있다는 사실에 괜스레 기운이 솟는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불쏘시개로 난롯불을 헤집듯 독자의 감정을 들쑤시기보다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들의 피폐해진 마음을 살포시 보듬는 듯한, 지나치게 냉혹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매력적이면서도, 작가의 개성이 느껴지는 필력을 소화하는 운치 또한 각별한 것이 역시 미미 여사다운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작품임에도 다정함이 온기처럼 스며있는 차분한 문장과 관망이 아닌 관심 어린 세심한 묘사가 돋보이는 문장력은 여전하다. 셀마 라겔뢰프, 이반 부닌, 옌롄커, 한샤오궁 같은 달필가들의 수려한 필력에는 못 미치지만, 읽기 수월하면서도 어느 정도 품격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다른 작가들의 문장력과 뚜렷이 구별되는 작가 특유의 필력이 갓 잡은 생선처럼 싱싱하게 살아 있어서 좋다.
관리 아닌 관리, 오캇피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에도시대 때 유행했던 ‘후카가와 일곱 불가사의(深川七不思議を)’를 소재로 한 괴담 • 시대 • (약간의)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양다리 걸치듯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어 다양한 재미로 읽힐 수 있지만,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처럼 한 우물을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감흥은 다소 덜하다. 그렇더라도 에도시대의 번영을 의미하는 상갓집을 중심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이 작품은 시대소설로서의 품격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일곱 불가사의에 모두 등장하는 유일무이한 인물은 혼조 후카가와 일대를 담당하는 오캇피키(岡っ引き) 대장 모시치이다. 미야베 월드 제2막 작품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오캇피키는 신분은 평민으로 요리키(부교에 소속된 정식 관리)나 도신(요리키 밑에서 경찰 업무를 맡았던 하급 관리)에게 사적으로 고용되어 범인의 수색과 체포를 맡던 사람들이다. 오캇피키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노동자가 입는 긴 바지에 나무 칼을 차고 도신이 순찰할 때 동행했다. 이런 느슨한 경찰 조직에서 얼추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오캇피키는 에도의 경찰 관계자 중에서 민생에 가장 밀착해 있는 관리 아닌 관리라는 현실인데, 이점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가 직함이 아닌 ‘에코인(回向院)의 모시치’라고 불리는 것도 오캇피키가 ‘관리 조직’보다는 민생에 더 가깝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캇피키의 주 업무는 구역을 순찰하고 범죄자들의 소식을 정탐하는 일이다 보니 관할구역에서 일어나는 의심스러운 소문이나 시끌벅적한 일들에 정통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들 때문에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교 구실을 하기도 하고, 큰 사달이 일어나기 전에 갈등을 해결해 주는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곤궁하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살아가려는 서민들에게 두려움과 안심을 주는 묘한 사람이다.
모시치 대장은 일부러 괴담을 퍼트려 함정 수사를 펼치는 영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에 열중해 있을 땐 어린아이처럼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순박하고 허물이 없다. 너무 식상하지도 않고,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물렁물렁하지도 않은 괴담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간혹 편육 같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제공해 주는 건더기가 바로 모시치 대장이 아닐지 싶다, 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는 빈번하게 등장하지는 않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인물로 활약한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두어야겠다. 에도시대의 많은 오캇피키가 모시치처럼 인정머리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을. (현대의 부패한 경찰처럼) 마치부교에게 보고하지 않겠다는 대가로 범죄자에게 보호비를 뜯어내거나 성매매를 강요한 오캇피키도 있었고, 감옥에서 한두 차례 형을 살거나 일정 기간 에도에서 추방당한 범죄자들이 오캇피키로 채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모시치는 쇼군 처지에서나 서민 처지에서나 가장 흡족할 만한 이상적인 오캇피키가 아닐까 싶다.
괴담에 이치를 따져 뭣하랴?
‘후카가와 일곱 불가사의’ 중에 ‘꺼지지 않는 사방등(燈無蕎麦)’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메밀국수 가게의 사방등 불은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언제나 똑같이 타오르며 꺼지는 모습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 또 기름을 채우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시시한 이야기이다.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누군가는 살아가기 위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꺼지지 않는 사방등’ 같은 것이 있다. 살아가고자 하는 동력을 제공하는 그 사방등은 복수심일 수도 있고, 출세욕일 수도 있고, 질투심일 수도 있고, 물욕일 수도 있고, 지식욕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무엇일까? 당신의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무엇인가?
책도 읽고 글도 쓴다고 하지만, 타인의 마음에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나의 글쓰기가 ‘꺼지지 않는 사방등’일까?
본래 무슨 무슨 7대 불가사의 같은 옛날이야기에 이치를 따져 생각하는 것은 세련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다. 시시풍덩해 보이는 괴담에는 정신없는 시장통에서 바득바득 선거 유세하는 정치인을 보며 속으로만 욕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애환 같은 것이 서려 있기도 하고,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군인이 불평하는 듯한 철없는 울림도 간혹 느껴진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누워 속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야기 정도일뿐이라도 해도 나쁘지 않다. 추운 날엔 따뜻한 커피가 좋다고 중얼거리면서, 그윽한 커피 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후루룩 불어가며 커피를 마시는 제멋대로인 내 삶에 때론 괴담도 좋겠지, 하며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괴담은 그저 괴담일 뿐, 인생은 그저 인생일 뿐, 짧은 시간일지라도 만사 제쳐 놓고 이야기 속에 푹 빠져들 수 있다는 것도 고민 많고 걱정 많은 서글픈 인생에선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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