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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6일 화요일

[영화 리뷰]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Haruchika-2017-movie-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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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Solo는 혼자라는 의미가 아냐.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과 맞서.

주변의 연주가 있으니까 solo,

그러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는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고 대충 추측해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 제목 ‘하루치카’는 하츠노 세이가 집필한 일본의 추리소설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폐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취주악부에 소속된 치카라는 설정만 원작에서 따온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 추천할만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의 고만고만한 섹시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호림을 발산하는 여배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 교복이 잘 어울린다).

그녀를 알게 된 발단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斉木楠雄のΨ難, 2017)」.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발연기로 병맛 영화에 나름의 양념을 치고자 열심히 망가지려 애쓰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노고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앙증맞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이렇게 그녀가 주연한 다른 영화를 찾게 하는 요상한 계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시모토 칸나는 마멀레이드 키친의 노래 「기대도 될까」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대로 정말로 ‘작고 귀여운 소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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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영화를 찾아 감상하다 보면 단순하게 여배우의 미모에 홀려 시간 낭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영화가 종종 있고,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자 무대로 등장하는 ‘취주악부’ 활동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취주악부 활동을 했었고, 당당히 ‘부장’을 맡았다. 파트는 처음에는 플루트였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트롬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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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주악부 활동이 뿌듯했던 점은 수업을 정식으로 땡땡이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무슨 행사가 (예를 들면 국군의 날 종로 길거리 연주) 있어서 그에 대비한 연습 때문에 종종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주악부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선배 중에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화배우 최XX 씨가 있었다는 것과 취주악부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취주악부 학생은 실기 시험에서 (실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음악 선생님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치던 그때 모습이 선한데 가곡 '보리수'의 '성문 앞 ~' 달랑 이 한 소절만 부르고 바로 통과! 난 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 점수! 이러한 것이 90년대니까 통했지, 만약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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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에서 아마추어급 이상의 연주실력을 뽐내는 조연배우들의 연주가 당연히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다 찌그러진 악기, 쥐들이 바글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실 환경과 그런 환경에 걸맞게 연주실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리고 플루트는 직접 불어봐서 아는데, 금관이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배우기 매우 어려운 악기다. 하시모토 칸나가 이전부터 취미생활로 플루트를 연주해 온 것이 아니라면, 땀 좀 뺐을 것이다. 아니지, 플루트의 경우에는 땀보다는 폐활량 때문에 (초보자는 취관에 정확하게 숨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워 낭비되는 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플루트'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 중 플루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축제 때는 플루트가 아닌 알토 색소폰으로 독주를 했다. 곡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종서의 ’겨울비‘. 왜 평소에 잘 부는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선택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트보다 색소폰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다. 아무튼, 그 선택은 최악이었다. 불상사도 그런 불상사가 없다. 연주라기보다는 '삑사리' 메들리였다. 엄청난 동정심과 해방의 기쁨이 담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무대 뒤에 잠시 쉬고 있던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취주악부의 18번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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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7일 일요일

[영화 리뷰]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 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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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걸까?"

올드팬이라면 고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의 삭발이 항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삭발이 간간이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감상한 중국 무협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는 주인공 한두 명이 아니라 떼거리로 삭발을 감행했다. 영호충을 애틋하게 사모하는 의림을 비롯한 항산파 비구니 모두, 그리고 비록 마교에 속한 몸이지만 의리 하나만은 죽여주는 전백광이 영호충과의 내기에서 져 의림의 제자가 되고 나서 역시 삭발한다. 의림이나 전백광은 비중이 높은 배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산파의 나머지 제자들도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삭발했다. 혹은 진짜 비구니들을 캐스팅한 것일까? 아무튼, 스님이나 비구니처럼 삭발이 필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진짜로 삭발을 해버렸다. 당연히 인자함의 끝판을 보이는 방증대사도 가발이 아닌 진짜 삭발이다. 열연을 향한 배우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에 반해 감히 몇 자 적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그냥 저 주먹에 맞아 죽고 싶어라>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똑같은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는 확실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이다. 나처럼 원작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사람도 이번에는 영호충 같은 영웅이나 황용 같은 미녀 역할을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력으로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사실 김용 소설이나 그것을 드라마한 영상이나 몇 번을 읽고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도 일품이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 원작의 등장인물과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인물과 잘 어울리는지 품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연인이라기보다는 사이 좋은 남매>

그런 면에서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배역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톡톡 튀고 재기 넘치는 황용의 이미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편 어수룩한 곽정 역할을 맡은 양욱문(杨旭文) 같은 경우 처음에는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보면서 익숙해질 정도는 되었다.

한편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 영호충 역을 맡은 정관삼(丁冠森)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최악의 배역이었다. 왠지 류덕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앳되고 어딘지 덜 여문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외모는 걸걸하고 호탕한 영호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임영영 역할을 맡은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설호정(薛昊婧)의 성숙한 외모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미모 속에 영악함을 숨기기는커녕 그녀의 너무 진지한 미모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치 영호충이 남동생처럼 보인다.

차라리 남봉황 역할을 맡은 유가동(刘珈彤)이 더 돋보인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신소오강호’에서는 동방불패의 짝으로 등장하는데, 남봉황은 임아행 앞에서 유일하게 할 소리 다 하는 여장부다운 시원시원한 기개를 선보인다. 또한, 의림 역할을 맡은 강탁군(姜卓君)의 바람에 홀려 흐늘거리는 버들가지 같은 가녀린 외모와 귀여운 연기가 일품이다. 특히 삭발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늙은 내 심장이 허덕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밀어야 할 사람은 다 밀었다>

‘신소오강호’는 기존처럼 원작을 그대로 외운 듯한 똑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연이나 기연을 조금 더 앞부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작부터 주요 인물이 모두 열거된다. 일례로 영호충과 임영영의 만남, 영호충의 임아행 구출, 동방불패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지루함을 덜을 수 있으며, 드라마는 원작의 그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소오강호’가 ‘사조영웅전(2017)’보다 확실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액션 장면이다. ‘사조영웅전(2017)’ 같은 경우는 대결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대역들이 등장하지만, ‘신소오강호’는 최대한 배우들이 액션을 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대역보다는 검을 다루는 모습이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설픔 속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깃든 것 같아 보기 좋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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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6일 토요일

[영화 리뷰]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 차가운 열대어(Cold Fis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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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너같이 선한 인간인 척하는 거 밥맛이야.”

이제 기력이 달리는지 (비록 형편없는 문장과 유치한 내용으로 뒤범벅된 최악일지라도) ‘책 리뷰’ 한 편 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처럼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사정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매일 무대에 섰던 밤무대 가수가 피로를 못 이겨 제풀에 몇 개의 공연을 끊듯 나 역시 ‘영화 리뷰’를 끊었다. 밤무대 가수처럼 무대에 선만큼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였다면, 이까지 쫌이야 별것 아니지만, 적막한 곳에서 쓸쓸하게 놀려니 아무래도 힘에 겹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보잘것없는 필력마저 분산되다 보니 ‘책 리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시원섭섭함과 해방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로는 정말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차가운 열대어」는 그런 영화 중 세 번째 영화다. 참고로 이번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달리 원칙을 깨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열대어」가 ‘살인’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문명에 의해 억제된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라타처럼 법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살인은 견실한 이익을 남겨주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장땡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살인은 억제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마치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거나 심판하는 신처럼 착각하게 하는 살인은 그 어떤 신약도 성공하지 못한 불굴의 자신감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영화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무라타와 그의 대조적인 짝으로 딸과 아내 눈치 보기에 바쁜 샤모토를 등장시킨다. 샤모토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빈번히 잠자리를 거절당하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탈선하는 딸조차 나무라지 못할 정도로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소심한 가장이자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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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처럼 살아가던 샤모토는 우연히 만난 무라타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본의 아니게 꼽사리로 끼게 되고, 역시나 그가 파는 물고기처럼 한마디 벙긋 못하고 무라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태연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태연스럽게 시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철두철미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무라타 앞에서 샤모토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샤모토는 무라타의 살인 놀이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게 되고, 겨우 며칠 만에 무라타는 매우 좋은 실력을 갖춘 스승임이 밝혀진다.

나라를 통째로 잃은 것처럼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던 샤모토가 무라타의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 것이다. 복받쳐 오르는 기운을 어찌할 수 없던 샤모토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남편 앞에서만 옷을 벗지 않았던 아내를 강간하려 들고, 아빠의 말을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던 시원치 않은 딸을 시원하게 짓밟아버린다.

재밌는 것은 샤모토의 분노 어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그의 소심함과 무력함의 상징처럼 보였던 안경이 벗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게 전에 안경을 벗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안경이 그동안 샤모토의 잠겨진 분노를 잠근 자물쇠라도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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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인에서만큼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샤모토는 무라타 같은 무한한 뻔뻔스러움과 ‘살인 철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까진 갖추지를 못했다. 샤모토는 보통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약간은 정직하고 약간은 양심적인 사람이었기에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환경에 지배되어 일탈했을망정 자신의 광기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무라타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무라타의 지배를 끝장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교묘하게 조정된 권위와 상황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악행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샤모토의 일탈은 ‘일탈’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나 당신이 샤모토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범죄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해서는 아니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상황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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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무라타처럼 누군가에게 살인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것도 그냥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그런 살인이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계산적 살인을 한 차원 뛰어넘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강장제로서의 살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라타 부부의 살인 행각이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흉악한 짓이라도 역시 안 걸리면 장땡이다. 살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보편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름의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일과 중 하나이자 즐거운 취미 생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샤모토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재밌고 짜릿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샤모토처럼?) 살인을 무시무시한 그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무라타와 엮이게 된 것 같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새 살인자가 되어 있다. 인정하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 아직 그러하질 못했다. 단지 그런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의지와 용기와 실천의 문제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황의 힘은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쳐오지만 두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편으론 샤모토는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일본 아버지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면서도, 파렴치한 문명과 되먹지도 않은 교육으로 자꾸 무언가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축 처진 뒷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안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서글픔이 소리소문없이 가슴을 저미어온다.

끝으로 무라타 부부가 사람의 몸통을 토막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물고기들이 먹기 편하게 살코기를 잘게 써는 작업 모습은 돼지를 잡고 부위별로 썰어내어 진열대에 올려놓으면서 손님들이 그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상상해 절로 흥분에 겨워하는, 그렇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성실한 푸줏간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라타 부부가 시체를 해체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만한 장면임에도 웬일인지 거부감은 없다. 마치 ‘극한 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깃덩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얼마나 많은 탐욕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차가운 열대어(冷たい熱帯魚, 2010)」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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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5일 화요일

[영화 리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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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너희들이 지금껏 다른 애들한테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빼앗았는지 알아? 모두가 테렌스 셋맨처럼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야."

가까운 미래, 인류와 문명의 번영이 폭발적인 인구 과잉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인류는 ‘1가구 1자녀’라는 ‘아동제한법’을 통과시켜 무지막지한 인구 증가에 무지막지한 제동을 건다. 법을 위반하여 초과 생산된 아이는 먼 훗날, 지금보다 덜 붐비는 시기까지 냉동 창고에 보관된 생선처럼 강제로 냉동수면 처리된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자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량을 남발한 인류는 그 대가로 급격한 기형아 출산 시대로 접어든다. 사랑도 매우 조심스럽게 나누어야 하고 먹거리조차 안전하지 못한 불운의 시대에 최고의 불행은 따로 있으니 바로 재앙과도 같은 쌍둥이 출산이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그러던 어느 날 테렌스 셋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서슬 퍼런 ‘아동제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다산을 딸이 어기고 만 것인데, 그것도 두세 명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쌍둥이를 낳은 것!

하루아침에 6명의 불법 자녀를 둔 범법자가 된 테렌스 셋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이 낳은 7명의 쌍둥이를 모두 감당하기로 하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을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에서는 ‘카렌 셋맨’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만 살아갈 것을 명한다. ‘먼데이’가 ‘월요일’날 외출해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다른 자매들과 공유해야 하고, 만약 한 명이 다쳐 손가락을 잃는다면 나머지 6명 모두 똑같이 손가락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엄격한 할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무사히 30년이 지난 어느 날, ‘먼데이’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의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영화도 그런 점을 반영해서 그런지 화면에 시종일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대홍수가 난 것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인구를 생각하면 어쩔 땐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중국조차 성공하지 못한 ‘산아제한’으로 인구 문제를 다스리기에는 사람의 번식 본능이 미련스럽게도 강렬하다. 내 생각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참혹하고 잔인하고 슬픈 시련의 시기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쟁과 기아가 결국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걸면서 인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자처럼 비명을 아주 긴 시간 내지를 것이다.

사실 영화처럼 끔찍한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냉동인간이 되어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후로 현재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병들고 늙는 것을 극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내가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쓴 이유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 1인 4역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마이크 마이어스(Michael John Myers)를 뛰어넘는 누미 라파스(Noomi Rapace)의 1인 7역을 한 번쯤은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보면서 설마 했는데, 영화 정보를 보니 1인 7역이 맞았다. 출연료도 7인분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 라파스의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뇌리에 각인시키는 조각상 같은 인상적인 얼굴이 내뿜는 이상야릇한 매력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7배는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운이 다한다면 영화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해 수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주 먼 훗날, 살아남은 인류는 이 두 선택을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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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일 일요일

[영화 리뷰] 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 썸니아(Before I Wake, 2016)

Before I Wake 2016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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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그때 내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당신의 남편도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못한 걸 할 수 있을지 몰라요" - 웰란

아이가 꾸는 꿈이 그대로 현실로 재현된다는, 그리 기발하지는 않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공포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과 관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풀어냄으로써 나름 독창적인 감흥을 자아내고 있는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새로 입양한 아이 코디의 새엄마 제시는 코디의 악몽 속에 갇혀 있는 트라우마를 쫓는 탐정이 되는데, 그럼으로써 그녀는 코디 친모의 죽음이 아이에게 남긴 씻어낼 수 없는 기억이 단편화와 인상화라는 망각적 변용을 거쳐 끝내 악몽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낸다. 그렇게 아이의 악몽은 끝난 것처럼 보이고, 두 사람의 운명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한다.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그것보다 조금 더 약간은 슬프면서도 결말은 해피한 공포영화다. 다르게 말하면, 확실히 무섭지도 않고, 확실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코디의 악몽을 두루뭉술하게 에두른 것이 아니라 명징하게 추적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악몽은 다름 아닌 우리 현실에서, 그것도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상처, 나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뜻밖의 물건, 상황, 인물과 맞닥트리면서 괜히 놀라곤 하는데, 사실 이들을 역추적해보면 대부분이 (영화 속 코디처럼) 삶에서 받은 여러 인상의 과도한 변용과 예측할 수 없는 단편화가 가져온 결과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변용이 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단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결국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꿈을 꾸는 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내로 한정되어 진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컴퓨터’와 연계된 꿈은 꿀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영화 「썸니아」 는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잠자는 코디를 권총으로 죽이려는 아찔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꽝’ 열리면서 남자가 놀라는 바람에 코디는 무사히 그날 밤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도리상으로나 아이를 총으로 쏴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코디를 계속 맡길 수는 없는 법. 코디는 입양을 희망하는 젊은 홉슨 부부의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홉슨 부부는 불행한 사고로 아들 션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 코디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세 살에 엄마를 여의고 어떤 연유로 여러 가정을 전전한 코디는 아이답지 않게 홉슨 부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가 가져온 짐이라곤 달랑 네모난 상자 하나. 코디가 방에 없을 때 침대 밑에 숨겨놓은 상자를 우연히 발견한 제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뚜껑을 열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나비에 대한 책과 함께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아직 고삼도 아닌데!) 각성제. 그날 코디에게 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제시는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잠을 자는 게 싫어서 각성제를 먹는다는 코디는 자신이 잠들면 ‘캔커맨’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고백한다. 코디는 사뭇 진지하지만, 그냥 캄캄하고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한 제시는 조금만 이해하면 무서운 게 사라진다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코디의 걱정을 잠재우려고 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를 잠재우고 거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부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어디선가 갑지가 날아든 가지각색의 나비가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갑자기 날아든 것처럼 부부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남편과 함께 신비한 현상을 겪자 제시는 용기를 내어 어젯밤에 션을 본 일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제시에게 그 일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던 경험이었다. 다음 날 부부는 더욱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나비와 함께 이번에는 죽은 아들 션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코디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션의 사고 장면, 즉 아이의 발이 약간 위로 들려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아 제시가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익사시킨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녀만 그 충격으로 집단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디의 꿈은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나비로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부부가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션으로 옮겨가는데, 이것은 코디가 (또다시 버림받지 않고자) 부부에게 잘 보이려는 무의식이 꿈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션으로 연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날이 갈수록 그것이 부담되니까 ‘캔커맨’을 등장시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닐까? 이러면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사라지니까 말이다. 결국, 코디는 새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새 부모는 그런 코디의 애처로움은 외면한 채 코디가 가진 희귀한 재능만을 탐낸 비극적 결과가 사람들의 실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면서 「썸니아」 리뷰를 마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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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일 일요일

[영화 리뷰]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Infernal Affairs II 200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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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경찰 여러분! 놈이 날 죽이면 맘대로 쏘시오. 뿌린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 한침

「무간도」 1편에 이어 2편도 다시 봤다.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꽉 짜인 이야기로 관객의 숨통을 틀어잡고, 명불허전 명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관객의 혼마저 빼놓는, 마치 죄업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지옥처럼 완전무결한 1편을 봤으니, 감성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2편을 보는 것이 도리다. ‘도리도리 짝짜꿍’의 즐거운 도리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진중한 ‘도리’ 말이다.

「무간도」 2편은 1편보다 약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범죄조직의 경찰 쪽 첩자로서의 임무를 시작하는 그 전후를 시작으로 한침이 홍콩 범죄 조직의 거두로 부상하고 진영인이 그 밑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고로 1편의 경찰학교 장면에서 잠깐 등장했던 두 배우 진관희, 여문락이 유덕화와 양조위를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이유도 밝혀진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1

영화는 황 국장과 한침이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한침이 작은 보스 정도로 대우받는 시절이었고, 경찰은 ‘삼합회’ 보스 예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에 두 사람은 거창하게 우정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는,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만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예곤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암살당한다. 조직은 순신 간에 혼란에 휩싸이고 이 기회를 틈타 회동을 한 한침을 제외한 네 명의 작은 두목들은 예가(倪家)에게 더는 세금을 내지 않기로 하면서 배신을 예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보스 자리에 오른 예영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하나로 네 명의 작은 보스들을 무참히 사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부터 예곤에게 충성했던 한침마저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2

한편, 한침의 부하인 유건명은 한침이 제공하는 자잘한 정보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며 경찰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 유건명의 동기생 진영인은 예영호의 이복동생이라는 이유로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하지만, 황 국장은 전교 1등의 수재를 이대로 썩힐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호의 동생이다. 그가 만약 예영호 밑으로 들어가 경찰 첩자로 활약해 준다면 예가를 일망타진한다는 학수고대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진영호가 이 어려운 제안을 받아줄지가 문제였다. 뜻밖에도 진영호는 선뜻 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예영호 밑에서 차근차근 보스 수업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예영호를 무너트릴 정보를 모은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3

영화 속 대사에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사실 진짜 뿌린 만큼 거둘 것 같은 농사일도 일조량, 강수량 등 기후 변화와 병충해 발생 정도에 따라 뿌린 만큼 거둘 때도 있고, 그보다 더 거둘 때도 있고, 때론 본전도 못 뽑을 때도 있다. 세상일이 영화 속 대사처럼 뿌린 만큼 거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공평할 것이다. 뿌린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뿌린 것을 싹 쓸어 가는 짜증 나는 사람들은 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하니, 이를 예외로 인정한다면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나름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 암살당한 보스가 자주 했다는 이 말은 딱 두 사람만이 들먹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한침과 예영호다. 두 사람 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웃지 못할 공통점이 있는데, 그 격언을 자주 들먹인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격언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니 결국 영화는 그렇게 비비 꼬아가며 현란하게 전개한 이야기를 통해 ‘권선징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고픈 의욕에 도를 넘어선 짓까지 자행한 황 국장, 잠입경찰로서 조직범죄에 깊숙이 가담한 진영호도 죽는다. 주요 등장인물이 뿌린 만큼 거둔 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들 자신의 출세와 입지를 굳히고자 보스와 동료를 배신한 유건명 역시 죽어야 한다. 아직 3편은 못 봤지만 말이다. 뭐, 안 죽으면 그만이고. 아무튼, 죄업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물론 영화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오늘따라 머릿속이 왜 이리 둔탁한지, 영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단박에 증명하듯 나의 횡성수설로 어질러진 리뷰가 되고 말았다. 1편보다는 아주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내 졸렬한 문장으로 선뜻 표현하기 어려운 감흥과 감개가 확실히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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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8일 금요일

[영화 리뷰] 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Infernal Affairs 2002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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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옛말에.. 영웅이 있기까지는 희생이 따른다 했다. 하지만, 난 달라. 이 바닥 규칙은 생과 사를 자신이 결정한다!" - 한침

아마 「무간도」1편은 오늘이 두 번째 감상일 것이다. 첫 번째 감상은 불법복제판 비디오의 상징이었던 ‘디빅’이 한창 인터넷에 봇물처럼 넘치던 2000년대 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감상했던 시디 세 장짜리 릴이 DVD에 구워진 채 이미 자신들은 퇴물이 되었다는 세월의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상자 속에 잠들어 있다. 그때는 언제가 다시 꺼내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변변치 않은 수집 욕구가 더해져 괜찮은 작품이라 판단되는 영화는 CD나 DVD에 구워 보관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DVD도 꽤 괜찮은 화질이라고 치부되었는데, 시대가 변화고 기술이 발전하니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기생처럼 퇴물이 되어버렸다. 퇴물이 되어버리다 못해 이제는 계륵 같은 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를 굽는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요즘은 바이두 클라우드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을 이용하면 웬만한 영화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며 두 번, 세 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들은 잊을만하면 알아서 누군가가 재공유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렇게 다시 눈에 띈 고전 중 하나도 「무간도」였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1

사실 「무간도」를 처음 감상했을 때의 느낌을 애써 떠올려보면 한마디로 ‘무지’와 ‘이해불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성이 자자한 두 명배우 양조위와 유덕화가 등장하니 당연히 멋있는 영화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의 깊은 의식 속에 잠재된 배경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하니 영화의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재밌게 봤다. 아니 주변 평가에 휩쓸린 나머지 재밌게 봐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연유도 모르면서, 남들 장단에 춤을 추는 격이니 줏대 없는 바보가 따로 없다. 굳이 발병하자면, 그때는 하루에 영화를 두세 편씩 밥 멋 듯 감상했던 시절이라 영화 한 편 한 편에 깊이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위대한 명작을 오늘날 다시 봤고, (완벽하게 영화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2

‘홍콩 누아르’는 홍콩 경찰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60, 70년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의 유착 관계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이 장르에는 범죄 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부패한 경찰이 반드시 등장해야 제맛이다. 그렇다면 조직 입장에서 안심하고 부릴 수 있는 경찰은 어떤 경찰일까?

일반적인 부패 경찰은 조직에서 달마다 일정한 액수의 돈을 받고 조직의 뒤를 봐주는 탐욕스러운 경찰인데, 이들이 조직의 뒷배를 봐주는 목적은 충성심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기에 그만큼 틀어지기도 쉽다. 상납금의 액수를 두고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사단을 일으키기 일쑤다. 잠시 이용할 수는 있지만, 큰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터무니없다.

좀 더 지능적이고 치밀한 수법으로는 조직원을 아예 경찰로 심어놓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무간도」에 등장하는 수법인데, 경찰이 조직원으로 침투하는 ‘잠입수사’의 그 반대 격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조직원들은 다른 지망생들과 똑같이 경찰학교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간다. 이런 식으로 여러 명 경찰학교에 조직원을 보내다 보면 그 중 하나는 간부가 되어 조직의 뒷배를 든든히 봐줄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침(증지위)의 부하 유건명(유덕화)다. 태생이 (경찰로 둔갑한) 조직원이니 부패 경찰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정쩡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돈만 밝히는 부패 경찰보다 부리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나 다름없는 경찰이다.

다른 방법으로 간부 경찰이 직접 조직을 만들어 운영할 수가 있다. 현재처럼 엄격하게 법질서가 잡힌 홍콩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60년대라면 가능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재밌게도 이 영화에서 그 간부 경찰 역도 유덕화다).

영화는 유건명에 대립하는 인물로 진영인(양조위)을 내세운다. 유건명의 경찰학교 동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영인은 경찰학교를 퇴학당한 다음 무려 10여 년 동안이나 조직원으로서 잠입활동을 벌인다. 그가 경찰임을 아는 것은 두 사람뿐인데, 그마저도 하나둘씩 죽어 사라진다. 고립무원에 처한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으로 선택받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을 찾아내라는 두목 한침의 지시를 받은 유건명이다. 반대로 진영인 역시 경찰 조직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찾는 중이었으니,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대립이야말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3

자신의 경찰 신분이 영원히 말소되는 절망적 상황에 부닥친 진영인이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무이한 존재를 만났지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 찾던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진영인이 받은 당혹감과 충격, 실망감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관객은 조직과의 관계를 끊고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유건명의 의사를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그가 두목 한침을 죽인 것은 배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에 대비한 공격적 방어는 아닐까? 그는 영화 ‘추룡’의 주인공 록(유덕화)처럼 자신이 직접 범죄 조직을 운영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가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준 것은 승리자가 간간이 베푸는 자기만족적인 아량은 아닐까? 유건명의 (영악한 위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개과천선을 두고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은 U턴 같은 정체성의 급격한 변화는 실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유건명은 음지를 털어내고 양지로 올라서고자 동료 두 명을 살해한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면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대략 15년 만에 다시 본 영화이고 이 말은 그만큼 오래된 영화라는 뜻이지만, 역시 명작은 다르다. 볼 때마다 감흥이 다르고 거듭 볼수록 재미도 거듭나는 것이 명작만이 품을 수 있는 오묘한 이치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다시 2편이 보고 싶어진다. 2편 역시 10여 년 전과는 다른 어떤 감개를 어떤 이해를 안겨줄지 사뭇 기대될 뿐만 아니라 선 보는 노총각처럼 내 팍팍한 심장마저 떨리게 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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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영화 리뷰] 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 마약전쟁(Drug War, 2013)

Drug War 201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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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제발 살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형님…. 형님. 죽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필요하잖아요. 아직 쓸모가 있을 거예요." - 차이톈밍

수많은 범죄영화를 보아왔지만, 「마약전쟁(毒戰 Drug War, 2013)」처럼 살육과 피로 얼룩진 잔혹하고 처참한 결말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영화는 참말로 오랜만인 것 같다. 「마약전쟁」은 마약 범죄 세계의 비정함을 숨김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는 일말의 자비심도,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눈에 익은 등장인물들은 장 반장을 포함해 모조리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아 버린다. 사선이 교차하는 총격전처럼 죽음과 운명의 가혹함이 교차하는 범죄 현장에서 그 누구도 최후의 안식을 빗겨갈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혹하게도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사형만은 모면하고자 경찰에 자진 협력했던 쥐새끼 같은 한 범죄자에게 농락당한 결과라니, 영화는 무디지만, 살갗 정도는 뚫을 정도로 날이 선 허무함의 삼지창으로 관객의 가슴 한복판을 내리꽂는 격이 아닌가! RottenTomatoes의 높은 점수만 봐도 이 영화가 보는 이마다 각자 다른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냉혹한 허무함이었다면, 당신은 무엇인가?

Drug War 2013 scene 01

「마약전쟁」은 마약에 취한 채 자동차를 운전하다 상점으로 돌진하고 마는 차이톈밍이라는 마약 딜러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사고 직전에 자신이 운영하던 마약 제조 공장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폭발하는 바람에 아내와 처남들을 잃었다. 너무 놀란 그는 가족들의 시신을 챙길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차를 타고 도망쳐 나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간 차이톈밍은 운이 없게도 진하이 마약단속반 반장 장레이와 딱 마주친다. 장 반장은 좀 전에 인체에 마약을 숨겨 밀반입하던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그 용의자들의 신체를 검사하고자 병원에 있었던 것인데, 우연히 병원 침대에서 자고 있던 차이톈밍의 용태를 보자마자 마약중독자임을 간파해낸다. 깨어나자마자 경찰의 감시가 붙어 있는 걸 눈치챈 차이톈밍은 민첩하게 병실을 빠져나가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 영안실에서 붙잡히고 만다.

Drug War 2013 scene 02

차이톈밍의 신상을 파악한 경찰은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률로 압박하고, 곧바로 꼬리를 내린 차이톈밍은 형량을 줄이는 조건으로 자진해서 경찰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경찰은 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약 밀매 조직의 거물 리전뱌오 일당을 잡아들일 작전을 추진한다. 차이톈밍은 자신이 리전뱌오의 조카 리슈창과 진하이 항구에서 대규모 선박을 보유한 운송업자인 하하를 막 연결해줄 참이었다고 진술한다. 이미 하하에게 전달할 마약이 트럭에 한가득 실린 채 진하이로 향하고 있었다. 장 반장은 리슈창과 하하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서 착안한, 즉 자신이 ‘리슈창’과 ‘하하’로 위장하여 두 사람을 속이면서 차근차근 리전뱌오에 접근하기로 하는 한편, 차이톈밍이 알려준 벙어리 형제들이 운영하는 또 다른 마약 제조 공장을 급습할 계획도 세운다.

Drug War 2013 scene 03

숨 가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범죄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경찰들의 일사불란함을 대견하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한편으로는 배우들의 극진한 연기에 감탄할 틈도 주지 않고 궁극스럽게 참혹한 결말로 밀어붙이는 「마약전쟁」이 얄궂기만 하다. 어떻게든 마약 조직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싶은 남자의 의지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남자의 의지가 엇갈리며 빚어내는 이 한 편의 잔혹사는 마치 운명의 혹박함을 대변해주는 듯해 소름 돋는다. 그럼에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단숨에 정신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마약 같은 흡입력을 발휘하는 대단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중국의 법은 역시 무시무시하다. 법이 무시무시하니 사형 방법도 옛날처럼 총살로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매우 현대적이게도 약물주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가 무거우면 ‘즉시’ 처형할 수 있다. 실제로 마약사범을 운동장에서 공개심판하고 선고 뒤 즉시 장소를 옮겨 처형된 일화가 있다고 한다. 난 공포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 강도나 뇌물, 청탁 등의 공무원 부패 관련 범죄는 계획적인 범죄(즉,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범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범죄)는 즉결 처형되었으면 바람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마약전쟁(毒戰 Drug War, 201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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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목요일

[영화 리뷰] 그녀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순간 ~ 대최면술사(The Great Hypnotist, 2014)

The Great Hypnotist 2014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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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순간 당신은 걸려든 것이다

"최면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몽환 상태에 들어가면 환자는 치료사가 누구인지 망각한다는 겁니다" - 쉬루이닝

최면 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 쉬루이닝이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어느 날 옛 스승인 선리 박사가 찾아온다. 선리 박사는 옛 제자에게 어떤 정신과 의사도 치료하지 못한 렌샤오옌이란 환자의 치료를 부탁한다. 선리 박사가 부탁한 환자는 귀신을 보거나 귀신의 말을 듣는 환각,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The Great Hypnotist 2014 scene 01

렌샤오옌을 그날의 마지막 환자로 받은 쉬루이닝. 그런데 그녀는 치료실로 들어오라는 의사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고 복도에 있는 오래된 괘종시계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의아해한 쉬루이닝이 치료실 밖으로 걸어 나와 그녀의 등 뒤에 서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시계 소리를 들어보라며 속삭인다. 그러고는 뜬금없게도 시계가 느리다면서 시곗바늘을 맞춘다.

The Great Hypnotist 2014 scene 02

첫 만남부터 어딘가 수상쩍은 환자를 맞이한 듯한 기괴한 느낌이 든 쉬루이닝. 그런데 그녀가 보통 환자들과는 어딘지 다르다는 느낌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렌샤오옌 자신이 경험한 귀신 이야기의 맥락은 정신병자치곤 매우 논리적이었으며 쉬루이닝의 독설을 받아넘기는 태도도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숱한 정신과 의사를 겪은 환자라 그런 것일까? 아무튼, 쉬루이닝은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환자가 겪는 트라우마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특기인 최면 요법을 시도한다.

The Great Hypnotist 2014 scene 03

중국 영화는 떡칠 화장 같은 CG를 잔뜩 처바르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우려먹고 우려먹어 깊이와 짜임새 있는 연출이 부족하다는 둥 중국 영화에 대한 고루한 선입견을 품고 있다면 이 영화 「대최면술사(催眠大师, 2014)」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반전도 반전이지만, 그 반전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잔뜩 당겨진 고무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흩트려 놓지 않는 세련된 연출과 치밀하고 옹골진 이야기 구성은 양손 엄지손가락을 모두 치켜세워 '하오'를 연발해도 모자랄 정도로 탄복을 금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대최면술사」는 소리, 영상, 대사 하나 놓칠 수 없도록 집중하게 하는 몰입감 역시 '엄지척'이다.

참고로,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저우하오후이의 『사악한 최면술사』를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멋대로 착각하고는 기대감으로 들떴으나, 막상 보고 나니 전혀 관계없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으로 환자 역할을 맡은 여주인공이 어딘지 낯이 익은 것 같다 했더니 주성치 영화에 이따금 등장하여 열연을 펼친 막문위였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대최면술사(催眠大师, 201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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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3일 화요일

[영화 리뷰] 너무 오래 살아서 슬픈 일이란 ~ 작은 집(The Little House, 2014)

The Little House 2014 poster
review rating

너무 오래 살아서 슬픈 일이란

“나 왔어. 할머니? 왜 그래? 왜 울고 있어?” - 타케시

“나 말이야…너무 오래 살았어...” - 타키

보시다시피 내 ‘영화 리뷰’에는 정통적인 드라마 장르는 별로 없다. 이것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특별히 ‘드라마’라는 장르를 꺼려서 그런 것이다. 소싯적에는 쩨쩨하게 장르 같은 것 따지지 않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는 작품은 다 봤다. 그러나 주로 독서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드라마’는 피하는 장르가 되었다. 여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고, 주로 책을 읽는 도중 기분 전환 삼아 영화를 찾다 보니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장르를 찾게 된다. ‘공포’와 ‘SF’ , ‘액션’ 같은 장르 말이다. 진지한 것은 책으로도 충분하니 영화는 머리도 식히고 기분도 전환할 수 있는 가볍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 것이다. 뭐, 그렇다고 모든 ‘드라마’가 진지하다 못해 지루하고 골치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 「작은 집(The Little House, 2014)」은 내 블로그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드라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영화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본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 (重版出来!, 2016)」의 주연을 맡은 여배우 쿠로키 하루의 인상적인 연기가 날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생기발랄하게 똘망똘망 빛나는 눈망울을 부라리며 새끼 곰처럼 여기저기 쏘다니는 활기찬 연기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니고, 그렇다고 섹시함으로 어필하는 배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그녀의 해맑은 눈빛과 청초한 미소, 소탈한 자태가 날 사로잡았다.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발산하는 알듯 모를 듯한 페로몬에 빠져들고 말았다고 할까? 그런 상태에서 드라마가 끝나니 당연히 아쉬웠고, 그래서 그녀를 다시 보고픈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가 주연한 영화를 찾다 보니 「작은 집」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1

영화 「작은 집」은 혼자 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할머니 타키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타키의 손자뻘 되는 타케시와 다른 친척들은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중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집필을 끝낸 것으로 보이는 자서전을 펼쳐본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는 맛있는 돈가스도 먹을 겸 타케시는 평소 틈틈이 할머니를 방문했었다. 그는 할머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집안일을 거들어 주면서 어떨 때는 할머니가 자서전 쓰는 것을 격려하는 독자로, 어떨 때는 신랄하게 비평하는 비평가로서 얄궂은 참견꾼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돈가스만큼이나 할머니의 글이 좋았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인생을 읽고 싶어서 말이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2

고향에서 제국의 수도로 상경한 타케시의 할머니 타키는 하녀 생활을 했다. 타케시 같은 요즘 젊은이에겐 하녀는 ‘노예’처럼 고생스럽고 비천한 직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1930년대 도쿄 중산층 가정엔 하녀는 필수였을 정도로 하녀라는 직업이 낯설거나 천대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타키는 하녀 생활이 신부수업 같았다고 말한다. 특별히 고생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벚꽃이 질 무렵, 타키는 모시던 선생님의 소개로 토키코 사모님댁의 하녀로 가게 된다. 주인어른은 장난감 회사 임원이었고, 쿄이치라는 작은 소년이 있었다. 타키는 친절한 주인어른 가족들도 좋았지만, 그들이 사는 빨간 기와지붕의 작고 귀여운 집이 무척이나 좋았다. 타키가 작은 집에 정착하고 얼마 안 있어 도쿄가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일본 전역이 자부심과 기대감으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작은 집에 장난감 회사의 젊은 디자이너 이타쿠라 씨가 방문한다. 어딘지 모르게 모성애를 자극하는 연약한 모습과 모던한 느낌이 멋있게 보였던 이타쿠라는 사모님과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곁에서 타키는 초조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The Little House 2014 scene 03

「작은 집」은 나카지마 쿄코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영화로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기까지의 도쿄 중산층 가정생활을 한 폭의 그림 같은 ‘작은 집’을 무대로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재밌게도 타키가 회고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는 단편적인 역사 교육을 받은 타케시 같은 젊은이에겐 과거를 미화하는 왜곡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타케시는 작문을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할머니의 자서전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틈만 나면 전황이 악화하는 시기에 어떻게 그런 생활을 누릴 수 있느냐고 할머니를 구박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뽀로통한 얼굴로 자신은 그저 경험했던 그대로를 쓴 것이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어떨 때 할머니는 내 글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면 더는 자서전을 쓰지 않겠다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실제로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과 책으로만 막연하게 과거를 이해한 사람 사이의 괴리는 이다지도 깊고도 끈질긴 것이다.

우리가 보통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범하는 흔한 오류인 과거 미화가 타키에게서만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추억이 진실을 빗겨가는 왜곡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자서전은 우리가 지레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패전이 짙어지기 전까지는 도쿄 중산층의 삶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것조차 ‘과거 미화’라고 싸잡아 비판해야 할지, 아니면 역사에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의 보통 삶을 부각시켰다고 인정해야 할지 여전히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기록이 말하는 과거와 그 때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의 과거 사이에는 분명히 격차가 존재한다. 한편, 할머니와 손자가 아옹다옹 다투면서도 마치 친구처럼 돈독하게 정을 나누는 진득한 모습이 부럽다. 너무나도 보기 좋다. 이것이 일본 가정생활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기풍이라면 단연코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쟁이 태평양 전역으로 확산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처럼 일본을 집어삼켜 갈 즈음 ‘작은 집’에서 은근하게 전개되었던 연애사건은 막을 내리고, 그렇게 짧지 않았던 할머니의 자서전도 끝난다. 어찌 되었든 연필에 침까지 발라가며 꼭꼭 눌러 쓴 자서전을 마무리 지었으니 시원섭섭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할머니는 너무 오래 살았고 자책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다. 할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염없이 깊어만 가는 추억이 쏟아내는 쓸쓸함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오래 산 것이 슬펐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나날이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는 것에 진저리가 났던 것일까? 아니면 손자조차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고약한 세상을 너무 오래 살았던 것이 한스러웠을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작은 집(The Little House, 201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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