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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020

[영화 리뷰]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The-Haunting-of-Hill-House-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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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힐 하우스의 목석 위에는 한결같이 정적이 깔려 있으며

그곳에서 걷는 게 누구든 그들은 함께 걷는다

유령 하면 뭐가 떠오를까? 원한, 복수, 죽음, 공포, 깊은 상처, 오싹함, 악마, 저주 등 어째 기분 나쁜 잡탕들만 떠오른다. 정말로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유령과 마주친다면 바지에 오줌을 싸는 추태까지는 부리지 않더라도 오금을 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기는 할 것이다. 왜? 아마도 그것은 유령이라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존재에게 한순간 엮이게 든 자신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유령이 불행을 안겨줄지, 죽음을 선고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지속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저주를 내릴지 두렵다. 그냥 지나쳐갔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아는 유령이란 존재는 마주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낸 유령은 그저 사악하고 사악하기만 한 존재다.

혹시라도 유령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혹시라도 유령과 마주칠까 하는 두려움은 흐릿하고 모호했던 유령을 사람처럼 육체가 있고 삶이 있는 현실성 있는 캐릭터로 재생산한다. 그래서 유령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유령은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문득문득 현실 속에 투영된 착시현상일 뿐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이런 통론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애타게 보고 싶은 사람이 유령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의 대상과 보고 싶은 사람, 이것은 완전히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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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보고 싶은 사람을, 혹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난다는 것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중한 일인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착실히 심어 놓은 유령에 관한 좋지 않은 선입관도 있겠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져다줄 심리적 영향력을 제삼자로서는 가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봐서 행복해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과 꿈과 환상의 경계가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분주히 오가는 착각 속에서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을 때, 본인이 행복하다면 망상이든 꿈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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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지금까지 보아온 유령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각도로, 다른 시선으로, 다른 방법으로 유령의 존재론적인 방법론과 그 방법론이 한 가족의 운명에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얽히고설킨 실타래 풀듯 복잡하게 풀어나간다.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떠나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유령은 사람에게, 그리고 한 가족에게 때때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유전적 정신질환을 단체로 앓는 한 가족의 비극과 그 비극으로 말미암은 가족 관계의 끝없는 추락과 갈등 속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뿐이라는 매우 진부한 메시지를 되새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그냥 흘려들을 법한 유령 이야기가 한 가족의 애증 • 애착 관계를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깊이 있고 심오한 진행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뭔가 대단히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을 기대한 시청자에겐 소화제나 두통약을 찾게 할 정도로 꽤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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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힐 하우스(Hill House)는 동양으로 따지면 흉가, 혹은 귀신 들린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설령 유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힐 하우스 같은 대저택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이담에 죽어 유령이 된다면, 힐 하우스 정도라면 기꺼이 들러붙을 의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한국의 도시는 유난히 괴담이 싹을 트지 못하는데, 그것은 귀취(鬼趣)가 깃들만한 고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격조 있는 집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누가 아파트 같은 곳에 들러붙어 귀신 노릇 하고 싶겠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힐 하우스(Hill House) 같은 집 하나 정도는 있을법하고, 힐 하우스 같은 집에서 유령과의 불가항력적인 인연으로 전전긍긍하는 가족들도 있을법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을 있을법하지 않다(설령 제작한다고 해도 과연 몇 사람이나 보려나?) 연기, 스토리텔링, 연출,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만족시키는 드라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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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020

[영화 리뷰] 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 브이(V,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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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인류는 아직 공식적으로 지적 외계생명체를 만나본 적은 없다.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뜬소문에 의하면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비밀보다 더 비밀스럽게 지구에 사는 생명체 같지 않은 수상한 생명체와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외계인에 납치당해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이 봤다는 외계인의 모습은 한결같이 사람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형태로 묘사되곤 한다. 즉, 몸통 위로는 머리를, 몸통 상단 좌우로는 두 팔을, 몸통 하단 대각선 방향으로는 두 다리가 붙어있다는 식이다. 다만, 머리가 ─ 우리의 신체 비율과 비교해서는 ─ 농구공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고, 몸통은 머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으며, 팔다리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처럼 앙상하다.

실제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는 E.T 같은 이런 외계인의 신체 구조는 언제부터인가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런 반증할 수 없는 공상에 가까운 추측에 한가득 찬물을 끼얹는 SF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1983년에 나온 TV 미니시리즈 브이(V)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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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쩍 벌린 다이아나가 털이 복슬복슬한 설치류를 원샷하듯 삼키는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는 외계인의 정체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을 갖춘 그들의 정체가 영장류 비슷한 무언가가 아니라 벌레만큼이나 징그러운 파충류였다니, 그때까지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불과 약 66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파충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만약 66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를 비껴갔다면, 최소한 우리는 모기나 파리를 잡기 위해 연신 파리채를 휘두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날름거리는 혀로 잡아먹는 것이 더 빠르고 쉬웠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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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를 처음 시청했던 어렸을 적엔 파충류라는 외계인의 실체가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류츠신의 소설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처럼 브이(V)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바로 외계인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라도 될 것 같은, 희망 사항 같은 것에도 낄 수 없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가 사실은 작금의 종교만큼이나 지독한 허깨비와 다름없다는 것을.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지적생명체일지라도 우리에게 반드시 선의를 품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도덕 관념이 우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나 근거 역시 없다. 지적생명체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유에는 여행, 탐험, 교역 등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살던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이다. 황폐해진 고향 행성을 버리고 지구를 발견한 지적생명체가 인류의 안위를 동족의 안위보다 더 생각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그리고 조선과 중국을 침공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점령지역 민족들을 다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들의 노예가 되던가, 아니면 학살의 희생양이 되던가, 그것도 아니면 작금의 돼지나 닭처럼 가축이 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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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에 비추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히틀러보다 더한 인류 최대의 나쁜 놈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훗날 탐사선 보이저(voyager)호에 실린 황금 레코드(Golden Record)를 어떤 지적생명체가 발견한다고 했을 때, 그 지적생명체가 반드시 ─ 인류의 희망처럼 ─ 우호적이고 선의를 가득 품은 선량한 종족일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소설 『삼체』에 등장하는 지적생명체처럼 수명을 다한 고향 행성을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중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황금 레코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안내하는 조타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추억의 드라마 브이(V)를 다시 보며 떠오른 울울한 감상을 방금 막 내려 향기 가득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제멋대로 적어봤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당연히 엉성한 그래픽이 약간은 거슬릴 수 있지만, 예쁠 뿐만 아니라 인상도 무척이나 좋은 페이 그란트(Faye Grant, 줄리엣 패리시 역)와 헤비메탈 가수 부럽지 않은 곤두선 사자 머리가 파충류적인 야성미를 자아내는 제인 배들러(Jane Badler, 다이아나 역)도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시간 있으면 한 번 봐라. 재미도 재미지만, 브이(V)가 이후에 나온 SF 영화나 드라마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브이(V, 198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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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19

[영화 리뷰] 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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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세상에는 참 엿 같은 영화들이 많다. 사람을 생선 토막 내듯 난도질하는 영화부터 보여줄 듯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떨어지는 연기력을 어떻게든 외모로 메꾸어보려고 갖은 발광을 다 하는 배우들이 작당하는 영화까지, 엿 같은 영화라도 그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천차만별이니 세상은 참 엿 같은 곳이다.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도 엿 같은 영화다. 할 일 없이 온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마주 보며 마치 무뇌충이라도 되려는 것처럼 뇌 속을 깡그리 비우는 와중에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마음속에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엿 같지만,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나의 정서를 한층 더 두텁고 깊게 짓누르는 감개를 무량하게 주입한다는 점에서 엿 같다. 그리고 기자 • 평론가의 평점도 내게는 엿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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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하늘이 점지한 운명인가. ‘중독노래방’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면도날 같은 비밀에 깊게 파인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고통을 남몰래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모여든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익숙한 피고름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외로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서 외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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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얼음 덩어리가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따뜻해지지 않듯 외롭고 고독하고 남모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단합 대회라도 열듯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덜 외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치유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서로의 상처 구멍을 들여다보는 연민 어린 행위 자체가 잊은 듯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면서 이제라도 막 아물 것 같았던 상처를 헤집어놓는 자학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녀석은 그렇게 때때로 우리를 배반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인내해 온 고통을 덮을 수 있는 더 큰 고통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영화처럼,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은 이들이 행복해지도록 그냥 놔두질 않는다. 왜? 세상은 참으로 엿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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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은 보란 듯이 하늘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산 먼지들이 멋들어지게 장식해놓은 우중충한 하늘처럼 한순간 나의 마음을 우울함의 극락으로 밀어 넣는다. 한편으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내세울 것도 없는 듯한 자신들의 삶에 도취해, 그리고 그것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기고만장한 채 타인의 상처를 드잡이하듯 흔들어놓는 다수를 향해 울분을 금치 못한다.

왜일까? 내가 그 다수에 끼지 못한 패배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을 향한 지극한 동정심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영화가 그렇게 끝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시무룩해진 나의 기분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감당할 수 없는 암담함에 짓눌려 살려달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리고 그 뜨거운 감상이 채 식기 전에 사라지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상념을 두서없이 써 내려가고 있자니 뭔가 체한듯한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묘하게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어제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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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019

[영화 리뷰] 대륙의 미모에 흠뻑 반하다 ~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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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미모에 흠뻑 반하다

가면 갈수록 중국 배우들의 미모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자본주의의 힘 때문이니라. 중국에 영화산업이 꽃 피우면서 ─ 한때 천시받던 계층인 ─ 배우가 돈뿐만 아니라 명성도 얻음으로써 중국인이 목숨을 거는 체면치레를 거하게 할 수 있음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인재가 모인 덕분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요즘 잘 나가는 중국 여배우들의 미모는 1970~80년대 중국 배우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이유로 중국 축구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축구 선수를 돈과 명성을 얻는 출세의 길로 보는 부자 부모가 재능에 상관없이 자식들을 축구 선수로 키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축구의 길로 들어선 사람에게 과연 어떠한 동기 부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요즘 중국 축구 선수들에게서 좀처럼 근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인구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도 어렵지만, 정말 내 추측대로 축구를 출세로 향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중국 축구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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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나오는 김용 원작의 드라마들이지만, 지겹기는커녕 매번 반갑게 느껴지고 또 새로운 리메이크작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 몇 번을 읽어도 물리지 않는 ─ 원작의 재미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녀들의 향연이 엄청난 감상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에는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하는 배우가 등장한다. 행여 꿈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연정을 품게 하는 배우 진옥기(陈钰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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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 역을 맡은 진옥기(陈钰琪)의 아름다움은 대륙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특히 빨아들이는 듯한 영민한 눈동자가 매혹적이다. 물론 주지약 역을 맡은 배우 축서단(祝绪丹)의 미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내가 진옥기(陈钰琪)에게 반한 것은 미모도 미모지만, 조민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무척이나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덜떨어진 여자나 내숭 같은 것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난 솔직하고 언행일치가 확고하고 영민한 조민이라는 캐릭터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조민의 이런 강인한 성격에 잘 들어맞는 이미지를 풍기는 진옥기는 황용 역을 맡은 이일동만큼이나 최고의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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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인은 순수한 멋이 있고, 남한 미인은 도도한 멋이 있다면 중국 미인은 기품이 있다고나 할까나? 확실히 대륙의 미인은 남다르다.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내용이야 다 뻔히 아는 사실이고, 또 알면서도 보는 것이 김용의 드라마 아닌가? 검열에 잘린 부분도 있다고 하고, 원작과 다른 부분도 있고, 그래서 예전 리메이크 작품만 못하다는 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 남자라면 ─ 진옥기(陈钰琪) 때문이라도 꼭 봐야 하는 작품이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번 더 감히 말하자면, 마지막 편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나처럼 이별의 아픔으로 펄펄 끓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게 되리라.

참고로 현재 중국 여자 스타 순위에서 진옥기(陈钰琪)는 23위, 이일동(李一桐)은 24위, 축서단(祝绪丹)은 27위인 것을 보면 내 눈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에 따라 멋대로 자판을 두드려서 나온 품평이니 너무 개의치 않았으면 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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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2019

[영화 리뷰] 범인 찾기가 전부는 아니다 ~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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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찾기가 전부는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재밌게 읽은 소설에서 받은 감개를 다시 한 번 더 만나는 선물과도 같은 기쁨은 모름지기 독서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싶다.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S(사이카와) & M(모에)’ 시리즈 10권을 모두 섭력한 나에겐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말 보너스보다 더 반가운 선물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가 창조한 개성미 넘치는 인물을 어떤 배우가 어떻게 맡았는지, 그래서 작가가 묘사한 이미지와 얼마나 잘 매칭되는지 품평하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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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S & M 시리즈 중간 정도 읽을 때였을 것이다. 하릴없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도중 우연히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운이 좋게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상과 자막을 몽땅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드라마는 원작 10편 전부를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5편만 선별했다. 물론 이 5편에는 S & M 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한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유한과 극소의 빵』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편이 원작처럼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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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이고 무뚝뚝한 이미지로 통하는 구니에다 조교(미즈사와 에레나)와 속은 지적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쳤지만, 겉은 어딘지 모르게 후줄근한 사이카와 교수(아야노 고)는 금방 익숙해졌다. 하지만, 도도하고 똘똘하고 당돌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아하기도 한 니시노소노 모에(타케이 에미)는 끝까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고 말하는 것이 내 심정을 더 적합하게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보면서 상상한 모에는 얼굴이나 몸매 모두 갸름한 스타일일 것이라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왜소하게 느껴지는 여성일 것이라고 ─ 내 멋대로 ─ 상상하고 있었는데, 드라마에 등장한 모에는 너무 통통하다(사실 난 마른 여자보다는 통통한 여자를 더 좋아한다). 또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에는 그녀의 컴퓨터 같은 민첩한 두뇌 능력이 유발하는 차가운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작을 읽으면서 상상한 등장인물들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비교 관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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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히로시의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감상하는 데는 크게 부족할 것은 없어 보일 정도로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수준은 평이하다. 다만, S & M 시리즈 특유의 사고력을 발전시키는 맛은 밋밋하다. 내가 모리 히로시의 S & M 시리즈를 추켜세우는 이유는 추리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면서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나갈 수 있는 지적 의지와 그 프로세스를 진지하게 즐기게끔 하는 최상의 여건을 소설이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즉, 범인 맞추기 같은 고전적인 게임보다는 추리와 가설의 프로세스를 진득하게 이행하고, 그 사고 과정이 스파크처럼 일으키는 짜릿짜릿한 지적 쾌감을 모리 히로시의 소설에서는 맛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드라마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다.

아마,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압축해서 보여주어야 하고, 또 영상의 연속성이라는 불변의 특성은 시청자가 짬짬이 사고할 틈(재생을 멈추고 추리에 빠지는 시청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려나?)을 허락할 수 없는 구조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드라마는 지적 수준이 균질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매체이다 보니 이야기를 쉽게 쉽게 풀어나가야 보는 사람도 쉽게 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이래서 TV는 바보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보들이 보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지만, 천재들이 보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겐 생애 최고의 추리소설 중 하나로 남을 모리 히로시의 원작을 본 사람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만약 원작을 보려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드라마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원작을 보고 그 원작에 해당하는 드라마를 볼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원작 S & M 시리즈 10편에 대한 리뷰는 차후 올릴 예정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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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2019

[영화 리뷰]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 명왕성(Pluto,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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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명문고 1등이 학교 뒷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상계동에서 전학을 왔다는 김준. 천체물리학 등 과학에 관심이 많은 김준은 형사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요모조모 자신을 변호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곧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토끼 사냥’이라는 숨진 유진과 같은 스터디 그룹이었던 우등생들은 여전히 김준을 살인자로 몰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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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준은 노예처럼 그들이 시키는 온갖 추잡한 범죄 행위를 다 해 가며 ‘토끼 사냥’에 들어가고자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진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준은 끝내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동안 그들로부터 받은 굴욕과 수모는 산을 이루고도 남을 터였다. 결국, 김준은 그들의 더럽고 비열한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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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Pluto, 2012)」를 보고 나면 이미연 씨와 김보성 씨가 주연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80년대 영화가 떠오른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스펙이 높아지는 만큼 오히려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고나 할까나?

Pluto movie scene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성적 지상주의는 난공불락이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의 부당한 인식을 비난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든 1% 안에 들려는 욕망으로 철철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자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부자를 부러워하는 모순과 비슷하다고나 할까나? 우리는 그렇게 속물인 것이다.

재밌는 점은 영화 「명왕성(Pluto, 2012)」의 네이버 평점이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중 10대들의 평점이 가장 높다. 안타깝게도 이분들에겐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이지 않겠는가. 20~30대의 평점이 가장 낮다. 일단 자기들은 고비를 넘겼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40~50대로 가면 다시 평점이 올라간다. 당연하겠지, 이제 영화가 자식들 문제와 직결되니까. 우리는 역시 속물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과격함과 파괴가 느껴지는 영화다. 이제 이 정도의 자극조차 없으면 너무 싱거운 나머지 눈을 통해 들어온 영상들이 모두 희뿌연 잔상으로 아스러질 정도로 우리의 감각은 호미질하는 농부의 손처럼 굳은살이 점점이 박여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하니 역시 우리는 속물이다.

끝으로 질문 하나 해보자. 만약 김준이 ‘토끼 사냥’이라는 비밀 스터디 그룹의 정식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어도 동료들의 비밀을 폭로했을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명왕성(Pluto, 201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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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2019

[영화 리뷰]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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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Solo는 혼자라는 의미가 아냐.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과 맞서.

주변의 연주가 있으니까 solo,

그러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는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고 대충 추측해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 제목 ‘하루치카’는 하츠노 세이가 집필한 일본의 추리소설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폐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취주악부에 소속된 치카라는 설정만 원작에서 따온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 추천할만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의 고만고만한 섹시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호림을 발산하는 여배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 교복이 잘 어울린다).

그녀를 알게 된 발단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斉木楠雄のΨ難, 2017)」.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발연기로 병맛 영화에 나름의 양념을 치고자 열심히 망가지려 애쓰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노고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앙증맞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이렇게 그녀가 주연한 다른 영화를 찾게 하는 요상한 계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시모토 칸나는 마멀레이드 키친의 노래 「기대도 될까」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대로 정말로 ‘작고 귀여운 소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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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영화를 찾아 감상하다 보면 단순하게 여배우의 미모에 홀려 시간 낭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영화가 종종 있고,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자 무대로 등장하는 ‘취주악부’ 활동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취주악부 활동을 했었고, 당당히 ‘부장’을 맡았다. 파트는 처음에는 플루트였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트롬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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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주악부 활동이 뿌듯했던 점은 수업을 정식으로 땡땡이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무슨 행사가 (예를 들면 국군의 날 종로 길거리 연주) 있어서 그에 대비한 연습 때문에 종종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주악부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선배 중에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화배우 최XX 씨가 있었다는 것과 취주악부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취주악부 학생은 실기 시험에서 (실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음악 선생님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치던 그때 모습이 선한데 가곡 '보리수'의 '성문 앞 ~' 달랑 이 한 소절만 부르고 바로 통과! 난 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 점수! 이러한 것이 90년대니까 통했지, 만약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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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에서 아마추어급 이상의 연주실력을 뽐내는 조연배우들의 연주가 당연히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다 찌그러진 악기, 쥐들이 바글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실 환경과 그런 환경에 걸맞게 연주실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리고 플루트는 직접 불어봐서 아는데, 금관이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배우기 매우 어려운 악기다. 하시모토 칸나가 이전부터 취미생활로 플루트를 연주해 온 것이 아니라면, 땀 좀 뺐을 것이다. 아니지, 플루트의 경우에는 땀보다는 폐활량 때문에 (초보자는 취관에 정확하게 숨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워 낭비되는 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플루트'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 중 플루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축제 때는 플루트가 아닌 알토 색소폰으로 독주를 했다. 곡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종서의 ’겨울비‘. 왜 평소에 잘 부는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선택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트보다 색소폰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다. 아무튼, 그 선택은 최악이었다. 불상사도 그런 불상사가 없다. 연주라기보다는 '삑사리' 메들리였다. 엄청난 동정심과 해방의 기쁨이 담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무대 뒤에 잠시 쉬고 있던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취주악부의 18번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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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2019

[영화 리뷰]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 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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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걸까?"

올드팬이라면 고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의 삭발이 항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삭발이 간간이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감상한 중국 무협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는 주인공 한두 명이 아니라 떼거리로 삭발을 감행했다. 영호충을 애틋하게 사모하는 의림을 비롯한 항산파 비구니 모두, 그리고 비록 마교에 속한 몸이지만 의리 하나만은 죽여주는 전백광이 영호충과의 내기에서 져 의림의 제자가 되고 나서 역시 삭발한다. 의림이나 전백광은 비중이 높은 배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산파의 나머지 제자들도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삭발했다. 혹은 진짜 비구니들을 캐스팅한 것일까? 아무튼, 스님이나 비구니처럼 삭발이 필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진짜로 삭발을 해버렸다. 당연히 인자함의 끝판을 보이는 방증대사도 가발이 아닌 진짜 삭발이다. 열연을 향한 배우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에 반해 감히 몇 자 적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그냥 저 주먹에 맞아 죽고 싶어라>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똑같은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는 확실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이다. 나처럼 원작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사람도 이번에는 영호충 같은 영웅이나 황용 같은 미녀 역할을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력으로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사실 김용 소설이나 그것을 드라마한 영상이나 몇 번을 읽고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도 일품이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 원작의 등장인물과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인물과 잘 어울리는지 품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연인이라기보다는 사이 좋은 남매>

그런 면에서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배역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톡톡 튀고 재기 넘치는 황용의 이미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편 어수룩한 곽정 역할을 맡은 양욱문(杨旭文) 같은 경우 처음에는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보면서 익숙해질 정도는 되었다.

한편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 영호충 역을 맡은 정관삼(丁冠森)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최악의 배역이었다. 왠지 류덕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앳되고 어딘지 덜 여문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외모는 걸걸하고 호탕한 영호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임영영 역할을 맡은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설호정(薛昊婧)의 성숙한 외모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미모 속에 영악함을 숨기기는커녕 그녀의 너무 진지한 미모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치 영호충이 남동생처럼 보인다.

차라리 남봉황 역할을 맡은 유가동(刘珈彤)이 더 돋보인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신소오강호’에서는 동방불패의 짝으로 등장하는데, 남봉황은 임아행 앞에서 유일하게 할 소리 다 하는 여장부다운 시원시원한 기개를 선보인다. 또한, 의림 역할을 맡은 강탁군(姜卓君)의 바람에 홀려 흐늘거리는 버들가지 같은 가녀린 외모와 귀여운 연기가 일품이다. 특히 삭발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늙은 내 심장이 허덕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밀어야 할 사람은 다 밀었다>

‘신소오강호’는 기존처럼 원작을 그대로 외운 듯한 똑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연이나 기연을 조금 더 앞부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작부터 주요 인물이 모두 열거된다. 일례로 영호충과 임영영의 만남, 영호충의 임아행 구출, 동방불패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지루함을 덜을 수 있으며, 드라마는 원작의 그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소오강호’가 ‘사조영웅전(2017)’보다 확실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액션 장면이다. ‘사조영웅전(2017)’ 같은 경우는 대결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대역들이 등장하지만, ‘신소오강호’는 최대한 배우들이 액션을 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대역보다는 검을 다루는 모습이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설픔 속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깃든 것 같아 보기 좋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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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2019

[영화 리뷰]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 차가운 열대어(Cold Fis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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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너같이 선한 인간인 척하는 거 밥맛이야.”

이제 기력이 달리는지 (비록 형편없는 문장과 유치한 내용으로 뒤범벅된 최악일지라도) ‘책 리뷰’ 한 편 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처럼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사정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매일 무대에 섰던 밤무대 가수가 피로를 못 이겨 제풀에 몇 개의 공연을 끊듯 나 역시 ‘영화 리뷰’를 끊었다. 밤무대 가수처럼 무대에 선만큼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였다면, 이까지 쫌이야 별것 아니지만, 적막한 곳에서 쓸쓸하게 놀려니 아무래도 힘에 겹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보잘것없는 필력마저 분산되다 보니 ‘책 리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시원섭섭함과 해방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로는 정말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차가운 열대어」는 그런 영화 중 세 번째 영화다. 참고로 이번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달리 원칙을 깨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열대어」가 ‘살인’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문명에 의해 억제된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라타처럼 법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살인은 견실한 이익을 남겨주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장땡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살인은 억제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마치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거나 심판하는 신처럼 착각하게 하는 살인은 그 어떤 신약도 성공하지 못한 불굴의 자신감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영화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무라타와 그의 대조적인 짝으로 딸과 아내 눈치 보기에 바쁜 샤모토를 등장시킨다. 샤모토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빈번히 잠자리를 거절당하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탈선하는 딸조차 나무라지 못할 정도로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소심한 가장이자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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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처럼 살아가던 샤모토는 우연히 만난 무라타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본의 아니게 꼽사리로 끼게 되고, 역시나 그가 파는 물고기처럼 한마디 벙긋 못하고 무라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태연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태연스럽게 시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철두철미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무라타 앞에서 샤모토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샤모토는 무라타의 살인 놀이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게 되고, 겨우 며칠 만에 무라타는 매우 좋은 실력을 갖춘 스승임이 밝혀진다.

나라를 통째로 잃은 것처럼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던 샤모토가 무라타의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 것이다. 복받쳐 오르는 기운을 어찌할 수 없던 샤모토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남편 앞에서만 옷을 벗지 않았던 아내를 강간하려 들고, 아빠의 말을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던 시원치 않은 딸을 시원하게 짓밟아버린다.

재밌는 것은 샤모토의 분노 어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그의 소심함과 무력함의 상징처럼 보였던 안경이 벗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게 전에 안경을 벗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안경이 그동안 샤모토의 잠겨진 분노를 잠근 자물쇠라도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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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인에서만큼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샤모토는 무라타 같은 무한한 뻔뻔스러움과 ‘살인 철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까진 갖추지를 못했다. 샤모토는 보통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약간은 정직하고 약간은 양심적인 사람이었기에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환경에 지배되어 일탈했을망정 자신의 광기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무라타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무라타의 지배를 끝장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교묘하게 조정된 권위와 상황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악행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샤모토의 일탈은 ‘일탈’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나 당신이 샤모토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범죄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해서는 아니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상황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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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무라타처럼 누군가에게 살인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것도 그냥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그런 살인이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계산적 살인을 한 차원 뛰어넘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강장제로서의 살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라타 부부의 살인 행각이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흉악한 짓이라도 역시 안 걸리면 장땡이다. 살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보편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름의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일과 중 하나이자 즐거운 취미 생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샤모토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재밌고 짜릿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샤모토처럼?) 살인을 무시무시한 그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무라타와 엮이게 된 것 같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새 살인자가 되어 있다. 인정하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 아직 그러하질 못했다. 단지 그런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의지와 용기와 실천의 문제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황의 힘은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쳐오지만 두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편으론 샤모토는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일본 아버지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면서도, 파렴치한 문명과 되먹지도 않은 교육으로 자꾸 무언가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축 처진 뒷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안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서글픔이 소리소문없이 가슴을 저미어온다.

끝으로 무라타 부부가 사람의 몸통을 토막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물고기들이 먹기 편하게 살코기를 잘게 써는 작업 모습은 돼지를 잡고 부위별로 썰어내어 진열대에 올려놓으면서 손님들이 그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상상해 절로 흥분에 겨워하는, 그렇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성실한 푸줏간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라타 부부가 시체를 해체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만한 장면임에도 웬일인지 거부감은 없다. 마치 ‘극한 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깃덩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얼마나 많은 탐욕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차가운 열대어(冷たい熱帯魚, 2010)」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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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019

[영화 리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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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너희들이 지금껏 다른 애들한테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빼앗았는지 알아? 모두가 테렌스 셋맨처럼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야."

가까운 미래, 인류와 문명의 번영이 폭발적인 인구 과잉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인류는 ‘1가구 1자녀’라는 ‘아동제한법’을 통과시켜 무지막지한 인구 증가에 무지막지한 제동을 건다. 법을 위반하여 초과 생산된 아이는 먼 훗날, 지금보다 덜 붐비는 시기까지 냉동 창고에 보관된 생선처럼 강제로 냉동수면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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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자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량을 남발한 인류는 그 대가로 급격한 기형아 출산 시대로 접어든다. 사랑도 매우 조심스럽게 나누어야 하고 먹거리조차 안전하지 못한 불운의 시대에 최고의 불행은 따로 있으니 바로 재앙과도 같은 쌍둥이 출산이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그러던 어느 날 테렌스 셋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서슬 퍼런 ‘아동제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다산을 딸이 어기고 만 것인데, 그것도 두세 명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쌍둥이를 낳은 것!

하루아침에 6명의 불법 자녀를 둔 범법자가 된 테렌스 셋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이 낳은 7명의 쌍둥이를 모두 감당하기로 하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을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에서는 ‘카렌 셋맨’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만 살아갈 것을 명한다. ‘먼데이’가 ‘월요일’날 외출해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다른 자매들과 공유해야 하고, 만약 한 명이 다쳐 손가락을 잃는다면 나머지 6명 모두 똑같이 손가락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엄격한 할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무사히 30년이 지난 어느 날, ‘먼데이’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의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영화도 그런 점을 반영해서 그런지 화면에 시종일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대홍수가 난 것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인구를 생각하면 어쩔 땐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중국조차 성공하지 못한 ‘산아제한’으로 인구 문제를 다스리기에는 사람의 번식 본능이 미련스럽게도 강렬하다. 내 생각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참혹하고 잔인하고 슬픈 시련의 시기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쟁과 기아가 결국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걸면서 인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자처럼 비명을 아주 긴 시간 내지를 것이다.

사실 영화처럼 끔찍한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냉동인간이 되어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후로 현재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병들고 늙는 것을 극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내가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쓴 이유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 1인 4역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마이크 마이어스(Michael John Myers)를 뛰어넘는 누미 라파스(Noomi Rapace)의 1인 7역을 한 번쯤은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보면서 설마 했는데, 영화 정보를 보니 1인 7역이 맞았다. 출연료도 7인분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 라파스의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뇌리에 각인시키는 조각상 같은 인상적인 얼굴이 내뿜는 이상야릇한 매력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7배는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운이 다한다면 영화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해 수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주 먼 훗날, 살아남은 인류는 이 두 선택을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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