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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020

[영화 리뷰]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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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힐 하우스의 목석 위에는 한결같이 정적이 깔려 있으며

그곳에서 걷는 게 누구든 그들은 함께 걷는다

유령 하면 뭐가 떠오를까? 원한, 복수, 죽음, 공포, 깊은 상처, 오싹함, 악마, 저주 등 어째 기분 나쁜 잡탕들만 떠오른다. 정말로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유령과 마주친다면 바지에 오줌을 싸는 추태까지는 부리지 않더라도 오금을 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기는 할 것이다. 왜? 아마도 그것은 유령이라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존재에게 한순간 엮이게 든 자신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유령이 불행을 안겨줄지, 죽음을 선고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지속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저주를 내릴지 두렵다. 그냥 지나쳐갔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아는 유령이란 존재는 마주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낸 유령은 그저 사악하고 사악하기만 한 존재다.

혹시라도 유령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혹시라도 유령과 마주칠까 하는 두려움은 흐릿하고 모호했던 유령을 사람처럼 육체가 있고 삶이 있는 현실성 있는 캐릭터로 재생산한다. 그래서 유령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유령은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문득문득 현실 속에 투영된 착시현상일 뿐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이런 통론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애타게 보고 싶은 사람이 유령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의 대상과 보고 싶은 사람, 이것은 완전히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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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보고 싶은 사람을, 혹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난다는 것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중한 일인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착실히 심어 놓은 유령에 관한 좋지 않은 선입관도 있겠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져다줄 심리적 영향력을 제삼자로서는 가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봐서 행복해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과 꿈과 환상의 경계가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분주히 오가는 착각 속에서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을 때, 본인이 행복하다면 망상이든 꿈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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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지금까지 보아온 유령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각도로, 다른 시선으로, 다른 방법으로 유령의 존재론적인 방법론과 그 방법론이 한 가족의 운명에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얽히고설킨 실타래 풀듯 복잡하게 풀어나간다.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떠나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유령은 사람에게, 그리고 한 가족에게 때때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유전적 정신질환을 단체로 앓는 한 가족의 비극과 그 비극으로 말미암은 가족 관계의 끝없는 추락과 갈등 속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뿐이라는 매우 진부한 메시지를 되새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그냥 흘려들을 법한 유령 이야기가 한 가족의 애증 • 애착 관계를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깊이 있고 심오한 진행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뭔가 대단히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을 기대한 시청자에겐 소화제나 두통약을 찾게 할 정도로 꽤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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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힐 하우스(Hill House)는 동양으로 따지면 흉가, 혹은 귀신 들린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설령 유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힐 하우스 같은 대저택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이담에 죽어 유령이 된다면, 힐 하우스 정도라면 기꺼이 들러붙을 의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한국의 도시는 유난히 괴담이 싹을 트지 못하는데, 그것은 귀취(鬼趣)가 깃들만한 고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격조 있는 집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누가 아파트 같은 곳에 들러붙어 귀신 노릇 하고 싶겠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힐 하우스(Hill House) 같은 집 하나 정도는 있을법하고, 힐 하우스 같은 집에서 유령과의 불가항력적인 인연으로 전전긍긍하는 가족들도 있을법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을 있을법하지 않다(설령 제작한다고 해도 과연 몇 사람이나 보려나?) 연기, 스토리텔링, 연출,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만족시키는 드라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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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020

[영화 리뷰] 단지 생일을 축하해 주려던 것뿐인데 ~ 시스터스(Sister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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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생일을 축하해 주려던 것뿐인데…

몰래 카메라 TV 프로그램 때문에 우연히 만난 필립과 다니엘. 두 사람은 다니엘의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훼방이 있었지만, 필립이 쇼 출연 상품으로 받은 호텔 식사권으로 무사히 저녁을 마치고 다니엘의 아파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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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까지 따라온 다니엘의 전 남편을 가볍게 따돌린 필립은 그녀와 달콤한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필립은 오늘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쌍둥이 동생 도미니크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파트 근처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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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을 깜짝 놀라게 하여주고자 침대에 누워 있던 다니엘에게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내밀던 필립은 갑자기 포악한 사람으로 돌변한 다니엘이 휘두른 칼에 찔린다. 겨우 창가로 기어간 필립은 건너편에 사는 이웃이 볼 수 있도록 창문에 자신의 피로 쓴 도움을 요청하는 붉은 메시지를 남기고, 건너편 아파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기자 그레이스는 즉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늑장 부리는 형사들을 대동하고 다니엘의 아파트를 수색할 땐 이미 필립은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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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화면 분할 기법으로 또 다른 긴장감을 연출하는,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상당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스릴러 영화.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시스터스(Sisters, 197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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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19

[영화 리뷰] 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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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세상에는 참 엿 같은 영화들이 많다. 사람을 생선 토막 내듯 난도질하는 영화부터 보여줄 듯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떨어지는 연기력을 어떻게든 외모로 메꾸어보려고 갖은 발광을 다 하는 배우들이 작당하는 영화까지, 엿 같은 영화라도 그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천차만별이니 세상은 참 엿 같은 곳이다.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도 엿 같은 영화다. 할 일 없이 온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마주 보며 마치 무뇌충이라도 되려는 것처럼 뇌 속을 깡그리 비우는 와중에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마음속에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엿 같지만,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나의 정서를 한층 더 두텁고 깊게 짓누르는 감개를 무량하게 주입한다는 점에서 엿 같다. 그리고 기자 • 평론가의 평점도 내게는 엿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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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하늘이 점지한 운명인가. ‘중독노래방’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면도날 같은 비밀에 깊게 파인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고통을 남몰래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모여든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익숙한 피고름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외로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서 외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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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얼음 덩어리가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따뜻해지지 않듯 외롭고 고독하고 남모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단합 대회라도 열듯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덜 외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치유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서로의 상처 구멍을 들여다보는 연민 어린 행위 자체가 잊은 듯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면서 이제라도 막 아물 것 같았던 상처를 헤집어놓는 자학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녀석은 그렇게 때때로 우리를 배반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인내해 온 고통을 덮을 수 있는 더 큰 고통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영화처럼,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은 이들이 행복해지도록 그냥 놔두질 않는다. 왜? 세상은 참으로 엿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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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은 보란 듯이 하늘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산 먼지들이 멋들어지게 장식해놓은 우중충한 하늘처럼 한순간 나의 마음을 우울함의 극락으로 밀어 넣는다. 한편으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내세울 것도 없는 듯한 자신들의 삶에 도취해, 그리고 그것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기고만장한 채 타인의 상처를 드잡이하듯 흔들어놓는 다수를 향해 울분을 금치 못한다.

왜일까? 내가 그 다수에 끼지 못한 패배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을 향한 지극한 동정심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영화가 그렇게 끝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시무룩해진 나의 기분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감당할 수 없는 암담함에 짓눌려 살려달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리고 그 뜨거운 감상이 채 식기 전에 사라지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상념을 두서없이 써 내려가고 있자니 뭔가 체한듯한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묘하게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어제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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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019

[영화 리뷰]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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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세 명의 예지자가 미래의 살인 사건을 예측하는 능력을 이용해 범죄 예방 수사국을 운영하던 워싱턴 경찰은 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구상 중이고, 연방정부는 워트워 요원을 파견하여 시스템을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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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년 전 아직 잡히지 않은 납치범에게 아들을 잃은 범죄 예방 수사국 팀장 존 앤더튼은 현재의 범죄 예방 시스템만 있었다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며 모든 노력을 미래의 살인자를 추적하는데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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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시스템은 앤더튼이 살인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지자들이 예견한 피살자의 이름조차 모르던 앤더튼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수사국을 뛰쳐나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경찰에 쫓기면서 피살자를 찾아나선 앤더튼은 결국 예지자들이 본 미래대로 피살자에게 자신의 총을 겨누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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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을 쓴 필립 K. 딕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직 원작을 못 봤지만, SF 장르에 철학적 요소를 훌륭하게 배합한 필립 특유의 작품 성향이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유 의지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사람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닐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미래가 예측될 수 있다면, 사람의 삶은 노예, 로봇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브라더 시대가 무서운 것.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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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2019

[영화 리뷰] 범인 찾기가 전부는 아니다 ~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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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찾기가 전부는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재밌게 읽은 소설에서 받은 감개를 다시 한 번 더 만나는 선물과도 같은 기쁨은 모름지기 독서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싶다.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S(사이카와) & M(모에)’ 시리즈 10권을 모두 섭력한 나에겐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말 보너스보다 더 반가운 선물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가 창조한 개성미 넘치는 인물을 어떤 배우가 어떻게 맡았는지, 그래서 작가가 묘사한 이미지와 얼마나 잘 매칭되는지 품평하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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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S & M 시리즈 중간 정도 읽을 때였을 것이다. 하릴없이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도중 우연히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운이 좋게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상과 자막을 몽땅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드라마는 원작 10편 전부를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5편만 선별했다. 물론 이 5편에는 S & M 시리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면서도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한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유한과 극소의 빵』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 두 편이 원작처럼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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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적이고 무뚝뚝한 이미지로 통하는 구니에다 조교(미즈사와 에레나)와 속은 지적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쳤지만, 겉은 어딘지 모르게 후줄근한 사이카와 교수(아야노 고)는 금방 익숙해졌다. 하지만, 도도하고 똘똘하고 당돌하면서도 한편으론 우아하기도 한 니시노소노 모에(타케이 에미)는 끝까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고 말하는 것이 내 심정을 더 적합하게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보면서 상상한 모에는 얼굴이나 몸매 모두 갸름한 스타일일 것이라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왜소하게 느껴지는 여성일 것이라고 ─ 내 멋대로 ─ 상상하고 있었는데, 드라마에 등장한 모에는 너무 통통하다(사실 난 마른 여자보다는 통통한 여자를 더 좋아한다). 또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에는 그녀의 컴퓨터 같은 민첩한 두뇌 능력이 유발하는 차가운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작을 읽으면서 상상한 등장인물들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비교 관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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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히로시의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감상하는 데는 크게 부족할 것은 없어 보일 정도로 드라마의 이야기 전개 수준은 평이하다. 다만, S & M 시리즈 특유의 사고력을 발전시키는 맛은 밋밋하다. 내가 모리 히로시의 S & M 시리즈를 추켜세우는 이유는 추리와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면서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나갈 수 있는 지적 의지와 그 프로세스를 진지하게 즐기게끔 하는 최상의 여건을 소설이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즉, 범인 맞추기 같은 고전적인 게임보다는 추리와 가설의 프로세스를 진득하게 이행하고, 그 사고 과정이 스파크처럼 일으키는 짜릿짜릿한 지적 쾌감을 모리 히로시의 소설에서는 맛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드라마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다.

아마,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압축해서 보여주어야 하고, 또 영상의 연속성이라는 불변의 특성은 시청자가 짬짬이 사고할 틈(재생을 멈추고 추리에 빠지는 시청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려나?)을 허락할 수 없는 구조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드라마는 지적 수준이 균질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매체이다 보니 이야기를 쉽게 쉽게 풀어나가야 보는 사람도 쉽게 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이래서 TV는 바보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보들이 보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지만, 천재들이 보는 것은 모두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겐 생애 최고의 추리소설 중 하나로 남을 모리 히로시의 원작을 본 사람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만약 원작을 보려는 마음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드라마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원작을 보고 그 원작에 해당하는 드라마를 볼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원작 S & M 시리즈 10편에 대한 리뷰는 차후 올릴 예정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 201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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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2019

[영화 리뷰] 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 명왕성(Pluto,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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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명문고 1등이 학교 뒷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상계동에서 전학을 왔다는 김준. 천체물리학 등 과학에 관심이 많은 김준은 형사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요모조모 자신을 변호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곧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토끼 사냥’이라는 숨진 유진과 같은 스터디 그룹이었던 우등생들은 여전히 김준을 살인자로 몰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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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준은 노예처럼 그들이 시키는 온갖 추잡한 범죄 행위를 다 해 가며 ‘토끼 사냥’에 들어가고자 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유진이 살해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김준은 끝내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동안 그들로부터 받은 굴욕과 수모는 산을 이루고도 남을 터였다. 결국, 김준은 그들의 더럽고 비열한 비밀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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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Pluto, 2012)」를 보고 나면 이미연 씨와 김보성 씨가 주연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80년대 영화가 떠오른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스펙이 높아지는 만큼 오히려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고나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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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성적 지상주의는 난공불락이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그것을 조장하는 사회의 부당한 인식을 비난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든 1% 안에 들려는 욕망으로 철철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자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부자를 부러워하는 모순과 비슷하다고나 할까나? 우리는 그렇게 속물인 것이다.

재밌는 점은 영화 「명왕성(Pluto, 2012)」의 네이버 평점이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그중 10대들의 평점이 가장 높다. 안타깝게도 이분들에겐 이 영화가 지금의 현실이지 않겠는가. 20~30대의 평점이 가장 낮다. 일단 자기들은 고비를 넘겼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40~50대로 가면 다시 평점이 올라간다. 당연하겠지, 이제 영화가 자식들 문제와 직결되니까. 우리는 역시 속물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뤘지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과격함과 파괴가 느껴지는 영화다. 이제 이 정도의 자극조차 없으면 너무 싱거운 나머지 눈을 통해 들어온 영상들이 모두 희뿌연 잔상으로 아스러질 정도로 우리의 감각은 호미질하는 농부의 손처럼 굳은살이 점점이 박여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하니 역시 우리는 속물이다.

끝으로 질문 하나 해보자. 만약 김준이 ‘토끼 사냥’이라는 비밀 스터디 그룹의 정식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어도 동료들의 비밀을 폭로했을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명왕성(Pluto, 201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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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19

[영화 리뷰]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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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뭔지 알아?"

어느 날 저녁, 에밀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8명의 친구는 담소를 나누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식사 후에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밤하늘을 유유히 헤엄쳐가는 혜성을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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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저녁을 보내는 8명의 친구>

한창 이야기가 물이 오를 무렵, 이들의 우정을 질투한 누군가가 훼방이라도 놓듯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한다. 잠시 당황한 이들은 누군가는 촛불을 밝히고 누군가는 야광봉을 준비하며 상황을 추스른다. 사실 이날 저녁은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액정에 금이 가는가 하면 모두의 휴대전화가 불통이 되는 이상한 밤이기도 했다. 정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려고 창밖을 기웃 들여다보던 이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집이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일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빌리고자 몇 명의 선발대를 조직한 다음 파란 야광봉을 들고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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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에서 가져온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자신들의 사진이!>

집에 남은 친구들이 한창 애간장을 태우며 선발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섰던 친구들은 구급상자 크기의 하얀 상자를 들고 돌아온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뒷면에 숫자가 적힌 8명의 사진이 탁구채와 함께 들어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집 밖을 나간 사람들이 불이 켜진 집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 집에는 자신들과 똑같은 8명의 사람이 자신들처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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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vs 에밀리>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땐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에 접목한 미스터리, 공포, 그리고 SF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가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이다.

내 앞에 숫자 1에서 100까지 적힌 100장의 카드가 있고 그중 한 개만을 고른다고 치자. 만약 내가 숫자 1을 선택하면 숫자 1을 선택한 것이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평행 이론은 나머지 카드 99장을 각각 선택했을 때의 세계도 어딘가에서는 ‘현실’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즉, 이 경우에는 100개의 세계가 평행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평행으로 존재하기에 평소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화한 경우의 수다. 한 사람의 인생만 놓고 봐도 선택과 우연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에 타인의 선택과 기회도 생각하면 평행한 세계는 무한의 수로 존재할 것이다.

영화는 평소에는 상호 작용하지 않는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혜성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붕괴한다고 가정한다. 매우 기발한 착상이지만,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론을 안다면 정말 놀랍도록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영화로서는 드물게도 과학적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지적으로도 우아한 영화다.

어딘가의 세계에서는 작금의 내 현실보다 더 잘 먹고 잘사는 ‘나’가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세계에서는 불행한 사고로 이미 죽은 ‘나’도 존재할 것이고, 밑바닥 계층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끼니를 때우는 궁핍한 ‘나’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혜성의 영향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힘으로 영화처럼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무너져 궁핍한 ‘나’가 잘사는 ‘나’의 존재를 눈치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장 빨리 인지하고, 더불어 상황 정리까지 일찌감치 마친 에밀리가 겪는 딜레마로 대신할 수 있다. 초자연적 현상에 말리면서 공황 상태에 빠진 친구들과 불행한 저녁을 보내야 하는 에밀리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에밀리, 그녀의 선택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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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2019

[영화 리뷰] 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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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다른 누군가의 과거가 너의 현재를 찾아올 거라고" - 점쟁이

이렇게 좋은 영화를 감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거사(?)를 막 치르고 난 후 찢어진 콘돔을 보는 것만큼이나 께름칙한 일이라서 힘겹고 괴로운 갈등 끝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혹은 포스터의 경고대로 난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글을 쓰고야 말았다!). 이왕 시작한 이상 그래도 천자는 채워야 할 터인데, 무슨 얘기로 그 많은 천자를 채워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이 영화의 리뷰를 형편없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욕 바가지를 얻어먹을까 봐 영화를 볼 때보다 지금이 더 긴장되고 무섭다. 그래도 두 명의 여주인공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일단 공포 영화라고 하면 끗발이 설 수 있는 미인이 등장해야 제맛인데, 일단 이 점에서만큼은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다만, 공포 영화의 막간으로 등장하는 베드씬이 없어 두 미인의 뽀얀 살결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IMDB 평점이 무려 7점을 넘어선다. 마구 쏟아지는 공포 영화 중에서 평점 7점을 넘기는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보고 만 것이다(개인적으로 Naver 평점보다 IMDB 평점을 더 신뢰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IMDB 사용자 후기에 10점 만점을 준 사용자가 한 분 계시다는 것,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은 그 사용자가 리뷰를 남긴 영화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이 유일하다는 것. 아마도 그분은 감독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한 지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아 정말 부럽다.

영화를 본 사람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놀라운 반전이 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콜카타 국제 컬트 영화제(Calcutta International Cult Film Festival) 2018년 Best Horror/Science Fiction Feature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드는 갖가지 어설픈 요소들이 잔인하리만치 즐비하다고 느낀 것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와 어림도 없는 소리 모두 죄다 끌어모아 주절주절 늘어놓아도, 여기에 공백까지 포함해도 천자가 안 된다. 천원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천자는 쉽게 볼 수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천자문 외우는 것도 그토록 어려웠었나 보다.

아무튼,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수작이니, 코를 후벼 파다 못해 콧속을 대머리처럼 반질반질하게 윤기 낼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은 꼭 감상하기 바란다. 감히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못 하지만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 역시 재미없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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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2019

[영화 리뷰] 호기심 앞에선 장사가 없다! ~ 12명의 죽고 싶은 아이들(十二人の死にたい子どもた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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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앞에선 장사가 없다!

"자기 생명을 부정하려고 여기에 왔어. 자살한다는 건 그런 거야. 태어난 것에 대한 항의지!"

이번에도 예쁘고 귀여운 작은 새 같은 하시모토 칸나(橋本 環奈)가 나오길래 아무런 망설임 없이 감상을 시작했다. 「12명의 죽고 싶은 아이들(十二人の死にたい子どもたち)」,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은데, 만약 뇌가 편육이 되어 버린 앞뒤 꽉 막힌 사람이 제목을 본다면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꼴값을 떠냐고 침까지 튀기며 말할 것 같다. 그거야말로 진짜 꼴값이다. 그런 사람에게 하루 평균 36명, 연간 1만3092명이 자살하는 이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기가 막힌 대답이 돌아올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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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제목만 봐도 ‘자살’을 소재로 한 영화임은 분명히 드러나고,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재생을 시작했다. 그래서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의 귀여운 칸나가 왜 ‘죽어야만’ 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이러고 보면 나도 참 싱거운 놈이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외의 전개로 기대치 않은 신통방통한 재미를 선물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추리’가 접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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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병원 지하로 12명의 소년 소녀들이 모인다. 그중에는 영화 안에서도 스타 여배우로서 인기를 누리는 칸나(료코 역)도 포함된다. 모임을 주최한 사토시의 침착한 진행으로 집단 안락사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12명은 뜻하지 않은 재난과 마주친다.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12명은 그 한 사람이 이미 약을 먹고 죽은 것 같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갔을까, 혹시 무임승차? 아니면 누군가 사람을 죽여놓고 그 사실을 얼버무리고자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일까? 이미 죽을 각오로 온 12명이지만, 역시 호기심 앞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다. 그들은 계획했던 ‘집단 자살’은 잠시 뒤로 제쳐놓은 채 13번째 인물, 즉 ‘제로’의 신상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로 하는 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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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으로 추리가 재미있게 흘러가는 것도 볼만하지만, 낯선 12명이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토닥이며 해피한 결말로 이끌어가는 과정도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대화를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이것은 비슷한 상황을 단 한 번이라도 맞이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쓰라린 경험과 값비싼 대가가 눅눅하게 녹아있는 진솔한 감개다.

역시 죽음을 결심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다. 그것은 매뉴얼대로 주워 뱉는 무심한 말도 아니고, 어디서 주워들은 어쭙잖은 지식으로 위로한답시고 상대를 넘겨짚으려는 시건방진 말이 아니라 동병상련의 애틋함이 담긴 진심 어린 대화가 최상의 효과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최소한 한 번 이상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사실 이런 영화는 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는 높지만, 한국보다는 현격히 낮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야 제격인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선 이런 영화가 도통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아니면 내가 못 찾은 것일까?). 한국은 여전히 높은 자살률을 무턱대고 덮으려고만 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마치 자기들은 생에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것처럼 여전히 차갑고 냉소적이긴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자살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엄청나게 복 받은 사람이거나, 한없이 온순한 다운증후군 환자이거나, 아니면 거의 다운증후군 환자에 가까운 지적 편력으로 일관하는 누군가이거나?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12명의 죽고 싶은 아이들(十二人の死にたい子どもたち)」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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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2018

[영화 리뷰] 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Infernal Affairs 2002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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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옛말에.. 영웅이 있기까지는 희생이 따른다 했다. 하지만, 난 달라. 이 바닥 규칙은 생과 사를 자신이 결정한다!" - 한침

아마 「무간도」1편은 오늘이 두 번째 감상일 것이다. 첫 번째 감상은 불법복제판 비디오의 상징이었던 ‘디빅’이 한창 인터넷에 봇물처럼 넘치던 2000년대 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감상했던 시디 세 장짜리 릴이 DVD에 구워진 채 이미 자신들은 퇴물이 되었다는 세월의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상자 속에 잠들어 있다. 그때는 언제가 다시 꺼내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변변치 않은 수집 욕구가 더해져 괜찮은 작품이라 판단되는 영화는 CD나 DVD에 구워 보관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DVD도 꽤 괜찮은 화질이라고 치부되었는데, 시대가 변화고 기술이 발전하니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기생처럼 퇴물이 되어버렸다. 퇴물이 되어버리다 못해 이제는 계륵 같은 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를 굽는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요즘은 바이두 클라우드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을 이용하면 웬만한 영화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며 두 번, 세 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들은 잊을만하면 알아서 누군가가 재공유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렇게 다시 눈에 띈 고전 중 하나도 「무간도」였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1

사실 「무간도」를 처음 감상했을 때의 느낌을 애써 떠올려보면 한마디로 ‘무지’와 ‘이해불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성이 자자한 두 명배우 양조위와 유덕화가 등장하니 당연히 멋있는 영화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의 깊은 의식 속에 잠재된 배경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하니 영화의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재밌게 봤다. 아니 주변 평가에 휩쓸린 나머지 재밌게 봐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연유도 모르면서, 남들 장단에 춤을 추는 격이니 줏대 없는 바보가 따로 없다. 굳이 발병하자면, 그때는 하루에 영화를 두세 편씩 밥 멋 듯 감상했던 시절이라 영화 한 편 한 편에 깊이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위대한 명작을 오늘날 다시 봤고, (완벽하게 영화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2

‘홍콩 누아르’는 홍콩 경찰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60, 70년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의 유착 관계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이 장르에는 범죄 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부패한 경찰이 반드시 등장해야 제맛이다. 그렇다면 조직 입장에서 안심하고 부릴 수 있는 경찰은 어떤 경찰일까?

일반적인 부패 경찰은 조직에서 달마다 일정한 액수의 돈을 받고 조직의 뒤를 봐주는 탐욕스러운 경찰인데, 이들이 조직의 뒷배를 봐주는 목적은 충성심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기에 그만큼 틀어지기도 쉽다. 상납금의 액수를 두고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사단을 일으키기 일쑤다. 잠시 이용할 수는 있지만, 큰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터무니없다.

좀 더 지능적이고 치밀한 수법으로는 조직원을 아예 경찰로 심어놓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무간도」에 등장하는 수법인데, 경찰이 조직원으로 침투하는 ‘잠입수사’의 그 반대 격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조직원들은 다른 지망생들과 똑같이 경찰학교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간다. 이런 식으로 여러 명 경찰학교에 조직원을 보내다 보면 그 중 하나는 간부가 되어 조직의 뒷배를 든든히 봐줄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침(증지위)의 부하 유건명(유덕화)다. 태생이 (경찰로 둔갑한) 조직원이니 부패 경찰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정쩡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돈만 밝히는 부패 경찰보다 부리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나 다름없는 경찰이다.

다른 방법으로 간부 경찰이 직접 조직을 만들어 운영할 수가 있다. 현재처럼 엄격하게 법질서가 잡힌 홍콩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60년대라면 가능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재밌게도 이 영화에서 그 간부 경찰 역도 유덕화다).

영화는 유건명에 대립하는 인물로 진영인(양조위)을 내세운다. 유건명의 경찰학교 동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영인은 경찰학교를 퇴학당한 다음 무려 10여 년 동안이나 조직원으로서 잠입활동을 벌인다. 그가 경찰임을 아는 것은 두 사람뿐인데, 그마저도 하나둘씩 죽어 사라진다. 고립무원에 처한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으로 선택받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을 찾아내라는 두목 한침의 지시를 받은 유건명이다. 반대로 진영인 역시 경찰 조직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찾는 중이었으니,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대립이야말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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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찰 신분이 영원히 말소되는 절망적 상황에 부닥친 진영인이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무이한 존재를 만났지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 찾던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진영인이 받은 당혹감과 충격, 실망감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관객은 조직과의 관계를 끊고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유건명의 의사를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그가 두목 한침을 죽인 것은 배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에 대비한 공격적 방어는 아닐까? 그는 영화 ‘추룡’의 주인공 록(유덕화)처럼 자신이 직접 범죄 조직을 운영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가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준 것은 승리자가 간간이 베푸는 자기만족적인 아량은 아닐까? 유건명의 (영악한 위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개과천선을 두고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은 U턴 같은 정체성의 급격한 변화는 실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유건명은 음지를 털어내고 양지로 올라서고자 동료 두 명을 살해한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면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대략 15년 만에 다시 본 영화이고 이 말은 그만큼 오래된 영화라는 뜻이지만, 역시 명작은 다르다. 볼 때마다 감흥이 다르고 거듭 볼수록 재미도 거듭나는 것이 명작만이 품을 수 있는 오묘한 이치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다시 2편이 보고 싶어진다. 2편 역시 10여 년 전과는 다른 어떤 감개를 어떤 이해를 안겨줄지 사뭇 기대될 뿐만 아니라 선 보는 노총각처럼 내 팍팍한 심장마저 떨리게 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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