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에의 제물 | 나카이 히데오 | 추리소설의 탈을 쓴 안티미스터리
4인 4색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 향연
만약 나카이 히데오(中井英夫)의 『허무에의 제물(虛無への供物)』을 추리소설로써 선택했다면, 추리소설치곤 꽤 긴 분량에 지레 겁먹기보다는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추리가 난무하고 그 추리들을 논박하는데 많은 페이지가 할당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초장부터 막장까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지지고 볶는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 시합은 독자의 조루한 사고력을 발기시키는 미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은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본격 추리물에서 많이 접할 수 있는 ‘어느 집안의 참극 어쩌고저쩌고’라는 (당시엔 신선했을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낯짝 두꺼운 배경을 깔고 있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시작은 이렇게 낯 간지럽지만, 이 ‘어느 집안의 참극 어쩌고저쩌고’의 현실 무대가 되는 히누마 저택에서 기다렸다는 듯 연달아 일어나는 죽음은 타살로 보면 타살 같기도 하고, 사고로 보면 사고사 같기도 하고, 밀실살인으로 보면 또 밀실살인 같기도 한 것이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는 범상치 않은 사건들이다. 이 죽음들을 두고 심상치 않은 4인 4색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 향연이 전개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식으로 장황하게 펼쳐지고 또한 끊임없이 번복되는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는 추리라기보다는 터무니없는 공상 같기도 한 것이 추리 시합이 아니라 호사가들의 과대망상 대결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횡포 부리듯 거침없이 펼쳐진다.
정작 문제는 이 4명이 티격태격 주고받는 말발이 썩 나쁘지 않다는 것인데, 한 명으론 어림도 없겠지만 이 4명의 말발에 (중반 이후 등장하는) 프랑스파 무레타까지 포함하면 말발만으로 저주와 요괴를 물리칠 수 있다는 교고쿠도(교고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百鬼夜行) 시리즈에 등장하는 고서적 주인장)도 혀 깨물고 죽어야 할 정도다.
일본 추리소설의 3대 기서란 이런 맛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건 같지도 않은 사건에 콩가라 동자(矜羯羅童子), 5색 부동명왕(不動明王), 토우 골렘, 3색 장미 등을 제멋대로 꿰맞추며 일을 크게 벌이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당혹스럽기도 하고, 때론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바보처럼 농락당하는 것 같아 곤혹스럽기도 하다. 짜깁기투성이의 누더기 추리도 이쯤 되면 안타까운 실정이고, 이 소설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애간장이 탄다. 그들의 추리에 현혹되다 보면 끊임없는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가만히 있으면 울부짖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 정도다. 이 정신없는 추리 시합을 깔끔하게 정리해 줄 한 줄기 빛이자 구원 투수처럼 등장하는 프랑스파 무레타도 범인은 제4차원의 단면으로 드나들었다는 둥 입구가 아닌 입구에서 들어오고 출구가 아닌 출구로 사라진 거라는 둥 뜬금없는 것은 매한가지여서 혼돈과 혼란의 소용돌이는 끝이 없어 보인다.
추리인가? 추리를 빙자한 추리 방종인가? 참으로 정체 불명한 기묘한 추리소설이다. 사건 해결을 염두에 둔 추리라기보다는 주변 인물 모두를 공평하게 한 번씩 범인으로 몰아가는 그 뻔뻔한 기세로 밑도 끝도 없이 우려내는 것이 진범이 누구인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왔던 독자로서는 왠지 모를 배신감에 허탈하다 못해 역정이 날 정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들의 추리가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 듯 전혀 볼 것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서 민망하기도 하고 낭패스럽기도 한 것이다. 그들의 엉뚱함을 가장한 오묘한 추리 속에 숨은 진의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민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어림으로라도 짐작하지 말라는’ 작가의 진의를 미처 깨닫지 못해 낭패스럽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식으로 써 내려간 듯한 글이, 말도 안 되는 추리들의 오합지졸 같았던 혼란이, ‘사실 그들의 죽음은 타살이 아닌 그저 자연사였다’라는 식의 허무한 예감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며 몸 둘 바를 모를 때 찬란한 후광처럼 펼쳐지는 놀라운 진상의 파노라마는 왜 이 작품이 오구리 무시타로(小栗 虫太郎)의 『흑사관 살인사건(黒死館殺人事件)』, 유메노 쿠사쿠의 『도그라 마그라(ドグラ・マグラ)』)와 함께 일본 추리소설의 3대 기서인지를 몽둥이로 얻어맞은 충격처럼 실감 나게 해준다.
처음은 맹물처럼 밋밋할지 몰라도 나중에 미약처럼 독자의 호기심을 충동질하는 기탄없는 추리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600페이지라는 분량이 순식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허무에의 제물』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실컷 바보 취급당해 놓고 그 굴욕 속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는 듯 만인의 비웃음 속에서 혼자서만 키득거리는 것 같은 가련한 정신 승리도 조금은 없지 않아 있지만 말이다.
‘안티미스터리(反추리소설)’
어찌 되었든 『허무에의 제물』의 제맛을 느끼려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얼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954년~1955년 당시 일본은 살인, 방화, 사고, 재난 등이 연달아 일어나는 다양한 참사로 몸살을 앓고 있어야 했다. 1,159명이나 죽은 토야마루 침몰 사고(洞爺丸事故)만 해도 당분간 사회 분위기를 애도의 침체 속으로 빠트려놓을 만한 국가적 재난이다. 당시 잘못된 기상 예보로 가라앉은 배가 토야마루호 한 척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마 당시 태풍으로 침몰했던 배의 사망자 모두를 합치면 타이타닉호 사고 사망자 수인 1,514명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토야마루 침몰 사고 당시 일본은 엄청난 심적 충격을 받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어떠했을까?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그리고 (지금까지는) 유일하게 원자 폭탄의 참혹한 위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토야마루 침몰 사고를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을까? 한편으론, 참사가 어느 정도 되어야 개인의 일상에 큰 변화를 줄 정도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사람의 무신경 • 무관심 기질이 발휘되는 경계선은 도덕적 경계선과 마찬가지로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허무에의 제물』 첫 장면에서 4명의 아마추어 탐정들의 추리 시합이 시작되는 장소는 '아라비크'라는 게이바이고, 그 시기는 토야마루 침몰 사고로부터 3개월도 채 못 지난 송년 모임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추리 대상엔 토야마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다른 유가족 중 한 명이 아마추어 탐정에 포함되어 있다.
패전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리고 얼마 전엔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에 버금가는 대참사를 겪고도 어딘가에서 추리의 제물이 될 'XXX 집안 살인사건' 같은 것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스릴’에 갈증 난 아마추어 탐정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쟁은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사건 •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스릴’에 대한 갈증은 충족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게임 원신의 등장인물 카미사토 아야카가 '진심으로 맛있어지기를 바라면서' 야미나베(전골 놀이)에 케이크를 집어넣듯 우린 ‘진심으로 범인이 잡히기를 바란다면서' 피해자를 포함한 범죄 사건 관계자들을 적나라하게 해부하는 만행을 ’스릴‘이라는 명분으로 유유자적 즐긴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세련된 취미라고 자부하는 ’추리‘에는 사람의 본성과 생명의 본질을 농락하고 희롱하는 실로 무시무시한 파렴치함이 내포되어 있다.
‘스릴’을 허무에의 제물로서 바치고 싶다.
추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추리’라는 사람의 사고 유희 속에 숨은 잔악무도한 본성을 꼬집는 기질이 다분히 엿보이는 소설이라서 ‘안티미스터리(反추리소설)’라고 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범인’인 셈이다.
추리소설의 감칠맛과 철학적 농밀함을 두루 갖춘 기서
『허무에의 제물』은 「동서 미스터리북스 베스트(30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미스터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발상의 제한 없이 종횡무진 펼쳐지는 추리만으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무엇보다 평범한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재치 있는 문장력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문장에 술을 탔나 싶어질 정도로 취하는 맛이 있어 좋다. 나카이 히데오가 『허무에의 제물』에서 보여준 냉소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문장들은 촌스러운 문장은 없다고 평가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정성 들여 다듬어져 있다.
라이트노벨이라는 것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고, 요즘 장르소설을 봐도 ‘생각나는 대로 어물어물 써 내려가면 되는 모양이네’라고 여겨질 정도로 문장력은 평이하기에 그지없는데, 이런 종류의 소설을 즐겨있던 독자라면 『허무에의 제물』은 다소 버거울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문장 구사력을 탓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독자의 독해력을 탓해야 할 일이므로, 이 기회에 독해력 향상을 위해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막판에 한 사람이 갑자기 휙 뒤돌아서서 페이지 밖의 '독자'를 향하여 '당신이 범인이다'라고 냅다 외쳐도 이상할 것 하나 없을 정도로 『허무에의 제물』이 보여주는 추리의 세계는 기괴하면서도 한편으론 멋들어지게 꼬여있다. 변죽의 변죽을 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추리라는 사고 의식에 숨은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은근하게 까발리는 점은 추리소설의 감칠맛과 철학적 농밀함을 두루 갖춘 격으로서 기서(奇書)다운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끝으로 몇 마디 더 보태자면, 타인의 죽음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슬픔과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추리한답시고 왈가왈부 입방아를 찧어대는 우리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본성에 굴복해 사람을 죽인 자가 미친 것일까?
누구를 허무에의 제물로서 바쳐야 할까?
이 미친 세상으로부터, 아닌 미친 나로부터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스스로 정신병원의 쇠창살 안쪽에 갇히고 싶은 엄청난 기분으로 이 글을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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