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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8.

[책 리뷰] 러시아판 ‘전설의 고향’ ~ 마녀의 관(니콜라이 고골)

Viy-Vij-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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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판 ‘전설의 고향’

Original Title: Вий by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Гоголь
그놈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리가 2개 있었다. 대갈장군에다 몸집은 짤막했고, 안쪽다리가 밖으로 지독하게 굽었다. 흙투성이 손과 발은 나무 밑동처럼 울퉁불퉁했다. 양쪽 눈까풀은 축 처져서 발아래까지 늘어졌다. (『마녀의 관』, p66)

학을 맞아 집으로 긴 여행을 떠난 키예프 마을 수도원 학생인 하리야와, 브루트, 고로베이치는 어느 날 할멈이 혼자 사는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그런데 할멈은 보통 할멈이 아니었다. 바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녀였던 것이다. 이날 밤 브루트는 마녀 할멈의 하늘을 나는 말(馬)이 되어 할멈을 등에 태우고 정신없이 달리다가 간신히 기도를 통해 마녀 할멈의 저주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기도의 힘으로 약해진 할멈의 등을 타고 밤 공간을 가로질러 질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비친 지쳐 쓰러진 마녀의 얼굴은 쭈글쭈글한 할멈이 아니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키예프 마을에는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키예프에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넓은 땅을 가진 지주가 있었는데, 그 지주의 외동딸이 어느 날 산책하러 나갔다가 어찌 된 셈인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금방 죽을 듯이 겨우 집으로 돌아왔고 그 아가씨는 ‘나는 이제 곧 죽을 거예요. 키예프 신학교에 호머 브루트라는 학생이 있을 테니,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는 그 사람을 불러서 기도를 드려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작품은 니콜라이 고골이 1835년에 발표한 『아라베스크』 이어 발표한 우크라이나의 미르고로드를 배경으로 하는 문집 『미르고로드』에 나온 단편 소설이다. 원제목은 비(러시아어로 Вий, Viy Vij)라고 한다. 비이는 고골이 창조한 괴물이나 요정 같은 불가사의한 생명체로서 작품에는 흙의 요정으로 등장한다(흙의 요정 비이에 대한 묘사는 이 리뷰 앞부분에 있는 인용문 참조).

슬라브 민담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지만, 리그베다 위키의 지적대로 한국의 전설의 고향과 진배없다. 언뜻 보면 단순한 공포 단편 소설 같지만, 고골의 이후 작품인 『감찰관』, 『죽은 혼』, 『외투』 등의 사회 풍자적인 성격에 비추어보면 학장과 지주의 강압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굴복한 브루트, 마을 사람을 해치는 마녀가 지주의 딸임을 알면서도 수군거리기만 할 뿐 지주 앞에서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 등 부와 권위에 짓눌린 민중의 모습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브루트는 자신을 말(馬)처럼 올라탄 마녀의 저주에서 기도를 통해 해방된다. 그리고 지주의 강압에 못 이겨 죽은 마녀의 관 옆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신의 가호로 그린 자신을 둘러싼 작은 원(圓) 안에서 그럭저럭 목숨은 부지한다. 하지만, 마지막 날 흙의 요정 비이에 의해 원과 기도의 보호는 파괴된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고골은 현실에서는 악마가 신보다 우세하며 인간의 운명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지만, 이후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악마의 영향을 극복하고 신에게 구원을 청하는 등 변화된 세계관을 보여주면서 종교에 심취한 고골의 사상을 반영해 주고 있다.

국어 번역판 『죽은 혼』(을유문화사, 옮긴이 이경완)의 해설을 보면 고골은 1834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역사학과 조교수 직을 맡아 바라던 대로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사 이야기로 일관해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이런 상상력은 다음 해 발표한 문집의 「비이」를 시작으로 잇따라 발표한 『광인일기』, 『코』, 『죽은 혼』, 『외투』 등 그의 독특한 환상적인 작품 세계를 완성하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한편, 앞서 언급한 『죽은 혼』의 해설에서 고골의 죽음을 얘기한 부분을 보면 그의 사인은 의학적으로는 기아, 티푸스 혹은 우울증으로 규정되어 왔지만, 그의 영혼이 유탈 이체한 상태에서 생매장되었다는 주장이 20세기 초에 제기되어 유력한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니, 『죽은 혼』, 『외투』, 『코』 등 그의 대표작들에서 풍기는 기괴함과 환상적인 면이 그의 죽음까지로 이어진 듯하다. 참고로 이 소설은 박진성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마녀의 관」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 리뷰는 2015년 9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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