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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4일 일요일

[책 리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짧은 질문에 대한 긴 대답 ~ 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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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짧은 질문에 대한 긴 대답

Original Title: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기업들은 가축이 이승에서 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애써왔다. “할아버지 때에는 소들이 도축되기 전까지 4~5년을 살았죠.” 리치가 설명했다. “1950 년대에 아버지가 목장을 운영하고 있을 때에는 그 기간이 2~3년 정도였어요. 지금은 겨우 14~16개월이죠.” 참으로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잡식동물의 딜레마』, p98)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매우 긴 대답

널리스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의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는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질문에 대한 매우 긴 대답이다. 그것은 당신이 즐겨 먹고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고기에 대한 불쾌감을 생성하려는 환경운동가의 지루한 설교가 될 수도 있고, ─ 지극히 낮은 확률이겠지만 ─ 날벼락 맞고 제정신을 찾은 광인처럼 당신을 채식가로 변신시키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을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오를 고기가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어떠한 장소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깐깐한 섭취자로 거듭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폴란의 긴 대답은 누군가를 유기농에 대한 병적인 집착에서 해방시키는 혁명이자 우악스럽게 싼 음식만 찾아다니던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아둔함을 깨우쳐주는 예상치 못한 일침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정부의 원조와 소비자의 무지라는 음침한 장막 뒤에 숨어 각종 모순과 폐해를 양산해 내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과 허울뿐인 산업 유기농 음식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이자, 문명을 도외시한 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초유기농 농장을 체험하고,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인류를 모방하려는 매우 진기한 시도에서 폴란 자신이 직접 요리 재료를 찾아 사냥 • 채집하는 모든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진지한 모험이다. 이를 위해 마이클 폴란은 손수 트랙터를 몰아 검은 초콜릿색 바다의 물결로 일렁이는 옥수수밭을 위태롭게 행진하기도 하고, 농장에서 일주일간 날품팔이 일꾼 체험을 하면서 직접 닭을 도축한다. 버섯채집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채집하러 새벽같이 산행을 강행하기도 하고, 총을 쏘며 직접 야생 돼지를 사냥한다. 그렇게 해서 손수 마련한 고기, 버섯, 채소, 과일, 효모 등의 다양한 음식 재료들로 지인들에게 만찬을 대접하는데, 폴란은 그날의 식사에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붙인다.

지속불가능한 산업적 음식 시스템

이클 폴란이 야심 차게 두 주 동안이나 고심하며 준비한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는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그래서 생각하기도 좋은 만찬이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음식 시스템은 (7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며 지속불가능하다. 만약, 지금 당장 산업적 음식 시스템의 가동을 중단하고, 모든 사람이 폴란의 발자취를 따라 거창하게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잡식동물의 조촐한 저녁 식사’를 장만하려고 든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류의 끔찍한 인구 팽창을 조장했던 산업적 음식 시스템은 지속가능한가? 옥수수로 1칼로리의 가공식품을 만들려고 화석 연료 에너지 10칼로리가 소비되고, 소고기 단백질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있어 석유 에너지가 54칼로리나 사용되고, 재배된 채소나 과일을 냉장하고 씻고 포장하여 소비자나 지역 마트에까지 수송하는 데 수백에서 수천 칼로리의 화석 연료 에너지가 소비되는, 이렇게 배보다 배꼽이 큰 음식사슬이 과연 언제까지나 지속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뿐만 아니라 산업적 음식 시스템이 양산하는 환경오염과 공중 보건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이 모든 비용과 부담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이관되어 납세자이자 산업적 음식사슬의 ─ 사실은 가장 큰 피해자인데 ─ 가장 큰 수혜자라는 누명을 안고 사는 소비자의 지갑과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으로 때우게 된다. 회복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그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환경오염 같은 경우는 이에 아무 책임도 없는 미래 세대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대인

이클 폴란의 재치있는 지적대로 산업적 효율의 관점에서 정말로 석유를 직접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아쉽게도 지구가 나은 최고의 대식가이자 탐식가인 사람일지라도 그 정도까지는 진화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석유를 마시며 사는 신인류가 탄생할 수 있을지라도 그때가 되면 이미 석유는 고갈되고 없을 듯싶다.

우리는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가장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여전한 잡식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먹을 수 있어 보이는 모든 것을 몽땅 다 먹을 수는 없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먹을 수 있다는 축복과 그 가운데서 먹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저주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말하지만, 현대적인 산업적 음식사슬이 제공하는 다양한 가공식품들은 먹고 나서 바로 죽거나 탈이 날 정도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음식들을 먹고 여전히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팔팔하게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잡식동물의 딜레마’ 문제를 해결하는 그럴듯한 대안으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거대한 산업적 음식 시스템에 가려진 사회적 비용이나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환경오염 등의 지속불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 의도적이든,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어차피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려는 용감한 소비자는 거의 없겠지만 ─ 요즘 사람들은 정말 안심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함을 느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들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일까? 유기농을 집어 들며 나름대로 최고의 선택이라 자화자찬하며 만족해하는가?

이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라는 태곳적 문제에서 좀 더 분화되고 문명화된 현대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주머니가 가벼운 미식가라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투자한 가격 대비 최상의 맛을 뽑아낼 수 있는지, 현명한 주부라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이상주의자라면 어떤 음식을 구매해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등등 많은 문제가 우리의 지갑과 장바구니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마이클 폴란의 설명대로 우리는 여전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식탁 앞에 엉거주춤 앉은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먹는 방식이 바뀌려면 사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렇다고 이 책이 딱 부러지는 어떠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과학자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몇몇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음식은 인류를 지탱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근원이지만, 산업적 음식 시스템은 우리와 음식의 연결고리를,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 자연과 소통하는 우리의 태곳적 능력을 무참히도 파괴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먹든 그 재료가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서 자랐는지, 그것이 어떻게 도축, 가공되어 내 식탁에까지 왔는지 등 한 생명체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되새겨보며 비위 상할 필요가 없으며 감사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미 현대적인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을 등에 업고 인류의 문화와 문명, 그리고 개개인의 삶의 뿌리 깊숙이 들어앉았다. 지금에 와서 산업적 음식 시스템을 거부한다는 것은 전 인류를 기아와 아사의 벼랑으로 밀어 넣는 일과 다름없다. 지속가능한 농장이 분명히 존재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러한 농장들이 지독하게도 많은 인류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이 인류의 찬란한 식탐을 그럭저럭 채워주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얼마 못 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만약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산업적 음식 시스템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세계 3차대전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다.

마이클 폴란은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이 모든 것에 의문의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그가 던져 놓은 사고의 덫에 걸려든 게 한다. 유머 가득하고 재치 만점인 폴란의 문장에 현혹된 나머지 그가 놓은 덫에 일단 한 번이라도 걸리게 되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를 규정한다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진정으로 먹는 방식이 바뀌려면 진정으로 사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현실적인 믿음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독자에게 자신이 먹는 음식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를 규정하는 음식과 그 음식이 먹는 음식에 얽힌 복잡하고도 난해한 음식 사슬을 단순히 먹고 먹히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벗어나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며 생태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볼 것은 종용하고 있다. 만약에 이 책을 읽고도 오늘 저녁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전혀 불편한 감정 없이 예전처럼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이 죽인 사냥감이나 채집한 음식에 대해 감사와 예의를 표할 줄 알았던 구석기 시대 조상보다 못한 미개인이다!

육식에 대한 끝나지 않은 도덕적 • 윤리적 논쟁

으로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이성과 감성을 갖춘 지능적인 잡식동물이 진보된 문명화를 이루고 나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육식에 대한 도덕적 • 윤리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자신처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인생에서 육식 때문에 일어나는 살해를 직접 해보라고 요구하는 마이클 폴란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과 사람의 동물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사냥과 육식을 옹호하는 측의 주장을 모두 다룬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육식하는 저자의 마지막 논리로 무너진다. 마이클 폴란은 돼지를 한 마리라는 개체로 볼 것이 아니라 종(種)의 개념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라면 돼지(기타 인류에 의해 가축화된 모든 동물)는 인류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한 멸종할 일은 없다. 가축화는 그들의 진화적 선택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인류와 가축화된 동물들과의 윈-윈(win-win) 관계가 성공적으로 수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 마리 한 마리 돼지의 집단가축사육시설(CAFO: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에서의 짧은 삶이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하더라도 인류의 썩 괜찮은 과학기술과 변치 않는 식탐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종은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폴란의 주장이다. 육식을 옹호하는 처지에선 썩 괜찮은 논리처럼 들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영리한 돼지라도 이런 설명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폴란의 주장은 어떻게든 육식에 대한 도덕적 • 윤리적 부담을 덜고자 하는 인류의 수많은 변명거리 중 하나로 들린다. 즉, ‘이성적인 존재’가 될 때 가장 큰 장점은 원하는 무엇에 대해서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말과 다름없다.

만약 외계의 어느 지적생명체 문명에서 인류의 뇌가 고단백 영양 식품으로 유행한다고 치다. 그 바람에 그들에 의해 인류가 강제로 가축화된다면, 그래서 외계인에 의해 20~30세까지 인도적으로 사육되다가(적어도 그들은 사람을 끔찍한 CAFO 같은 곳에서 기르는 것보다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 괜찮은 교육, 그리고 깨끗한 환경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한 뇌가 더 영양가 있고 맛도 더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도축된다면(이런 이야기를 하니 영화에서 한니발 렉터(Hannibal Lecter)가 사람의 뇌를 삼겹살 구워 먹듯 요리해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폴란가 주장한 논리로 한껏 위안을 받으면서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즉, 우리보다 뛰어난 과학기술과 문명을 갖춘 외계인이 우리의 뇌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상 우리는 지구에서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서의 생존을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위안 아닌 위안에 만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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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7일 일요일

[책 리뷰] 장엄한 역사와 무심한 통계 속에 묻힌 소년병들 ~ 한국전쟁(왕수쩡)

Korean Wa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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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역사와 무심한 통계 속에 묻힌 소년병들

Original Title: 朝鮮戰爭 by 王樹增
전쟁은 어느 한 쪽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심지어 쌍방의 계획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전쟁은 자체의 규율이 있고, 우연과 필연이 한데 섞여 흐름이 결정되기도 하며, 삶의 희열과 죽음의 함정을 안배하기도 한다……. (『한국전쟁(朝鮮戰爭)』, p894)

이름 모를 ‘소년병’

픽션 왕수쩡(王樹增)의 『한국전쟁(朝鮮戰爭):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 막바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전방에서 중국군의 소년병이 최전방 진지로 명령을 전달하러 가고 있었다. 명령이 적힌 쪽지는 잘 접혀서 그의 상의에 넣어져 있었고, 소년병은 영리하게 포탄 구덩이 속을 재빠르게 옮겨가며 그날따라 더 맹렬해진 포화 속을 힘겹게 전진하고 있었다. 소년병은 죽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빨리 임무를 완수한 다음 부모님, 가족, 연인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따뜻하고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적군, 아군을 떠나서 소년병이 명령서를 전달하던 그 날 전쟁에 끌려든 모든 군인은 십중팔구 소년병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백전노장도 엄두 내기 어려운 맹렬한 포화로 뒤덮인 전장의 한복판을 위태하게 뛰어가면서도 수시로 명령서가 있는 가슴께를 더듬던 소년병이 진지에 거의 접근했을 때 소년병은 포격에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든 소년병은 한쪽 다리의 발목이 절단된 것을 알았고, 개의치 않으려고 애썼지만,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잠시 누워 있던 소년병은 고무신이 신겨진 채 절단된 발목을 한쪽 손에 들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안간힘을 쓰면서 진지까지 기어갔다. 소년병은 하늘가를 붉디붉게 물들인 석양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명령서를 가슴에서 꺼내 지휘관에게 건넬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날 소년병이 최전방 진지로 전달한 명령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명령 오늘 밤 10시에 정식으로 휴전한다. 그때 총이나 대포를 한 발도 발사해서는 안 된다.”

쪽지를 받아 든 지휘관이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정각이었다. 소년병이 명령서를 전달한 날은 밀고 당기는 지난한 협정 끝에 마침내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조인하는 날이었다.

장엄하다는 역사 속에 한낱 무명으로 묻힌 ‘소년병’

이후 소년병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리고 그 소년병이 누구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한국전쟁의 중국 측 자료를 수년 동안이나 파헤치며 숨겨진 영웅들을 적지 않게 발굴해 낸 왕수쩡조차 소년병의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면, 우리 역시 영영 알 길이 없다.

역사가는 소년병 같은 일화는 대규모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이라고 냉정하게 판단하고는 기록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소년병의 희생이 있었든 없었든 어찌 되었든 정전협정은 성립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한국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부지기수인 데다가 그중 영웅이라고 불릴만한 용기를 보여준 병사들도 한 두 명이 아닐 텐데 그깟 소년병의 이름이 대수로울 리도 없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이 한다. 폭우처럼 쏟아붓는 포화를 끝내 견뎌내야 하는 일도, 그리고 포화 속에서 끝끝내 희생되어야 하는 것도 소년병처럼 이름 없는 병사들이다. 전쟁은 이름 없는 병사들의 복종, 투지, 희생, 의지, 용기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잔혹한 현실로 구체화된다. 농민군을 이끌어 신중국을 수립한 마오쩌둥(毛澤朿)은 '세상만사를 결정짓는 요소들 가운데 첫째는 바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중국인민지원군의 전쟁 철학에서도 중요하게 드러나는 중심 사상이지만(일부는 이를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왕수쩡이 쓴 『한국전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처지에선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적군의 실상과 활약을 다뤘다는 점에서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솔직히 이런 책도 불편할 정도로 머리가 차갑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예 책을 읽지 말지어다!) 왕수쩡의 『한국전쟁』이 끝내 한국 독자에게 복받치는 감동을 밀려오게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점에 있다. 즉, 전장의 한복판에는 ‘무명의 병사’가 있듯, 그가 쓴 논픽션의 한복판에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장엄하다는 역사 속에서 한낱 무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소년병’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전 이후 수많은 책이 한국전쟁을 다뤘지만, 그 누구도 ‘소년병’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왜일까? 전쟁에서 한 사람의 목숨 따위는 파리 목숨만큼이나 가치가 없어서? 그저 몇 개의 숫자로 표현되는 통계 수치의 일부라서? 총알이 빗발치고 포화가 모든 것을 불태우고 파괴하는 전장도 참혹하지만, 그 뜨거운 전장 속에 벚꽃처럼 만개한 청춘을 기꺼이 받쳤음에도 역사와 후손들에게 외면당한 그들의 운명도 참혹하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하늘에서는 불을 내뿜는 전장에서 우리처럼 가족이 있고, 각자 나름의 이력과 삶을 가진 무수히 많은 청춘이 자욱한 포연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져갔지만, 역사는, 그리고 우리는 편리하게도 ‘수만 명’으로 통칭해버린다. 아, 이 얼마나 무정하고 매정한 숫자 놀음인가!

‘소년병’을 기억하려는 노력이 맺은 결실

가 왕수쩡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알 길은 없다. 하지만, 그가 이름 모를 그 ‘소년병’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듯, 그의 책에는 역사가의 무참한 붓과 인류의 무심함 속에 묻혀버린 또 다른 소년병들을, 그리고 그 소년병들이 무리를 이룬 크고 작은 부대들을 기억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은 그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본 역작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보통 역사가들이 사건들과 그 사건들이 서로 복잡하게 엮여가는 그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에 비해 왕수쩡은 사건을 실제로 일으키는 사람들의 행위와 그 사람들의 운명에 천착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기술하는 한국전쟁은 다른 역사서보다 더 생생하고 드라마틱하지만, 그만큼 더 잔혹하게 느껴질뿐더러 심금을 울리는 자극도 강렬하다. 특히 전쟁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눈여겨볼 만한 요인도 있는데 중국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병법을 구사하는 내밀한 과정과 마오쩌둥이 전체적인 중국군 전술에 끼친 영향, 중국군 장교들이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그들이 상부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체계 등 다른 한국전쟁 관련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중국군의 활약상이 상세하기 기술되어 있다. 중국인민지원군 부대들의 구체적인 전술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의 정신력 예찬

편으로는 죽음도 불사하는 소름 끼치는 투지와 믿기지 않는 인내력을 몸소 보여준 중국인민지원군 병사들의 뛰어난 정신력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왕수쩡은 공산주의에 대한 신앙(지금의 중국 젊은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끝내고 이제 막 국가를 수립한 1950년대 초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과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 그리고 현재 치러지는 전쟁이 ‘정의의 전쟁’이라는 굳은 믿음이 군 장병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한국전쟁에서 물질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유엔군보다 현격히 뒤처진 중국군이 그토록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핵심은 바로 왕수쩡이 강조하는 그 ‘정신력’에 있었다는데 누구도 반박하기 어렵다. 중국군의 분신쇄골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은 '세상만사를 결정짓는 요소들 가운데 첫째는 바로 사람’이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중국인민지원군의 소름 돋는 희생은 광신도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라도 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국전쟁에서 중국군이 이룬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중국군이 희생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중국이 거둔 모든 승리는 젊은 병사들의 피와 생명을 바꾼 결과였다는 말이다. 비록 적군이지만, 그들이 한국 땅에서 흘린 피와 생명,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뛰어난 용기와 비장한 희생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면서...

책에는 군인과 그 군인들이 한데 모여 움직이는 부대의 운명과 비장한 심리가 한 편의 소설처럼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다. 몰입하여 읽다 보면 중국군이 아군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난감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기도 하고, 눈물 없이는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고, 장황하다 보니 석연치 않은 부분도 더러 있다. 숭고한 희생에서 오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든, 안타까운 희생에서 오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든, 석연치 않은 점을 의심하든 중요한 점은 서로 죽고 죽이는 생명을 담보로 한 필사의 싸움에서도 인류는 거침과 섬세함, 포악함과 따스함, 천함과 고상함, 유약함과 굳셈이라는 인격과 인성을 발휘하면서 어떻게든 인간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전쟁을 다룬 다른 논픽션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사람의 잔인하고 난폭한 성정을 극대화하고 부추기는 전쟁조차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인간성을 말살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로써 지금보다 더더욱 문명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의식도 진보할 미래에는 전쟁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을까?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우리가 지난 전쟁들의 실상들을 잊지 않고 있을 때야 그러한 희망의 작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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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4일 일요일

[책 리뷰] 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 마오의 대기근(프랑크 디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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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Original Title: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1962 by Frank Dikötter
국가가 전부이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인의 가치는 노동 점수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되고, 흙을 나르거나 벼를 심을 수 있는 능력으로 결정되었다. 농촌에서 농민들은 가축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은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할 존재였고 그 모든 것은 공사에 대가가 따랐다. 이 음울한 계산의 논리적 귀결은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도태시키는 것이었다. 굼뜬 사람, 비실비실한 사람, 여타 비생산적 분자들의 무차별적 살해는 노동을 통해 정권에 기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체적 식량 공급을 증가시켰다. 폭력은 식량 부족을 다루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p438)

인류 정치사상 최악의 인재, 대기근

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총 사상자는 대략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으로 잡고 있다. 전쟁 기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한 1945년 9월 2일까지로 대략 5년이었다. 그런데 전쟁도 없었고 내전도 없었음에도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민간인만 4,500만 정도가 사망한, 아마도 인류 정치사에서 최악의 인재(man-made calamity)라고 불릴만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야심 찬 프로젝트 대약진(大跃进: Great Leap Forward)이 불러들인 대기근(大饥荒: Great famine)이다.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겠다는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적 공상에서 발아한 대약진은 한마디로 중국에서 가장 남아도는 자원인 6억의 노동력으로 자본을 대체하여 소련처럼 급진적인 산업화를 이루어내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였다. 그러나 동방원정과 유대 볼셰비즘 말살로 아리아 민족을 위한 지상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히틀러의 지독한 ‘의지’가 독일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온 온 것처럼, 자신의 생애에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기필코 건설하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에서 싹튼 대약진 역시 중국에 전무후무한 파괴를 가져왔다. 대약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량 살상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 목적에 반하게도 농업과 무역, 공업, 운송 등 중국의 산업과 경제에도 유례없는 피해를 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4,500만 명이 아사해가고 있을 때 권력의 중심부 사이를 비밀스럽게 오간 말과 그 당사자들의 냉혹한 행위들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베이징의 중앙당 기록 보관소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지금까지 국가나 중국 공산당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체면을 깎아내리는 크고 작은 불쾌한 사건들이 철저하게 은폐되어 온 것처럼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진실을 호도하거나 감추기에 바쁜 것 같다. 역사와 인민 앞에 공산당의 책임을 온전히, 그리고 떳떳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4,500만 명을 조기 사망시킨 대기근과 수억 인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문화대혁명의 절대적 책임을 공산당이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억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겠다는 혁명 이념으로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참혹한 결과 앞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류는 인정하면서도 히틀러나 마오쩌둥이 그랬던 것처럼 교묘하게 책임은 회피한다.

감춰진 잔혹사를 폭로하다

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 중 두 번째인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은 역사학자가 접근할 수 있는 최상, 최신의 자료로 완성된 수작이다. 이 책은 대기근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파괴했던 대약진의 구조적인 토대가 어떻게 세워지고 어떻게 지속하였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자리 잡은 토대 위에서 파괴 위에 파괴를 거듭하고 시체 위에 시체를 쌓아가면서도 무오류를 확신하는 마오쩌둥의 의지와 그를 숭배하는 당원과 인민으로부터 광적으로 뿜어져 나온 동력이 어떻게 대약진을 유지시켰는지를 면밀하게 파헤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 증거들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다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이들의 야심과 맹목, 탐욕에서 출발한 강압과 공포, 체계적인 폭력이 대약진 운동의 토대였음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대기근은 인재(人災)였을 뿐만 아니라 조기 사망자 대다수가 기존에 알려진 사실대로 아사, 혹은 굶주림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원인 즉, 대약진 동안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자살로, 그리고 적어도 250만 명은 맞아 죽거나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감춰진 잔혹사(残酷史)를 드러낸다.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의 지독한 공통점

실 히틀러, 마오쩌둥, 스탈린 등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은 그 누구보다 인민들의 목숨을 파리목숨보다 더 하찮게 여겼다. 아마 그러한 절대온도 같은 냉혹한 성정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불가결한 자질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마오쩌둥과 히틀러는 참으로 닳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각자 상정한 유토피아를 향한 두 사람의 꺾일 수 없는 ‘의지’와 ‘집념’은 현실을 생지옥으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치러지는 희생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히틀러가 수많은 병사의 죽음을 민족의 생존을 위한 ‘영웅적 투쟁’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희생이자 대가라고 주장했듯, 마오쩌둥 역시 대약진의 희생자들을 혁명의 대의를 위해, 미래에 약속된 유토피아를 위해,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희생되어야 할 소모품으로 여겼다. 두 사람 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으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편집증적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히틀러가 모든 잘못을 유대인 탓으로 돌린 것처럼 마오쩌둥은 봉건 세력, 수정주의자, 반동분자, 반혁명 분자 등 (거듭된 숙청으로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적성 계급 탓으로 돌렸다. 또한, 아랫사람들이 등 뒤에서 벌이는 짓들을 히틀러는 모른다고 믿는 ‘지도자 신화’라는 후광 속에서 (적어도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까지는) 히틀러가 비난의 화살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마오 역시 ‘위대한 조타수’로서 오직 인민의 복지만을 염려하는 인자한 지도자로 그려지는 데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천재성과 무오류성을 확신했다. 그래서 제아무리 논리적이고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두 사람의 언행과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고, 감히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린 비판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마오쩌둥이 히틀러보다 나았던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자국민들에 (비록 그들은 세상 그 누구도 겪지 못한 공포에 떨고 고통에 짓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지만) 한해서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과 6억 인민을 가지고 사회주의 실험 놀이에 한창 빠져있었던 덕분에, 이 기회를 틈타 대만과 한국은 경제 발전을 가속할 수 있었다.

한편, 제3제국의 모든 층위에서 이루어진 의사소통에 구조적으로 진실이 왜곡되었던 것처럼 중국은 대약진 시기에 망령에 가까운 마오쩌둥 실험에 장단을 맞춰주느냐 온 나라가 오로지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등의 수치를 날조하고 조작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나치당원들이 히틀러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었어도 히틀러가 원하고 좋아할 만한 일들을 알아서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나치의 동력원이었다면,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겠다는 공산당원들의 잔인한 보신(補身) 의지가 대약진의 동력원이었다. 나치가 국가에 짐이 되고 밥만 축낸다는 잔혹한 논리로 불치병, 정신병, 선천적 질병을 앓는 환자를 안락사시킨 것처럼 대약진 시기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엄혹한 논리로 아이, 병자, 노인은 잔학무도한 생존경쟁에서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 (다른 점도 많겠지만) 어딘가 닮은 점이 있는 두 독재자 밑에서 인류사에 지워지지 않을, 그리고 지워져서도 안 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파괴적인 재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오싹하기 짝이 없다.

한국 전쟁의 영웅 펑더화이의 몰락을 불러온 대약진

약진이 모든 지도층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1957년 하반기에 시작된 치수 사업 맥락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 ‘대약진’이 막상 시작되었을 때 당의 제2인자인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비전을 받아들였지만, 중국에서 마오쩌둥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 저우언라이와 경제 전문가 천윈(陳雲)은 마오쩌둥의 경제 정책을 반대했다. 하지만, (권위와 보신 앞에 장사가 없듯) 두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고자 마오쩌둥의 끈질긴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1959년 루산 회의에서 한국 전쟁의 영웅이자 국방부장이었던 펑더화이(彭德怀)는 마오쩌둥에게 조심스럽게 대약진의 참상을 알리고 비판하는 편지를 전했다가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쫓겨나고, 루산 회의에서 펑더화이를 지지했던 다른 이들도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한편, 1961년 4월 류사오치는 거의 40여 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다가 실제로 목격한 참상에 충격을 받고는 (아마 그는 참상을 눈앞에서 보고도 외면할 정도로 모진 사람은 못 되었나 보다!) 이때부터 대약진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다. 이후 류사오치는 농민들은 ‘30퍼센트는 천재요, 70퍼센트는 인재’라고 말한다며 대기근의 원인을 명확하게 중앙 지도부로 지목하면서 마오쩌둥의 심기를 건드린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대기근의 참상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뒤였기에 마오쩌둥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침묵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상대를 용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대약진의 참담한 실패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곧 실추된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회복하고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을 일으킨다. 그로 말미암아 중국은 대약진의 충격에서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또 한 번 혼란과 고난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에는 대약진의 실패를 거울삼아 급진적인 산업화가 아니라 대중 선동을 선택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킨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가 겨우 일어서려는 찰나에 다시 크게 한방 얻어맞고 진흙탕 속으로 굴러떨어진 격이니, 어찌 인민들에게 잠시의 평안함이 허락될 수 있었겠는가? 이때는 감히 ‘위대한 조타수’에게 반기를 든 펑더화이와 류사오치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파국의 시대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적나라함

지막으로 파국의 시대에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프랑크 디쾨터는 설명한다. 그 어떤 공포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잔혹한 짓들이 이 책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굶주린 아이가 먹을 것 좀 훔쳤다고 우물에 빠트려 죽이고, 먹을 것을 훔친 소년의 아버지에게 자식을 산 채로 땅에 파묻게 하고, 어느 엄마는 여덟 살 딸아이 몫의 배급 식량을 빼앗아 자기 자식을 굶겨 죽이기도 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것은 죽은 사람조차 그냥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천운이었고 길거리에 그냥 방치되는 것은 보통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소년처럼 사소한 경범죄를 저질러 맞아 죽은 사람들은 다른 재료와 함께 솥에 넣고 끓여진 다음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적군도 아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에게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만행이 한 두 마을에서만 있었던 특이 사례가 아니라 중국 전역에 걸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상사의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숙연한 역사 앞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위기 앞에 또다시 서게 된다. 한편으론 훗날 문화대혁명 중에 일어나게 될 만행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전쟁이나 내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 정도의 인구가 단 4년 만에, 그것도 단 한 사람의 의지와 그를 뒤따르는 어떻게든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자리를 보전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흉물스럽고 천박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조기 사망했다는 무참한 진실 앞에선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역정조차 곧바로 허탈한 감정으로 식어버린다. 마주해야 할 진실이 너무나 참혹했을 때, 그래서 당황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무정하게도 그 저주받은 시기에 태어난 그 사람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탓하고야 마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논리와 이성이 마비된 무상함에 빠져든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스리고 분노를 풀어보고자 제법 긴 글의 리뷰를 쓰고 난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밝히기를 꺼렸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도 엄청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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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3일 일요일

[책 리뷰] 그는 정말 ‘사악’하기만 한 사람이었을까? ~ 젊은 스탈린(몬티피오리)

Young Stalin (2007년)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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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사악’하기만 한 사람이었을까?

Original Title: Stalin: The Court of the Red Tsar by Simon Sebeg Montefiore

“이 사람이 돌 같은 내 심장을 녹여주었는데. 그녀가 죽었으니 인간에 대한 내 마지막 따뜻한 감정도 죽었어.” 그는 자기 가슴에 손을 얹었다 . “이곳이 너무나 황량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황량해.” (『젊은 스탈린』, p369)

가체칠라제 신부는 스탈린이 독재하는 동안 그때 그 동행자를 죽여버릴 걸 하고 후회했지만, 당시에는 “그는 모두에게 감명을 주었다. 난 그를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는 절제력이 있었고 진지했고 멋있었다. 심지어 내게 시를 읊어주기까지 했다.” (『젊은 스탈린』, p271)

그는 정말 ‘사악’하기만 한 사람이었을까?

린 스탈린이 (레닌 사후 펼쳐진)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나서 무자비하게 정적들을 숙청하며 권력을 다지고, 그럼으로써 냉혹한 독재자로 올라선 다음 최종적으로 완성된 ‘사악한 독재자’라는 이미지에 익숙하다. 비록 그의 공포 정치가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큼 경악할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여기엔 어떤 일의 발단을 집요하게 추적하거나, 그런 결과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천착하는 일에 무한한 지루함을 느끼는, 그래서 간단하고 빠르게 결과만을 보고 결과만을 중시하는 것에 익숙해진 좀비처럼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는 우리의 非사고적 일상도 한 몫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구태여 우리의 빈약한 정신적 삶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마다 통계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 책 『젊은 스탈린』에서는) 대략 2,000만에서 2,500만 명의 죽음에 당당히 책임이 있는 ‘사악한 독재자’ 스탈린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식으로 완성됐는가 하는 의문이다. 또한, 그의 등장은 역사적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시대의 흐름이자 시대의 요구였을까? 하는 의구심 역시 뒤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질문에 유용할만한 대답을 짜내고자 하는 호기심 충만한 독자라면 그가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스탈린과 어떻게든 관련이 있었던 실존 인물들의 (그들의 생애에서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마지막이 될 듯한 진술과 스탈린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진짜 기록이 담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Simon Sebeg Montefiore)의 『젊은 스탈린(Young Stalin)』이야말로 최선이자 (한국어만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는) 유일한 선택이다.

잃어버린 연결고리들을 메운 문학적 소양

력에 오른 사람이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될, 혹은 반대자들에게 약점으로 잡힐 만한 오점으로 얼룩진 과거를 조작하거나 말살시켜버리는 파렴치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굳이 예를 들면 문화대혁명 초기 자신의 과거 중 연애와 관련된 사항뿐 아니라 정치적 기록도 걱정한 장칭(江青)은 배우로 활동했던 상하이 시절과 관련된 자료를 집요하게 추적해 몽땅 태워버렸다), 그리고 스탈린 자신의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의 편집광적인 기질이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진실하게 밝혀줄 만한 꽤 많은 자료에 끼친 악영향을 고려하면,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몬티피오리는 스탈린만큼이나 강한 의지와 집요함으로 10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한 끝에 『젊은 스탈린』을 완성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의 존경할만한 학구적 능력과 그 성실함에 손바닥 발바닥에 불꽃이 튀기도록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10년에 걸친 자료 수집이라 해도 이 책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 경험이 연구에 별 보탬이 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둘째치고, 무심한 세월이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기억이 띄엄띄엄 회상하는 과거를 경청하는 일은 말더듬증 같은 학습 장애나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는 것만큼이나 큰 인내심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스탈린 자신의 노력으로 훼손되고 손실된 자료까지 더해지면, 베일에 싸인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밝혀낸다는 것은 완성된 그림을 알지 못한 채 엎질러진 직소 퍼즐 조각만을 만지작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지하게 난감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조각만이라도 모두 모여있으면 다행이지만, 행방은 둘째치고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조각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연구는 결실을 보았고 『젊은 스탈린』은 완성되었다. 그것은 유실된 조각들이 조롱하듯 남겨놓은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조각판 위의 빈 곳을 문학적 소양으로 매끄럽게 메웠기에 가능했다.

한 사람의 전기는 충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지라도 단순하게 자료만 나열한다고 (그렇다면 그것은 그저 연보일 뿐이다)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무미건조하게 시체처럼 죽어 나자빠져 있는 자료들을 한데 엮은 다음 생명력을 불어넣어 누군가가 흥미진진하게 읽어볼 만한 한 권의 책으로, 즉 사실들을 그저 나열한 연대기에서 흡입력 있는 문학적인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전기 작가의 소임이라고 한다면, 몬티피오리는 스탈린의 성장 과정을 사실과 기록에 충실하게,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들로 발생한 단편적 사실들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들을 문학적 소양으로 매끄럽게 이어붙였다는 점에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했다.

다만, 이 책은 몬티피오리도 밝혔듯이 스탈린의 생애에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군사, 국제관계, 사적 영역의 모든 측면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성장 과정에 대한 진짜 기록을 밝히면서 그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 사적 영역에 집중한 책이다. 그렇게 장단점이 명확한 책이기에 깊이는 있을망정 숲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나 통합적 조명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 이 부족한 부분은 스탈린 생애의 공적 삶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흔적이 역력한 로버트 서비스(Robert Service)의 스탈린 전기로 메울 수 있다(사실 한국에서 스탈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두 작가의 책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Orlando Figes)의 『속삭이는 사회(The Whisperers)』는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사적인 삶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스럽게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강렬한 유혹을 발산하는 독기

제 『젊은 스탈린』 책에 대한 칭찬은 그만하고, 이 책이 만남을 주선해 준 젊은 스탈린에 대해 몇 마디 해볼까 한다. 사실 젊은 스탈린은 그의 사후 완성된 ‘사악한 독재자’라는 단순 명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복잡한 사람이다. 복잡하다는 말은 그냥 ‘사악하다’라는 다소 세련되지 못한 평가가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주근깨와 천연두 후유증으로 남은 얽은 자국, 그리고 몇 번의 사고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약간 절룩이는 다리와 뻣뻣한 짝짝이 왼팔이라는 그의 특이한 외모는 제쳐놓고 (사실 스탈린은 자신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평생 짊어지고 살았지만, 스탈린의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면 그의 그런 외모가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서는 콤플렉스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격만 놓고 봐도 그는 분명히 특출난 사람이었다. 산과 하늘에 대해서는 시적인 열정을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사람에 대한 연민은 거의 없었던 스탈린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하고 잔악무도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했다. 이처럼 지독하고 잔인한 면이 있었음에도, 그가 권력을 잡기 전부터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은 상당했다. 젊은 스탈린은 이렇다 할 명성도, 권력도, 돈도 없었음에도 혁명 활동을 처음 시작한 그루지야에서 이미 마피아 같은 무장 강도단을 이끌 정도로 충성스러운 추종자와 지지들을 모을 수 있었다. 스탈린은 전 세계 언론 머리기사로 보도될 정도의 은행 강도에 성공함으로써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데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조직하고 선동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나서게 하는 일에도 특출난 수완이 있음을 매우 거친 방법으로 증명했다. 위험천만한 상황도 무릅쓰고 때론 목숨까지 걸고 젊은 스탈린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가 비록 복잡한 인물이었을지라도 한편으로는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스탈린의 무엇이 주변 사람들을 회오리바람처럼 빨아들이게 하였을까. 스탈린의 무엇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매혹적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 다수가 훗날 공포 시대에 닥칠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을 보면 그것은 치명적인 독기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과일임에도 따먹었을 수밖에 없었던 사과처럼 강렬한 유혹을 발산하는 독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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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책 리뷰]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고, 두려워서 듣지 못했다 ~ 속삭이는 사회(올랜도 파이지스)

The Whisperer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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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서 말하지 못했고, 두려워서 듣지 못했다

Original Title: The Whisperers: Private Life in Stalin's Russia by Orlando Figes by Orlando Figes

말하기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위험할 수 있었으나, 대숙청 시기에는 누군가가 영원히 사라지는 데 분별없는 말 몇 마디면 충분했다. (『속삭이는 사회 1권』, p418)

어머니는 딸에게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너무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고, 나는 너무 두려워서 묻지 못했다.”고 마리나는 회고한다. (『속삭이는 사회 2권』, p229)

숨 막히는 사회

선 이 책 『속삭이는 사회(The Whisperers: Private Life in Stalin's Russia by Orlando Figes)』 에 등장하는 놀랍고 충격적이며 한편으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이 단지 나에겐 그저 극적인 ‘이야기’일뿐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다. 이런 나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토해내듯 힘겹게 뱉어내는 ‘속삭이는 사회’를 듣고 있노라면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해도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끔찍한 삶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비록 내가 그들이 겪은 불행과 고통에 통탄해하고 비탄에 잠겨 그들이 겪은 모든 것에 대해 동정할지라도 한편으론 나 자신이 그런 불행의 시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나의 파렴치한 양심은 변명한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그 시대, 혹은 그와 비슷한 시대에 살고 있다면 지금의 내 양심과 도덕적 가치를 끝까지 견지할 수 있을까? 동시대인의 눈에는 무모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하지만 훗날 누군가가 봤을 때는 공포정치의 압제와 부당함에 저항하고 굴복하지 않는 용감하고 꿋꿋한 나의 반항은 일찌감치 나를 총살장으로 인도하거나, 운이 좋으면 시베리아로 끌려가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혹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든 아니면 단지 살아남으려는 방편으로 그런 것이든 내 양심과 도덕적 가치를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다면 생존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아무튼, 용감하게 시베리아로 끌려갔든 자신을 기만하며 공포정치에 순응했든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 의심, 거짓말, 배신이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 모두를 지배하는 숨 막히는 사회는 누구에게든 견디기 어려운 가혹한 삶이라는 것이다.

인민의 최우선순위는 무엇보다 ‘생존’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일제강점기를 살아갔던 조선인을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반항하지 않은 ‘조용한 삶’을 살아간 소련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을 짓누른 공포와 정부, 그리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의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에 미칠 정도로 삶을 압박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그들의 영혼과 육신에 하느님의 가르침보다 더 깊이 새겨진 행동 교훈이었을지도 모른다.

‘인민의 적’, ‘망가진 이력’, 무엇이 이것들을 유지시켰을까?

의 규칙과 이데올로기를 준수하는 한 사적 생활이 허용된 나치즘이나 파시즘 운동과는 달리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가 무너진 스탈린 치하의 공포정치에서는 분별없는 말 몇 마디면 그 누구라도 지금까지 영위하던 삶의 궤적에서, 그리고 그를 알던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기에 충분했다. 집단통제체제의 상징이던 비좁은 공동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을 사소한 분쟁에 노출시키는 평범한 시기심에, 코딱지만 한 방 한 칸에 한 가족 이상이 사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자 하는 간절함에, 혹은 선수를 치지 않으면 자신들이 고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리고 얼마 간은 소비에트 이상에 봉사하고자 하는 시민적 의무감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웃과 친구, 심지어 가족과 친척까지도 ‘인민의 적’으로 고발했다. 소비에트가 선전하는 ‘인민의 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선전을 믿는 사람들은 가족이 ‘인민의 적’으로 끌려가도 국가가 가족을 잡아간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믿었으며, 설령 가족의 결백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인민의 적’을 체포하다 보면 간혹 실수로 체포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정부를 두둔하며 가족의 체포마저 합리적으로 받아들였다. 한편, 소비에트 선전을 의심하는 사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민의 적’의 존재를 믿는 척해야 했으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고발해야만 했다. 반면에 소심한 사람들은 밤늦은 시간에 낯선 자동차가 집 앞에 주차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도 잡혀갈 것에 대비하며 침대 옆에 미리 짐을 싸둔 채 뜬눈으로 밤을 보내야만 했다.

고발당한 자들은 총살당하지 않으면 거대한 ‘굴라크(gulag) 제국’의 일원으로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고발당한 자의 가족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인민의 적’을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당해 ‘굴라크 제국’의 일원이 되거나, ‘인민의 적’을 가족으로 둔 ‘망가진 이력’ 때문에 스탈린 사후 해빙의 시기에 복권이 진행될 때까지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망가진 이력’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야심을 미처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은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 부모를 부정하거나 ‘망가진 이력’을 숨긴 채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헌신하는 충직한 시민으로 보이게끔 노력함으로써 생존과 함께 출세를 도모했다. 이들 중엔 볼셰비키 교육으로 세뇌당한 결과로, 혹은 국가가 선전하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진심으로 믿었기에 스탈린 체제를 옹호한 사람들도 있었고, 생존을 넘어 개인적 야심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로 그런 척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수많은 사람이 스탈린 체제의 공포정치에 짓밟히고 억압당하고 기만당했음에도 스탈린 체제는 그가 죽기 전까지 그럴듯하게 잘 유지되었다. 무엇이 그러한 소비에트 사회를 유지하게 했을까. 봉건제도를 만들어놓고 농노들에게는 천국의 보상을 약속한 중세 교회처럼 현실의 궁핍과 고통이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필수적인 희생이라고 설득당한 소련 사람들의 낭만적인 믿음과 이상적인 희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체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한 수동적이고 순응주의적 태도 때문이었을까. 올랜도 파이지스는 후자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스탈린 체제를 경험했던 사람 중 일부는 고르바초프 개혁 이후에도 (우리 중의 누군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여전히 스탈린을 숭배하고 그 시절을 향수에 젖어 회상했다는 기록을 보면 전자도 전자 역시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인지부조화적인 체제가 양산한 ‘도덕의 진공’

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는 스탈린 체제의 공포정치가 개인과 가족생활에 끼친 영향을 깊이 탐구하는 최초의 책으로써 불신, 배신, 고발, 악의, 중상이 판을 치고 소비에트가 선전하는 사회주의 유토피아 이상과는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현실이 보여준 모순 속에서 어떻게 그들이 최소한의 인간성을 유지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답을 진지하게 파헤치는 본격적인 연구다. 그래서 한 개인의 도덕적 영역은 이 책의 주요 무대다. 체제가 제시한 소비에트 유토피아를 믿었든 안 믿었든 한 개인으로서 생존하려면 보편적 양심과 도덕적 가치는 기회주의적 타협에 맞추어 적절하게 변형될 수밖에 없었으며, 생존에만 만족하지 않고 개인적 야심을 이루고자 소비에트 시민으로 거듭나고 출세하고 싶다면 그 도덕적 변형을 기형적으로 과도하게 일그러트려야 했던 사회, 즉 올랜도 파이지스(Orlando Figes)가 언급한 ‘도덕의 진공 상태’가 바로 스탈린 체제가 보통 사람들에게 선물한 무겁고 냉혹한 짐이었다. 생존자들의 구술 위주로 진행된 이 연구에는 일기와 편지 등이 포함된 가족문서고 자료도 활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독자는 그들이 ‘도덕의 진공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변형시키고 억압함으로써 공포정치에 적응하고 생존에 성공했는지를 독자가 지닌 나름의 가치 판단과 경험에 비추어 고려해볼 수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2000년대 초반에도 ‘인민의 적’ 생존자 가족들은 여전히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과거를 회상했으며, 일부는 이 연구를 계기로 다시 떠올리게 된 과거가 끌어온 두려움과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문서고를 폐쇄해야 했을 정도로 그 시대가 남긴 두려움, ‘인민의 적’과 그 가족들로 대물림된 ‘정신적 외상’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 글 서두에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마치면서...

무튼, 이 책은 체제를 생산하고 그것을 유지하려는 권력중심적인 입장에서 다룬 역사가 아니라 그 체제가 발산하는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서 어떻게든 구조에 적응하려고 발버둥 치는 보통 사람들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고 흥미로운 책이다. 스탈린 체제가 제시하는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갈지자로 걷다 조용히 사라진 사람도 있고, 대놓고 체제를 비판하다 비명횡사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봉건시대의 농민들처럼 참고 견디는 수동적이고 운명에 순응하는 미덕을 견지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스탈린 치하에서도 그랬고, 같은 시기에 벌어진 파시즘과 나치즘 운동 밑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 마오쩌둥의 또 다른 공포정치 속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든 결국 살아남았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인고의 인고를 거듭하며 적응방산(adaptive radiation)한 끝에 살아남은 보통 사람들의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은 찬탄할 만하지만, 단지 두려움 때문에 자신들에게 가혹한 시련의 삶을 제공한 체제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무언가 찜찜하고 개운치 않은 떨떠름한 뒤끝을 남긴다. 물론 나라고 그러한 상황에서 용감하게 저항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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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책 리뷰] ‘기만’, ‘조작’, ‘개조’, 그리고 ‘할당제’로 완성된 ‘대공포 시대’ ~ 해방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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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 ‘조작’, ‘개조’, 그리고 ‘할당제’로 완성된 ‘대공포 시대’

Original Title: The Tragedy of Liberation: A History of the Chinese Revolution 1945-1957 by Frank Dikötter
해방 이래로 무수히 많은 시간의 학습 모임을 통해 당의 방침을 앵무새처럼 흉내 내고, 올바른 대답을 내놓고, 동조하는 척하는 방법을 배운 터였다. 일반인들은 어쩌면 위대한 영웅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상당수가 훌륭한 배우였다.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 p401)

오쩌둥(毛澤東, MaoZedong) 밑에서는 경제전문가로, 덩샤오핑과 함께할 때는 신중하고 점진적인 개혁가였던 천윈(陈云, Chen Yun)은 마오쩌둥이 1956년에 죽었더라면 중국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새로운 황제들 The new emperors(해리슨 E. 솔즈베리 Harrison E. Salisbury』, 박월라 • 박병덕 옮김, 다섯수레, p331). 이 말에는 마오쩌둥이 1976년에 죽음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중선동 실험이었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무려 10년이나 지속시켰다는 엄연한 사실이 중국 인민과 중국 공산당, 그리고 마오쩌둥에게 불행이었다는 뜻이 은연중에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해방 후부터 (문화대혁명의 전초전 격이었지만 사상자는 압도적으로 많았던) ‘대약진’이 시작되기 전인 1956년까지 중국의 인민은 과연 행복했을까? 제국주의 침략과 내전에 휘말렸던 해방 전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Frank Dikötter)의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The Tragedy of Liberation: A History of the Chinese Revolution 1945-1957)』은 지금까지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아 보였던 천윈의 의견이 사실은 공산당의 ‘기만’과 ‘조작’, ‘선전’, 그리고 여기에 하나마 더 보탠다면 가혹한 ‘할당제’로 이루어진 대기 중의 뜬구름 같은 망상, 혹은 기만으로 가득 찬 또 하나의 ‘선전’이었음을 고발한다.

근 몇 년 사이에 공개된 중국 공산당 기록 보관소의 비밀경찰이나 당원들의 비밀 보고서나 비밀 서류, 사상 개조 운동에서 발췌된 자백서, 농촌의 반란을 둘러싼 사실 조사, 대공포 시대의 희생자들에 관한 세부적인 통계 자료, 공장과 소규모 작업장의 근로 환경에 대한 조사, 일반인들이 제출한 항의서 등 이전까지 기밀로 취급되던 수백 건의 문서들과 혁명을 직접 겪은 목격자의 증언으로 완성된 『해방의 비극』은 사탕발림이나 다름없었던 공산당 선전 속에 묻힌 통탄할만한 인민의 역사를 폭로한 글이다. 해방 후 공산당 집권 초기 10년은 최소 50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20세기 최악의 폭정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은 앞서 말한 천윈의 의견과는 달라도 완전히 다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공산당의 기만전술, 거짓 선전, 사상 개조, 선동과 천 명당 한 명 정도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잔인한 할당제와 함께 이름만 바뀌면서 반복되는 정풍 운동은 해방 후 자유와 평등, 평화, 정의 등 보편적인 가치를 기대했던 인민에게 이름하여 ‘대공포 시대’를, 인류 역사상 어느 민족도 누려보지 못한 가혹한 시련을 선사했다. 이로 말미암아 평화와 화애를 중시하는 전통적 사회 질서는 무너졌고, 그 자리에는 감시와 의심, 밀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팽배하는 등의 모든 인간적 관계가 철저하게 붕괴된, 그리고 생산물 대부분을 정부에게 빼앗기고 굶주려야 하는 ‘신농노제’ 사회가 들어섰다.

혹했던 선동당했던 실속 없는 토지 개혁에 발을 들여놓은 인민은 본의 아니게 ‘피의 숙청’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공산당과 피의 계약을 맺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공포 시대’에는 침묵할 자유조차 없었다. 자기비판을 하든, 타인을 비판하든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선인들의 가르침 중 하나인 중도는 허용하지 않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침묵조차 반동이었고 반혁명이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몸짓 하나가 누군가의 눈에 거슬리면 세심하게 구축된 정신적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 사상 개조를 당해야 했다. 변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했고, 사상 개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원래의 자신이길 포기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고통을 겪고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공산당 선전 속의 중국은 언제나 천국이었다. 이것이 과연 위대한 업적인지 천윈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방이 어떻게 인민을 짓밟고 어떻게 그들의 삶을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는지 비탄 어린 목소리로 설명하는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을 통해 그 ‘천국’의 실제 모습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지금까지 본 중국 현대사와 관련된 그 어떤 책도 이 책만큼 인민의 삶을 세심하게 살펴본 적이 없었고, 가까이 다가간 적도 없었다. 읽다 보면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과대망상적인 냉혹한 이상주의에서 비롯된 인재였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천윈에 의견에 동조하기 어렵다. 혁명이 폭력을 동반하고 피를 흘려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희생이 더 나은 세상에 이바지했을 때 비로소 혁명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1949년의 해방과 혁명의 정당성이 재고될 날도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그들의 희생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공산당을 위한, 그리고 선전과 현실 속 괴리 사이의 엄청난 틈새를 감시와 의심의 장막으로 가린 채 강행되는 무지막지한 연극의 소모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프랑크 디쾨터의 지적대로 그 엄청난 ‘대공포 시대’에도 살아남은 대다수 인민이 훌륭한 배우였다는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혹은 중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목숨을 건 연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하루하루 삶을 연명했던 혁명 세대들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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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2일 일요일

[책 리뷰] 사악한 ‘백골정’?, 아니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 장칭(로스 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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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백골정’?, 아니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원제: 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 by Ross Terrill

처음에는 성(性)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장칭(Madame Mao)』, p179)

권위는 항상 장칭의 적이었다. 화합 또한 장칭에게는 자기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장칭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갑게 말했다 .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 지난에 살면서 나는 어디에서나 모욕을 당했죠 .”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이런 대격동을 환영했을 것이다. (『장칭(Madame Mao)』, p408)

골정(白骨精)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간사하고 독하고 또 변장과 변신을 잘하는 요귀인데 현실에선 수단이 교활하고 악독한 나쁜 사람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지막 아내이자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한복판에 당당하게 섰던 인물 장칭(江青)이 바로 백골정이라 불렸다. 장칭은 정말 요귀처럼 상황과 환경에 따라 우아하고 겸손한 요조숙녀와 권력의 칼날을 잔혹하게 휘두르는 사악한 악녀 사이를 밥 먹듯이 오갔으며, 그녀가 갈고닦은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 앞에 펼쳐진 블랙리스트에는 30여 년 전의 일도 수두룩할 정도로 한 번 품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았다. 손을 떠난 복수의 칼날은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맛보고서야 거두어들였으며, 복수를 완수한 칼을 거두어들일 때조차 승리한 폭군에게서조차 종종 보이곤 하는 알량한 자비심조차 내비치지 않은 그녀의 잔혹함과 사악함은 사탄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녀를 단죄한 덩샤오핑 시대는 장칭을 사악한 요괴, 요부 정도로 평가했지만, 장칭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낸 로스 테릴(Ross Terrill)의 책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은 조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헨리크 입센의 희극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혹은 뛰쳐나오고 싶은 반항심 가득한 ‘노라’로서 말이다. 실제로 장칭은 연극에 입단하는 윈허(장칭의 소녀 시절 이름) 때 이미 '인형의 집' 노라에게 매료됐으며, ‘란핑’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상하이 여배우 시절에는 '인형의 집'의 노라 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낡은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회를 과감하게 탈출하고 싶었던 ‘노라’는 다름 아닌 장칭 바로 그 자신이었으리라. 그 이후에도 그녀는 중국을 무대 삼고 인민을 관중 삼은 인생의 연극에서 노라 역에 충실했으며,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기표현’에 대한 비범한 의지력과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강렬한 자립심과 민감한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칭이 배우를 택한 것도 ‘자기표현’의 한 수단이었고, 마오를 선택한 것 역시 그랬다. 그녀는 일본의 상하이 침공과 전쟁으로 배우 활동이 어려워지자 ‘자기표현’의 또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와 정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고 통치자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마오 주석 곁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언제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해 줄 자신의 우아한 날개를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우울한 눈으로 바라고 있었던 장칭에겐 최고 통치자의 아내라는 역할도 새장 속에 갇힌 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보기엔 자신이 갇힌 새장은 단지 다른 이들 것보다 좀 더 넓고 화려해 보일 뿐이었으리라. 그렇게 장칭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지냈고 그동안의 억압 되고 좌절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 이러한 점이 그녀가 문화대혁명 중에 보여준 묵은 원한과 증오심으로 벼리고 벼린 복수의 칼을 잔혹하게 휘두른 것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상당한 추종자들이 장칭을 흠모하고 칭송했던 것을 보면 장칭의 과감한 ‘자기표현’ 능력과 배우 특유의 무대 장악 능력이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장칭의 반항심은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재판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는 자기 앞에 쌓인 모든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재판 과정 내내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비극은 마오의 현실을 크게 벗어난 공산주의 실험과 경직된 공산당 체제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지만, 공산당은 마오와 공산당의 잘못까지 비겁하게 모두 사인방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장칭은 모두 마오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산당을 당황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그들의 교활함까지 폭로했다. 낡은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혁명적 기치에서 일어선 공산당이었지만, 결국 명칭과 사람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인민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체제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하고 싶은 말은 다 쏟아내던 장칭의 반항심은 공산당 통치에 회의적이거나 염증을 느낀 인민들의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과 감동을 일으키며 일말의 카타르시스 적인 대리 만족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을 읽다 보면 개인적 기질과 역사적 오류가 우연히 만나 일으킨 스파크가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더욱 확장시킨 듯한 뉘앙스를 조금 풍기기도 하지만, 워낙 장칭에 대한 백골정이라는 악의적인 평가가 단호하고 요지부동이다 보니 저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이 공정함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일말의 자비심을 베푼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장칭이 여배우라는 직업이 흠이 되기는커녕 나름 흠모받는 지금의 중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히틀러를 뺨치는 의지력과 대중 장악 능력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비천한 출신 배경과 고통, 갈등, 슬픔, 외로움으로 가득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태산 같은 증오와 원한을 품지 않고 좀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만, 누구나 다 현실의 불행과 잘잘못을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으로 돌리면 되니 더 이야기할 거리는 못 되지만 아무튼, 그녀가 마지막 부대에서 보여준 용기와 배짱은 정말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다. 그 한 장면 때문에 그녀에 대한 작금의 평가가 크게 달라질 리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일시적인 감흥에 따라서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문화대혁명 기간 전후에 보여준 ‘복수의 화신’ 같은 장칭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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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일 일요일

[책 리뷰] 어두운 밤의 장막이 내려준 또 다른 익명성의 세계 ~ 밤의 문화사(로저 에커치)

At Day's Clos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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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의 장막이 내려준 또 다른 익명성의 세계

원제: 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 by A. Roger Ekirch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우선 조심스럽게 불을 묻어두고 침대로 도망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불량배, 악령, 해로운 습기 같은 밤의 온갖 위험에도 사람들은 침실로도 집으로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밤에도 일을 하거나 즐겼다. (『밤의 문화사』, p94)

종 깜깜한 밤을 ‘칠흑같이 어둡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최소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이 관용적 수식이 묘사하는 밤은 얼마나 어둡고 깜깜한 밤일까. 그것은 바로 눈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할 수 없고, 그 길에 익숙한 지역주민조차 길 위에 쓰러진 나무에 걸려 넘어지거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구덩이, 개울, 낭떠러지에 빠질 정도로 길의 방향과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어둠이다. 현란한 빛 공해에 시달리는 도시인에게 ‘칠흑같이 어두운 밤’은 이미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머릿속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밤일지 모르겠지만, 달빛처럼 별빛도 은근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촛불 옆에서는 염소도 여자로 보일 정도로 깜깜한 밤에서 일생의 반을 보내야 했던 산업혁명 이전에 살던 서양 사람들에겐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배경을 제공해주는 또 다른 인생이었다. 로저 에커치(A. Roger Ekirch)의 『밤의 문화사(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는 주류 역사가들이 외면한 ‘또 다른 인생’, 혹은 ‘또 다른 왕국’ 이고 일상의 반쪽이자 제도적이고 억압적인 낮과는 다른 풍요롭고 생동적이며 자유롭고 이색적인 밤의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중들은 강도나 도둑, 화재 등의 현실적 두려움과 악마나 마녀 등의 초현실적 공포에 떨면서도 밤이 주는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만끽했다. 그들에겐 밤이 쳐주는 어둠의 장막만이 근엄한 법과 냉혹한 주인의 속박, 그리고 파렴치한 이웃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였기에 낮에 충당하지 못한 벌이를 밀수, 밀렵, 좀도둑질 등으로 보충하거나 이웃이나 동료 노예들과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실잣기, 뜨개질, 양털 다듬기, 천 짜기 등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냈다. 하루 일과에 지친 노동자들은 술과 도박으로 유흥을 즐기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디종의 길거리 난동에서 한 식기 제조업자는 불운하게도 늦게까지 일했다는 이유로 칼에 찔려 죽었지만, 제빵업자나 구두장이, 재단사들 등 일부 노동자들은 밤에도 일했다. 귀족들도 세속적인 예의범절에서 벗어나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벗어젖힐 수 있는 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고삐 풀린 욕망을 채우고 무절제한 힘을 과시했다. 학자들은 조용한 밤이 되어서야 영혼과 정신세계로의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지만, 도시의 밀집된 빈곤 지역에서는 밤마다 소란이 끊이지 않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았다. 이때와 지금과 비교하면 조명의 홍수로 밤의 짙음은 엷어졌을지 모르지만, 그 어둠 속에서 꿈틀대는 민중의 생명력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시 밤은 밤이다.

24시간 영업과 그로 말미암은 24시간 교대 근무가 보편화한 요즘에는 밤이 밤 같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밤과 낮이 뒤바뀐 삶이 일상인 사람도 많다. 그런 현대인에게 앞서 묘사한 산업 시대 이전의 밤은 방종과 무절제가 난무하는 무법지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 산업 시대 이전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익명성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뼈저리게 체험하는 현대인처럼 영악하게도 밤이 제공하는 어둠의 장막을 익명성의 장치로 이용할 줄 알았으니, 이렇게 보면 밤의 어두운 면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귀족들은 가면무도회라는 인위적인 익명의 장치를 만들어 따분한 격식과 예의범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면, 그럴 여유가 없었던 민중들은 자연이 제공해준 익명의 밤을 이용해 통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영혼과 육체를 해방시킬 수 있었다. 현대인이 겪는 가난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되고 고된 삶을 살았던 산업 시대 이전의 민중들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에게 어둠의 익명성을 제공하는 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 이전 사람들에게 태양 아래에서 펼쳐지는 지루하고 힘든 노동과 억압적인 규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일탈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밤에만 가능했다. 현대인이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분노와 불만, 억압된 충동과 감정을 발산시키면서 다소간의 위안을 얻듯 그들은 밤을 통해 그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이처럼 『밤의 문화사』에는 현대인이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경험할 수 없는, 한편으론 주류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인류의 또 다른 일상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것은 법과 규칙에 얽매인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낮의 가면을 벗어던진 인류의 또 따른 인간성이다. 그것은 주류 역사에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인류의 시커먼 민낯이며 새하얀 속살이다. 그것은 삶의 이중성과 선과 악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고발장이다. 그동안의 천편일률적인 승자독식의 반쪽 역사에 질리고 민중의 역사에 대해 칼칼한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로저 에커치(A. Roger Ekirch)의 『밤의 문화사』야말로 그 나머지 반쪽을 채워주고 의문의 갈증마저 청량음료처럼 톡 쏘면서도 시원하게 풀어줄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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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4일 일요일

[책 리뷰] 내가 변하고 우리가 변화고 문화가 변해야 미래가 있다 ~ 문명의 붕괴(재레드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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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하고 우리가 변화고 문화가 변해야 미래가 있다

원제: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by Jared Diamond
환경 훼손과 인구 과밀로 허덕이는 나라들의 문제가 세계화 덕분에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었다. (『문명의 붕괴』, 710쪽)

환경 파괴와 환경 보호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문명

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역작 『침묵의 봄(1962)』으로 농약의 위험성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문명의 발전을 이끌고 편리한 삶의 기반이 되는 석유 산업은 멀게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 가깝게는 2007년 태안반도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 등 잊을만하면 터지는 재앙에 가까운 환경 사고를 파렴치하게 저지르며 환경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인류는 문명을 지속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과도한 채굴과 벌채, 남획으로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미래 세대가 마땅히 누려야 할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시키고 유용할 자원을 허락 없이 댕겨 쓰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딴죽을 걸거나 불만 • 불평을 토로하는, 최소한 겉으로나마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소수로 전락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국토 중 30%를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제한하는 정책을 누군가 내놓는다면, 정책의 찬반 여부를 놓고 격렬한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중에는 자연보호 구역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30%는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연보호 구역 제도 없이도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개발을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30%는 너무 적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린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자연보호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도 막상 자연보호나 환경오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는 쉽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게 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거나, ‘공유지의 비극’에서 볼 수 있듯 개인, 기업엔 합리적이지만 타인이나 사회엔 잘못된 나쁜 행위에 대해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결에 외면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환경 파괴와 환경 보호 사이에서 비틀거리고 있으며, 이렇게 갈팡질팡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 시각에도 세계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우리는 이 길의 끝이 벼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눈앞의 이익을 좇아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몬다. 그 벼랑은 바로 ‘문명의 붕괴’인데도 말이다 .

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희망을 걸다

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문명의 붕괴(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에는 이스터 섬, 마야, 그린란드 등 오래전에 붕괴한 문명부터 전 지구적인 고질병의 표본 같은 르완다, 아이티 등의 현대 사회까지 환경 및 인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한 크고 작은 문명사회들의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이처럼 붕괴한, 혹은 붕괴 직전에 있는 문명들만 등장한다면 문명의 붕괴가 꼭 필연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에 아이슬란드, 이뉴이트족, 도미니카 공화국처럼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한 문명들을 제시하며 독자가 무한의 절망감에 빠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위안은 되지 않는다. 현재 상황이 ‘절체절명’으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비관적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가치관 역시 낡은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는 자신의 책 『기후전쟁(Climate Wars)』에서 이 모든 문제를 전쟁까지 치닫기 전에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문명의 붕괴』는 개인의 역량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즉, 환경오염, 기후변화, 테러, 기아 등 전 세계적인 문제들에 책임이 있는 작금의 문화와 가치관으로는 이것들을 극복할 수 없으며, 개인이 변하고 대중이 변하고 문화가 변하면서 세상이 변해야만 현재의 지속불가능한 세계에서 지속가능한 세계로 도약할 수 있다. 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인류와 문명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세계는 구닥다리 화석 연료를 소비하는 스포츠카를 여전히 과시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유명인은 대중의 손가락질 속에서 진지하게 사과하고, 탄소 발자국을 적게 남기는 주부가 알뜰 주부의 새로운 표상이 되어 찬탄의 대상이 되고, 제3세계의 번영과 공정한 세계를 위해 지금까지 누려왔던 문명의 혜택 중 일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된 제1세계 시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이다. 모든 행동에 걸쳐 진지하게 환경을 고려하고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진지하게 걱정하는 한 개인의 선택과 가치관이 개인적 취향을 떠나 대중의 선택이 되고 문화적으로도 마땅하게 여기고 권장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기업과 정치인, 정부의 가치관도 대세에 따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며 빛을 발할 수 있을 때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를 통해 내비치고 싶었던 신중한 낙관주의도 빛을 보고 더불어 인류의 미래도 빛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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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1일 일요일

[책 리뷰] 무언의 리듬에 맞추어 무형의 춤을 추며 ~ 생명의 춤(에드워드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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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리듬에 맞추어 무형의 춤을 추며 살아가는 인류

원제: The Dance of Life: The Other Dimension of Time by Edward T. Hall
한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은 다른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타당성을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명의 춤』, 276쪽)

자연이 지휘하는 ‘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

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나름대로 세계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우리가 창조한 것이며,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기층문화의 리듬과 우리의 리듬이 알게 모르게 일치하는 부분이 많기에 우리는 이 세계가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것은 내 기분과 상황, 분위기에 맞는 적절한 빠르기와 리듬의 음악을 들었을 때에 느껴지는 편안함 같은 것이다. 리듬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되는 움직임이며 사람의 생체리듬을 비롯한 계절의 순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등 자연의 모든 법칙과 생명체에는 각자 나름의 일정한 리듬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 속의 리듬이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순환될 때 생태계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즉, 자연은 안무를 지휘하고 관장하는 안무가이자 스스로 다양한 리듬을 발산하는 연주가다 . 만약 어느 생명체가 자연이 지휘하는 ‘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에 호흡을 척척 맞출 수 있다면 그 생명체는 살아남을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고 엇박자로 나가며 어색한 춤을 춘다면 그 생명체는 곧 진화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무언의 리듬에 맞추어 무형의 춤을 추며 살아가는 인류

사람의 문화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람은 자연이 지휘하는 리듬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다. 어쩌면 인류가 문화적 동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고 포근하면서도 때론 잔인하도록 격렬한 ‘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과 호흡을 잘 맞췄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인류가 창조한 문화 역시 제각기 고유한 비트 • 템포 • 리듬을 지닌 나름의 방식으로 안무되어 있다. 사람은 자신만의 생체리듬과 기층문화의 리듬이 가장 잘 합치될 때 안정감과 편안함, 만족감을 느끼며 그렇지 못할 때, 즉 자신의 생체리듬이 깨지고 기층문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사람은 긴장감, 소외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 사람이 숲 속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결코 재촉하는 법이 없는 자연의 느긋한 리듬이 사람의 생체리듬과 가장 잘 조화되기 때문일 것이며, 반대로 도시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생체리듬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적 리듬에 합치시켜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남자가 막 군대에 입대했을 때, 혹은 시골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번잡한 도시로 상경했을 때, 뭐라 말로 꼭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받는 긴장과 스트레스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켜오던 생활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 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군대에서도 나름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체리듬이 불변하는 것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변화하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생래적 특성임을 의미한다. 사람에 따라서 제대할 때까지도 군 생활을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종종 있듯이 사람의 성격처럼 생체리듬의 생래적 특성 역시 제각각이다. 보통은 자신이 태어난 지역, 사회, 국가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것은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한 문화의 리듬에만 노출된 덕분이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편안하다는 것은 비록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그 지역, 사회, 국가, 문화의 리듬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다는 말과 다름없다. 일례로 우리가 일상에서 리듬감을 가장 명확하게 느끼는 것은 합창하거나 춤을 출 때이며(박치나 몸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 곁에 있는 사람은 리듬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아주 절실하게 느낀다), 사회생활에서는 누군가와 손발을 맞춰 함께 일을 진행할 때이다(같은 일을 해도 호흡이 잘 맞는 사람하고 일을 할 때는 실타래가 풀리듯 쉽고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되며, 작업이 끝나도 별로 피로하지도 않다. 반면에 호흡이 잘 안 맞는 사람과 일을 하면 평소보다 힘은 더 들지만 일의 진척은 매우 더디다). 재미있는 것은 폴리크노닉한(polychronic) 여자가 모노크로닉한(monochronic) 남성보다 일상에서 리듬감을 더 중요시하고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랜 세월 함께 지낸 부부의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서 부부생활의 리듬을 깼을 때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낸다. 아내는 남편이 요즘 뭔가 평소와 달라졌다는 의심으로써 부부 생활의 리듬 변화를 자신도 모르게 눈치챈다. 마지막 예로 축구 같은 구기 스포츠는 리듬의 중요성이 팀워크로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2014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축구가 예전만 못하다 평가를 받는 것도 다름 아닌 ‘삼바 축구’의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다.

‘문화의 몰이해’가 불러올 재앙

화의 속성은 리듬만이 전부가 아니다. 숨겨진 언어로서 기능하는 공간과 시간이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리듬은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한 방법일 뿐이다. 또한, 시간 체계는 모노크로닉한 시간과 폴리크로닉한 시간으로 나뉠 수도 있다. 소통이 이루어질 때 맥락의 한 기능으로서 고맥락과 저맥락을 들 수도 있다. 이외에도 우리의 세계관을 규정하고 가치를 결정하며 생활의 기본적 템포와 리듬을 설정하는 숨겨진 문화의 속성과 문법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를 전혀 또는 지엽적으로밖에 의식하지 못한다.

에드워드 홀은 ‘문화인류학 4부작’ 중 그 네 번째인 『생명의 춤(The Dance of Life: The Other Dimension of Time)』에서 이 숨겨진 패러다임을 기층문화(PLC: primary level culture)라고 부른다. 기층문화는 우리의 사고패턴을 결정하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일련의 기초 전제를 부여하는 핵심 요소다. 그런데 만약 사람과 그들이 만든 사회가 앞으로도 여전히 표면적인 문화만을 인식하고 저변을 이루는 기층문화를 회피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폭발과 폭력뿐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4부작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인 ‘문화의 몰이해’가 불러올 재앙이다 . 『생명의 춤』이 출판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도 그의 걱정은 전혀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끊임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테러와 종교적 근본주의, 전쟁, 기후난민, 민족과 인종 문제 등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았다.

마치면서...

모든 위협의 근간을 흐르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주의,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 성장 지상주의 등 21세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과 문화, 그리고 서로 다름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일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발전했다고 해서 그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제국주의적 논리 때문에 많은 원주민이 학살당하거나 멸종되고, 여러 국가가 식민주의적 고통의 늪에 빠져 역사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잔혹한 논리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한 사람을 가늠하고 판단하는 기본 척도가 되는 이 경박한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을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잣대를 사용해 막무가내로 재단해 버리거나, 돼먹지 않은 마음으로 무시하고 얕보고 경멸한다. 범죄율은 증가하고 사람의 목숨은 이제 충분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무엇이 이 사회를 이토록 비참하고 척박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회복과 그 회복력을 결정하는 문화의 속성과 관련된 것은 않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문화에 대한 몰이해야말로 우리가 타파해야 할 무지 중의 무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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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책 리뷰] 굴원의 영혼이 남긴 발자취와 숨결 ~ 장강을 떠도는 영혼(선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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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의 영혼이 남긴 발자취와 숨결

때문에 굴원이 “인류가 오랫동안 신봉해 왔던 원시의 오해를 깨트리고 어둠 속에서 횃불을 쳐든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다지 과장은 아니라 할 것이다. (『장강을 떠도는 영혼』, 186쪽)

원(屈原)이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을 때 강변 근처에서 살던 사람들은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각자 집에서 쌀이며 밥을 들고 나와 강에 뿌리면서 입과 마음속으로는 이것을 먹고 제발 충신의 몸만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강에 사는 고기들에게 빌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테지만, 이후 매년 굴원이 세상을 하직한 단오절이면 멱라강 일대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쫑즈(粽子)를 만들어 강변에 던지면서 모두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다시 한번 물고기들에게 충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된다. 비록 무지렁이 백성일지라도 굴원의 변치않는 충정과 진득한 백성사랑, 그리고 한결같은 숭고한 품성에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감동과 존경의 뜻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중국문화 최초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굴원은 단순히 이름뿐만 아니라 변함없는 충정, 진실을 추구하는 탐구정신, 속세에 물들지 않는 곧은 품성, 추하고 타락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불굴의 저항,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고결함을 남겼다.

그가 걸어간 아침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행적과 그 곧디곧은 곧음을 우러러보며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어느새 날은 저물고, 그가 남긴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태초의 자연처럼 아름다운 문장에 도취하여 밥 먹는 시간도 잊었다. 능히 그의 문장은 사람을 홀리게 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술잔 가득 잠긴 술이 넘치는 것을 잊게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 젓가락질하는 것을 잊게 한다. 능히 그의 기백은 사람을 전율케 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술잔 가득 잠긴 술이 넘치는 것을 잊게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 어느새 물을 머금은 한지처럼 양 두 눈을 촉촉이 적시며 흐르던 눈물은 술잔 속으로 떨어지며 미세한 물결을 남기고, 두 줄기 눈물 자국이 선명한 얼굴은 감동에 복받쳐 환희에 젖는다. 독자는 굴원의 영혼이 남긴 묵직한 발자취와 향긋한 영혼의 숨결을 『장강을 떠도는 영혼(굴원 평전)』에서 조금이나마 느껴보기를 바란다.

과 종이를 벗 삼아 옛 성현을 노래하고 그리워하며 현실의 부조리에서 받은 울분과 분노로부터 자신을 위안하던 굴원의 죽음은 또 한 명의 성현을 탄생시켰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비장한 굴원의 시는 꼭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접목시키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바닥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물처럼 바짝 마른 감성을 자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인스턴트 식품처럼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지나치게 탐미적인 무절제한 현대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아스러우면서도 청초하고 단아한 굴원의 작품은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현대인의 황폐해진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훌륭한 영혼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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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책 리뷰] ‘털북숭이 아가씨’와 함께 떠나는 고인류학 여행 ~ 루시 최초의 인류(도널드 조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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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북숭이 아가씨’와 함께 떠나는 고인류학 여행

원제: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 by Donald Johanson, Maitland Edey
다소 거창한 꿈일지 모르지만, 산 너머를 볼 수 없을 때에는 얼마든지 큰 꿈을 꿀 수 있다. (『루시 최초의 인류』, 165쪽)

씨 40도는 우습게 넘어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문명으로 둘러싸인 삶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적 속에서 흙먼지 풀풀 일어나는 건조한 땅바닥을 넝마주이가 바닥에 떨어진 돈이라도 찾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볼일이라도 보듯 쭈그리고 앉아 마치 흙 알갱이를 하나하나 새듯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 정말 금이라도 캘듯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금은보석보다 더 귀중한 인류의 자산을 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로 과거를 캐내어 인류의 진화 경로를 밝혀내는 고인류학자들이다.

이 책 『루시 최초의 인류(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는 인류의 화석을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인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지질 구조와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난관을 헤쳐가면서 호미니드 화석 발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루시(LUCY,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발견해 낸 역경의 과정과 루시의 화석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인고의 연구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보고서다. 더불어 루시 발견 이전의 고인류학 역사와 루시가 발견된 시기 전후에 펼쳐진 인류 기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맛깔스럽게 곁들어져 있다.

편, 모든 고인류학자는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지만, 명예와 이권을 놓고 벌이는 다른 분야의 치졸한 경쟁처럼 학자들 사이에도 발굴 권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닌 무작정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비난, 루시를 발견한 저자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시기와 질투 등 뒤얽힌 지질 구조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학계 이면의 추악한 측면도 담겨 있어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보통 사람보다 많이 배우고 책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 인간적인 면이나 변화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성공을 향한 탐욕과 자신의 지식과 믿음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은 때론 많이 배운 것만큼이나 지독하기도 하다. 학계의 어두운 면을 보면 인류를 위한 사심 없는 진정한 과학자가 과연 존재할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무튼, 『루시 최초의 인류』를 읽다 보면 루시를 발견한 덕분에 신출내기 청년 학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저자 도널드 조핸슨의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면서도 우쭐해 하는 모습이 종종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볕조차 가소롭게 느껴지는 인류학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한다. 그리고 고인류학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고로 독자는 루시의 발견으로부터 해석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발굴 작업과 기나긴 연구 과정을 수면제가 따로 없는 따분한 학술적 어조로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독자는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어느 영화에도 빠질 수 없는 미녀(?) 주인공으로서) 털이 복슬복슬한 루시 아가씨를 옆구리에 끼고, 또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방의 감초인) 악당과 마주친 절박한 위기 상황도 아슬아슬하게 모면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부담없이 떠나면 된다. 그만큼 『루시 최초의 인류』는 자칫 딱딱하게 늘어질 수 있는 학문적 글들이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저술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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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책 리뷰] ‘테러’ 속의 일상과 ‘질서’에 대한 염원 ~ 나치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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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속의 일상과 ‘질서’에 대한 염원

원제: Volksgenossen und Gemeinschaftsfremde: Anpassung, Ausmerze und Aufbegehren unter dem Nationalsozialismus by Detlev Peukert
우리는 파쇼의 역사를 경험함으로써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 자신과 다른 의견 및 다양성에 대한 기쁨, 낯선 것에 대한 존중, 혼란스러운 것에 대한 관용, 종말론적인 총체적 신질서의 실현 가능성과 소망스러움에 대한 회의, 사회적 유용성에 대한 자신의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타인에 대한 개방성과 학습 능력 등이 그것이다. (『나치 시대의 일상사』, 381-382)

‘작은 사람들’의 경험으로서의 ‘일상사’

직 패전의 절망적인 먹구름이 독일을 뒤덮기 전, 히틀러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담은 기록 필름이나 사진에는 히틀러의 선동적인 연설에 온몸과 온정신을 맡긴 채 신들린 듯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부는 그저 흥분된 분위기에 덩달아, 일부는 재미와 호기심 때문에,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차마 거스를 수 없어 마지못해 열광하는 척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중 상당수가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히틀러와 나치를 믿고 지지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랬기 때문에 아우슈비츠행 마지막 열차는 정확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

나치즘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이론은 폭력, 테러, 감시 등의 나치 국가의 억압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에 대중이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 보통의 역사학처럼 당하는 사람들, 즉 ‘작은 사람들’의 경험은 도외시한다. 두 이론 모두 나름대로 정당하고 나치즘에 대한 부분적 통찰을 전달해주기에 일상사에 초점을 둔 연구에 의해 대체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상사에 대한 연구가 앞의 두 이론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는 숲 전체를 보고, 또 하나는 나무를 살핌으로써 서로 부족한 부문들을 보충할 수 있는 나치즘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 시도는 기존 연구에서 얻지 못했던 다양한 이해와 깊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한다.

질서를 생산하려는 현대적 시도의 결과물로서의 폭력

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시대의 일상사(Volksgenossen und Gemeinschaftsfremde: Anpassung, Ausmerze und Aufbegehren unter dem Nationalsozialismus by Detlev Peukert)』는 제3제국의 억압 메커니즘이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작동했지만, ‘작은 사람들’의 비정치적이고 사적인 부분까지 전부를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들의 불평 • 불만은 수시로 지역 나치 조직에 보고되었고, 첩자들에 의해 국외로 망명한 사민당 지도자들에게도 보고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평 • 불만은 체제 전복을 기도하거나 데모를 벌이는 등의 적극적인 저항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비판이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체제에 대한 암묵적 동의와 공존하고 있었고, 그 동의는 다름 아닌 삶의 정상성, 즉 일자리와 질서라는 기초적 욕구 위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 제3제국이 많은 노인의 기억 속에 두 가지 업적, 즉 당시에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문 앞에 세워 둘 수 있었다는 것과 당시에는 장발(長髮)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것으로 기억되었듯, (한국의 노년층이 박정희 시대나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를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나치는 소위 직업 범죄자들과 반사회적인 집시들과 상습적인 동성연애자들을 수용소에 장기 수용함으로써 인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나치가 정적들을 고문하고 잡아 가두는 것을 비판했던 사람들도 그것을 지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나치시대의 일상사는 질서를 요구하는 국민의 외침에는 위로부터의 테러에 대한 적극적 혹은 수동적 동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는 자신의 저서 『기후전쟁(Climate Wars, 윤종석 옮김, 영림카디널)』에서 인종청소와 민족말살이 현대성의 골목길로부터의 일탈현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사회발전들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가능성 그 자체로서 생성되었고, 질서를 생산하려는 현대적 시도의 결과물로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느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현대적 시도들이 낳은 결과물 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나치 체제에 대한 합의는 종종 언급되는 대로 나치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테러가 ‘공동체의 적들’을 겨냥하는 한, 그리고 그로써 소위 ‘질서’ 재건에 이바지하는 한 테러에 정서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었다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데틀레프 포이케르트(Detlev Peukert)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작은 사람들’과 ‘지배 권력’의 합의점 ‘질서 유지’

‘일상사’에 대한 연구는 지배 체제, 지배 집단, 억압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파시즘과 전체주의 이론으로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들, 즉 아우슈비츠와 파쇼의 테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어찌하여 그것이 감내되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지지를 받기도 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를 마련해줌으로써 체제에 대한 지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종류의 일상적 태도와 기대가 ‘총통’의 그럴싸한 성공에 대한 환호로 이어졌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굵직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한마디로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나치즘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통찰을 가능하게 해준다.

911테러 이후 서구 사회에서 제안된 각종 대테러 정책들을 보면 현대화된 시민이라도 질서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동안 부단한 노력과 희생으로 어렵게 쟁취한 자유를 기꺼이 국가에 헌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삼청교육대가 자행될 수 있었던 이유도 질서를 염원하는 국민의 적극적 • 수동적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정부는 ‘질서 유지’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질서가 내포하는 의미와 목적, 그것을 획득하는 수단에 대해 ‘작은 사람들’과 ‘지배 권력’ 사이의 이해와 욕구는 서로 모순적으로 작용할지라도 질서는 현대 사회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작은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위한 질서를 유지해줄 정부를 지지하고, 정부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홀로코스트는 ‘작은 사람들’과 지배 체제가 ‘질서 유지’라는 하나의 합의된 목표를 도출했을 때, 그리고 ‘질서 유지’가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극단적으로 추진되었을 때 결과될 수 있는 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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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책 리뷰] 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 물의 세계사(스티븐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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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문제, 물

원제: 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by Steven Solomon
근대 세계의 참을 수 없는 갈증, 산업 기술의 발전, 그리고 60억에서 90억으로 향하는 인구 증가 같은 요소 때문에 현재의 관행과 기술로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깨끗한 물의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물의 세계사』, 10쪽)

생명과 문명의 토대, 물

명은 물이고 물은 곧 생명이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채워져 있고, 우연인지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인지 신의 섭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70%가 물이다. 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인류는 비옥한 삼각주와 범람원에 정착함으로써 문명의 싹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문명은 강의 유량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매년 되풀이되는 범람과 홍수의 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기근과 풍요를 겪었다. 기근이 닥칠 땐 왕조가 쇠퇴하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으며, 풍요로울 땐 국경이 확장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문명은 물의 흐름에 따라 확장과 쇠퇴를 거듭하였다. 강의 유량을 통제할 수 있는 관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문명들은 하류에서 상류로 이동하면서 수원지를 장악할 수 있었고, 이렇게 최적의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 쪽으로 정치권력의 무게 중심도 이동했다. 수원지를 확보하고 지속적인 관개 기술의 혁신과 확장으로 안정된 물 공급을 확보한 정부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고, 안정된 기반 위에서 문명은 탄력을 받아 역사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 또한, 인류는 물을 항해에 이용함으로써 운송과 상업을 통한 시장 경제적인 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물레방아, 더 나아가 증기기관의 발명, 다목적 댐 건설 등 물을 산업적인 힘으로 전환하고 더불어 위생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경이로운 발전에 도달했다.

최후의 통첩 앞에 선 물 위기

류의 존속뿐만 아니라 문명이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은 앞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물 공급이 수요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정점을 지났다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신호는 이미 중동, 아프리카에서 물을 사이에 둔 폭력 사태로 현실화됨으로써 인류의 장래를 더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 비단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인구의 37%를 차지하면서도 담수량은 11%에 불과한 중국과 인도가 물 위기를 극복하지 못해 주요 곡물 수출국에서 주요 수입국으로 처지가 바뀐다면 세계 곡물 가격을 급격히 상승시키고, 가뜩이나 만성적인 물 부족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는 세계 인구와 세계 인구 증가 속도보다 두 배 이상 빠른 물 사용량 증가 속도, 그리고 물이 에너지, 식량, 기후변화와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최후의 통첩 앞에 선 셈이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인류가 위기 때마다 놀라운 혁신과 의지로 위기를 극복하고 그 탄력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유지해 온 것처럼 현재의 물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다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거 코페르니쿠스의 발견, 르네상스 등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며,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물 혁명을 주도한 국가는 세계질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설 것이다.

누구는 펑펑 쓰지만, 누구는 한 모금에도 허덕이게 하는 물

국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바이두에 로그인하면 건강을 위해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시라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가정집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8잔이 아니라 욕조도 한가득 쉽게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하루 8잔 마시기가 쉽지 않다. 건강해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고 물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단지 물 마시기가 귀찮아서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교육과 생산적인 일을 포기하고 대신 매일 수 킬로미터를 걸어서 그날그날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길어야 한다. 11억이 하루 생존에 필요한 최소 식수도 구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11억은 이들보다 열 배 이상이나 많은 물을 사용한다. 누군가는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 생수통 뚜껑을 열어, 혹은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마시지만, 누군가는 한 모금이 없어 갈증에 허덕인다 .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물과 관련된 문제는 다른 자원보다 특별한 위치에 있으며 그만큼 해결도 쉽지 않다. 물은 석유, 가스, 철, 석탄 같은 저장이 가능한 천연자원들과는 달리 풍족한 국가들이 아껴쓴다고 해서 부족한 국가로 쉽게 돌릴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1인당 최소 필요량도 다른 자원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석유처럼 운송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만능 해결법은 없다, 그러나

늘 소개하는 책 『물의 세계사(Water: the epic struggle for wealth power and civilization)』 저자 스티븐 솔로몬(Steven Solomon) 역시 물 부족이라는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단 하나의 만능해결책은 없으며 어떠한 선행 모델이나 제도적 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일을 해 나가면서 풀어야 한다 고 설명한다. 즉, 국가 간 혁신적인 물관리 기술은 공유하면서 각각의 국가는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리적 조건들에 맞게 최적화된 물관리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진행하며 전 지구적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어느 정도 체계적인 물관리 기술을 확보하고 현실 적용에 성공한 선진국들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물 부족을 겪고 온 저개발 국가나 빈곤국가들엔 엄청난 부담이다.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물 부족 국가들은 최후의 위기에 닥치면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돌발적인 전쟁을 일으킬 소지도 다분하다. 이는 곧 세계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만능 해결법은 없을지라도 세계 공동체가 누구나 하루에 필요한 최소량의 깨끗한 물을 누려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믿음에서 물 위기를 바라본다면, 그리고 우리의 도덕성, 지성과 인류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물 위기는 전 인류가 하나의 구심점으로 새 문명, 새 시대로 도약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물이 공기처럼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신과 자연이 인류에게 내린 최후의 시험대일 수도 있다 .

마치면서...

대를 시작으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모든 시대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방대함에 놀라고, 이렇게 방대한 세계사를 다룸에도 세밀함을 놓치지 않았다는 치밀함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이 흐른 자국에 스며든 인류의 피와 땀은 고스란히 인류의 문명으로 피어났고, 그것을 기록한 책 『물의 세계사』는 독보적인 사서다. 사람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사람이며 인류의 정치와 권력 투쟁, 자원 경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의 근원에는 물이 흐르고 있으니, ‘물이 세계사’는 곧 ‘인류사’이기 때문에 인류의 부단한 문명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겐 스티븐 솔로몬의 『물의 세계사』는 필독서이며, 현재의 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에겐 이 책의 한 장 한 장이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필요한 지적 거름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조언자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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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6일 화요일

[책 리뷰]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 30년 전쟁(웨지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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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 역작

원제: The Thirty Years War by C. V. Wedgwood
이 암울한 전쟁은 편협하고 비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고위직에 있을 때 어떤 위험과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30년 전쟁(1618-1648)』, 7쪽)

30년 동안이나 지속된 전쟁

틀러 같은 미치광이는 없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집요한 의도나 음흉한 음모로 전쟁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간헐적으로 30년 동안이나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났다 .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고 독일 제국의 문명은 몇 세기나 뒤로 후퇴했다. 도덕과 경제가 무너지면서 사회는 타락했고,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농부들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전쟁이었고 유럽과 독일의 다수는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전쟁을 막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일찌감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불러올 정도로 강한 의지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을뿐더러 평화보다 개인적 사심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평화를 바라는 이중적인 정책으로 세상과 자신을 기만했다. 그 결과 전쟁은 3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전쟁을 가장 반대했음에도 가장 큰 피해를 본

1618년 프라하에서 일어난 신교도의 반란이 30년 전쟁의 서막이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혹은 짐작했더라도 과연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을까? 빈곤, 정치 불안, 종교 분열, 이해관계의 충돌 등 전쟁에 불씨를 댕길 화약고들이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고위층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그들의 무능력을 증명했고, 성숙하지 못한 여론과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못했던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키는 것 외엔 고통을 표출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전쟁은 필연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의 기나긴 시련의 고통을 견디어냈음에도 민중은 자유를 얻지 못했다. 1631년 틸리의 제국군에게 함락당한 마그데부르크는 주민 3만 명 가운데 약 5천 명만이 살아남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용병들의 만행은 ‘마그데부르크의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불명예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했으며, 역사 추리소설 『거지왕』(올리퍼 푀치, 김승욱 옮김, 문예출판사)에서는 주인공 야콥 퀴슬의 회상을 통해 털끝만큼의 인간성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처참함의 현장을 재현한다.

화약 냄새,다친 사람들의 비명,죽은 사람들의 텅 빈 눈. 그는 양손 검을 들고 전장을 행군하며 그 시체들을 짓밟는다. 그들은 열흘 동안 마그데부르크를 포위했는데,이제 틸리가 공격을 명하고 있다. 공병들이 세운 장벽 뒤에서 무거운 대포가 포효하고,커다란 포탄들이 성벽을 부순다. 야콥과 용병들은 고함을 지르며 거리를 달려 누구든 마주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 남자,여자,아이……. (『거지왕』, 173~174쪽)

전쟁을 반대했음에도 그 피해를 숙명처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면서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던 민중들과는 달리 독일 지배자 중 그 누구도 집을 잃고 한겨울 추위에 나앉은 사람도, 입에 풀을 문 채 죽은 사람도, 아내와 딸이 성폭행을 당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무정한 눈에 간혹 비친 민중의 고통은 한번 혀를 차고 넘어가면 그만인 불편한 구경거리 중 하나였을 뿐이다. 전쟁을 통해 겪는 아픔과 슬픔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격한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니 이로써 민중은 두 번 죽는 셈이다. 여기에 역사가마저 민중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세 번 죽는 셈이다 .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은 역사가가 전쟁을 기술하면서 개인적 고통이나 희생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응당 따르는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취급하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전쟁을 가장 반대하고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정작 전쟁과 관련된 정책에는 가장 영향력 없는 다수를 희생양으로 전쟁이 치러짐에도 역사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현실에서도, 역사에서도 외면받는 이들은 그저 통계 수치에 들어가는 인격도 개성도 없는 숫자놀이의 장난감일 뿐이다. 이런 역사가들의 냉정함과 몰인정함에 질렸다면 『30년 전쟁(1618-1648)(The Thirty Years War)』을 통해서 다소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C. V. 웨지우드(C. V. Wedgwood)는 정책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 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30년 전쟁(1618-1648)』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선제후, 군주, 황제, 왕 등 30년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쟁의 실마리를 풀어가면서도 웨지우드의 날카로우면서도 인간적인 눈썰미와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는 명징한 귀는 민중의 고통과 외침마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끌어올린다.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을 떠올리게 하는 엄밀함,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에 버금가는 명철함이 돋보이는 이 책에서 우리는 역사의 냉혹함을 읽고 민중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저자가 주창한 역사의 중요한 교육적 목적에 백기를 들게 된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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