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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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 이 책을 선택하지 않는 당신은 무뇌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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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 이 책을 선택하지 않는 당신은 무뇌충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러한 결과를 반복하거나 영속시키기보다는 변화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살인자나 강간범의 심리를 이해하려 하고, 사회 역사학자들은 대량 학살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 하고, 의사들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자들은 결코 살인, 강간, 종족 학살, 질병 등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그 같은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자 한다. (p20)

‘지겨운 사실들을 따분하게 나열한’ 역사? No!

사람들이 역사와 관련된 책을 꺼리는 이유 중 가장 큰 하나는 지겨운 사실들을 따분하게 나열한 대표적인 수면서(睡眠書)인 교과서나 대학 교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지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저자가 재미없고 지루하게 글을 썼기 때문이다. 즉, 교과서나 대학 교재를 비롯한 역사책이 재미없다면, 그것은 (『총, 균, 쇠』의 ‘추천의 말’이 그러한 것처럼) ‘지겨운 사실들을 따분하게 나열한’ 저자의 무능력과 무성의함을 탓해야지 애꿎은 역사학을 걸고 넘어가는 것은 무지의 발로일 뿐이다.

이것은 조금만 상상해봐도 자명한 일이다. 죽 끓는 듯 변덕스럽고 놀부 심보처럼 탐욕스럽고 연쇄살인마처럼 뻔뻔한 인류가 이권이나 자원을 두고, 혹은 이념과 사상의 차이로 서로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며 우당탕 살아온 일들을 탐구하는 역사가 어떻게 지루할 수 있겠는가! 이것의 편협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TV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유치한 다툼이나 치졸한 경쟁, 그리고 시답지 않은 애정행각에도 열을 올리며 시청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은 보편적으로 (거시적인 인류사든, 미시적인 개인사든) 역사에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지능적 동물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몇몇 형편없는 역사책들이 사람들에게 역사를 주제로 한 책들은 모두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그릇된 편견을 심어준 것 같다.

감히 이 자리를 빌려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잘 쓰인 역사책은 그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재밌고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상업주의의 산물이 선사하지 못한, 아니 선사할 수 없는 지적 충만감과 지적 뿌듯함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다. 저질 드라마라 삼류 소설에 심하게 중독된 무뇌충이 아닌 이상, 일말의 지적 호기심이 아직 회색 뇌세포 속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광범위한 경향들이 존재하는 역사와 그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탐구 과정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역사적 체계들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그 어떤 추리소설로도 풀어내지 못한 미스터리와 다를 바 없으며, 그것에 숨겨진 심오함과 진중함과 진실함은 그 어떤 철학자도 풀어내지 못한 화두와 다름없다. 또한,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흥미를 일으키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차원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일도 될 수 있다. 다만, 그 ‘생산’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느냐에 따른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여러모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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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 Aude / CC BY-SA>

좋은 질문이야말로 완벽한 미끼이자 좋은 책의 출발점

나의 이런 어설프고 조야한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씨가 먹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같은 역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적 글쓰기가 불가능했다고 오인했던 역사학에 생태학, 진화 생물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언어학, 고고학, 생태지리학 등의 다양한 과학 분야를 매끄럽게 접목한 이 책은 역사가 지루하다는 케케묵은 편견부터 역사는 비과학적이라는 경멸적인 편견까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특급 구원 투수 같은 존재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다른 저작인 『제3의 침팬지(The Third Chimpanzee)』나 『문명의 붕괴(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역시 엄밀하고 엄격하고 논리적인 과학성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춘 훌륭한 과학적 글쓰기의 모범적인 저작들이다.

『총, 균, 쇠』 같은 경우 시작부터 독자의 모든 뇌세포를 완전가동시키며 흥미와 집중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책이 냅다 던진 미끼 하나 때문이다. 굶주린 하이에나 앞에 놓인 동물 사체만큼이나 매혹적이고 맛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문외한이나 호기심의 불씨가 간당간당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좋은 책의 출발점이다. 그런 면에서 백치가 아닌 이상 반드시 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타고난 조련사이자 낚시꾼이다.

아무튼, 인류의 역사나 사회에 아주 쪼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덥석 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자극적이면서도 인류사에 꼭 필요한 질문이기도 한 그 미끼의 기원은 무려 지금(2020년)으로부터 48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조류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로서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을 거닐고 있었던 1972년 7월에 그는 그 지역에서 명망 있는 카리스마적인 정치가 얄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얄리가 재레드 다이아몬드에게 느닷없이 던진 짧으면서도 인류사를 샅샅이 훑는 함축적인 질문이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 p15)

얄리의 질문을 좀 더 보기 쉽게 풀어 쓰면 이런 것들이다.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왜 신대륙의 아메리카인들은 구대륙을 점령하지 못했을까?‘, ’왜 기술은 각 대륙에서 그처럼 판이하게 다른 속도로 발전했을까?‘, ’각 인종 사이의 바뀌기 어려운 지위 차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했던 중국이 왜 유럽에 뒤처지게 되었을까?‘ 등등.

얼핏 들으면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말을 꺼내면 다음 말들이 쉽게 이어지지 않는, 마치 불교의 선승들이나 주고받을법한 화두처럼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아리송한 질문들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대륙별 문명의 발전 속도의 차이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온전하게 다루지 못했던 하나의 경향을 탐구함으로써 역사의 인과관계를 전 세계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얄리의 짧은 질문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머릿속을 무려 25년간이나 휘젓고 다니며 진득하게 눌러앉았을 정도로 강렬했고,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학자라면 거부하기 어려운 무언가였나보다. 결국, 그는 인류사의 한 획을 긋는 명쾌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오직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에 모두 통달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얄리의 질문에 대답한 셈이 되었으니 정말 오지게도 성실하고 끈기 있는 학자다.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다

지구상의 지역마다 역사의 진행이 판이하였고, 그 밑바탕에는 서로 다른 문명의 발전 속도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또 그 밑바탕에는 서로 다른 기술의 발전 속도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구대륙의 아메리카인들이 신대륙으로 쳐들어가 정복하지 못하고 그 반대가 된 이유가 기술적 차이라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 직접적 원인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총, 균, 쇠’라고 주장하면 요점을 정확하게 잘 찔렀다며 칭찬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무엇이 ‘총, 균, 쇠’라는 차이점을 만들어냈을까?’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얄리의 핵심 질문이자 대륙별 문명의 발전 속도 차이의 궁극적 원인을 밝히려는 이 책의 원대한 포부를 알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놀랍도록 간단명료한 해답을 밝히기 전에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만약 인류사에 심취한 면접관이 당신에게 앞서 제기되었던 질문들을 뜬금없이 던진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면접이라는 긴박한 상황, 여기에 예상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난제가 촉발한 당황스러움이 더해져 당신의 지각 활동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그와 동시에 바보처럼 멍하니 있지 말고 어떻게든 대답하라는 압박감이 걷잡을 수 없이 당신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럴 때 사람은 실수하기가 쉬운데 왜냐하면 그럴듯하면서도 떠올리기 쉬운 대답을 찾다가 자기도 모르게 망언을 늘어놓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경황 없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톡 튀어나올 수 있는 대답 중 하나가 아마도 유전적 차이, 즉 생물학적인 차이,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인종 간의 지능 차이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매우 분명한 인종 차별적인 대답이다.

물론 매우 편협하고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갖춘 일부 사람들은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야말로 대륙별 문명의 발전 속도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가장 궁극적 원인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렇게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장황하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마뜩잖게 생각한다.

48년 전 얄리가 던진 질문에 대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답 역시 인종주의자들의 대답만큼이나 간결 명확하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단지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수많은 자연 발생적인 사례를 통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임을 과학적으로 논증할 뿐만 아니라, 유전학만으로는 입증하기 어렵다면 언어학으로, 언어학으로도 입증하기 어렵다면 고고학으로 입증하는 등 웬만한 박학다식함으로는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다중 학문 검증’ 방법을 통해 검증의 검증을 거듭한다.

환경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문명의 운명도 바뀐다

사정이 이러하니 유리에 간 실금만큼이나 반박할 틈이 없으며, 좀비 같은 무뇌충이 아닌 이상 인류 미래사의 판도를 뒤바꿔놓을 가능성이 농후한 대담한 논지에 이해당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류 미래사의 판도를 뒤바꿔놓을 것인가? 그것은 생태계의 풍부함이 그곳을 기반으로 사는 문명의 부흥으로, 생태계의 파괴는 그곳을 기반으로 사는 문명의 몰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앞으로의 기후변화가 일으킬 전 지구적인 생태계 변화가 가져올 여러 문명의 엇갈린 희비극을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문명화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지르면서 힘의 중심은 지중해 동부에서 차츰 서쪽으로 이동했다. B.C. 2 세기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힘의 중심은 서쪽으로 더 이동했고,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다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현재 북유럽과 서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았던 민족처럼 자기 파괴적인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더 현명해서일까? 아니다. 이들은 단지 좀 더 나은 생태 환경을 얻는 행운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타고난 행운을 무한리필 서비스라도 되는 양 오해한 채로 생태계 파괴에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들 역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았던 민족이 걸어갔던 몰락의 길을 가게 될 것은 자명하다.

생태계 파괴로 힘의 중심을 다른 민족에게 넘겨줘야 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한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 즉 보수적인 황제의 독단으로 기술적 우위를 유럽에 넘겨주고야 말았던 중국의 역사는 현대 세계에 유익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즉 상황은 변하는 것이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교훈이다.

중국의 분열, 과연 반길 일인가?

여기서 한국인의 눈과 귀를 번득이게 할 만한 주제가 하나 튀어나오는 데 그것은 바로 중국과 유럽의 경쟁에서 중국이 정치적 • 기술적 우위를 유럽에 빼앗긴 근본적 원인을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에서 찾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재기발랄한 착상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럽은 ‘최적 분열 원칙’에 들어맞는 적절한 분열 덕분에 제 살 깎아 먹기식의 배타적인 경쟁이 아니라 상호이익적인 경쟁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상호발전적인 관계를 거듭하며 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통일된 중국은 진화심리학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보수적인 경우가 많았던 황제의 독단으로 혁신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폭군의 등장으로 뒷걸음질 쳤던 때도 있었다(내 생각엔 마오쩌둥의 혁혁한 사회주의 실험이 중국을 파괴와 혼돈의 늪으로 물고 늘어지지 않았더라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뒤를 잇는 빠른 출발을 보인 중국은 독자적으로 문자, 종이, 나침반, 외바퀴 손수레, 철기 등을 발명하는 등 중세 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의 기술을 선도했다. 이 역시 생태학적으로 덜 취약한 환경이라는 타고난 지리적 이점이 작용했던 결과다. 하지만, 중국은 15세기 초 세계를 선도했던 항해술, 제해권 등을 정치적인 착오로 포기했다. 중국은 통일되어 있었기에 그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많았던 조선소가 한순간의 결정으로 모두 사라지고, 그와 함께 관련된 기술들도 모두 사장되었다. 만약 이때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어딘가에는 그 기술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런 만큼 훗날 다시 기술이 복원되고 그 기술을 발전시킬 가능성도 분명히 남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어떻게든 중국을 깔아뭉개고 싶은 부질없는 마음에, 혹은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시기심에 중국이 사분오열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중국의 분열이 반드시 중국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중국의 분열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언급한 ‘최적 분열 원칙’에 들어맞게 된다면 중국의 분열은 최근의 고도성장이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는 3명뿐이지만, 만약 중국이 분열되어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으로 다양성을 갖춘 연합국가가 되었다면, 노벨상 수상 전 중국 국적의 수상자 3명과 해외 한족 수상자 4명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자신들의 학문적 자유성을 보장해주는 분열된 중국의 어느 한 곳에서 활동했을 것이다. 유럽 어느 왕국에서 쫓겨난 발명가나 과학자가 이웃 왕국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래도 중국이 분열되기를 원하는가?

끝으로 한국인의 눈과 귀를 번득이게 할 만한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먼 이웃 나라 일본인의 유래에 대한 논문이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이 B.C 400년경에 한국에서 유입된 이주자의 후손이라는, 일본인에게는 매우 끔찍하게 들릴 테지만, 한국인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큼 반가운 가설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어떠한 가설을 지지하고, 그것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논증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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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향후 인류가 평화적이고 공정한 번영을 추구한다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후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국가의 발전 수준은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상위 수십 개 국가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 수준 등이 엇비슷해지고, 세계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가치관과 지식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또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을 영구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상호 존중하는 협력체제가 유지된다면 정치 • 군사력의 영향력도 지금보다는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후에는 무엇이 국가 경쟁력을 판가름하게 될까?

이전까지는 동식물의 가축화 • 작물화의 성공과 유지, 그리고 기술과 발명품의 확산을 가늠하는 지리적인 이점이 서구 사회가 힘의 중심을 차지하는데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많은 국가의 발전 정도가 상향 평준화될 미래에는 지식 경쟁력, 즉 창의력이 국가 경쟁력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창의력의 바탕은 생각하는 힘인 사고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보편적인 방법은 바로 독서다. 육체 운동이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독서는 뇌를 단련시키고 그럼으로써 사고력을 키운다. 반면에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예능 같은 오락 프로그램은 사고력을 퇴화시키는 주범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시청할 수 있도록 방송 수준을 가장 낮게 잡는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무난하게 시청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하물며 이러한 저질 프로를 오랫동안 시청한다면 그 사람의 뇌는 당연히 낮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보디빌더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울퉁불퉁한 근육이 물렁물렁해지는 것처럼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저질 프로를 오랫동안 시청하게 되면 그 사람의 뇌세포는 비명횡사하고 사고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고로 책을 읽지 않는, 그러면서도 TV 시청률이 높은 국민에겐 미래는 없다.

마치면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는 6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이 아쉽고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지적 편력과 그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는 지적 통찰력이 그 어떤 역사책보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핵심 중 하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던지는 인류 문명의 모든 역사를 꿰뚫는 질문 자체가 그 답을 듣기 전까지 머릿속을 빙빙 헤집고 다니며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미끼다. 어디 그뿐인가. 그 질문의 해답을 구하고자 1만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사 편력은 중국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비단길만큼이나 길지만, 비단길을 통해 교역되었던 문물들만큼이나 유용하고 안드로메다를 탐험하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과학적 엄밀함과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품성과 이야기꾼다운 깔끔한 문장력까지 갖추었으니 놓치면 땅을 치고 구르며 울부짖으며 후회할 역작 중의 역작이다. 지금까지 몰랐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이 책을 선택하지 않는 당신은 무뇌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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