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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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2일 월요일

[영화 리뷰] 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 불면의 저주(失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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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그녀의 심장 박동수와 혈압은 다 정상이다

역시 정신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역시 온몸 구석구석 찐득찐득하는 한여름에는 공포 영화가 최고다 해서 한 편 골라봤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불면증으로 어떻게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하는 의구심 반 기대 반으로 재생을 시작하는 분이 많겠지만, 후반부로 가니 보통 수준 이상의 강렬한 비주얼이 전반부의 조금은 지루했던 시간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특히 일본 장교의 성기를 통째로 도려내 일본 녀석들 엿 먹어라 하듯 장교 입안으로 그대로 쑤셔 넣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관객의 오감 속으로 욱여넣어 준다. 하지만, 「불면의 저주(失眠, 2017)」가 단지 공포 영화라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국/홍콩 영화에서는 별로 이슈화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일본을 압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리뷰가 쓰고 싶어졌다.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초반만 놓고 보면 ‘불면증’을 의학적으로만 다루는 듯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두 가족사에 대대로 유전됐음에도,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불면증’을 ‘저주’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비극적인 내력이 이야기보따리의 터진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듯 서서히 드러난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한창 점령하던 시기로서 친일파가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눈에 보이는 어린 여자는 죄다 잡아들여 위안부를 조직하던 시기다. 이때 부모로부터 흑마술을 전수 받은 자매와 얼떨결에 매국노가 된 람싱과 한국의 이완용처럼 적극적으로 친일파가 된 차우복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불면의 저주’를 시작된다.

그런데 친일파를 '착한 친일파'와 '나쁜 친일파'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람싱처럼 소극적인 친일파와 차우복처럼 적극적인 친일파로 구분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람심 같은 소극적 친일파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차우복 같은 적극 분자는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숙청해야 하며 후손들만 남아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모든 이익과 그 이익이 낳은 이익까지 모두 몰수(이것은 소극적인 친일파도 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불면증이 이다지도 큰 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휘두르다 끝내 자멸한다. 잠을 못 자면 뇌세포가 손상된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이 좀비처럼 난폭하게 돌변하는 것은 파괴된 뇌세포를 회복하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고픈 강렬한 욕구의 발산일지도 모르겠다. 생살을 뜯어 먹는 좀비가 되고 싶다면, 잠을 안 자면 된다! 그런데 하루라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면 잠을 안 재워 좀비로 만드는 건가?

The_Sleep_Curse movie secene

잠은 하루 동안 온갖 정보를 처리하고자 혹사당한 뇌에 주어지는 유일한 휴식이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습득한 정보 대부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방금 꿈에서 본 것들을 힘겹게 떠올려보면 별의별 정보가 다 있다. 심지어 책에서 본 (당연히 의식적으로는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떠올라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물론 놀람과 동시에 곧바로 잊어먹지만, 이런 점만 봐도 뇌는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내고자 선택적 기억을 고안해낸 것이리라. 만약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한다면, 하루하루 쌓이는 그 엄청난 정보량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끝끝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로 뇌 활동이 왕성하거나, 뇌세포가 많이 남아있는 사람은 잠이 많을 것이다(참고로 난 아직 잠이 많다). 반면에 뇌세포가 이미 많이 손상된 사람은 잠도 적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잠도 없어지나 보다. 이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깨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할 뇌세포가 젊었을 때보다 현격히 줄어들었을 테니 그만큼 필요한 잠도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충분한 수면이 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불면의 저주(失眠, 2017)」는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이야기로 섬뜩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불면의 저주(失眠,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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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곳 음원 서비스의 MP3 다운로드를 지원하는 ~ 聆听音乐(영청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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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폴더가 따로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

출처: 聆听音乐

비슷비슷한 앱이 참 많이도 나온다. 그래도 지긋지긋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음악을 즐겨듣는 처지로선 음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수단이야 다다익선이니까. 聆听音乐(영청음악)은 시작 화면의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귀밑을 살며시 쓸어올리는 아리따운 여인도 매혹적이지만, 10M(APK)도 채 안 되는 작고 가벼운 앱으로 무려 중국의 6곳 음원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결코 넘볼 수 없는 여인과는 달리 우리와 직접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매혹적이다. 사용자는 쿠고우뮤직(酷狗音乐), QQ뮤직(QQ音乐), 넷이즈 클라우드 뮤직(网易云音乐), 쿠워뮤직(酷我音乐), 화웨이음악(华为音乐), 그리고 끝으로 영청음악(이것은 앱 제작자가 따로 마련한 자체 서버를 지원하는 것일까?)의 음원을 이용할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목록만 으리으리하게 열거해놓고 실제로 사용해보면 한두 개 빼고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聆听音乐(영청음악) 앱은 테스트 결과 여섯 군데 모두 음악 감상 및 MP3(128k~320k)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아쉽게도 샤미뮤직(虾米音乐)은 빠졌지만, 내가 보기엔 이 정도만 돼도 엔간한 음악은 다 들을 수 있으며, 사실 QQ뮤직이나 넷이즈 클라우드 뮤직 하나만으로도 음악 감상용으로는 충분하다.

사용법에 대해선 뭐 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는 것 같고, 일반적인 음악 검색은 [A曲库]를 선택하면 되고, [B曲库]은 DJ용으로 편곡된 요상한 곡들이 검색된다는 점만 알아두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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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이용할 음원 서비스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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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및 다운로드 과정>

사용자에 따라 (난 MP3로도 충분하다고 느끼지만) 아쉽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은 무손실 다운로드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편한 점이 하나 있는데, 다운로드 경로가 어떤 음원 서비스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것 때문에 다운로드 받은 MP3 노래를 찾는데 꽤 고생했다. 다운로드 폴더는 앱을 처음으로 실행하면 나오는 (이후에는 [设置(설정)]에서 찾을 수 있다)음원 서비스 선택 목록의 서비스 이름 바로 밑에 표기되어 있다(예: 酷狗音乐은 kgmusic/download). 기타 자잘한 기능은 차츰 사용하면서 익히면 될 것 같다.

聆听音乐 v4.55.a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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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1일 일요일

[책 리뷰] 전설적 형사로 은유하는 홍콩 경찰의 슬픈 역사 ~ 13.67(찬호께이)

13.67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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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형사로 은유하는 홍콩 경찰의 슬픈 역사

Original Title: 13.67 by 陳浩基
“그 여덟 장은 금고 안에 남겨뒀습니다. 범인이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데 못 줄 것도 없죠. 난 손안의 패를 상대방이 못 보게 감추는 것보다 대범하게 다 보여주는 편을 좋아합니다. 상대방은 내 손만 보고 그게 내 패의 전부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난 의자 밑에 그것보다 열 배가 넘는 패를 숨겨놓고 있거든요. 그래야 더 재미있어지는 겁니다.” (『13.67』, p562)

격동의 홍콩을 은유하는 형사 ‘관전둬’

리 소설로는 드물게 미스터리의 엄밀함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텍스트로 독자를 현혹시키는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로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시마다 소지(島田荘司)로부터는 “무한대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찬호께이(陳浩基)의 또 다른 작품 『13.67』은 홍콩의 전설적인 천재 형사 관전둬의 이야기다. 물론 관전둬는 실존 인물은 아니다. 그는 찬호께이가 홍콩 경찰의 어둡고 씁쓸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줄곧 아시아 속의 ‘작은 서양’으로 존재하다가 급성장한 신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부침하는 격동의 시기를 보낸 홍콩을 은유하고자 창조한 인물이다. (솔직히 난 홍콩/중국 영화에 경찰로 멋지게 등장하는 배우들을 통해 봤던 모습들을 제외하고는 홍콩 경찰이나 홍콩 역사에 대해서는 쥐뿔만큼도 모르지만) 찬호께이는 ─ 소설 『13.67』 집필 시기인 ─ 2013년에 와서도 홍콩 경찰의 이미지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강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용감하며 시민을 위해 온 마음으로 일하는, 그래서 홍콩 어린이들의 자랑거리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홍콩 경찰은 이제 온데간데없으며, 1967년 무렵의 괴상하고 추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찬호께이에게는 홍콩 경찰이 전성기를 누렸던 때 같은 신뢰를 시민으로부터 다시 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하지만, 관전둬의 파란만장한 형사의 삶 속에는 홍콩 사회와 홍콩 경찰이 겪었던 혼돈과 격동의 시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고, 또한 그가 백 퍼센트 해결률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형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자는 홍콩 경찰을 은유하는 관전둬를 통해 홍콩 경찰의 암울한 현재를 어떻게든 빨리 떨쳐버리고 싶다는 무언의 희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희망 속에는 다시 홍콩 경찰이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고, 시민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지원군이 되어 줄 가까운 미래도 포함되어 있을 듯싶다.

‘관전둬’의 사명감 속에 새겨진 홍콩 경찰의 밝은 미래

설의 제목이 ‘13.67’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오늘날, 즉 20 13 년의 홍콩이 19 67 년의 홍콩처럼 똑같이 괴상하며, 홍콩 경찰 역시 그때처럼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의 온갖 부정, 부패, 특권이 거리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으며 본토의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사회적으로도 혼란하고 과격한 시기를 보냈던 때가 1967년임을 고려하면 저자가 탄식하며 걱정하는 홍콩 사회의 현재(2013년)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나마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관전둬가 경찰로서 갖는 사명감이다. 관전둬는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홍콩경찰선서에 어긋나더라도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찰의 가장 우선적이자 진정한 임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형사로서 남긴 발자취에 깊이 새겨 넣은 부동의 신념이기도 하다. 제도가 무고한 시민에게 피해를 주거나 정의를 표방하지 못한다면, 경찰은 분명한 근거를 내세우면서 경직된 제도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관전둬는 교활하고 음험한 범죄자에 맞서고자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찬호께이가 괜히 관전둬를 심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기에 바쁜 현재의 홍콩 경찰(이 고질적인 병폐는 비단 홍콩 경찰뿐이겠는가!)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비대해지기 전에 옳은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관전둬 형사를 통해 은근히 내비치는 것이다. 참고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을 정도로 경찰 조직에 부패가 만연했던 1970년대에 홍콩 정부는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HongKong : Independent Commission)라는 외부 조직을 만들어 ─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5장 빌려온 공간」의 배경이기도 하다 ─ 부패한 경찰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이런 극약 처방을 내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기 전에 홍콩 경찰이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고, 시민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는 날이 다시 오기를, 선의를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할만한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비단 홍콩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의 경찰도 그렇게 되기를, 찬호께이와 함께 소망해본다.

뭐라고 씨부렁거리던 추리 소설의 묘미를 온전히 갖춘 수작이다!

전 작품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에선 볼 수 없었던 ‘사회파 미스터리’ 같은 요소가 소설 『13.67』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추리 소설의 묘미는 ‘미스터리’, ‘트릭’, ‘추리’, ‘반전’이라는 점에서 볼 때 『13.67』은 앞서 말한 모든 요소에 형사와 범인과의 뛰어난 두뇌 대결까지 갖춘 추리 소설의 완벽한 ‘풀세트’다. 마치 고수들이 바둑을 두는 것처럼 상대의 여러 수를 넘겨보고, 크고 작은 승패에 얽매이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같은 동료와 심지어는 소속된 조직까지 속일 정도로 대담한 계략으로 도박사 같은 승부수를 던지는 관전둬와 지능범과의 치밀한 두뇌 대결은 관전둬 형사의 뛰어난 후배라고 할 수 있는 뤄샤오밍 형사마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종잡을 수 없다. 그만큼 관전둬 형사의 두뇌 플레이는 ‘역대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며, 추리력 역시 Sherlock Holmes(셜록 홈스)가 홍콩에서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카롭기 그지없다.

한편, 그는 ‘사고 기계(The Thinking Machine)’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밴 두젠(Augustus S.F.X. Van Dusen) 교수(작가 잭 푸트렐이 창조한 인물), 할머니라는 혼화한 마스크 속에 번득이는 사고력을 감춘 미스 마플(Jane Marple),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가 창조한 반신불수의 은퇴한 경찰 링컨 라임(Lincoln Rhyme) 같은 유형의 안락의자 탐정(Armchair detective)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가 행동하기를 싫어하는 게으른 유형의 형사라는 것은 아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젊었을 때 그는 액션 영화에서나 볼법한 불꽃 튀는 추격전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가끔 관전둬는 동료가 수집한 자료나 정보를 종합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현장 업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역순의 연대기 형식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여섯 편의 단편은 ‘관전둬 사건 일지’라고 제목을 붙여도 될 정도로 독립적이며 하나하나가 훌륭한 단편 추리 소설이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접했을 때 받게 될, 마치 죽음의 신의 휘두른 거대한 낫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몸서리쳐지는 서늘함을 접하게 되었을 때, 독자는 찬호께이의 천재적인 플롯 구성, 그리고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플롯의 엄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또 한 명의 ‘관전둬’가 될 수도 있었을 법한 비범한 인물이 한 개인을 은은하게 짓누르는 역사와 기회와 운에 교묘하게 지배받는 인생이라는 격랑 속에서 교활한 범죄자로 타락하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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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8일 목요일

안드로이드 바이두 웹페이지에서 바로 다운로드 ~ Kiwi Browser

출처: 超越谷歌,秒杀一切浏览器,这款神器必将成为装机必备!

윈도우 같은 경우는 (스피드판 같은) 써드파티 바이두 클라우드 다운로드 가속 프로그램이나 (바이두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웹페이지에서 자료를 바로 내려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편법이 꽤 많고,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데 비해 안드로이드는 예전에 가끔 요긴하게 써먹었던 IDM, ADM마저도 막힌 지 오래다. 안드로이드에서는 바이두의 철옹성 같은 정책에 따라 오직 바이두 공식 앱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나, 안드로이드에서도 크롬 확장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크로미엄(Chromium) 기반의 Kiwi Browser(키위 브라우저)를 사용하면 꼭 바이두 앱을 사용하지 않고도 윈도우에서처럼 pan.baidu.com 웹페이지에서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다. 다만, 테스트 결과 윈도우에서처럼 IDM 같은 다운로드 가속기, 즉 IDM+나 ADM 앱과의 연동은 불가능했으므로 다운로드 속도는 그냥 표준 속도다. 고로 큰 기대는 말고 그냥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하면 된다.

크롬 확장프로그램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만큼 기본적인 방법은 「템퍼몽키(Tampermonkey)와 사용자 스크립트 조합으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과 같다. 다만, 확장프로그램 설치가 윈도우 크롬에서처럼 바로 등록되는 것은 아니고, 확장프로그램(crx 파일)을 별도로 받은 다음 설치해야 하는 사소한 번거로움이 있다.

키위 브라우저를 활용해 내 클라우드에서 바로 다운로드

Download-directly-from-Android-Baidu-web-page-Kiwi-Browser
<Kiwi Browser에서 크롬 확장프로그램 설치>

1.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Kiwi Browser 설치.

2. 우측 도구 모음에서 [Extensions] 클릭.

3. 'You can find extensions of Google'에서 'Google' 클릭 후 나타나는 검색 목록에서 첫 번째 목록으로 이동.

Download-directly-from-Android-Baidu-web-page-Kiwi-Browser
<템퍼몽키(Tampermonkey) 설치>
Download-directly-from-Android-Baidu-web-page-Kiwi-Browser
<사용자 스크립트 추가>

4. 템퍼몽키(Tampermonkey)를 찾아 다운로드 후 설치. 설치는 crx 파일 다운로드 완료 후 ‘열기’를 클릭하면 완료.

5. https://greasyfork.org/ko/scripts/39504 사용자 스크립트 설치.

Download-directly-from-Android-Baidu-web-page-Kiwi-Browser
<바이두 내 클라우드에서 바로 다운로드>
Download-directly-from-Android-Baidu-web-page-Kiwi-Browser
<외부 다운로드 앱을 지원하나 바이두 다운로드는 아직...>

6. 새 탭을 열어 도구에서 [데스크톱 사이트]에 체크하고 pan.baidu.com로 이동( 반드시 데스크톱 화면이어야 함. 모바일 화면이면 키위 브라우저를 재시작하고 다시 시도! )

7. 바이두 계정으로 로그인한 후 [下载助手] > [API下载] > [直接下载] 클릭하여 다운로드.

8. 참고로 위의 사용자 스크립트를 설치하면 (내 디스크가 자료가 아닌) 바이두 공유 링크 자료를 판다운로드 웹버전으로 받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경우에도 ADM 앱과 연동할 수는 없었다.

아직 ADM 같은 다운로드 가속 앱과는 연동이 안 되므로(이것은 내가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다운로드 속도는 (유료 회원이면 제 속도가 나오겠지만) 무료 사용자는 규정 속도 그대로다. 다만, 앞으로 사용자 스크립트나 ADM 앱이 업데이트되어 윈도우에서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참고로 현재 윈도우는 똑같은 방법으로 바이두 웹페이지에서 (대표적인 다운로드 가속 프로그램인) IDM과 연동하여 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은 오랫동안 애용된, 그래서 추천할만한 안정적인 가속 방법이기도 하다. 당장 속도상의 이점은 하나도 없지만, 추후 지켜볼 여지가 있어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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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 계정 탈퇴하는 방법

출처: 怎么注销百度账号

사실 바이두 계정 탈퇴는 오랫동안 그 즉시, 그리고 사용자 의지로는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거나 혹은 (확인된 바는 없지만) 휴면 계정으로 처리될 때까지 사용하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놔두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막힌 것으로 알았던 바이두 계정 만들기」에 소중한 댓글을 남겨주신 ‘지나가는사람 1’님께서 ─ 그냥 지나가는 정보라기엔 너무나도 반갑고 꼭 필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 바이두 탈퇴 방법을 링크해주셨다. 사실 ‘공유’라는 것이 별건가? 지식은 이렇게 사소한 인연으로 공유되어 많은 사람에게 득이 된다. 이 자리를 빌려 좋은 정보를 남겨주신 ‘지나가는사람 1’님께 고마움의 말씀을 전해드리며, 링크에 적힌 순서대로 바이두 계정 탈퇴 절차를 순서대로 밟아봤다.

솔직히 말해 테스트에 강제 동원된 계정은 사용 중인 계정이라 끝까지 갈 의도는 없었지만, 이 짧은 글조차 차근차근 읽어볼 수 없을 정도로 시간에 쪼들리는 바쁜 분들을 위해 테스트 결과만을 미리 말하자면, 탈퇴는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 이번 테스트에서 탈퇴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출처 설명이 탈퇴 절차가 맞는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탈퇴를 실패한 원인은 출처 방법이 틀렸다기보다는 꽤 까다로운 탈퇴 조건 때문이다. 나 역시 ‘지나가는사람 1’님의 경우처럼 지난 90일 동안 비밀번호변경, 전화번호 및 이메일 변경 등의 보안 설정과 관련된 이력이 남아있어 취소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한 검증을 위해선 다른 분들의 실제적인 테스트 후기가 필요할 듯싶다.

바이두 탈퇴 절차(순서는 출처 설명 그대로)

1, 2. 바이두 앱 로그인 후 [나의] 탭에서 [설정]으로 이동.

3. 맨 위 [계정 관리]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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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 탈퇴 절차 1~3>

4. [账号急救]로 이동.

5. [账号注销]로 이동.

How-to-withdraw-from-a-Baidu-account
<바이두 탈퇴 절차 4~5>

6. 여긴 출처 설명과 내 앱에 실제 표시된 텍스트와는 약간 다르지만 논지는 같다. 여기서 맨 아래 [已清楚风险,确定继续(위험을 알고 있으며, 계속하는 것이 확실)]를 터치.

销帐号有以下风险 永久注销,无法登录 帐号一旦注销,无法登录,且会解除第三方帐号的绑定关系 所有产品数据将无法找回 注销后帐号在百度系产品内的数据将无法找回 百度帐号通用但不限于以下产品:

계정에서 로그아웃하면 다음과 같은 위험이 있습니다. 영구적인 로그아웃, 로그인 불가 계정이 로그아웃되면 로그인할 수 없으며 제3자 계정의 바인딩 관계가 해제됩니다. 모든 제품 데이터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로그 아웃 후 Baidu 시리즈 계정의 데이터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Baidu 계정은 공통이지만 다음 제품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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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두 탈퇴 절차 6~>

7. 출처 설명대로라면 전화번호 인증 화면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래와 같은 이유로 지금은 탈퇴할 수 없고, 2019년 9월 21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나온다.

不满足注销条件 帐号存在安全隐患 近90天内有过修改密码、解换绑手机、邮箱、申诉等敏感操作,存在安全隐患,暂无法注销!(请于2019年09月21日再尝试注销,或立即实名认证。) 存在未妥善处理数据

취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함 계정에 보안 위험이 있습니다. 지난 90일 동안 비밀번호변경, 휴대 전화, 사서함, 항소 및 기타 민감한 작업의 교체, 보안 위험이 있다, 쓸 수 없습니다! (2019년 9월 21일 또는 즉시 실명 인증을 다시 취소하십시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8. 여기까지 성공한 사람은 굳이 출처 설명을 안 봐도 감으로 잘 넘기면 무난히 탈퇴 절차는 완료될 듯싶다.

일단 바이두 계정 탈퇴 시도는 탈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실패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절차가 바이두 탈퇴로 이어지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현재 난 다섯 개의 바이두 계정을 사용 중이고, 아직 탈퇴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못 느끼지만, 개중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바이두 탈퇴를 하지 못해 몸살이 난 분들이 더러 계실 것 같아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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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6일 화요일

[영화 리뷰]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Haruchika-2017-movie-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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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Solo는 혼자라는 의미가 아냐.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과 맞서.

주변의 연주가 있으니까 solo,

그러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는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고 대충 추측해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 제목 ‘하루치카’는 하츠노 세이가 집필한 일본의 추리소설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폐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취주악부에 소속된 치카라는 설정만 원작에서 따온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 추천할만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의 고만고만한 섹시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호림을 발산하는 여배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 교복이 잘 어울린다).

그녀를 알게 된 발단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斉木楠雄のΨ難, 2017)」.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발연기로 병맛 영화에 나름의 양념을 치고자 열심히 망가지려 애쓰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노고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앙증맞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이렇게 그녀가 주연한 다른 영화를 찾게 하는 요상한 계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시모토 칸나는 마멀레이드 키친의 노래 「기대도 될까」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대로 정말로 ‘작고 귀여운 소녀’ 그 자체다.

Haruchika-2017-movie-scene-01

이런저런 영화를 찾아 감상하다 보면 단순하게 여배우의 미모에 홀려 시간 낭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영화가 종종 있고,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자 무대로 등장하는 ‘취주악부’ 활동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취주악부 활동을 했었고, 당당히 ‘부장’을 맡았다. 파트는 처음에는 플루트였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트롬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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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주악부 활동이 뿌듯했던 점은 수업을 정식으로 땡땡이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무슨 행사가 (예를 들면 국군의 날 종로 길거리 연주) 있어서 그에 대비한 연습 때문에 종종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주악부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선배 중에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화배우 최XX 씨가 있었다는 것과 취주악부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취주악부 학생은 실기 시험에서 (실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음악 선생님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치던 그때 모습이 선한데 가곡 '보리수'의 '성문 앞 ~' 달랑 이 한 소절만 부르고 바로 통과! 난 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 점수! 이러한 것이 90년대니까 통했지, 만약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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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에서 아마추어급 이상의 연주실력을 뽐내는 조연배우들의 연주가 당연히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다 찌그러진 악기, 쥐들이 바글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실 환경과 그런 환경에 걸맞게 연주실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리고 플루트는 직접 불어봐서 아는데, 금관이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배우기 매우 어려운 악기다. 하시모토 칸나가 이전부터 취미생활로 플루트를 연주해 온 것이 아니라면, 땀 좀 뺐을 것이다. 아니지, 플루트의 경우에는 땀보다는 폐활량 때문에 (초보자는 취관에 정확하게 숨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워 낭비되는 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플루트'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 중 플루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축제 때는 플루트가 아닌 알토 색소폰으로 독주를 했다. 곡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종서의 ’겨울비‘. 왜 평소에 잘 부는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선택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트보다 색소폰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다. 아무튼, 그 선택은 최악이었다. 불상사도 그런 불상사가 없다. 연주라기보다는 '삑사리' 메들리였다. 엄청난 동정심과 해방의 기쁨이 담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무대 뒤에 잠시 쉬고 있던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취주악부의 18번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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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제대로 시동만 걸린다면 작지만 요긴한 녀석 ~ PandaFree

출처: pnl(Pandafree 다운로드도 여기서)

뭔가 짝퉁스러운 이름의 판다프리(PandaFree)는 느낌상으론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혜성처럼 사라질 것 같은 녀석처럼 보이지만, 기능만큼은 확실히 감질나는 녀석이다. 바로 바이두 공유 링크 자료를 로그인하지 않고도 다운로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누구나 익히 아는 aria2c를 사용하여 다운로드 가속까지 해준다. 이렇게 설명해놓고 보니 참으로 반갑고 기특한 녀석임은 분명하지만, 마뜩잖은 점은 5~6번 시도해야 겨우 한번 성공할까 말까 하는 룰렛이라도 돌리는 듯한 저조한 다운로드 성공 확률이다. 어떨 땐 바로 시작될 때도 있고, 몇 분 기다려야 시작될 때도 있는가 하면, 아예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때도 있다. 오매불망 기다린 끝에 다운로드가 시작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끝장을 볼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니 마냥 추천하기는 참으로 곤란한 프로그램이다. 참고로 윈도우의 시스템 로캘이 중국어가 아니면 아래 스크린샷처럼 글자가 깨진다. 뭔가 정밀한 조작이 필요한 프로그램은 아닌지라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중국산 프로그램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문제이니 별수 없다. 이런 자질한 것에서도 중국 특유의 유아독존식의 뽐냄을 느끼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PandaFree-is-a-small-but-good-one-if-it-starts-up-properly
<한국어 윈도우에서는 글자가 이렇게 깨진다>

앞서 소개할 땐 적당히 띄울 말이 없어서 ‘혜성처럼’ 나타났다고는 했지만, 사실 판다프리(PandaFree)는 나름의 역사가 있는 녀석이다. 기본적으로 생성된 저장 폴더 이름인 ‘Pnl’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로 작년에 내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는 ‘Pnl-BD极限获取器‘이란 바이두 써드파티 다운로드 가속 프로그램의 후속 버전이다. 사실 출처 링크를 타고 가면 판다프리(PandaFree) 말고 'Panda'라는 또 다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데, 이 녀석이 바로 Pnl-BD의 직계 버전으로 유추된다. 당근 Panda는 유료 프로그램이며 판다프리는 결제를 유도하기 위한 맛보기용, 혹은 바람잡이 같은 녀석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다운로드 한 번 시작하는데 그렇게 지독하게도 뜸을 들이는 것이리라.

시간이 아깝거나 기다리는 것을 못 참겠으면 결제하라는 배짱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겠지. 사정이 이러하니 PandaFree를 얼마 동안이나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예전에 Pnl-BD极限获取器를 처음 선보였을 땐 무료였지만, 얼마 안 있어 무료 사용을 차단하고 유료화를 단행할 것을 보면 판다프리의 수명도 그리 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제작자가 섣부른 유료화에서 뭔가 배운 점이 있어서 판다프리(PandaFree)를 내놨다면 이야기는 약간 희망적인 상황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아무튼, 스피드판이나 판다운로드처럼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이루어질지, 아니면 여기서 끝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PandaFree-is-a-small-but-good-one-if-it-starts-up-properly
<PandaFree의 유료 버전 Panda>

참고로 aria2를 사용하니만큼 다운로드 관련 설정은 aria2.conf에 저장된다. 설정 방법은 aria2 공식 홈페이지 도움말을 보거나 「현재 내가 사용하는, 그리고 추천할만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의 본문 중간을 참고하면 된다. 속도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max-connection-per-server(서버 최대 연결 수)’ 값인데, 기본값 16에서 32로 변경하면 다운로드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고로 웬만하면 그냥 놔두고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끝내 시동은 걸리지 않았지만, 화면 상으로는 4G 이상 파일도 운이 따른다면 다운로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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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4일 일요일

[책 리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짧은 질문에 대한 긴 대답 ~ 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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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짧은 질문에 대한 긴 대답

Original Title: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기업들은 가축이 이승에서 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애써왔다. “할아버지 때에는 소들이 도축되기 전까지 4~5년을 살았죠.” 리치가 설명했다. “1950 년대에 아버지가 목장을 운영하고 있을 때에는 그 기간이 2~3년 정도였어요. 지금은 겨우 14~16개월이죠.” 참으로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잡식동물의 딜레마』, p98)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매우 긴 대답

널리스트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의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는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적 질문에 대한 매우 긴 대답이다. 그것은 당신이 즐겨 먹고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고기에 대한 불쾌감을 생성하려는 환경운동가의 지루한 설교가 될 수도 있고, ─ 지극히 낮은 확률이겠지만 ─ 날벼락 맞고 제정신을 찾은 광인처럼 당신을 채식가로 변신시키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당신을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오를 고기가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어떠한 장소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세심하게 고려하는 깐깐한 섭취자로 거듭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폴란의 긴 대답은 누군가를 유기농에 대한 병적인 집착에서 해방시키는 혁명이자 우악스럽게 싼 음식만 찾아다니던 누군가의 고집스러운 아둔함을 깨우쳐주는 예상치 못한 일침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정부의 원조와 소비자의 무지라는 음침한 장막 뒤에 숨어 각종 모순과 폐해를 양산해 내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과 허울뿐인 산업 유기농 음식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이자, 문명을 도외시한 채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초유기농 농장을 체험하고,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인류를 모방하려는 매우 진기한 시도에서 폴란 자신이 직접 요리 재료를 찾아 사냥 • 채집하는 모든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진지한 모험이다. 이를 위해 마이클 폴란은 손수 트랙터를 몰아 검은 초콜릿색 바다의 물결로 일렁이는 옥수수밭을 위태롭게 행진하기도 하고, 농장에서 일주일간 날품팔이 일꾼 체험을 하면서 직접 닭을 도축한다. 버섯채집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채집하러 새벽같이 산행을 강행하기도 하고, 총을 쏘며 직접 야생 돼지를 사냥한다. 그렇게 해서 손수 마련한 고기, 버섯, 채소, 과일, 효모 등의 다양한 음식 재료들로 지인들에게 만찬을 대접하는데, 폴란은 그날의 식사에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붙인다.

지속불가능한 산업적 음식 시스템

이클 폴란이 야심 차게 두 주 동안이나 고심하며 준비한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는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그래서 생각하기도 좋은 만찬이었던 점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음식 시스템은 (75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며 지속불가능하다. 만약, 지금 당장 산업적 음식 시스템의 가동을 중단하고, 모든 사람이 폴란의 발자취를 따라 거창하게 ‘잡식동물의 추수 감사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잡식동물의 조촐한 저녁 식사’를 장만하려고 든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류의 끔찍한 인구 팽창을 조장했던 산업적 음식 시스템은 지속가능한가? 옥수수로 1칼로리의 가공식품을 만들려고 화석 연료 에너지 10칼로리가 소비되고, 소고기 단백질 1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있어 석유 에너지가 54칼로리나 사용되고, 재배된 채소나 과일을 냉장하고 씻고 포장하여 소비자나 지역 마트에까지 수송하는 데 수백에서 수천 칼로리의 화석 연료 에너지가 소비되는, 이렇게 배보다 배꼽이 큰 음식사슬이 과연 언제까지나 지속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뿐만 아니라 산업적 음식 시스템이 양산하는 환경오염과 공중 보건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이 모든 비용과 부담은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이관되어 납세자이자 산업적 음식사슬의 ─ 사실은 가장 큰 피해자인데 ─ 가장 큰 수혜자라는 누명을 안고 사는 소비자의 지갑과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으로 때우게 된다. 회복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그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환경오염 같은 경우는 이에 아무 책임도 없는 미래 세대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대인

이클 폴란의 재치있는 지적대로 산업적 효율의 관점에서 정말로 석유를 직접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아쉽게도 지구가 나은 최고의 대식가이자 탐식가인 사람일지라도 그 정도까지는 진화하지 못했을뿐더러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석유를 마시며 사는 신인류가 탄생할 수 있을지라도 그때가 되면 이미 석유는 고갈되고 없을 듯싶다.

우리는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가장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여전한 잡식동물이지만, 그렇다고 먹을 수 있어 보이는 모든 것을 몽땅 다 먹을 수는 없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먹을 수 있다는 축복과 그 가운데서 먹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저주가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말하지만, 현대적인 산업적 음식사슬이 제공하는 다양한 가공식품들은 먹고 나서 바로 죽거나 탈이 날 정도로는 위험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음식들을 먹고 여전히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팔팔하게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잡식동물의 딜레마’ 문제를 해결하는 그럴듯한 대안으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거대한 산업적 음식 시스템에 가려진 사회적 비용이나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환경오염 등의 지속불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 의도적이든,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든 어차피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려는 용감한 소비자는 거의 없겠지만 ─ 요즘 사람들은 정말 안심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함을 느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음식들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일까? 유기농을 집어 들며 나름대로 최고의 선택이라 자화자찬하며 만족해하는가?

이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라는 태곳적 문제에서 좀 더 분화되고 문명화된 현대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힌다. 주머니가 가벼운 미식가라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투자한 가격 대비 최상의 맛을 뽑아낼 수 있는지, 현명한 주부라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지, 이상주의자라면 어떤 음식을 구매해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등등 많은 문제가 우리의 지갑과 장바구니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마이클 폴란의 설명대로 우리는 여전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식탁 앞에 엉거주춤 앉은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먹는 방식이 바뀌려면 사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렇다고 이 책이 딱 부러지는 어떠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과학자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며 몇몇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음식은 인류를 지탱하고 자연과 교감하는 근원이지만, 산업적 음식 시스템은 우리와 음식의 연결고리를,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 자연과 소통하는 우리의 태곳적 능력을 무참히도 파괴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먹든 그 재료가 무엇을 먹으며 어디에서 자랐는지, 그것이 어떻게 도축, 가공되어 내 식탁에까지 왔는지 등 한 생명체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되새겨보며 비위 상할 필요가 없으며 감사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미 현대적인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을 등에 업고 인류의 문화와 문명, 그리고 개개인의 삶의 뿌리 깊숙이 들어앉았다. 지금에 와서 산업적 음식 시스템을 거부한다는 것은 전 인류를 기아와 아사의 벼랑으로 밀어 넣는 일과 다름없다. 지속가능한 농장이 분명히 존재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러한 농장들이 지독하게도 많은 인류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산업적 음식 시스템이 인류의 찬란한 식탐을 그럭저럭 채워주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얼마 못 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만약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산업적 음식 시스템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 세계 3차대전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다.

마이클 폴란은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이 모든 것에 의문의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그가 던져 놓은 사고의 덫에 걸려든 게 한다. 유머 가득하고 재치 만점인 폴란의 문장에 현혹된 나머지 그가 놓은 덫에 일단 한 번이라도 걸리게 되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를 규정한다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진정으로 먹는 방식이 바뀌려면 진정으로 사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의 현실적인 믿음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독자에게 자신이 먹는 음식을 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우리를 규정하는 음식과 그 음식이 먹는 음식에 얽힌 복잡하고도 난해한 음식 사슬을 단순히 먹고 먹히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벗어나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며 생태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볼 것은 종용하고 있다. 만약에 이 책을 읽고도 오늘 저녁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전혀 불편한 감정 없이 예전처럼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자신이 죽인 사냥감이나 채집한 음식에 대해 감사와 예의를 표할 줄 알았던 구석기 시대 조상보다 못한 미개인이다!

육식에 대한 끝나지 않은 도덕적 • 윤리적 논쟁

으로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이성과 감성을 갖춘 지능적인 잡식동물이 진보된 문명화를 이루고 나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육식에 대한 도덕적 • 윤리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자신처럼 고기를 먹는 사람은 적어도 한 번쯤은 인생에서 육식 때문에 일어나는 살해를 직접 해보라고 요구하는 마이클 폴란은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과 사람의 동물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사냥과 육식을 옹호하는 측의 주장을 모두 다룬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육식하는 저자의 마지막 논리로 무너진다. 마이클 폴란은 돼지를 한 마리라는 개체로 볼 것이 아니라 종(種)의 개념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라면 돼지(기타 인류에 의해 가축화된 모든 동물)는 인류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한 멸종할 일은 없다. 가축화는 그들의 진화적 선택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인류와 가축화된 동물들과의 윈-윈(win-win) 관계가 성공적으로 수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한 마리 한 마리 돼지의 집단가축사육시설(CAFO: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에서의 짧은 삶이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하더라도 인류의 썩 괜찮은 과학기술과 변치 않는 식탐이 소멸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종은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 폴란의 주장이다. 육식을 옹호하는 처지에선 썩 괜찮은 논리처럼 들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영리한 돼지라도 이런 설명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점에서 폴란의 주장은 어떻게든 육식에 대한 도덕적 • 윤리적 부담을 덜고자 하는 인류의 수많은 변명거리 중 하나로 들린다. 즉, ‘이성적인 존재’가 될 때 가장 큰 장점은 원하는 무엇에 대해서든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말과 다름없다.

만약 외계의 어느 지적생명체 문명에서 인류의 뇌가 고단백 영양 식품으로 유행한다고 치다. 그 바람에 그들에 의해 인류가 강제로 가축화된다면, 그래서 외계인에 의해 20~30세까지 인도적으로 사육되다가(적어도 그들은 사람을 끔찍한 CAFO 같은 곳에서 기르는 것보다 좋은 음식과 적당한 운동, 괜찮은 교육, 그리고 깨끗한 환경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한 뇌가 더 영양가 있고 맛도 더 좋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도축된다면(이런 이야기를 하니 영화에서 한니발 렉터(Hannibal Lecter)가 사람의 뇌를 삼겹살 구워 먹듯 요리해 먹는 장면이 떠오른다), 과연 우리는 폴란가 주장한 논리로 한껏 위안을 받으면서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즉, 우리보다 뛰어난 과학기술과 문명을 갖춘 외계인이 우리의 뇌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상 우리는 지구에서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서의 생존을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위안 아닌 위안에 만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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