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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4일 수요일

ES 파일 탐색기 앱을 이용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그러나...

출처: 【Android】两大方案不限速下载百度网盘文件(ES文件浏览器+ADM Pro大线程版、Village 山寨云)

ES 파일 탐색기(ES File Explorer)의 클라우드 스토리지 기능에서 바이두 클라우드를 지원한 지는 꽤 오래되었고, 아마 아는 사람은 바이두 클라우드 파일 관리 용도로 무거운 바이두 안드로이드 앱 대신에 다중 계정 관리가 가능한 ES 파일 탐색기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ES 파일 탐색기와 (인터넷 다운로드 매니저 앱인) ADM이나 IDM의 조합으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간단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단, ‘블랙리스트’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

ES 파일 탐색기의 복사 기능을 이용한 다운로드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01
<ES 파일 탐색기로 바이두 접속>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02
<ES 파일 탐색기의 기본 복사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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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파일 탐색기의 [멀티 스레드와 다운로드 가능]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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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스레드와 다운로드 가능] 설정 On 후 복사 속도>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ES 파일 탐색기의 기본 복사 기능만으로도 훌륭한 다운로드 속도가 나왔다. 특별한 방법 없이 윈도우 탐색기에서 파일을 복사하고 붙여넣는 것처럼 바이두 클라우드에 로그인해서 클라우드의 파일을 복사하고 안드로이드 폴더에 붙여넣기를 하면 된다. 여기에 ES 파일 탐색기 > [다운로드 관리 설정] > [멀티 스레드와 다운로드 가능] 기능을 켜주면 인터넷 최고 속도를 뽑아주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다.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가지는 이점도 작용했을 테지만, 아무튼 뜻밖이다. 그리고 속도는 그저 그렇지만 4G 이상 자료도 업로드 가능하다.

ES 파일 탐색기와 ADM, IDM의 조합으로 다운로드 가속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05
<ES 파일 탐색기 [기타]>[열기]>[오디오 or 비디오]>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06
<[열기]로 ADM or IDM과 연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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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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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M 다운로드>

일단 ADM이나 IDM 앱을 설치한 다음 (무료 버전과 유료 버전은 스레드 수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ES 파일 탐색기에서 다운로드할 파일을 선택하고 [기타] > [열기] > [오디오 or 비디오] > [ADM Editor or IDM]을 선택하여 다운로드를 시작하는 것이다. ADM과 IDM 모두 스레드 수를 32개로 설정한 상태에서 다운로드해봤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속도는 IDM이 확연하게 앞섰다.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10
<튜닝된 ADM의 다운로드 스레드 수>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11
<튜닝된 ADM의 사용자 에이전트값>

출처에서는 바이두 다운로드를 위해 특별히 튜닝된 ADM을 사용했지만, 난 ADM과 IDM 모두 구글 버전을 사용했다. 튜닝된 버전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캐시 값이 아니라) 다운로드 스레드 수를 무려 2048 개까지 설정할 수 있다는 것과 다운로드 설정의 사용자 에이전트값 중 ‘ 百度云PC ’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세상에나 스레드 수가 20개도 아니고 200개도 아닌 무려 2048개다. SSD라도 과연 이 혹독한 행군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용자 지정 에이전트값 ‘百度云PC‘는 다름이 아니라 「안드로이드에서 ADM을 활용한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 올리기」에서 소개한,

값을 말한다. ES 파일 탐색기에서 파일을 내려받을 때 이 설정을 적용하고 적용하지 않고의 차이점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다만, ADM에 내장된 웹브라우저로 바이두 웹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자료를 받을 땐, 반드시 위의 값으로 사용자 지정 에이전트를 설정해 줘야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 만약 위 설정이 안 먹힌다면,

앱 플레이어의 ’공유 폴더‘ 기능 활용하기

Accelerate Baidu download with ES file explorer app 09
<앱 플레이어와 윈도우 간의 폴더 공유>

끝으로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의 ’공유 폴더‘ 기능을 사용하면 앱 플레이어에서 받은 자료를 바로 윈도우에서 접근할 수 있다 . 테스트에 사용한 LDPlayer의 경우 '/sdcard/Pictures'가 공유 폴더인데, 바이두에서 받는 모든 자료를, 즉 ADM이나 IDM의 다운로드 경로를 '/sdcard/Pictures'로 지정하면, 번거로운 조작 없이 윈도우에서도 바로 접근할 수 있다. 만약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가 윈도우보다 안드로이드가 더 좋다면, 이런 식으로 공유 폴더를 활용하면 앱 플레이어를 바이두 다운로드 머신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진행된 위 테스트까지는 다운로드 속도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지만, 저녁때 확인해보니 역시나 ’블랙리스트‘에 걸려들었다 . 혹시 ADM의 사용자 에이전트값을 ’百度云PC’로 설정하면 ‘블랙리스트’를 회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것은 다음 기회에 테스트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런 방법이 있다는 정도만 알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최근 소식에 의하면 내 클라우드에서 편법을 사용하여 내려받으면 오늘의 테스트처럼 바로 ‘블랙리스트’에 걸리고, 공유 링크로 접속해서 받으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테스트에 사용된 앱 다운로드 암호: se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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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2일 월요일

간단한 벤치마크를 곁들인 윈도우 ’LITE‘ 버전에 대한 고찰

출처: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Mod V6 by iCura

Lite 버전은 정말 '빠릿'할까?

‘Lite’ 버전, ‘최적화’ 버전, 중국에서는 ‘Mod’ 버전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일종의 트윅된 윈도우들은 윈도우 설치 이미지(ISO, WIM, ESD)에 드라이버와 언어팩, 업데이트를 추가하거나 서비스 등의 구성 요소를 삭제하고 기타 다양한 설정을 사용자의 입맛과 컴퓨팅 환경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NTLite라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대부분 사람은 이렇게 트윅된 윈도우가 순정 윈도우보다 ‘라이트(Lite)’, 즉 가볍고 빠릿빠릿할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내 경험상 이것은 명확한 위약 효과다. 나 역시 XP 시절에 그런 망상에 빠져 트윅 버전을 윈비비에스(윈도우포럼의 전신)에 몇 번 올린 적이 있다. 하지만, 경험상 소위 말하는 ‘Lite’, ‘최적화’, ‘Mod’ 버전은 윈도우 성능을 개선한다기보다는 사용자가 사용하지 않는 앱이나 서비스, 드라이버 등의 구성 요소를 삭제해 용량을 줄이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고단하고 소모적인 삽질 끝에 순정으로 돌아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볼 땐 윈도우가 썩 만족스러운 운영 체제는 아니지만, 몇 번 만지작거린다고 해서 성능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형편없는 녀석도 아니다.

트윅만으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유혹은 많은 사람을 현혹하지만, 툭하면 ‘빠릿’하다고 개처럼 짖어대는 사람 중 조금이나마 객관적이거나 신빙성 있는 자료를 첨부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가 윈도우를 하루 이틀 써보나? 윈도우를 포맷하고 새로 설치하면 당연히 ‘빠릿’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웬일인지 트윅 버전을 처음 접하는 사용자들은 포맷 효과를 잠시 잊어버린다.

사실 나도 트윅 버전이 조금이라도 성능상에 이점이 있다면, 써볼까 하는 마음에 중국판 트윅 버전인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Mod V6 by iCura‘ 버전으로 간단하게 PCMark 7을 돌려봤다. 내가 사용 중인 윈도우는 파티션(물리 디스크)에 설치되었고, Mod 버전은 고정(Fixed) VHD 설치되었으며, 내가 사용 중인 윈도우는 2019년 4월 업데이트까지 완료되었고, Mod 버전은 2018년 8월 업데이트까지만 완료되었다는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트윅 버전이 성능도 향상시킬 것이라는 착각은 충분히 접을 정도는 될 것 같다.

A review of Windows 'LITE' version with benchmarks
<내가 6개월 정도 사용 중인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A review of Windows 'LITE' version with benchmarks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Mod V6 by iCura>
A review of Windows 'LITE' version with benchmarks
<세부값 비교>

PCMark 7 벤치마크

PCMark 점수만 보면 내가 현재 6개월 정도 사용 중인 윈도우가 오히려 높다. 윈도우를 오래 사용할수록, 그리고 윈도우에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할수록 윈도우가 느려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윈도우 XP 시절에는 그랬을지는 몰라도 윈도우 10부터는 관리만 잘해주면 그런 우려는 붙들어 매도 좋을 것 같다. Lightweight 점수도, Productivity 점수도 6개월 정도 사용해 온 내 윈도우가 새로 설치한 Mod 윈도우보다 근소한 차이로 높다. 아마도 이런 차이는 최신 업데이트에 포함된 지속적인 성능 최적화와 (아무리 작은 차이지만, 전체 벤치마크 결괏값에는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고정 VHD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설마 트윅이 성능 하락을 가져왔으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Mod 버전에도 2019년 4월 업데이트를 설치하고, VHD가 아니라 물리 디스크에 설치했다면 더 신뢰성 높은 벤치마크가 되었겠지만, 그냥 간단한 참고 자료료만 활용할 생각이라는 우유부단이 나를 귀차니즘의 늪으로 끌고 가버렸다.

또한, 트윅 버전은 사용 중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주친 문제점이 윈도우 고유의 문제인지, 아니면 트윅 버전만의 문제인지는 제작자가 아니면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트윅의 부작용, 혹은 트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사용자는 순정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지 않는 이상 해결할 길이 없다.

물론 윈도우 ’Lite’ 버전은 여러 버전이 있기에 이 경우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트윅 버전이 위와 같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참고할만한 자료 정도는 된다고 생각되어, 그리고 'Lite' 버전에 너무 많은 기대는 품지 말라는 조언 차원에서 감히 몇 자 적어봤다.

A review of Windows 'LITE' version with benchmarks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Mod V6 by iCura 설치 용량>
A review of Windows 'LITE' version with benchmarks
<중국어판 모드 버전은 한글 입력기 사용 불가>

'Lite' 버전의 장점은 윈도우 설치 용량 감소!

'Lite' 버전은 윈도우 설치 용량을 획기적으로 줄 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판 Mod 버전을 버추얼박스에서 설치한 스크린샷이 표시한 사용 중인 공간 중 페이징 파일을 제외하면 대략 7G 정도가 된다. 이 배포판은 많은 사람이 사용할 것을 염두에 공개 버전이기에 개인의 컴퓨팅 환경에 따라서 NTLite로 더 뺄 수도 있다. 어디선가 대략 4~5G까지 심하게 다이어트한 버전도 본 것 같다. 이것은 나처럼 저용량 SSD 사용자에게는 큰 매력이지 않을 수가 없다. 고로 윈도우를 새로 설치할 일이 생기면 오래간만에 나도 과감히 ’다이어트‘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여기에 내가 트윅한 윈도우(지금처럼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의 벤치마크 점수를 추가하겠다.

Windows 10 Enterprise 2016 LTSB Mod V6 by iCura 설치 이미지는 위 출처 링크에서 받을 수 있으며, 기타 다른 Mod 버전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한글 언어팩 적용까지는 가능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어 (Microsoft 입력기는 사용할 수 없다. 아마도 제작한 사람이 영어와 중국어 입력기를 제외하고는 다른 입력기는 모두 삭제한 것 같으며, 다른 중국판 Mod 버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 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설치할 것이라는 고려는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내가 제작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타 언어 입력기를 제거하는 것만큼 안전하게 용량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 문제는 한컴오피스를 설치하면 사용할 수 있는 ’한컴 입력기‘ 등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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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0일 토요일

[책 리뷰] ‘지식인’을 게워내고 ‘시경’을 몰라도 매력적인 작품 ~ 풍아송(옌롄커)

The Odes of Songs book cover
review rating

‘지식인’을 게워내고 ‘시경’을 몰라도 매력적인 작품

Original Title: 风雅颂 by 阎连科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소리내어 노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방을 나서서 밖으로 나온 나는 수많은 연구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모습을 보고 또 보다가 공중화장실에 가서 기지개를 켜며 소변 한 번 본 것이 전부였다. (『풍아송(風雅頌)』, p58)

솔직히 밝히지 못한 집필 목적

책이 중국에서 출판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2013년에 쓴 한국어판 서문에는 『풍아송(風雅頌, The Odes of Songs)』은 대학에 대해, 교수들에 대해, 오늘날 중국 지식인들의 나약함과 무력함, 비열함과 불쌍함, 물질, 금전, 권력에 대한 그들의 타협과 숭배, 이상과 욕망의 이율배반, 저항과 탈피의 불화, 기개와 교태의 갈등 같은 것에 관해 쓴 작품이라고, 그제야 작가 옌롄커(阎连科, Yan Lianke)는 자신의 작품이 지향하는 메시지를 솔직하게 밝혔다. 그러나 중국에서 이 책이 처음 출판되고 나서 벌떼 같은 비평과 비판, 쟁론에 부딪혔을 때 옌롄커는 한국어판 서문처럼 솔직하게 집필 목적을 감히 밝힐 수는 없었다. 그도 우리처럼 명확한 한계를 지닌 사람이자 마치 고수가 초수를 펼치듯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사회적 그물망이 옭아매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도, 아니면 도도한 학처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나약한 동물인지라 차마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고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그저 『풍아송』은 내 정신적 자서전이자 나에 대한 따돌림이고 비판이라고, 누가 봐도 궁색한 변명을 둘러댐으로써 또다시 자신의 작품이 ‘금서’ 목록에 추가되는 명예스러운 불행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

옌롄커, 스스로 지식인임을 부정하다

손해서 그런 것인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옌롄커는 책 뒷부분의 「저자 후기」에서 스스로 지식인임을 부정한다. 그러나 그의 필력이 가진 영향력과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아온 중국의 대표 작가임을 고려해보면 (내 생각이지만 머지않아 그는 노벨상을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작가라는 지식인의 한 부류임을 부정할 수 없다. 고로 자신이 지식인이 아니라는 옌롄커의 부정은 지나친 겸손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자신을 지식인이 아니라고 부정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지식인으로서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시류에 영합하고 현실에 타협한 자신의 무능과 무능력, 그리고 비겁함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저자 후기」에서 밝히듯 『풍아송』은 자신의 무능과 무력감에 대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혐오감을 표현한 것이라는, 얼핏 보면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망이자 질타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거 유행처럼 중국을 휩쓸었던 정풍 운동의 덫에 걸린 지식인이 마지못해 토해내는 자아비판처럼 들리기도 하는 옌롄커의 변명은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지식인 스스로가 알아서 자신을 탄압하고 억압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시스템을 겨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중국 문단의 문제아이자 금서(禁書) 전문 작가라는 수식어를 꼬리처럼 달고 살았던 옌롄커의 소설 『풍아송』이 금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시류에 영합하는 고만고만한 지식인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출판 후 폭우처럼 퍼부을 비난을 예감한 옌롄커가 그것에 대한 변명을 미리 「저자 후기」에 실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무력감을 방증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지식인의 성찰로 모든 지식인의 성찰을 요구하다

지만,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세계적인 작가 옌롄커가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심하다 못해 무력하고 체면치레하느라고 허세를 부리고, 한편으론 질투에 집어삼켜 지는 옹졸한 지식인의 모습을 아무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 피력해도 그것을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질 리는 만무하다. 그의 영향력은 그의 의지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중국을 벗어나 버릴 대로 벗어나 버렸고, 그의 문장이 미치는 파급력은 황하를 범람하게 할 정도로 막대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가 소설에 등장시킨 한 지식인의 비굴하고 무력하고 염치없는 모습을 자신의 이야기라고 빗대어 거침없이 형상화했다는 것은 중국 지식인에 대한 결연한 도전이자 겸허한 비판이면서, 한편으론 그들의 근원적 성찰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쉽게 말해 추기경이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속죄하고 있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제들이 어찌 뻔뻔하게 자신들은 눈처럼 깨끗하다고 시치미 뚝 떼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참회하는 추기경을 보는 사제들의 심기는 어찌 불편하지 않겠는가? 아마 당시 『풍아송』을 읽은 중국 지식인들의 마음이 그러한 사제들의 좌불안석 불편한 마음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거대한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국의 지식인이 지식인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의무와 스스로 짊어진 책무에 충실할 수 없게 하는 강력한 무언의 압력이 중국 사회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마 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국 인터넷에서 하루아침에 말살된 가수 리지(李志)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텍스트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러나 꼭 이렇게 물귀신처럼 지식인을 물고 늘어지지 않더라도, 소설 제목이 의미하고 소설 속 주인공 양 교수가 연구하는 소재이기도 한 「시경(詩經, the book of Songs)」을 전혀 몰라도 『풍아송』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청순한 우윳빛 흡입력을 발산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옥수수 껍질 벗겨내듯 작품에서 ‘지식인’이라는 거칠고 모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내면 차지고 노랗게 영근 옥수수알 같은 구수하면서도 달곰한 문장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과장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원색적이면서도 운치 있고,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옌롄커만의 색깔을 지닌 독특한 문장은 예전 작품들에서 보여준 필력보다 더 원숙해지고 숙달된 경지를 보여준다. 그가 자유자재로 붓을 휘두르고 문장으로 천지를 호령하는 모습은 신이 들린 지휘자가 종이, 붓, 먹, 벼루를 진두지휘하여 하늘과 땅을 글로써 종이에 담아내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이치와 역사와 삶을 설명하려는 것처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과 의지의 발로이다. 또한, 그의 문장에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어 변화무쌍하면서도 오묘한 세상 만물의 미묘한 움직임이나 변화도 능히 잡아내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야 보지 않을 수가 없고, 듣지 않으려야 듣지 않을 수가 없고, 맡지 않으려야 맡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굳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무게를 두지 않더라도 텍스트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무아지경에 빠트릴 수 있는 수준 높은 소설이자 진짜 문학이다.

정말로 진정한 지식인은 모두 죽었는가?

실 『풍아송』이 사유하고 고찰하고자 하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는 별로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지식인에 대한 믿음과 존경과 공감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을 정도로 그들이 권력에 영합하고 권위를 추종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작위적이고 속물적인 작태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좀 더 안다고, 배웠다고, 그래서 좀 유명하다고 우쭐대는 지식인 같지 않은 지식인들이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설쳐대는 모습은 꼴사납기 그지없다. 그들이 대중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교수가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적당히 꾸며진 자애와 숨기지 않는 우월함이 번득인다. 더 가관인 것은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는, 마치 약장수의 번지르르한 혓바닥에 놀아난 관객이나 사이비 교주의 간사한 능변에 이성을 잃은 신도를 연상시키는 대중들의 우매함이다.

어쩌면 누구의 말대로 진정한 지식인은 모두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약삭빠른 사람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이 할 도리를 운명이 부여한 의무처럼 기필코 완수하려는 정의롭고 책임 있고 용기 있는 지식인의 설 자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부처님이나 예수님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품위 있는 교양과 자애로운 성정과 강직한 품격을 지식인에게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무슨 초능력이라도 타고 난 영웅이 아니라 우리처럼 그저 묵묵히 자기 삶에 충실해지려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비록 지식인에게 실망을 금치 못했을지 망정 그렇다고 지식인의 필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인간의 역사에는 위대한 지식인들이 존재했었고 그들이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등 인류 문명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자질 미달의 지식인이 설쳐대는 것이 문제일까? 그래서 크고 작은 뜻을 품은 진짜 지식인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지식인이 설 자리를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우리 사회가 지식인의 존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것도 아니면 대중이 진짜 지식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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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을 이용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을 도와주는 앱 ~ Fpan 한글판

출처: FPan 1.0 第三方百度网盘

대략 1년 전에 안드로이드의 IDM이라 할 수 있는 ADM(Advanced Download Manager) 앱을 활용한 바이두 다운로드 가속 방법을 소개한 글인 「안드로이드에서 ADM을 활용한 바이두 다운로드 속도 올리기」를 블로그에 올렸다. 이 방법을 소개할 그 당시까지만 해도 로그인하지 않은 사용자도 이런 편법으로 다운로드 가속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알다시피 특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런 정직한 방법으로 바이두 클라우드 자료를 다운로드하려면 로그인하지 않고는 턱도 없다.

아무튼, 바이두에 로그인한 안드로이드 사용자라면, 그리고 ‘블랙리스트’ 계정이 아니라면 여전히 ADM를 이용한 다운로드 가속이 가능한데, (내 블로그에 종종 소개한 바 있는) 안드로이드 바이두 앱 SVIP 균열(크랙) 버전을 제작하는 Mrack이란 분이 좀 더 편하게 ADM를 바이두 계정과 연동할 수 있는 앱을 내놓았다. 버전은 1.01이지만, 다운로드는 문제없고, 속도 역시 준수하다. 다만, (아마도 난독화 때문이겠지만) 한글판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한글화라 섭섭한 마음 금할 수 없지만, 굳이 한글판이 아니더라도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간단한 앱이기도 하다.

App Fpan Helps Accelerate Baidu Downloads with ADM
<Fpan>
App Fpan Helps Accelerate Baidu Downloads with ADM
<ADM 앱이 없다면 자동으로 설치를 시작한다>

▲ 사용 방법 역시 간단

1. 바이두 계정으로 로그인.

2. [调用ADM]을 터치하여 ADM으로 다운로드 시작.

3. 이때 ADM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자동으로 ADM 설치가 시작된다.

4. ADM 다운로드 설정을 적절하게 마친 후,

5. [调用ADM]으로 다시 다운로드 시작.

App Fpan Helps Accelerate Baidu Downloads with ADM
<ADM 다운로드 설정 화면>
App Fpan Helps Accelerate Baidu Downloads with ADM
<본격적으로 ADM 다운로드 시작>
App Fpan Helps Accelerate Baidu Downloads with ADM
<이 정도 평균 속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

다운로드 테스트에 사용된 계정은 이번 초까지만 해도 ‘블랙리스트’ 계정이었는데, Fpan 앱 테스트를 진행할 때는 공교하게도 리스트에서 잠시 풀려난 듯하다. 다운로드 속도가 (스레드 개수: 32) 최대 6Mb/s, 그리고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을 때는 평균 2.4Mb/s를 찍었다. ‘블랙리스트’ 계정도 효과가 있을지 궁금한 판이었는데, 하필 이럴 때 풀려나 버리니 허무하기 그지없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일부 동영상 파일이 다운로드 터치가 먹통이 되는 것 같은데, 이럴 땐 파일 확장자를 잠시 다른 것으로 (예를 들어 zip, rar, iso) 변경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면 된다. 이 때문인지 Fpan은 파일 복사와 이동은 안 되지만, 삭제와 이름 변경 메뉴는 제공한다.

원본: FPan1.01.apk

한글판: FPan1.01_by_Mrack_ko.apk.7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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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7일 수요일

추천할만한 실시간 백업/동기화 프로그램 ~ Syncovery 한글판

한글 버전은 '스케줄러'와 '서비스' 항목을 사용할 수 없어 반드시 원본(영어) 버전으로 서비스를 등록시켜야 실시간 동기화 기능이 작동된다. 그런 고로 무턱대고 원본 파일을 한글 버전으로 교체하지 말고 두 파일을 필요할 때마다 번갈아 사용하자.

Recommended Real-Time Synchronization Program ~ Syncovery Korean Version
<Syncovery v8.20 Build 164 x64 한글판>

스택(Stack Cloud)에서 지원하는 WebDAV를 활용한 백업 및 동기화 프로그램으로 얼마 전까지 GoodSync를 사용했었는데, GoodSync의 실시간 동기화 작동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이것저것 테스트해 본 끝에 정착한 것이 Syncovery이다. GoodSync의 실시간 동기화 방식은 (내가 설정을 잘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파일 하나만 변경되어도 원본 파일 및 폴더를 전체 분석하는 긴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기 때문에 동기화 과정이 매우 더디다. 반면에 Syncovery는 nDrive나 바이두 동기화 프로그램처럼 별도의 분석 과정 없이 변경된 파일만 실시간으로 동기화된다.

하지만, GoodSync와는 달리 한글을 지원하지 않기에 프로그램 설정 방법을 익힐 겸 한글화를 시도했다. 번역은 오직 구글과 파파고에 의존했지만, 소설처럼 수식적이고 기교적인 문장이 아니라 간단명료한 IT 언어이기에 비록 기계 번역일지라도 그럭저럭 이해한다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번역은 Syncovery.exe 실행 파일의 메뉴와 설정 부분만 90% 정도 완료된 것으로 보이고, 번역과 편집 미숙으로 중간중간 글자가 잘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글자가 잘려서 영 알아보하기 어렵다면, 원본으로 확인하면 된다.

Recommended Real-Time Synchronization Program ~ Syncovery Korean Version
<한글판을 실행할 때마다 마주치는 경고>

그런데, 한글 버전은 실행할 때마다 위의 스크린샷 같은 경고 문구가 뜨며, 스케줄러(Scheduler)가 실행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실행 파일 변조를 감지하는 기능이 내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케줄러는 프로파일(백업 및 동기화 작업)을 일정한 시간이나 사용자가 지정한 변수마다 실행시키는 보편적인 기능 이외에도 실시간 백업/동기화 작업에서 폴더 감시를 담당한다. 그런 고로 스케줄러를 사용할 수 없으면 실시간 감시 기능도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정말 그랬다면 내가 굳이 한글 패치를 올리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시간 동기화 프로그램의 ‘실시간 동기화’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면, 팥 없는 찐빵이자 고기 없는 고기만두하고 뭐가 다르단 말인가!

Recommended Real-Time Synchronization Program ~ Syncovery Korean Version
<원본 버전을 통해 Syncovery 서비스를 등록해야 실시간 백업/동기화 기능이 작동>

Syncovery의 실시간 동기화 방식은 크게 ‘스케줄러’를 이용한 방법과 ‘서비스(윈도우의 ’Remote Procedure Call(RPC)‘처럼 시스템에 등록된 서비스와 같은 개념)’를 이용한 방법이 있다. 스케줄러를 이용할 수 없다면, ‘서비스’를 이용한 방법으로 실시간 동기화를 작동시키면 되고 이 방법이 더 간편하고 충돌도 없으며 아직 큰 문제점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다만, 한글 버전에서는 스케줄러를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비스 항목도 없다. 그런 고로 한글 버전으로 프로파일을 생성하고 기타 필요한 설정을 마무리한 다음 원본 버전을 실행하여 Syncovery 서비스를 등록하면 된다 . Syncovery 서비스를 등록할 때 나타나는 계정 정보 항목에는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윈도우에 내장된 로컬 서비스 계정으로 Syncovery 서비스를 시작한다. Syncovery 서비스의 권한을 제한하고 싶다면, 동기화 폴더와 파일에 접근 권한을 가진 계정을 따로 만들어 사용하면 된다.

원본 버전을 통해 Syncovery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등록하고 서비스를 시작한 다음, 한글 버전을 실행하면 실시간 동기화를 설정한 프로파일의 [마지막 결과] 정보가 (파일이 변경되었음에도) 더는 바뀌지 않는데, 그렇다고 실시간 동기화가 작동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Syncovery 서비스가 실행되고 있다면, 실시간 백업/동기화도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스케줄러와 서비스 항목을 사용할 수 없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한글 버전에서 다른 문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Recommended Real-Time Synchronization Program ~ Syncovery Korean Version
<100%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한글화>

설정할 것이 꽤 많아 보이지만, 기본 설정만으로도 훌륭히 작동하는 프로그램이고 세부적인 설정은 사용하면서 천천히 익히면 된다. 나 역시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팁’ 같은 것을 말할 주제가 못 되지만, 동기화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말하자면, [프로파일 설정] > [고급 설정] > [파일]에서 ‘병렬로 복사할 파일 수’가 업로드/다운로드에 사용되는 스레드 수이니 이 값을 적절하게 조절해주면 업로드/다운로드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작업]에서 ‘복사 전에 사용 가능한 공간 확인’을 체크하지 않으면 분석 작업 시간을 조금 단축시킬 수 있다. [실시간 동기화 설정...]에서는 ‘프로파일을 완전히 한 번 실행한 다음 실시간 동기화 사용’을 언체크하면 윈도우를 시작할 때마다 실시간 동기화를 사용하는 프로파일의 전체 분석 과정을 생략한다. 이외에도 동기화 목적과 사용자 취향에 따라 다양한 설정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한글 버전은 Syncovery 8.20 Build 164 64비트 버전으로 작업했다.

Syncovery v8.20 Build 164 x64 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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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5일 월요일

바이두 클라우드 안드로이드 앱 v9.6.35 SVIP 균열 및 공식 버전 한글판

출처: 百度网盘(*VIP*)v9.6.35去广告/破倍速/不限速版

이번에는 방금 막 나온 따끈따끈한 만두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이두 안드로이드 앱 공식 버전 9.6.35과 예전 앱처럼 Mrack이란 분이 SVIP 모드로 크랙한 균열 버전 두 개를 한꺼번에 한글화했다. 같은 값이면 당연히 한 개보단 두 개가 좋은 것처럼 공식 버전과 균열 버전 두 개를 동시해 한글화했다는 소식에 멋모르고 기뻐하시는 분도 계실 듯하지만, 사실 굳이 번거롭게 공식 버전까지 한글화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그것은 기가 막히게도 균열 버전의 다운로드 가속 기능이 막혔기 때문이다.

Baidu Cloud Android App v9.6.35 SVIP Crack and Official Version Korean
<이번 한글판을 사용하려면 루팅 및 럭키패쳐 작업이 필요하다>
Baidu Cloud Android App v9.6.35 SVIP Crack and Official Version Korean
<1MB/s를 초과하면 여지없이 다운로드는 중지된다(알고 보니 '블랙리스트' 제재?)>

뭔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말은 이렇게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다운로드 자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SVIP 가속이 제대로 먹혀들어 다운로드 속도가 1MB/s를 조금 넘어서면, (바로 위 스크린샷처럼) 다운로드가 강제 정지된다 . 아무래도 바이두 측에서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데, 9.6.35 버전뿐만 아니라 SVIP 모드로 크랙된 구 버전도, 그리고 한글화하지 않은 원본도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모두 같은 증상을 보인다. 아마 무료 사용자의 과속이나 탈선을 엄중하게 단속하는 듯싶다. 제작자도 이런 사실을 진즉에 알았을 터인데,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가? 아니면 한국 IP만 차단당하는 것일까? 속도 향상을 위한 안쓰러운 꼼수가 오히려 독이 될 줄이야 나로서는 예상 못 한 일이지만 아무튼, 그런 관계로 균열 버전을 사용하고자 할 땐 다운로드 속도를 1M/s 이하로 제한할 수 있는 네트워크 앱을 병행해서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그런데 이런 앱이 있었나?).

• 2019/04/18 : 다른 계정으로 다운로드해보니 다운로드 속도가 1Mb/s를 넘었을 때 강제 다운로드 중지되는 현상은 아마도 ‘블랙리스트’ 계정에만 해당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다른 계정은 속도가 들쑥날쑥하긴 하지만, 1~2Mb/s 속도가 나와도 다운로드가 중지되지는 않는다.

• 2019/04/19 : 스크린샷의 계정으로 오늘 다시 테스트해 보니 다운로드 속도가 1Mb/s을 넘어서도 중단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블랙리스트가 풀린 모양이다.

Baidu Cloud Android App v9.6.35 SVIP Crack and Official Version Korean
<그래도 보기는 좋은 슈퍼맨 마크!>
Baidu Cloud Android App v9.6.35 SVIP Crack and Official Version Korean
<균열 버전과 공식 버전>

그리고 또 하나 실망스러운 소식은 (아마 대부분 사용자가 비루팅 사용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게 더 슬픈 소식일 것이다!)공식 버전/균열 버전 두 한글판은 언사인(Unsigned)으로 패키징된 관계로 오직 루팅된 기기에 럭키패쳐(Lucky Patcher)가 적용된 안드로이드 기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 패쳐 방법은 [럭키패쳐 실행 >> 도구박스 >> 안드로이드에 패치]에서 스크린샷처럼 맨 위의 두 항목에 체크하고 적용하는 (재부팅 필요) 것이다. 좀 더 자셍한 방법은 「[럭키패쳐] Unsigned 언사인 apk 설치하는 방법!」를 참조. Apk 언사인(Unsigned) 문제는 원본의 서명 키를 앱 제작자에게서 구하지 않는 이상 같은 키를 이용하여 서명할 수는 없기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당분간은 아쉽고 섭섭하더라도 이렇게 사용해야 할 듯싶다.

▲ 바이두 앱 v9.6.35 크랙 내용

• SVIP 다운로드 가속화 즐기기

• 15초 비디오 광고 제거하고 두 번째 브로드 캐스트

• 비디오 오디오 재생 속도 제한 제거

• 인터페이스의 쓸모없는 배너 제거

• 불쾌한 작은 빨간 점(?) 제거

• 업데이트 검사 금지

• 온라인 압축 패키지 보기

Unsigned 바이두 안드로이드 앱 v9.6.35 SVIP 크랙 버전 한글판

Unsigned 바이두 안드로이드 앱 v9.6.35 공식 버전 한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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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igned 앱이라 반드시 [루팅 + 럭키패쳐] 설정된 기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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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4일 일요일

중국 인터넷에서 하루아침에 말살된 가수 ~ 리지(李志)

중국 음원 사이트 하루아침에 사라진 노래들

중국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리지(Li Zhi, 李志)라는 중국 가수가 인터넷에서 사라졌다는 황당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歌手李志的微博、微信以及音乐页面都已无法查看,原因未知」. 2019년 4월 12일, QQ 뮤직 등 중국의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그의 모든 노래가 삭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가수가 존재했었다는 설명도 사라졌다. 웨이보와 위챗에서도 그의 계정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단 하루아침에 한 사람의 존재가 한 국가의 인터넷망에서 깨끗이 제거되었다. 뉴스에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난 리지라는 가수는 전혀 모른다. 다만,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설명에 따르면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공연했을 정도로 유명한 독립 음악가라고 한다.

가수 리지는 모르지만, 국외에도 이름을 알린 유명 가수가 그가 태어난 모국의 인터넷에서 철저하게 말살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몇 자 적어보게 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존재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말도 안 되는 검열의 기준을 들이대며 어처구니없는 금지곡을 양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리지의 경우처럼 가수의 존재와 그가 창작한 모든 노래를 한 사회에서 완전히 말살시켜고 하지는 않았다. 현대 인터넷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중국 인터넷상에서 리지의 존재가 제거된 것은 중국 사회에서 그의 존재를 제거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의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가수 리지는 그들에게 무엇을 밉보였을까?

과연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일까? 위 뉴스에 달린 안타까움과 의혹으로 뒤섞인 수많은 댓글을 보면, 그에게 마약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음악가가 마약 같은 약물 문제로 구설에 오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한국에도 마약 문제로 입건된 가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른 노래를 들을 수 없단 말인가? 마약에 취해 영감을 얻어 부른 노래를 들으면 중독이라도 된단 말인가? 중국에서 마약은 한국에서와같이 불법이므로, 리지라는 가수가 마약을 불법으로 먹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언동이나 노래 가사가 그들의 심기에 거슬렀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말이다. 몇몇 독립 음악가들의 언행이 거칠기는 하다.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에 크게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과하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표현의 자유’일 뿐이다. 몇몇 가사에서 (구글 번역으로 보면) ‘마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은근히 ‘우상’을 비판했던 것도 같다. 톈안먼 광장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오싹한 눈빛으로 중국 인민을 감시하는 그분의 초상화가 여전히 보란 듯이 걸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로 그가 ‘마오’를 비난, 혹은 비판하려는 의도로 그런 가사를 지었다면, (인민을 근심 걱정하는 양심적인 마음에서 대기근을 정당하게 비판했던 펑더화이와 류사오치의 끔찍한 결말에서 볼 수 있듯) 이것은 그 누구도 면죄 받을 수 없는 불경죄이자 괘씸죄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 인터넷에서 그가 ‘삭제’된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사진 출처: https://www.voachinese.com>

여전히 자유에 대한 탄압이 횡횡하는 곳

중국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한때 폭군의 독재가 유행했던 과거에나 있을법한 일을 잊을만하면 저질러 사람을 놀래주는 곳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아 올린 수많은 부와 지식, 기술은 어디다 엿 바꿔 먹었단 말인가? 왜 중국은 경제 발전이 인권이나 의식, 그리고 정치의 진보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게 그 많은 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만 쌓는다고 사회주의 이상이 저절로 실현된단 말인가? 어떻게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나의 둔탁한 머리로서는 그밖에 다른 것은 떠올릴 수가 없다) 한 가수의 창작물을 완전히 소멸시키려는 야만적인 시도를 정말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21세기에도 예술적 창작물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권력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나라 중국이지만, (리지의 사건으로 새삼스레 다시 떠올리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에도 여전히 금지곡이 존재하는 사실은 씁쓰레한 뒷말을 남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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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 마오의 대기근(프랑크 디쾨터)

Mao's-Great-Famine-book-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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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Original Title: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1962 by Frank Dikötter
국가가 전부이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인의 가치는 노동 점수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되고, 흙을 나르거나 벼를 심을 수 있는 능력으로 결정되었다. 농촌에서 농민들은 가축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은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할 존재였고 그 모든 것은 공사에 대가가 따랐다. 이 음울한 계산의 논리적 귀결은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도태시키는 것이었다. 굼뜬 사람, 비실비실한 사람, 여타 비생산적 분자들의 무차별적 살해는 노동을 통해 정권에 기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체적 식량 공급을 증가시켰다. 폭력은 식량 부족을 다루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p438)

인류 정치사상 최악의 인재, 대기근

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총 사상자는 대략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으로 잡고 있다. 전쟁 기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한 1945년 9월 2일까지로 대략 5년이었다. 그런데 전쟁도 없었고 내전도 없었음에도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민간인만 4,500만 정도가 사망한, 아마도 인류 정치사에서 최악의 인재(man-made calamity)라고 불릴만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야심 찬 프로젝트 대약진(大跃进: Great Leap Forward)이 불러들인 대기근(大饥荒: Great famine)이다.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겠다는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적 공상에서 발아한 대약진은 한마디로 중국에서 가장 남아도는 자원인 6억의 노동력으로 자본을 대체하여 소련처럼 급진적인 산업화를 이루어내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였다. 그러나 동방원정과 유대 볼셰비즘 말살로 아리아 민족을 위한 지상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히틀러의 지독한 ‘의지’가 독일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온 온 것처럼, 자신의 생애에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기필코 건설하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에서 싹튼 대약진 역시 중국에 전무후무한 파괴를 가져왔다. 대약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량 살상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 목적에 반하게도 농업과 무역, 공업, 운송 등 중국의 산업과 경제에도 유례없는 피해를 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4,500만 명이 아사해가고 있을 때 권력의 중심부 사이를 비밀스럽게 오간 말과 그 당사자들의 냉혹한 행위들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베이징의 중앙당 기록 보관소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지금까지 국가나 중국 공산당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체면을 깎아내리는 크고 작은 불쾌한 사건들이 철저하게 은폐되어 온 것처럼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진실을 호도하거나 감추기에 바쁜 것 같다. 역사와 인민 앞에 공산당의 책임을 온전히, 그리고 떳떳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4,500만 명을 조기 사망시킨 대기근과 수억 인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문화대혁명의 절대적 책임을 공산당이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억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겠다는 혁명 이념으로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참혹한 결과 앞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류는 인정하면서도 히틀러나 마오쩌둥이 그랬던 것처럼 교묘하게 책임은 회피한다.

감춰진 잔혹사를 폭로하다

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 중 두 번째인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은 역사학자가 접근할 수 있는 최상, 최신의 자료로 완성된 수작이다. 이 책은 대기근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파괴했던 대약진의 구조적인 토대가 어떻게 세워지고 어떻게 지속하였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자리 잡은 토대 위에서 파괴 위에 파괴를 거듭하고 시체 위에 시체를 쌓아가면서도 무오류를 확신하는 마오쩌둥의 의지와 그를 숭배하는 당원과 인민으로부터 광적으로 뿜어져 나온 동력이 어떻게 대약진을 유지시켰는지를 면밀하게 파헤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 증거들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다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이들의 야심과 맹목, 탐욕에서 출발한 강압과 공포, 체계적인 폭력이 대약진 운동의 토대였음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대기근은 인재(人災)였을 뿐만 아니라 조기 사망자 대다수가 기존에 알려진 사실대로 아사, 혹은 굶주림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원인 즉, 대약진 동안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자살로, 그리고 적어도 250만 명은 맞아 죽거나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감춰진 잔혹사(残酷史)를 드러낸다.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의 지독한 공통점

실 히틀러, 마오쩌둥, 스탈린 등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은 그 누구보다 인민들의 목숨을 파리목숨보다 더 하찮게 여겼다. 아마 그러한 절대온도 같은 냉혹한 성정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불가결한 자질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마오쩌둥과 히틀러는 참으로 닳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각자 상정한 유토피아를 향한 두 사람의 꺾일 수 없는 ‘의지’와 ‘집념’은 현실을 생지옥으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치러지는 희생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히틀러가 수많은 병사의 죽음을 민족의 생존을 위한 ‘영웅적 투쟁’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희생이자 대가라고 주장했듯, 마오쩌둥 역시 대약진의 희생자들을 혁명의 대의를 위해, 미래에 약속된 유토피아를 위해,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희생되어야 할 소모품으로 여겼다. 두 사람 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으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편집증적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히틀러가 모든 잘못을 유대인 탓으로 돌린 것처럼 마오쩌둥은 봉건 세력, 수정주의자, 반동분자, 반혁명 분자 등 (거듭된 숙청으로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적성 계급 탓으로 돌렸다. 또한, 아랫사람들이 등 뒤에서 벌이는 짓들을 히틀러는 모른다고 믿는 ‘지도자 신화’라는 후광 속에서 (적어도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까지는) 히틀러가 비난의 화살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마오 역시 ‘위대한 조타수’로서 오직 인민의 복지만을 염려하는 인자한 지도자로 그려지는 데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천재성과 무오류성을 확신했다. 그래서 제아무리 논리적이고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두 사람의 언행과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고, 감히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린 비판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마오쩌둥이 히틀러보다 나았던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자국민들에 (비록 그들은 세상 그 누구도 겪지 못한 공포에 떨고 고통에 짓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지만) 한해서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과 6억 인민을 가지고 사회주의 실험 놀이에 한창 빠져있었던 덕분에, 이 기회를 틈타 대만과 한국은 경제 발전을 가속할 수 있었다.

한편, 제3제국의 모든 층위에서 이루어진 의사소통에 구조적으로 진실이 왜곡되었던 것처럼 중국은 대약진 시기에 망령에 가까운 마오쩌둥 실험에 장단을 맞춰주느냐 온 나라가 오로지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등의 수치를 날조하고 조작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나치당원들이 히틀러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었어도 히틀러가 원하고 좋아할 만한 일들을 알아서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나치의 동력원이었다면,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겠다는 공산당원들의 잔인한 보신(補身) 의지가 대약진의 동력원이었다. 나치가 국가에 짐이 되고 밥만 축낸다는 잔혹한 논리로 불치병, 정신병, 선천적 질병을 앓는 환자를 안락사시킨 것처럼 대약진 시기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엄혹한 논리로 아이, 병자, 노인은 잔학무도한 생존경쟁에서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 (다른 점도 많겠지만) 어딘가 닮은 점이 있는 두 독재자 밑에서 인류사에 지워지지 않을, 그리고 지워져서도 안 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파괴적인 재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오싹하기 짝이 없다.

한국 전쟁의 영웅 펑더화이의 몰락을 불러온 대약진

약진이 모든 지도층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1957년 하반기에 시작된 치수 사업 맥락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 ‘대약진’이 막상 시작되었을 때 당의 제2인자인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비전을 받아들였지만, 중국에서 마오쩌둥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 저우언라이와 경제 전문가 천윈(陳雲)은 마오쩌둥의 경제 정책을 반대했다. 하지만, (권위와 보신 앞에 장사가 없듯) 두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고자 마오쩌둥의 끈질긴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1959년 루산 회의에서 한국 전쟁의 영웅이자 국방부장이었던 펑더화이(彭德怀)는 마오쩌둥에게 조심스럽게 대약진의 참상을 알리고 비판하는 편지를 전했다가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쫓겨나고, 루산 회의에서 펑더화이를 지지했던 다른 이들도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한편, 1961년 4월 류사오치는 거의 40여 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다가 실제로 목격한 참상에 충격을 받고는 (아마 그는 참상을 눈앞에서 보고도 외면할 정도로 모진 사람은 못 되었나 보다!) 이때부터 대약진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다. 이후 류사오치는 농민들은 ‘30퍼센트는 천재요, 70퍼센트는 인재’라고 말한다며 대기근의 원인을 명확하게 중앙 지도부로 지목하면서 마오쩌둥의 심기를 건드린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대기근의 참상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뒤였기에 마오쩌둥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침묵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상대를 용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대약진의 참담한 실패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곧 실추된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회복하고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을 일으킨다. 그로 말미암아 중국은 대약진의 충격에서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또 한 번 혼란과 고난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에는 대약진의 실패를 거울삼아 급진적인 산업화가 아니라 대중 선동을 선택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킨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가 겨우 일어서려는 찰나에 다시 크게 한방 얻어맞고 진흙탕 속으로 굴러떨어진 격이니, 어찌 인민들에게 잠시의 평안함이 허락될 수 있었겠는가? 이때는 감히 ‘위대한 조타수’에게 반기를 든 펑더화이와 류사오치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파국의 시대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적나라함

지막으로 파국의 시대에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프랑크 디쾨터는 설명한다. 그 어떤 공포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잔혹한 짓들이 이 책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굶주린 아이가 먹을 것 좀 훔쳤다고 우물에 빠트려 죽이고, 먹을 것을 훔친 소년의 아버지에게 자식을 산 채로 땅에 파묻게 하고, 어느 엄마는 여덟 살 딸아이 몫의 배급 식량을 빼앗아 자기 자식을 굶겨 죽이기도 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것은 죽은 사람조차 그냥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천운이었고 길거리에 그냥 방치되는 것은 보통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소년처럼 사소한 경범죄를 저질러 맞아 죽은 사람들은 다른 재료와 함께 솥에 넣고 끓여진 다음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적군도 아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에게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만행이 한 두 마을에서만 있었던 특이 사례가 아니라 중국 전역에 걸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상사의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숙연한 역사 앞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위기 앞에 또다시 서게 된다. 한편으론 훗날 문화대혁명 중에 일어나게 될 만행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전쟁이나 내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 정도의 인구가 단 4년 만에, 그것도 단 한 사람의 의지와 그를 뒤따르는 어떻게든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자리를 보전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흉물스럽고 천박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조기 사망했다는 무참한 진실 앞에선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역정조차 곧바로 허탈한 감정으로 식어버린다. 마주해야 할 진실이 너무나 참혹했을 때, 그래서 당황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무정하게도 그 저주받은 시기에 태어난 그 사람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탓하고야 마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논리와 이성이 마비된 무상함에 빠져든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스리고 분노를 풀어보고자 제법 긴 글의 리뷰를 쓰고 난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밝히기를 꺼렸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도 엄청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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