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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020

[영화 리뷰] 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 브이(V, 1983)

V-1983- TV-Mini-Series-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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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인류는 아직 공식적으로 지적 외계생명체를 만나본 적은 없다.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뜬소문에 의하면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비밀보다 더 비밀스럽게 지구에 사는 생명체 같지 않은 수상한 생명체와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외계인에 납치당해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이 봤다는 외계인의 모습은 한결같이 사람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형태로 묘사되곤 한다. 즉, 몸통 위로는 머리를, 몸통 상단 좌우로는 두 팔을, 몸통 하단 대각선 방향으로는 두 다리가 붙어있다는 식이다. 다만, 머리가 ─ 우리의 신체 비율과 비교해서는 ─ 농구공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고, 몸통은 머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으며, 팔다리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처럼 앙상하다.

실제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는 E.T 같은 이런 외계인의 신체 구조는 언제부터인가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런 반증할 수 없는 공상에 가까운 추측에 한가득 찬물을 끼얹는 SF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1983년에 나온 TV 미니시리즈 브이(V)가 그렇다.

V-1983- TV-Mini-Series-movie-scene

입을 쩍 벌린 다이아나가 털이 복슬복슬한 설치류를 원샷하듯 삼키는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는 외계인의 정체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을 갖춘 그들의 정체가 영장류 비슷한 무언가가 아니라 벌레만큼이나 징그러운 파충류였다니, 그때까지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불과 약 66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파충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만약 66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를 비껴갔다면, 최소한 우리는 모기나 파리를 잡기 위해 연신 파리채를 휘두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날름거리는 혀로 잡아먹는 것이 더 빠르고 쉬웠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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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를 처음 시청했던 어렸을 적엔 파충류라는 외계인의 실체가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류츠신의 소설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처럼 브이(V)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바로 외계인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라도 될 것 같은, 희망 사항 같은 것에도 낄 수 없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가 사실은 작금의 종교만큼이나 지독한 허깨비와 다름없다는 것을.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지적생명체일지라도 우리에게 반드시 선의를 품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도덕 관념이 우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나 근거 역시 없다. 지적생명체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유에는 여행, 탐험, 교역 등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살던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이다. 황폐해진 고향 행성을 버리고 지구를 발견한 지적생명체가 인류의 안위를 동족의 안위보다 더 생각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그리고 조선과 중국을 침공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점령지역 민족들을 다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들의 노예가 되던가, 아니면 학살의 희생양이 되던가, 그것도 아니면 작금의 돼지나 닭처럼 가축이 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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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에 비추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히틀러보다 더한 인류 최대의 나쁜 놈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훗날 탐사선 보이저(voyager)호에 실린 황금 레코드(Golden Record)를 어떤 지적생명체가 발견한다고 했을 때, 그 지적생명체가 반드시 ─ 인류의 희망처럼 ─ 우호적이고 선의를 가득 품은 선량한 종족일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소설 『삼체』에 등장하는 지적생명체처럼 수명을 다한 고향 행성을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중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황금 레코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안내하는 조타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추억의 드라마 브이(V)를 다시 보며 떠오른 울울한 감상을 방금 막 내려 향기 가득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제멋대로 적어봤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당연히 엉성한 그래픽이 약간은 거슬릴 수 있지만, 예쁠 뿐만 아니라 인상도 무척이나 좋은 페이 그란트(Faye Grant, 줄리엣 패리시 역)와 헤비메탈 가수 부럽지 않은 곤두선 사자 머리가 파충류적인 야성미를 자아내는 제인 배들러(Jane Badler, 다이아나 역)도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시간 있으면 한 번 봐라. 재미도 재미지만, 브이(V)가 이후에 나온 SF 영화나 드라마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브이(V, 198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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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19

[영화 리뷰]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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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뭔지 알아?"

어느 날 저녁, 에밀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8명의 친구는 담소를 나누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식사 후에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밤하늘을 유유히 헤엄쳐가는 혜성을 잠시 잊고 있었다.

Coherence movie scene
<유쾌한 저녁을 보내는 8명의 친구>

한창 이야기가 물이 오를 무렵, 이들의 우정을 질투한 누군가가 훼방이라도 놓듯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한다. 잠시 당황한 이들은 누군가는 촛불을 밝히고 누군가는 야광봉을 준비하며 상황을 추스른다. 사실 이날 저녁은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액정에 금이 가는가 하면 모두의 휴대전화가 불통이 되는 이상한 밤이기도 했다. 정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려고 창밖을 기웃 들여다보던 이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집이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일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빌리고자 몇 명의 선발대를 조직한 다음 파란 야광봉을 들고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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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에서 가져온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자신들의 사진이!>

집에 남은 친구들이 한창 애간장을 태우며 선발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섰던 친구들은 구급상자 크기의 하얀 상자를 들고 돌아온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뒷면에 숫자가 적힌 8명의 사진이 탁구채와 함께 들어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집 밖을 나간 사람들이 불이 켜진 집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 집에는 자신들과 똑같은 8명의 사람이 자신들처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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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vs 에밀리>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땐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에 접목한 미스터리, 공포, 그리고 SF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가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이다.

내 앞에 숫자 1에서 100까지 적힌 100장의 카드가 있고 그중 한 개만을 고른다고 치자. 만약 내가 숫자 1을 선택하면 숫자 1을 선택한 것이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평행 이론은 나머지 카드 99장을 각각 선택했을 때의 세계도 어딘가에서는 ‘현실’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즉, 이 경우에는 100개의 세계가 평행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평행으로 존재하기에 평소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화한 경우의 수다. 한 사람의 인생만 놓고 봐도 선택과 우연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에 타인의 선택과 기회도 생각하면 평행한 세계는 무한의 수로 존재할 것이다.

영화는 평소에는 상호 작용하지 않는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혜성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붕괴한다고 가정한다. 매우 기발한 착상이지만,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론을 안다면 정말 놀랍도록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영화로서는 드물게도 과학적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지적으로도 우아한 영화다.

어딘가의 세계에서는 작금의 내 현실보다 더 잘 먹고 잘사는 ‘나’가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세계에서는 불행한 사고로 이미 죽은 ‘나’도 존재할 것이고, 밑바닥 계층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끼니를 때우는 궁핍한 ‘나’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혜성의 영향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힘으로 영화처럼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무너져 궁핍한 ‘나’가 잘사는 ‘나’의 존재를 눈치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장 빨리 인지하고, 더불어 상황 정리까지 일찌감치 마친 에밀리가 겪는 딜레마로 대신할 수 있다. 초자연적 현상에 말리면서 공황 상태에 빠진 친구들과 불행한 저녁을 보내야 하는 에밀리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에밀리, 그녀의 선택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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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2018

[영화 리뷰] 뛰어야 제맛인데 말이야! ~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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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야 제맛인데 말이야!

"'예정된 종말을 미루고 있다', 토마스도 그 말을 자주 했지" - 아바

내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영화는 볼 때는 재밌지만, 보고 나면 (그 영화가 엄청나게 재밌었더라도) 잠시 감흥에 젖을 뿐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다양한 재능과 돈을 투자해 제작한 영화지만, 관객에게 인상적인 인상을 남기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영화 제목 정도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지만, 몇 달이 지나면 삶의 온갖 잡다한 경험들처럼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힌다. 가끔 TV나 인터넷의 대중매체를 통해 재발견되는 바람에 기억의 시냅스가 반딧불처럼 반짝 켜지는 때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하루살이 기억이다. 대부분 영화는 그렇게 인생처럼 허탈하게 관객의 망각 속으로 스러진다. 이것이 비단 액션영화에 한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가 수천 편에 이르지만, 액셀 문서로 정리한 ‘영화목록’을 펼쳐보지 않으면, 제목조차 떠올릴 수 없는 영화가 대부분이니 망각의 힘은 인정사정없다.

내가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를 감상하면서 지난 이야기가 어떠했는지를 좀처럼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없었던 내 기억력의 퇴화에 대해 너무 속상하고 상심한 나머지 화풀이 삼아 몇 마디 주절거려 본 것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본 수천 편의 영화가 남긴 단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이 콜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머릿속에 들러붙어 산처럼 쌓인 덕분에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도 감명 깊게 본 소수의 작품들은 제목을 보면 한 컷 정도는 떠올릴 수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감상한 것들은 더 많은 컷을 떠올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비록 지난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리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나처럼 지난 이야기를 잘 떠올릴 수 없어도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이니, 나 같은 예비 치매 환자가 있더라도 감상 전에 너무 떨 필요는 없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1

영화는 인적없는 대지를 내달리는 기차와 맹렬하게 질주하며 기차를 추적하는 자동차로부터 시작한다. 기차에는 악명 높은 위키드 사의 실험실로 보내질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지닌 청소년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민호도 다른 면역자들과 함께 있었다. 민호의 친구인 토마스, 뉴트, 프라이는 저항 운동가들의 도움을 얻어 멋지게 객차 하나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탈취한 객차에 민호는 없었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2

열차의 종착지는 위키드 기지가 있는 곳이자 한때 찬란했던 인류 문명을 대변하는 듯한 웅장한 빌딩들이 방벽 속에 응집한 ‘최후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것은 삼엄한 경비로 보호받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료는 민호 구출 작전을 반대한다.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기였기에 민호 한 명 때문에 많은 사람을 희생할 수 없었으며, 곧 배를 타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이 기대되는 새로운 땅으로 이주할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토마스가 아니다. 토마스와 뉴트, 프라이는 밤을 틈타 다른 동료 몰래 아지트를 출발해 방벽으로 가로막힌 도시를 향해 떠난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죽은 줄 알았던 갤리를 만난다. 갤리는 방벽 밖에서 반란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3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인류 역사의 오랜 반목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최후의 도시’를 둘러싼 방벽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이스라엘을 허리띠처럼 졸라맨 ‘분리 장벽’과 미국과 멕시코를 악의적으로 가로막은 ‘국경 장벽’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좀비 영화에서 (아, 이놈의 빌어먹을 기억력!!!)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싼 ‘최후의 도시’ 역할을 하는 고층 빌딩을 본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식의 갈등과 대립, 분류는 디스토피아 풍의 영화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편에는 ‘메이즈 러너’라는 제목과 명성에 어울리는 ‘죽으라 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동적이고 스릴 넘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별 감흥 없는 평범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무지막지한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인류에게 면역자는 구원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이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가진 자들이 만약 백신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할까? 아니면 백신을 무기로 남은 인류를 지배하려고 들까? 인류 문명의 마지막 흔적이자 가진 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최후의 도시’는 디스토피아 영화답게 결국 무너지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리 길지 않았던 인류의 과거를 기억과 마음속에 묻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디스토피아 장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제임스 대시너가 쓴 원작의 결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영화가 고만고만하니만큼 원작을 읽어볼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지만, 원작의 결말도 이렇게 싱겁게 끝나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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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2018

[영화 리뷰] 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The Ice Pirates 1984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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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미트라에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재설계'되는 게 떠올라" - 수인 1
"재설계?" - 제이슨, 로스코
"그래, 거세하고 로봇화되지" - 수인 1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은 드넓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양념으로 안드로이드 병사와 레이저총도 등장하는 분명한 공상과학 장르지만, 화면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복장뿐만 아니라 칼을 휘두르고 육탄전을 벌이는 등의 전투 방식에서도 중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요즘의 현란하고 세밀한 CG에 익숙한 나에게조차 어딘가 모르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영화다. 이 신선함은 구닥다리 소품들마저 친숙하게 느껴지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어디 이뿐인가? 스타워즈에 나왔던 똘똘한 안드로이드 R2-D2를 연상시키는, 하지만 그에 비하면 확연히 엉성한 안드로이드들이 눈요깃거리로 등장하고, 쓰리피오(C-3PO)보다 더 골 때리는 로봇 병사들이 펼치는 ‘로봇 개그’ 또한 볼만하다. 한마디로 「우주 해적선」은 눈이 높아진 요즘 시청자에게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다. 다만,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오래된 문화 유적지를 별 기대 없이 돌아본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감상에 임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SF 명작 「스타워즈」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벼운 시트콤에 가까운 영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1

「우주 해적선」은 구두를 광낼 침조차 부족할 정도로 극심하게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트라 행성을 지배하는 사악한 기사단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 ‘물’을 통제했고, 소수 해적은 기사단의 통제 아래에 있는 함대에서 목숨을 걸고 얼음을 훔치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해적단의 두목인 제이슨이 안드로이드 병사와 부하들과 함께 기사단의 순양함을 습격하여 얼음을 훔친다.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잠자는 공주인 아르곤의 바스코 백작의 딸 카리나를 억지로 깨워 해적선으로 납치한다.

부하들은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드는 제이슨이 못마땅했지만,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는 두목의 미덥지 않은 대답에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제이슨 일당은 생명과 재물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얼음뿐만 아니라 계획에도 없는 공주를 훔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바로 기사단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2

해적선이 완파될 위기에 처하자 제이슨은 기사단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속셈으로 우주선을 셋으로 분리한 다음 서로 방향을 나눠 도망친다. 기사단은 추격하던 해적선이 셋으로 분리되자 나머지 두 대는 포기하고 한 대를 끝까지 추격하여 체포하는 데 성공하는데, 하필 붙잡힌 해적선에는 제이슨과 공주가 타고 있었다. 기사단에 붙잡힌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은 거세당한 노예라는 무시무시한 형별을 선고받는다.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이 거세당한 노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서 막 남자의 상징을 떼어버리려고 할 때, 어찌 된 일인지 카리나 공주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공주는 공장에서 이제 막 출하된 신상품인 제이슨 일당을 자신의 노예로 사들인다. 하지만, 우주에 공짜는 없는 법, 공주는 한때 지구처럼 물이 풍족한 행성을 찾아나섰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조건으로 그들을 사들인 것이었다. 이에 제이슨은 어쩔 수 없이 공주의 명을 받들어 공주의 실종된 아버지도 찾고,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대박 행성을 찾아 나서는데….

The Ice Pirates 1984 scene 03

사실 지금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수분은 (아주 미세한 양이지만) 우주로 증발하고 있고, 화성에는 한때 지구의 북극해보다 큰 바다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우주로 증발하는 바람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불모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단적 물 부족’이라는 「우주 해적선」의 소재가 그리 허황되지는 않다. 그런데 지구촌의 물 부족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물론 소수의 명민한 학자들은 그 이전에도 ‘물’ 문제를 경고했겠지만) 1984년에 그런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 다소 놀랍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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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018

[영화 리뷰] 재생능력을 지닌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 블리딩 스틸(Bleeding Steel, 2017)

Bleeding Steel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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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재생능력을 지닌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이봐요, 친구 가격흥정 고마웠어요. 결국…. 신뢰의 문제예요. 미안해요. 성룡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 리슨

「블리딩 스틸(机器之血, 2017)」 극장판 포스터를 보면 거대한 우주선이 도시 위를 가로지르고, 우주복 같은 것은 입은 성룡이 위기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에 떠 있다. 순간 ‘드디어 성룡이 외계인과 한판 싸우는 건가?’ 하는 기대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나의 기대와 환상은 말도 안 되는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SF 장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무한한 재생 능력을 갖춘 인공혈액, 그리고 그 인공혈액과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인공심장으로 죽지 않는 무적의 군인을 만든다는, 군국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최강의 군사력을 꿈꾸는 모든 국가의 오랜 염원을 다시 한번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성룡 영화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블리딩 스틸」에서 성룡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지붕 위에서 아찔한 무술 장면을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물론 예전만큼의 화려함은 어느덧 희끗희끗해진 성룡의 흰머리와 밭고랑처럼 패인 주름 속으로 녹아들었지만, 그럼에도 성룡을 기억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그의 건재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놓인다. 나의 시대 최고의 액션 배우인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날은, 성룡이라는 별이 진 것처럼 나의 인생도 어느덧 황혼으로 접어들었음을, 그렇게 나의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Bleeding Steel 2017 scene 01

영화 「블리딩 스틸」은 초반부터 가미카제(神風)를 연상시키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장렬한 전투로 시작한다. 린 형사(성룡)는 백혈병을 앓는 딸 시시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중요한 목격자인 제임스 박사의 신변을 확보하고자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곳에서 경찰은 특수복으로 무장한 부하를 대동하고 나타난 안드레와 마주친다. 제임스 박사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린 경사도, 그리고 제임스 박사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린 경사의 최후 반격으로 일격을 입은 안드레도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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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이 지났다. 린 형사는 여러 직업을 오가며 한 소녀를 멀리서 몰래 보호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낸시. 보육원에서 자란 낸시는 보육원 시절부터 한 남자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것을 짐작도 못 했다. 어느 때는 청소부, 또 어느 때는 정원사,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낸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식당 아저씨로, 그 남자는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처럼 낸시 곁을 맴돌았다. 두 개의 기억이 서로 얽히고설킨 혼돈의 꿈을 꾸는 와중에서 낸시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늘 곁에 머물러준 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남자가 바로 첫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년처럼 늘 자신의 곁을 서성거리는 저 아저씨라는 것을 낸시는 문득 깨닫게 된다.

시시는 제임스 박사가 개발한 인공혈액 덕분에 구사일생하지만, 인공혈액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상실한다. 한때 제임스 박사의 실험체였던 안드레는 부상을 회복하려면 시시의 인공혈액이 필요했다. 린 형사는 시시를 보육원에 보내고 그림자처럼 딸을 몰래 감시한다. 그렇게 무사히 13년은 보낼 수 있었지만, 결국 시시의 존재가 안드레에게 탄로 나게 되면서 또다시 부녀는 위험에 빠진다.

Bleeding Steel 2017 scene 03

영화 「폴리스 스토리(Police Story 2013, 2013)」 에서 보여주었던 헌신적인 부성애로 또다시 열연을 펼치는 성룡의 진득한 연기가 보기 좋다. 모든 아버지에게 있어 딸이 죽는 것보다는, 기억을 잃더라도 살아가는 것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을 그저 멀리서 지켜봐야만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블리딩 스틸」을 본다면, 성룡의 애처로운 표정에서 일어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감개가 어느새 애잔한 감동으로 화하여 내 심장으로 지그시 침투해옴을 알게 될 것이다.

만성변비 환자 같은 표정으로 일관하는 안드레의 부하, 그 일당의 철 지난 영화포스터 같은 유니폼, 중국 영화 특유의 어딘지 허접해 보이는 CG, 엉성한 이야기 등 안쓰러운 면이 꽤 있지만, 그리고 진짜 성룡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지만, 우리가 안 봐주면 누가 봐주리! 성룡이여 영원하여라. 그리고 그 초강력 재생능력을 지닌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그리고 남은 것은 나도...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블리딩 스틸(机器之血,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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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18

[영화 리뷰] 머리를 쓸어올리고 ‘라데꾸’! ~ 스트리트 파이터(初級學校覇王, 1993)

Future Cops 1993 movie po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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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쓸어올리고 ‘라데꾸’!

“또 누가 괴롭혔니?” - 대웅 엄마
“개가 그랬어요.” - 대웅
“엄마가 늘 말하듯이 기분이 안 좋으면 숨을 깊게 마시고 '세상은 아름답다'” - 대웅 엄마
“어떠냐?” - 대웅 엄마
“자살할래요.” - 대웅

에이즈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가는 바람에 남녀 사이의 ‘사랑’조차 법으로 금지된 금욕의 시대지만, 19번째 시리즈까지 제작된 도학위룡(逃學威龍)으로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2043년의 홍콩. 그런 홍콩의 어느 날, 온갖 사악한 일들을 파렴치하게 저질러왔던 장군이 드디어 체포되고, 재판은 여철웅 판사가 맡게 된다. 이에 장군 측 도당들은 장군을 방면시키려는 대범하고도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는데,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학생 여철웅을 세뇌시켜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경찰의 방해를 무릅쓰고 켄, 사가트, 혼다를 1993년의 홍콩으로 보내는데 성공한다. 장군 도당의 계략을 눈치챈 2043년 홍콩의 비룡특경은 곧바로 베가, 가일, 달심을 과거로 보낸다.

Future Cops 1993 scene 01

무사히 1993년 홍콩에 도착한 세 명의 비룡특경은 여철융 판사가 다녔던 성육강 중학교에 다니는 대웅이라는 한 남학생의 집으로 잠입해 대웅의 친구인 척하며 일부는 학생으로, 그리고 일부는 선생으로 학교에 위장전입한다. 스물여덟 살인데도 아직 학교에 다니는 낙제생 대웅은 매일 같이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도착한 비룍특경의 보호 덕분에 위세를 얻게 된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비룡특경은 대웅과 함께 여철웅을 찾기 시작한다.

Future Cops 1993 scene 02

하지만, 비룡특경이 여철웅을 찾아내기 전에 때맞춰 장군의 부하들도 학교에 잠입하고, 장군의 부하들과 비룍특경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치열한 대결이 벌어진다. 학교 선생으로 위장한 켄은 학생으로 위장한 베가에게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하여 결국엔 사망하게 하는 무서운 독인 ‘동침’('똥침'이 아님)을 적중시키고, 가일은 혼수상태에 빠진 베가를 살릴 해독약을 구하고자 빗자루 같은 머리를 한껏 쓸어올리며 결전을 다짐한 다음 켄과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렇게 미래에서 온 비룡특경과 장군의 부하들이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며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교도소에서 탈출한 장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성육강 중학교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로써 싸움의 승부가 크게 장군 측으로 기울이는 듯하자 비룍특경은 최후의 카드를 쓰기로 하는데….

Future Cops 1993 scene 03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홍콩 미녀 배우 구숙정을 비롯하여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등 90년대 홍콩 영화계를 휩쓸었던 천왕들이 대거 등장하는, 캐스팅 면에서는 어떤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거물급 영화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대경실색을 할 수밖에 없는 유치에 유치를 거듭하는 졸작이다(위의 세 번째 스크린샷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확실히 감이 잡히지 않는가?). 대부분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니만큼, 약간의 아량을 베풀어 유명 배우들의 씁쓸한 젊은 시절 연기를 봐주는 맛도 그럭저럭 음미해볼 만하다. 단, 이들의 팬이라면 말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Street Fighter'라고 알려졌지만, 원래 영어 제목은 'Future Cops'다.

도성대형 - 신가전기(睹城大亨 之 新哥傳奇: Casino Tycoon, 1992)」에서 구숙정과 부부의 인연을 맺으며 비극적인 사별의 아픔을 맛봤던 유덕화가 이 영화에서도 구숙정의 커플로 등장한다. 한편, 성룡이 주연한 「시티 헌터(城市獵人: City Hunter, 1992)」에서 대전 액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패러디한 전투 장면을 보면서 (성룡이 아니라) 구숙정이 춘리 코스프레를 맡았으면 정말 끝내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겼었는데, 그 아쉬움이 이 영화에서 속 시원하게 풀어진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Future Cops, 199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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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017

[영화 리뷰] 세 명의 ‘나’, 그중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 치명도수: RESET(致命倒數, 2017)

Reset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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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나’, 그 중 누가 살아남아야 하는가?

“너희들은 곧 파멸하게 될 거야.” - 최이후
"그의 말이 옳아. 이 세계에선 우리 중 하나만 존재할 수밖에 없어.” - 시아티엔

때는 ‘평행이론’이 증명된 가까운 미래.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평행이론을 접목한 시공간 연구에 대한 실제적인 성과를 눈앞에 둔 두 연구소가 있었다. 하나는 미국에 있는 영도 IPT 연구소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푸른 섬 넥서스 연구소였다. 하지만, 영도 IPT 연구소가 무리한 인체 실험을 강행하던 중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서 연구원이 살해되고 연구자료도 소실된다. 주주들이 들고 일어설 것이 두려웠던 IPT는 진상을 은폐하면서 재기할 기회를 노린다. 그들은 연구원 중 하나였던 최이후를 중국에 보내 넥서스의 연구 자료를 탈취할 음모를 세운다.

RESET 2017 scene 01

영장류에 대한 모의실험까지 무사히 마친 넥서스는 이제 곧 인체실험을 앞두고 있었고, 넥서스의 시공간 연구를 주도하고 있던 핵심 연구원 시아티엔은 관련 부서원들이 모두 모인 회의에서 두 달 안에 인체 실험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나온 시아티엔은 동료 연구원인 샹동을 통해 지난번 영장류 실험에서 처음에는 100% 일치했던 DNA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대로라면 인체 실험은 미뤄야 할 정도로 위험성이 높았다.

RESET 2017 scene 02

한편, 시아티엔의 하나뿐인 아들 도우도우를 납치한 최이후는 시아티엔을 협박하는 데 성공하고, 시아티엔은 최이후가 안배한 동료 연구원의 죽음을 이용해 모든 연구 자료를 최이후에게 가져다주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최이후는 약속과는 달리 도우도우를 순순히 돌려주지 않는다. 곧 넥서스 건물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고 엄마 품에 안긴 작은 소년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다. 어떻게든 아들을 되살리고 싶었던 시아티엔은 폭발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연구소로 돌아가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아들이 죽기 전 과거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

RESET 2017 scene 03

중국의 혁명 시대였다면 마땅히 아들을 희생시켜야 했지만(실제로도 그러한 혁명 열사가 많았었고), 중국이 많이 좋아지긴 했나 보다. 예전 같으면 감상적인 부르주아의 반동적인 작품이라고 비난을 받을만한 영화가 요즘은 버젓이 극장 간판에 내걸리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아무튼, 평행이론을 응용한 시간 이동을 소재로 한 영화로 시아티엔이 죽은 아들을 살리고자 과거로 여러 번 이동하는 설정은 「서유기 – 월광보합(西遊記 第壹伯零壹回 之 月光寶盒), 1994」에서 지존보(주성치)가 죽은 백정정(막문위)를 되살리고자 수시로 과거로 이동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뭐 그렇다고 그렇게 웃기는 장면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증인이다(我是证人, the witness, 2015)」에서 간드러진 코맹맹이 목소리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양미(Yang Mi, 杨幂)가 강렬한 모성애를 발휘하는 시아티엔으로 열연한다.

보통 시간여행을 소재한 영화에서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마주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평행이론의 영향 때문인지 세 명의 ‘나’가 한자리에 모이는 기이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 중에서 시간여행을 가장 많이 한 ‘나’가 유난히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영도 IPT 연구소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와 넥서스의 영장류 실험 결과 중 DNA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나름 이야기의 연결 고리를 짜맞추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영화 속 두 연구소의 대립은 앞으로 과학계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듯하다.

공상 과학 장르를 좋아하는 일인으로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양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더 큰 견인력을 발휘한 영화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치명도수: RESET(致命倒數,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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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2017

[영화 리뷰] 준수한 이야기 +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 ~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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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한 이야기 +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

“난 쑤우리 지원할게. (사령관) 잘 감시해!” - 발레리안 소령
“어디 못 가게 해놓죠. 퍽! 퍽!” - 로렐린 하사
“ … ” - 사령관

지구에 사는 각각의 국가들이 우주로 쏘아 올린 우주선들이 하나둘씩 모여 시작된 국제 우주 정거장 ‘알파’. 그랬던 것이 28세기에는 전 우주에 사는 수많은 종이 모여 살면서 지식, 정보, 문화를 교류하며 사는 거대한 우주 정거장이 되었다. 이곳 천 개의 도시 ‘알파’를 포함한 은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평화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사회는 사령관을 통해 발레리안 소령과 로렐린 하사에게 얼마 전 암시장 딜러에게 도난당한 무엇이든 복제할 수 있는 ‘뮐 컨버터(Mül converter)’를 찾아오라는 임무를 내린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벌이면서도 컨버터가 고차원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시장 ‘빅 마켓’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곧바로 키리안 행성으로 향한다.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1

한편, 임무에 나서기 전 발레리안은 꿈을 통해 우주의 시공간을 가로 질러 날라온 파장의 신호를 감지해 낸다. 그것은 30년 전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 ‘진주족’에 대한 꿈이었다. 당시 자신들의 행성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집약된 진주를 캐며 평화롭게 살던 600백만의 진주족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행성 근처에서 일어난 다른 종족들 간의 싸움에 휘말리면서 불운하게도 멸종을 맞이하고 말았다. 발레리안과 로렐린 요원이 찾는 뮐 컨버터도 진주족 행성에서만 살던 생명체로서 이제 우주에 단 하나 남은 녀석이었다.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2

뮐 컨버터를 되찾는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두 요원은 오랜만에 우주 정거장 알파로 들어서지만, 그들에겐 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부터 알파 정거장 중심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방사능 지역이 감지됐는데, 해당 지역을 정찰하러 보낸 탐사선과 특수팀이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회는 알파에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방사능 지역을 한시라도 해결되길 바랐고, 사령관은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K 트론을 투입하기로 한다. 이번 작전에서 두 요원은 예상과는 달리 사령관을 경호하는 임무만을 맡는다. 하지만, 정상 회담장에서 사령관이 침입자에게 납치되고, 발레리안은 사령관을 납치한 우주선을 추격하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이에 로렐린은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직접 발레리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이번 작전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두 사람은 비열한 음모에 묻힐뻔한 엄청난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3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은 프랑스 공상 과학 만화 『Valérian and Laureline』을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의 연출과 그 특유의 감각으로 영화화한 작품.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고 SF 영화로서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티격태격’으로 시작해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알콩달콩’으로 마무리되는 두 주인공의 애정극,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우주 괴물의 ‘깜짝’쇼와 역시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징글맞게 생겼으면서도 귀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는 외계인의 ‘수다’쇼, 그리고 또 역시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종족 간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숭고한 우정, 그리고 영화 「아바타(Avatar, 2009)」 행성의 화려함과는 달리 단조로우면서도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 깃든 진주족의 고향 행성 등 다채로운 이야기와 볼거리가 긴 상영시간으로 말미암아 간간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 그 틈새들을 튼실하게 메어놓고 있다. 사악한 음모를 파헤치고 정의를 되찾는 준수한 이야기에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을 곁들인 이 영화는 온 가족이 함께하기 좋은 영화다.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에서 진주족이 살던 고향 행성의 불운한 결말은 먼 훗날 인류가 영화처럼 우주에 널리 퍼진 다른 종족들과 교류하게 되었을 때, 혹은 (흔히 야만인으로 불릴) 인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종족과 우연히 만났을 때, 인류의 이익(아 그놈의 경제, 경제, 경제!!! 이 지긋지긋한 ‘경제’ 논리와 성장지상주의는 먼 훗날에 가서도 인류를 옭아맨단 말인가?)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영화처럼 인류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종족의 멸종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전해준다. 지금까지 사람과 그 사람이 집단을 이룬 민족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를 마땅히 희생시킨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상상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아마 영화가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주고자 했다면 바로 이런 경고는 아닐까?

마지막으로, 다크서클 오지게 진 남자주인공의 게슴츠레한 눈과 늘씬하게 빠진 몸매를 비웃듯 얼굴 한복판에 우뚝 솟은 여주인공의 들창코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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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2017

[영화 리뷰] 하늘의 '빛'을 쫒아 사라진 세 명의 청소년 ~ 피닉스 포가튼(Phoenix Forgotten, 2017)

Phoenix Forgotten, 2017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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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빛'을 쫒아 사라진 세 명의 청소년

“너희들, 우리가 무슨 일을 겪은 지 아는 거야?” - 애슐리
“누구도 이러한 영상은 찍지 못했을 걸” - 조쉬

애리조나 주 피닉스 1997년 3월 13일 목요일 밤. 어두운 밤하늘을 비행하는 정체불명의 불빛이 많은 시민에 의해 목격된다. 그날 밤 6번째 생일을 맞은 소피를 위한 생일 파티를 한창 진행하던 소피와 그녀의 가족들 역시 희한한 불빛을 목격하게 되고, 마침 생일 파티를 촬영하던 소피의 오빠 조쉬는 미확인 불빛을 카메라에 담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러나 며칠 후에 조쉬와 그의 친구 두 명은 영원히 실종된다.

Phoenix Forgotten 2017 scene 01

오빠가 실종된 지도 어느덧 20년이 흐른 어느 날. 소피는 남자친구와 함께 오래간만에 피닉스를 방문한다. 소피는 오빠를 포함해 실종된 세 명의 행방을 찾기 위한 개인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그녀는 당시 실종자 수색을 담당했던 보안관이나 공무원, 그리고 실종자 가족을 인터뷰한다. 그러던 중 소피는 평소 카메라 촬영을 즐기던 조쉬가 남긴 테이프를 검토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Phoenix Forgotten 2017 scene 02

조쉬, 애슐리, 마크 등 세 명의 실종자는 피닉스 상공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불빛을 쫓고 있었으며, 결국 그들은 UFO를 쫓아 도시를 벗어나 공군 기지가 있는 사막으로까지 여행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테이프에는 자동차를 타고 사막에 도착한 직후의 장면까지만 담겨 있었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구한 날 카메라를 달고 살았던 오빠가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카메라를 손에서 뗐을 리가 없다고 판단한 소피는 마침내 실종자가 다니던 학교 창고에서 그들이 남긴 마지막 테이프를 발견하게 된다.

Phoenix Forgotten 2017 scene 03

1997년 3월 13일 실제로 피닉스 상공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불빛 ‘Phoenix Lights’와 그날 실종된 네 명의 청년을 (영화는 세 명의 남녀로) 소재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피닉스 포가튼(Phoenix Forgotten, 2017)」.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피닉스 라이트 사건(The Phoenix Incident, 2015)」이란 영화가 이보다 먼저 발표되기도 했다.

영화 「피닉스 포가튼」은 ‘피닉스 라이트’가 목격된 날 실제로 사라진 청년들이 불빛을 쫓다가 실종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진행된다. 한마디로 ‘외계인 납치’ 쪽으로 무게를 둔 셈이다. 흥미롭지만 이미 많이 써먹은 진부한 설정이기도 한 ‘외계인 납치’ 문제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별다른 긴장감은 주지 못하고 막판에 약간의 뜨악한 영상들을 보여주고는 후다닥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 영화배우 같지 않은 평범한 외모의 배우들을 전격적으로 캐스팅한 점은 신선했지만, 관람객이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을 역이용하지도, 혹은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영화는 싱겁고 밋밋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피닉스 포가튼(Phoenix Forgotte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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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2017

[영화 리뷰] ‘개’쩌는 ‘개’악마가 ‘개’웃기는 ~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

Absolutely Anything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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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쩌는 ‘개’악마가 ‘개’웃기는

"이 인간은 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소" - 은하계 고등생물1
"개만 상태 양호합니다" - 은하계 고등생물2
"개만도 못한 인간!" - 은하계 고등생물3

인류의 염원대로 인류의 목소리와 지구 정보를 담은 우주 탐사선이 어느 지적 외계생명체 무리의 손아귀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갖잖은 쇳조각으로 은하계를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지구를 단죄하려고 들고, 이에 따라 은하계 법적 절차에 따라 지구를 파괴할지 말지 결정하는 은하계 고등생물 임시 총회를 시작한다.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1

열띤 토론이 오간 끝에 임시 총회는 자비롭게도 불쌍한 인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한다. 인류 중 아무나 한 명 골라서 울트라 무한 능력을 주어 뭐든지 할 수 있게 한 다음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는, 이른바 '은하계 선악 테스트'를 받게 하는 것이다. 악하게 사용하면 지구를 제거하고 선하게 사용하면 인류는 은하계 회원국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의 손에 인류의 운명이 달렸으면서도 이런 사실에 대해 인류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자는 게으르고 무개념에다 책임감이 없기로 정평이 난 중학교 교사인 닐 클락!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2

어떠한 불량 학생보다 더 많이 지각하는 선생이자 사람보다 강아지 데니스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은 외로운 남자 닐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 다음 오른손만 살짝 흔들면 뭐든지 다 이루어지는, 영화에서 보는 시시한 초능력보다 더 울트라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그런 능력을 갖춘 줄 몰랐다지만 그가 처음으로 능력을 사용한 곳은 바로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자신이 담당하는 교실을 파괴하여 학생 38명을 바로 골로 보내는 일이었으니….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3

개가 말을 하는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화들의 단점은 개들이 너무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는데,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에 등장하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과 언변 능력을 부여받은 ‘데니스’야말로 진짜 '개'처럼 말하고 '개'처럼 생각하는 보통의 '개'처럼, 그야말로 정말 '개' 같은 '개'이다. 그뿐만 아니라 「앱솔루틀리 애니씽」은 인간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보다 개가 더 웃기고 지구도 개가 구한다는 것! 결국, 개 때문에 끝까지 보게 되고 개 때문에 결국 웃게 되는 영화다. 고로 개 싫어하는 분은 왕비추! 그 외엔 흥미로운 소재를 생각해 보면 뭔가 더 나올법하기도 한데, ‘개’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빈약한 이야기다.

아무튼, 나도 연구, 탐사, 여행으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을 우연히 만나 닐이 받은 능력을 얻게 된다는 무엇을 할까 하는 공상을 간혹 하곤 하는데,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게 된다. 그중에서 만약 닐처럼 지구의 기아와 복지, 전쟁 문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난 굶주리는 사람을 모두 없애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집 없고 직장 없는 사람을 모두 없애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군인을 모두 없애 전쟁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은 내 생각에 동의하는가? 참고로 데니스의 목소리는 로빈 윌리엄스가 맡았는데, 「앱솔루틀리 애니씽」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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