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Recent Comments

레이블이 코미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코미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9년 4월 6일 토요일

[영화 리뷰]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 차가운 열대어(Cold Fish, 2010)

review rating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너같이 선한 인간인 척하는 거 밥맛이야.”

이제 기력이 달리는지 (비록 형편없는 문장과 유치한 내용으로 뒤범벅된 최악일지라도) ‘책 리뷰’ 한 편 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처럼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사정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매일 무대에 섰던 밤무대 가수가 피로를 못 이겨 제풀에 몇 개의 공연을 끊듯 나 역시 ‘영화 리뷰’를 끊었다. 밤무대 가수처럼 무대에 선만큼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였다면, 이까지 쫌이야 별것 아니지만, 적막한 곳에서 쓸쓸하게 놀려니 아무래도 힘에 겹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보잘것없는 필력마저 분산되다 보니 ‘책 리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시원섭섭함과 해방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로는 정말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차가운 열대어」는 그런 영화 중 세 번째 영화다. 참고로 이번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달리 원칙을 깨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열대어」가 ‘살인’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문명에 의해 억제된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라타처럼 법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살인은 견실한 이익을 남겨주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장땡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살인은 억제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마치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거나 심판하는 신처럼 착각하게 하는 살인은 그 어떤 신약도 성공하지 못한 불굴의 자신감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영화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무라타와 그의 대조적인 짝으로 딸과 아내 눈치 보기에 바쁜 샤모토를 등장시킨다. 샤모토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빈번히 잠자리를 거절당하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탈선하는 딸조차 나무라지 못할 정도로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소심한 가장이자 아버지다.

Cold-Fish-2010-movie-scene-01

기계처럼 살아가던 샤모토는 우연히 만난 무라타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본의 아니게 꼽사리로 끼게 되고, 역시나 그가 파는 물고기처럼 한마디 벙긋 못하고 무라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태연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태연스럽게 시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철두철미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무라타 앞에서 샤모토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샤모토는 무라타의 살인 놀이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게 되고, 겨우 며칠 만에 무라타는 매우 좋은 실력을 갖춘 스승임이 밝혀진다.

나라를 통째로 잃은 것처럼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던 샤모토가 무라타의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 것이다. 복받쳐 오르는 기운을 어찌할 수 없던 샤모토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남편 앞에서만 옷을 벗지 않았던 아내를 강간하려 들고, 아빠의 말을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던 시원치 않은 딸을 시원하게 짓밟아버린다.

재밌는 것은 샤모토의 분노 어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그의 소심함과 무력함의 상징처럼 보였던 안경이 벗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게 전에 안경을 벗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안경이 그동안 샤모토의 잠겨진 분노를 잠근 자물쇠라도 되었단 말인가?

Cold-Fish-2010-movie-scene-02

하지만, 살인에서만큼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샤모토는 무라타 같은 무한한 뻔뻔스러움과 ‘살인 철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까진 갖추지를 못했다. 샤모토는 보통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약간은 정직하고 약간은 양심적인 사람이었기에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환경에 지배되어 일탈했을망정 자신의 광기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무라타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무라타의 지배를 끝장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교묘하게 조정된 권위와 상황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악행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샤모토의 일탈은 ‘일탈’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나 당신이 샤모토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범죄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해서는 아니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상황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Cold-Fish-2010-movie-scene-03

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무라타처럼 누군가에게 살인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것도 그냥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그런 살인이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계산적 살인을 한 차원 뛰어넘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강장제로서의 살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라타 부부의 살인 행각이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흉악한 짓이라도 역시 안 걸리면 장땡이다. 살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보편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름의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일과 중 하나이자 즐거운 취미 생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샤모토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재밌고 짜릿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샤모토처럼?) 살인을 무시무시한 그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무라타와 엮이게 된 것 같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새 살인자가 되어 있다. 인정하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 아직 그러하질 못했다. 단지 그런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의지와 용기와 실천의 문제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황의 힘은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쳐오지만 두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편으론 샤모토는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일본 아버지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면서도, 파렴치한 문명과 되먹지도 않은 교육으로 자꾸 무언가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축 처진 뒷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안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서글픔이 소리소문없이 가슴을 저미어온다.

끝으로 무라타 부부가 사람의 몸통을 토막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물고기들이 먹기 편하게 살코기를 잘게 써는 작업 모습은 돼지를 잡고 부위별로 썰어내어 진열대에 올려놓으면서 손님들이 그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상상해 절로 흥분에 겨워하는, 그렇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성실한 푸줏간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라타 부부가 시체를 해체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만한 장면임에도 웬일인지 거부감은 없다. 마치 ‘극한 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깃덩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얼마나 많은 탐욕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차가운 열대어(冷たい熱帯魚, 2010)」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9년 3월 17일 일요일

[영화 리뷰] 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 기묘한 가족(THE ODD FAMILY, 2018)

THE-ODD-FAMILY-2018-movie-poster
review rating

이보게, 좀비 한 명 키워보게나

준걸: 아 뭐 하는 거여 시방!

남주: 아 갑자기 달려오니께

준걸: 아니 갑, 뭐 맛 들였어?

남주: 아 놀래서~

준걸: 아니 괜찮아유?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 같은 병맛과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의 좀비 로맨스가 짬뽕되어 그 무엇이 될 듯도 했을 법한, 그리고 불순물을 거르지 않은 거친 상상력이 뻗어나는 것을 기꺼이 즐겁게 영광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와 불굴의 용기를 가진 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런 영화다.

THE-ODD-FAMILY-2018-movie-screen-01

한국인이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잃어버린 강아지를 다시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영화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은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되돌릴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로서 좀비 바이러스를 묘사했는데, 「기묘한 가족」의 좀비 바이러스는 반짝이긴 하지만, 사람에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묘약이다. 그 무엇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좀비의 왕성한 활동성을 회춘의 묘약으로 진화시켰으니 기가 막힌 반전이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역대 좀비 바이러스 중에서 가장 ‘행복한 잠복기’와 가장 '유쾌한 부작용'을 가진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THE-ODD-FAMILY-2018-movie-screen-02

조지 A. 로메로 감독이 일찍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 - 시체들의 새벽(George A. Romero's Dawn Of The Dead, 1978)」에서 무의식, 무뇌충 상태에서도 쇼핑몰로 몰려드는 좀비를 통해 소비지상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현대인을 날카롭게 풍자했다면, 「기묘한 가족」의 ‘기묘한 가족’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의 돈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보여준다. 돈에 환장한 ‘기묘한 가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반쯤음 살아 있다고 봐도 무방한 '쫑비'를 회춘 기계로 혹사시키며 일확천금을 꿈꿀 때, 그것은 곧 벌어지게 될 파국을 숨기려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자 최후의 만찬이나 다름없다. 결국, 예정된 파멸은 미련 없이 세상을 덮쳐오고 마는데, 이런 아수라장이야말로 좀비 영화에서만 마음 놓고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지 않은가?

THE-ODD-FAMILY-2018-movie-screen-03

이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가 막힌 반전은 채식주의자 좀비의 등장이다. 먹성 빼면 진짜 시체(?)나 다름없는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살아 있는, 그래서 따끈따끈한 피를 질퍽하게 머금은 싱싱한 고기다. 그중에서도 좀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 엄청난 사람의 식성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의 쭈글쭈글한 뇌다. 남자가 미녀의 호리호리한 몸매에 넋을 잃듯, 좀비는 사람 뇌의 뇌쇄적인 주름에 넋을 잃는다. 그럼에도 어딘지 어설픈 좀비 ‘쫑비’는 오로지 양배추다. 여기에 마요네즈도 아닌 케첩을 끼얹으면 금상첨화다. ‘쫑비’에게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은 없다. ‘쫑비’가 토끼가 당근을 먹듯 양손에 잡힌 양배추를 정신없이 갉아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디 한번 좀비 한 마리, 하니 좀비 한 명 키워볼 텐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기묘한 가족(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영화 리뷰] 결말은 진부할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아름다운 ~ 묘성인(Meow, 2017)

Meow 2017 movie poster
review rating

결말은 진부할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아름다운

"엄마, 아빠 돈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난 우리 가족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 오유유

동물을 의인화하여 제작한 가족용 오락영화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만큼 유치하고 진부한 값싼 감동만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고만고만하고 그저 그러한 영화들도 비일비재하지만, 그래서 (최소한 나에게서 만큼은)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은 노파심에 쉽게 선택의 손길이 가지 않는 장르이지만, 그런 연유로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른 「묘성인(喵星人 Meow, 2017)」이지만, 아, 정말이지 전혀 유치하지 않고, 전혀 엉성하지 않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전혀 억지가 아닌, 그러한 CG와 연기, 이야기, 영상의 따사로운 조화로 마치 생각지도 못한 소소한 행운을 맛난 듯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이 영화는 가족용 오락 영화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걸쭉하게 되새김해준다. 그것은 빌어먹게도 눈물 콧물로도 모자라 허탈함까지 쥐어짜 내는 억지웃음과 억지감동이 아니라 샘솟듯 솟아오르는 자연스러운 감개가 오장육부를 휘감고 감치는 감동 중의 감동이다. 아무튼, 「묘성인」은 꿀꿀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꼭 꿀꿀하지 않더라도 유쾌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자리에도 만점인 영화다.

「묘성인」은 저 먼 은하계 끝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는 ‘야옹 행성’의 무자비한 침공 계획으로부터 시작한다. 야옹인들은 행성의 쇠퇴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에 야심 찬 행성 이주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 침공! 그래서 그들은 오래전에 영웅 중의 영웅들을 지구에 선발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찌 된 이유인지 수천 년간 깜깜무소식이었으니, 야옹인들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꼴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지구에서의 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조바심이 턱 밑가지 차오른 난 야옹왕은 다시 한 번 지구로 ‘야옹 전사’ 서미로를 보내기로 작정한다. 서미로는 푸른 수정처럼 빛나는 ‘비밀 병기’ 목걸이와 ‘야옹인 필살기’로 무장한 현존하는 최고의 ‘야옹 전사’이므로 오래전에 지구로 떠난 선발대의 몫까지 다하여 지구를 철저하게 섬멸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Meow 2017 scene 01

야옹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서미로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에 무사히 도착하려는 찰나에 그만 예상치 못했던 이상 기후에 휩쓸린다. 이 사고로 서미로는 왕이 그렇게도 신신당부했던 ‘비밀 병기’ 목걸이를 잃어버린다. 어느 가정집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목걸이는 그저 그런 개목걸이도 아니고, 야들야들한 귀부인 목덜미를 가려주는 호화로운 장식품도 아닌, 전사로서의 힘과 생명을 유지해주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으니 서미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구에서 이 목걸이가 없다면 서미로의 몸은 곧 분해되어 사라질 터, 하지만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분해되어 죽기 전에 가장 비슷한 생명체로 자신을 복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공중으로 분해되어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미로는 마침 ‘비밀 병기’가 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근처에서 운이 좋게도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발견한다. 정신을 곧 잃을 것 같았던 서미로는 생각하고 선택하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복제를 시작한다.

Meow 2017 scene 02

한편, 한 때 ‘신의 손’이라고 불렸던 홍콩의 은퇴한 축구 스타 오수룡은 잘 속는 철부지 같은 면 때문에 축구로 번 돈은 이미 탕진한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스타에서 직업을 구걸하는 백수로 전락한 그에겐 성질이 불 같은 아내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주여주, 장차 영화감독이 꿈인 유튜버이자 장남인 오우재, 마지막으로 한쪽 다리를 잘 못 쓰는 장애를 안고 사는 작고 귀여운 딸 오유유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 중계를 해설하는 테스트해서 참담한 실패와 비웃음을 한가득 먹고 방송국을 나온 오수룡은 축구 감독직의 성사 여부를 쥔 한 지인으로부터 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받는다. 바로 지인이 여행을 갔다 올 동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시시리를 잠시 맡게 된 것이다. 그깟 고양이 한 마리쯤이라고 가볍게 여긴 오수룡이 막상 지인으로부터 고양이를 인수받고 보니 이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돼지, 아니 돼지 같은 괴물 고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고양이가 있을 수 있을까? 평소라면 불가능했던 일일지 모르지만, 그날 오수룡이 시시리를 만난 그 운명적인 순간만큼은 가능했다. 왜냐하면, 시시리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서미로가 복제했던 그 고양이였던 것이다!

한시라도 자신의 임무를 망각할 수 없었던 서미로는 ‘비밀 병기’를 찾고자 오수룡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편, 텔레파시를 이용해 ‘야옹 카페’를 찾아가 오래전에 지구로 보내졌던 원로들을 찾아뵙는다. 서미로는 나태해진 원로들 앞에서 지구 침공의 당위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아 보지만, 이미 안락한 삶에 길든 원로들은 ‘주인만 잘 만나면 상팔자’라는 식의 심드렁한 대꾸만 할 뿐이다. 이에 격분한 서미로는 ‘지구 침공은 가족 파괴로부터’라는 선전문구를 앞세우며 자신이 직접 오슈룡 가족을 파괴함으로써 ‘야옹 전사’의 자존심을 세우기로 많은 원로 앞에서 굳세게 다짐한다.

Meow 2017 scene 03

「묘성인」은 가족용 오락영화이니만큼 결말은 다소 진부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만큼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영화다. 그래서 앞서 그렇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 가며 칭찬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SF소설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문명이 존재하는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 과연 문명은 그 종말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야옹인들이나 삼체인들처럼 적당한 외계 행성을 고른 다음 그 행성에 살던 문명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문명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예정된 운명대로 비극적이지만 장엄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문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면서까지 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런 일이 정당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타인에 의해 내 행복이 파괴되어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라는 말이지 않은가?

끝으로 「묘성인」을 보고 나니 뜬금없게도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돈’일까? 아니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일까? 라고 묻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고 어리광부리는, 가장 부모를 필요로 하고 가장 크게 부모에게 의지하는 나이는 아이의 일생 중에 찰나라고. 그 몇 년 안 되는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지 않은 부모는 쓸쓸해지는 노년이 되면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인생의 현자’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담은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는 증언하고 있다. 단순한 오락 영화일지 모르지만, 보기에 따라선 썩 괜찮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썩 괜찮은 영화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묘성인(Meow,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8년 3월 23일 금요일

[영화 리뷰] 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The Ice Pirates 1984 movie poster
review rating

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미트라에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재설계'되는 게 떠올라" - 수인 1
"재설계?" - 제이슨, 로스코
"그래, 거세하고 로봇화되지" - 수인 1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은 드넓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양념으로 안드로이드 병사와 레이저총도 등장하는 분명한 공상과학 장르지만, 화면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복장뿐만 아니라 칼을 휘두르고 육탄전을 벌이는 등의 전투 방식에서도 중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요즘의 현란하고 세밀한 CG에 익숙한 나에게조차 어딘가 모르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영화다. 이 신선함은 구닥다리 소품들마저 친숙하게 느껴지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어디 이뿐인가? 스타워즈에 나왔던 똘똘한 안드로이드 R2-D2를 연상시키는, 하지만 그에 비하면 확연히 엉성한 안드로이드들이 눈요깃거리로 등장하고, 쓰리피오(C-3PO)보다 더 골 때리는 로봇 병사들이 펼치는 ‘로봇 개그’ 또한 볼만하다. 한마디로 「우주 해적선」은 눈이 높아진 요즘 시청자에게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다. 다만,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오래된 문화 유적지를 별 기대 없이 돌아본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감상에 임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SF 명작 「스타워즈」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벼운 시트콤에 가까운 영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1

「우주 해적선」은 구두를 광낼 침조차 부족할 정도로 극심하게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트라 행성을 지배하는 사악한 기사단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 ‘물’을 통제했고, 소수 해적은 기사단의 통제 아래에 있는 함대에서 목숨을 걸고 얼음을 훔치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해적단의 두목인 제이슨이 안드로이드 병사와 부하들과 함께 기사단의 순양함을 습격하여 얼음을 훔친다.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잠자는 공주인 아르곤의 바스코 백작의 딸 카리나를 억지로 깨워 해적선으로 납치한다. 부하들은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드는 제이슨이 못마땅했지만,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는 두목의 미덥지 않은 대답에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제이슨 일당은 생명과 재물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얼음뿐만 아니라 계획에도 없는 공주를 훔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바로 기사단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2

해적선이 완파될 위기에 처하자 제이슨은 기사단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속셈으로 우주선을 셋으로 분리한 다음 서로 방향을 나눠 도망친다. 기사단은 추격하던 해적선이 셋으로 분리되자 나머지 두 대는 포기하고 한 대를 끝까지 추격하여 체포하는 데 성공하는데, 하필 붙잡힌 해적선에는 제이슨과 공주가 타고 있었다. 기사단에 붙잡힌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은 거세당한 노예라는 무시무시한 형별을 선고받는다.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이 거세당한 노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서 막 남자의 상징을 떼어버리려고 할 때, 어찌 된 일인지 카리나 공주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공주는 공장에서 이제 막 출하된 신상품인 제이슨 일당을 자신의 노예로 사들인다. 하지만, 우주에 공짜는 없는 법, 공주는 한때 지구처럼 물이 풍족한 행성을 찾아나섰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조건으로 그들을 사들인 것이었다. 이에 제이슨은 어쩔 수 없이 공주의 명을 받들어 공주의 실종된 아버지도 찾고,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대박 행성을 찾아 나서는데….

The Ice Pirates 1984 scene 03

사실 지금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수분은 (아주 미세한 양이지만) 우주로 증발하고 있고, 화성에는 한때 지구의 북극해보다 큰 바다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우주로 증발하는 바람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불모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단적 물 부족’이라는 「우주 해적선」의 소재가 그리 허황되지는 않다. 그런데 지구촌의 물 부족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물론 소수의 명민한 학자들은 그 이전에도 ‘물’ 문제를 경고했겠지만) 1984년에 그런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 다소 놀랍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8년 3월 17일 토요일

[영화 리뷰] 피안(彼岸)을 찾은 그녀는 승자! ~ 아부시반금련( I Am Not Madame Bovary, 2016)

I Am Not Madame Bovary 2016 movie poster
review rating

자신의 피안(彼岸)을 찾은 그녀는 승자!

"원래 난 올해는 고소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당신네가 이렇게 날 괴롭히니 마음을 바꿔 올해도 고소하겠어요!" - 리설련

「아부시반금련(I Am Not Madame Bovary 2016)」은 류전윈(刘震云)의 소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我不是潘金莲)』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소설을 읽어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그렇지만, 왜 소설 제목을 이따위로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중국어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면 되었을 텐데, 왜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제목을 굳이 올려놨는지, 아마 ‘반금련’이란 단어가 연상되는 선정적 이미지가 오히려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그랬을까?

아무튼, 영화 「아부시반금련」은 원작에 충실한 편이라, 류전원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좀 더 쉽고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법정 영화처럼 대사가 상당히 많은 편이라 (내가 대충 계산해본 바로는 일반 영화에 거진 두 배, 그래서 한글 자막 제작하는데도 무진 애를 먹었다) 이야기 따라가기에 벅차 영상은 놓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다만, 자상하게도 영상은 마치 망원경으로 세상을 훔쳐보는 것처럼 (조금은 답답해 보이지만 집중도는 높이는) 원형과 사각형 프레임 안에 고정되어 있어 놓칠 영이미지가 다른 영화에 비하면 적기는 하다.

「아부시반금련」에서 주인공 ‘리설련’을 열연한 판빙빙(范冰冰)은 2016년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와 2017년 아시안 필림 어워드에서, 그리고 금마장(Golden Horse Film Festival and Awards)과 금계상(Golden Rooster Awards)에서 최고 여배우상을 받았다.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어느덧 배우로서의 연륜이 물씬 묻어나오는 판빙빙의 진득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에서 ‘리설련’을 연기하는 판빙빙을 보노라면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1992)」에서 ‘귀주’ 역을 열연했던 공리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귀주’나 ‘리설련’이나 시골 아낙네라는 신분, 그리고 남편의 일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며 풍파를 일으킨다는 것도 비슷하다. 특히 리설련이 베이징에 막 도착했을 때 보여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시골 아낙네가 도시의 번잡함에 압도되어 어찌할지 모르는 그 순간의 표정은 귀주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물론 ‘리설련’ 일으킨 풍파에 비하면 ‘귀주’는 방귀만큼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중국 특유의 관료주의의 실상을 풍자적으로 폭로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I Am Not Madame Bovary 2016 scene 01

영화 「아부시반금련」은 쓸쓸하게 비가 오는 날 비닐로 급조한 우의를 입고 판사의 집을 방문하는 리설련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양손에는 판사에게 바칠 것으로 보이는 음식들이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뭔가를 부탁할 요량인가 보다. 아닌게아니라 그녀는 자신의 이혼 문제를 왕 판사에게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말인즉슨, 남편 진옥하와 자신은 집을 한 채 더 얻고자 가짜로 이혼하기로 사전에 약속하고 이혼을 했는데, 막상 이혼하기 나니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재혼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발급한 이혼증명서가 가짜가 아닌 이상, 법원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왕 판사는 약소한 재판을 거쳐 리설련과 진옥하의 이혼을 기정사실로 못 박는다.

I Am Not Madame Bovary 2016 scene 02

억울하다고 느낀 리설련은 법원장, 현장을 찾아가 하소연해보지만, 누가 시골 아낙네의 이혼 문제를 귀찮아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개똥 피하듯 그녀를 외면하고 리설련은 찬밥 대접을 받은 것도 모자라 잠시 철창신세까지 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이 힘겹게 느껴진 그녀는 소송을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다. 단, 진옥하가 진실을 말해주면 말이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진옥하를 찾아갔지만, 그는 그녀의 질문은 회피하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리설련과의 첫날밤 일을 들춰낸 다음 그녀를 ‘반금련’이라고 비난한다. 이제 그녀에게 이혼이 거짓인지 진짜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반금련’이라는 오명을 얻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분노와 억울함이 복받쳐 올랐다. 그 길로 리설련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촌 동생과 자신을 흠모하는 푸줏간 우 씨를 찾아가 살인을 계획하지만, 평범하고 겁약한 그들과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별 볼이 없는 두 남자에게 실망한 리설련은 대담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긴다. 바로 베이징으로 가기로 작정한 것이다.

I Am Not Madame Bovary 2016 scene 03

각종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판빙빙의 완숙한 연기가 일품이다. 배경에 따라, 즉 베이징이 아닌 곳에서는 원형 프레임, 베이징에서는 사각형 프레임으로 영상을 잡아내는 연출도 독특하다. 다만, 이러한 영상 기법이 무엇을 부각시키고자 하는지는 시청자의 안목에 따라 다르게 와 닿을 것 같다는 말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다. (나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굳이 내 의견을 개진하자면, 어떠한 틀에 (그것은 원형일 수도, 혹은 사각형일 수도) 얽매인 관료들의 고지식함을 에둘러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원형, 사각형 프레임에 갇힌 영상이 주는 답답함은 관료들의 융통성 없는 답답함 그 자체가 된다.

원작이 강조하는 것과 영화 「아부시반금련」이 강조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두 작품은 중국 관료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내는 데는 전혀 인색하지 않다. 누가 리설련과 귀주의 발걸음을 베이징으로 옮기게 하였을까? 원인은 간단하지만, 되씹고 되씹어봐도 그 해결책은 전혀 간단치가 않다.

하지만, 우리라고 그렇지 않은가? SBS 방송의 「궁금한 이야기 Y 397회」에서는 한 남자가 결혼도 했고, 자녀가 있음에도 호적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이 된 믿기지 않는 상황을 추적했다. 원인은 40여 년 전에 한 공무원이 남자의 주민등록번호를 호적으로 옮겨적던 중 실수한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결책은 많은 서류를 완성하여 (그중에는 어이없게도 한평생 남자와 같이 살아왔던 친어머니와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포함) 법원에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해결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 공무원의 의도치 않은 실수로 생긴 문제를 수습하는 것이 법원까지 가져가야 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도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그 남자가 받아왔던 피해는 정작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무정한 현실은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는다.

각설하고, 리설련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문명화됐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삶이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적대적이라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승자라는 점에서, 리설련은 자신의 피안(彼岸)을 찾았다는 점에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아부시반금련(I Am Not Madame Bovary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8년 2월 4일 일요일

[영화 리뷰] 머리를 쓸어올리고 ‘라데꾸’! ~ 스트리트 파이터(初級學校覇王, 1993)

Future Cops 1993 movie poter
review rating

머리를 쓸어올리고 ‘라데꾸’!

“또 누가 괴롭혔니?” - 대웅 엄마
“개가 그랬어요.” - 대웅
“엄마가 늘 말하듯이 기분이 안 좋으면 숨을 깊게 마시고 '세상은 아름답다'” - 대웅 엄마
“어떠냐?” - 대웅 엄마
“자살할래요.” - 대웅

에이즈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나가는 바람에 남녀 사이의 ‘사랑’조차 법으로 금지된 금욕의 시대지만, 19번째 시리즈까지 제작된 도학위룡(逃學威龍)으로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2043년의 홍콩. 그런 홍콩의 어느 날, 온갖 사악한 일들을 파렴치하게 저질러왔던 장군이 드디어 체포되고, 재판은 여철웅 판사가 맡게 된다. 이에 장군 측 도당들은 장군을 방면시키려는 대범하고도 기가 막힌 계획을 세우는데,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학생 여철웅을 세뇌시켜 자신들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경찰의 방해를 무릅쓰고 켄, 사가트, 혼다를 1993년의 홍콩으로 보내는데 성공한다. 장군 도당의 계략을 눈치챈 2043년 홍콩의 비룡특경은 곧바로 베가, 가일, 달심을 과거로 보낸다.

Future Cops 1993 scene 01

무사히 1993년 홍콩에 도착한 세 명의 비룡특경은 여철융 판사가 다녔던 성육강 중학교에 다니는 대웅이라는 한 남학생의 집으로 잠입해 대웅의 친구인 척하며 일부는 학생으로, 그리고 일부는 선생으로 학교에 위장전입한다. 스물여덟 살인데도 아직 학교에 다니는 낙제생 대웅은 매일 같이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도착한 비룍특경의 보호 덕분에 위세를 얻게 된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비룡특경은 대웅과 함께 여철웅을 찾기 시작한다.

Future Cops 1993 scene 02

하지만, 비룡특경이 여철웅을 찾아내기 전에 때맞춰 장군의 부하들도 학교에 잠입하고, 장군의 부하들과 비룍특경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치열한 대결이 벌어진다. 학교 선생으로 위장한 켄은 학생으로 위장한 베가에게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하여 결국엔 사망하게 하는 무서운 독인 ‘동침’('똥침'이 아님)을 적중시키고, 가일은 혼수상태에 빠진 베가를 살릴 해독약을 구하고자 빗자루 같은 머리를 한껏 쓸어올리며 결전을 다짐한 다음 켄과 일대일 결투를 벌인다. 이렇게 미래에서 온 비룡특경과 장군의 부하들이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며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교도소에서 탈출한 장군이 부하들을 이끌고 성육강 중학교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로써 싸움의 승부가 크게 장군 측으로 기울이는 듯하자 비룍특경은 최후의 카드를 쓰기로 하는데….

Future Cops 1993 scene 03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홍콩 미녀 배우 구숙정을 비롯하여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등 90년대 홍콩 영화계를 휩쓸었던 천왕들이 대거 등장하는, 캐스팅 면에서는 어떤 영화에도 뒤지지 않는 거물급 영화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대경실색을 할 수밖에 없는 유치에 유치를 거듭하는 졸작이다(위의 세 번째 스크린샷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확실히 감이 잡히지 않는가?). 대부분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니만큼, 약간의 아량을 베풀어 유명 배우들의 씁쓸한 젊은 시절 연기를 봐주는 맛도 그럭저럭 음미해볼 만하다. 단, 이들의 팬이라면 말이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Street Fighter'라고 알려졌지만, 원래 영어 제목은 'Future Cops'다.

도성대형 - 신가전기(睹城大亨 之 新哥傳奇: Casino Tycoon, 1992)」에서 구숙정과 부부의 인연을 맺으며 비극적인 사별의 아픔을 맛봤던 유덕화가 이 영화에서도 구숙정의 커플로 등장한다. 한편, 성룡이 주연한 「시티 헌터(城市獵人: City Hunter, 1992)」에서 대전 액션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패러디한 전투 장면을 보면서 (성룡이 아니라) 구숙정이 춘리 코스프레를 맡았으면 정말 끝내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겼었는데, 그 아쉬움이 이 영화에서 속 시원하게 풀어진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Future Cops, 1993)」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8년 1월 28일 일요일

[영화 리뷰] 아직도 고막을 울리는 그 ‘고르도 파이슨’ ~ 시티 헌터(City Hunter, 1992)

City Hunter 1992 poster
review rating

아직도 고막을 울리는 그 ‘고르도 파이슨’

"처형 전에 마지막 소원 말해도 되나?" - 맹파
"말해봐." - 맥도널드
"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요. 배고파 죽겠어요!" - 맹파

‘시티 헌터’로 불리는 사립 탐정 맹파에겐 절친한 친구이자 많은 일을 함께한 동료 중천이 있었다. 중천은 보란 듯이 혼자 활동하다 악당들의 습격으로 무려 20발이 넘는 총알세례를 받게 된다. 맹파가 도착했을 땐 중천은 절명하려는 찰나였다. 중천은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 짜내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맹파에게 하나뿐인 여동생 혜향을 꾀지는 말고 그저 잘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하겠다는 맹파의 맹세를 받고 나서야 중천은 편안히 눈을 감는다.

City Hunter 1992 scene 01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 어느덧 어엿한 숙녀가 된 혜향은 조수로서 맹파를 도우면서 남모르게 맹파를 좋아하게 되지만, 맹파는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지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늘씬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호색한인지라 혜향은 늘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애간장만 태울 뿐이다.

City Hunter 1992 scene 02

그러던 어느 날, 중천은 일본의 저명한 신문사를 경영하는 거부로부터 가출한 딸 시즈코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맹파는 한 미모하는 시즈코를 추적하고자 화물칸에 몰래 잠입하는 수법으로 호화 유람선에 탑승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맹파에게 화가 난 혜향은 홧김으로 자신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능글맞은 사촌 오빠와 함께 맹파 몰래 유람선에 탑승한다. 한편, 유람선에는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 계획으로 ‘맥도날드’ 갱단이 숨어들어 있었고, 이들의 계획을 저지하고자 비밀경찰 사에코도 유람선에 오른다. 처음에는 별일 없는 듯하다가 시즈코가 갱단들의 계획을 몰래 엿듣던 것이 탄로 나면서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하는데….

City Hunter 1992 scene 03

‘북두신권’, ‘슬램덩크’, ‘드래곤 볼’ 등과 더불어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이콘 중 하나였던 일본만화 ‘시티 헌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나도 친구 따라 만화방을 다니면서 ‘시티 헌터’와 ‘드래곤 볼’, ‘이나중 탁구부’, '천재 유교수의 생활' 등을 본 기억이 난다. 그중 시티 헌터는 OST와 애니메이션이 녹음된 테이프로(성우가 굶직하게 내뱉는 '고르도 파이슨(콜트 파이슨)'이라는 음성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딘가에 아직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원작에 등장하는 ‘시티 헌터’ 이미지와 영화 「시티 헌터(City Hunter, 1992)」 속 성룡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여자 뒤꽁무니를 발정이 난 개처럼 따라다닌다는 점을 빼고는 판이하지만, 성룡의 코믹 액션과 더불어 역시 그 당시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뭇남자들의 밤잠을 못 이루게 했던 왕조현과 구숙정의 완숙한 미모도 볼 수 있어 참으로 기분 좋은 영화다. 한편, 영화에는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남학생들에게서는 절대 잊힐 수 없는 또 다른 아이콘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대전 액션 게임의 전설 ‘스트리터 파이터 2’이다. 전기에 감전된 성룡은 악당과 대결하는 혼전 중에 혼다, 가일, 달심 등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데 그중 춘리가 압권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춘리 역할만은 구숙정이 맡았으면 (「스트리트 파이터(初級學校覇王, 1993)」에서 구숙정이 춘리로 변신한다!) 정말 끝내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시티 헌터(City Hunter, 1992)」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영화 리뷰] ‘개’쩌는 ‘개’악마가 ‘개’웃기는 ~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

Absolutely Anything movie poster
review rating

‘개’쩌는 ‘개’악마가 ‘개’웃기는

"이 인간은 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소" - 은하계 고등생물1
"개만 상태 양호합니다" - 은하계 고등생물2
"개만도 못한 인간!" - 은하계 고등생물3

인류의 염원대로 인류의 목소리와 지구 정보를 담은 우주 탐사선이 어느 지적 외계생명체 무리의 손아귀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갖잖은 쇳조각으로 은하계를 교란시켰다는 이유로 지구를 단죄하려고 들고, 이에 따라 은하계 법적 절차에 따라 지구를 파괴할지 말지 결정하는 은하계 고등생물 임시 총회를 시작한다.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1

열띤 토론이 오간 끝에 임시 총회는 자비롭게도 불쌍한 인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한다. 인류 중 아무나 한 명 골라서 울트라 무한 능력을 주어 뭐든지 할 수 있게 한 다음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는, 이른바 '은하계 선악 테스트'를 받게 하는 것이다. 악하게 사용하면 지구를 제거하고 선하게 사용하면 인류는 은하계 회원국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의 손에 인류의 운명이 달렸으면서도 이런 사실에 대해 인류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그렇게 해서 선택된 자는 게으르고 무개념에다 책임감이 없기로 정평이 난 중학교 교사인 닐 클락!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2

어떠한 불량 학생보다 더 많이 지각하는 선생이자 사람보다 강아지 데니스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은 외로운 남자 닐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 다음 오른손만 살짝 흔들면 뭐든지 다 이루어지는, 영화에서 보는 시시한 초능력보다 더 울트라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그런 능력을 갖춘 줄 몰랐다지만 그가 처음으로 능력을 사용한 곳은 바로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자신이 담당하는 교실을 파괴하여 학생 38명을 바로 골로 보내는 일이었으니….

Absolutely Anything, 2015 scene 03

개가 말을 하는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화들의 단점은 개들이 너무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는데,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에 등장하는 이성적인 사고 능력과 언변 능력을 부여받은 ‘데니스’야말로 진짜 '개'처럼 말하고 '개'처럼 생각하는 보통의 '개'처럼, 그야말로 정말 '개' 같은 '개'이다. 그뿐만 아니라 「앱솔루틀리 애니씽」은 인간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보다 개가 더 웃기고 지구도 개가 구한다는 것! 결국, 개 때문에 끝까지 보게 되고 개 때문에 결국 웃게 되는 영화다. 고로 개 싫어하는 분은 왕비추! 그 외엔 흥미로운 소재를 생각해 보면 뭔가 더 나올법하기도 한데, ‘개’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빈약한 이야기다.

아무튼, 나도 연구, 탐사, 여행으로 지구를 찾은 외계인을 우연히 만나 닐이 받은 능력을 얻게 된다는 무엇을 할까 하는 공상을 간혹 하곤 하는데,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하게 된다. 그중에서 만약 닐처럼 지구의 기아와 복지, 전쟁 문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난 굶주리는 사람을 모두 없애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집 없고 직장 없는 사람을 모두 없애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 군인을 모두 없애 전쟁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신은 내 생각에 동의하는가? 참고로 데니스의 목소리는 로빈 윌리엄스가 맡았는데, 「앱솔루틀리 애니씽」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앱솔루틀리 애니씽(Absolutely Anything, 2015)」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7년 11월 27일 월요일

[영화 리뷰] '모범 경찰'과 '모범 마을'의 한 판 승부 ~ 뜨거운 녀석들(Hot Fuzz, 2007)

Hot Fuzz 2007 movie poster
review rating

'모범 경찰'과 '모범 마을'의 한 판 승부

"그러니까 도와줘. 같이 해결하자 파트너" - 엔젤
"잊어버려, 여긴 샌포드라구" - 대니

런던 경찰서에서 가장 높은 검거율을 기록하는 우수한 경찰 니콜라스 엔젤은 드디어 경사로 승진하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샌포드라는 시골 마을로의 전근이었다. 자신처럼 유능한 경찰이 ‘올해의 마을’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범죄가 없는 시골로 좌천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엔젤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이 오히려 동료 경찰의 따가운 시샘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경찰청장은 엔젤이 너무 설쳐대는 바람에 동료가 일할 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엔젤의 전근 거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 중독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아내와도 별거 중인 엔젤은 레옹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꼭 조그만 화분을 들고 다니듯 애지중지하는 백합 화분을 들고 쓸쓸하게 먼 길을 홀로 떠난다.

Hot Fuzz 2007 scene 01

밤늦게 샌포드에 도착한 엔젤은 마을 호텔에 자리를 잡은 마을 분위기나 좀 살피면서 목 좀 축일 겸 근처 술집에 들어선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저희 가게는 18세 이하에겐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푯말이 무색하게 술집 안은 맥주를 홀짝거리는 10대들로 장사진이었다. 이를 술집 주인에게 지적하자 주인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Hot Fuzz 2007 scene 02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엔젤이 다음 날 정식으로 샌포드 경찰서에 출근하고 나서 마주친 상황은 너무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경찰서는 경찰로서의 의무감이나 의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덜떨어지고 나태한, 한마디로 무늬만 경찰인 사람들로 가득 찬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의심쩍은 사건들로 계속 죽어나가도 경찰은 술집 주인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안일함과 무관심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엔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로 사귄 파트너 대니와 함께 마을에서 벌어지는 수상쩍은 일들을 본격적으로 캐내기 시작하는데….

Hot Fuzz 2007 scene 03

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에서 지구를 끝장내는 알코올 중독자와 좀비와 맞서 싸우는 아둔하고 덜떨어진 역할로 나왔던 사이먼 페그(니콜라스 엔젤 역)가 영화 「뜨거운 녀석들(Hot Fuzz, 2007)」에서는 뜻밖에(?) 너무 유능한 나머지 왕따까지 당하는 무적 경찰로 나온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 특유의 ‘코믹’ 요소에 무려 백 편 이상의 액션 영화를 참조해서 완성했다는 ‘액션’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코믹 액션’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편으론, 이제 좀 익숙해진 닉 프로스트(대니 버터만 역)과의 푸근한 콤비도 좋다. 그런데 「뜨거운 녀석들」은 코믹 액션치고는 민간인 사망자가 상당한 반면에 악당 사망자는 달랑 한 명이라는 것이 좀 의외?

아무튼, 황당한 웃음과 폼 나는 액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같은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줄 영화로서 초중반은 ‘병맛’인 경찰들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최소 암 중기까지 보장하지만, 막판 화끈하게 터지는 액션과 통쾌한 마무리로 암이 말기로 진입하기 전에 깨끗하게 완치시켜주는 자비로움을 선사하는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영화 「뜨거운 녀석들(Hot Fuzz, 2007)」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영화 리뷰] '병맛 코디미'를 보는 것도 우리 권리야! ~ 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The World's End, 2013 poster movie
review rating

'병맛 코디미'를 보는 것도 우리 권리야!

"이봐! 병신이 되는 것도 인간의 기본 권리야! 이 문명은 병신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리고 그거 알아? 그 점이 난 자랑스러워" - 게리
"나도 그래!" - 앤디

게리와 그의 친구 올리버, 피터, 스티븐, 앤디는 고등학교 생활을 마감하는 날 영웅적인 거사의 일환으로 ‘골든 마일(Golden Mile)’을 시도했었다. 고향인 뉴턴 헤이븐을 둘러싼 12개의 술집을 돌며 맥주 한 잔씩을 마시는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였지만, 막상 시도해 보니 왕성한 혈기에도 그들은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게리와 친구들은 각자 짊어진 인생을 일궈나가기 위해 세상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The World's End 2013 scene 01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게리가 40대에 접어든 어느 날. 게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골든 마일’을 다시 시도하려고 흩어진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다. 게리 특유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집요한 설득에 넘어간 친구들은 게리가 고등학교 때부터 몰던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고물 자동차 ‘야수’를 타고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The World's End 2013 scene 02

지긋지긋했던 곳이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성장한 고향인지라 뭔가 기대를 품고 찾아온 ‘5총사’ 앞에 뉴턴 헤이븐은 그들을 기억하지도 못할뿐더러 거리와 술집은 낯선 마을 사람들로 가득했음에도 마을 분위기는 마치 영화 속 배경에 자리 잡은 한낱 소품 같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묘한 차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별생각 없이 세월 탓으로 가볍게 돌린 그들은 예정대로 1호 술집 ‘우체통 주점’부터 시작하여 언제 끝날지 모를 ‘골든 마일’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그들이 네 번째 술집에 이르렀을 때, 인류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꿀 엄청난 일을 겪게 되는데….

The World's End 2013 scene 03

술주정뱅이 말발에 지구의 운명을 맡긴, 덕분에 깔끔하게 인류 문명이 풍비박산한다는, 왠지 모르게 통쾌하고 가슴 속이 후련하면서도 황당한 영화 「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어떤 병맛 같은 코미디를 연출하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맛’이라 모두가 다 같은 ‘병맛’은 아니다. 영화 「지구가 끝장 나는 날」은 정갈하게 엄선된 난장판을 한 번 더 뒤집어버리는 혁신과도 같은 기발함과 번뜩이는 재치로 가득한, ‘병맛’ 중의 ‘병맛’이다.

하지만, 영화니까 인류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인류 문명이 한 줌의 흙으로 증발하는 무시무시한 장면들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지, 만약 실제로 저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 그 술주정뱅이는 히틀러+스탈린+폴 포드 등을 합산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류사 최악의 인물로 평가받는 것과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겠지.

아무튼, 외계 문명이 자신들의 지적 우월함을 강조하며 인류에게 자신들에게 동화되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서구가 자신들 문명의 우월함을 과시하며 제국주의적 야심을 불태웠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지금도 서구인이나 한국처럼 좀 살 만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 발전 등의 문명이 주는 혜택이 인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망상에 집착하는 걸 보면 외계인의 행동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지구가 끝장 나는 날(The World's End, 2013)」 제작사에 있습니다
Share:

Category

관심 사용자

Recent Comments

Blog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