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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6.

[영화 리뷰]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Minority-Report-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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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세 명의 예지자가 미래의 살인 사건을 예측하는 능력을 이용해 범죄 예방 수사국을 운영하던 워싱턴 경찰은 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구상 중이고, 연방정부는 워트워 요원을 파견하여 시스템을 감시한다.

Minority-Report-2002

한편, 6년 전 아직 잡히지 않은 납치범에게 아들을 잃은 범죄 예방 수사국 팀장 존 앤더튼은 현재의 범죄 예방 시스템만 있었다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며 모든 노력을 미래의 살인자를 추적하는데 쏟는다.

Minority-Report-2002

그러던 어느 날, 시스템은 앤더튼이 살인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지자들이 예견한 피살자의 이름조차 모르던 앤더튼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수사국을 뛰쳐나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경찰에 쫓기면서 피살자를 찾아나선 앤더튼은 결국 예지자들이 본 미래대로 피살자에게 자신의 총을 겨누고 마는데….

Minority-Report-2002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을 쓴 필립 K. 딕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직 원작을 못 봤지만, SF 장르에 철학적 요소를 훌륭하게 배합한 필립 특유의 작품 성향이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유 의지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사람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닐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미래가 예측될 수 있다면, 사람의 삶은 노예, 로봇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브라더 시대가 무서운 것.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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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

[영화 리뷰] 대륙의 미모에 흠뻑 반하다 ~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

The-Heaven-Sword-and-the-Dragon-Saber-drama-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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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미모에 흠뻑 반하다

가면 갈수록 중국 배우들의 미모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자본주의의 힘 때문이니라. 중국에 영화산업이 꽃 피우면서 ─ 한때 천시받던 계층인 ─ 배우가 돈뿐만 아니라 명성도 얻음으로써 중국인이 목숨을 거는 체면치레를 거하게 할 수 있음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인재가 모인 덕분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요즘 잘 나가는 중국 여배우들의 미모는 1970~80년대 중국 배우들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이유로 중국 축구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축구 선수를 돈과 명성을 얻는 출세의 길로 보는 부자 부모가 재능에 상관없이 자식들을 축구 선수로 키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축구의 길로 들어선 사람에게 과연 어떠한 동기 부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요즘 중국 축구 선수들에게서 좀처럼 근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인구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도 어렵지만, 정말 내 추측대로 축구를 출세로 향한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중국 축구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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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나오는 김용 원작의 드라마들이지만, 지겹기는커녕 매번 반갑게 느껴지고 또 새로운 리메이크작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 몇 번을 읽어도 물리지 않는 ─ 원작의 재미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녀들의 향연이 엄청난 감상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에는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보다 더 가슴 설레게 하는 배우가 등장한다. 행여 꿈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연정을 품게 하는 배우 진옥기(陈钰琪)이다.

The-Heaven-Sword-and-the-Dragon-Saber-drama-2019

조민 역을 맡은 진옥기(陈钰琪)의 아름다움은 대륙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특히 빨아들이는 듯한 영민한 눈동자가 매혹적이다. 물론 주지약 역을 맡은 배우 축서단(祝绪丹)의 미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내가 진옥기(陈钰琪)에게 반한 것은 미모도 미모지만, 조민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무척이나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덜떨어진 여자나 내숭 같은 것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난 솔직하고 언행일치가 확고하고 영민한 조민이라는 캐릭터가 참으로 마음에 든다. 조민의 이런 강인한 성격에 잘 들어맞는 이미지를 풍기는 진옥기는 황용 역을 맡은 이일동만큼이나 최고의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The-Heaven-Sword-and-the-Dragon-Saber-drama-2019

북한 미인은 순수한 멋이 있고, 남한 미인은 도도한 멋이 있다면 중국 미인은 기품이 있다고나 할까나? 확실히 대륙의 미인은 남다르다.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내용이야 다 뻔히 아는 사실이고, 또 알면서도 보는 것이 김용의 드라마 아닌가? 검열에 잘린 부분도 있다고 하고, 원작과 다른 부분도 있고, 그래서 예전 리메이크 작품만 못하다는 평도 있지만, 내가 볼 땐 ─ 남자라면 ─ 진옥기(陈钰琪) 때문이라도 꼭 봐야 하는 작품이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번 더 감히 말하자면, 마지막 편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나처럼 이별의 아픔으로 펄펄 끓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게 되리라.

참고로 현재 중국 여자 스타 순위에서 진옥기(陈钰琪)는 23위, 이일동(李一桐)은 24위, 축서단(祝绪丹)은 27위인 것을 보면 내 눈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에 따라 멋대로 자판을 두드려서 나온 품평이니 너무 개의치 않았으면 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의천도룡기(倚天屠龙记, 2019)」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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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7.

[영화 리뷰]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 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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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걸까?"

올드팬이라면 고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의 삭발이 항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삭발이 간간이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감상한 중국 무협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는 주인공 한두 명이 아니라 떼거리로 삭발을 감행했다. 영호충을 애틋하게 사모하는 의림을 비롯한 항산파 비구니 모두, 그리고 비록 마교에 속한 몸이지만 의리 하나만은 죽여주는 전백광이 영호충과의 내기에서 져 의림의 제자가 되고 나서 역시 삭발한다. 의림이나 전백광은 비중이 높은 배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산파의 나머지 제자들도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삭발했다. 혹은 진짜 비구니들을 캐스팅한 것일까? 아무튼, 스님이나 비구니처럼 삭발이 필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진짜로 삭발을 해버렸다. 당연히 인자함의 끝판을 보이는 방증대사도 가발이 아닌 진짜 삭발이다. 열연을 향한 배우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에 반해 감히 몇 자 적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그냥 저 주먹에 맞아 죽고 싶어라>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똑같은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는 확실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이다. 나처럼 원작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사람도 이번에는 영호충 같은 영웅이나 황용 같은 미녀 역할을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력으로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사실 김용 소설이나 그것을 드라마한 영상이나 몇 번을 읽고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도 일품이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 원작의 등장인물과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인물과 잘 어울리는지 품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연인이라기보다는 사이 좋은 남매>

그런 면에서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배역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톡톡 튀고 재기 넘치는 황용의 이미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편 어수룩한 곽정 역할을 맡은 양욱문(杨旭文) 같은 경우 처음에는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보면서 익숙해질 정도는 되었다.

한편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 영호충 역을 맡은 정관삼(丁冠森)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최악의 배역이었다. 왠지 류덕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앳되고 어딘지 덜 여문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외모는 걸걸하고 호탕한 영호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임영영 역할을 맡은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설호정(薛昊婧)의 성숙한 외모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미모 속에 영악함을 숨기기는커녕 그녀의 너무 진지한 미모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치 영호충이 남동생처럼 보인다.

차라리 남봉황 역할을 맡은 유가동(刘珈彤)이 더 돋보인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신소오강호’에서는 동방불패의 짝으로 등장하는데, 남봉황은 임아행 앞에서 유일하게 할 소리 다 하는 여장부다운 시원시원한 기개를 선보인다. 또한, 의림 역할을 맡은 강탁군(姜卓君)의 바람에 홀려 흐늘거리는 버들가지 같은 가녀린 외모와 귀여운 연기가 일품이다. 특히 삭발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늙은 내 심장이 허덕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밀어야 할 사람은 다 밀었다>

‘신소오강호’는 기존처럼 원작을 그대로 외운 듯한 똑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연이나 기연을 조금 더 앞부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작부터 주요 인물이 모두 열거된다. 일례로 영호충과 임영영의 만남, 영호충의 임아행 구출, 동방불패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지루함을 덜을 수 있으며, 드라마는 원작의 그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소오강호’가 ‘사조영웅전(2017)’보다 확실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액션 장면이다. ‘사조영웅전(2017)’ 같은 경우는 대결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대역들이 등장하지만, ‘신소오강호’는 최대한 배우들이 액션을 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대역보다는 검을 다루는 모습이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설픔 속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깃든 것 같아 보기 좋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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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5.

[영화 리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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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너희들이 지금껏 다른 애들한테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빼앗았는지 알아? 모두가 테렌스 셋맨처럼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야."

가까운 미래, 인류와 문명의 번영이 폭발적인 인구 과잉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인류는 ‘1가구 1자녀’라는 ‘아동제한법’을 통과시켜 무지막지한 인구 증가에 무지막지한 제동을 건다. 법을 위반하여 초과 생산된 아이는 먼 훗날, 지금보다 덜 붐비는 시기까지 냉동 창고에 보관된 생선처럼 강제로 냉동수면 처리된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자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량을 남발한 인류는 그 대가로 급격한 기형아 출산 시대로 접어든다. 사랑도 매우 조심스럽게 나누어야 하고 먹거리조차 안전하지 못한 불운의 시대에 최고의 불행은 따로 있으니 바로 재앙과도 같은 쌍둥이 출산이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그러던 어느 날 테렌스 셋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서슬 퍼런 ‘아동제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다산을 딸이 어기고 만 것인데, 그것도 두세 명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쌍둥이를 낳은 것!

하루아침에 6명의 불법 자녀를 둔 범법자가 된 테렌스 셋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이 낳은 7명의 쌍둥이를 모두 감당하기로 하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을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에서는 ‘카렌 셋맨’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만 살아갈 것을 명한다. ‘먼데이’가 ‘월요일’날 외출해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다른 자매들과 공유해야 하고, 만약 한 명이 다쳐 손가락을 잃는다면 나머지 6명 모두 똑같이 손가락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엄격한 할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무사히 30년이 지난 어느 날, ‘먼데이’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의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영화도 그런 점을 반영해서 그런지 화면에 시종일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대홍수가 난 것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인구를 생각하면 어쩔 땐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중국조차 성공하지 못한 ‘산아제한’으로 인구 문제를 다스리기에는 사람의 번식 본능이 미련스럽게도 강렬하다. 내 생각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참혹하고 잔인하고 슬픈 시련의 시기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쟁과 기아가 결국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걸면서 인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자처럼 비명을 아주 긴 시간 내지를 것이다.

사실 영화처럼 끔찍한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냉동인간이 되어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후로 현재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병들고 늙는 것을 극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내가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쓴 이유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 1인 4역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마이크 마이어스(Michael John Myers)를 뛰어넘는 누미 라파스(Noomi Rapace)의 1인 7역을 한 번쯤은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보면서 설마 했는데, 영화 정보를 보니 1인 7역이 맞았다. 출연료도 7인분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 라파스의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뇌리에 각인시키는 조각상 같은 인상적인 얼굴이 내뿜는 이상야릇한 매력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7배는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운이 다한다면 영화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해 수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주 먼 훗날, 살아남은 인류는 이 두 선택을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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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0.

[영화 리뷰]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Infernal Affairs II 200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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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경찰 여러분! 놈이 날 죽이면 맘대로 쏘시오. 뿌린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 한침

「무간도」 1편에 이어 2편도 다시 봤다.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꽉 짜인 이야기로 관객의 숨통을 틀어잡고, 명불허전 명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관객의 혼마저 빼놓는, 마치 죄업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지옥처럼 완전무결한 1편을 봤으니, 감성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2편을 보는 것이 도리다. ‘도리도리 짝짜꿍’의 즐거운 도리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진중한 ‘도리’ 말이다.

「무간도」 2편은 1편보다 약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범죄조직의 경찰 쪽 첩자로서의 임무를 시작하는 그 전후를 시작으로 한침이 홍콩 범죄 조직의 거두로 부상하고 진영인이 그 밑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고로 1편의 경찰학교 장면에서 잠깐 등장했던 두 배우 진관희, 여문락이 유덕화와 양조위를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이유도 밝혀진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1

영화는 황 국장과 한침이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한침이 작은 보스 정도로 대우받는 시절이었고, 경찰은 ‘삼합회’ 보스 예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에 두 사람은 거창하게 우정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는,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만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예곤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암살당한다. 조직은 순신 간에 혼란에 휩싸이고 이 기회를 틈타 회동을 한 한침을 제외한 네 명의 작은 두목들은 예가(倪家)에게 더는 세금을 내지 않기로 하면서 배신을 예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보스 자리에 오른 예영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하나로 네 명의 작은 보스들을 무참히 사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부터 예곤에게 충성했던 한침마저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2

한편, 한침의 부하인 유건명은 한침이 제공하는 자잘한 정보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며 경찰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 유건명의 동기생 진영인은 예영호의 이복동생이라는 이유로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하지만, 황 국장은 전교 1등의 수재를 이대로 썩힐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호의 동생이다. 그가 만약 예영호 밑으로 들어가 경찰 첩자로 활약해 준다면 예가를 일망타진한다는 학수고대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진영호가 이 어려운 제안을 받아줄지가 문제였다. 뜻밖에도 진영호는 선뜻 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예영호 밑에서 차근차근 보스 수업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예영호를 무너트릴 정보를 모은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3

영화 속 대사에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사실 진짜 뿌린 만큼 거둘 것 같은 농사일도 일조량, 강수량 등 기후 변화와 병충해 발생 정도에 따라 뿌린 만큼 거둘 때도 있고, 그보다 더 거둘 때도 있고, 때론 본전도 못 뽑을 때도 있다. 세상일이 영화 속 대사처럼 뿌린 만큼 거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공평할 것이다. 뿌린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뿌린 것을 싹 쓸어 가는 짜증 나는 사람들은 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하니, 이를 예외로 인정한다면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나름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 암살당한 보스가 자주 했다는 이 말은 딱 두 사람만이 들먹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한침과 예영호다. 두 사람 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웃지 못할 공통점이 있는데, 그 격언을 자주 들먹인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격언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니 결국 영화는 그렇게 비비 꼬아가며 현란하게 전개한 이야기를 통해 ‘권선징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고픈 의욕에 도를 넘어선 짓까지 자행한 황 국장, 잠입경찰로서 조직범죄에 깊숙이 가담한 진영호도 죽는다. 주요 등장인물이 뿌린 만큼 거둔 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들 자신의 출세와 입지를 굳히고자 보스와 동료를 배신한 유건명 역시 죽어야 한다. 아직 3편은 못 봤지만 말이다. 뭐, 안 죽으면 그만이고. 아무튼, 죄업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물론 영화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오늘따라 머릿속이 왜 이리 둔탁한지, 영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단박에 증명하듯 나의 횡성수설로 어질러진 리뷰가 되고 말았다. 1편보다는 아주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내 졸렬한 문장으로 선뜻 표현하기 어려운 감흥과 감개가 확실히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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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2.

[영화 리뷰] 뛰어야 제맛인데 말이야! ~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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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야 제맛인데 말이야!

"'예정된 종말을 미루고 있다', 토마스도 그 말을 자주 했지" - 아바

내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영화는 볼 때는 재밌지만, 보고 나면 (그 영화가 엄청나게 재밌었더라도) 잠시 감흥에 젖을 뿐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다양한 재능과 돈을 투자해 제작한 영화지만, 관객에게 인상적인 인상을 남기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영화 제목 정도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지만, 몇 달이 지나면 삶의 온갖 잡다한 경험들처럼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힌다. 가끔 TV나 인터넷의 대중매체를 통해 재발견되는 바람에 기억의 시냅스가 반딧불처럼 반짝 켜지는 때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하루살이 기억이다. 대부분 영화는 그렇게 인생처럼 허탈하게 관객의 망각 속으로 스러진다. 이것이 비단 액션영화에 한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가 수천 편에 이르지만, 액셀 문서로 정리한 ‘영화목록’을 펼쳐보지 않으면, 제목조차 떠올릴 수 없는 영화가 대부분이니 망각의 힘은 인정사정없다.

내가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를 감상하면서 지난 이야기가 어떠했는지를 좀처럼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없었던 내 기억력의 퇴화에 대해 너무 속상하고 상심한 나머지 화풀이 삼아 몇 마디 주절거려 본 것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본 수천 편의 영화가 남긴 단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이 콜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머릿속에 들러붙어 산처럼 쌓인 덕분에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도 감명 깊게 본 소수의 작품들은 제목을 보면 한 컷 정도는 떠올릴 수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감상한 것들은 더 많은 컷을 떠올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비록 지난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리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나처럼 지난 이야기를 잘 떠올릴 수 없어도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이니, 나 같은 예비 치매 환자가 있더라도 감상 전에 너무 떨 필요는 없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1

영화는 인적없는 대지를 내달리는 기차와 맹렬하게 질주하며 기차를 추적하는 자동차로부터 시작한다. 기차에는 악명 높은 위키드 사의 실험실로 보내질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지닌 청소년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민호도 다른 면역자들과 함께 있었다. 민호의 친구인 토마스, 뉴트, 프라이는 저항 운동가들의 도움을 얻어 멋지게 객차 하나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탈취한 객차에 민호는 없었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2

열차의 종착지는 위키드 기지가 있는 곳이자 한때 찬란했던 인류 문명을 대변하는 듯한 웅장한 빌딩들이 방벽 속에 응집한 ‘최후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것은 삼엄한 경비로 보호받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료는 민호 구출 작전을 반대한다.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기였기에 민호 한 명 때문에 많은 사람을 희생할 수 없었으며, 곧 배를 타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이 기대되는 새로운 땅으로 이주할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토마스가 아니다. 토마스와 뉴트, 프라이는 밤을 틈타 다른 동료 몰래 아지트를 출발해 방벽으로 가로막힌 도시를 향해 떠난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죽은 줄 알았던 갤리를 만난다. 갤리는 방벽 밖에서 반란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7 scene 03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인류 역사의 오랜 반목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최후의 도시’를 둘러싼 방벽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이스라엘을 허리띠처럼 졸라맨 ‘분리 장벽’과 미국과 멕시코를 악의적으로 가로막은 ‘국경 장벽’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좀비 영화에서 (아, 이놈의 빌어먹을 기억력!!!)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싼 ‘최후의 도시’ 역할을 하는 고층 빌딩을 본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식의 갈등과 대립, 분류는 디스토피아 풍의 영화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편에는 ‘메이즈 러너’라는 제목과 명성에 어울리는 ‘죽으라 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동적이고 스릴 넘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별 감흥 없는 평범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무지막지한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인류에게 면역자는 구원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이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가진 자들이 만약 백신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할까? 아니면 백신을 무기로 남은 인류를 지배하려고 들까? 인류 문명의 마지막 흔적이자 가진 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최후의 도시’는 디스토피아 영화답게 결국 무너지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리 길지 않았던 인류의 과거를 기억과 마음속에 묻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디스토피아 장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제임스 대시너가 쓴 원작의 결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영화가 고만고만하니만큼 원작을 읽어볼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지만, 원작의 결말도 이렇게 싱겁게 끝나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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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5.

[영화 리뷰] 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 추룡(Chasing the Dragon, 2017)

Chasing the Dragon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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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영국인들의 적이 되려는 거야? 우린 놈들을 못 이겨!” - 록

“누가 그래요? 난 홍콩의 마약 거래를 장악하고 있어요. 홍콩 경찰들이 내 돈을 먹고산다고요! 내 말 한마디면 경찰청도 불 지를 수 있어요!” - 오세호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오세호(견자단)의 목소리를 빌려 ‘1974년 이전의 홍콩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문장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HongKong: Independent Commission)’였다. 염정공서는 1974년 홍콩 경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 문제가 비대해지자 정부가 내린 특별 조치로 탄생한 부패 척결 기구다.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암투와 그들의 피 비린내 진동하는 비정한 세계를 다룬 ‘홍콩 느와르’도 염정공서 탄생 이전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그 당시 홍콩 경찰은 썩을 대로 썩었다는 말이다. 그러하니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사다. 참고로 작가 찬호께이(陳浩基)는 2013년의 홍콩 경찰도 1967년의 홍콩 경찰처럼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염려를 자신의 추리소설 (내가 ‘염정공서’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한) 『13.67』을 통해 나타냈다. 이 소설에는 홍콩 경찰을 은유하는 전설적인 형사 관전둬를 통해 홍콩 경찰의 암울한 현재를 떨쳐버리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홍콩 경찰의 어두운 역사와 함께 추리소설의 묘미를 온전히 갖춘 수작이니 이 자리를 빌려 추천한다.

아무튼, 「추룡」은 적당히 부패한 경찰 락(유덕화)과 새로운 마약 범죄 조직의 두목으로 떠오를 오세호 사이의 야릇한 우정의 시작으로 펼쳐 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1

경무관 자리를 놓고 고참 안과 경쟁 중인 록은 안의 생일 파티에서 평소 홍콩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헌터 치안감이 행패를 부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압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안에게 뺨을 얻어맞는 치욕이었다. 헌터가 무슨 짓을 해도 그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홍콩 경찰은 손을 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 냉정함을 되찾은 록은 파티장을 빠져나온다.

한편, 본토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오세호 일당은 몇 년째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울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들은 ‘광대’와 ‘회색곰’이라는 두 조직 간의 싸움에 일당을 받고 인원수를 채워주는 부하로 고용된다. 그런데 평소처럼 말싸움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이날은 누군가의 도발로 진짜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마치 불구경하듯 관망하던 경찰 간부들은 싸움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부하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다. 곧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싸움판을 덮쳐오고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이 무자비하게 조직원들을 내리찍는 가운데, 오세호 일당은 용케 난장판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재미난 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사냥 나온 헌터에게 뒷덜미가 잡힌다. 영국인이라고 순순히 붙잡힐 오세호가 아니었으니, 오세호는 날렵한 무술 실력을 발휘하여 헌터를 두들겨팬다. 록이 상황을 제압하고 나서야 구겨질 대로 구겨진 헌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2

록은 자기를 대신해 헌터를 두들겨 팬 오세호가 고맙기도 하고 그의 무술 실력이 대견하기도 해서 자신이 구상하는 새로운 계획에 오세호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록은 현재 홍콩의 어수선한 범죄 조직을 정리하고 자신이 통제하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거침없는 오세호의 합세로 일은 급물살을 타듯 신속하게 진행된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홍콩의 떠오르는 실세가 된다. 홍콩법이 미치지 않는 무법천지의 ‘구룡’을 독차지한 오세호는 기세등등한 나머지 록이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경찰 조직에 너무 많은 뇌물을 주는가 하면, 경찰서에 정보원을 심어놓기도 해 록의 의심을 산다.

한편,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낀 록은 마약 공급자를 두 배로 늘려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마약을 공급받을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고자 오세호를 태국으로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 쳐 놓은 함정에 빠진 오세호는 목숨은 겨우 건지지만, 총격전으로 친구 한 명을 잃는 비통함을 맛본다. 오세호는 이번 일의 배후에 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는데….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3

「추룡」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두목 사이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다룬 영화지만, 보통의 범죄 영화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는 복수극 같은 통쾌한 맛이나 우정 어린 의리가 자아내는 진한 감동 같은 것은 없다. 암울했던 시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그런 인위적이고 극적인 요소는 일부러 절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미친 말처럼 앞으로만 내달리는 오세호와 그런 오세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사태를 제어하려는 록의 냉철함이 시종일관 관객의 뇌리를 자극한다. 언제 어디 어느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의 표본 격인 록은 ‘엄정공서’의 칼날이 미치기 전에 도피에 성공하고, 화를 못 참고 날뛰는 망나니의 예정된 결말처럼 오세호는 그 대가를 치르면서 영화 「추룡」은 막을 내린다. 현실처럼 머리 좋은 악당은 끝내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는 음울하면서도 개운하지 못한 뒷맛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에 상투적으로 따라붙는 비정함과는 또 다른 감상평을 제공해준다. 참고로 이 영화는 「To Be Number One (跛豪, 1991)」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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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3.

[영화 리뷰] 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 마약전쟁(Drug War, 2013)

Drug War 201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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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제발 살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형님…. 형님. 죽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필요하잖아요. 아직 쓸모가 있을 거예요." - 차이톈밍

수많은 범죄영화를 보아왔지만, 「마약전쟁(毒戰 Drug War, 2013)」처럼 살육과 피로 얼룩진 잔혹하고 처참한 결말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영화는 참말로 오랜만인 것 같다. 「마약전쟁」은 마약 범죄 세계의 비정함을 숨김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는 일말의 자비심도,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눈에 익은 등장인물들은 장 반장을 포함해 모조리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아 버린다. 사선이 교차하는 총격전처럼 죽음과 운명의 가혹함이 교차하는 범죄 현장에서 그 누구도 최후의 안식을 빗겨갈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혹하게도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사형만은 모면하고자 경찰에 자진 협력했던 쥐새끼 같은 한 범죄자에게 농락당한 결과라니, 영화는 무디지만, 살갗 정도는 뚫을 정도로 날이 선 허무함의 삼지창으로 관객의 가슴 한복판을 내리꽂는 격이 아닌가! RottenTomatoes의 높은 점수만 봐도 이 영화가 보는 이마다 각자 다른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냉혹한 허무함이었다면, 당신은 무엇인가?

Drug War 2013 scene 01

「마약전쟁」은 마약에 취한 채 자동차를 운전하다 상점으로 돌진하고 마는 차이톈밍이라는 마약 딜러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사고 직전에 자신이 운영하던 마약 제조 공장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폭발하는 바람에 아내와 처남들을 잃었다. 너무 놀란 그는 가족들의 시신을 챙길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차를 타고 도망쳐 나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간 차이톈밍은 운이 없게도 진하이 마약단속반 반장 장레이와 딱 마주친다. 장 반장은 좀 전에 인체에 마약을 숨겨 밀반입하던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그 용의자들의 신체를 검사하고자 병원에 있었던 것인데, 우연히 병원 침대에서 자고 있던 차이톈밍의 용태를 보자마자 마약중독자임을 간파해낸다. 깨어나자마자 경찰의 감시가 붙어 있는 걸 눈치챈 차이톈밍은 민첩하게 병실을 빠져나가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 영안실에서 붙잡히고 만다.

Drug War 2013 scene 02

차이톈밍의 신상을 파악한 경찰은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률로 압박하고, 곧바로 꼬리를 내린 차이톈밍은 형량을 줄이는 조건으로 자진해서 경찰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경찰은 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약 밀매 조직의 거물 리전뱌오 일당을 잡아들일 작전을 추진한다. 차이톈밍은 자신이 리전뱌오의 조카 리슈창과 진하이 항구에서 대규모 선박을 보유한 운송업자인 하하를 막 연결해줄 참이었다고 진술한다. 이미 하하에게 전달할 마약이 트럭에 한가득 실린 채 진하이로 향하고 있었다. 장 반장은 리슈창과 하하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서 착안한, 즉 자신이 ‘리슈창’과 ‘하하’로 위장하여 두 사람을 속이면서 차근차근 리전뱌오에 접근하기로 하는 한편, 차이톈밍이 알려준 벙어리 형제들이 운영하는 또 다른 마약 제조 공장을 급습할 계획도 세운다.

Drug War 2013 scene 03

숨 가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범죄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경찰들의 일사불란함을 대견하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한편으로는 배우들의 극진한 연기에 감탄할 틈도 주지 않고 궁극스럽게 참혹한 결말로 밀어붙이는 「마약전쟁」이 얄궂기만 하다. 어떻게든 마약 조직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싶은 남자의 의지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남자의 의지가 엇갈리며 빚어내는 이 한 편의 잔혹사는 마치 운명의 혹박함을 대변해주는 듯해 소름 돋는다. 그럼에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단숨에 정신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마약 같은 흡입력을 발휘하는 대단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중국의 법은 역시 무시무시하다. 법이 무시무시하니 사형 방법도 옛날처럼 총살로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매우 현대적이게도 약물주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가 무거우면 ‘즉시’ 처형할 수 있다. 실제로 마약사범을 운동장에서 공개심판하고 선고 뒤 즉시 장소를 옮겨 처형된 일화가 있다고 한다. 난 공포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 강도나 뇌물, 청탁 등의 공무원 부패 관련 범죄는 계획적인 범죄(즉,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범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범죄)는 즉결 처형되었으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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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7.

[영화 리뷰] 스타들의 옛 풋풋함과 함량 미달 연기를 보는 즐거움 ~ 특경도룡(Tiger Cage, 1988)

Tiger Cage 1988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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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옛 풋풋함과 함량 미달 연기를 보는 즐거움

“잘 들어!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랑 황 반장” - 신유

“그리고 나!” - 테리

“그래, 명심해! 개인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 알았어?” - 신유

어느새 불혹을 뛰어넘고 지천명을 지나 갑 언저리를 배회하는 스타들의 풋풋했던 옛 홍콩 배우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 「특경도룡(Tiger Cage, 1988)」. 그 중 견자단, 임달화는 여전히 중견배우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고, 최근에 출연한 영화가 없는 장학우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듯하다. 한때 주성치와 명콤비를 이루며 많은 팬에게 웃음바다를 안겨줬던 오맹달이 진지한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인 것 같다. 얼마 전에 감상한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에서 관음증에 도취한 정신병자로서 미친 듯한 연기를 펼쳤던 임달화의 조각상 같은 젊은 시절 모습은 왠지 장국영을 닮은 것 같아 서글픔을 자아내기도 한다. 장학우와 견자단의 홍콩 배우 시절 모습은 한 사람은 말썽꾸러기, 한 사람은 불량 청소년 같다. 그 밖에도 그때 그 시절 홍콩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악역으로 등장하여 뭇 관객들의 악의 없는 욕을 한몸에 받았던 몇몇 배우들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특경도룡」의 이야기는 배우들에서 그윽하게 퍼져나오는 추억의 달콤함과는 달리 당시 유행했던 홍콩 누아르처럼 무자비하기 그지없다.

영화 「특경도룡」은 홍콩 경찰의 특수 마약반원들이 마약 조직을 급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황 반장 휘하의 혈기왕성한 젊은 형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작전에서 경찰은 마약 조직을 타진하는 데는 성과를 거두지만 쌍권총을 난사하며 끈질기게 도망친 두목 제두홍은 그만 놓치고 만다. 무사히 아지트로 돌아온 제두홍은 복수를 다짐하고, 한바탕 몸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마약반원들은 형사 커플인 서형과 셀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조촐한 파티를 연다. 파티를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던 때, 장난꾸러기 기질이 발동한 신유는 서형의 자동차에 최루가스를 몰래 장착한다. 셀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차에 올라탄 서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동차 키를 돌려 시동을 건다. 엔진이 점화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안은 자욱한 최루가스로 가득 차고 당황한 서형은 재빨리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때 어디선가 '홍반장'처럼 갑자기 나타난 제두홍이 서형 앞에 타고 온 차를 세우고 총을 난사한다. 최루가스 때문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서형은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한다.

Tiger Cage 1988 scene 01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에 눈이 먼 서형의 동료들은 경찰이란 신분도 잊은 채 오로지 복수하고픈 일념으로 경찰로서는 해서는 안 될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먹이를 쫓는 늑대처럼 제두홍을 찾아 나선다. 국장의 심한 질책 속에도 수사는 결실을 보아 배를 타고 홍콩을 떠나려는 제두홍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제두홍이 자신을 끌고 가는 타숙에게 알쏭달쏭한 말을 넌지시 건네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타숙은 제두홍에게 총을 빼앗긴 것 같은 사고를 꾸미고, 이를 위험한 상황으로 인지한 동료는 제두홍을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Tiger Cage 1988 scene 02

한편, 신유는 우연히 타숙이 마약 조직과 밀거래를 하는 현장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경찰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타숙에게 배신감을 느낀 신유는 이 사실을 곧 황 반장에게 알린다. 신유가 황 반장에게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하려고 가던 중 여자친구 에이미 때문에 일이 잠시 지체되면서 본의 아니게 타숙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테리가 비디오를 보게 된다. 자신과 타숙을 한편으로 의심해 일부러 이 사실을 숨겼다고 오해한 테리가 신유를 호되게 비난한다. 두 사람은 위험천만하게 도로 한복판에서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지만, 아무리 아버지 같은 타숙이라도 부패 경찰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한다. 이들이 모르는 다른 상황에서는 죽은 서형의 유품을 정리하던 황 반장과 셀리가 거액이 든 통장과 신분 위장용 여권들을 발견하면서 서형이 마약 조직과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Tiger Cage 1988 scene 03

초장부터 권총을 난사하는 처참한 액션장면이 관객을 자극하지만, 그 당시 홍콩 영화가 그러하듯, 악당의 권총 탄알은 모드(Mod)된 게임처럼 무한으로 형사들을 쏘아붙이고, 형사의 권총은 하필 중요한 순간에서 곤란하게 총알이 떨어지는, 요즘 영화처럼 사실적인 맛은 가히 떨어지는 액션 범죄 영화다. 내용도 그야말로 무법천지를 보는 것 같아 잔혹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려고 애써 노력한 임달화와 (내겐) 처음으로 코믹 연기가 아닌 다른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오맹달, 견자단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대일 무술 장면, 무법천지의 비정한 세계다운 화끈한 결말은 나름 괜찮았다. 이쯤 결말을 짓자면, 「특경도룡」은 그 당시 흔하고 흔했던 고만고만한 홍콩 액션 영화 중 하나지만, 주연배우들이 여전히 스타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의 풋풋한 옛 모습과 지금의 원숙한 연기와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비교되는 함량 미달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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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23.

[영화 리뷰] 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The Ice Pirates 1984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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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사랑을 찾아…

"미트라에 다가갈수록 사람들이 '재설계'되는 게 떠올라" - 수인 1
"재설계?" - 제이슨, 로스코
"그래, 거세하고 로봇화되지" - 수인 1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은 드넓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양념으로 안드로이드 병사와 레이저총도 등장하는 분명한 공상과학 장르지만, 화면을 활보하는 사람들의 복장뿐만 아니라 칼을 휘두르고 육탄전을 벌이는 등의 전투 방식에서도 중세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래서 요즘의 현란하고 세밀한 CG에 익숙한 나에게조차 어딘가 모르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영화다. 이 신선함은 구닥다리 소품들마저 친숙하게 느껴지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어디 이뿐인가? 스타워즈에 나왔던 똘똘한 안드로이드 R2-D2를 연상시키는, 하지만 그에 비하면 확연히 엉성한 안드로이드들이 눈요깃거리로 등장하고, 쓰리피오(C-3PO)보다 더 골 때리는 로봇 병사들이 펼치는 ‘로봇 개그’ 또한 볼만하다. 한마디로 「우주 해적선」은 눈이 높아진 요즘 시청자에게도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영화다. 다만,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오래된 문화 유적지를 별 기대 없이 돌아본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감상에 임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SF 명작 「스타워즈」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훨씬 가벼운 시트콤에 가까운 영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1

「우주 해적선」은 구두를 광낼 침조차 부족할 정도로 극심하게 물 부족에 시달리는 아득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트라 행성을 지배하는 사악한 기사단이 유일한 가치를 지닌 ‘물’을 통제했고, 소수 해적은 기사단의 통제 아래에 있는 함대에서 목숨을 걸고 얼음을 훔치는 것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해적단의 두목인 제이슨이 안드로이드 병사와 부하들과 함께 기사단의 순양함을 습격하여 얼음을 훔친다. 그 과정에서 제이슨은 잠자는 공주인 아르곤의 바스코 백작의 딸 카리나를 억지로 깨워 해적선으로 납치한다. 부하들은 쓸데없이 일을 크게 만드는 제이슨이 못마땅했지만,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서라는 두목의 미덥지 않은 대답에 불만을 잠재워야 했다. 제이슨 일당은 생명과 재물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얼음뿐만 아니라 계획에도 없는 공주를 훔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바로 기사단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다.

The Ice Pirates 1984 scene 02

해적선이 완파될 위기에 처하자 제이슨은 기사단의 추격을 뿌리치려는 속셈으로 우주선을 셋으로 분리한 다음 서로 방향을 나눠 도망친다. 기사단은 추격하던 해적선이 셋으로 분리되자 나머지 두 대는 포기하고 한 대를 끝까지 추격하여 체포하는 데 성공하는데, 하필 붙잡힌 해적선에는 제이슨과 공주가 타고 있었다. 기사단에 붙잡힌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은 거세당한 노예라는 무시무시한 형별을 선고받는다. 제이슨과 그의 부하들이 거세당한 노예들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에서 막 남자의 상징을 떼어버리려고 할 때, 어찌 된 일인지 카리나 공주가 나타나 위기를 모면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공주는 공장에서 이제 막 출하된 신상품인 제이슨 일당을 자신의 노예로 사들인다. 하지만, 우주에 공짜는 없는 법, 공주는 한때 지구처럼 물이 풍족한 행성을 찾아나섰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는 조건으로 그들을 사들인 것이었다. 이에 제이슨은 어쩔 수 없이 공주의 명을 받들어 공주의 실종된 아버지도 찾고,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대박 행성을 찾아 나서는데….

The Ice Pirates 1984 scene 03

사실 지금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수분은 (아주 미세한 양이지만) 우주로 증발하고 있고, 화성에는 한때 지구의 북극해보다 큰 바다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우주로 증발하는 바람에 생명체가 살아가기 어려운 불모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극단적 물 부족’이라는 「우주 해적선」의 소재가 그리 허황되지는 않다. 그런데 지구촌의 물 부족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물론 소수의 명민한 학자들은 그 이전에도 ‘물’ 문제를 경고했겠지만) 1984년에 그런 소재를 다뤘다는 점이 다소 놀랍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우주 해적선(The Ice Pirates, 198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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