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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일 일요일

[책 리뷰] ‘리뷰’는 정직해야 한다 ~ 사신의 술래잡기(마옌난)

In the name of sin book cover

‘리뷰’는 정직해야 한다

Original Title: 以罪为名 by 罪恶倾城
“한 사람을 죽이는 데는 품이 많이 들지. 하지만 이렇게 수십번 찌르면서도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모삼, 느껴봐라. 내가 찌른 칼자루의 깊이와 그 각도를.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너는 모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육의 미학이다.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 p9”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 리뷰’

가 되지도 않는 글 실력으로 재미는 없고 뻣뻣하기만 한 ‘책 리뷰’를 굳이 쓰려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만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추천하기 위해서다. 자식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어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누군가 내 리뷰를 읽고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어 의식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런 연고로 최대한 스포일러는 자제하면서 내가 소개하는 책을 읽어볼 요량은 생기도록, 혹은 내가 소개하는 책의 책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호기심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고픈, 그런 갸륵함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횡설수설 같으면서도 나름 진지한 마음으로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런 ‘책 리뷰’ 쓰기에는 좋은 ‘책 리뷰’는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용이 풍족하고 책의 핵심이 잘 요약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도록 호기심을 부추기는, 그래서 그 책을 읽어볼 마음이 無에서 불쑥 솟아오르도록 만드는 글이라는, 아무리 잘 쓴 리뷰라도 책을 읽는 것에 비교해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나의 철학이 담겨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목적만 보면 책 파는 장사꾼 같은 상술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속마음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배움과 앎에 굶주린 사람이 책을 훔친 것은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이 생존을 위해 음식을 훔친 것처럼 용서해줘야 한다는 옛사람의 관용에 담긴 깊은 속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한 사람이라도 책을 더 가까이했으면 하는 간절함과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시민 사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포부다. "누군가 큰돈을 훔치면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지만, 누군가 굶주림에 음식을 훔쳤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라는 어느 중국 시민의 지당한 말씀처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 역시 사회의 책임이다. 고로 난 누군가의 육체적 굶주림에 하등 보탬은 되지 못할지라도, 정신적 빈곤을 해갈하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작은 바람에서 ‘책 리뷰’를 쓴다.

굳이 리뷰를 남기지 않아도 될 책인데도, 굳이 리뷰를 남기는 이유

런데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는 책은 최소한 추천할만한 장점이라든가, 아니면 내세울 만한 뭔가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말발도 서고, 할 말도 더러 있게 되는데, (매우 드문 경우지만) 간혹 내 선택의 잘못으로 영양가가 전혀 없는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작가나 번역한 사람에게는 미안하게도 마옌난(馬燕楠)의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가 그러한 경우다. 삼류 소설로 분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한 텍스트, ‘영혼’, ‘개성’ 등등을 운운하는 것이 매우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진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두 주인공, 산책하는 사람의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바짝 마른 낙엽처럼 독자가 책장을 넘기는 가냘픈 손짓에도 부서질 것 같은 버석버석한 구성, 마지막으로 오 팀장이 두 주인공 모삼과 무즈선을 대하는 말투가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등 번역상의 오류 등 이런저런 짧고 굵직한 흠들이 대뜸 마음속을 휘젓다 보니 책에 대한 흥미도도 떨어지고, 책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지니 장르 소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매력이라 할 수 있는 긴장감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읽는 도중에 중도하차하고 싶은 뻐근한 간절함이 독자를 능히 괴롭히고도 남는, 그런 소설이다.

그런 연유로 양심상 이 책을 차마 추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별 4개 수준의 평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명한 N 영화 사이트에는 ‘평점 알바’가 평점과 댓글을 조작한다는 비난과 조롱의 글을 쉽게 볼 수 있긴 한데, 도서 쪽도 이런 비열한 상업주의에서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정말 별점 알바는 존재했던 것이다. 참고로 구글과 바이두에서 저자 이름인 ‘馬燕楠’의 검색 페이지가 달랑 두 페이지인 것을 보면 마옌난은 그렇게 많이 알려진 작가도 아니고, 바이두에서 ‘以罪爲名’로 검색하면 ‘罪恶倾城’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 텍스트로 공개되어 있는데, 구글 번역으로만 봐도 『사신의 술래잡기』와 같은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아마 (중국에서는 종이책으로 출판된 것 같지는 않은) 인터넷 소설을 중국인이 한국어로 번역해 종이책으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첫 시작이 있고, 또한 유명세가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읽는 소중한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한 보통 수준 이상의 작품을 접하고 싶은 독자의 욕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책을 번역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판사 역시 이러한 점을 응당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책을 한국어로 옮겼을까? 그것도 출판사의 첫 작품으로? 거의 무모한 시도에 가까운 도전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여기서 남의 비즈니스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고, 간섭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마디 충고한다면, 앞으로는 번역할 책을 선택함에 좀 더 신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그런고로 평점은 정직해야만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에 대한 평점은 정직하지 못하다. 보통 인터넷 평점은 나보다 후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이것은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그래서 굳이 리뷰를 남기지 않아도 될 책인데도, 굳이 리뷰를 남기고 있다.

마치면서...

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 읽었던 중국 장르 소설 계통을 개척한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참신한 작품들 때문이었다. 굳이 언급하자면, 찬호께이(陳浩基)의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 등등.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내 ‘책 리뷰’ 사상 최고의 가혹한 리뷰가 되었지만, ‘정직’을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최고의 미덕 중 하나로 믿는 나로서는 도저히 입에 침을 바르면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 책이 평점 4점을 받았다는 황당한 작태가 나의 앙상한 손가락을 자극해 키보드 워리어로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반드시 한마디라도 남겨야 한다면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 중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 파일과 부검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범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호기심을 넉넉하게 자극할 수 있는 책 뒤표지의 문구가 그나마 무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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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일 일요일

[책 리뷰]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살인자 ~ 알렉스(피에르 르메트르)

Alex book cover
review rating

미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살인자

원제: Alex by Pierre Lemaitre
불행한 여자, 곧잘 계획적이면서도 나약하고, 고혹적이면서도 자멸의 충동에 시달리는, 경찰이 아무리 수사망을 넓혀도 결국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는 살인범, 거대한 이 밤의 여인 알렉스 흘릴 눈물조차 메말라버린 알렉스. (『알렉스(Alex)』, p372)

은 새장 속에 갇혀 고통받는 아름다운 여인, 고어물에나 등장할법한 잔인한 수법으로 여섯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평생 아물 수 없는 가혹한 상처를 입은 여린 소녀. 경악을 금치 못할 잔혹한 살인범이지만 끝내 독자의 마음속에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비참하면서도 애처로운 사연을 단말마처럼 남기고 떠난, 미워할 수 없는 가련하고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 어떤 이유로든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면, 소녀의 마음속에 살의를 품게 하는 파렴치하고 간악한 자들의 행태는 정당한가. 한 소녀의 정신적 성장마저 가로막은, 마음속 깊이 무겁게 가라앉은 십 년 묵은 원한이 시위를 당긴 화살이 원수에게 명중하지 못한다면 결국 되돌아와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리라는 것을, 원수가 아니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토록 절박한 상황에서도 살인은 미워해야만 하는 죄인가?

워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살인자가 등장하는 『알렉스(Alex)』는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의 다른 작품 『실업자(Cadres Noirs)』처럼 범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양산해낸다는 나름의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회파 미스터리다. 이런 점만이 아니라 『알렉스(Alex)』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와 알렉스를 추적하는 ‘땅딸보’ 형사 카미유의 (솔직히 말해 두 사람의 육체적 대조가 더 흥미롭지만) 심리적 설정과 구성은 여타 범죄 소설과는 달리 단순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알렉스처럼 카미유도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산다. 명색이 강력계 형사임에도 납치범으로부터 아내를 구해내지 못한 자괴감과 예술과 양육에서 예술을 선택하며 자신을 버린 냉정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은 강박관념처럼 카미유의 신경 세포들을 괴롭힌다. 그래도 세월 속에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가 싶었더니 알렉스의 납치 사건을 통해서, 그리고 알렉스의 과거를 통해서 카미유의 상처는 다시 터질 수밖에 없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알렉스를 추적하며 자신의 상처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에서 카미유는 알렉스를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야만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운명적인 계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알렉스에 대한 집요한 추적에는 단순히 형사의 의무가 아니라 마치 자신과 싸우고 집 나간 딸을 찾는 아빠의 간곡함과 애틋함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로 쫓고 쫓기며 생존 대결을 펼치는 살인마와 형사지만, 정서적 안정을 기반으로 인격의 기초가 다져져야 하는 가정이 뿌리째 뽑혀버렸다는 점과 납치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알렉스와 카미유 두 사람은 같은 상처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카미유는 알렉스의 가슴 아픈 과거가 밝혀지기 전에 이미 그녀의 살인에서 단순한 광적 기질이 아니라 애틋하고 수수로운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이러한 카미유와 알렉스의 묘한 공감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카미유의 스케치 실력에서 어렴풋이나마 드러난다. 틈만 나면 알렉스의 초상화를 그리는 카미유의 집념에는 단순히 몽타주를 완성하겠다는 직업적 의무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 카미유의 그림 속 그녀는 생글거리며 웃거나 하염없이 울기도 한다. 때론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다. 형사임에도 감히 살의를 품어서는 안 될 대상에까지 강한 살의를 품곤 하는 카미유는 몽타주를 빙자한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알렉스의 고적한 살의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어루만져주면서 동병상련의 교감을 나누고 싶었을까? 하지만, 끝내 살아있는 실물은 보지 못했으니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리다 만 초상화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괴짜 형사 카미유와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아름다운 살인자 알렉스의 이루어지지 못한 만남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며칠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까칠한 보풀을 일으키며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한마디로 추리 소설적인 스릴감과 범죄 소설적인 통쾌함에 이례적으로 도스토옙스키적인 내면의 고독과 투시까지 겸비한 범죄 소설 같지 않은 범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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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일 금요일

[책 리뷰] 그가 채용 시험에 베레타를 들고 간 이유는? ~ 실업자(피에르 르메트르)

그가 채용 시험에 베레타를 들고 간 이유는?

원제: Cadres Noirs by Pierre Lemaitre
내 이름은 알랭 들랑브르이고, 나이는 쉰일곱이다. 전에는 간부급 회사원이었으나 현재는 실업자다. (『실업자』, 16쪽)

설 『실업자: 신은 나에게 직장을 주어야 했다(Cadres Noirs by Pierre Lemaitre』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와 그리고 책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주인공을 간단하면서도 뭔가 의미심장하게 소개하는 앞의 인용문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by 夏目漱石)』의 유명한 첫 구절을 연상시킨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임희선 옮김, 생각처럼, 5쪽)

주인공 알랭(Alain Delambre)은 일본의 이름없는 고양이가 대체로 얌전하게 지내면서 인간사를 통찰했던 것과는 반대로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한 개인사를 한 시대의 역사로 승화시킨다. 그가 겪는 실업 문제는 그 외에도 다수가 겪고, 그 원인과 여파가 불황의 고리에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누구가 겪고, 또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이유로 개인적 문제로 미루어버린다.

아무튼, 알랭은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의 그 위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알랭은 일반적인 실업자처럼 사회적 지위나 소득의 적고 많음에 개의치 않으면서 오직 일자리만을 찾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예전에 자동차를 두 대나 굴리던 한창 잘 나가던 시기의 그 자리, 또는 그와 비슷한 자리만을 찾으려고 했고, 거기서 그의 비극은 시작된 거일지도 모른다. 대공황 시절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추락이 실제 자살로 이끌었던 것처럼 알랭은 자신의 추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자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하나의 장애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에 기초를 둔 소비사회에서는 직업과 그가 가진 경제적 능력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상층이 그러하듯, 이들은 현재의 수입과 그 수입이 지속할 것이라는 순전히 자신들만의 예측으로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는 실수를 범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측하지 못한 실업은 한때 꿈처럼 달콤했던 장기 대출의 가면을 벗기고 악마로 탈바꿈하게 하여 한 가족의 파멸을 불러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랭은 온갖 잡부의 일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예전의 그 자리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리고 4년 만에 절호의 기회가 온다. 그런데 그 기회란 것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한 대기업이 지사의 정리해고를 맡을 냉정하고 과감한 간부를 선발하는 자리인데, 그들은 이 계획에 참여하는 알랭 같은 지원자들과 회사 간부들에게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채 미리 사전에 모의한 인질극에 휘말리게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시킴으로써 간부들의 자질과 기업 가치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해보겠다는 것이다. 인질극이라는 마지막 채용 시험까지 올라온 알랭을 포함한 네 명의 지원자들은 인질극 상황을 이끌어가면서 회사 간부들을 테스트하고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능력도 테스트 된다.

이런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채용 시험에 알랭의 아내 니콜은 격렬하게 반대하지만, 알랭은 거짓말까지 섞어가며 아내를 진정시킨다. 알랭은 채용 시험 준비를 위해 ‘개자식’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딸의 아파트 구입 자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전직 경찰관인 인질극 전문가를 고용하여 조언까지 받는다. 한편으론 탐정을 고용하여 선발 대상 간부들의 경력이나 사생활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모으며 채용 시험을 준비한다. 이처럼 필살의 심혈을 기울여 채용 시험을 준비하던 그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실탄이 장전된 베레타를 들고 묵묵히 채용 시험장으로 향한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손에 권총을 들게 하였을까?

본 추리소설의 한 부류인 사회파 미스터리를 연상시키는 『실업자』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른 작품처럼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재미가 보장되는 소설이다. 초반에는 약한 불로 한약 달이듯 느슨하게 유지하다가 알랭의 손에 베레타가 쥐어진 순간부터는 더비 경기(Derby Match)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스며 나온다. 이런 절정을 한 차례 더 겪고 난 후인 중후반부터는 조금 싱거워지고 다시 느슨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흥미진진하고 구성도 꽤 튼튼한 추리/범죄소설이다. 여기에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실업자의 비애와 기업 윤리의 추락 등 사회적 문젯거리도 심심치 않게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씁쓸한 결말은 많은 사람에겐 위안이 되면서도 실제로는 소수만이 체득할 수 있는 진리, 즉 돈만으로는 결코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진부한 사실을 허무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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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1일 금요일

[책 리뷰] 정신착란, 살인, 도피, 그리고... ~ 웨딩드레스(피에르 르메트르)

시간 나면 읽어볼 만한 책

정신착란, 살인, 도피, 그리고 범인과의 맞대결

원제: Robe de Marie by Pierre Lemaitre
그 여자에게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본능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웨딩드레스』, 257쪽)

건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장소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았다. 소피는 도무지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렇게 시작되었다. 남편의 생일선물도, 조금 전에 주차한 차도 자신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장바구니에 집어넣은 기억이 없는 물건 때문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다. 갑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산만해진 행동 때문에 소피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결정타가 터졌다.

소피는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서로 격렬하게 증오하던 시어머니의 등을 힘껏 떠밀어 계단에서 굴러 떨어뜨렸다. 앙상한 시어머니의 등을 떠밀은 순간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인 꿈이었다. 그리고 소피는 진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유도 없이 반수 상태에 빠져들었고, 깨어나고 나서 시어머니가 소피의 꿈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사와 상담을 하고 처방약을 먹어도 호전되기는커녕 여전히 소피의 기억은 들쑥날쑥했고 정신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 남편마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죽자 소피는 누가 봐도 정신이 멀쩡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혼자 남은 소피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르베 댁의 가정부로 취업했다. 근무시간이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제르베 부부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6살짜리 외아들 레오도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소피는 아무리 늦게 일이 끝나도 제르베 부인이 집에서 자고 가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이 날은 너무 피곤해 제르베 부인의 권유대로 처음으로 주인집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르베 부부가 출근하고 나서 레오의 싸늘한 시체를 발견했다. 레오의 죽음으로 정신이 나간 소피지만, 아이의 가느다란 목을 휘감은 밤색 끈이 자신의 등산화 끈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상에서 늘 발생하는 사소한 분실, 소피의 정신착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에 자신의 꿈과 그 꿈대로 죽은 시어머니 소식 사이의 시간과 기억의 단절은 그녀를 죄의식이라는 또 하나의 무거운 증세를 추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 신세를 지던 남편이 의문의 자살로 죽자, 그녀의 죄의식은 병적인 죄책감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최후의 결정타로 가정부로 일하던 주인댁의 6살짜리 외아들 레오가 자신의 등산화 끈으로 목 졸려 죽는다. 이로써 그동안 기억도, 정신도 없이 몽롱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겨우겨우 연명해온 소피의 삶은 무수한 폭탄 세례를 맞은 아파트처럼 힘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런데 누가 봐도 정신이 멀쩡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던 소피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행동은 매우 의외였다.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가 간단히 짐을 싸고 나온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은행 마감 시간에 턱걸이하여 예금된 돈을 모두 현금으로 찾아 역으로 향한다. 역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의 살인 사건에도 얽히게 되지만, 결국 소피는 도피 생활에 성공한다. 동선은 최대한으로 넓히고 한 도피처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도피처를 바꾸고 보잘 것 없지만 급여를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일자리만 찾는 등 그녀는 프로 같은 치밀한 계획으로 2년 넘게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린다. 그러다 소피는 도피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몇 개월 동안 통용 가능한 위조 출생증명서를 암시장에서 산 다음 결혼소개소를 통해 적당한 남자와 결혼하여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레오가 죽기 전에 보여주었던 소피의 행동만을 보면 단순히 칠칠치 못한 것을 넘어 그녀는 누가 봐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녀는 도피생활에서 그전에 보여주었던 산만함과 흐리멍덩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떨쳐버리고 제정신을 가진 보통 사람도 흉내 내기 어려운 치밀함과 결연함을 보여준다. 당연히 독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미친 여자라고 봐도 무방했던 한 여자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2년이나 넘게 도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 그녀가 진짜로 미치지 않았다면 말이다.

물론 어떤 의도를 가졌든 가짜로 미친 척할 수는 있다. 그러나 소피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만약 그녀는 실제로는 미치지 않았지만, 그녀를 정신착란으로 이끌었던 그녀와 그녀 주변에서 일어난 악몽과도 같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그렇다면 범인은 무슨 의도로 소피의 인생을 망친 것일까? 복수인가? 놀이인가? 아니면 쾌락인가? 그도 아니면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다른 의도나 계획이 숨어 있는 걸까?

통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피에르 르메트르의 『웨딩드레스』에서 범인은 일찌감치 공개된다. 고로 범인 찾기 놀이는 싱겁게 끝난다. 대신 왜 범인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 같은 방법으로 소피의 인생을 망치는, 범인의 표현을 빌리면 ‘개조’하는 악랄한 계획을 실행하는지 독자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눈치 빠른 독자는 ‘프란츠’의 일기에서 범인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지만, 이때쯤이면 협력과 대립이 뒤섞인 소피와 프란츠의 기묘한 관계가 어떠한 결말로 끝날지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궁금증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된다.

소설 『웨딩드레스』는 타인의 악의적인 조작으로 평범했던 한 사람의 정신이 피폐해져 가는 광기의 개인사를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한 점도 흥미롭지만, 보통의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탐정 또는 형사와 대립하는 범인의 구도가 아니라, 범인과 피해자가 서로 은밀하면서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고받는 묘한 구도가 이 작품의 묘미다(이 책은 일부 전자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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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책 리뷰]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 능숙한 솜씨(피에르 르메트르)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이었다

원제: Travail soigné by Pierre Lemaitre
“현실은 결국 허구와 결합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지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 나로 말미암아 예술과 세상 현실의 혼융이 이루어지는 셈이었습니다.” (『능숙한 솜씨』, 243쪽)

명의 여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토막’이라는 섬뜩한 단어조차 내장까지 파헤쳐진 시신의 처참한 상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할 정도로 현장은 피와 살점의 아수라장이었다.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벽에 못 박힌 젊은 여자의 머리통은 차마 말은 못하고 눈물 대신 피를 흘리며 자신의 억울함과 고통을 하소연하는듯했다. 대담한 범인은 희생자의 혈흔으로 “내가 돌아왔다”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벽 위에 남겼다. 그리고 서명을 남기듯 가짜 손가락 지문도 남겼다. 이 지문은 미해결 사건인 일명 ‘비극적인 쓰레기하치장’ 사건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범인의 살해 방식과 현장 구성이 특정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한 형사들은 앞의 두 사건을 포함해 다섯 권의 범죄 소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다섯 건의 미해결 살인 사건을 찾아낸다.

리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나 탐정들은 소설의 주인공이니만큼 하나같이 평범하지는 않다. 독특한 성장 배경, 유난히 튀거나 까칠한 성격, 박학한 지식, 비범한 추리 능력 등 주로 내적이고 지적인 면을 강조하지만, 가끔은 이런 점에 덧붙여 더벅머리를 긁적거리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긴다이치 코스케, 헌칠한 키에 말쑥한 옷차림을 한 신사인 엘러리 퀸 등 부가적으로 외모적인 독특함이 추가되기도 한다. 물론 외모가 좀 어수룩하다고 해서 두뇌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인을 쫓는 추격전과 주먹 다툼이 일상 다반사로 일어나는 험난한 강력계에서 겨우 키 145cm의 형사가 반장으로 현장을 지휘한다니,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능숙한 솜씨』는 카미유 반장의 과히 유별난 외모에서부터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줄담배 때문에 야기된 발육부진이 그가 마땅히 얻어야 할 ‘높이’를 까먹은 대신에 다른 특별한 재능을 준 것도 아니다. 그는 명실공히 주인공임에도 작은 키를 제외하고는 비범한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타고난 여타 소설의 형사나 탐정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점도 없다. 그래서 독자는 더욱 당혹스럽다.

그러나 더욱 독자를 당혹스럽다 못해 혼란하게 하는 것은 허를 찌르는 충격적인 반전이다. 범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범죄 소설에 등장하는 살해 방식과 그 현장을 수년에 걸친 치밀한 계획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마치 원작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는 영화감독처럼 책 속의 허구를 현실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범인은 더 대범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성공한다. 범인이 ‘능숙한 솜씨’로 준비한 완벽한 반전 앞에서 카미유 반장을 비롯한 강력반의 형사들은 모든 능력을 총동원하여 몸부림쳐보지만 결국 범인이 마련한 무대에서의 꼭두각시 역할을 벗어나지 못한다. 범인과 작가가 공모하고 작품의 반 이상을 할애해서 준비한 대범한 반전 앞에서 ‘서술 트릭’은 애들 장난일 뿐이었으며, 독자는 녹다운된다. ‘텍스트’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이 완전무결한 반전이야말로 이 작품의 빛나는 가치다.

리소설을 중간쯤 읽고 나면 독자는 작품 속의 형사나 탐정이 되어 지금까지의 단서를 가지고 범인을 추리해 본다. 그러나 거꾸로 범인이 되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형사나 탐정을 농락하고 어떻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지 등 범인의 처지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하는 추리소설은 많지 않다. ‘역할 바꾸기’ 또한 범인을 추리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능숙한 솜씨』를 읽으며 범인이 된 자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문명이라는 얄팍한 껍질 속에 감춰진 사람의 야성을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설 『능숙한 솜씨』에 등장하는 잔혹한 살해 방법 중 몇몇은 실제 살인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실제로 행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며 즐기고, 누군가는 그렇게 재구성한 소설을 읽으며 즐긴다. 그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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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책 리뷰]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 한시치 체포록(오카모토 기도)

Hanshichi Torimonoch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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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원제: 半七捕物帳 by 岡本綺堂
한시치는 에도 시대의 숨은 셜록 홈즈였던 것이다.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 39쪽)

‘체포록’의 유래

도 시대에 도시의 사법, 행정, 입법, 경찰, 소방 등을 관장하는 행정부교소에서 경찰 업무를 맡았던 하급관리 직책으로 도신(同心)이 있었고, 도신은 자신의 수하에 오캇피키(岡っ引)라는 민간인을 두었다. 도신에게서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하지만, 정식 관리로 등록된 직책도 아니고 도신에게 받는 보수가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충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따로 부업을 하는 오캇피키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 탐정물의 효시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에서 한시치의 직업이 바로 그 ‘오캇피치’다.

평민이었던 한시치가 오캇피치로서 하던 일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사립탐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살인 사건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나면 검시 관리들이 현장을 한 번 둘러본 다음 그 자리에서 해결이 안 되면 한시치 같은 오캇피키에게 수사를 요청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오캇피키는 자신들의 손과 발 노릇을 하는 정보원인 데사키들을 부려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오캇피키는 그렇게 해서 모은 정보를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도신에게 보고하고 도신은 다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데, 이때 관청의 서기가 이러한 보고들을 기록한 장부가 바로 ‘체포록’이다 .

괴담에 스며든 인간의 욕망

본뿐만 아니라 동서양 괴담에 정통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답게 한시치가 맡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한 모녀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물에 젖은 귀신, 행방이 들쑥날쑥하다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망친 처녀, 억울한 누명을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원혼, 법의를 걸치고 죽은 여우, 낚시꾼에게 잡힌 잉어 남편을 찾아온 여자,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져오는 단발뱀의 저주 등 사건의 발단에는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법한 으스스하고 소름끼치는 기담이 자리한다. 아직 미신이 팽배하던 시대라서 그런지 이런 기담들은 등장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작품의 배경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그리고 이러한 괴담 뒤에는 시대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시커먼 욕망이 안갯속을 헤매는 원혼처럼 떠돌고 있으니 괴담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괴담이다 . 그럼에도, 눈썰미가 날카로운 한시치는 괴담에 한눈팔지 않는다. 과학적 냉철한 사고를 하는 그는 그 속에 숨은 진의를 놓치지 않고 사악한 인간의 의도를 밝혀냄으로써 얽히고설킨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그래서 괴담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그 나름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로 끝난다.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는 괴담이 유행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미신을 믿던 시기에 살았던 서민들의 삶이 따로 고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한시치 체포록』을 읽는다고 할 정도니 이 작품은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한시치 체포록』은 오싹한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를 순수한 에도식으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소설과 시대 소설로서의 고색창연한 풍미까지 갖춘, 각양각색의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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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책 리뷰] 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 우아한 제국(외르겐 브레케)

Nadens Omkret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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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원제: Nadens Omkrets by Jørgen Brekke
모든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어린 시절 상상력이 풍부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라면서 현실의 어려움과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상상의 세계는 어둡고 슬픈 곳, 폭력과 억압, 무자비한 행위가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연쇄살인범이 통제력을 행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 있게 된다. 이 아이들이 훗날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살인 장소에서 자기 상상력의 현실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강사의 말은 펠리시어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연쇄살인범은 영화제작자와 작가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들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같습니다. 연쇄살인은 허구를 현실화 하는 일이니까요.”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99쪽)

르겐 브레케(Jorgen Brekke)의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살인에는 두 가지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가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살인 사건의 원인이자 강력한 집행자인 질투다. 다른 한 가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섬뜩한 예술적 광기가 번득이는 엽기적인 상상력의 현실화이다 . 소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 속 연쇄살인범처럼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둔 상상력이 풍부한 자는 비단 현대의 연쇄살인범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16세기 중세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막힘이 없었다. 다만, 현재의 연쇄살인범은 주로 기괴하고 잔인한 관상 취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의 피부에 비상한 관심을 두었다면, 16세기에는 좀 더 실용적인 목적에 인간의 피부를 활용했다. 바로 양피지에 쓰일 최고급 가죽의 재료로 사용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피부가 양피지로 제작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부학 실험을 위해 공동묘지에서 신선한 시체를 직접 가져와 실험하기도 했다는 유명한 해부학자 베살리우스의 행적과 인간의 광적인 수집욕을 떠올리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설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은 현대와 500여 년 전의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두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국적 연쇄살인이라는 이색적인 발상을 펼친다. 독특한 개성과 사연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텍스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우수 어린 인생의 향연으로 소설에 활기를 더한다. 뇌종양 수술로 과거의 기억을 상실한 채 이제 막 복귀한 싱사커 형사, 성폭행과 마약 중독이라는 불행한 과거를 안고 경찰이 된 펠리시어 형사, 추리 소설 마니아로 홈스 같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명철한 추리력을 보여주는 자유분방한 홀룸, 한때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용의자로 주목을 받은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건에서 또다시 용의자 선상에 오른 바텐 등 저마다 드라마틱한 과거를 소유한 등장인물들은 미국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역시나 드라마틱하게 얽히고설킨다. 개인적인 불행으로 점철된 지난 과거가 그들 인생의 제1막이었다면 ‘우아한 사건’에 우아하지 못하게 엮인 제2막은 가슴이 시리도록 비극적인 드라마다 .

끝내 범인의 정체는 드러나고 지긋지긋했던 사건은 종결되지만, 단지 불운과 우연 때문에 삶을 송두리째 잃은 한 개인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과거로 묻히고 만다. 그래서 『우아한 제국(Nadens Omkrets)』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면, 범인이 잡히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이나 쾌감, 통쾌함보다는 사람의 지나친 상상력과 지나치게 부족한 상상력의 부조화가 불러온 비극적 결말에 할 말을 잃는다. 여기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중요했던 것일까?

무튼, 범인은 바로 독자 앞에 존재하지만, 외르겐 브레케는 맨 마지막까지 히든카드를 내보이지 않기 때문에 엘러리 퀸의 ‘독자와의 대결’ 같은 페어플레이 방식의 추리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대와 중세를 넘나드는 이중의 시공간적 구성과 중세 특유의 음울하고 퀴퀴한 냄새가 스며든 고서의 비밀을 파헤치는 모험 속으로 빨려가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풍덩 빠져들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 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2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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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책 리뷰] 친숙했던 그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 ~ 버닝 와이어(제프리 디버)

숙했던 그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원제: The Burning Wire by Jeffery Deaver

래간만에 링컨 라임을 만났다. 링컨 라임 시리즈 8번째 『브로큰 윈도』까지 읽고는 그다음 시리즈는 아직 출판이 안 된 것 같아 다른 범죄 소설을 찾다가 보슈 형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는 라임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기분 좀 전환할 겸 추리나 범죄 소설 중 ‘뭐 재미난 거 없나?’하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요 녀석이 빳빳한 새 지폐처럼 눈에 띄어 누가 가져갈세라, 그리고 전작에서 알게 된 라임의 명성도 있고 하니 일단 대출하고 보았던 것이다. 아직도 난 도서관에 갈 때 특정한 책 제목을 기억하고 가지는 않는다. 많은 장서 틈을 뒤지며 뭔가 새로운 작품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충동구매가 그렇듯 그때그때 기분 따라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많이 다르고 그러다 좋은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 짜릿함이란.

일단 도서관에 도착하고 나면 대출한 책들을 반납하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신간도서,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이 없고 미리 염두에 두고 온 책이 없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그날의 입맛에 맞는 책을 선택하게 된다. 주로 문학, 역사 쪽을 살펴보지만, 기분 내키면 사회나 경제, 과학(유전자나 고생물학) 분야도 본다.

아무튼, 그렇게 찾다가 링컨 라임 9번째 시리즈인 『버닝 와이어』를 만났다.

임 시리즈 9번째인 『버닝 와이어』에 등장하는 범행 무기는 이채롭게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눈에 띄는 ‘전선’이다. 그래서 전압의 과부하를 이용한 ‘아크 플래시(arc flash)’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번에는 기업들이 수집한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악용한 범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전기를 이용한 범죄로 개인정보를 이용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대형 범죄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고, 그 피해자는 우리 모두 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개인정보와 전기를 악용한 범죄는 인간의 과학이 인류에게 편리함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과학이 곧 행복은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옛날 옛적에는 자동차사고로 죽는 사람도, 총이나 폭탄으로 죽는 사람도 없었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과 의문점을 충족시켜주고 편리함과 이득, 그리고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행복의 기반이 되는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제프리 디버는 이렇게 라임의 8번째, 그리고 9번째 시리즈를 통해서 이런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에 대한 맹신이 가져올 수 있는 대재앙을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화창한 4월 봄날, 뉴욕 퀸스에 있는 앨곤퀸 전력 회사에 뜬 ‘치명적 오류’ 메시지. 그리고 연속해서 정지되는 변전소들. 결국, 맨해튼에 있는 변전소가 폭발하며 일으킨 아크 플래시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던 정류장 기둥에 섭씨 2,760도의 불꽃으로 꽂혔다. 그리고 버스에 타려던 승객 한 명이 숨졌다. 그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그게 치명상은 아니었다. 뜨거운 열기에 녹은 자그마한 쇠구슬이 산탄총에 맞은 것처럼 그의 온몸을 덮쳤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은 호텔에서의 엽기적인 테러 행위. 호텔 전체가 거대한 전도체가 되면서 호텔은 지옥으로 돌변했다. 회전문 손잡이, 연회장으로 통하는 놋쇠 문, 로비로 향하는 낮은 계단 난간, 엘리베이터 패널, 문 손잡이. 평소에는 친숙했던 이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으로 돌변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자연스럽다.
전류를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전류를 속이지는 못한다. 일단 발생한 전류는 본능적으로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며,가장 직접적인 경로가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면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하는 순간에 살인을 저지른다.
전류는 양심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가 이 무기에 감탄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과 달리,전류는 영원히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다. (본문 중에서)

문명이 조금이라도 있는 나라는 전부 사용하는 전기, 인간의 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전기, 그러나 편리함과 동시에 그 편리함을 느끼며 사는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다 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전기, 과학과 문명의 상징인 이 전기를 이용하여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를 잡고자 뉴욕의 그들이 다시 뭉쳤다. 자신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기동성이 낮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짜릿한 ‘도전’을 학수고대하는 법과학자 링컨 라임, 라임의 수제자이자 매력 만점 연인인 빨간 머리에 여전히 속도광인 아멜리아 색스 형사, 라임의 사무실에서만은 언제나 점잖은 ‘델레이표’ 진녹색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변장의 귀재 프레드 델레이 FBI 요원, 라임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그 역시 자신만의 상징인 후줄근한 회색 정장을 소유한 배불뚝이 론 셀리토, 감식의 떠오르는 샛별이자 영원한 신참 론 풀라스키, 겉보기에는 가장 운동을 못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볼륨 댄스 챔피언인 최고의 감식요원 멜 쿠퍼.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위해 멕시코시티에 등장한 라임의 최대 맞수 시계공. 과연 이들의 불꽃 튀기는 두뇌와 자존심 대결은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전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본 컬렉터』 이후 차례대로 라임 시리즈를 보면서 첫 작품에서 뒤편으로 갈수록 작품에서 얻는 재미나 전율이 아주 조금씩 감소한다는 걸 느꼈었다. 계속 같은 작가가 쓴 같은 시리즈만 보니 익숙해지고 또 물려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기도 하거니와 처음 배고플 때 먹었던 그 만족감과 흥분은 역시 같은 요리로는 다시 맛보기는 무리이기도 할 것이다.

라임 시리즈 8번째 작품까지 읽고 그런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 작품은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기대했다가는 작품이 주는 재미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실망만 할 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판단은?

영리한 범인이 첫 번째 범행 현장에서 실수로 남긴 혈흔 등 약간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보통 모든 건물에 있는 피뢰침 등 접지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무력화시키고 호텔에서 감전을 이용한 테러를 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라임 시리즈 전부 다 그렇듯이 추리나 범죄, 스릴러 장르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당연히 『버닝 와이어』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여기에 전기에 대한 역사적 일화나 전기안전을 위한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 등 전기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도 보너스로 들어 있다. 그러니 삶에 지쳐 피곤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짧은 시간이나마 여유와 휴식, 그리고 링컨 라임만의 스릴감으로 말미암은 짜릿한 쾌감 등으로 상쾌한 기분 전환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이렇게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는 건 독서에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번 작품을 읽고 왠지 모르게 다음 10번째 라임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과연 어떤 소재로 우릴 놀라게 할지….

이 리뷰는 2012년 10월 2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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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책 리뷰] 르네상스 화가가 예견한 현대인의...~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마이클 코넬리)

르네상스 화가가 예견한 현대인의 어둠 속의 어둠

원제: A Darkness More Than Night by Michael Connelly

래간만에 다시 만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었다. TV로 생중계되는 매우 세속적인 모습의 법정에서 증언하는 보슈지만, 아쉽게도 이번 작품의 중심인물은 보슈 형사가 아니라, 전직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케일렙이었다. 매케일렙은 『블러드 워크』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아직 그 작품은 기회가 없어서 못 보았다. 그래서 그 작품에서 매케일렙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6년 전 (『라스트 코요테』 참고) 보슈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파운즈 과장에게 한 방을 날리는 바람에 비자발적 스트레스로 휴직을 받았었다. 그 원인은 보슈가 정당방위를 가장한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한, 에드워드 건의 매춘부 살해 사건을 파운즈 과장의 쓸데없는 참견으로 망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보슈를 건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로 매케일렙과 윈스턴은 지목한다. 지난 시리즈들에서도 보슈는 여러 번 내사를 받았었다. 일부는 혐의를 벗기도 했고, 일부는 어빙 국장의 침묵에 그냥 묻히기도 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보슈의 형사 생활이다. 웬만한 체력과 뚝심 아니고는 버티지 못하리라.

아무튼, 매케일렙은 초반에 증거를 수집하면서 나름대로 프로파일을 해본다. 이런 하나님을 거론한 사건은 하나님의 일처럼 끝나는 법이 없다는 둥, 올빼미 조각상을 추적하며 악마, 지옥 어쩌고저쩌고하는 둥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신통치가 못했다.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러』라는 책이 기억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참고 정도로만 활용 가능한 게 프로파일이다. 용한 점쟁이가 점치는 것보다 못한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거만 믿고 수사를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매케일렙이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예전에 보슈의 요청을 받아 멋지게 한 건 한 경우가 있었다.

는 10년도 더 전이었던 '길 잃은 여자아이 사건'이었다. 피살자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아이는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 정도로 보였다. 알몸의 산업용 세척제로 씻긴 시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근처의 경치 좋은 곳 중 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보슈와 당시 파트너였던, 아쉽게도 억울한 누명으로 세상을 떠난 전직 강력반 형사 프랭키 쉬헌이 맡았었다. 보슈가 아직 본청에 있을 때였고, 매케일렙이 콴티코에서 막 돌아와 처음 맡은 사건이었다.

경찰은 피해자 엉덩이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 중 ‘1, J, H 또는 K 또는 L’라는 문자만을 가지고 용의자를 남자 마흔여섯 명으로 좁혀 매케일렙에게 프로파일을 요청한 것이다. 매케일렙은 두 명까지 좁혔고, 무대 기술자로 일하는 빅터 세권을 세권의 집에서 직접 만나보고는 그를 지목했다. 범인의 집 거실 책꽂이에 낡아 보이는 『컬렉터』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때 보슈는 끝까지 죽은 소녀를 생각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시엘로 아줄(푸른 하늘) 이라는 이름을 죽은 소녀에게 지어주었다. 혹시라도 하늘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매케일렙도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자신의 소중한 딸에게 그 이름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매케일렙은 보슈를 높이 평가했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스타일의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매케일렙은 이제 그가 너무 많이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둠으로 들어가면,어둠도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어둠을 내려다보면, 어둠도 우리를 올려다본다.”- 매케일렙.

여기에 니체의 말을 더하면,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매케일렙이 보기에 보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렇게 보슈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여기에다 보슈는 확고한 권선징악의 신봉자였다.

“커다란 수레바퀴처럼 세상은 돌고 돌아서 결국 뿌린 대로 거두게 돼 있거든. 비록 자네처럼 하나님의 손을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고 믿어.” - 보슈.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둠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를 찾아내고 나서 우리 모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이 일을 하면서 그때만큼 들뜬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난 보슈 형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꼭 아빠가 되세요. 아까 아이한테 말하는 걸 보니까 친딸한테 하는 것 같던데요. '그랬더니 보슈 형사는 대뜸 고개를 저으면서 안 된다고 했어요. ‘난 그저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그러고는 그냥 가 버렸어요.”- 윈스턴.

가 예전에 링컨 라임 시리즈 전부를 보면서 뒤로 갈수록 첫 작품의 충격에서 점점 멀어진다고 말했었다. 그렇다고 맨 마지막 편에 가서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첫 작품인 『본 컬렉터』에 비해 약간 재미가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해리 보슈 시리즈는 6편 『앤젤스 플라이트』까지는 그런 기미는 없었다. 그래서 내심 만족하면서도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결국, 그런 우려가 이번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마이클 코넬리는 역시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의 한숨과 안도의 한숨을 동시에 뱉어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읽어야 할 남은 해리 보슈 시리즈를 생각하며, 내 머리는 망설임과 걱정으로 뒤죽박죽 되어 혼란스러워졌다.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은 보슈가 중심이 아니라 그런지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재미나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다. 구성이 어설프거나 억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반전도 약했다. 아무래도 보슈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실망에 작품의 모든 요소가 눈에 차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보슈 형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인 건 분명하다. 보슈 형사의 억울한 누명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참고로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 등장하는 화가 보슈는 실존했던 인물이고 화가 보슈의 작품들도 역시 존재한다. 구글에서 검색해서 그림을 감상하면 매케일렙의 생각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이 리뷰는 2012년 07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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