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소지 | 10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1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었다!
좋은 작품은 내리 두 번 세 번 읽어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감명에 버금가거나 때때로 그 이상의 감명을 전해주기도 한다.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등 언제 읽어도 처음 읽는 것 같은 신선함과 감개무량을 전해주는 책은 평생 친구 같은 소중한 인연이다. 천 권 넘게 읽었지만, 아직 평생 친구 비슷한 책조차 만나지 못한 것을 보면 난 지지리도 복이 없는 팔자거나, 책을 보는 안목이 지지리도 후지거나, 아직 운명이 무르익지 못한 것이렷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10가지 물건 중 하나로서, 혹은 별 볼 일 없었던 삶에 대한 보상으로 저승에 가져갈 책 한 권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작은 머뭇거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책을 나도 죽기 전에는 만나보고 싶다.
반면에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고, 인터넷 서점 평점에 붙은 별들이 함박눈처럼 떨어질 정도로 빼곡하더라도 추리소설을 내리 두 번 읽는다는 것은 무리다. 추리소설의 핵심은 트릭 깨부수기와 범인 맞추기인데, 이 두 가지에 대한 정답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시 읽는다는 것은 지나가는 여자가 치마를 입었는지 바지를 입었는지 통계를 내는 것보다 더한 시간 낭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재밌고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 세월의 풍파를 거역하고 온전히 기억 속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찌어찌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더라도 그것은 의미 없는 단편적 조각이거나 미세먼지 가득한 날 산을 바라보는 듯한 흐릿한 감상일 뿐이다. 좋은 추리소설은 적당한 세월의 간격을 두고 다시 읽었을 때도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엔 신본격 추리소설 계에 영원한 명작으로 남을 것 같은 시마다 소지(島田荘司)의 『점성술 살인사건(占星術殺人事件)』의 다시 읽었다. 정확히 따지면, 2011년 9월에 대출했던 책과 이번에 읽은 책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 읽은 버전은 2013년 고단샤에서 재출간한 완전 개정판이다. 물론 초판본과 개정판의 차이를 순전히 기억만으로 분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뇌는 뛰어나지 않다.
참고로 ‘권수’를 중요시하는 독서가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없겠지만, 어중간한 책을 읽는데, 혹은 책을 고르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단 확실한 명작을 다시 읽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보는 한 사람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오늘의 선택은 매우 훌륭했다.
독자에 대한 도전!
『점성술 살인사건』은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 작품에 등장하는 장미십자탐정 사무소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바보 취급당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냥 기분이 좋을 때처럼 막무가내로 유쾌하고 편안한 느낌의 점성술 교실에서 펼쳐지는 이시오카와 미타라이의 만담 같은 대화로 40여 년 전에 일어난 참혹한 연쇄살인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순수한 두뇌 플레이 방식의 추리 게임이다. 3분의 2쯤 읽었을 때 우렁차게 등장하는 ‘독자에 대한 도전’, 혹은 ‘두 번째 도전장’ 끝에 조롱하듯 쓰인 ‘인제 그만 풀어주길 바란다’라는 작가의 대담한 도전에서 알 수 있듯 수수께끼 풀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추리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첫 번째 도전장 바로 직전 장면에서 수업 중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번개처럼 머리를 때리는 선생님의 꿀밤 같은 선명하고 현실적인 힌트가 떠올라 등장인물 전원의 알리바이가 성립하고 동기도 전혀 없는 ‘아조트 살인’이라 불리는 대량토막살인의 트릭을 깔끔하게 풀 수 있었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두 번째로 읽는 행위가 망각 속으로 가라앉은 기억의 쓰레기장을 휘젓는 계기가 되어 12년 전의 파편 같은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표면 위로 둥둥 떠 올라 트릭을 푸는 데 나도 모르게 보탬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단 ‘아조트 살인’에서 범인이 사용한 트릭과 비슷한 불법 행위를 학교 다닐 때 실제로 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좀 더 정확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여기에 적을 수는 없지만, 내가 힌트를 얻었다는 불법 행위는 ‘회수권’과 관련이 있다는 점만 밝혀두기로 하자.
서술 트릭과 심리 트릭의 조합
전체인 관점에서 조명한다면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크게 서술 트릭과 심리 트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트릭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아주 익숙한 트릭이지만, 역시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두 트릭을 간파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 것이다. 특히 시마다 소지처럼 독자적인 유머 감각을 지닌 글 잘 쓰는 작가의 글은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덫에 중독된 것처럼 빠져들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짜 단서이고, 어떤 것이 추리의 혼선을 주기 위한 미끼인지 분별하기는 꽤 어렵다. 단서고 나발이고 이런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이 어느덧 마지막 책장을 덮고 있는,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해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원래 그러려고 읽는 책이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론 바보 취급당하면서도 유쾌할 때가 있다는 것도 깨달을 필요는 있으니까.
서술 트릭이 독자의 추리에 혼선을 주기 위한 헤살꾼이라면, 심리 트릭은 독자의 추리 방향을 외곬으로 만드는 조타수다. 심리 트릭에 제대로 걸리면, 사고방식은 경직되고 추리는 진전 없이 미궁 속에 갇힌 실험용 쥐처럼 뱅뱅 맴돌기만 한다. ‘아조트 살인’은 여섯 명을 토막 내 전국 각지에 흩뿌린 기괴하고 엽기적인 사건인 만큼 평범하지 않은 기발한 발상만으로 트릭을 깨부술 수 있다.
범죄의 본질은 사람
『점성술 살인사건』은 특이하게도 범인의 긴 유서로 마무리된다. 범인에게 해명할 기회를 대서특필하듯 마지막에 포진시킨 점은 관대하다고도 할 수 있고, 성실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로써 독자는 범인의 속내와 사정을, 즉 흔히 말하는 범죄 동기를 속 시원하게 알 수 있게 되었고, 한편으론 40여 년 동안 ‘점성술 살인사건’에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린 숱한 아마추어 탐정 • 추리 마니아들이 표면상에 드러난 기괴하고 잔혹한 이미지에 홀린 나머지 범인이 사람이었다는 점을 놓쳤다는 점을 깨우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일수록 쉽게 현혹되는 것은 사람의 약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아무리 범인이 잔학무도한 짓을 했어도 결국 범인도 사람이다. 그들은 그 단순한 전제를 놓쳤고, 미타라이는 놓치지 않았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다시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11년 전에 읽었던 흔적 중 장지문 뒤에 선 사람처럼 흐릿하게나마 되살아난 기억은 사건과 추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메이지무라(明治村) 탐방 장면이다. 미타라이와는 다른 가설을 세운 이시오카는 교토에서 신발 뒷굽이 닳도록 여기저기를 탐방하는데, 그중 한 군데가 한국의 민속촌 같은 메이지무라다. 물론 이 탐방은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이시오카가 메이지무라에서 교토 시덴을 타는 장면에 도달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언젠가 한 번 본 장면이라는 사실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창가를 스치는 아스라한 풍경 같은 별거 아닌 장면일 수 있지만, 엽기적인 대형 시체 훼손 트릭에 홀려있었던 만큼 느닷없이 들이닥친 정겨운 정경에 그만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녹다운되었던 것이리라.
보통 본격 추리소설은 장소와 사건과 추리에 집중한 나머지 문학처럼 시대를 음미할 수 있는 요소가 부족해 현실감이 떨어지는 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점성술 살인사건』은 살벌한 사건을 추적해 나가면서도 틈틈이 시대적이고 인간적인 배경을 채워 넣고 있어 범죄의 본질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마치면서...
범인의 유언을 읽을 때쯤은 지금까지 미타라이의 히스테릭 같은 빈정거림에 속수무책으로 머리만 북북 긁고 있던 독자일지라도 모든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편차가 심한 독자의 이해 • 상상 능력을 끝까지 배려하는 친절을 베푼 셈인데, 다르게 보면 ‘미타라이식 조롱’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건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난들 어쩔 수 있나.
끝으로 본격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 명작이지만, 『점성술 살인사건』의 트릭은 오직 그 시대에만 가능했다는 점에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DNA 감식, CCTV, 휴대폰 위치 추적 등 과학기술 수사로 인해 안락의자형 탐정이 말 그대로 안락의자에서 안락사한 요즘 세상엔 장난감 총에 맞은 대통령처럼 놀랄 기상천외한 대형 트릭은 들어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고 만들어질 여지도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현대는 범죄자에게 꿈을 꿀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추리소설 작가가 독창적인 트릭을 완성하기 위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배경으로 삼는다고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순수한 추리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격려하고 싶어진다.
미타라이의 말처럼 이해할 능력이 없으면 피카소의 명화도 그저 낙서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을 의지가 없다면, 그저 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불쏘시개 정도일 뿐이다. 『점성술 살인사건』 같은 책은 진지하게 독서에 첫발을 디딘 사람에게 독서에 흥미를 붙이는 번개탄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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