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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5.

[책 리뷰] 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없다! ~ 정신의학의 역사(에드워드 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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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은 없다!

Original Title: A History of Psychiatry: From the Era of the Asylum to the Age of Prozac by Edward Shorter
어느 선도적 생물정신의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질환의 발현에서 심리적 • 사회적 요인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나, 생물학적 치료법 …… 의 심리적 요인을 간과하는 것이나, 임상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정신의학의 역사』, p466)

정신과 진료실 문을 당당하게 들어갈 수 없는 이유

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반생을 살면서 아직 정신과 진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내가 어떠한 정신질환도 앓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정신 상태가 비교적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 아직 정신과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고 나름 잘 버텨온 것을 굳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상에서 알 수 없는 불안과 이유 없는 짜증을 동반한 발작성 우울함이 간혹 찾아온다는 것을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뭐, 이 정도는 현대 도시 사회를 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유행병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우울증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해보니 정상이지만 가끔 우울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몇 가지 문장으로 진행한 간단한 테스트임에도 이 얼마나 정확한 진단인가? 또한, 같은 사이트에서 다행스럽게도 조울증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공황장애 테스트는 12점으로 공황장애가 의심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보면 어쩌면 나도 한 번쯤 정신과를 찾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고개 숙인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정신과 진료를 받으려고 마음먹는다면 치료 비용 문제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이다. 2017년도 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질환 증세를 겪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는 조사 결과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구글에서 ‘정신과진료’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 중 (광고를 제외하고)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들은 죄다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때 받게 될 사회적 불이익(취직, 보험 가입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나 간단한 소개, 혹은 개인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겪은 경험담보다는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을 때의 불이익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검색 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한다. 그것은 아직도 한국 사회와 한국인은 정신질환에 대한 말 못 할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검색 내용을 계속 살펴보면 전문가들은 실재적으로 불이익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사람들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볼멘소리로 말한다. 취업, 보험 가입 등의 문제는 둘째치고 정신과 진료를 몇 번 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에겐 ‘정신질환자’라고 소문이 퍼진다면, 그래서 ─ 한국 사람의 소심한 성격상 대놓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 어딘지 모르게 예전과 사뭇 다른, 마지못해 배려하는 듯한 냉소적인 주변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를 지속해서 받게 되면 없던 정신질환도 생길 수밖에 없다.

정신의학을 대하는 그 냉담함 속에 담긴 두려움

거에는 ‘광기’라고 불리며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기피 대상이 되었고, 한때는 질병의 존재조차 부인되었던 정신질환을 다루는 정신의학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다. 정신의학을 대하는 한국인의 두려움과 혐오감 섞인 시선에는 불신과 냉대가 가득하다. 이것은 정신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권위에 압도된 나머지 보다 적극적으로 ─ 그 뻣뻣한 고개를 좀 더 부드럽게 숙이고 ─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못한 소치이기도 하지만, 어느 문화를 가나 존재하는 ‘정신질환 = 광기’라는 케케묵은 공식을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대중의 고지식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오명과 불명예로 얼룩진 정신의학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신의학을 대하는 현대인의 불신이 이유 없는 근거에서 비롯한 편견 때문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름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기 충격 요법(ECT)이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왜 효과가 있는지 정신의학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악명 높은 전두엽 절제술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장에 쌓인 독성물질이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 생각되었을 땐 대장을 일부 혹은 통째로 제거하기도 했다. 하물며 그 끔찍했던 ─ 그러나 공포 영화 제작자에게 최상의 무대로 작용하는 ─ 수용소 시대는 어떠했던가?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기가 막힌 치료법이 정신의학에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행해졌으며, 다른 의학 분야의 역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괴담 같은 일화가 정신의학에서는 종종 등장한다.

그렇다고 정신과 의사들이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자행했던 그 악명 높은 실험처럼 사악한 의도로 그러한 일을 저질렀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개중에는 질병 치료보다는 정신의학의 전문적 권위를 먼저 앞세우고자 했던 의사도 있을 것이고, 개인 진료소를 열어 부자들의 두둑한 주머니만을 노리는 탐욕적인 의사도 있겠지만, 의사 대부분은 어떻게든 증상을 완화하여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병을 완치하여 환자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 남은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즉 의사로서의 직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권위, 이익, 치료 등 이 세 가지는 단순히 우선순위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으나, 그 위대했던 ‘도덕 치료’가 희망을 빛을 발산하던 시대가 잠시나마 유지될 수 있었고, 어떻게든 정신질환을 치료해 보겠다는 의사들의 일념 위로 우연과 행운이 포개지면서 정신약물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비난과 야유 속에서 부침에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정신질환자 치료에 더욱더 큰 의미와 우선순위를 둔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별별 시도를 해야 할 만큼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가지고 있는 처참함과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을 의사들은 견뎌내기 어려웠고, 선정적인 기삿거리나 가십거리에 쉽게 놀아나는 대중이 의사들의 그런 고충을 헤아리기에는 ─ 예나 지금이나 ─ 지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무뎠다고 볼 수 있다. ─ 예나 지금이나 ─ 대중의 관심을 무엇보다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붉은 벽돌집 안에서 행해지는 머리끝이 쭈뼛할 정도의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주는 그 짜릿함이지, 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 어떠한 병을 앓고 있고 어떠한 치료를 받고 있는지, 그러한 환자와 대면하는 의사는 어떠한 삶을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하기에 대중은 광인을 바라볼 때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적당한 비율로 공존하는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광인을 다루는 정신의학 앞에서는 냉담하다. 그 냉담함 속에는 더는 광인을 오락거리로 이용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작금의 도덕적 잣대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담겨 있으면서도, 자신이 정신의학과 가까이함으로써, 즉 정신과 진료실로 자진 행차함으로써 자동으로 받게 될 오명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으스스하게 서려 있다.

수용소의 ‘도덕 치료’에서 약물치료까지

교적 치우침 없이 정신의학 역사를 다뤘다고 생각되는 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의 『정신의학의 역사(A History of Psychiatry):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를 읽고 몇 자 남긴다고 손이 가는 대로, 느낌이 지시하는 대로 적어봤더니, 장광설도 안 되는 잡글이 되고 말았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정신의학이 걸어온 역사를 되짚어보면 ‘의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계몽주의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낭만주의적 인도주의가 결합한 ‘도덕 치료’가 수용소에 적용될 때는 정신의학에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이것은 정신의학이 정신질환자를 기어코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자, 그럼으로써 의학의 한 분야로 당당하게 자리 잡겠다는 당찬 시도였다. 하지만, 수용소 의사들은 밀려드는 환자 앞에서 자신들의 무력함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그럼으로써 좋은 환경과 세심한 배려로 환자를 치료하겠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의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때쯤이면 다른 분야에서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꽃을 피우고, 일부에서는 그 열매를 따고 있었다. 이에 뒤질세라 정신의학 역시 1세대 생물정신의학(정신질환의 원인을 네 가지 체액(점액, 황담즙(담즙질), 혈액, 흑담즙(우울질))의 불균형에서 찾는 체액 이론)에서 벗어나 마음과 뇌의 연관 관계에서 찾기 시작한다. 정신의학 역사상 획기적인 반환점이 될 수도 있었던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곧 스스로 들고나온 잠꼬대 같은 이론인 ‘퇴행’ 이론에 철퇴를 맞는다. 잠시 주춤거리던 정신의학은 ‘퇴행’의 사례를 직접 보여주려는 듯, ‘정신분석’이야말로 모든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만능치료법이라고 약장수처럼 떠들며 스스로 사이비 과학에 빠져든다. 이로써 정신의학은 일반 의학으로부터 멀어지고 더불어 정신의학의 과학발전 역시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대중이 열광했던 첫 번째 정신질환약 밀타운(Milltown)이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제약회사들은 정신질환 약물 개발에 발 벗고 나섰고, 정신의학은 다시 한번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불타오른다. 다만, 이번에는 그 방법이 ‘도덕 치료’가 아니라 ‘약물’이었다. 이로써 2세대 생물정신의학이 정신의학의 주류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정신약물학은 독보적으로 군림해오던 정신치료를 대체하게 된다.

정신질환자의 증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지만, 『정신의학의 역사』는 갈지자걸음처럼 비틀거리는 정신의학의 장황한 역사를 설명하는 데만 의의를 둔 책은 절대 아니다. 물론 그 우여곡절 가득한 역사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 쇼터의 표현을 빌리자면 ─ 망각의 언저리를 맴도는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삶을 복권하고, 종종 순수한 과학의 승리라고 묘사되는 사건에 사실상 문화와 상업성이 어떻게 침투하였는지를 묘사하는 사회사로서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쇼터가 광인을 집단 감금한 수용소 시대부터 정신질환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프로작(Prozac)까지의 짧지 않은 시간을 세심하게 집필한 것은 21세기 정신의학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묻고자 함이다.

한때 톰 소여는 모험심을 발휘해야 하는 사내아이들의 이정표였으나, 지금은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진단해 버린다. 어느새 톰 소여가 뇌 손상이 있는 아이로 둔갑한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를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내려버린다. 같은 방식으로 우울증의 범위도 확장됐다. 행복하지 않으면 전부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낮의 우울(The Noonday Demon: An Atlas of Depression)』의 저자이자 그 자신이 우울증 환자인 앤드류 솔로몬(Andrew Solomon)이 지적한 것처럼 현대의 지나치게 빠른 삶의 속도, 기술 혁신이 가져온 혼돈, 사람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소외감, 전통적인 가족구조의 붕괴, 풍토병이 되다시피 한 외로움, ─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분야를 총망라하여 과거에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제시했던 ─ 믿음 체계의 와해 등을 대표하는 현대성이 우울증 환자 증가의 한 원인이 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신의학이 우울증의 질병 역치(불편함의 수준을 넘어 병에 해당한다고 간주하기 시작하는 증상의 심한 정도)를 낮추고, 제약회사의 과장 광고와 약 효과에 대한 소문에 현혹된 사람들이 단지 기분이 좀 나쁘고 짜증이 좀 난다는 이유로 처방전을 요구하고, 이에 발맞추어 진단을 남용하는 현실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약회사가 치료제를 내놓을 때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질병이 전염병처럼 유행을 타는 것은 또 어떠한가?

바리움이 등장했을 때, 불안을 치료할 효과적인 약이 존재하게 되자 환자와 의사 모두는 온갖 문제를 불안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는 데에 기꺼이 동참했다. 우울증을 치료할 프로작이 등장하자 이제는 우울증이 주인공이 되었고 우울증은 모든 종류의 스트레스에 대한 검증표가 되었다. (『정신의학의 역사』, p521~522)

이렇게 되면, 21세기에 와서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는 현상이 앤드류 솔로몬의 지적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압박하는 현대성 때문인지, 아니면 제약회사의 탐욕과 정신의학의 기만이 교묘하게 뒤섞인 합작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또한, 특정 질환을 진단하는 기준이나, 기존에는 그냥 가벼운 증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새로운 질병으로 등록되는 것이 ─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강력한 로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탄생한 것처럼 ─ 로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니, 앞서 말했던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정신질환 증세를 겪는다는 조사도 믿기가 어렵다.

마치면서...

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자를 약물로 길들이려고 하는 하얀 수의를 입은 과학의 탈은 쓴 조련사인가? 한때 정신의학이 야심 차게 걸었던 ‘도덕 치료’ 같은 진정으로 정신질환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의사-환자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는 처방전 발급기로 전락한 정신과 의사로 말미암아 완전히 소멸한 것인가? 또한, 정신질환이 뇌과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약물로 치료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면, 정신질환은 그 자리를 뇌를 포함한 모든 신경계에 관해서 연구하는 신경과 의사에게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신경매독은 내과 의사에게, 지적장애(정신지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 뇌졸중은 신경과 의사에게 넘어간 것처럼 말이다. 만약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기반을 잃다 보면 과연 정신과 의사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앞으로 정신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 같은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마디로 『정신의학의 역사』는 자기 앞길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휩쓸리는 정신의학에 대한 강력한 질타이나 쓰디쓴 충고이다. 내 비록 정신의학에 몸담고 있지는 않지만(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래도 명색이 의사인데 말이다), 그들이 한때 보여주었던 ‘도덕 치료’라는 인류애의 절정이 다시 한번 이 척박한 땅에 재림하는 날을 고대하며, 그리고 수용소의 붉은 벽돌 뒤에서 행해지는 잔혹한 실태를 고발한 ─ 그래서 한때 反정신의학 운동의 밑거름이 된 ─ 대중문화를 한낱 가십거리로만 받아들였던 나의 완벽한 무지함을 반성하며,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실을 방문하지 않는 날이 절대로 오지 않기를 학수고대하며 넌더리 나도록 길고도 길었던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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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책 리뷰] 화석을 읽고 고래를 스케치하는 탐사 수필 ~ 걷는 고래(J. G. M. 한스 테비슨)

The Walking Whale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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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을 읽고 고래를 스케치하는 탐사 수필

Original Title: The Walking Whales: From Land to Water in Eight Million Years by J. G. M. Hans Thewissen
나는 결국은 내가 답하게 된 질문들에 답을 하러 파키스탄에 간 것이 아니었고, 전쟁이 터져서 내 첫 번째 탐사 일정은 초주검이 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끈기와 행운에 의해서였고, 그 탐사 일정이 훗날 내가 일부가 된 흥분되는 발견들로 가는 길을 닦았다. (『걷는 고래(The Walking Whales)』, p271)

표지 속 수수께끼의 다섯 동물

지에 인쇄된 것 중 글자는 쏙 빼고 그림만 본다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꽤 곤란하다. 꽤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지의 동물들은 뱀장어처럼 매끈하고 길쭉하게 잘 빠진 녀석도 보이고, 설치류나 양서류 비스름한 녀석도 보이지만, 내 식견으로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자기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아니 나의 무지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의 인상이 아무리 험상궂다 하더라도 그들은 한때 지구 위에 존재했던 다섯 종(種)의 동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다섯 동물이 사이좋게 나란히 한 표지를 장식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서로는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동물들이다. 그중 네 마리는 같은 목(目, Order)에 속한 동물들인데 놀랍게도 그들이 속한 목은 바로 고래목(Cetacea)이다. 사실 창조론자들은 고래를 어째서 화석기록이 진화를 뒷받침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으뜸가는 일례로 써먹었다고 하는데,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왔던 동물이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화의 방향성은 사람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다. 현생 고래와 현생 고래의 진화적 경로를 대표하는 표지 속에서 멋쩍게 포즈를 취하는 네 종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 적어도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 희미하게나마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고래의 조상을 대표하는 표지의 네 종 중 한 종만 빠져도 가뜩이나 빈약해 보이는 이들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고, 그래서 고래는 ─ 앞서 거론한 것처럼 ─ 창조론자들의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고래의 조상 중 육지에서 살았던 고래와 바다에서 살았던 고래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는, 육지에서는 걷고 물속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었던 암불로케투스(Ambulocetus)이다. 이 화석이 발견된 덕분에 창조론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었고, 더불어 고래의 기원과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이 중요한 고리를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책 『걷는 고래(The Walking Whales)』의 저자 J. G. M. 한스 테비슨(J. G. M. Hans Thewissen)이다.

고래의 에오세 친척, 인도히우스

지의 다섯 동물 중 다른 목에 속한 나머지 한 마리는 에오세(Eocene)에 살았던 우제목(偶蹄目)인 인도히우스(Indohyus)다. 하마가 고래와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이라면, 이 너구리만 한 초식동물이 에오세에서 고래목과 가장 가까운 친척인 셈이다. 인도히우스를 처음으로 발굴한 사람도 테비슨인데, 그럼으로써 고래목의 유연관계에 대한 케케묵은 쟁점도 해결되었다. 그동안 고생물학자들은 고래목이 메소닉스목(Mesonychia)이라 불리는 발굽이 달린 식육 포유류의 멸종한 집단과 가까운 관계라고 가정했는데, 인도히우스라는 화석증거는 고래목은 에오세 어느 원시 우제목에서 유래했으며, 고래목의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하마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DNA 분석으로 고래목과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하마과임을 예측했던 분자생물학자들의 데이터도 맞아떨어졌다.

화석을 읽고 고래를 읽는다

인류학자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최초의 인류 화석 ‘루시’를 발굴하고 해석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 『루시 최초의 인류(Lucy)』에서 자신이 이룩한 업적과 성공에 대한 ─ 어떻게 보면 교만에 가까운 ─ 자부심과 이것을 시기하고 견제하는 동료 학자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었던 것에 반해 『걷는 고래』의 저자 J. G. M. 한스 테비슨는 다소 차분하게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학구적 열정이 끓어 넘칠 듯 말듯 고이 감춰져 있다. 그 열정은 전쟁과 테러, 적대적인 자연환경, 이질적인 문화 등의 외부적인 어려움과 시간, 돈과 같은 개인적인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각종 위험과 역경을 배낭처럼 둘러메고 거의 중노동에 가까운 화석 탐사 일정을 끈질기게 소화해냈다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그 열정의 대륙 속에는 현생 고래와 조상 고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채 나란히 존재하며 그들은 탐정처럼 자신들의 삶과 죽음의 행적을 끈덕지게 뒤쫓는 테비슨을 귀찮은 듯하면서도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에 대한 보답인 양 고래들은 물속과 육지를 바삐 오가며 신들린 듯 춤을 추고 있다. 우리는 저자와 함께 화석을 읽고 고래를 읽는다. 그들은 어느덧 더부룩한 털을 없애고 늘씬하고 매끈한 몸매로 탈바꿈했고, 공기의 진동을 듣는 귀 대신에 ─ 훗날 인류가 보고 배울 ─ 초음파 탐지기를 장착했다. 사지는 잠시 물속을 노처럼 휘젓는 구실을 하다가 곧 퇴화하고, 그 대신 유연한 몸놀림과 넓고 튼실한 꼬리로 바닷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쳐 다니게 되었다. 이때쯤이면 누구라도 진화의 무궁한 업적을 깨닫고는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다. 억울하도록 아쉬운 것은 수백만 년 후에 고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빈약한 내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여행 스케치 같은 수필

편으론 테비슨이 인도와 파키스탄을 오가는 다사다난했던 탐사 과정을 기록한 『걷는 고래』는 여행 스케치 같은 수필이다. 이야기는 그가 겪었던 고된 현장 작업과는 달리 거칠지도 격렬하지 않다. 읽는 이로 하여금 몽상에 빠지게 하는 나긋나긋하게 단조로운 문장은 미지의 아늑함마저 물씬 풍겨 온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암석과 땅을 온종일 파고, 조련사 앞에서 강아지처럼 노는 범고래를 바라보고, 화석을 찾아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프라이팬 그 자체인 펀자브의 평원으로 들어선다. 납치, 전쟁 등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발이 묶이기도 하고, 괴짜 같은 주인의 변덕 때문에 연구가 시급한 화석을 눈앞에 남겨둔 채 쫓겨나기도 한다. 어느 공항에선 서른다섯 명의 서로 다른 낯선 사람들이 외국인인 저자의 돈을 뜯으러 모기떼처럼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심지어 경찰까지도. 찬디가르에 곧게 뻗은 큰길을 지나며 살아 있는 존재들만 무시한다면 괜찮은 도시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일부러 가져간 사탕이지만, 종교적 텃세 때문에 여자아이에겐 주지 못한다. 가난하지만 손님만큼은 푸짐하게 대접하려는 현지인의 문화는 저자를, 그리고 그 상황을 읽는 나까지도 곤혹스럽게 만든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그리고 거리에서 원숭이의 손을 뜯어먹는 개도 마주칠 수 있는 낯선 환경. 이 모든 것을 과학자의 진지함과 호기심이 번득이는 시선으로 관찰하고 잠시 머릿속에서 버무린 다음 깨끔하게 글로 묘사한다. 고래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를 진지하게 파헤쳐가는 여정도 짜릿하지만, 그 여정 곳곳에 알맞게, 그리고 보기 좋게 널려 있는 담백한 수필을 감상하는 것도 묘미다. 그래서 저자의 과학적 열정과 엄밀함에 세련된 수필이 더해져 완성된 『걷는 고래』는 과학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문학적 교양과 과학적 지식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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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9.

[책 리뷰]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원소계의 야누스 ~ 산소(닉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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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원소계의 야누스

Original Title: Oxygen: The Molecule That Made the World by Nick Lane
장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도 보았듯이,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로만 전해지며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열세 개도 모두 어머니한테서 물려받는다. 만일 이 유전자들이 정말로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수명을 따라가게 된다. (『산소(OXYGEN)』, p455)

노화와 죽음을 불러들이는 주범, 산소

람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물이 산소(酸素, oxygen)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고부동한 사실이다. 그런데 생명의 원동력으로 알려진 산소가 노화와 죽음을 불러들이는 주범이라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세포는 산소 덕분에 숨을 쉬고 에너지를 얻고 있지만, 호흡 과정에서 생기는 자유라디칼(free radical) 때문에 - 산소가 철을 부식시키는 것처럼 - 세포는 녹슬고 있다. 세포는 호흡과 동시에 산소의 강력한 산화 작용으로 서서히 노화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산소에서 생명력을 얻으며 산소와 함께 진화했다는 사실 때문에 산소가 우리에게 어떠한 해를 끼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것도 사람에 따라선 몸서리치도록 두렵고 마냥 미루고만 싶은 노화의 주범이라니, 어디 될법한 말인가.

사람이 산소에 적응하도록 진화됐다는 것과 다른 포유류에 비해 비교적 긴 수명을 가졌다는 것,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의 말을 빌리면)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운반체 노릇을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종족의 번식’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구한 진화사에서 다른 동물과는 달리 그 이상의 뭔가를 더 갈망하고 욕구하는 사람에겐 100세도 짧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죽음과 소외, 질병을 예고하는 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인류는 지금까지 (비도덕적이고 악랄한 방법을 포함하여) 온갖 수단으로 노화와 죽음에 대항해 왔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한계 수명을 115세로 가정하고 있지만, 알다시피 대부분 사람은 100세는커녕 90세도 넘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하는 산소가 한편으로는 우리를 곱게 늙도록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산소는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원소계의 야누스 같은 존재다.

사람의 몸도 산소가 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소가 독성이라는 사실은 사람의 신체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사람의 체액 구성이 조상인 단세포 생물들이 예전에 살았던 바닷물과 똑같은 것처럼 사람 몸의 산소 농도는 호흡효소가 처음 생겼을 당시의 산소 농도(대기 중 산소 압력의 0.3% 미만)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몸 안팎의 산소 농도 차이로 말미암은 부담이나 부작용을 처리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항산화제 평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그 평형이 언제까지나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될 것이다). 평형은 개체가 번식이 끝나는 시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깨지는데,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노화 현상으로 나타난다. 번식을 마친 개체는 자신의 소임(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을 다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택 압력이 낮아진다. 그것은 자유라디칼로 말미암은 세포와 유전자 손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면, 적당한 시기에 번식을 통해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화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화는 한 개체의 일생 중에서 비교적 뒤늦게 찾아온다. 만약 번식을 마치기도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종이 있다면, 그 종은 자연 선택으로 일찌감치 도태되었을 것이다. 노화나 노인병이 인생 말기에 찾아오는 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산소가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졌지만, 진화를 산소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보면 우리는 산소를 미워하기보다는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가져야 할 것 같다. 바다와 토양이 생명이 자랄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제공했다면, 산소는 생명력이라는 오묘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엔진이다.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은 산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생물 다양성이 활짝 만개한 덕분에 그 틈새를 통해서 인류가 진화할 수 있었는데, 만약 생물 다양성을 이루어낼 수 없었다면 지구는 일찌감치 화성처럼 불모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산소(OXYGEN)』의 저자 닉 레인(Nick Lane)은 산소가 있었기에 생물 다양성뿐만 아니라 유성생식, 성별, 인간의 의식 자체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지구 생명의 역사는 산소의 역사와 길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장수 비법, 다 과학적 근거가 있다?

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35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소의 기원을 밝히는 일보다는 앞서 언급한 대로 산소와 노화의 관계를 밝히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부분이 아직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많지 않지만, 닉 레인의 『산소(OXYGEN)』는 노화가 진행되는 전반적인 흐름이나 원인에 대해 대략적인 개념을 잡을 수 있는 (TV 속 쇼닥터의 약장수 같은 광고성 궤변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과학적 지식과 조언으로 충만한 책이다. 지질학, 고생물학, 화학, 의학, 생물학, 유전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해의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다양한 학문적 성과, 실험적 증거, 논리적 가설을 바탕으로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리고 약장수처럼 장황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닉 레인의 친절한 설명은 다소 깊이가 있는 이 책을 읽는 부담감을 어느 정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독자가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주인공이 ‘산소’이듯 때때로 설명이나 가설은 세포, 세균, 유전자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화학적 분석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오래전에 학교를 졸업한 (나 같은) 독자에겐 다소 난감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으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조망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 책 막바지에 등장하는 ‘미토콘드리아 노화’ 이론은 닉 레인의 또 다른 책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책 리뷰] 세상을 지배할 단 한 번의 진화 ~ 미토콘드리아(닉 레인)」)에서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다.

아직 현대 의학 기술로는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직접 조작하여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지만, 노화를 서서히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은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이 장수하려면 음식을 적게 먹고 - 그중에서도 채소와 과일을 풍부히 섭취하고 -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낙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흔히 말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그저 교과서적인 공허한 말로만 들렸다면, 『산소(OXYGEN)』를 제대로 읽었다면 왜 그러한 생활 태도가 젊음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는데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세포적인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으면 음식을 적게 먹으면 대사 스트레스를 낮춰 미토콘드리아에서 자유라디칼이 새어 나와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덤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적게나마 돈도 절약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널리 선전하는 항산화제 건강보조식품들이 실제로는 노화 예방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이터에 흙이 사라진 오늘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 면역력을 약화시켜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은 반드시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마치면서...

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계에 의존하면서까지 의식 없는 삶을 연장하는 것을 생명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말년을 얼마만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느냐는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려면 흔히 비꼬면서 말하기도 하는, 이른바 ‘바른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 음식을 적게 먹고, 채소와 과일을 포함하여 골고루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삶의 속도를 느리게 유지한다. 이것이 신체의 노화를 예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 사람의 정신 건강과 깊은 관련이 있는 뇌의 노화를 –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 - 예방하려면 독서를 통해 꾸준히 뇌를 운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운동으로 근육을 단련하듯 독서로 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내 믿음에서 착안한 의견이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산소로부터 산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최선이자 최소한의 시도다. 『산소(OXYGEN)』를 읽고 나면 예전에는 의사들이나 장수하는 사람들이 으레 내뱉는 말로만 들렸던,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진부한 조언들이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게 들린다. 먹는 것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에도 시달릴 수 있다. 그럼에도 건강한 삶과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원초적인 희망이라는 점에서 닉 레인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노화를 인문학적으로 다룬 다른 책들과는 달리 노화의 주범인 ‘산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노화를 직설적이자 직접적으로 다룬 이 책은 단지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생활 방식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에 대한 조언도 은근슬쩍 내비친다. 산소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겐 ‘산소’라는 분자를 통해 생명의 비밀을 캐내려는 이 책은 사람의 삶과 죽음의 언저리를 둘러싼 베일을 걷어내려는 야심 찬 시도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 우리의 삶과 죽음에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동반자 ‘산소’가 늘 함께하고 있다.

참고로 이 책을 읽었다면 다음 책으로는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와 피터 워드(Peter Ward)의 『진화의 키 산소 농도(Out of thin air)』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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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21.

[책 리뷰] 생태 운동의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들 ~ 생태학의 역사(안나 브람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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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운동의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들

Original Title: Ecology in the 20th Century: A History by Anna Bramwell
모리스는 이렇게 적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슬픔을 간직하라. 그리고 미래가 바라보는 두려움도.’ 이 시는 어둠, 즉 생태주의자를 특징짓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예견한다. (『생태학의 역사』, p157)

읽기도 말하기도 어려운 책

떤 책은 읽고 나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듯 넘쳐흐르는 바람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그 반대로 현장에서 경찰에게 딱 걸린 좀도둑처럼 할 말이 너무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안나 브람웰(Anna Bramwell)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생태학의 역사(Ecology in the 20th century: a history)』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만큼 이 책은 일반적 수준의 교양서적을 원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너무나 난해하고 알쏭달쏭한 책이다. 학술적인 책이라고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번역이 문제인지, 혹은 브람웰의 작문 요령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당최 집중이 안 된다. 악의 없는 악동 같은 문장들이 요리 튀고 저리 튀기만 하지 도무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숙제나 과제가 아닌 이상 영영 찾을 일 없을 것 같은 책인 『생태학의 역사』를 선택한 계기는 단순하다. 생태학의 고전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와 생태문학의 고전 헨리 윌리엄슨(Henry Williamson)의 『수달 타카의 일생(Tarka the otter)』을 읽고 생태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골라 집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그리고 내 부족한 독해력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문장을 흡입하기도 책장을 넘기기도 어려운 책이었다. 작가가 사랑하는 농촌 지역이 오염된 것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었던 톨킨(J.R.R. Tolkien)(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의 저자) 작품의 생태학적 관련성과 생태학 운동의 선두에 선 작가로 추앙받는 (앞에서도 언급한) 윌리엄슨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는데, 이 부분은 두 작가에 대한 친근함 때문인지 그나마 눈에 잘 들어왔다.

생태 운동의 계보를 살펴보다

람웰이 천명했듯 이 책 『생태학의 역사』는 실질적인 오염 문제를 고찰하지도,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생태학의 근원을 살펴보고 그 학파의 흐름을 오늘날까지 개괄적으로 추적하는 책이다. 그런 와중에 1880년부터 오늘날까지 생태 운동의 기원과 그 전개 이면에 있는 사상들을 고찰하고 생태 사상의 가장 중요한 뿌리를 보여주는 사상가들을 살펴본다. 그러한 사상가 중에는 외콜로기(Ökologie)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독일의 생물학자이나 철학자인 헤켈(Haeckel)이 있다. 또한, 현재의 생태 운동이라는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의 정치적, 정신적 역사를 살펴본다. 여기에는 현재 유럽 정당정치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녹색당이나 인간에겐 잔인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행했지만, 용케도 동물이나 숲에 대해선 다른 태도를 보였던 나치의 녹색사상이 등장한다. 나치즘의 녹색사상과 생태주의 사상 요소의 관련성에 대한 논설은 책을 읽는 내내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던 졸음을 달래줄 상큼한 청량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멸종 등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실재적이며 생생한 생태학 문제에 대한 역사와 개요를 원했던 나에겐 상당한 곤혹감과 함께 실망을 안겨준 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책 제목만 보고 내용을 대충 넘겨짚으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니 굳이 브람웰을 원망할 수는 없지만, 다만 좀 더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덜 철학적이고 덜 학술적인 문체로 매끄럽게 문장을 이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마치면서...

잣집에 놀러 간 가난한 소년이 얼떨결에 도련님의 장난감 상자를 엎지른 것 같다. 바닥에 어질러진 휘황찬란하고 값진 장난감들처럼 이 책에는 이론 생태학, 경제 생태학, 정치 생태학, 지리 생태학, 에너지 생태학 등 그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 수 있는 생태학의 다양한 하위 부류가 등장하지만, 도련님의 장난감이 결코 가난한 소년의 손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것은 생태학에 대한 나의 무지에서 비롯한 소치겠지만, 너무 자기 식대로 풀어나간 브람웰의 고지식함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과의 타협과 권력 투쟁 속에서 생태 비판의 가치를 잃으면서 초심도 잃은 녹색당 같은 정치적 생태주의의 변질이 만약 생태주의가 비정치적 문제로 복귀한다면 초심의 가치관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여전히 반생태주의 이념과 불도저식 개발이 지배적이고 이 책에서 설명한 서구 문화 특유의 생태적 관심을 공유하지 않는 성장주의가 잠재적 지배력을 가진 한국 같은 나라에서 생태주의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동네를 구글 지도로 보면 과연 한국에서 ‘생태학’이라는 학문이 대학교의 학과 수를 늘리려는 명목상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 좀 더 세밀하게는 도시 발전과 도시 계획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보면 숲을 끊고 산을 파헤쳐 건물을 지은 흔적이 쥐가 감자를 갈아 먹은 것처럼 명확하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 숲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자신의 살점을 갈아 먹은 쥐새끼 같은 짐승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무튼,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 언젠가는 ‘침묵의 봄’ 속에서 탄식의 한숨을 내지르며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회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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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4.

[책 리뷰] 열한 개 우주탐사 밀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 ~ 스페이스 미션

Dreams of Other World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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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개 우주탐사 밀사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

Original Title: Dreams of Other Worlds: The Amazing Story of Unmanned Space Exploration by Chris Impey, Holly Henry
하버드대학 천문대가 시리즈로 제작한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에서 섀플리는 “우리는 별을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스페이스 미션』, p273)

주를 미숙한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할 때, 아니면 까만 밤하늘에 점점이 박혀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감상에 잠겼을 때 쉽게 연상되는 단골 단어들이 있다. 바로 ‘경이로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콤비처럼 따라붙는 ‘막연함’이다. 장미의 매혹적인 붉은색을 인지할 수 있기에 장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노래할 수 있다면, 손오공의 머리에 씌워진 긴고아처럼 종교가 인류의 상상과 호기심의 틀을 압박한 덕분에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고 보이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에는 우주를 바라봄에 ‘경이로움’보다는 ‘막연함’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 시대 이후, 특히 허블 우주 망원경이 인류에게 선물한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그 아름다운 영상들은 과거 지식의 한계를 대변하기도 했던 ‘막연함’의 베일을 조금씩 허물어뜨리고 있다. ‘막연함’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남으로써 조금씩 밝혀지는 우주가 간직해 온 경탄할만한 이야기에 인류는 더더욱 감탄해 마지않으며 경외심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인류에게 우주는 더는 막연하지 않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진 빅뱅 이론으로 우주 탄생 비밀에 바짝 다가간 인류는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가늠하며 별과 은하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젠가 인류의 새로운 안식처가 될지도 모르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기도 한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로 수많은 과학자의 지대한 노력과 그 공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지난 40년간 인류를 대신해 험난하고 외로운 미지의 탐험을 묵묵히 수행한 행성탐험 인공위성들과 우주탐사 로봇, 그리고 우주 망원경들이 이룬 업적에 딴죽을 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난 40여 년간 우주과학과 천문학에 혁혁한 공헌을 한 우주탐사 밀사들의 탄생 배경과 그들이 발견한 놀랍고 오묘한 사실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책 『스페이스 미션: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찾아 떠난 무인우주탐사선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Dreams of Other Worlds)』(크리스 임피, 홀리 헨리 공저)에는 우주에 있을 미지의 지적생명체에게 보낼 인류의 메시지를 담은 황금 레코드로 유명한 보이저 형제, 우리 은하의 지도를 그린 히파르코스 탐사 위성, 차가운 우주의 베일을 벗긴 스피처 적외선 망원경, 우주가 난폭하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찬드라 엑스선 망원경, 최첨단 과학실험을 다국적 협력을 통해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한 소호 태양 관측 위성, 혜성의 꼬리를 잡은 스타더스트 무인우주탐사선 등등 총 열한 개 우주탐사 밀사들의 모험담이 우주 탐험에 안달이 난 독자들을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다. 또한, 별들 너머에 무엇인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원시 시대를 시작으로 관찰한 하늘을 논리학과 수학으로 설명하려는 철학-과학자들이 등장한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 우주 안에 생명이 거주하는 다른 세상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개념을 이단으로 처단했던 중세 시대를 거쳐 우주에 인류를 대신할 다양한 우주탐사 밀사들을 보내는 오늘날까지 인류의 우주 탐험 역사를 망라한 『스페이스 미션』은 두려움과 무지가 미묘하게 뒤섞인 ‘막연한’ 감상에서 탈피하여 좀 더 지적이고 고차원적인 인식에서 비롯한 우주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경이로움을 만끽시켜 줄 믿음직스러운 동료이다.

두가 인상 깊었던 이야기였으나 굳이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보이저가 찍은 ‘가족사진’을 꼽고 싶다. 보이저가 지구로부터 59억 킬로미터 (당신은 이 거리가 감이 잡히나?) 떨어진 거리에서 여섯 개의 행성을 촬영한 이 사진은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이 명명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서의 지구의 모습이 분명하게 찍혀 있다. 꺼져가는 생명처럼 이 창백한 별 하나에 60억 인류와 더불어 수많은 생명체가 동고동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동고동락’이라는 표현은 좀 에둘러 말한 것이고, 인류 외에 다른 생명체들을 제외한다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구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류 역사는 아귀다툼 그 자체다. 만약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창백한 푸른 점’의 발견이 왜 우리 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인지를 깨달을 수밖에 없다. ‘창백한 푸른 점’의 발견은 우주의 역사가 밝혀질수록 그동안 인류가 우주에 대해 품었던 무지에서 비롯한 ‘막연함’은 지속적으로 해체되리라는 것을 예견하면서도, 그 빈자리에는 우주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지나친 자부심에서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오만함’이 아니라 우주에서 지구와 인류가 차지하는 자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겸허함’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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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16.

[책 리뷰] 진정 누가 '신의 괴물'인가? ~ 데이비드 쾀멘

Monster of God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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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누가 ‘신의 괴물’인가?

원제: Monster of God: The Man-Eating Predator in the Jungles of History and the Mind by David Quammen
우주는 아주 넓은 장소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우주는 대부분 텅 비어 있는 지루하고 차가운 곳이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 남아 있는 최후의 야수를 절멸시킨다면 나머지 역사 동안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든지 간에 그와 비슷한 다른 종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LV-426 에 도착해 에일리언의 둥지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곳이나 그 다음번 미지의 행성들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 p584)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괴물!

작한 사람도 있고 그 짐작이 빗나간 사람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이 말하는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사람까지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이다. 급할 땐 동료도 잡아먹고, 여유를 부릴 땐 별 희귀한 것까지 굳이 찾아 먹는 사람에게 포악한 괴물로 낙인찍힌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진화해 온 그들로선 꽤 억울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윤리관을 다른 종에게까지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사람의 오만하고 위선적인 버릇에서 비롯된 선과 악이라는 별 신빙성 없는 이분법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즉,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은 ‘악’이고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가득 찼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에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는 남성적인 용기와 그러한 사냥을 즐길 수 있다는 사회적 위상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괴물은 대형 포식 동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사람이다.

다른 종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식을 즐기는 잡식성이라는 유일무이한 종적 특성과 과도한 식탐 때문에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온갖 잡다한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이 드물긴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은 이유는 사람의 지나친 영역 확장이 불러온 서식지 파괴와 축소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굶주림에서 비롯한 생존 본능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은 단지 맛있고 새롭고 희귀하다는 이유에서 별의별 동물들을 다 잡아먹는다. 고로 우리와 같은 사람인 데이비드 쾀멘이 이 책을 썼기에 ‘신의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책에서는 ‘알파 포식자’)을 지칭하지만, 만약 먼 훗날 돌고래나 개든 사람이 아닌 누군가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면 ‘신의 괴물’은 다름 아닌 사람일 것이다.

생태계에서 인류가 맡은 역할과 지위에 대해 묻다

런데 그들은 정말 아무짝에 쓸모없게도 단순히 다른 종들을 잡아먹기만 하는 괴물들일까? 실상은 그 반대다.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에 있는 포식 동물은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조절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만약 그들이 생태계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백수(백수조차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한다)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면 진화 도중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바보라도 예상할 수 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생태계가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복잡한 먹이 사슬 시스템의 가지가 처지면서 종의 멸종이 줄줄이 발생하고 이는 곧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더라도 단순해진 생태계는 덩치 큰 육식 동물이 사라짐에 따라 작은 동물들의 세상이 될 확률이 높다. 운석으로 공룡이 멸종했기에 설치류의 세상이 올 수 있었던 것처럼(공룡의 빈자리를 포유류의 진화적 도약으로 채워지면서 인류의 출현도 가능했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바글대는 쥐들과 함께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괴물’ 아닌 괴물들이 사라졌을 때의 생태학적 손실은 대충 이러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대형 포식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생태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쇼베 동굴에 남긴 사자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에게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때 그들은 토템이나 신의 존재로서 우상과 흠모,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위엄과 용맹함은 영웅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인류의 미숙했던 영혼과 정신적 토양은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흠모할 수 있었기에 풍성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을 잡아먹든 안 잡아먹든 그들이 있어 인류는 지구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겸손하게 숙고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은 그러한 겸손을 억누르고 대신 그 자리에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심어 놓았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그들의 서식지는 계속 줄어들어 왔고, 이제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지경이다. 각각의 종이 저마다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름에도 모두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자연의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면, ‘신의 괴물’은 자연의 조화와 공존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영악한 인류에게 인류가 지구에서 맡은 역할과 지위는 무엇인지 자신들의 희생으로써 묻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진행을 말하는 것일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데이비드 쾀멘의 또 하나의 역작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를 잇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꾼다운 쾀멘의 유창한 글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염두에 둘 생각조차 못 하던 생태계에서의 인류의 역할과 위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주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도도의 노래』를 집필했을 때처럼 저자가 많은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으며, 그렇게 모은 현장 자료에 신화와 전설까지 보태져 한결 더 풍부해지고 생생해진 이야기는 마치 사자의 포효처럼 독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데이비드 쾀멘이 남긴 발자취에는 기적적으로 조그만 숲에 갇혀 사는 인도의 기르 사자, 4만 년 동안 악어와 함께 살아왔던 욜른구족 사람들, 부자들을 위한 사냥 상품이 된 루마니아 갈색곰, 아파트 쓰레기통을 뒤지는 갈색곰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루마니아의 러커더우 사람들, 호랑이를 거의 신처럼 받들었던 투르카나족, 자신에게 마취총을 쏜 과학자의 개를 잡아먹음으로써 나름의 복수(?)를 행한 젊은 수컷 호랑이 페댜,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SF 공포영화 ‘에이리언(Alien, 1979)’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끓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쾀멘은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세계 인구가 약 110억에 이르는 2150년이 되면 알파 포식자는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 냄비를 단숨에 식혀버린다.

어쩌면 최상위 포식자 자리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극하여 생태계를 평정하는 것이 비록 지금까지 와는 다른 (그것은 먼 과거와는 달리 황폐하고 빈약한 생태계다!) 자연의 질서와 균형을 가져오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생태학자의 우려대로 생태계의 혼란과 파괴가 가중되어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붕괴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조짐일 수도 있다. 즉, 다섯 번째 대멸종인 공룡 시대의 최후를 잇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생태계 보전 문제에 대한 공감이 확산하는 요즘에도 생태계 보전 문제는 국가 간, 사회적 계층 간의 정치적 • 문화적 • 경제적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예측이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연과의 공생을 중요시했던 우리의 선조가 했던 대로 자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지혜를 구하면서, 가능하면 이 모든 것의 해달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진실 어린 노력이다. 그리고 신은 인류가 자연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지, 신이 부여한 자연에서의 인류의 위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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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10.

[책 리뷰] 우리는 2% 네안데르탈인 ~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스반테 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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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 네안데르탈인

원제: Neanderthal Man: In Search of Lost Genomes by Svante Pääbo

따라서 우리는 아프리카 외부 사람들의 DNA 가운데 5퍼센트 이하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작지만 분명히 식별할 수 있는 비율이었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Neanderthal Man)』, p318)

생물권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물권을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 오직 인간만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매혹적인 문제 중 하나이고, 어쩌면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Neanderthal Man)』, p337)

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4만 년 전의 지구로 돌아가 (당시로써는 꿈도 꿀 수 없는) 지성적인 외모와 매끈한 피부를 가진 당신에게 홀딱 반한 미스 네안데르탈(Neanderthal)과의 황홀하면서도 왠지 곤혹스러울 것 같은 첫날밤을 보낸다. 그러면 그 찝찝한 사랑의 결실도 볼 수 있을까? 다소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대충 답을 추려보면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다른 종이라면 아기를 갖지 못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까?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의 발견으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밝힌 분자생물학은 4만여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뼛속에 담긴 DNA 분석에도 성공함으로써 아프리카를 벗어난 사람들의 DNA 가운데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약 2.5% 정도 남아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은 현생 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를 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이다. 고로 네안데르탈인은 인류에게 침팬지보다도 더욱 가까운 친척이다.

자생물학자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가 집필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Neanderthal Man): 네안데르탈인에서 데니소바인까지』는 미라에서의 DNA 추출이라는 고대 이집트에 대한 낭만적 매혹에서 시작된 한 과학자의 지적 호기심이 30여 년이라는 인고의 세월 끝에 마침내 네안데르탈인 DNA 복원에 성공으로 이어지는 엄밀한 과학적 탐구 과정과 그 과정에 얽히고설킨 한 개인의 인간사를 세세하게 기록한 자서전적인 과학서이다. 저자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는 자유롭고 편안한 연구 분위기 속에서도 고대 DNA 연구만을 위한 세계 최초의 멸균실을 설계할 정도로 DNA 오염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해도 결과는 같아야 한다는 과학적 엄밀함을 끝까지 고수하는 의지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과학자다. 이러한 저자의 인내와 노력, 그리고 이유 있는 고집은 네안데르탈인과 (멸종한 인류의 새로운 형태를 골격 유해 없이 DNA 서열만으로 밝힌 최초의 사례인) 데니소바인(Denisovan)의 DNA 분석 성공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로써 인류학의 최종 목표인 무엇이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매우 다른 진화의 길로 이끌었는지를 밝혀내고 이해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고대 DNA 분야에 새로운 과학적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쌓아 올릴 금자탑의 주춧돌을 다진 셈이다. 또한, 이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Neanderthal Man)』에는 DNA 시퀀싱, 중합 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등 DNA 분석과 해석에 필요한 기술적 변천사와 일반 독자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그 분석 과정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비슷한 분야의 과학서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학자(부모 모두 과학자이며 아버지는 노벨상 수상자)의 혼외 아들로 성장하면서 이집트학, 의학, 분자생물학 사이에서 행복한 진로 선택을 과정을 거친, 그리고 동성애자이자 양성애자이며 동료 과학자 아내와의 이중생활 끝에 결혼하는 특이하면서도 화려한 성장 배경을 지닌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는 자신의 업적과 능력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러나 다른 인간 사회처럼 시기와 음모, 배신 등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과학자들의 숨겨진 모진 암투와 다난한 위기를 이겨내고 눈부신 업적을 달성한 저자의 자부심은 이유 있는 정당한 자부심이며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한 자부심이다. 그러한 저자의 인생 역경이 담긴, 한편으로서는 데이비드 쾀멘 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같은 문학적으로 풍부하고 이야기꾼 기질이 넘쳐 나는 과학적 글쓰기와 비교해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이 책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Neanderthal Man)』는 큰 비전을 품고 역경을 이겨내며 꿈을 현실로 바꾸어 가는 사람에게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으며, 필자처럼 과학적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에겐 묵은 지적 호기심을 명쾌하게 해결하고 새로운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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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3.

[책 리뷰]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 도도의 노래

The Song of the Dod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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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원제: The Song of the Dodo by David Quammen
희망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희망이 없는 사람들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만 있을 뿐이다. (『도도의 노래』, 731쪽)

나의 빈약한 디스토피아적 공상

금으로부터 수천만 년이 지난, 과거 어느 시대보다 생태학적으로 풍부하고 미학적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의 어느 날. 긴 여행 끝에 미지의 푸른 행성 지구에 도착한 한 외계 고생물학자가 흥미로운 점을 하나 찾아낸다. 그는 (한때 인류가 지질학을 연구했던 것처럼) 층층이 쌓인 지층을 연구한 결과 총 여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중 마지막 여섯 번째 대멸종은 앞선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원인에서 일어난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외계 고생물학자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원인은 한 종이 지나치게 번성하면서 지구 자원을 독차지하고 낭비한 결과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지나치게 번성한 종의 지능이 결코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 자연과의 공존과 공생의 가치와 중요성을 몰랐을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비록 이들이 자신들 때문에 황폐해진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정도의 기술력은 보유하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처럼 우주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줄 알았고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비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지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걸었을까? 외계 고생물학자는 지구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 행성으로 귀환하는 쓸쓸한 우주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지만, 끝내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만약 내 상상 속에서 뽑아낸 이 글이 어떻게든 외계 고생물학자의 눈에 띄어 그들의 언어로 해석된다면 아마도 그들은 나를 시대의 마지막을 예견한 지성인으로 기억하려나? 그런데 인류의 멸종으로 지구 생태계가 복구되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렬한 생명력으로 넘쳐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3의 인류가 태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대전환’의 시기를 예견해주는 책

래전에 멸종한 날지 못하는 새 ‘도도’에서부터 현재 진행 중일지도 모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까지,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에서부터 보전생물학까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 사라진 새 도도가 들려주는 진화와 멸종 이야기』는 진화와 멸종, 그리고 진화와 멸종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다양한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도도의 노래』인 것은 도도의 절멸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종을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사건’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서야 인류는 도도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처럼 인류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지구와 인류, 인류와 자연의 마찰과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생태학자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노고 덕분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도도의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많은 생태학자의 지적 통찰력과 연구, 현장 경험 덕분에 인류는 생태계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온전히 생태계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철이 들면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듯, 더 많이 배울수록 모르는 것도 더 많아지듯, 어쩌면 인류는 종말직전까지 자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지한 과학자들은 자연에 질문하고 자연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의지로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과 오만을 극복함으로써 생태계 복원과 공존,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수가 있었다. 부부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만 먹으면 완만한 부부생활을 영위할 수 있듯, 자연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절망적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한 가닥 정신 줄만 놓지 않는다면 절망과 희망, 비관과 낙관의 차이가 한 글자 차이이듯, 지속가능성이 인류의 모든 행동에서 부동의 기반이 되는 문화 혁명의 대반전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도도의 노래』는 그런 ‘대전환’의 시기를 예견해주는 희망의 불씨다.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껍지만 절대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그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와 관심이 흐트러트리지 않고 매끄럽게 읽히는 책이 『도도의 노래』이다. 그런 흡입력에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자료, 학술적인 과학자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편안한 저술, 그리고 너스레를 떠는 여유와 구수한 입담까지 겸비한 문학적 소양 덕분도 있겠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멸종’이라는 주제가 우리 동네 생태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점점 개체수가 줄어드는 고라니를 그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겐 맷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아주 드물게 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산책할 때 더 자주 보곤 했던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목록 멸종 위기종인 고라니가 한국에만 유독 많아서 개체수 조절 때문에 수렵허가도 쉽게 난다고 한다. 사실 고라니 개체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호랑이나 곰을 비롯한 최상위 포식 동물이 한반도에서 사라짐으로써 생태계가 교란되었음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증거지만,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고라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들여 어느 방송에 나온 것처럼 사과나무의 비료로 쓴다면, 북아메리카의 나그네비둘기가 사람의 학살 때문에 약 30억 마리에서 0마리로 개체수가 급강하했었듯, 이스터 섬의 마지막 나무를 벤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마지막 고라니를 사냥한 사람이 한국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도도의 노래』에 등장하는 생태학자 등 많은 사람 대다수가 어린 시절을 풍부한 생태적 환경에서 자란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숲이 사라지는 광경을 직접 봐야 했던 쓰라린 경험과 그 허전함을 절실히 느꼈던 세대들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잘 알아주지 않는 고단한 생태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도 남기는 발자국 하나하나에는 자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자란 도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도시인에게 숲은 가끔 시간 날 때 차를 타고 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시인들이 삶을 영위해 가는 수많은 도구와 즐길거리 중의 하나일 뿐, 진정한 삶의 일부는 아니다. 숲이 삶의 일부가 아니기에 숲이 사라져도 상처를 받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숲을 찾아가면 그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그리 슬프지도 않다. 여전히 탐욕스러운 도시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게걸스럽게 숲을 먹어치우고 그 썰렁한 빈자리에는 똥폼만 가득 잡는 건물들을 채워넣는다. 숲이 사라지는 것도 슬프지만, 숲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더더욱 슬프다. 한때 그 많았던 개체가 사람에 의해 멸종될 때까지 그 누구도 새의 울음소리를 확인한 바 없다는 비운의 새 도도가 들려주는 상상 속의 노래 역시 슬프다. 그것은 마치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많은 종과 사라져가는 숲을 애도하는 것처럼 구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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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6.

[책 리뷰] ‘내 안의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는 쌍둥이 행성 ~ 내 안의 바다, 콩팥(호머 W.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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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는 쌍둥이 행성 콩팥

원제: From fish to philosopher by Homer William Smith
모든 생리적 기제는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작동한다. 왜냐하면, 적대적 외부환경에 맞서 살아 있는 세포나 생명체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내부 환경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바다, 콩팥』, 194쪽)

긴 건 콩, 색깔은 팥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 ‘콩팥’은 인체의 장기 중에서 유일하게 두 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고, 망가지면 회복도 안 된다. 콩팥이 하는 일은 몸속 체액의 양과 이온 농도 조절, 노폐물 제거, 간과 더불어 뼈를 만드는 내분비 기능, 적혈구를 만드는 조혈 기능, 인슐린. 글루카곤. 부갑상샘호르몬. 칼시토닌 등 여러 호르몬을 분해하거나 대사시킨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자 한다면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콩팥은 생명체가 성장하고 유지할 수 있는 안정된 내부환경을 책임지고 있다. 민물 혹은 바다에 사는 어류가 육지로 상륙하여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진화의 계통수를 계속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척추동물에게 안정된 상태의 체액, 즉 ‘내 안의 바다’를 유지하고 공급할 수 있었던 콩팥이 진화한 덕택이다. 『내 안의 바다, 콩팥: 물고기에서 철학자로, 척추동물 진화 5억 년(호머 W. 스미스 지음, 김홍표 옮김)』은 콩팥이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관해 이야기하고, 한편으로는 아주 먼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콩팥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는 척추동물의 진화 이야기로까지 확장된다. 또한, 척추동물의 진화는 지구의 환경 변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에 이 책엔 지구 이야기도 담겨 있다.

족, 친척, 친구 등 주변에 신부전을 앓았던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 사람은 콩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마땅히 깨우쳤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의 대장정만큼이나 혹독하고 고단한 치료 과정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키우던 강아지가 신부전을 앓았었다. 어려운 형편에 나름 온 정성을 다해 강아지를 보살폈지만, 신부전으로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5개월이 조금 못 되어 다롱이는 결국 가족 곁을 떠났다. 주지 말았어야 했을 간식이나 질 낮은 사료 등 신부전의 원인을 반려 동물에 대한 지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가족의 부주의로 생각했던 난 자책감과 함께 음식을 잘 먹지 못해 처방 사료를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꿀물이나 옥수수수염 차 등에 살짝 개어 먹인 일, 빈혈 때문에 주사기에 철분제를 담아 방울방울 혓바닥에 떨어트려 주던 일, 혹시나 좀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크레아틴 수치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일 등 투병 생활의 아련한 단편들이 아직도 머리와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잠시나마 호전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가족이나 다롱이를 치료하던 수의사도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놀라워하며 기뻐했었고,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되었을 땐 세상이 곧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침울하고 슬펐다. 뜻밖에 『내 안의 바다, 콩팥』이라는 콩팥 책을 읽고 콩팥 이야기를 하니까, 콩팥에 병이 생겨 세상을 떠난 우리 집 강아지 다롱이가 생각나서 몇 자 적었다.

무튼, 종(種)적 차원에서 진화사를 설명한 책들은 많이 봐왔지만, 한 장기(臟器)의 진화사를 조명한 책은 아마도 호머 W. 스미스의 『내 안의 바다, 콩팥』이 처음일 것이다. 『내 안의 바다, 콩팥』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듯 콩팥이 없었으면 척추동물의 진화는 턱도 없을 것처럼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은 이유로 폐, 심장 등의 진화사도 분명히 흥미로울 것이다.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내 안의 우주’, 즉 생명체가 지닌 조화와 균형, 질서는 경이로운 우주만큼이나 여전히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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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4.

[책 리뷰] 문명과 우주의 궤적을 아우르는 시간의 변천사 ~ 시간 연대기(애덤 프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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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우주의 궤적을 아우르는 시간의 변천사

원제: About Time: Cosmology and Culture at the Twilight of the Big Bang by Adam Frank
‘시간을 거쳐’라는 말은 새로운 물질이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제도가 달라지고 그 제도가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세대 간에 전파되어 진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 안에서’는 이 제도들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생활들을, 이를테면 학교생활과 직장생활 등을 매일 조직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들은 물질적 개입에서 시작해 새로운 제도 그리고 새로운 시간 경험에 이르기까지 마치 물 흐르듯 아래로 이어진다. 시계의 발명과 확산은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시간 연대기(About Time)』, 143쪽)

개나 소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 시대

즘은 개나 소나 휴대전화를 가지도 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전자 기기가 일상을 점유하는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GPS 등의 몇 가지 정밀한 기술이 더해져 사용자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에겐 1분 1초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확실하다. 상황에 따라 시간을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오직 손목시계 하나에 의존하던 지난 시절처럼 굳이 약속 시간을 정각으로 정할 필요도 없다.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필요한 일에 따라 적절하게 분배하는 효율성의 극대화로 생산성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한가하게 한눈을 팔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기는 시간이나 명상에 잠기는 여유 시간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매우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

시간은 무엇인가?

대체 시간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이다지도 쫓아다니며 피곤하게 하는 걸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은 물질의 한 종류인가? 아니면 영혼 같은 정신적인 무언가의 일종인가? 시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아니 무엇보다 정말 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인류가 만들어낸 여타 문명의 이기, 혹은 문화 속에 내포된 수많은 제도나 기능 중 하나는 아닐까?

철학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한 시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인류가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짜내어 담은 것이 바로 애덤 프랭크(Adam Frank)의 『시간 연대기(About Time: About Time: Cosmology and Culture at the Twilight of the Big Bang):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최초의 도시국가에서부터 그리스의 논리적 우주까지, 뉴턴 역학에서부터 산업혁명까지, 그리고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디지털 혁명의 시기까지 시간은 물질과 과학, 문화의 발달과 변화 등 이 모든 것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고 진화해 왔으며, 이에 따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 역시 변화해 왔다. 사람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어떻게 얽혀왔으며 사람이 시간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패턴이 시대의 우주론과 문화, 과학, 그리고 물질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즉 이 책 『시간 연대기(About Time)』는 시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시간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시간이 적용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시간에는 ‘소비’만 있고 ‘저장’은 없을까? 건전지에 전기를 저장하듯 시간도 저장했다고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망령되고 허황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늘 시간에 쫓긴 나머지 좀처럼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런저런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시간 전지’야말로 만병통치약까지는 못되더라도 대박 상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필요악처럼 군림하는 시간 앞에서는 그 누구도 이겨낼 장사가 없다. 그러나 『시간 연대기(About Time)』의 저자 애덤 프랭크(Adam Frank)는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소비하는 사람의 시간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문명과 기술, 문화, 즉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임을 . 이 말은 우리, 사회, 그리고 문화가 변한다면 시간에 쫓기는 불꽃 튀는 속도 경쟁에 더는 몸살을 앓을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깨달음은 슬로시티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느리게 살고 좀 더 들 생산하고, 그러면서 개인과 가족, 더 나아가 사회의 여유를 찾는 것은 지금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원을 덜 소비하고 아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초가 될 수도 있기에 미래도 변화시킨다 . 기후변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의 전 지구적 위기는 자연의 순환을 무시한 무자비한 착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면 이제 인류는 시간의 효율성이 가지는 의미 자체를 재고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적은 시간에 최대한 일하고 최대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면서 미래 세대들이 사용할 자원에 손대지 않으며 기후변화, 환경오염까지 고려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느리게 사는 것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비결 중 하나이지 않은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인류와 우주의 시간의 변천사를 통찰할 수 있다면 그 변화의 씨앗을 좀 더 쉽게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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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5.

[책 리뷰] 외계생명체 탐사 리포트 ~ 퍼스트 콘택트(마크 코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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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생명체 탐사 리포트

원제: First contact - scientific breakthroughs in the hunt for life beyond earth by Marc Kaufman
하나의 태양계에서 하나의 생명의 기원은 요행일 수 있다. 두 가지 생명의 기원이 있다면 갑자기 생명은 더 이상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게 된다. 즉 우주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 된다. 그리고 만일 생명이 어느 곳에서든 평범한 것이라면, 지구에서와같이 진화하여 복잡한 생명체나 지적 생명체까지도 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화성에 있는 하나의 작은 미생물이 우주의 생명을 이해하는 거대한 도약이 될 수 있다. (『퍼스트 콘택트』, 189쪽)

‘밤하늘의 빛나는 수많은 별’을 향한 내 이야기

가 어렸을 땐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가 계시는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시골로 내려가 꽤 시끌벅적한 몇 주일을 보내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이란 낭만적인 수식어는 그저 수식어로만 그치지는 않았던, 하늘이 지금보다 훨씬 푸르고 맑았던 시절이었다. 장마가 끝난 여름 밤에 창호지 바른 창살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풀과 흙벽에서는 풋풋하고 포근한 냄새가 흘러나와 밤손님처럼 방 문턱을 살포시 넘어 들어 온다. 그러면 모기장 안에서 괜히 설레면서 잠들지 못하고 있던 나는 대지의 냄새에 얼큰하게 취한다. 그리고 앙증맞은 풀벌레 소리는 자장가처럼 내 귓가를 맴돈다. 어쩌다 눈이 떠져 무심결에 밤하늘을 바라보면 정말 무수히 많은 별이 보란 듯이 그 빛나는 위용을 뽐낸다. 그런데 그때는 어렸었고 또한 무지했었기에 안타깝게도 그런 경이로운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광활한 우주를 느끼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너무나 무심했던 나는 이 우주에서 우리가 홀로인지 아니면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호기심 역시 전혀 가지질 못했었다.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생명의 기원을 밝히고 외계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형 행성을 찾으려는 수많은 과학자의 열정과 의지, 그리고 노력과 도전이 담긴 『퍼스트 콘택트(First Contact): 지구 너머 생명체를 탐사하는 과학자들의 도전기』를 읽는 지금은 도시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밤하늘의 빛나는 수많은 별’이 갑자기 그리워져 감상적인 글을 몇 자 끼적여 보았다.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은 ‘우주생물학’

외계생명체에 대한 의견은 종교 같은 믿음으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진지한 과학적 탐구 대상이다 . 많은 과학자는 외계생명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류 과학사에 물이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시절이 있었듯, 단지 현재 인류의 과학적 능력과 공학적 기술이 외계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과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우주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 혹은 이쪽으로 관심이 많은 독자 중에서 저명한 과학자이자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의 선구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이 남긴 ‘이 우주에서 우리 지구 생물만 산다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경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우주에서 지구와 인류의 위치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를 이미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언제가 목성의 위성 유로파나 지구 옆 동네에 있는 화성이든, 아니면 지구에서 수십 광년 이상 떨어진 다른 행성이든 넓고 넓은 우주 어딘가에서 외계생명체가 발견되는 날은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처럼 우주에서 인류의 위치가 재정립되는 날이 될 것이다. 또한, 그날은 예수의 재림을 맞이하는 광신도들처럼 전 지구가 흥분과 두려움으로 들끓는 날이 될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로 현장감을 잘 살린 과학 도서

늘 소개하는 책 『퍼스트 콘택트(First Contact)』는 머지않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격동에 대한 마음의 준비로라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하지만, 『퍼스트 콘택트』는 사실상 인류의 모든 학문을 포괄하는 우주생물학의 진척 상황을 총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얇은 책 두께가 시사하듯 깊이는 떨어진다. 저자 마크 코프먼(Marc Kaufman) 역시 해당 분야의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 전문기자이다. 반면에 기자답게 대중의 눈높이로 심오하다면 심오하다 할 수 있는 우주생물학을 탐구한 리포트이기에 그만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 도 있다. 특히 극단미생물을 추적하는 남아프리카 땅속 수 킬로미터 속의 광산에서부터 알래스카 화산관측소, 칠레 파라날에 있는 유럽 남반구 천문대(ESO), 캘리포니아 해트 크릭 SETI 관측소, 호주 쿠나바라브란에 있는 영국-호주 천문대 등 연구와 관측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 정신으로 취재함으로써 현장감을 매우 잘 살린 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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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2.

[책 리뷰] ‘털북숭이 아가씨’와 함께 떠나는 고인류학 여행 ~ 루시 최초의 인류(도널드 조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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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북숭이 아가씨’와 함께 떠나는 고인류학 여행

원제: 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 by Donald Johanson, Maitland Edey
다소 거창한 꿈일지 모르지만, 산 너머를 볼 수 없을 때에는 얼마든지 큰 꿈을 꿀 수 있다. (『루시 최초의 인류』, 165쪽)

씨 40도는 우습게 넘어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문명으로 둘러싸인 삶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적 속에서 흙먼지 풀풀 일어나는 건조한 땅바닥을 넝마주이가 바닥에 떨어진 돈이라도 찾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볼일이라도 보듯 쭈그리고 앉아 마치 흙 알갱이를 하나하나 새듯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 정말 금이라도 캘듯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금은보석보다 더 귀중한 인류의 자산을 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로 과거를 캐내어 인류의 진화 경로를 밝혀내는 고인류학자들이다.

이 책 『루시 최초의 인류(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는 인류의 화석을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인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지질 구조와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난관을 헤쳐가면서 호미니드 화석 발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루시(LUCY,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발견해 낸 역경의 과정과 루시의 화석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인고의 연구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보고서다. 더불어 루시 발견 이전의 고인류학 역사와 루시가 발견된 시기 전후에 펼쳐진 인류 기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맛깔스럽게 곁들어져 있다.

편, 모든 고인류학자는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지만, 명예와 이권을 놓고 벌이는 다른 분야의 치졸한 경쟁처럼 학자들 사이에도 발굴 권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닌 무작정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비난, 루시를 발견한 저자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시기와 질투 등 뒤얽힌 지질 구조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학계 이면의 추악한 측면도 담겨 있어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보통 사람보다 많이 배우고 책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 인간적인 면이나 변화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성공을 향한 탐욕과 자신의 지식과 믿음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은 때론 많이 배운 것만큼이나 지독하기도 하다. 학계의 어두운 면을 보면 인류를 위한 사심 없는 진정한 과학자가 과연 존재할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무튼, 『루시 최초의 인류』를 읽다 보면 루시를 발견한 덕분에 신출내기 청년 학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저자 도널드 조핸슨의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면서도 우쭐해 하는 모습이 종종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볕조차 가소롭게 느껴지는 인류학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한다. 그리고 고인류학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고로 독자는 루시의 발견으로부터 해석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발굴 작업과 기나긴 연구 과정을 수면제가 따로 없는 따분한 학술적 어조로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독자는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어느 영화에도 빠질 수 없는 미녀(?) 주인공으로서) 털이 복슬복슬한 루시 아가씨를 옆구리에 끼고, 또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방의 감초인) 악당과 마주친 절박한 위기 상황도 아슬아슬하게 모면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부담없이 떠나면 된다. 그만큼 『루시 최초의 인류』는 자칫 딱딱하게 늘어질 수 있는 학문적 글들이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저술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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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

[책 리뷰] 생명의 기원을 향한 기나긴 여행의 이정표 ~ 최초의 생명꼴, 세포(데이비드 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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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을 향한 기나긴 여행의 이정표

원제: First Life: Discovering the Connections between Stars, Cells, and How Life Began by David Deamer
생명의 기원 문제는 사정이 어떨까? 아직 이론은 없는 형편이고, 가설은 수십 개가 있다. 내가 서술하려 하는 가설시험은 생명이 기원했을 당시의 초기지구를 본뜨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에서 이루어진 사실상의 모든 진보는 본뜨기실험들에 의존하고 있다. (『최초의 생명꼴, 세포』, 384쪽)

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동료인 F.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라고 정의했고, 눈부신 진보를 이룬 20세기에 들어와 눈부신 진보를 이룬 분자생물학들은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생리학자 루돌프 쇤하이머(Rudolf Schoenheimer)는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 즉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생명의 복잡성과 불가해성에 비추어보면 인류의 과학이 밝힌 생명의 수많은 성질 중 극히 일부분만을 반영한다. 어쨌든 단백질, 혹은 막에 싸 담긴 중합체들의 계가 주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와 양분을 포획해서 성장과 생식하는 시스템, 혹은 자신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동시에 재구축하면서도 정교한 균형을 유지하는 동적 평형 상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즉 생명의 기원을 밝힐 수 있어야 생명에 대한 정의도 명확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과학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

‘우리는 답을 아직 모른다’, ‘중요하지만 아직 답을 못 찾은 물음’, ‘실제로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직까지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는 형편이다’, ‘아직까지 합의된 생각은 없기 때문에’, ‘이 문제 또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이다’, ‘이제까지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수많은 질문과 계속되는 의문으로 많은 과학자의 골머리를 썩이는 것이 생명의 기원이다. 현재 인류는 우주의 탄생과 진화, 우주의 존재와 성질을 설명할 수 있는 물리법칙을 이해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류는 태양계를 넘어나는 우주 탐사를 통해 혹시 있을지 모를 미지의 생명체와 또 다른 지구를 찾고 있다. 그럼에도, 인류는 아직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꽤 많은 분량의 이 책 『최초의 생명꼴, 세포: 별먼지에서 세포로, 복잡성의 진화와 떠오름』(데이비드 디머 David Deamer)이 따분하게도 풀지 못한 질문과 의문 덩어리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계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선구적인 학자들의 과감한 도전과 눈부신 업적을 담은 『최초의 생명꼴, 세포』는 생명의 기원을 찾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픈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채워줄 기회로 사기충천해 있다 .

은 사람이 억만장자가 되는 성공을 꿈꾸며 일생을 보낼 때, 과학자들은 ‘발견’이라는 보물을 얻고자 일생을 바친다. 많은 사람이 소소한 부에서 즐거움을 얻을 때, 과학자들은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한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최초의 생명꼴, 세포』는 그 즐거움을 기꺼이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자 하는 한 과학자의 진실한 의지와 노력의 결실이 고스란히 담긴, 그리고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인류 과학의 현주소와 더불어 그 한계도 담담하게 고백한 , 그럼으로써 생명의 기원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나는 기나긴 여행의 이정표이자 든든한 동반자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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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7.

[책 리뷰] 세상을 지배할 단 한 번의 진화 ~ 미토콘드리아(닉 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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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배할 단 한 번의 진화

원제: Power, Sex, Suicide: Mitochondria and the Meaning of Life by Nick Lane
이는 별난 공생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생명의 산업혁명이랄 수 있는 생체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생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복잡한 형태의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관장하는 운영체계를 알려준다. (『미토콘드리아』, 476~477쪽)

‘포스’의 원천 ‘미디클로리안’의 어원

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Star Wars: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에서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Qui-Gon Jinn)과 그의 제자 오비완(Obi-Wan Kenobi)은 아미달라(Padmé Amidala) 여왕을 모시고 공화국으로 가던 중 우주선이 고장 나자 타투인(Tatooine) 행성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물상의 노예 소년 아나킨(Anakin Skywalker)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이때 범상치 않은 소년의 기상을 눈치챈 콰이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년의 혈액을 검사하는데, 이때 포스의(The Force) 결정체인 미디클로리안(midichlorian)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제다이(Jedi) 기사는 미디클로리안이 없으면 생명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포스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미디클로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명을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이 바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다. 참고로 영문판 원서 제목은 ‘Power, Sex, Suicide: Mitochondria and the Meaning of Life’이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중요성은 제다이 기사의 설명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살아 있는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발전기인 미토콘드리아는 지구 생명체 대부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의 다양성, 유성 생식, 에너지 효율, 체내 열 생산, 자유라디칼(free radical) 누출, 아포토시스(세포 자살, Apoptosis), 노화, 퇴행성 질환 등 전반적인 건강과 생식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과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세상의 숨은 지배자이면서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덮인 미토콘드리아의 비밀을 추적함으로써 그들이 에너지와 성과 죽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이유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인상적인 이정표를 독자에게 남긴다 .

자유라디칼과 항산화제

엇보다 미토콘드리아와 관련에 흥미를 끄는 부분은 바로 자유라디칼과 항산화제의 관계이다.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전자의 흐름을 이용해 호흡연쇄(respiratory chain)가 발생하며 이 흐름은 세포막의 양성자 펌프를 가동시켜 에너지 화폐인 아데노신삼인산, 즉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만든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 의해, 예를 들어 과식하면 전자의 공급은 넘쳐나고 식후 휴식을 취하니 ATP의 수요는 변동이 없게 되는데, 이때 공급 과잉으로 넘쳐나는 전자가 호흡연쇄에서 이탈하여 산소와 반응해 자유라디칼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신호를 감지한 미토콘드리아는 일단 산화효소를 더 만들어 호흡연쇄의 흐름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ATP 생산과 전자의 흐름을 분리시키는 짝풀림(Uncoupling) 현상을 유발하여 과도한 전자의 공급을 열에너지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과식하고 나서 휴식을 취하면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자유라디칼이 감소하지 않으면 이때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세포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한 미토콘드리아는 숙주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아포토시스, 즉 세포 자살 명령을 내린다. 이로써 문제가 생긴 세포는 괴사하기 전에 제거되고 그 찌꺼기는 주변 세포에 흡수되어 재활용된다.

이처럼 자유라디칼은 미토콘드리아와 전체적인 세포의 생리기능을 담당하는 변화의 신호다. 무조건 항산화제로 제거해야 할 해충이 아니다. 저자는 항산화제가 복잡한 미토콘드리아 체계에 적확하게 적용될지도 강하게 부정하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고 해도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복제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암세포다. 만약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거짓 광고에 속아 약 같지도 않은 약에 의존하는 것보단 적게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현재로선 아마도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생명, 그 경이로움’의 주인공 미토콘드리아

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자신의 유명한 책,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The Burgess Shale and the Nature of History)』에서 만일 생명이라는 영화를 처음부터 몇 번이고 계속 재생할 수 있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인류가 파악한 지식 그대로 반복될까. 아니면 매번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까. 그 답은 미토콘드리아 속에 있다. 20억 년 동안 세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 일어난 단 한 번의 진화가 생물 다양성의 시발점이 된 진핵생물의 기원을 낳았고, 그 중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었다. 만약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지구는 여전히 세균들로만 득실한 별 볼일 없는 행성으로 남았을 것이다 . 고세균(Archaea)과 미토콘드리아 사이의 공생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20억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생명 다양성을 이룬 행성을 찾으려는 인류의 희망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핵생물의 탄생이 20억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매우 드문 진화라 할지라도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을 헤아려보면 어딘가에는 분명히 지구와 비슷한 행성, 혹은 우리와 비슷한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도 크게 허황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지적생명체도 우리처럼 생명의 역사를 밝히고자 미토콘드리아의 비밀을 캐내려고 고심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모든 비밀을 밝히 덕분에 노화를 해결하고 장수의 열쇠까지 얻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르는 이 우주 공간이 너무나 아득해 서로 반갑게 인사도 못 나누고 유용한 정보도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면서...

직히 말해 과학교양도서는 읽기가 쉽지 않다. 전문용어와 졸업 이후 완전히 이별한 수학 공식이나 화학식이 난무하여 독자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소설가 같은 전문 작가가 아니고 논문을 즐겨 쓰는 학자들이다 보니 마치 학술 강의를 듣는듯한 고리타분한 문장과 딱딱한 어투가 유난히 읽기의 맛을 떨어트린다. 그럼에도, 꾸준히 과학교양도서를 찾다 보면 가끔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처럼 이야기꾼이 쓴 재미난 과학교양도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 행운의 기쁨은 또 다른 과학교양도서를 찾는 원동력이 된다. 참고로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미토콘드리아』을 읽기 전에 이 책보다 먼저 나온 『산소: 세상을 만든 분자』를 읽기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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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0.

[책 리뷰] 12가지 문제, 12가지 호기심 ~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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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문제, 12가지 호기심

원제: ない科學の未解決問題 by 竹内 薫, 丸山 篤史
‘소파 옮기기 문제’는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수업 때 다루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은 일종의 환상을 갖게 된다. “과학과 수학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말이다.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18쪽)

아직도 과학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 문제들

속적으로 발전하는 컴퓨터 성능과 그래픽 효과 덕분에 요즘의 SF 영화들은 ‘정말 실제 같다’라는 감탄 정도는 우습게 만들 정도로 아예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래서 SF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미래적 도시 풍경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인류 문명 속에서도 탄생할 것 같고, 꼭 지구가 아니더라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지적 생명체의 문명에선 인류의 상상이나 영화 속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되었을 것 같다는 낭만적 공상에 휩싸이며 그들과 만나는 역사적인 날을 그려보곤 한다. 이런 반쯤은 허무맹랑한 상상이 펼쳐질 수 있는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이 견고한 믿음에 얼마간의 충격이 가해질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과학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 문제들이 있고 그런 미해결 문제를 알기 쉽게 개괄해 놓은 책이 다케우치 가오루(竹内 薫), 마루야마 아쓰시(丸山 篤史)의 『과학의 미해결문제들(ない科學の未解決問題)』이다.

과학의 진수는 미해결 문제에 있는 것

문에 등장하는 12가지 미해결 문제 중에는 대멸종의 원인, 사람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블랙홀, 타임머신의 가능성, 진화론의 증명, 소수(素數)의 패턴, 전신마취약의 작용 등 ‘과학’하면 쉽게 연상되는 물리학, 생물학, 수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몸과 마음, 성의 존재 이유, 그리고 정력가들의 몸보신 메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뱀장어의 번식처 찾기 등 다방면에 걸친 미해결 문제들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경이로운 우주에 대한 모든 의문에 대한 정당한 탐구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뭔가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보다는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과 밑도 끝도 없는 의문을 충족시켜줄 안식처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렇다면 『과학의 미해결문제들』을 지은 저자들의 말대로 과학의 진수는 미해결 문제에 있는 것이다.

지적 호기심의 영속성과 좋은 책

는 책을 읽을 때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보다는 뭔가를 읽고 싶다는, 그리고 뭔가를 알고 싶다는 지적 욕구를 채워줄 아무런 책을 찾아 퀴퀴하지만 절대 불쾌하지 않은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도서관 책장 사이사이를 마냥 기웃거릴 때가 더 설렌다. 그렇게 개처럼 킁킁거리며 지식의 냄새를 탐색하고 나서 막상 발견한 책을 대출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릴 때,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것 같은 그 기분 좋은 뿌듯함은 다 읽고 났을 때의 성취감보다 더 짜릿하다. 『과학의 미해결문제들』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이 얄팍한 책에는 12가지의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을 간략하게 다루면서, 호기심 많은 독자에게 12가지 주제로 뻗어나갈 독서의 방향도 제시한다. 내가 늘 강조해왔듯, 정말 좋은 책, 좋은 독서는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지속시켜줄 지적인 자극을 회색 뇌세포에 공급해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책은 그 책을 펼치기 전의 설렘이,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찾아 나서는 설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책이다.

이 리뷰는 2017년 01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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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6.

[책 리뷰] 양자역학史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다사다난한 삶 ~ 퀀텀 스토리(짐 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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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史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다사다난한 삶

원제: The Quantum Story: A history in 40 moments by Jim Baggott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 쪽이 훨씬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존의 이론에서 무언가가 틀렸다는 뜻이고,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쪽에 이미 100달러를 걸었다.” (『퀀텀 스토리』, 607쪽)

금부터 약 110년 전,그러니까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 대다수 물리학자는 1900년 영국과학진흥협회(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1831년 설립)의 강연석상에서 “이제 물리학은 정점에 도달했고,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뿐”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의 말에서 드러나듯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거의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연은 이러한 인류의 오만을 조롱하듯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꿀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난해한 화두를 대수롭지 않게 하나 툭 던진다. 그것은 바로 열역학의 대가 막스 플랑크(Max Planck)를 통해 서막이 열린 양자역학(quantum mechnics)이었다.

양자역학의 기반 형성에 초석을 쌓는 데 이바지했던 아인슈타인(Einstein)조차 훗날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만큼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에게 낯선 학문이었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할 만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그 자신이 양자역학의 한 부분을 창조하다시피 했으면서도 양자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위대한 석학들조차 때론 거부감을 느끼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거시적인 세계에 사는 우리에겐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져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양자역학은 어느덧 우주를 기초하는 물리학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입자 가속기들의 눈부신 진보와 활약으로 힉스 입자를 발견함으로써 양자역학 이론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되었다. 이제 양자역학은 진지하게 세상의 기초와 원리에 대해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트리게 되는 이론 중의 이론이다.

리적 실체와 통상적인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불확정성이라든지, 누군가 입자를 관측하는 순간 입자의 파동성은 붕괴하면서 거시적인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고전물리학의 측정 가능한 입자로 변하고, 그 붕괴한 입자와 양자적으로 얽힌 다른 입자와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건 상관없이 파동성이 붕괴한 순간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으로 붕괴 정보가 전달된다는 등 사실 일상적인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둔 독자는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는 이 난해한 이론을 일반인에게 권할 적당한 이유를 찾는 것도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렇다고 책 중간마다 종종 등장하며 골머리를 앓게 하는 수학적인 내용에 지레 겁먹거나 깊이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짐 배것(Jim Baggott)의 『퀀텀 스토리(The Quantum Story: A history in 40 moments)』는 막스 플랑크를 시작으로 한 양자역학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춘, 양자역학의 110년 역사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당연히 양자역학이 책 중심에 말뚝박고 거만하게 버티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퀀텀 스토리』는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는 양자역학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과 이해를 갖춘 독자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차피 나처럼 양자역학과 맞붙어서 이길 자신감이 없다면 일찌감치 패배를 시인하고 과감하게 초점을 양자역학의 이론에서 약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퀀텀 스토리』를 끝까지 읽을 수 있으며 이 책의 진정한 가치 또한 알 수 있다.

책 『퀀텀 스토리』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양자역학을 둘러싼 수많은 과학자의 도전과 좌절, 고뇌와 투지, 협력과 견제. 시기와 질투 등 양자역학史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중요한 사건 40가지를 통해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모습에 대한 일반 사람들이 품는 모종의 경외심은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없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정 앞에서 자연스럽게 걷힌다. 매사 엄숙하고 진지한 학자적 삶에서도 툭하면 이론으로 예측한 입자의 발견 여부를 둘러싸고 내기를 하던 철부지 소년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들에 대한 이유 없는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다. 양자역학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희비를 맛보거나 엇갈던 그들의 웃음과 눈물, 승리와 실패, 유명과 무명의 삶에서 독자는 어느덧 친근함과 동정심마저 느낀다. 이들의 삶은 일반적인 삶과는 유리된 이론물리학이라는 배경과 실험실이라는 장소에서 활동한다는 것만 빼고는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는 ‘이론’, ‘실험’, ‘학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알게 모르게 대중과의 괴리감을 형성했던 과학자들의 배일을 한 꺼풀 벗겨 내고, 대중매체를 통해 가끔 보도되는 과학 분야의 성공적인 업적 뒤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경쟁, 쓰라린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역경의 순간을 조명함으로써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제공한다.

이 리뷰는 2016년 9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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