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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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孤宿の人) | 미야베 미유키

외딴집 | 미야베 미유키 | ’삭막한 세상’의 비결, 정보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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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월드 제2막’의 첫 번째 주자

나의 외롭고 지난한 헛물 같은 삶에 ‘에도 시대’를 향한 막연한 동경과 달랠 길 없는 향수와 오갈 데 없는 그리움이라는 소소한 정신적 피난처를 제공한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이고, 이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는 ‘미야베 월드 제2막(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 미스터리 시리즈)’이라는 작가의 큰 구상이 담긴 시리즈의 구성원들이다. 여기서 『외딴집(孤宿の人)』은 ‘미야베 월드 제2막’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주자이니, 미야베 미유키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애독자라면 마땅히 『외딴집』을 먼저 섭렵했을 줄로 생각한다. 만약 나도 그랬다면 나의 ‘에도 시대’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편애는 조금은 수그러들었을지도 모른다. 『외딴집』은 에도 시대는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처럼) 사골육수처럼 구수하고 소박한 사람 냄새만 풍기지만은 않았다는 비정한 현실 물정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도서관 출입 후 471권째 대출로 『이유』를 재미있게 읽은 것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미미’ 여사와의 인연이 없었던 내가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를 접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에도 시대’에 대한 연정을 품게 되었다면, 『외딴집』은 그 ‘연정’에 찬물을 확 끼얹는 격이랄까?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는 ‘미야베 월드 제2막’의 서문과도 같은 미미 여사의 말에서 내가 일부러 굵게 표시한 부분은 ‘미시마야 변조 괴담’ 시리즈 같은 시정(巿井)물에 잘 묘사되어 있다면,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는 시기’였다는 시대의 비정함은 (규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어린애들을 즉석에서 단칼로 베는) 『외딴집』 같은 정치물에 잘 드러나 있다.

『외딴집』을 읽고 나면, 마음 한편이 시리고 아리는 슬픔은 둘째치고,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그 권력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려는 알력과 권모술수 때문에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지듯 민생이 피폐해진다는 변함없는 사실에 섬뜩해진다.

알파카로 생성한 이미지

’삭막한 세상’의 비결, 정보 통제 사회

『외딴집』보다 나중에 나온 (개인적으로 ‘외딴집’보다 먼저 읽음으로써 이 역시 ‘에도 시대’를 향한 연정의 크나큰 밑거름이 된) 『세상의 봄(この世の春)』도 사건의 발단은 높은 신분을 가진 한 남자의 유배에서 비롯되지만, 두 작품의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세상의 봄』이 ‘정신착란을 이유로 연금된 청년 번주와 그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틋한 충정과 사랑’으로 ‘삭막한 세상’이 꿈꾸는 인정 있는 세상을 묘사하고자 했다면, 『외딴집』은 그 ’삭막한 세상‘이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돌아가는지를 르포르타주처럼 냉정하게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잠깐이나마 품었던 에도 시대를 향한 뜨뜻한 낭만적 공상에 액체질소를 퍼붓는다. 그 ’삭막한 세상‘이란 소수의 위정자가 정보를 고도로 통제하는 사회인데, 그 위력은 마을이 생겨난 이후 수십 세대, 혹은 수백 년 이어져 온 수호신을 단숨에 갈아치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에도 시대처럼 신분 질서가 철저하게 지켜지는 사회에선, 그리고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선 백성들은 위정자가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데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위정자가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진실로만 대한다면야 문젯거리 될 것은 없겠지만, 그렇게 올곧기만 한 사람은 없다.

위정자는 자기 형편에 맞추어 세상을 해석하는데, 이것을 솔직하게 백성에게 전해주면 그 위정자는 성군의 자질을 갖춘 셈이다. 권력은 다수가 알지 못하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정보력에서 오는 만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공개하는 순진한 위정자는 없다. 자기 형편에 맞추어 세상을 해석한 위정자는 그 정보를 그대로 백성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유리하게 조작하고 꾸민 다음 전달하거나 때론 아예 은폐한다.

정보의 자체 습득이 어렵고 또한 정보가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이상 백성은 위정자의 말을 믿든가 아니면 말아야 하는데, 속아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속임수를 까발릴 필요가 없다는 교고쿠도의 진언처럼 정보가 설령 거짓일지라도 믿고 편안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의심, 질문은 새로운 학문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언론의 자유가 온전하게 보장된 사회에서나 될법한 말이다.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의 자유도 없고 정보를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국가에서 사회, 위정자, (위정자가 하사한) 정보를 의심하는 개인은 설 자리를 위태롭게 만드는 꼴이며, 지나친 의심은 자칫 잘못하다간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외딴집』에 등장하는 우사와 와타베 가즈마처럼 말이다(그리고 마오쩌둥의 저주 같은 변덕과 음흉한 음모가 양산한 수많은 정치범처럼).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우사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오지랖을 부려야 직성이 풀리는 다부지고 부지런한 처녀다. 한편, 와타베는 자기 분수껏 모르는 척할 줄 아는 노련한 관리 나부랭이다. 두 사람은 평범한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위정자들이 마루미 번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정보를 조작하거나 은폐하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결말에 ’명령‘ 같은 위정자들의 의지가 개입한 것은 아니다. 비록 두 사람은 백성이 알고 있는 거짓의 실체와 그 뒤에 숨은 진의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나름 분수를 지켰다. 우사는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와타베는 스스로 인정했듯 애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남자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혼자만 진실을 알고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마을에 화재, 폭우, 홍수 같은 재난이 닥쳤을 때 같은 모두가 공감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오히려 그러한 감정을 드러낼수록 동병상련 같은 공감과 위안의 구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 혼자만이, 그것도 알면 안 되는 진실을 알고 있을 때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은 알게 된 남자가 냉가슴 앓은 것처럼 노이로제가 될 뿐만 아니라 이것 때문에 살해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 때문에 머릿속에서 떨쳐내기도 쉽지 않다. 마치 우주처럼 넓은 지옥에 자신을 감시하는 아수라와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나 느낄법한 살벌함이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독처럼 숨어 있다.

결국 와타베는 그것을 이기지 못해 폭주하고, 우사는 (교고쿠도를 연상시키는 훈계가 멋들어진) 에이신 스님의 교화 덕분에 와타베 같은 비극적 활극까지는 연출하지 않지만, 마루미 번에 번개처럼 내리치는 잇따른 불행의 먹구름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만약 두 사람이 보통 사람처럼 진실을 모른 채 위정자들의 뜻대로 거짓을 진실로 알고 살았더라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런데 좀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는 척하는 삶? 비겁한 줄 알면서도 목숨 때문에 진실이 아닌 거짓에 편드는 삶? 아니면 용감하게 거짓에 대항하다 장렬하게 죽는 삶?

여기서 한 가지만 더 묻는다면, 당신에게 목숨과 진실, 아니 돈과 진실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생성한 이미지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인연

(바보라는 뜻의) ’호‘라는 10살 소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족과 수하를 단칼로 베어버린 죄로 살아 있는 악령이 된 가가님과 비록 10살이지만 박정하고 박절한 삶의 극치를 보여준 바보 소녀 호의 조우는 중앙과 지방의 수면 아래 오리발 같은 암투, 작은 번임에도 복잡한 가계와 혈통 사이사이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그에서 기인한 마키아벨리식의 음모 등 (누군가에겐 다소 우중충하게 보일 수 있는) 정치색 짙은 잿빛 이야기에 곰팡이로 얼룩진 술집 벽에 걸린 비키니 달력 같은 참신하고도 해맑은 분위기를 덧게비친다.

최상위층과 최하위층, 자수성가한 무사와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하녀, 악랄함의 화신과 무구한 소녀 등 이해관계라는 것이 맺어지려야 맺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은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는 시기였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벌어지는 착잡한 사건들 위에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의 한 획을 나긋나긋하게 긋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그 아다지오의 시간은, 주군으로부터는 버림받고 백성으로부턴 귀신이나 악령 따위 취급받으며 두려움과 무서움의 대상이자 재난의 원흉으로 몰리는 가가님조차 태어난 후 지금까지 애물단지나 쓰레기 취급받아 왔던 하녀에게 약간의 정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나머진 말 안 해도 알겠지? 라고 미미 여사는 넌지시 들이대는 것 같다.

정의는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다

마을에 살아 있는 악령이 온다는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퍼트리면서 혼란을 한껏 조장한 다음 그 혼란을 틈타 평상시엔 할 수 없었던 더러운 욕심을 채운다(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갈 당시의 뉴올리언스처럼? 직구 규제를 위해 열심히 밑밥을 까는 작금의 한국처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악령 탓으로 돌리는 마루미 번 위정자들의 추악함과 그들에게 꼭두각시처럼 놀아나다 끝내 자폭하고 마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넉살스레 비웃을 수 없는 것은 마루미 번의 현실이 한국의 우려할 만한 상황과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의 일 같지 않다.

대중 매체의 정보 은폐와 언론 조작, 그리고 그런 언론에 호도 당해 진실을 외면하거나 부화뇌동하는 대중의 의식 수준 문제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또한 한국만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겠지만, 아무리 인터넷 같은 획기적인 정보 수집 및 검색 시스템이 발달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 낼 지혜가 없다면, 그리고 진실을 실천으로 옮길 용기가 없다면 결국 세상은 마루미 번이나 지금의 한국처럼 소수 위정자의 의지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땐 진실과 목숨 사이에서 비겁함을 저울질해야 했다면, 지금은 진실과 보신 사이에서 개인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그리고 대중의 무지몽매함을 탄식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진실을 직시하라고, 그리고 행동하라고 가르치지만, 이 사회는 세상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친다. 억울해도 참고, 부당해도 복종하고, 불의를 봐도 그냥 남의 일처럼 여기라고, 그래야 오래 살아남아 평온하고 평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이다. 중국인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속박과 탄압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도 현실이 가르쳐 준 대로 체념하는 법을 달관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피안에 이르는 길이다. 진실은, 그리고 정의는 엿이나 바꿔 먹으라지.

정치 • 사회파 미스터리

『외딴집』은 시대물로도 잘 쓰였지만, 미미 여사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아버지이자 거장이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으로 언급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사회파 미스터리로도 잘 쓰인 소설이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에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미야베 월드 제2막’의 포부를 여는 책이기도 하지만, 에도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신분 체제, 시정 환경, 계급별 삶의 양식, 사회 제도 등의 밑바탕 지식이 구석구석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미야베 월드 제2막’ 모든 시리즈를 섭렵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외딴집』을 가장 먼저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끝으로 궁금한 것은 (중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걸 보고도 아무 행동도 못 하는 내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여전히 노골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정보를 정부 차원에서 은폐하는 중국에서 사는 중국 사람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이다. 중국이 폭풍 같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폭풍과 맞닥트린 선원들처럼 행복 지수가 낮은 것에 대한 이유 중 일부는 『외딴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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