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7일 | 이사카 코타로 | 치바와 함께하는 즐거운 악몽 같은 일주일
복수는 화끈해야 제맛
드라마건 영화건 ‘복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의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원한 등 시작은 제각각이더라도 결말은 복수 대상자에 대한 통쾌한 응징과 후련한 징벌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래야 사람들은 신산한 인생을 고단하게 살아감에 있어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부당함 • 부조리 등의) 각종 사회악이 덤처럼 안겨준 엿 같은 울분을 변기 물 내리듯 통쾌 • 상쾌하게 씻어낼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찰나나마 만끽할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나쁜 일을 일삼으며 제 욕심만 채우면서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약삭빠르고 영악한 놈들이 끝까지 득세하는 영화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런 영화는 인생과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슬기로운 미덕으로 인내와 체념을 체득한 관객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자극하며 열불 터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차려는 화장실에서 해야 제맛이듯 복수는 화끈해야 제맛이다. 그렇다면, 배달앱 툭툭 터치하면 음식이 나오듯 마음만 먹으면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것이 복수일까?
(진짜인지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쿠가와 장군이 복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원수를 무찌르는 것은 용맹함의 증명도 무사의 영예도 아니다.
풀어 쓰면 용감 • 정의 나발이고, 그런 데에 쓸데없이 목숨 걸지 말고, 설령 여자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만 갚을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러하니 체통 • 체면 신경 쓸 시간에 신속하게 복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복수는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신도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심판하고 응징하는 고되고 벅차고 힘겨운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하라고.
복수란 이다지도 어려운 것!
현실에서 복수가 남발되지 않는 것은 단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복수를 결심하고 계획하고 감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되는 심적 압박감과 육체적 고단함과 정신적 피폐함은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새끼, 너 한번 죽어봐라!’ 하고 칼로 푹 찌르면 될 것 같은데,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세상만사도 우리 생각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남의 목숨을 결딴내는 복수가 생각대로 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복수엔 받은 만큼 되갚아 준다는 앙심이 있다. 복수의 목적은 상대를 단순히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정신적 • 육체적 고통에 이자까지 보태 되갚는 데 있다. 이런 잔혹한 욕심은 복수를 더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이사카 코타로(伊坂 幸太郎)의 『사신의 7일(死神の浮力)』을 읽는 동안 통감할 수 있는 것은 현실에서 복수는 이다지도 힘들고 어렵고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야마노베 부부는 초보 복수자이고 상대는 연륜이 깊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점에서, 이 대결은 애초부터 야마노베 부부에게 불리한 대결이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야마노베 부부가 복수를 위해 공들인 시간과 정성과 돈과 (나름의) 치밀한 계획을 고려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시원하고 통쾌한 복수는커녕 복수 대상자에게 시종일관 농락당하고 조롱당하는 야마노베 부부의 어설프고 시원치 않은 복수극은 웃기기도 하고 허탈하고 김빠지기도 하는 것이 ‘복수’를 소재한 작품 중에선 보기 드문 설정이다. 하지만, 보기 드문 설정이니만큼 색다른 묘미가 있다. 특히 복수 대상자와 복수를 감행하는 자 사이에 사신(死神) 치바가 끼어있다는 점에서 이 복수극은 ‘치바와 함께하는 즐거운 악몽 같은 일주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치바는 착한 신? 악한 신?
『사신의 7일』 전편이라 할 수 있는 『사신 치바(死神の精度)』를 이미 읽은 사람은 알고 있듯, 사신의 업무는 대상자를 직접 만나보고 조사해서 ‘죽음’을 실행하기에 적합한가 어떤가를 판단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사람의 인생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면서도 (청국장은 싫어하지만 일 때문에 청국장을 취급해야 하는 식당 직원처럼) 오직 업무 때문에 사람들 삶에 끼어들어 죽음을 관장하게 된 치바가 사람을 대하는 기본 입장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
결국 사람은 모두 죽게 마련이라는 냉소적인 관점으로 사신 업무에 임하는 치바가 보기에 사람의 ‘복수 게임’ 같은 것이 의미가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복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언젠가는 죽으니까 말이다. 또한, 자고 싶지도 않고, 먹고 싶지도 않고, 섹스하고 싶지도 않은, 즉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신선 경지’에 오른 존재인 치바는 속세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욕구도 없고, 해치고 싶은 욕구도 없다.
매우 중도(中道)스러운 치바가 오랫동안 계획한 복수를 막 감행하려는 야마노베 부부와 일주일간 동행한다? 그렇다면, 치바는 야마노베의 억울하고 슬픈 처지를 동정하며 복수를 도와주는 태도에 서야 할까? 인간 세상의 법에 따라 복수를 훼방 놓는 태도에 서야 할까? 아니면 방관자여야 할까?
치바는 착한 신일까? 치바는 악한 신일까?
읽어보면 알겠지만, 읽어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의 치바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치바를 만난 이후로 나름 즐거웠다는 것!
이 외에 쏠쏠한 재미는 야마노베 부부와 치바의 멀리 날아간 부메랑처럼 크게 엇갈렸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치바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죽음과 고통과 좌절과 실패와 절망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잃을 것이 없는 치바이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한가한 소리를 보는 이가 감탄할 정도로 진지하게 지껄일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답답해서 울화통이 터질지 모르지만, 한가하게 지켜보는 나로서는 실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치바는 사이코패스처럼 감정이 없다 보니 무뚝뚝하고 고지식해 보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는 감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어딘가 초점이 나간 엉뚱하면서도 무례한 말을 천연스럽게 내뱉는다. 한마디로 싱겁고 썰렁한 농담들의 날림 공사 범벅 같은 것이 치바와의 대화 1탄이다.
사실 인간 세상에 대한 천 년 이상의 기억과 경험을 가진 사신과 기껏해야 70~80년 살아온 사람과의 대화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잘 돌아갈 리는 없다. 하지만, 천 년 이상 묵은 구미호라면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 경험 수준에 맞추어 의심받지 않도록 요령껏 대화를 주고받기 마련인데, 치바는 그런 요령도 없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다. 처음엔 신선한 농담처럼 재밌게 들리다가, 나중에는 실성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짜증 나는 것이 치바와의 대화 2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치바와의 대화를 못 견디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겠지만, 야마노베 부부에게 치바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자식을 잃은 요 1년 동안 하루하루를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슬픔에 짓이겨 살아온 부부를 제멋대로 들었다 놨다 하며, 기막히게도 하고 어이없게다 하는 치바는 1년 들어 부부를 가장 많이 웃게 한 존재다.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고, 적인지 아군인지도 분명치 않고, 실제 행동도 그런 의심을 증명하는 듯 보이지만, 어찌 되었든 치바가 온 뒤로는 나름대로 즐거웠다는 것이 부부의 평가다.
부부의 복수가 달성되었는지, 끝끝내 무산되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그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마는, 오히려 감정에 무딘 치바였기 때문에 부부의 고통과 슬픔이 활개 치는 것을 잠시나마 방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끝으로 복수극치곤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결말,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역전시키는 우연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역시 치바를 만난 이후로 나름대로 즐거웠다는 것이다. 치바의 대화처럼 상황과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어긋나지 않는 듯한 비유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도 익숙해지니 묘하게 잘 읽힌다.
복수극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바야시 유카(小林 由香)의 『저지먼트(ジャッジメント)』도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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