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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020

[영화 리뷰]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The-Haunting-of-Hill-House-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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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힐 하우스의 목석 위에는 한결같이 정적이 깔려 있으며

그곳에서 걷는 게 누구든 그들은 함께 걷는다

유령 하면 뭐가 떠오를까? 원한, 복수, 죽음, 공포, 깊은 상처, 오싹함, 악마, 저주 등 어째 기분 나쁜 잡탕들만 떠오른다. 정말로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유령과 마주친다면 바지에 오줌을 싸는 추태까지는 부리지 않더라도 오금을 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기는 할 것이다. 왜? 아마도 그것은 유령이라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존재에게 한순간 엮이게 든 자신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유령이 불행을 안겨줄지, 죽음을 선고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지속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저주를 내릴지 두렵다. 그냥 지나쳐갔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아는 유령이란 존재는 마주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낸 유령은 그저 사악하고 사악하기만 한 존재다.

혹시라도 유령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혹시라도 유령과 마주칠까 하는 두려움은 흐릿하고 모호했던 유령을 사람처럼 육체가 있고 삶이 있는 현실성 있는 캐릭터로 재생산한다. 그래서 유령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유령은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문득문득 현실 속에 투영된 착시현상일 뿐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이런 통론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애타게 보고 싶은 사람이 유령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의 대상과 보고 싶은 사람, 이것은 완전히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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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보고 싶은 사람을, 혹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난다는 것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중한 일인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착실히 심어 놓은 유령에 관한 좋지 않은 선입관도 있겠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져다줄 심리적 영향력을 제삼자로서는 가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봐서 행복해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과 꿈과 환상의 경계가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분주히 오가는 착각 속에서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을 때, 본인이 행복하다면 망상이든 꿈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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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지금까지 보아온 유령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각도로, 다른 시선으로, 다른 방법으로 유령의 존재론적인 방법론과 그 방법론이 한 가족의 운명에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얽히고설킨 실타래 풀듯 복잡하게 풀어나간다.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떠나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유령은 사람에게, 그리고 한 가족에게 때때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유전적 정신질환을 단체로 앓는 한 가족의 비극과 그 비극으로 말미암은 가족 관계의 끝없는 추락과 갈등 속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뿐이라는 매우 진부한 메시지를 되새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그냥 흘려들을 법한 유령 이야기가 한 가족의 애증 • 애착 관계를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깊이 있고 심오한 진행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뭔가 대단히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을 기대한 시청자에겐 소화제나 두통약을 찾게 할 정도로 꽤 철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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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나오는 힐 하우스(Hill House)는 동양으로 따지면 흉가, 혹은 귀신 들린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설령 유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힐 하우스 같은 대저택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이담에 죽어 유령이 된다면, 힐 하우스 정도라면 기꺼이 들러붙을 의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한국의 도시는 유난히 괴담이 싹을 트지 못하는데, 그것은 귀취(鬼趣)가 깃들만한 고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격조 있는 집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누가 아파트 같은 곳에 들러붙어 귀신 노릇 하고 싶겠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힐 하우스(Hill House) 같은 집 하나 정도는 있을법하고, 힐 하우스 같은 집에서 유령과의 불가항력적인 인연으로 전전긍긍하는 가족들도 있을법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을 있을법하지 않다(설령 제작한다고 해도 과연 몇 사람이나 보려나?) 연기, 스토리텔링, 연출,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만족시키는 드라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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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020

[영화 리뷰] 단지 생일을 축하해 주려던 것뿐인데 ~ 시스터스(Sister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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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생일을 축하해 주려던 것뿐인데…

몰래 카메라 TV 프로그램 때문에 우연히 만난 필립과 다니엘. 두 사람은 다니엘의 전 남편의 갑작스러운 훼방이 있었지만, 필립이 쇼 출연 상품으로 받은 호텔 식사권으로 무사히 저녁을 마치고 다니엘의 아파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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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까지 따라온 다니엘의 전 남편을 가볍게 따돌린 필립은 그녀와 달콤한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필립은 오늘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쌍둥이 동생 도미니크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파트 근처 빵집에서 생일 케이크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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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을 깜짝 놀라게 하여주고자 침대에 누워 있던 다니엘에게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내밀던 필립은 갑자기 포악한 사람으로 돌변한 다니엘이 휘두른 칼에 찔린다. 겨우 창가로 기어간 필립은 건너편에 사는 이웃이 볼 수 있도록 창문에 자신의 피로 쓴 도움을 요청하는 붉은 메시지를 남기고, 건너편 아파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기자 그레이스는 즉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늑장 부리는 형사들을 대동하고 다니엘의 아파트를 수색할 땐 이미 필립은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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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화면 분할 기법으로 또 다른 긴장감을 연출하는,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상당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는 스릴러 영화.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시스터스(Sisters, 197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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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019

[영화 리뷰]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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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으로 우아한 영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뭔지 알아?"

어느 날 저녁, 에밀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8명의 친구는 담소를 나누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식사 후에도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밤하늘을 유유히 헤엄쳐가는 혜성을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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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저녁을 보내는 8명의 친구>

한창 이야기가 물이 오를 무렵, 이들의 우정을 질투한 누군가가 훼방이라도 놓듯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한다. 잠시 당황한 이들은 누군가는 촛불을 밝히고 누군가는 야광봉을 준비하며 상황을 추스른다. 사실 이날 저녁은 아무런 충격도 가하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액정에 금이 가는가 하면 모두의 휴대전화가 불통이 되는 이상한 밤이기도 했다. 정전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려고 창밖을 기웃 들여다보던 이들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집이 한 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은 일부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빌리고자 몇 명의 선발대를 조직한 다음 파란 야광봉을 들고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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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에서 가져온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자신들의 사진이!>

집에 남은 친구들이 한창 애간장을 태우며 선발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불이 켜진 집을 향해 나섰던 친구들은 구급상자 크기의 하얀 상자를 들고 돌아온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뒷면에 숫자가 적힌 8명의 사진이 탁구채와 함께 들어있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집 밖을 나간 사람들이 불이 켜진 집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 집에는 자신들과 똑같은 8명의 사람이 자신들처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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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vs 에밀리>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땐 상관이 없지만,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에 접목한 미스터리, 공포, 그리고 SF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가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이다.

내 앞에 숫자 1에서 100까지 적힌 100장의 카드가 있고 그중 한 개만을 고른다고 치자. 만약 내가 숫자 1을 선택하면 숫자 1을 선택한 것이 나의 현실이다. 하지만, 평행 이론은 나머지 카드 99장을 각각 선택했을 때의 세계도 어딘가에서는 ‘현실’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즉, 이 경우에는 100개의 세계가 평행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평행으로 존재하기에 평소에는 서로 마주칠 일은 없다. 물론 이것은 매우 단순화한 경우의 수다. 한 사람의 인생만 놓고 봐도 선택과 우연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그것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기에 타인의 선택과 기회도 생각하면 평행한 세계는 무한의 수로 존재할 것이다.

영화는 평소에는 상호 작용하지 않는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혜성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붕괴한다고 가정한다. 매우 기발한 착상이지만, 다중 우주 이론과 평행 우주 이론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론을 안다면 정말 놀랍도록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영화로서는 드물게도 과학적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지적으로도 우아한 영화다.

어딘가의 세계에서는 작금의 내 현실보다 더 잘 먹고 잘사는 ‘나’가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세계에서는 불행한 사고로 이미 죽은 ‘나’도 존재할 것이고, 밑바닥 계층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끼니를 때우는 궁핍한 ‘나’도 존재할 것이다. 만약 혜성의 영향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힘으로 영화처럼 평행한 세계의 경계가 일시적으로 무너져 궁핍한 ‘나’가 잘사는 ‘나’의 존재를 눈치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장 빨리 인지하고, 더불어 상황 정리까지 일찌감치 마친 에밀리가 겪는 딜레마로 대신할 수 있다. 초자연적 현상에 말리면서 공황 상태에 빠진 친구들과 불행한 저녁을 보내야 하는 에밀리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난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에밀리, 그녀의 선택은?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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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2019

[영화 리뷰] 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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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 운운을 떠나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다른 누군가의 과거가 너의 현재를 찾아올 거라고" - 점쟁이

이렇게 좋은 영화를 감상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거사(?)를 막 치르고 난 후 찢어진 콘돔을 보는 것만큼이나 께름칙한 일이라서 힘겹고 괴로운 갈등 끝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혹은 포스터의 경고대로 난 견디지 못하고 결국 글을 쓰고야 말았다!). 이왕 시작한 이상 그래도 천자는 채워야 할 터인데, 무슨 얘기로 그 많은 천자를 채워야 할지 벌써부터 난감하다. 이 영화의 리뷰를 형편없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욕 바가지를 얻어먹을까 봐 영화를 볼 때보다 지금이 더 긴장되고 무섭다. 그래도 두 명의 여주인공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일단 공포 영화라고 하면 끗발이 설 수 있는 미인이 등장해야 제맛인데, 일단 이 점에서만큼은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다만, 공포 영화의 막간으로 등장하는 베드씬이 없어 두 미인의 뽀얀 살결을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IMDB 평점이 무려 7점을 넘어선다. 마구 쏟아지는 공포 영화 중에서 평점 7점을 넘기는 작품을 발견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보고 만 것이다(개인적으로 Naver 평점보다 IMDB 평점을 더 신뢰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IMDB 사용자 후기에 10점 만점을 준 사용자가 한 분 계시다는 것,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은 그 사용자가 리뷰를 남긴 영화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이 유일하다는 것. 아마도 그분은 감독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한 지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뼈가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친구를 둔 것 같아 정말 부럽다.

영화를 본 사람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놀라운 반전이 있는데, 그것은 이 영화가 콜카타 국제 컬트 영화제(Calcutta International Cult Film Festival) 2018년 Best Horror/Science Fiction Feature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만드는 갖가지 어설픈 요소들이 잔인하리만치 즐비하다고 느낀 것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와 어림도 없는 소리 모두 죄다 끌어모아 주절주절 늘어놓아도, 여기에 공백까지 포함해도 천자가 안 된다. 천원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천자는 쉽게 볼 수 없는 녀석이다. 그래서 천자문 외우는 것도 그토록 어려웠었나 보다.

아무튼,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는 내가 처음 들어보는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은 수작이니, 코를 후벼 파다 못해 콧속을 대머리처럼 반질반질하게 윤기 낼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은 꼭 감상하기 바란다. 감히 후회는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못 하지만 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재미없다고 해서 나 역시 재미없으리란 법도 없으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데드 어게인(Dead Agai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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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2019

[영화 리뷰] 두 악당이 마주친다면 과연 누가 재수 없는 것일까? ~ 노 원 리브스(No One Lives,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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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악당이 마주친다면 과연 누가 재수 없는 것일까?

"이 꼴을 보고 있자니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이제 죽었구나!'

진정 무엇이 인정사정없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일관된 폭력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 정의도 없고, 인정도 없고, 분노도 없다. 단지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 앞엔 고통에 절은 절규와 처절한 살육의 현장이 마치 별천지처럼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뱀이라도 훑고 지나간 듯 어느새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고, 혹시라도 주인공이 눈치라도 챌세라 심장은 최저 RPM으로 작동하며 알아서 숨죽인다. 소름을 돋게 하는 그런 무서움이 아니라 온몸의 신경과 감각을 쥐 죽은 듯 착 가라앉게 하는 그런 냉혹함이 진실로 무시무시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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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한 젊은 여성의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곧 등장하는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는 연인. 그리고 이삿짐센터로 가장해 대범하게 빈집을 터는 호그 일당.

그날 호그 일당은 공교롭게도 휴가를 떠난 집주인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빈집을 터는 현장이 발각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호그가 뭔가 대책을 시도하기도 전에 성질 더러운 플린이 다짜고짜 집주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그들을 영원한 휴식처로 보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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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처럼 보이는 그들은 단지 거주지를 옮겨가고 있었을 뿐인데, 하필 재수 없게도 모텔 주인이 친절하게 소개해준 다 쓰러져가는 스테이크집에서 그날 하루를 잡치고 돌아온 호그 일당과 마주친다. 그런데 과연 이 전초전 같은 만남은 누가 누구에게 재수 없는 일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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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초월한 악마 같은 악당이 세속적인 고만고만한 악당을 학살하는 그런 영화다. 죽어가는 사람도 악당이고 죽이는 사람도 악당이라 누가 누구를 동정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감정적인 부담은 전혀 없다. 다만, 일말의 연민도, 동정도 보이지 않고 먹잇감을 고문하고 살육하는 이름 모를 주인공에게서 피비린내가 자욱한 악마적인 끌림이 물씬 일어나는 바람에 당혹스럽다.

그런데 앞에서 연인으로 묘사한 이사 중인 베티와 남자 주인공, 그리고 남자 주인공과 그에게 쫓기는 엠마의 사연이 빠져 있는 둥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은 것은 둘째치고 남자 주인공 너무 무적이지 않냐?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노 원 리브스(No One Lives, 201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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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2019

[영화 리뷰] 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 불면의 저주(失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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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되고 싶어? 그럼 자지마!

그녀의 심장 박동수와 혈압은 다 정상이다

역시 정신력이 넘치는 것 같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역시 온몸 구석구석 찐득찐득하는 한여름에는 공포 영화가 최고다 해서 한 편 골라봤는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불면증으로 어떻게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거지?’ 하는 의구심 반 기대 반으로 재생을 시작하는 분이 많겠지만, 후반부로 가니 보통 수준 이상의 강렬한 비주얼이 전반부의 조금은 지루했던 시간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특히 일본 장교의 성기를 통째로 도려내 일본 녀석들 엿 먹어라 하듯 장교 입안으로 그대로 쑤셔 넣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통쾌함을 관객의 오감 속으로 욱여넣어 준다. 하지만, 「불면의 저주(失眠, 2017)」가 단지 공포 영화라고 해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국/홍콩 영화에서는 별로 이슈화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위안부’ 문제만큼은 한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일본을 압박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리뷰가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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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만 놓고 보면 ‘불면증’을 의학적으로만 다루는 듯한 오해의 소지는 충분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 두 가족사에 대대로 유전됐음에도,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하지 못한 ‘불면증’을 ‘저주’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비극적인 내력이 이야기보따리의 터진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듯 서서히 드러난다. 때는 일본이 중국을 한창 점령하던 시기로서 친일파가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눈에 보이는 어린 여자는 죄다 잡아들여 위안부를 조직하던 시기다. 이때 부모로부터 흑마술을 전수 받은 자매와 얼떨결에 매국노가 된 람싱과 한국의 이완용처럼 적극적으로 친일파가 된 차우복의 운명이 엇갈리면서 ‘불면의 저주’를 시작된다.

그런데 친일파를 '착한 친일파'와 '나쁜 친일파'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람싱처럼 소극적인 친일파와 차우복처럼 적극적인 친일파로 구분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람심 같은 소극적 친일파는 그럭저럭 봐줄 수 있지만, 차우복 같은 적극 분자는 얼마가 지났든 반드시 숙청해야 하며 후손들만 남아있다면 친일 행위로 얻은 모든 이익과 그 이익이 낳은 이익까지 모두 몰수(이것은 소극적인 친일파도 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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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이 이다지도 큰 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휘두르다 끝내 자멸한다. 잠을 못 자면 뇌세포가 손상된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잠을 못 잔 사람이 좀비처럼 난폭하게 돌변하는 것은 파괴된 뇌세포를 회복하기 위한 단백질을 보충하고픈 강렬한 욕구의 발산일지도 모르겠다. 생살을 뜯어 먹는 좀비가 되고 싶다면, 잠을 안 자면 된다! 그런데 하루라도 버틸 수 있으려나. 아니면 잠을 안 재워 좀비로 만드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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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하루 동안 온갖 정보를 처리하고자 혹사당한 뇌에 주어지는 유일한 휴식이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습득한 정보 대부분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지만,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방금 꿈에서 본 것들을 힘겹게 떠올려보면 별의별 정보가 다 있다. 심지어 책에서 본 (당연히 의식적으로는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떠올라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물론 놀람과 동시에 곧바로 잊어먹지만, 이런 점만 봐도 뇌는 엄청난 과부하를 견뎌내고자 선택적 기억을 고안해낸 것이리라. 만약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한다면, 하루하루 쌓이는 그 엄청난 정보량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끝끝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고로 뇌 활동이 왕성하거나, 뇌세포가 많이 남아있는 사람은 잠이 많을 것이다(참고로 난 아직 잠이 많다). 반면에 뇌세포가 이미 많이 손상된 사람은 잠도 적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잠도 없어지나 보다. 이것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깨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려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취할 뇌세포가 젊었을 때보다 현격히 줄어들었을 테니 그만큼 필요한 잠도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충분한 수면이 뇌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불면의 저주(失眠, 2017)」는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이야기로 섬뜩하게 깨우쳐주고 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불면의 저주(失眠,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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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2018

[영화 리뷰] 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 썸니아(Before I Wak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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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그때 내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당신의 남편도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못한 걸 할 수 있을지 몰라요" - 웰란

아이가 꾸는 꿈이 그대로 현실로 재현된다는, 그리 기발하지는 않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공포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과 관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풀어냄으로써 나름 독창적인 감흥을 자아내고 있는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새로 입양한 아이 코디의 새엄마 제시는 코디의 악몽 속에 갇혀 있는 트라우마를 쫓는 탐정이 되는데, 그럼으로써 그녀는 코디 친모의 죽음이 아이에게 남긴 씻어낼 수 없는 기억이 단편화와 인상화라는 망각적 변용을 거쳐 끝내 악몽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낸다. 그렇게 아이의 악몽은 끝난 것처럼 보이고, 두 사람의 운명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한다.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그것보다 조금 더 약간은 슬프면서도 결말은 해피한 공포영화다. 다르게 말하면, 확실히 무섭지도 않고, 확실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코디의 악몽을 두루뭉술하게 에두른 것이 아니라 명징하게 추적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악몽은 다름 아닌 우리 현실에서, 그것도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상처, 나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뜻밖의 물건, 상황, 인물과 맞닥트리면서 괜히 놀라곤 하는데, 사실 이들을 역추적해보면 대부분이 (영화 속 코디처럼) 삶에서 받은 여러 인상의 과도한 변용과 예측할 수 없는 단편화가 가져온 결과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변용이 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단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결국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꿈을 꾸는 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내로 한정되어 진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컴퓨터’와 연계된 꿈은 꿀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영화 「썸니아」 는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잠자는 코디를 권총으로 죽이려는 아찔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꽝’ 열리면서 남자가 놀라는 바람에 코디는 무사히 그날 밤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도리상으로나 아이를 총으로 쏴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코디를 계속 맡길 수는 없는 법. 코디는 입양을 희망하는 젊은 홉슨 부부의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홉슨 부부는 불행한 사고로 아들 션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 코디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세 살에 엄마를 여의고 어떤 연유로 여러 가정을 전전한 코디는 아이답지 않게 홉슨 부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가 가져온 짐이라곤 달랑 네모난 상자 하나. 코디가 방에 없을 때 침대 밑에 숨겨놓은 상자를 우연히 발견한 제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뚜껑을 열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나비에 대한 책과 함께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아직 고삼도 아닌데!) 각성제. 그날 코디에게 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제시는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잠을 자는 게 싫어서 각성제를 먹는다는 코디는 자신이 잠들면 ‘캔커맨’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고백한다. 코디는 사뭇 진지하지만, 그냥 캄캄하고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한 제시는 조금만 이해하면 무서운 게 사라진다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코디의 걱정을 잠재우려고 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를 잠재우고 거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부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어디선가 갑지가 날아든 가지각색의 나비가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갑자기 날아든 것처럼 부부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남편과 함께 신비한 현상을 겪자 제시는 용기를 내어 어젯밤에 션을 본 일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제시에게 그 일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던 경험이었다. 다음 날 부부는 더욱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나비와 함께 이번에는 죽은 아들 션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코디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션의 사고 장면, 즉 아이의 발이 약간 위로 들려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아 제시가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익사시킨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녀만 그 충격으로 집단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디의 꿈은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나비로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부부가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션으로 옮겨가는데, 이것은 코디가 (또다시 버림받지 않고자) 부부에게 잘 보이려는 무의식이 꿈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션으로 연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날이 갈수록 그것이 부담되니까 ‘캔커맨’을 등장시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닐까? 이러면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사라지니까 말이다. 결국, 코디는 새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새 부모는 그런 코디의 애처로움은 외면한 채 코디가 가진 희귀한 재능만을 탐낸 비극적 결과가 사람들의 실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면서 「썸니아」 리뷰를 마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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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2018

[영화 리뷰] 그가 강간을 하는 이유, 우리가 강간을 보는 이유 ~ 약살(Red To Kill, 1994)

Red To Kill 1994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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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강간을 하는 이유, 우리가 강간을 보는 이유

"내가 죽도록 네년을 강간하겠다" - 강간범

"해봐! 와서 날 강간해봐!" - 카록

영화의 첫 인사는 꽤 상냥하다. 상냥하다 못해 오금을 저리게 한다. 음침하고 추루한 아파트에서 자식의 장애를 비관한 모자의 투신자살이 애피타이저로, 그리고 오늘의 주요리로는 젊은 여자의 채 식지 않은 싱싱한 시체를 정체 모를 남자가 포효하며 강간하는 섬뜩한 장면이 뒤를 따른다. 디저트로 알맞게 솟아오른 여자의 검은 유두뿐만 아니라 보기 좋게 숲을 이룬 검은 음모도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쯤 되면 이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의 장르나 등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친절한 imdb는 간단명료하게 ‘호러’라고 구분 짓지만, 영화 「약살」은 그런 ‘장르’ 놀이를 아주 우습게 짓밟는다. 근육질 남자가 잔인하게 여자를 강간하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분명히 누군가는 금지된 욕망을 자극받아 짜릿한 전율을 발작적으로 일으키게 할 그것을 그저 단순히 ‘공포’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강간 장면과 이와 쌍벽을 이루는 과도한 노출 장면은 매우 불쾌하면서도 남자의 비틀린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대리 만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약살(Red To Kill, 1994)」에 등장하는 야만적인 남자 주인공은 어쩌면 모든 남자의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위선적 가면 아래 숨겨진 판도라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강간범 같은 근육질의 우람한 남자가 되는 것도 모든 남자의 꿈이 아닌가?

Red To Kill 1994 scene 01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은 앞선 언급한 대로 끔찍한 두 사건을 시작으로 강간의 포문을 연다. 모자(母子)의 투신자살 현장에는 그들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 카록이 있었다. 그녀는 모자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한편으로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푸대접하고 괄시하는 세상 사람들의 흉흉한 인심에 넌더리를 낸 나머지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사직을 결심한다. 하지만, 사직이 처리되기까지는 무려 3개월이나 걸렸다. 하는 수 없이 카록은 사회복지사로서 마지막 일이 될 교통사고로 죽은 한 남자의 정신지체 딸 밍밍을 떠맡는다.

Red To Kill 1994 scene 02

카록은 밍밍을 찬 선생이 운영하는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보호소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밍밍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멍청이 취급받는 장애인들이 찬 선생의 보호와 감독 아래 작은 사업을 꾸려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 밍밍은 서서히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아 가고, 카록은 댄서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밍밍으로부터 잊어버린 사명감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장애인들을 기필코 내쫓으려고 소란을 일으키는 아파트 주민들과의 계속되는 마찰과 강간살인범이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는 위험한 상황이 이제 막 안정을 찾은 밍밍과 카록을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Red To Kill 1994 scene 03

이런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영화지만, 뜻밖에 (비록 그것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아파트만큼이나 싸구려 같을지라도) 소소한 감동과 여자들만의 진한 의리도 엿보이는 영화다. 아쉬운 점은 덩치에는 걸맞지 않게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볼일(?)을 보는, 정력 면에서는 보기보단 뭔가 후달려 보이는 야수에게 걸리는 여자는 죄다 젖가슴을 내보이기 마련인데, 카록만은 끝까지 정절을 지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순진한 처녀 밍밍마저 예외 없이 까발려지는 데 말이다. 아마도 카록의 출연료가 가장 비쌌던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카록이 야수에게 겁탈당하기 직전, 카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알몸을 야수에게 바치려는 (비록 그 갸륵한 의도는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밍밍의 숭고한 우정은 정말이지 고금에 보기 드문 진정한 의리였다. 착실한 모습을 보일 땐 배우 ‘유준상’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던 남자가 트라우마와 연결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만 마주치면 헐크처럼 옷을 찢어발기며 야수처럼 포효하는 짐승으로 돌변하는 남자 배우의 처량한 연기도 볼만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약살(Red To Kill), 1994)」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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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2018

[영화 리뷰] 각성하라 좀비들이여! ~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Land Of The Dead, 2005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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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라 좀비들이여!

각성한 좀비들, 그들의 길을 찾아 나서다!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거겠죠." - 찰리
"착각하는 건 우리 아닐까?" - 라일리

죽음과 무덤에서 기적처럼 살아난 시체들이 인정사정없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수년이 지났다. 생존자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전초 기지를 만들어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전기 울타리와 강으로 둘러싸여 요새화된 빌딩, 무자비한 카우프만의 통치 아래 지난날 문명의 영광을 재현한 ‘피들러 그린’에서 여전히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없는 자들은 그 주변에서 예전과 다름 없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Land Of The Dead, 2005 scene

그러던 어느 날. 카우프만의 보급 부대를 이끌던 라일리는 정찰 나갔다가 보통의 멍청한 다른 좀비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동을 보이는 영리한(?) 좀비를 발견한다. 한때 ‘빅 대디’ 주유소의 주인이었을 그 좀비는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라일리가 본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인간에겐 좀비는 오로지 ‘먹기’만을 원하는 무뇌충이었다. 하지만, ‘빅 대디’의 영향으로 조금씩 각성해 가는 좀비들은 자신들을 사냥하는 것을 오락처럼 즐기는 인간들의 무지막지함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Land Of The Dead, 2005 scene

라일리는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ㄱ러나 카우프만의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도맡아 처리해 오면서 ‘피들러 그린’ 입주를 위해 간절히 돈을 모아왔던 촐로는 자격 미달로 입주를 거절당하자 ‘피들러 그린’ 빌딩을 폭발시키겠다고 카우프만을 협박한다. 테러범과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카우프만은 라일리를 보내 촐로를 상대하게 하는데….

Land Of The Dead, 2005 scene

작금의 좀비 영화를 탄생시킨 '좀비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2세대 좀비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화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랜드 오브 데드」의 영향 때문일까?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에서는 예전의 인간적 감정으로 살아있는 사람과 교감하는 좀 더 진화한 좀비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역대 작품들에서 좀비를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활용하지 않고, 좀비와 등장인물들과의 역학적 관계를 통해 문명과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대가답게 「랜드 오브 데드」도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인류 문명이 산산이 조각날 위기에 부딪혔을 때,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 비록 예전만큼 날카롭지도, 명확하지도 않지만, 순수한 탐욕의 결정체인 좀비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아마도 그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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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2018

[영화 리뷰] 암흑의 영화여, 내 시간을 먹어치워라! ~ 맨하탄 베이비(Manhattan Baby, 1982)

암흑의 영화여, 내 시간을 먹어치워라!

“내 불멸의 영혼은 가질 수 없다, 해브뉴메너! 암흑의 새여, 나를 먹어치워라!” - 마르카토

고고학자인 아버지 조지와 기자인 어머니 에밀리를 따라 이집트를 여행하던 수지는 바람처럼 갑자기 나타난 맹인 여성으로부터 눈동자처럼 빛나는 파란 보석이 박힌 신비한 부적을 전달받는다. 한편, 조지는 미개척 무덤인 고대 해브뉴메너 무덤에 용감하게 들어갔다가 같이 들어간 동료를 잃고 자신은 신비한 광선에 눈이 쏘여 시력을 잃는다.

Manhattan Baby 1982 scene 01

뉴욕시로 돌아온 그들은 잠시 시력을 잃은 조지는 곧 회복될 것이라는 의사 진단에 안심하지만, 수지와 수지의 동생 토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서 집안에는 어둠과 공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남매는 수시로 비명을 질러대는가 하면, 남매의 침실 방문이 제 맘대로 잠겨 부모와 남매를 돌보는 보모 제이미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만, 집안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Manhattan Baby 1982 scene 02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만다. 수지와 토미를 돌보던 제이미가 갑자기 사라지고, 무슨 일인 생긴 것이지 살피러 왔던 에밀리의 동료 루크마저 아이들의 침실에 들어서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다.

Manhattan Baby 1982 scene 03

「맨하탄 베이비(Manhattan Baby, 1982)」는 꽤 많은 공포영화를 제작한 루시오 풀치(Lucio Fulci) 감독의 영화다. 무언가에 놀라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두 눈동자만 보이는 클로즈업 장면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려는 날카로운 피아노 소리가 나름 인상적이지만, 그렇게 긴장감을 유발하려고 애쓰는 역력한 노력을 무참히 무너트리는 엉성한 이야기 때문에 뭐가 뭔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영화. 마지막으로 「맨하탄 베이비」의 한글 자막을 애써 만들어 준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존경의 예를 표하고 싶다. 나로서는 그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영화 마니아였으리라.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맨하탄 베이비(Manhattan Baby, 198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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