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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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SF 소설

삼체 3부 | 류츠신 |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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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감과 기쁨을 동시에 주는 작품들

책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많이 읽다 보면 (아주아주!) 간혹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은 써 볼 만하겠는데?’라고 말이다.

단 한 편의 소설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허무맹랑한 자신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 오만이자 무지와 객기의 비빔밥 같은 어처구니없는 공상이다. 한편으론, 나에겐 윤석열 대통령의 ‘사시 9수’처럼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독한 마음도, 집념도 없다. 한마디로 오지게도 의지박약한 사람인 내가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이루지 못하는 영원한 꿈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소설처럼 상상력이 풍부하고 장황하고 멋들어진 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여 짤막하게나마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 때문이다.

아무튼, 소설을 읽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지만, 가끔 불쏘시개 정도밖에는 소용이 없을 것 같은 형편없는 책을 볼 때면 겨우 이 정도 수준의 글을 써놓고 작가 나부랭이라고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소설이든 수필이든 토막글이든 글을 쓰는 것은 읽고 쓰기를 배운 모든 문명인의 자유이고, 노벨상 후보에라도 들 정도로 글을 잘 써야만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읽어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서점의 책들과 노출증 환자처럼 많은 사람에게 검색되기를 바라는 인터넷 글을 포함해 세상 모든 글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각각의 글에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생각이 있기에 (양질이건 저질이건) 그들 모두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아마 난 작가라는 직업을 향한 서글픈 선망에서 기인한 허름한 질투 때문에 그런 되먹지 못한 생각을 인생의 끝자락에 선 노인네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 문득문득 품는다.

그런데, 가끔은 아예 글을 쓸 엄두조차 안 나게 할 정도로 굴욕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면서도 한편으론 숨은 비경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쁨을 주는 매우 뛰어난 작품과 마주칠 때가 있다. 마치 옆집 강아지가 개헤엄 치는 곳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물에 뛰어들려는 찰나에 바다를 물개처럼 가로지르는 故 조오련 선수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진 나머지 그분과 나와의 우주의 심연보다 깊은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며 수영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아예 깨끗이 단념하는 처지와 비슷하다고 할까나?

그런 훌륭한 작품들이 저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의지를 미련 없이 깨끗하게 단념시켜주는 위대한 작품은 한사오궁옌롄커의 작품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류츠신(劉慈欣)의 『삼체 3부: 사신의 영생(三体Ⅲ: 死神永生)』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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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삼체(三体, 2022)」 포스터>

작가는 왜 우주를 그토록 냉혹하게 묘사했을까?

(이미 삼체 2부에서 ‘암흑의 숲’ 이론을 이해한 독자는 알다시피) 류츠신의 기발한 상상력과 튼튼한 과학적 지식이 결합한 천리안으로 이해한 우주는 우리가 상상해왔던 만큼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우주는 아니다. 특히 아주 오래전 전원 시대의 우주가 10차원이었다는 추측엔 그 어느 공포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한 전율이 온몸을 흩고 지나간다. 왜냐하면,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을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삼차원 물질은 누군가의 저차원 공격으로 이차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태초에 10차원이었던 우주가 계속된 우주 전쟁으로 현재의 3차원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삼체』 신화의 논리다(태초의 우주가 10차원이라는 설정은 아마도 초끈 이론에서 착안한 듯).

광속으로만 탈출할 수 있다는 ‘차원 떨어트림’ 공격으로 항성계를 전멸시키는 『삼체』 속 우주 전쟁에 비교하면 우리가 SF 영화에서 자주 보던 레이저 같은 것을 서로에게 마구 쏘아대는 그런 식의 전쟁은 초보적인 무기로 치러지는 초보적인 전쟁임을 상기시킨다. 현대인의 상상 속에서 가장 위력적인 파괴력을 가진 「스타워즈」의 데스 스타(Death Star)조차 빛의 속도로 달려가 항성을 파괴하는 미세먼지보다 작은 광립(光粒)의 파괴력과 효율성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인류가 가진 핵무기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데 왜 류츠신은 좌표가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항성계를 파괴하는 일이 일상이 된 일말의 자비도 없는 냉혹한 우주를 그렸을까? 인류의 무지와 무능과 오만에 대한 경고? 우주 생태계가 마냥 낭만적일 수는 없다는 확신? 그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에서 기인한 소설적 상상력의 표출? 아니면, 인류가 아닌 다른 지적생명체로부터 받은 경고를 인류에게 전파하는 특수 임무를 부여받아서?

그 진의는 작가만이 알겠지만, 스스로 찬란하다고 자부해 온 인류 문명사가 가련하고도 변변치 못한 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우주 생태계의 지독한 냉혹함이 다름 아닌 생존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에서 그나마 한 가닥 위안을 얻게 된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혹은 개개인이 생존을 위해 어떠한 무지막지한 투쟁을 해왔는지 되돌아보면 좌표가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항성계를 파괴하는 그들의 행위를 무턱대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생명체에겐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이니까.

류츠신은 『삼체』를 통해 정말로 변치 않는 우주의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물리 법칙 같은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임을 지각시켜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부단한 투쟁의 역사로 점철된 중국 현대사가 그의 사고를 잠식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왜 한 사람에게 태양계의 운명을 맡겼을까?

『삼체 3부』는 지구 연대로 18903729년 하고도 6세기를 살아온 청신(程心)의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삼체 문명의 공격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해 온 뤄지(羅輯)의 뒤를 이은 제2대 검잡이다. 하지만, 그가 내린 두 번의 선택으로 태양계 인류의 운명은 우여곡절을 겪다가 끝내 태양계의 모든 물질과 함께 2차원 세계에 묻히고 만다.

청신 곁에 우주의 유일한 남자로 남은 행운아인 관이판(關一帆)은 청신이 선택한 것은 사랑이고, 그 누구도 한 세계를 멸망시킬 순 없다며 그를 위로한다. 관이판의 위로는 보는 사람의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한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 사람의 치졸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고, 청신을 인류의 소중한 가치관을 끝까지 지킨 영웅으로 우러러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청신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왜 류츠신은 한 사람에게 한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청신을 통해 일당독재가 결국엔 중국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려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구의 인류가 청신을 선택한 것처럼 중국인이 공산당을 선택했더라도 잘못된 몇 번의 선택이 누적되면 그로 인한 결과는 때에 따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일 수도 있음을 중국은 이미 마오쩌둥 시대를 통해 통감했고, 인류는 히틀러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지금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통해 또다시 경험하는 중이다). 마오쩌둥 • 히틀러 모두 국민의 절대적인 믿음과 추종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선택은 그들을 선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재앙으로 몰고 갔다.

아름답고 선량하고 지적인 청신은 누구나 흠모할만한 여성이지만, 청신의 선택은 그의 따뜻하고 연약한 마음씨가 품을 만한 소박한 바람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을 밀어붙인 마오쩌둥은 자신의 선택이 중국에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지 그토록 처참한 결말을 가져오리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고, 히틀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류츠신은 감히 청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시진핑의 독주가 가져올 예상치 못한 위험을 중국인들에게 넌지시 깨우쳐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이것이 순전히 나의 망상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삼체’ 드라마가 곧 개봉하게 될 정도로 류츠신의 인생은 순조롭다. 만약 누군가 이것을 빌미로 류츠신의 정치적 성향을 트집 잡기 시작한다면 류츠신의 인생은 어떻게든 변했을 것이다. 멀게는 중국에 남은 마지막 지식인과 민주 역량을 굴복시킨 1957년의 반우파 투쟁, 가깝게는 90년대 허난성 에이즈 파동을 폭로한 故 왕슈핑(王淑平) 등의 사례만 보더라도 정치적으로 몰락한 사람들이 사회와 정부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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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삼체(三体, 2022)」 스틸컷>

세기에 하나 나올법한 SF 소설

허버트 조지 웰즈(Herbert George Wells) 같은 1세대 SF 작가들이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지하여 공상 과학 소설을 썼다면, 필립 K. 딕(Philip K. Dick) 같은 2세대 SF 작가들은 기존 공상 과학 소설에 철학적인 색을 입혔다. 그렇다면 류츠신이나 하오징팡(郝景芳) 같은 3세대 SF 작가들은 SF 소설에 과학적 섬세함과 문학적 감수성을 더했다고 볼 수 있다(세대 구분은 내가 임의로 구상한 것이니 오해 없기를).

이중 류츠신의 『삼체 3부』는 과학적 정교함을 실현하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믿어 의심치 않는 우주의 기본 물리 법칙까지 뒤흔든다. 물리학의 최종 결말을 선고하는 듯한 비장함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 자체가 인류의 이론 물리학에 대한 도발이다. 그는 인류가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물리 상수 중 하나인 빛의 속도가 고정된 값이 아니고, 원래의 우주는 지금의 3차원이 아니라 10차원이었다는 공상을 소설에 기가 막히게 접목함으로써 인류가 아는 우주보다 더 혼란스럽고 번잡하고 변화무쌍한 우주를 탄생시켰다(참고로 내가 알기론 현재까지 인류가 관측한 우주의 모든 현상은 물리적으로도 수학적으로 현재의 광속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독자는 우주의 규모조차 뛰어넘으려는 그 원대한 구상에 기겁하고, 그것을 빈틈없이 묘사한 그의 재능에 감탄한다.

『삼체』 1부가 인류의 현재 역사를, 2부가 인류 미래의 역사를 담았다면 3부는 우주의 역사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3부의 시간적 규모는 청신이 살아온 18903729년 하고도 6세기만큼이나 길고, 공간적 규모는 전원 시대의 우주가 10차원이라는 설정만큼이나 복잡하고 방대하고 깊다. 또한, 류츠신의 소설은 그동안 SF 소설과는 소원했던 문학적 필체, 그리고 지난 세월의 SF 소설에 빈약했던 과학적 논리성과 엄밀함을 두루 갖춤으로써 앞으로 나올 SF 소설의 요구 조건을 상향시킨다. 『삼체』는 SF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며, SF 소설 마니아라면 죽기 전에 열 번은 탐독해도 부족함이 없는 일대의 명작이다. 감히 예견하건대, 앞으로 1세기 동안은 이 책을 뛰어넘는 SF 소설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반 독자에겐 다소 난해한 하드코어적인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우주의 탄생과 진화와 종말, 새로운 우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순환,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얽힌 시간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 책은 새로운 신화의 탄생이다. 이것을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인류의 역사가 신화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부침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류 미래 역사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나의 글이 마치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군이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선전 문구처럼 허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삼체』를 읽지 못한 사람의 무르익은 지식에서 비롯한 착오라고 확신한다.

이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 새로운 영겁의 신화를 현대적인 영상에 기록한, 그럼으로써 「스타워즈」와 「스타 트렉」을 뛰어넘는 SF 드라마가 등장하여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다. 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를 인상 깊게 감상한 사람으로서 드라마 「삼체」도 기대된다. 드라마가 곧 상영된다고 하니 「장안 12시진」을 뛰어넘는 대작이기를 기대해본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전 우주의 150만 문명이 바로 이 순간 한 줌의 재로 사라지더라도 우주의 질량은 변함없다는 것을.

삼체 1부 | 류츠신 | 외계 지적생명체, 인류의 구원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삼체 2 암흑의 숲 | 류츠신 | 엄밀한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이 일궈낸 놀라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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