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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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 반전과도 같은 이야기의 ‘뒤끝’

삼개주막 기담회 1, 2 | 오윤희

책 표지
review rating

‘기담’보다는 ‘괴담’으로 불리어야 마땅

표준국어대사전에 기재된 ‘기담(奇談)’의 사전적 의미는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작가 오윤희의 『삼개주막 기담회』에서 소개되는 갖가지 이야기는 이상야릇하다기보다는 끔찍하게 잔혹하기 이를 데 없고, 재밌다기보다는 끔찍하게 슬프기 그지없다. 갓난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오는가 하면,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물도 아닌 것이 왜 사람은 그토록 많이 죽어 나가는지.

인간 본성 중 가장 음침하면서도 한 번 잠식당하면 돌이키기도 어려운, 그래서 세상만사 모든 불행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적개심, 열등감, 질투심, 복수심, 원한 등의 감정을 소재로 활용하면서 여과나 희석 없이 노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의 ‘미시마야 변조 괴담’ 같은 신비로우면서도 인간적이고 으스스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산뜻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 나로서는 들뜬 마음으로 맞선 장소에 갔다가 시체가 시장 바닥에 널린 쓰레기처럼 방치된 학살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뜨악한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뭔가 탈탈 털린 기분이랄까.

아무튼, 기이하고 이상야릇하다기보다는 피 맺힌 원한과 가혹한 복수가 장마 후의 모기처럼 활개 치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삼개주막 기담회』의 에피소드는 ‘기담’보다는 ‘괴담’으로 불리어야 마땅하다.

빙 크리에이터 AI 생성 이미지

반전과도 같은 이야기의 ‘뒤끝’

아쉽게도 상상을 초월한 전개 따위는 없었다. ‘전설의 고향’ 마니아라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흐름과 분위기 속에서 제 말을 하면 찾아오는 호랑이처럼 ‘짠~’ 하고 귀신이 등장하여 ‘옜다, 이거나 먹어라!’하는 식의 징악으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양반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 억울하게 죽은 무녀의 원한,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독살한 여인, 열녀를 강요하는 사회, 모함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원한, 처첩 간의 갈등, 개돼지 부려 먹듯 종을 부려 먹는 양반 등 치가 떨리고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지극히도 세속적인 이야기들뿐이다. 나쁘게 말하면 참신하고 신비로운 맛이 없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사회파 괴담이라고 추켜세울 수 있을 것이다.

고차원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저차원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진부하고 고만고만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렇게 고리타분하기만 했다면 한두 에피소드 읽고 바로 내쳤지 1권과 2권을 게눈감추듯 단숨에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과 나의 시간은 소중하니까 말이다.

삼개주막 명물인 술국을 들이켜듯 목구멍 속으로 냉큼냉큼 흘러가는 쉬운 문장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가 갈무리될 시기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필살기가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이야기의 ‘뒤끝’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작렬하는 태양처럼 강렬하면서도 추추원혼처럼 구슬픈 것이 심금을 울리다 못해 기어코 애통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눈물을 흘리면 자연스럽게 슬픔이 해소되듯 반전 있는 뒤끝을 읽게 되면 (책에 대해) 지금까지 들었던 의혹도 아쉬움도 눈 녹듯 사라진다. 이 필살기는 레벨업이라도 하는지 위력은 뒤로 갈수록 더욱더 강력해지는데, 2권 마지막 장을 읽고 나면 귓불 아래쪽을 시원하게 적시면서 흘러가는 눈물이 베갯잇을 촉촉이 적시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아지경에 가까운 감개에 취하게 된다.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가 보다.

주막엔 술과 국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인이라면 가질법한 조선시대 양반 • 상민 • 천민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와 그것을 고스란히 계승한 듯한 평범한 캐릭터, 그리고 한국인에게 ‘조선시대’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매체로 많이 접해본 것이라는 문화적 익숙함 때문에 ‘에도’를 소재로 한 미야베 미유키 소설만큼 흥이 나질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삼개주막 기담회』를 읽는다면 생소하고 색다른 맛에서라도 재밌게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적 익숙함도 익숙함이지만, 무엇보다 ‘인과응보’라는 징벌적 성격이 짙은 사건 구성은 진부한 냄새를 풍기다 못해 고개를 살짝 외로 틀게 할 정도로 구리기도 하다. 인류의 원시적 감성을 거칠게 자극하는 ‘원한과 복수’ 이야기만큼 구슬프고 통쾌한 것도 없지만, 그만큼 진부한 소재지니만큼 소재로 사용할 때는 조심스러운 접근과 더불어 개성 있는 각색이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삼개주막 기담회』는 ‘원한과 복수’라는 평범한 소재를, 혹은 (조선시대 백성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모아 편집한) 옛날 책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이용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오만한 평가는 지나치게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역심 같은 것일 수도 있으므로 굳이 새겨들을 필요는 없다. 조선시대 백성의 삶이 현대인으로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신산하고 간난했음을 상기하면, 조선시대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에겐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런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이야기는 일상의 몇 안 되는 유흥이었을 것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과 상인 등이 모이는 주막을 장승처럼 지키고 있는 항아리엔 걸걸한 막걸리가 보관되어 있고, 손님의 허기진 배를 책임지는 가마솥엔 구수한 국밥이 끓고 있다면, 누추하면서도 온기가 있는 주막 전체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막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염원과 분노와 절망이 담긴 이야기는 모이고 흘러 부당하고 부조리한 일을 당해도 말로도, 그리고 글로도 딱히 하소연할 데 없고 그럴 능력도 없는 백성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작은 희망으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생각에 미치면 역시 내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나 내 추측이고 희망이지만, 조선시대엔 분명 삼개주막 같은 곳이 여럿 있었을 것이고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상인들은 상품만 전달하는 역할만 맡은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보고 들은 각양각색의 사연을 각지에 전파하는 역할도 본의 아니게 맡음으로써 묶은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를 갈망하던 백성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돈독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최소한의 유흥조차 누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면 가슴이 사무치도록 미어진다.

주막엔 술과 국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있었고, 더불어 이야기도 있었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AI 생성 이미지

귀신 이야기하면 귀신이 나온다?

(미시마야 변조 괴담의 오치카 같은 존재이자 오치카처럼 고운) 삼개주막 주인 김 씨의 아들 선노미는 왜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냐는 연암 박지원의 질문에 사람들이 이야기에 울고, 웃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타인의 경험이다. 우린 타인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공감 능력을 발휘해 마치 내가 경험한 이야기, 혹은 내가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살아봤을 법한 나의 또 다른 인생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린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싸안고 울거나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교감하게 된다. 이렇게나마 세상만사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고, 한편으론 마음속에 쌓이고 쌓였던 억울함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자 존재 이유다.

아무튼, 이런저런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뒤끝’ 하나만으로도 감히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니 아직도 망설이는 칠칠치 못한 독자가 있다면, 엉덩이 한 대 걷어차이기 전에 냉큼 결정지어라. 사실 짠하면서도 애절한 여운을 남기는 뒤끝이 없었더라면, 『삼개주막 기담회』은 기억에 남기는커녕 기억에서 바로 삭제했을 그런 수준 이하의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전설의 고향’ 재탕을 보는 듯 예상대로, 혹은 익숙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이야기를 ‘뒤끝’ 하나로 뒤집어 놓다니, 각각의 잔혹한 에피소드보다 이런 플롯이 오히려 더 소름 끼친다.

끝으로 일본에선 요괴 이야기를 하면 요괴가 나온다고 한다. 이것을 한국말로 풀어보면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삼개주막 기담회』 1권과 2권을 연달아 펼쳐보면서 ‘귀신’을 읽고 상상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귀신 이야기를 운운하는 작금, 내 주변에서 ‘짠~’하고 귀신이 등장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는 말이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선노미와 오치카를 곱한 만큼 곱디고운 처녀 귀신을 나와주십사 하는 엉큼한 기대감으로 마무리를…. 그런데 헉!, 저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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