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술래잡기 | 마옌난 | 리뷰는 정직해야 한다
Original Title: 以罪为名 by 罪恶倾城
“한 사람을 죽이는 데는 품이 많이 들지. 하지만 이렇게 수십번 찌르면서도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모삼, 느껴봐라. 내가 찌른 칼자루의 깊이와 그 각도를.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너는 모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육의 미학이다.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 p9”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 리뷰’
내가 되지도 않는 글 실력으로 재미는 없고 뻣뻣하기만 한 ‘책 리뷰’를 굳이 쓰려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만한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추천하기 위해서다. 자식이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어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누군가 내 리뷰를 읽고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어 의식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런 연고로 최대한 스포일러는 자제하면서 내가 소개하는 책을 읽어볼 요량은 생기도록, 혹은 내가 소개하는 책의 책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호기심이 활활 타오르도록 하고픈, 그런 갸륵함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횡설수설 같으면서도 나름 진지한 마음으로 주절주절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런 ‘책 리뷰’ 쓰기에는 좋은 ‘책 리뷰’는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용이 풍족하고 책의 핵심이 잘 요약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도록 호기심을 부추기는, 그래서 그 책을 읽어볼 마음이 無에서 불쑥 솟아오르도록 만드는 글이라는, 아무리 잘 쓴 리뷰라도 책을 읽는 것에 비교해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나의 철학이 담겨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목적만 보면 책 파는 장사꾼 같은 상술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속마음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배움과 앎에 굶주린 사람이 책을 훔친 것은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이 생존을 위해 음식을 훔친 것처럼 용서해줘야 한다는 옛사람의 관용에 담긴 깊은 속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즉, 한 사람이라도 책을 더 가까이했으면 하는 간절함과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시민 사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포부다. "누군가 큰돈을 훔치면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지만, 누군가 굶주림에 음식을 훔쳤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라는 어느 중국 시민의 지당한 말씀처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 역시 사회의 책임이다. 고로 난 누군가의 육체적 굶주림에 하등 보탬은 되지 못할지라도, 정신적 빈곤을 해갈하는 데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작은 바람에서 ‘책 리뷰’를 쓴다.
<리뷰는 정직해야 한다!> |
굳이 리뷰를 남기지 않아도 될 책인데도, 굳이 리뷰를 남기는 이유
그런데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는 책은 최소한 추천할만한 장점이라든가, 아니면 내세울 만한 뭔가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말발도 서고, 할 말도 더러 있게 되는데, (매우 드문 경우지만) 간혹 내 선택의 잘못으로 영양가가 전혀 없는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작가나 번역한 사람에게는 미안하게도 마옌난(馬燕楠)의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가 그러한 경우다. 삼류 소설로 분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한 텍스트, ‘영혼’, ‘개성’ 등등을 운운하는 것이 매우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진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두 주인공, 산책하는 사람의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바짝 마른 낙엽처럼 독자가 책장을 넘기는 가냘픈 손짓에도 부서질 것 같은 버석버석한 구성, 마지막으로 오 팀장이 두 주인공 모삼과 무즈선을 대하는 말투가 존댓말과 반말을 오가는 등 번역상의 오류 등 이런저런 짧고 굵직한 흠들이 대뜸 마음속을 휘젓다 보니 책에 대한 흥미도도 떨어지고, 책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지니 장르 소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매력이라 할 수 있는 긴장감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읽는 도중에 중도하차하고 싶은 뻐근한 간절함이 독자를 능히 괴롭히고도 남는, 그런 소설이다.
그런 연유로 양심상 이 책을 차마 추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별 4개 수준의 평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명한 N 영화 사이트에는 ‘평점 알바’가 평점과 댓글을 조작한다는 비난과 조롱의 글을 쉽게 볼 수 있긴 한데, 도서 쪽도 이런 비열한 상업주의에서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정말 별점 알바는 존재했던 것이다. 참고로 구글과 바이두에서 저자 이름인 ‘馬燕楠’의 검색 페이지가 달랑 두 페이지인 것을 보면 마옌난은 그렇게 많이 알려진 작가도 아니고, 바이두에서 ‘以罪爲名’로 검색하면 ‘罪恶倾城’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 텍스트로 공개되어 있는데, 구글 번역으로만 봐도 『사신의 술래잡기』와 같은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보아 아마 (중국에서는 종이책으로 출판된 것 같지는 않은) 인터넷 소설을 중국인이 한국어로 번역해 종이책으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첫 시작이 있고, 또한 유명세가 작품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 읽는 소중한 시간을 고려하면 최소한 보통 수준 이상의 작품을 접하고 싶은 독자의 욕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또한, 세상의 모든 책을 번역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판사 역시 이러한 점을 응당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책을 한국어로 옮겼을까? 그것도 출판사의 첫 작품으로? 거의 무모한 시도에 가까운 도전이었으리라 짐작되지만, 여기서 남의 비즈니스까지 간섭할 이유는 없고, 간섭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마디 충고한다면, 앞으로는 번역할 책을 선택함에 좀 더 신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그런고로 평점은 정직해야만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사신의 술래잡기(以罪爲名)』에 대한 평점은 정직하지 못하다. 보통 인터넷 평점은 나보다 후할 때가 많기는 하지만, 이것은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그래서 굳이 리뷰를 남기지 않아도 될 책인데도, 굳이 리뷰를 남기고 있다.
마치면서...
사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예전에 읽었던 중국 장르 소설 계통을 개척한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참신한 작품들 때문이었다. 굳이 언급하자면, 찬호께이(陳浩基)의 『기억나지 않은, 형사(遺忘.刑警)』,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 등등.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내 ‘책 리뷰’ 사상 최고의 가혹한 리뷰가 되었지만, ‘정직’을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최고의 미덕 중 하나로 믿는 나로서는 도저히 입에 침을 바르면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또한, 이 책이 평점 4점을 받았다는 황당한 작태가 나의 앙상한 손가락을 자극해 키보드 워리어로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반드시 한마디라도 남겨야 한다면 무엇이라고 써야 할까? 중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 파일과 부검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범죄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호기심을 넉넉하게 자극할 수 있는 책 뒤표지의 문구가 그나마 무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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