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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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 어스 by 리사 칼테네거

에일리언 어스 by 리사 칼테네거 | 과학의 엄격함과 SF의 자유로움

에일리언 어스(Alien Earths: The New Science of Planet Hunting in the Cosmos) 책 표지
review rating
별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별이 단순히 가스 덩어리라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별이 우리의 영원한 질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는 것이다. 『에일리언 어스』는 그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 singingdalong

콘크리트 우주에 사는 한 시민이 잃어버린 별을 그리워하면서

우리 동네는 밤 9시가 넘어도 깜깜해질 줄 모른다. ‘칠흑 같은 밤’이 되어야 할 도시의 밤은 고요한 어둠에 휩싸이는 대신 모기처럼 윙윙거리는 자동차 소리와 각종 인공 불빛에 점령당한 채 허우적거린다. 여기선 웅크린 거인 같은 거대한 쇼핑몰에서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오는 불빛과 가로수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상점의 네온사인이 무수한 별을 대신한다. 먼지와 공해에 그을려 사막을 질주하는 사륜구동 자동차의 윈도우처럼 탁해진 하늘은 별을 숨겨버리고, 나이 든 매춘부의 짙은 화장처럼 천박한 문명의 불빛은 별빛을 단숨에 삼켜버린다. 어릴 적 나는 은하수와 별은 책으로만 읽었고, 나이를 먹은 지금은 인터넷으로만 본다. 나에겐 적색왜성 대신 교차로의 적색등이 있었고, 초신성 대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있었다. 무시무시한 암석 빗방울 대신 더러운 미세먼지가 내렸고, 끝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우주 대신 끝없는 탐욕으로 가득한 콘크리트 우주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값비싼 망원경들이 포착한 우주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외계 문명을 보는 듯한 기묘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럴 때면, 우박처럼 떨어지는 별들이 창문을 후드득 두드릴 것 같은 청정한 자연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별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별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부러움과 시기심이 혼합된 의문에 휩싸일 때가 종종 있다.

어쩌다 맑게 갠 밤하늘에 대머리 아저씨의 정수리에 있는 머리카락처럼 듬성듬성 박혀 있는 별을 운이 좋아 보게 되면 잊힌 언어처럼 낯설었고, 첫사랑의 사망 소식을 들은 것처럼 서글펐다.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우주는 거리의 미녀처럼 잠깐 관심을 끌다 지나쳐버리는 추상적인 개념이었고, 별들은 픽셀로 이루어진 디지털 이미지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리도 척박하니, 광활하고 경이로운 우주를 향한 무수한 염원을 품을 수 있는 상상력이 아직은 남아 있는 내가 별이 사라진 밤하늘이라는 암울한 현실과 도시의 빛 공해와 미세먼지 위로 펼쳐진 우주라는 진짜 현실 사이의 심연처럼 버티고 있는 괴리를 채우려고 소소하게는 SF영화, 장대하게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의지하게 된 것은 나름 현명한 선택이다.

칼 세이건(Carl Sagan), 리사 칼테네거 같은 이들이 별빛처럼 쏟아내는 우주 탐사의 발견들은 내가 사는 곳에선 도통 볼 수 없는 별빛을 대신해 어둠의 밤하늘을 반짝반짝 장식하는 은하수의 조각들 같았다. 별을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해 품는 황량하고 단조로운 상상과 밤하늘에 찬란하게 수놓아진 별들을 맨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자연에서 자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해 품는 오색영롱하고 풍요로운 상상 사이의 이루 말할 수 없는 틈새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리사 칼테네거(Lisa Kaltenegger)의 『에일리언 어스(Alien Earths: The New Science of Planet Hunting in the Cosmos)』 같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

야밤에 산책하러 나가 멀찍이서 낯선 사람을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경계하는 고라니와 마주치면 깜짝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다가도 죽어가는 사람의 눈처럼 희끄무레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몸이 차갑게 식는다. 도시의 밤하늘은 그저 도시의 빛에 잠식당한 공허뿐이다. 어쩌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사는 우리는 이미 우주를 잃어버린 세대인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빈약한 사람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상상력은 골목길 포장마차의 메뉴처럼 빈약하고, 호기심은 한여름의 물웅덩이처럼 얕다.

AI 생성 이미지, 유성우를 바라보는 소녀

외계 행성 사냥꾼들, 신화를 현실로 만들다

지구 종말 시나리오 대비, 자원 고갈 문제, 기술 스핀오프, 기초 과학의 경계 확장, 우주 산업 시장, 신에너지 개발 등 인류가 호기심 충족을 제외하고 우주를 적극적으로 탐사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하지만, 당신이 『에일리언 어스』를 펼친다면 그런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이유보다는 “이 우주에 우리가 정말 혼자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나처럼 말이다.

난 화성의 지하 호수나 유로파의 얼음 아래에 뭐가 있는지도 궁금하지만, 우리와 닮은 눈빛을 하고 있고, 그 우리와 닮은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우주에 우리는 정말 혼자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지적 생명체가 어딘가에 있다는 상상만 하면 찌릿찌릿한 전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 인류가 제작한 최고 행성 사냥꾼이라 할 수 있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으로 멀고 가까운 천체들이 남긴 빛 지문을 포착해 태양계 넘어 외계 행성의 대기 성분을 분석하는 과학적 방법론도 흥미롭지만, 인류가 아닌 다른 문명이 “이 우주에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우주로 발사한 신호를 해독하는 상상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직장에 처음 출근하는 새내기처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별을 바라보며 신화를 만들었고, 이제 과학으로 그 신화를 현실로 만들려 한다. 그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 중 한 사람인 리사 칼테네거는 자신의 책을 통해 그 신화를 현실로 만드는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움과 낯섦으로 가득한 현장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제2의 칼 세이건이나 제2의 리사 칼테네거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꿈을 가질 것이고,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마음속 깊이 묻어둔 질문을 다시 꺼내 들 것이다. “우린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의 존재는 우주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해하기 쉬운 명쾌하고 재밌는 설명으로 인류의 외계 생명체 탐사에 대한 최신 지식과 동향을 담은 이 책은 독자에게 두 세계를 동시에 열어주는 마법의 문이다. 하나는 빚 지문이라는 우주의 음악적 서사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현실적 우주 탐사의 세계를, 다른 하나는 테츠로가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떠나면서 마음속에 그렸을 법한 미지의 세계를. 당신이 어느 세계로 빠져들었든 간에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창가에 기대어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혹은 희뿌연 빛 공해 뒤에 얄밉게 숨은 별들을 상상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에일리언 어스』의 진정한 매력은 과학이 추구하는 '답'과 독자가 갈구하는 '의미'의 경계를 허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가 그저 허황한 공상만은 아니라는 사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사 준 생애 첫 망원경으로 달의 크레이터를 보던 순간처럼, 또는 어른이 되어 오랜만에 꺼낸 옛 망원경을 무심결에 들여다보다가 이웃 처녀의 알몸을 본 순간처럼, 또는 외계 문명의 신호를 포착했다는 가상의 뉴스를 남몰래 상상하며 온몸이 소름 돋던 그 감각처럼, 이 책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은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밤하늘을 더욱 의미 있게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과학자가 되든, 공상하는 자로 남든, 우리는 모두 이제 바야흐로 ‘발견의 시대’에 걸맞은 문명인으로 조금 더 담대해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AI 생성 이미지, 두 개의 태양이 뜨는 뜨거운 행성의 여행자

과학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에일리언 어스』엔 ‘무엇무엇을 상상해 보자’라는 문장이 무려 41번이나 나온다는 사실이다. 리사 칼테네거는 인류의 천문학 분야의 최전방에 선 유능한 과학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상해 보자’를 거듭 제안함으로써 그녀 역시 우리처럼 ‘꿈꾸는 과학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데이터와 관측에 기반한 엄격한 과학자이면서도, ‘만약에(What if)’라는 마법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즐길 정도로 쾌활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과학에서는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곧 과학자가 되는 길이라는 그녀의 신념을 재치 있는 질문과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실타래를 얼음판 위에서 박덩이 굴리는 것처럼 술술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몸소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상상해 보자’라는 말은 잠시 막혔던 글에 봇물을 트기 위한 수사적 장식이 아니라 과학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이런 점은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론 과학의 낭만적인 면도 은근히 부추기고 있어 친근감이 느껴진다.

나도 여기서 AI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상상해 보자’ 시리즈를 만들어봤다.

• 빛의 속도보다 빠른 입자(타키온)를 포착한 순간을 상상해 보자.
• 화성의 얼음 아래에서 발견된 생명체가 지구 생명체와 완전히 다른 DNA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 인공지능이 수학적 증명을 통해 '차원 이동'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을 때 인류가 느낄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상상해 보자.
• 외계 신호(SETI)를 해독한 결과 그것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평화의 인사'가 아니라 문명의 멸종을 알리는 단말마였음을 깨달은 순간을 상상해 보자.

과학은 ’알 수 없다‘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으로 움직인다.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고, 답이 없으면 지식도 진보도 없다. 과학이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라면, 상상력은 그 배의 돛이자, 질문은 그 돛을 향해 부는 바람이다.

AI 생성 이미지, 화성 광산에서 일하는 아시아인과 흑인

누가 이 기술을 소유하고, 누가 배제되는가?

『에일리언 어스』가 SF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곳곳에서 SF 영화와 SF 소설을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독자의 이해와 흥미를 한층 더 돋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겉으로는 무시무시해 보이는 (지구에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자동차가 전복될 수 있는 위력을 가진 태풍 5등급 정도의) 시속 160킬로미터의 화성 모래 폭풍이 화성 대기의 낮은 밀도(지구의 1% 정도) 때문에 실제론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앤디 위어(Andy Weir)의 소설 『마션(Martian)』에서 우주선이 대규모 모래 폭풍으로 인해 전복될 위기에 처하는 첫 장면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곁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SF 장르에서 묘사하는 외계 행성의 모습이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타당하다면 어느 정도까지가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니면 100% 공상력의 산물인지를 검증하는 재미있는 작업이 여러 차례 등장하면서 혹시라도 있을 ’졸음‘이라는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한다.

영화 「스타워즈」, 영화 「리딕」, 영화 「혹성탈출(1968)」, 드라마 「스타트렉」, 로알드 달(Roald Dahl)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고전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등 수많은 SF 명작이 그녀의 난데없는 과학적 검증에 제물로 바쳐졌다.

그런고로 3개의 항성이 중력으로 조율된 춤을 추며 공전하는 켄타우루스자리 알파 삼중성계가 이야깃거리로 등장했을 땐 자연스럽게 류츠신(劉慈欣)의 소설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을 떠올릴 수 있었다. SF 장르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유명한 작품이니만큼 삼중성계를 소재로 한 SF 소설을 언급한다면 『삼체』만 한 것도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내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천문학자들은 대부분 과학 소설을 좋아하며, 때때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부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법에 궁금증을 품기도 한다고 말하는 그녀가 『삼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삼체』의 한 팬으로서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렇다고 낙담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인용 방식이 단순히 유명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그녀가 설명하려는 과학적 논점과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뿐이라고 이해하면 되니까. 실제로도 그러한 것 같고.

그런데 생명과학, 생물학 등 다른 분야의 책에선 종종 볼 수 있었던 중국인이나 인도인, 혹은 중국계 • 인도계 등의 아시아인 과학자가 이 책에서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그녀가 언급한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아시아 작품은 없다). 알고 보니 미국은 2011년에 ’NASA-중국 협력 금지법’을 제정해 우주 개발 분야에서 일찌감치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일리언 어스』는 재밌고 유익한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론 과학계의 지리적 불균형과 우주 탐사 역사의 구조적 편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한 것 같아 씁쓸하다.

만약, (영화 「아마겟돈」처럼) 먼 훗날 지구와 충돌할 소행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충돌을 막을 기술이 NASA에만 있다면, 미국은 이것을 빌미로 다른 국가에 어떤 요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지구와 인류를 위해 나서는 척하면서 소행성이 중국이나 러시아 중심부에 충돌하도록 비밀리에 조작할 수도 있다. 만약 먼 훗날 미국의 우주 기술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광산을 운영할 정도로 발전한다면, 그 기술을 다른 국가와 공유하려고 할까? 아마도 그때가 되면 화성의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십중팔구 아시아인 아니면 흑인이고 그들을 소유한 회사는 서구 기업일 것이라는 것은 바보라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을 때 미국만이 성간을 항해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 우주선 기술을 보유했다면 그들이 아시아인을 얼마나 배려할까?

이런 우울한 상상은 『에일리언 어스』가 다루지 않은 가장 큰 질문을 던진다. “과학의 진보는 정말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핵무기처럼 특정 세력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도구인가?” 그녀가 안내하는 우주 탐사의 미래는 분명 매혹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누가 이 기술을 소유하고, 누가 배제되는가?”하는 정치적 어둠이 음울하게 깔려 있다. 우주는 인류 공동의 유산일지라도 그 문을 열 열쇠가 소수에게만 허락된다면, 별들 사이의 어둠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버려진 이들의 침묵으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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