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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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화 백야행(白夜行) 한국판과 일본판을 봤지요

오늘은 영화 백야행(白夜行) 한국판과 일본판을 봤지요

영화 백양행, 한국판 일본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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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의 미소 언저리에서 재발견한 영화, 백야행

영화 백야행 한국판의 한 장면

아무 생각 없이 기분 전환 겸 볼 수 있는 가볍고 유쾌한 영화를 두리번두리번 찾다가 「나쁜 놈은 죽는다(坏蛋必须死, 2015)」를 보게 되었다. ‘한중 합작’이라는 보기 드문 제작 배경과 어느덧 중견배우 소리를 듣게 된 ‘손예진, 신현준’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등장한다. 영화 무대도 젊은 날의 좋은 추억을 선물했던 제주도다. 장르도 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액션, 코미디’. 제주도를 중국 자본이 잠식하고 있다는 우려스러운 현실을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 「필사의 추격」처럼) 살짝 내비치는 장면들을 제외하곤 신현준의 어설픈 살인청부업자 연기도 좋았고, 중국 배우들의 서투른 한국어 연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수상하게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냘파 보이는 여자 역을 맡은 손예진의 연기, 그중에서도 영화 막판에 마치 필살기는 마지막에 보여주어야 제맛이라는 듯이 보여준 환한 미소가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그 미소를 다시 보고자 손예진이 주연한 영화를 찾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원작 소설을 토대로 제작한 영화 「백야행(白夜行, 2009)」를 오래간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내친김에 일본판도 봤다. 참고로 일본판 같은 경우 한국어 자막이 저작권 때문에 구글에서 찾기 어려웠지만, PikPak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끝없는 어둠 속을 걷는 사람들

영화 백야행 한국판의 한 장면
白, 夜, 行

한자란 참으로 묘하게 상상력을 장려하는 언어다. 남남처럼 따로따로 풀이하면, 대충 ‘희다’, ‘밤’, ‘걷는다’ 정도의 뜻을 가진 요 간단명료한 세 글자를 한 가족으로 엮어놓고 풀이해 보면 몇 번을 곱씹고 곱씹어도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마치 선문답처럼 아리송하면서도 사자성어처럼 의미심장한 별스러운 단어가 되어 버린다. 만약 『백야행』이란 소설이나 영화를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白夜行’의 뜻을 풀어보라고 한다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앞에서 한창이나 갸웃갸웃하거나 도리도리하다가 '하얀 밤은 걷는다?' 정도로 귀결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10년 전에 읽은 원작 소설은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엊그제 영화 「백야행」을 본 한 사람으로서 그 세 글자에 얽히고설킨 심오하고도 무시무시한 뜻을 한 번 기차게 풀어보자면, 밝음과 순결을 상징하는 ‘白'과 어둠과 고독을 의미하는 '夜', 그리고 걷는다는 행위를 나타내는 '行'을 일단 문자 그대로 합치면 ’밝은 밤을 걷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밤이 밝다는 것은 극지방 일부를 제외하면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천지가 개벽하지 않은 이상 밤이 낮처럼 절대 밝을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밝은 밤을 걷는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마치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찾아 하염없이 헤매는 사람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밤이 밝다는 역설적인 표현은 사람의 내면에 깃든 어두운 욕망과 고뇌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두 상징을 적당히 조합하면 ‘白夜行’은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행위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헤매는 사람의 고뇌와 절망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희망이란 것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영화 「백야행」에서 유키호와 료지는 그런 끝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방황하는 인물들이다.

유키호와 료지는 서로를 유일한 빛으로 여기며 끔찍한 어린 시절이 남긴 트라우마라는 어둠 속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빛은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견뎌내기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고 끝없는 욕망을 좇는 그런 파괴적인 삶은 그들을 더 깊은 어둠과 절망뿐인 고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란 타인의 삶을 짓밟아가면서까지 탐욕을 추구하려는 본성의 어두운 면을 결코 떨쳐내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는 모순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희망이 실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한국판의 박진감, 일본판의 미스터리

한국과 일본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영화화한 「백야행」 한국판과 일본판 감상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판을 먼저 감상하고 뒤이어 일본판을 감상했는데, 한국판은 감정의 깊이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일본판은 원작에 충실하게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노력한 듯하다. 원작의 세 주인공, 즉 유키호, 료지, 준조를 연기를 일본판 배우 호리키타 마키, 코라 켄고, 후나코시 에이이치로, 그리고 한국판 배우 손예진, 고수, 한석규 등의 연기 방향도 그런 감독의 의도에 맞게 조절되어 있다. 일본 배우들은 차분한 연기를 보여줬다면, 한국 배우들은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의 골을 깊이 있게 드러내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할까나? 그래서 그런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밀려오는 ‘감동’은 확실히 한국판이 일본판을 압도한다.

료지

영화 백야행 한국판 일본판의 한 장면

일본판 같은 경우 료지의 죽음이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다. 일본판은 한국판에 비해 료지가 좀 소외된 느낌이랄까? 료지의 복잡한 심경을 강렬하게 드러낸 고수의 연기는 유키호와의 관계에서 오는 고뇌와 사랑을 깊이 있게 표현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료지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이 때문에 한국판은 유키호와 료지의 로맨스가 조금 더 두드러진다. 반대로 일본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로맨스보다는 악마적인 계약 관계로 보이는 듯한 느낌이 더 두드러진다.

유키호

영화 백야행 한국판 일본판의 한 장면

감정 표현을 절제한 호리키타 마키의 연기는 유키호의 내면적 고독과 차가움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손예진 같은 경우 가식적인 미소를 남발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호리키타보다 감정 표현이 적극적이다. 나로선 손예진의 예쁜 미소를 자주 볼 수 있어 좋았고, 그 ‘미소’는 관객이 ‘가식’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도록 일부러 허점을 드러낸 매우 뛰어난 연기였음은 분명하다. 또한, 배우들의 감정선 표출은 감정적인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손예진의 지나친 감정 노출은 유키호의 냉정하고 계산적인 면, 그리고 어두운 면모를 희석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준조

영화 백야행 한국판 일본판의 한 장면

사사가키 준조 같은 경우 한석규는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끈질긴 형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긴장감과 생동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그가 마지막까지 현역 형사였다는 점은 사건의 범죄성을 부각하는 데 힘을 실어 준다. 반면, 후나코시 에이이치가 연기한 준조의 역동성은 한석규의 준조보다 떨어지지만, 범죄 사건을 추적한다기보다는 심부름센터 직원이 고객의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소중한 옛 친구를 찾는 듯한 인간적인 분위기가 사뭇 돋보인다. 그가 형사를 은퇴하고 나서도 사건을 추적했다는 점 역시 사건의 범죄성보다 인간성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마치면서

영화 백야행 한국판의 한 장면

결과적으로 보면, 관객의 감정을 심히 자극하고 이야기 전개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한국판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는 재미는 더 크다. 대신 원작이 가진 깊이와 무게감은 다소 떨어진다. 반면 일본판은 원작의 차가운 분위기와 캐릭터의 내면적 깊이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두 작품 다 장단점이 분명하니 소설 『백야행』에 매료된 팬이라면 두 작품 다 감상하길 추천한다.

끝으로 백야행의 두 주인공 유키호와 료지를 보고 있으면, (다소 억지스러운 비교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김건희 • 윤석열 커플이 떠오른다. 이 사람들 모두 끝없는 어둠과 탐욕 속에서 헤매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비슷하다. 영화에서 료지는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파멸을 맞이하고, 유키호는 그런 료지를 모르쇠로 일관한 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그들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여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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