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의 노래 | 데이비드 쾀멘 |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희망이 없는 경우는 없다. 다만, 희망이 없는 사람들과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만 있을 뿐이다. (『도도의 노래』, 731쪽)
나의 빈약한 디스토피아적 공상
지금으로부터 수천만 년이 지난, 과거 어느 시대보다 생태학적으로 풍부하고 미학적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의 어느 날. 긴 여행 끝에 미지의 푸른 행성 지구에 도착한 한 외계 고생물학자가 흥미로운 점을 하나 찾아낸다. 그는 (한때 인류가 지질학을 연구했던 것처럼) 층층이 쌓인 지층을 연구한 결과 총 여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중 마지막 여섯 번째 대멸종은 앞선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원인에서 일어난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외계 고생물학자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원인은 한 종이 지나치게 번성하면서 지구 자원을 독차지하고 낭비한 결과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더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지나치게 번성한 종의 지능이 결코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 자연과의 공존과 공생의 가치와 중요성을 몰랐을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비록 이들이 자신들 때문에 황폐해진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정도의 기술력은 보유하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처럼 우주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줄 알았고 우주의 탄생과 진화의 비밀에 대해서도 다양한 지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걸었을까? 외계 고생물학자는 지구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 행성으로 귀환하는 쓸쓸한 우주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지만, 끝내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만약 내 상상 속에서 뽑아낸 이 글이 어떻게든 외계 고생물학자의 눈에 띄어 그들의 언어로 해석된다면 아마도 그들은 나를 시대의 마지막을 예견한 지성인으로 기억하려나? 그런데 인류의 멸종으로 지구 생태계가 복구되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렬한 생명력으로 넘쳐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3의 인류가 태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도도와 조개, Gillis d'Hondecoeter / Public domain> |
‘대전환’의 시기를 예견해주는 책
오래전에 멸종한 날지 못하는 새 ‘도도’에서부터 현재 진행 중일지도 모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까지, 다윈과 월리스의 진화론에서부터 보전생물학까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 사라진 새 도도가 들려주는 진화와 멸종 이야기』는 진화와 멸종, 그리고 진화와 멸종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다양한 역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도도의 노래』인 것은 도도의 절멸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종을 사라지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사건’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서야 인류는 도도와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처럼 인류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지구와 인류, 인류와 자연의 마찰과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던 생태학자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노고 덕분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도도의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많은 생태학자의 지적 통찰력과 연구, 현장 경험 덕분에 인류는 생태계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온전히 생태계를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철이 들면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듯, 더 많이 배울수록 모르는 것도 더 많아지듯, 어쩌면 인류는 종말직전까지 자연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지한 과학자들은 자연에 질문하고 자연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과 의지로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망상과 오만을 극복함으로써 생태계 복원과 공존,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할 수가 있었다. 부부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만 먹으면 완만한 부부생활을 영위할 수 있듯, 자연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연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작금의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절망적이라 해도 마지막까지 한 가닥 정신 줄만 놓지 않는다면 절망과 희망, 비관과 낙관의 차이가 한 글자 차이이듯, 지속가능성이 인류의 모든 행동에서 부동의 기반이 되는 문화 혁명의 대반전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도도의 노래』는 그런 ‘대전환’의 시기를 예견해주는 희망의 불씨다.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두껍지만 절대 두껍게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그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와 관심이 흐트러트리지 않고 매끄럽게 읽히는 책이 『도도의 노래』이다. 그런 흡입력에는 풍부한 현장 경험과 자료, 학술적인 과학자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편안한 저술, 그리고 너스레를 떠는 여유와 구수한 입담까지 겸비한 문학적 소양 덕분도 있겠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멸종’이라는 주제가 우리 동네 생태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점점 개체수가 줄어드는 고라니를 그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겐 맷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아주 드물게 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산책할 때 더 자주 보곤 했던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목록 멸종 위기종인 고라니가 한국에만 유독 많아서 개체수 조절 때문에 수렵허가도 쉽게 난다고 한다. 사실 고라니 개체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호랑이나 곰을 비롯한 최상위 포식 동물이 한반도에서 사라짐으로써 생태계가 교란되었음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증거지만, 이러한 현실에 주목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고라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조사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들여 어느 방송에 나온 것처럼 사과나무의 비료로 쓴다면, 북아메리카의 나그네비둘기가 사람의 학살 때문에 약 30억 마리에서 0마리로 개체수가 급강하했었듯, 이스터 섬의 마지막 나무를 벤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마지막 고라니를 사냥한 사람이 한국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도도의 노래』에 등장하는 생태학자 등 많은 사람 대다수가 어린 시절을 풍부한 생태적 환경에서 자란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숲이 사라지는 광경을 직접 봐야 했던 쓰라린 경험과 그 허전함을 절실히 느꼈던 세대들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잘 알아주지 않는 고단한 생태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도 남기는 발자국 하나하나에는 자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자란 도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도시인에게 숲은 가끔 시간 날 때 차를 타고 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도시인들이 삶을 영위해 가는 수많은 도구와 즐길거리 중의 하나일 뿐, 진정한 삶의 일부는 아니다. 숲이 삶의 일부가 아니기에 숲이 사라져도 상처를 받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숲을 찾아가면 그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그리 슬프지도 않다. 여전히 탐욕스러운 도시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게걸스럽게 숲을 먹어치우고 그 썰렁한 빈자리에는 똥폼만 가득 잡는 건물들을 채워넣는다. 숲이 사라지는 것도 슬프지만, 숲이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아 더더욱 슬프다. 한때 그 많았던 개체가 사람에 의해 멸종될 때까지 그 누구도 새의 울음소리를 확인한 바 없다는 비운의 새 도도가 들려주는 상상 속의 노래 역시 슬프다. 그것은 마치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많은 종과 사라져가는 숲을 애도하는 것처럼 구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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