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 꿈처럼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절망
피를 착취한 것도 모자라 관을 착취하고, 영혼마저 착취하는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1995년에 병원과 제약회사에서 혈액 수요가 급증하자 허난성에서는 대대적인 매혈 운동이 자리 잡았다.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속에 등장하는 딩씨 마을 사람들처럼 허난성 농민들은 1년 생계비 2백 위안을 벌기도 빠듯했던 빈궁한 처지에 피를 한 번 팔면 20위안이나 받았으니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천으로 널린 개나 고양이, 돼지와 소, 그리고 닭 등의 피도 팔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인재 대부분이 사람의 그릇된 탐욕과 오만하고 나태한 무책임에서 싹을 틔워왔듯, 돈 벌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매혈 과정은 당연히 비위생적일 수밖에 없었다. 눈앞 재물에 먼눈들은 인민들에게 있어선 그 병명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에이즈가 메마른 토지에 단비가 스며들듯 인민들의 혈관 속으로 속속들이 스며드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인민들의 비참한 삶은 꿈에서조차 떠올릴 수 없었던 에이즈로 한 번 더 짓밟았다.
딩씨 마을에선 ‘나’의 아버지 딩후이가 사설 채혈소를 세워 매혈 우두머리로 나선다.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는 공산주의 정신이 투철했던 것일까? 딩후이는 주삿바늘과 솜을 소독도 하지 않은 채로 여러 사람에게 고루고루 사용해 열병을 퍼트리는데 한몫한다. 잠복기가 꽤 긴 에이즈의 특성 때문에 뒤늦게야 딩후이의 잘못을 깨달은 마을 사람 중 누군가는 딩후이의 가축과 아들 ‘나’를 독살하며 에둘러 보복하면서도, 막상 당사자인 딩후이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다. 그의 얼굴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딩후이가 부자이고 간부이기 때문일까?
딩후이는 규정을 어기고 유일하게 주변 마을에서 삼층집을 지은 사람이다. 그는 지나친 매혈로 얼굴에 핏기가 없는,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사람을 이리저리 구슬리고 살살 비위를 맞춘 다음 규정량보다 더 초과해,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말하지 않은 채 무지막지하게 피를 뽑아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가 열병으로 죽은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준 관을 빼돌려 열병 환자나 열병 환자를 둔 가족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사람이 죽을 만큼 죽자 이번에는 결혼도 못하고 죽은 남녀를 한 쌍으로 맺어주고 음혼비(陰婚費)를 챙겼다. 그는 이 모든 일이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좋은 일을 많이 한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된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에서 호의호식하고 방에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도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현금다발이 산처럼 쌓여 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인민의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비난하지만, 그들은 인민의 피를 착취하고, 관을 착취하고, 영혼마저 착취한다.
<꿈을 꾸는 꾸듯, 원혼이 넋두리를 늘어놓듯 죽은 자의 이야기> |
체념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응도 아닌
그럼에도, 인민들은 억울함과 분노를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분출하기보다는 고통과 아픔의 상처를 망각이라는 놀라운 치유력에 고스란히 맡긴 채 무던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난과 굶주림, 비애와 절망, 모욕과 굴욕으로 가득 찬 고통스러웠던 인민들의 삶, 살아생전에는 절대 바뀔 것 같지 않은 만리장성처럼 견고한 권력 앞에 풀뿌리처럼 연약하고 부드러운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돌이켜봤자 좋을 것 하나 없는 과거는 애써 잊어버리는 것이다. 희망도 없는 미래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평생 여물지 않는 상처와 분노는 각자 알아서 달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때그때 현실에서 최선의 것을 취하며 사는 것이다. 권력 앞에서는 순응하는 척하는 것이다. 그래서 딩후이, 즉 권력 앞에 대놓고 맞서 화를 자초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그것이 비겁하고 부도덕한 수단일지라도 현실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개의치 않는다. 체념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응도 아닌, 딩씨 마을 사람들의 현실지향적 삶은 ‘나’의 삼촌이자 딩후이의 아들 딩량과 링링의 간통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된다. 두 사람은 꽃다운 나이에 열병에 걸렸고, 그래서 각자의 아내와 남편에게 냉대를 받으며 외롭게 살다 맺어진 ‘열병 커플’이다. 이들의 간통은 잠시 마을에 시끌벅적한 소란과 관심을 불러오지만, 곧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고 몇몇 사람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격려의 말도 남긴다. 열병에 걸리게 된 과거를 돌아보며 한탄에 빠지거나 발병 원인을 원망하지 않고, 곧 죽을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살아 숨 쉬는 현재에 온 정성을 쏟는 두 사람의 애달픈 사랑과 아름답고 쓸쓸한 결말은 작품 속에 숨은 감개무량한 작은 이야기이자 인민들의 실사구시적인 처세술의 한 방편에 대한 적나라한 노출이다.
꿈으로써 사실을 말하고, 허구로써 진실을 폭로하다
이 소설은 중국에서는 금서이다. 그것은 국가적 치부를,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인민의 비극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자는 놀랍게도 죽은 자이다. 꿈을 꾸는 꾸듯, 원혼이 넋두리를 늘어놓듯 죽은 자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옌롄커(閻連科)의 『딩씨 마을의 꿈』은 사실을 몽롱한 꿈의 장막으로 가린, 판타지와 현실에 양다리를 걸친, 허구이며 진실이기도 한 작품이다. 그래서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을 ‘판타스틱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꿈으로써 사실을 말하고, 허구로써 진실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들려주는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고통과 절망과 체념으로 가득 찬, 떡 찧듯 듣는 이의 마음을 절굿공이로 하염없이 내리찍는, 사실인 척 때론 꿈속에서 헤매는 척 교묘하게 입을 놀리면서 사실을 비꼬고 거짓을 은유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딩씨 마을의 꿈』을 아무런 대책 없이 펼쳐든 독자는 딩씨 마을 사람들이 매혈로 열병을 앓듯, 그들의 막연한 고통과 은은한 슬픔, 그리고 아득한 절망과 쓸쓸한 체념에 전염되어 열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꿈이라는 모호하면서도 아름답고 매혹적인 포장지로 그럴싸하게 감싼 덕분에 고통과 절망의 처참한 상처는 반투명한 기름종이를 덧댄 것처럼 다소 흐릿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꿈이기 때문에 그 고통과 절망의 깊이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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