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옌롄커 | 혁명의 유희, 성애의 유희, 그리고 언어의 유희
“인민을 위해 복무해야지. 어서 벗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100쪽)
중국 문단의 문제아, 금서(禁書) 전문 작가 등 이러한 수식어들이 옌롄커(閻連科)에겐 짓궂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더더욱 관심과 호감이 가는 작가 옌롄커의 또 다른 문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상당 부분이 삭제된 채로 발표되었음에도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에 의해 시중에 출간된 책 전부가 회수된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중국 혁명사에서 신 같은 절대적 존재 마오쩌둥(毛澤東)의 격언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인민을 위해 투쟁하고 인민을 위해 희생하자는 혁명정신을 일깨우고 고취하는 혁명구호다. 그런데 종교의 경전에 담긴 수많은 경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도되지 않은 오해의 불씨를 잉태하듯, 옌롄커는 마오쩌둥이 남긴 한 문장의 혁명구호에서 혁명의 유희, 성애의 유희, 그리고 언어의 유희를 발아시켰다 .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혁명 원로가 남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끓는 피처럼 뜨거운 혁명적 이상과 이념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혁명구호를 지극히 원색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곤죽처럼 질퍽한 성애의 시작을 알리는 ‘다방 티켓’ 같은, 혁명 과업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타락한 듯 보이지만 밥 먹고 똥 싸듯 욕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인민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구호로 탈바꿈시킨다. 즉 야릇한 갈증으로 애태우며 다리를 비비 꼬는 인민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표현력으로 묘사해본다면 야무진 두 다리를 잘 익은 밤송이가 벌어지듯, 쩍 벌리면 변강쇠 같은 하인이 마님을 위해 힘껏 봉사하듯 혁명가는 기꺼이 밤의 황제가 되어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웃지 못할 뒷구멍 격언으로 희화화한 것이다 . 이러하니 당연히 전량 회수되고 금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
이보다 앞서 출판된 다른 작품 『여름 해가 지다(夏日落)』처럼 이 작품 역시 군대를 하늘과 땅으로 삼아 그려졌으며, 두 작품의 주인공 역시 출세를 위해, 그리고 가족의 호구를 어떻게든 도시로 입적시키고자 입대한 농민 출신 군인들이자 의례적이고 사랑 없는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랑에 목마른 남자들인 점도, 작품 분량이 단편은 넘어서고 장편이 못 된다는 점과 주요 사건의 진행이 한 여름 전후로 진행되는 점도 같다. 여러모로 두 작품은 서로 통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비슷하면서도 강하게 대비되는 점이 있으니 바로 저자의 탐미적이면서도 지나치지 않은, 원색적이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언어의 유희가 발효되는 대상이다 .
『여름 해가 지다』는 여름 해가 지는 황하고도의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운치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운우의 밭을 갈고 씨를 뿌렸으며 난새와 봉황을 거꾸로 세웠고 양치기 소년들처럼 미친 듯이 산언덕 풀밭을 질주’하는 질퍽한 성애가 그 대상이다. 어쩌면 저자 옌롄커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에 갇힌 인간의 존엄과 사랑은 이렇게 혁명 이념을 희화화하고 운우지정을 탐미함으로써 비로소 햇빛을 받고 앙증맞은 새들의 지저귐을 듣고 살랑이는 바람을 맞이하며 만물의 생장을 약속하는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진정 작품 한복판에 설 수 있다면 인간의 존엄과 사랑이 싹트는 공기보다 가볍고 바람이 흐느끼는 듯한 그 미세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으리라 .
혁명 운운하는 옌롄커의 작품은 한국 독자에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자가 자유롭게 구사하는 언어의 유희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충분히 독보적이며 아름답다. 특히 천박하고 원색적인 삼류 소설에서는 천리안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고혹적이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성애 장면은 독자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알싸한 흥분과 달콤한 기쁨의 나락으로 몰고 가는 포주나 다름없으며, 한편으론 예술적 경지를 넘나드는 성애 장면에 흠뻑 도취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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