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금의지하(锦衣之下, 2019) | 명나라 시대 ‘추리 + 로맨스’
추리와 로맨스, 두 마리 토끼를 쫓아
때는 명나라 말 가정제(嘉靖帝), 세종 황제의 신임을 받는 엄숭(嚴崇)과 그의 아들 엄세번(嚴世蕃) 일당과 맞서 싸우는 금의위(황제 직속 정보/수사 기관) 경력(나중에 첨사(僉事)로 승진) 육역(陸繹)과 육선문(현재의 지역 경찰) 포쾌(捕快) 원금하(袁金夏)의 활약과 외줄타기 같은 아슬아슬한 로맨스, 그리고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작 소설은 작년(2024년 11월)에 요절한 중국의 인기 웹소설 작가 블루 라이온(蓝色狮)의 『금의지하(錦衣之下)』이고, 한국에선 우견묘(遇見貓)의 『금의지하(姐兒求嫁)』라는 소설로 번역되었고 네이버에서 읽을 수 있다.
「금의지하」는 어느 장르보다 ‘추리’와 (이보다는 조금 덜 좋아하는) ‘역사, 시대극’을 대단히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놓칠 수 없는 ‘시대 + 추리’ 드라마다. 다만, 추리물로서의 재미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게감을 더해가는 로맨스에 압도당하면서 20편 정도를 넘어서면 마치 고대 유적처럼 겨우 흔적만이 남아 있는 정도다. 그래도 매력적인 배우들 때문에 지루함 따위 느낄 새 없이 무난히 완주.
소설 속 두 주인공인 육역과 원금하의 매력 • 개성을 매우 적확하게 재현했다는 런지아룬(任嘉伦)과 탄송윤(谭松韵)의 뛰어난 연기력과 이에 못지않은 조연 배우들의 활약, 그리고 성숙한 연출력과 아름다운 의상 등 볼거리가 많은 드라마지만, 형편없는 특수 효과와 조악한 액션, 진부한 로맨스 설정, 막바지로 치달수록 단순해지는 사건 등 아쉬운 점도 확연히 눈에 띄는 드라마다. 그래도 쓰레기처럼 넘치는 중드의 홍수 속에서 이만한 드라마는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DeepSeek에게 물어보다, 드라마와 소설의 주요 차이점은?
• 캐릭터 심화 및 추가 인물: 드라마에서는 소설보다 양악(杨岳)과 사소(谢霄)의 역할이 확대되어, 양악과 원금하 사이의 우정이 강조되고 원금하를 둘러싼 사소와 육역의 삼각관계는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배우 한동(韩栋)이 연기한 엄세번(严世蕃)은 드라마에서 더욱 강력한 악역으로 두드러져, 소설보다 정치적 음모와 대립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임릉(林菱)이라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추가되어 원금하의 과거와 연결되는 서브플롯을 형성합니다.
• 사건 전개와 서브플롯: 소설은 추적과 수사 위주로 진행되지만, 드라마는 로맨스와 액션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원금하와 육역의 초기 만남은 드라마에서 더욱 유쾌하고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로 각색됩니다. 드라마에서 정치적 음모는 더욱 강조되고, 엄세번과 황실의 갈등은 소설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단편 에피소드 형식의 사건들이 드라마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연결성 있는 사건들로 재구성됩니다.
• 로맨스 발전 속도: 소설에서는 두 주인공의 감정이 서서히 발전하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초반부터 신경전과 유머를 통해 케미스트리를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육역이 원금하를 의도적으로 놀리거나 조롱하는 장면들이 대거 추가됩니다. 키스 신과 스킨십 장면은 드라마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여 시각적 로맨스를 부각합니다.
• 시각적 요소와 분위기: 드라마는 화려한 의상과 세트 디자인으로 명나라를 생생하게 구현했으나, 시대에 뒤떨어진 CG 효과(예: 배경 합성)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심각한 수사 상황에서도 캐릭터들의 유머러스한 대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등 드라마는 소설에 비해 코믹하고 가벼운 톤이 강조됩니다.
• 결말 처리: 소설은 주인공의 관계에 집중한 감동적인 마무리를 지향하는 반면, 드라마는 엄세번의 최후를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며 ‘악당 퇴치’라는 대리만족을 줍니다.
교활하고 지적인 악당, 엄세번
엄숭의 아들 엄세번은 엄숭과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이다. 엄숭 부자는 20년 동안 권세를 휘두르며 뇌물 수수, 정적 숙청, 예산 횡령, 매관매직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르며 백성의 원망을 산 유명한 부패 관료다. 엄숭은 서경(徐阶)의 탄핵으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쫓겨나고, 엄세번은 반역 혐의로 참수당하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설령 역사를 모른다고 해도 ‘육역 + 원금하 vs 엄세번’이라는 드라마의 핵심 대립 구도는 1편에서 바로 간파할 수 있을 정도로 숨김없이 노출되어 있다.
역사에선 극도로 오만한 인물로 평가받은 엄세번은 드라마에선 총명하고 교활한 인물로 묘사된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계략을 짜는 데 능숙한 엄세번은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으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육역과 원금하의 수사가 엄세번의 권모술수 앞에서 매번 허탕을 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엄세번은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인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 여자 한 명의 속마음을 간파하는 데 실패하고, 이 때문에 그는 파멸에 이르고 만다.
드라마에서 엄세번은 한쪽 눈에 개눈깔 같은 의안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주 쉽게 ‘저놈은 개자식이다’라는 선입견에 빠질 수 있는데, 사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개자식’인 것은 분명하지만 드라마에서의 엄세번은 나름 멋들어진 악역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잔인하고 교활하면서도 지적이고 무게감 있는 엄세번 같은 악역은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될 배역이다.
귀여운 국민 여동생, 원금하
원금하는 정의감과 호기심이 강하고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의 포쾌(현재의 순경 정도?)다. 남다른 추리력과 관찰력을 갖춘 그녀는 육역 및 다른 동료와 함께 엄세번 일당에 용감하게 맞선다. 때때로 경솔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등 분수에 어긋나는 일탈도 서슴지 않는 그녀는 이 때문에 상관인 육역 앞에서 놀림을 당하거나 사부로부터 꾸지람을 듣지만, 소탈하고 순수한 그녀는 성질을 부리던 아이가 과자를 얻고 급 태세 전환하는 것처럼 맹랑하고 발랄한 모습을 금방 되찾는다. 원금하는 무를 자르는 식칼보다 사람을 베는 칼을 더 잘 다루는, 어떤 면에서 보면 무시무시한 여자지만, 활발함, 수다스러움, 엄청난 먹성, 돈에 대한 집요함 등 그녀의 생기발랄한 성격과 배우 탄송윤의 동안(童顔)이라는 신의 조화는 원금하를 모든 뭇 남자들이 선망하는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만들기에 한치의 부족함도 없다. 한국의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던 배우 문근영이 문득 떠오를 정도다.
아무튼, 한 남자가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는 주요 이유 중 줄거리를 제외하면 시청자를 매혹하는 여성이 남는데, 보통은 섹시하고 성숙한 여인이 그 영위를 차지하지만, 이번 경우는 귀엽고 친근한 여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귀여운 동생 같은 원금하 외에 상관희, 임릉, 적난엽 같은 성숙미를 자랑하는 여성들도 등장하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냉혈 속에 숨은 뜨거운 애정, 육역
육역은 냉정하고 차가운 금의위의 젊은 관리다. 그는 첫 편부터 툭하면 원금하와 티격태격 마찰을 일으키곤 하는 데,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가 봐도 조만간 두 사람 사이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는 모종의 불꽃 튀는 ‘썸씽’이 일어나리라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심상치 않으면서도 (로맨스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하는) 상투적인 연출이다.
금의위의 고문 전문가답게 육역의 첫인상은 감정 통제에 능한 무자비한 인물로 보이지만, 얼음장 같던 그도 사랑에 빠지면 별수 없는 남자다. 이 잡듯 사람 잡는 것이 일상인 금의위의 기대주가 기름 범벅된 느끼한 미소를 쓱 날리는 등 닭살 돋는 애정 표현을 서슴지 않는 ‘사랑에 빠진 남자’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상대를 조롱하는 비웃음이 애정이 꿀처럼 담뿍 담긴 그윽한 미소로 바뀌는 등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던 장면이지만, 막상 보니 징그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이 착잡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원금하가 깨운 육역의 ‘찐’ 얼굴이야말로 뭇 여성들의 가슴을 콩닥콩닥 널뛰게 하기에 충분하리라. 드라마에서 육역이 원금하에게 ‘나만 믿어라’하고 나직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할 때 많은 여성 시청자가 자신도 모르게 ‘네’하고 대답했을 것 같아 시기심이 뼈에 사무친다.
아무튼, 남자 시청자는 동생처럼 귀엽고 딸처럼 아껴주고 싶은 원금하 때문에 완주한다면, 여자 시청자는 귀공자 스타일의 육역 때문에 완주할 수 있겠다.
말 한마디로 역사를 바꾼 도사, 남청현(蓝青玄)
첫 등장은 사기꾼 같은 풋내기 도사로 등장하지만, 훗날 육역의 황궁 첩자로 활약하며 엄세번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데 큰 공을 세우는 도사 남청현 역은 배우 한청위(韩承羽)가 맡았다.
원작에선 남도행(韩承羽)으로 등장하지만 드라마에선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로 남청현으로 개명된 듯하다. 어찌 되었든 재밌는 사실은 남도행은 드라마에서처럼 말 몇 마디로 엄숭 부자를 쓰러트리는 공을 세웠던 실존 인물이자 부적을 잘 다루던 도사였다고 한다. 이런 황당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세종 황제가 도교에 심취해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종교나 여자에 심취해 정사를 돌보지 않았던 황제가 여럿 있었다는 점에서 술과 과대망상에 취해 국가를 돌보지 않는 대통령의 등장도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겉으로는 어수룩하고 평범한 떠돌이 도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영민함 뿐만 아니라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큰 뜻도 품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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