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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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지 |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황당함

작렬지 | 옌롄커 |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무질서 • 혼란 • 황당함

책 리뷰 | 작렬지 | 옌롄커 |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무질서 • 혼란 • 황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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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 과장 • 기지가 번득이는 언어유희

중국의 간질 발작과도 같은 급작스러운 번영의 숨겨진 비결이랄 수도 있는 상식 파괴 • 비논리 • 부조리에 대한 풍자로 읽어도 좋다. 지금까지 인류사에 기록된 기적을 몽땅 끌어모아도 미치지 못할 것 같은 중국의 기적 같은 발전의 불가해함 속에 숨은 판타지로 읽어도 좋다. 혹은, 미국과 서구에 대한 적개심을 끝내 뿌리치지 못한 중국의 감당할 수 없는 발전이 가져올 파괴적인 말로에 대한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경고로 읽어도 좋다. 한 도시의 번영을 완성하고 보너스로 몰락까지 끌어낸 쿵(孔) 일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로 읽어도 좋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든 말든 상관없이 난 나의 취향대로, 그리고 『작렬지(炸裂誌)』는 뛰어난 문장가인 옌롄커(閻連科)의 소설이니만큼 코를 벌름거리며 커피 향을 들이마시듯 쭈글쭈글한 뇌 주름을 꿈틀대며 텍스트를 음미하는 재미를 최고로 치고 싶다.

드라이브 도중 마주친 빼어난 경치에 매료된 운전자가 잠시 차를 멈추고 주변에 그림처럼 펼쳐진 장관을 음미하는 것처럼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읽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서 내리 두 번 읽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천하일품 요리처럼 읽어도 읽어도 물리지 않는 맛깔스러운 텍스트가 좌뇌를 감질나게 자극한다. 해학과 과장과 기지가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진 옌롄커만의 언어유희는 한 번 맛 들이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지성의 마약이다.

설령 그의 책을 탈곡하듯 문장 단위로 털어내 엎질러진 직소 퍼즐 조각을 바라보는 것처럼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게 되더라도 낱알처럼 땅에 떨어진 문장들을 하나하나 쪼아먹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 무인도에 가져갈 수 있는 책으로 딱 한 권만 허락된다면 옌롄커 작품처럼 이야기보다는 문장력이 뛰어난 책을 가져갈 것 같다. 그래야 두고두고 읽어도 물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책 리뷰 | 작렬지 | 옌롄커 |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무질서 • 혼란 • 황당함
<'돈만 벌 수 있다면',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과 논리 파괴가 일상이 된 중국

세계가 중국의 기적 같은 발전에 놀랐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 살고 중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완전한 중국인인 작가 옌롄커도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놀란 것은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이고 양적인 변화보다는 그 과정에 숨은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무질서 • 혼란 • 황당함이다. 그것은 우주 만물의 모든 성질과 이치와 법칙들을 깡그리 배반하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기기하고 해괴망측한 묘사로서 설명된다.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고, 배나무에선 감이 열린다.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우는가 하더니 어느새 마음을 바꿔 다시 동쪽으로 와 있다. 눈이 오지 않아 농민들이 흉작을 걱정하자 시장의 사인이 있는 문서를 하늘을 향해 깃발처럼 흔들자 풍요를 예고하는 눈으로 천지가 뒤덮인다. 닭이 거위알을 낳고 거위는 오리알을 낳는다. 날아가던 참새는 까마귀로 변하고 마을을 잠시 지나가던 철새가 텃새로 변해 마을에 정착한다. 강아지가 ‘야옹’ 하며 짓고, 고양이가 ‘멍멍’하고 운다. 어젯밤에 아파트 음식 쓰레기통을 서성거리던 얼룩무늬 고양이가 오늘 아침엔 음식 쓰레기통 위에 양반다리로 걸터앉아 능숙한 젓가락질로 먹을만한 것을 골라내 쩝쩝거리며 먹고 있어도 하등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없다.

이 모두가 멀린(Merlin) 같은 대마법사들이 맹활약을 떨쳤을 옛날 옛적에도 감히 행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자연의 조화를 역행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을 심히 위배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례시에선 일상의 소소한 이벤트라고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범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화롭지 못한 일을 그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들떠보지조차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문명에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이고 황당무계한 일을 늘 마주하는 일상처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중국. 돈만 벌 수 있다면 ─ 사람을 죽이는 것을 빼곤 ─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중국. 그리고 이렇게 기존 상식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중국의 현실을 기존의 문학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 고심에 거심을 거듭한 끝에 신실(神實)주의라는 보편의 존재를 주창하게 된 작가.

이렇게 되면 중국의 비상식 • 비논리 • 황당함에 경악하고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은 더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중국의 현실을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의식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하고 고지식함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상식과 논리 파괴가 작렬하는 중국의 현실이 이제는 그 나름의 논리와 이치와 법칙을 주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니 왠지 모르게 정리가 된 것 같고, 그래서 왠지 모르게 황송하고, 한편으론 뭔가 본말이 왈가닥 전도된 것 같은 찝찌름한 뉘앙스를 풍기는 소설이 『작렬지(炸裂誌)』이다.

책 리뷰 | 작렬지 | 옌롄커 | 비상식 • 비논리 • 거짓 • 무질서 • 혼란 • 황당함
<돈만 벌 수 있다면 도둑질 정도는 예사로운 일이다>

중국 부의 원천은 도둑질?

책 끝에 꼬리처럼 붙은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면 대충은 가늠이 가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이런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것이 신실주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신실주의’를 다른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하고 반쯤 경악하고 반쯤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일지라도 중국에서 일어났다고 하면 ‘아, 중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쉽게 수긍해버리는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신실주의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먼 훗날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게 된다면, 지금의 상식과 논리가 중국의 새로운 상식과 논리로 대체되면서 황당함이 평범함으로 전락하고 평범함이 황당함으로 등극하게 될까? 어쩌면 아주 먼 훗날 중국인은 똥구멍으로 밥을 먹고 입으로 똥을 쌀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옌롄커가 또다시 큰일을 저질렀다. 자례시의 급작스러운 발전을 통해 중국 부의 원천을 감히 ‘도둑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풍자한 셈이니 말이다. 사실 ‘모방’이 의미하는 일말의 긍정적인 개념을 철저하게 파멸시킨 ‘짝퉁’ 악습을 '산자이(山寨)' 문화로 승화시킨 중국이 ‘도둑질’로 부를 쌓았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거짓은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중국산 짝퉁이 판을 치는 이유는 자명하다. 여전히 돈벌이가 되니까.

하지만, 중국은 고약한 냄새에도 개의치 않고 먹는 삭힌 두부 대하듯 자신들의 역사에서 부정적인 면을 반성하고 개선하기보다는 은폐하고 왜곡하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삭제하는 데 더 능숙하다. 치졸하고 소인배 같은 현대의 중국을 보면 노자, 공자, 제갈량 등 그 수많았던 성현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신중국은 역사에 존재하는 과거의 중국하고는 완전히 다른 중국 같다. 신중국엔 과거 중국의 영웅들이 중시했던 의리도 없고, 체면도 없고, 염치도 없다. 오직 돈만 있다.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

중국의 중국다운 문제를 또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법의학자가 부검하듯 파헤친 금서(禁書) 작가 옌롄커는 욕실의 곰팡이처럼 시커멓게 찌든 중국의 때를 직시할 수 있는 군자의 기상과 그것을 문학적 수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과 무모에 가깝다고 할 용기는 칭찬받아야 마땅하지만, 한편으론 중국적인 색채가 너무 짙어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옌롄커 작품이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의 문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중국의 현대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문학의 한가지 흠이라면 보편성 결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의 문학도 이해하기 어렵다.

끝으로 죽음을 앞둔 쿵 시장은 다음과 같은 한마디 말을 남기면서 자례시의 파멸을 예고한다.

"나의 인민들 죄송합니다!”

별로 대수로운 것 없는 일상적인 말이지만, ‘나의 인민들’이란 말속에 쿵 시장은 죽을 때까지도 시민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현재의 중국과 중국인이 공산당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쿵 시장이 그나마 양심적인 것은 ─ 내 생각이지만 ─ 신중국 이후의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 등을 비롯한 신황제들 중 인민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뭣이라고? 신황제 폐하는 인민들에게 죄송스러운 짓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야 모두가 나의 불찰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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