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단단하게 | 옌롄커 | 혁명의 에로티시즘으로 정제된 문학적 비아그라
값진 인생이란 삶의 마지막 순간 과거를 떠올릴 때 허송세월했다며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요. 그때 저희는 그 말을 실천했습니다. 저는 훙메이를 밑에 깔아 눌렀습니다. (『물처럼 단단하게』, 557쪽)
사랑 없는 결혼이 잉태하고 혁명 과업이 완수한 에로티시의 증발
군 복무 경험 때문인지 옌롄커(閻連科)의 작품 중에는 군대를 주요 배경으로 한 작품(『여름 해가 지다(夏日落)』,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과 작품의 주 무대가 군대는 아니지만, 주인공이 군인 출신인 경우(『물처럼 단단하게(整硬如水)』)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세 작품의 주인공 전부 농민 출신의 현직 군인이거나 이제 막 제대한 군인이다. 그들은 고향이자 시골에 두고온 아내와 처자식도 있다. 그러나 이 세 주인공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모두 사랑 없는 불행한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만 없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봄기운을 듬뿍 받아 활짝 핀 꽃처럼 한창 성(性)에 대한 욕구와 탐구심이 만개할 나이임에도 그들의 부부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인민을 복무하라』의 주인공 우다왕은 신혼 첫날밤 아내의 몸을 탐색하다 아내에게서 불량배처럼 몸을 더듬는다고 혼쭐이 난다.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가오아이쥔은 아이를 하나 더 갖고자 면회온 아내의 은밀한 삼각지 지역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아이를 낳으려면 그냥 그 일만 하면 되지, 왜 건달처럼 몸을 더듬느냐고 핀잔을 먹는다. 두 아내는 해방군은 국민의 모범이라는 선전 공작을 들먹이면서 전희를 시도하려는 남편의 한창 달아오른 기를 팍 죽인다. 혁명의 상징이자 선봉인 해방군은 검소하고 사심 없는 혁명가처럼 부부관계에서도 금욕적으로, 마치 군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필요한 일만 간결하고 정확하게 완수하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혁명은 결혼의 의미를 혁명과업을 이어나갈 혁명가를 생산하는 혁명적 임무로 개편시켰으며, 사람의 원초적 본능인 성애의 기쁨과 쾌락을 건달이나 부르주아가 즐기는 방탕하고 반혁명적인 짓으로 타락시켜버렸다 .
<인민해방군, 그들도 남자다! photo by U.S. Air Force Staff Sgt. D. Myles Cullen / Public domain> |
혁명가, 감출 수 없는 본능을 일깨우다
애정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섹스의 전희와 유희도 전혀 없고, 깨소금 한 톨도 흘리지 않는 삭막한 부부관계에서 허탈함과 치욕을 고루 맛본 주인공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은 불쌍한 사람이 물을 갈구하듯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뜨거운 용암처럼 불타오르는 사랑에 대한 갈구를 혁명의 대의와 군인으로서의 도의로 억누르며 겉으로는 휴화산처럼 잠들어 보이게 하였을지는 몰라도, 심장을 지속적으로 뜨겁게 달구는 용암 자체를 말살시켜버릴 수는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처럼 순식간에 폭발시켜 세상을 놀래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 마음속에 욱여넣어져 있는 혁명적 사랑이 지닌 무서운 잠재력이다. 그들의 사랑은 폭탄처럼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평소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사상 공작이 가하는 무언의 압력으로 욱여넣어진 사랑에 대한 갈구이자 본능은 조그마한 충격이나 자극만 가해져도 폭발하는 폭탄처럼 단박에 해방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만한 자극이 필요하다.
『물처럼 단단하게』에서는 가오아이쥔과 훗날 가오아이쥔의 영혼이자 살이고 육체이자 마음이며 골수이자 정신이 될 샤훙메이 사이에서 일어나게 될 혁명적 사랑의 도화선에 느닷없이 불을 댕기는 역할을 산과 들을 아우르고 하늘을 찌르듯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혁명가가 완수해 낸다. 이후 두 사람은 혁명 동지로서, 혁명 연인으로서, 혁명 전우로서 줄 사다리를 타는 위험한 관계를 끝까지 지켜낸다. 두 사람에겐 혁명이 사랑이고 사랑이 혁명이었으며, 감출 수 없는 본능을 일깨우는 혁명가야말로 두 사람을 썩은 주검 앞에선 하이에나처럼 온몸의 피를 들끓게 하는 최고의 최음제였던 것이다 .
기상천외하면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성애의 유희
중국 최고의 금서 생산 작가답게 옌롄커(閻連科)는 『물처럼 단단하게』에서 인민의 무한한 욕구를 잠재워야 할 혁명가의 약발을 역전시켜 최음제로 둔갑시키면서, 특별한 최음제 없이는 사랑도 나눌 수 없는 인민의 비애를 부각시킨다 . 혁명이라는 대의 아래 짓밟히고 뭉개져 버린 사랑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누려고 즐겨야 할 보편적 감정이자 모든 사상을 꿰뚫고 아우르는 근원적이며 변치 않는 진리다. 혁명이 인민을 위한 것이고, 혁명이 인민의 끓어오르는 피에서 나와 다시 인민의 끓어오르는 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사람이 살아가며 서로 엮어가는 데 있어 가장 고결하며 순수한 매듭이자 무엇보다 인민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그 원초적 동력인 사랑을 억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념적인 풍자만이 옌롄커(閻連科) 작품의 묘미는 아니다. 독자에 따라선 이 작품의 참맛을 가오아이쥔과 샤훙메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낯 뜨겁지는 않지만, 몸 한구석을 달아오르게 하는 사랑의 전희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은 농후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순결하고 신성하고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결코 퇴폐적이거나 경박하지 않게 외설과 예술의 모호한 경계를 능구렁이처럼 이리저리 피해가며 절묘하게 그려내는 언어의 유희다. 유수처럼 흐르던 시간이 멈추고 마치 영원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그 유희의 순간을 지켜보는 독자는 가뭄에 갈라진 밭처럼 입술이 쩍 갈라지고 개구리가 헤엄칠 수 있을 정도로 손에 땀이 철철 흘러넘치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목구멍은 간질간질하며 그림의 떡을 감상하듯 침을 꿀떡 삼키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또한, 개처럼 예민한 후각을 타고난 독자는 책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여인의 질퍽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도홍색 살냄새에 하마터면 기절해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혁명 연인에게 혁명가가 최강의 최음제 노릇을 했다면, 사해를 들썩이고 오대주를 진동시키는 두 사람의 기상천외하면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성애의 유희는 누군가에겐 부작용도 없으며 가격도 매우 저렴한 문학적 비아그라가 될 수도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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