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기원 | 박상섭 | 지성인 프란츠 카프카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대전
최초의 총력전으로서 1차 대전이 학술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선 그것이 가져온 엄청난 정치적 • 사회적 결과 때문이다.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비상 상황에 직면하여 생존을 위해 생각될 수 있는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수단들이 총동원되었고 이 과정에서 당시까지의 모든 권위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1차 세계대전의 기원』, 15쪽)
두 세계대전 발발의 기원을 놓고 볼 때 단순함과 복잡성의 대비는 뚜렷하다. 모두 다 알다시피 2차 세계대전은 타고난 선동꾼 히틀러 한 사람으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전쟁 발발의 원인이나 책임이 비교적 명확하다. 인류가 일으킨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의 원인을 한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선동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짧지 않았던 기간에 영국이나 미국 등 그 어느 국가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는 끔찍한 재앙 뒤에 찾아온 안일한 평화와 달콤한 휴식, 그리고 희망으로 넘치는 재건의 꿈에 젖은 그들은 또다시 그런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것일까.
반면에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령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사건을 거론할 수 있지만, 그 배경에는 유럽 각 국가 간의 정치적 • 외교적 갈등, 그리고 동맹 관계의 복잡성과 지정학적 이해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전쟁 이전부터는 부상하는 독일의 야심이 유럽 제일의 강대국 영국과 피할 수 없는 마찰을 빚고 있었고, 발칸 반도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다민족 제국이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한 범슬라브 민족주의에 도전을 받고 있었으며 러시아는 이를 부추겨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이용했다. 이처럼 유럽 대륙에는 굵직한 두 줄기의 정치 • 외교 • 군사 • 사회적 대립이 꽤 오래전부터 긴장과 마찰을 일으켜 왔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1914년 이전부터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전쟁의 발발과 기원을 2차 세계대전의 경우처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전쟁 발발의 원인과 책임을 놓고 여러 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그만큼 논쟁도 많다.
전쟁 발발 원인과 배경을 두고 후세의 역사학자들도 풀기 어려운 복잡한 배경이 흐르고 있었기에 동시대의 지성인들 역시 대공의 암살 사건이 세계대전으로 확산하리라고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암살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이나 넘은 1914년 8월 2일 러시아에 대해 독일이 전쟁을 선포한 바로 다음 날,프란츠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오후 수영강습소”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이것은 후세가 역사적 사건들이라고 가치 평가하는 사건들이 그 발생과 등장의 시점에서는 그런 역사적 사건으로 거의 지각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유명한 사례(『기후전쟁』, 하랄트 벨처, 윤종석 옮김, 영림카디널, p291) 이면서도, 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백 년 평화(The Hundred Year's Peace)’라고 지칭한 1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한 세기가량 지속한 상대적인 안정기에 젖은 무사안일이 느껴지기도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하면 사람은 그것이 막연하게 지속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타성에 젓게 된다. 일상의 뿌리 깊은 안일과 타성은 현재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을 교란시키고 결국엔 그 사회와 국가를 재앙에 무방비 상태로 드러낸다. 시대를 대표하는 카프카 같은 지성인조차 대공의 암살 사건 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독일이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 상태에서도 역사적 사건의 긴박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처럼 인간의 인식 능력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그어져 있다.
독일 정치가, 외교가, 군인들의 내정과 정치, 외교에서 보여준 어중간한 목표, 어정쩡한 태도, 서로 간의 불협화음은 그러한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 그리고 그 한계 내에서조차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게을리한 무지가 불러온 결과이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 자신과 독일이 갖춘 능력과 그 능력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과 이룰 수 없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 불구’는 그들이 한 장의 ‘종잇조각’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쓰고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치욕을 맛보게 하는 참혹한 파멸을 가져왔다.
<Italian Army / CC0> |
사실 전쟁은 그 폭력성과 기술성 때문에 어떤 사건보다도 그 진행 과정이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을 사전에 조금이라도 방지하고자 한다면 그 원인을 캐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2차 대전처럼 한 사람의 미치광이에 의해 의도적으로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는, 1차 대전처럼 특정 국가가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숨겨져 있거나 억압되어 있던 갈등과 이해관계가 불거져 나와 폭발함으로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고로 세계전쟁은 누구도 뜻하지 않은,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터질 수 있다. 이 말에 여전히 휴전 상태는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다가 계속되는 북한의 핵 도발로 그 어느 때보다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섬뜩해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평화가 내일의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박상섭의 『1차 세계대전의 기원: 패권 경쟁의 격화와 제국체제의 해체(대우학술총서 612)』은 당시에는 예기치 않은 세계대전의 정치 • 외교 • 동맹 • 사회적 배경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는 전쟁 책임을 둘러싼 여러 이론들을 살핀다. 이로써 전쟁 발발의 기원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것은 독자의 역사적 이해와 판단 능력을 단련시키는 긴요한 훈련 과정이다. 또한, 동시대인 ‘예상할 수 없는 전쟁’이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전쟁일 수밖에 없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예측할 수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난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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