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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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연대기 | 전쟁, 승패를 넘어선 비극과 고민

전쟁 연대기 | 조셉 커민스 | 전쟁, 승패를 넘어선 비극과 고민

전쟁 연대기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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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선택을 위한 징검다리 같은 책

사람에게, 특히 남성에게 있어 ‘전쟁’만큼 구미가 당기고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소재는 없다.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소위 말하는 ‘문화 콘텐츠‘에 ’전쟁‘은 흥행보증수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어와 인종과 국경과 종교를 초월해 세계 모든 남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꽤 매력적인 소재다. 더군다나 인류사의 향방을 좌지우지했던 대사건 중 1순위는 언제나 징글징글한 전쟁이었다.

역사에 진득한 관심을 가진 탐구적인 독자든, 역사는 좀처럼 안 읽지만, 전쟁을 다룬 책만은 예외인 밀리터리 덕후든 그들 모두가 관심을 가질만한 전쟁만을 위한 전쟁 이야기, 그것도 역사의 주행을 급커브 시킨 결정적인 전쟁들만 연대기 형식으로 간추려 놓은 책이 바로 조셉 커민스(Joseph Cummins)의 『전쟁 연대기(The War Chronicles)』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고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단 1세기라도 전쟁이 없었던 평화로운 시기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지구 어디선가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고,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현재도 인류는 크고 작은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인류사는 크고 작은 전쟁을 구심점으로 소용돌이쳐 왔다는 말은 정녕 사실이다.

이 책엔 기원전 500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부터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까지 총 43개의 전쟁사가 담겨 있는데(웬일인지 임진왜란은 있는데, 한국전쟁은 없다), 그중 한 개를 선택해 집필해도 두툼한 양장본 몇 권 정도는 거뜬히 출판하고도 남을 정도로 모두가 굵직하고 큰 전쟁들이다. 그런데 그런 대사건을 요약하고 요약해서 몇십 페이지로 압축해 놓았으니, 세밀함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바보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런 세밀함을 원한다면 『30년 전쟁』,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한국전쟁』 등등 하나의 전쟁사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은 널렸으니 여기서 구시렁거릴 필요는 없겠다. 애초 『전쟁 연대기』 같은 책을 찾는 목적은 ’세밀함‘이 아니라 개괄적인 것에서 일목요연함을 추려내기 위한 것이니까.

그렇게 추려낸 일목요연함에서 무기의 변천사, 사상자 수의 변화 추세,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크고 작은 요소들, 전쟁을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 등등 무엇을 통찰할지는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마다 다르겠지만, 모든 독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43개의 전쟁을 쭈욱 흩어보고 나면 앞으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한 교양적인 고민은 다소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좀 더 세밀한 책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이 책으로 독서 릴레이에 대한 의지와 근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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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원조, 진정 누구를 위한 원조인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부터 미국의 군사 원조에 대한 불순한 의도를 부쩍 의심해 왔는데, 『전쟁 연대기』를 읽고 나니 그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에는 이라크, 베트남 전쟁 때엔 남베트남, 중국의 국공 내전 땐 국민당,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땐 아프가니스탄, 아랍-이스라엘 전쟁 땐 이스라엘 등등 세계 대전 덕분에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본토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전쟁에서 어느 한쪽 편을 군사적으로 원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미국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선 우크라이나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선 이스라엘을 원조하고 있다(언젠가 일어날 중국-대만 전쟁에선 그런 식으로 대만을 지원할지도).

그렇다면, 참전이 아닌 군사 원조는 미국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군사 원조를 받는 국가의 국민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평화와 정의라는 대의를 위해서인가?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군사 원조는 전쟁을 끝내기보다는 전쟁을 부추기거나 지속시켜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내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 원조가 없었다면 프랑코의 쿠데타는 객기 분출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짧은 쿠데타로 끝날 뻔한 사건이 강대국의 군사 원조로 인해 심각한 내전으로 탈바꿈하면서 확장되었다. 까놓고 말해 육이오 때도 UN군이, 혹은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만큼 전쟁은 금방 끝났을 것이다. 전쟁의 승패를 떠나 미국의 군사 원조로 인해 단기전으로 끝날 전쟁이 지리멸렬한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원조받는 국민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를 원조하지 않았다면, (누가 이기든 간에 상관없이) 전쟁은 금방 끝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우크라이나 영토가 파괴되는 일도 없었고,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육이오전쟁도 그렇게 금방 끝났더라면 파괴도, 죽음도, 동족상잔의 비극도, 이산가족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패배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굴욕감, 자유와 주권 침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내란 등 무시할 수 없는 굵직한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다. 과거엔 인명 손실보다 국가를 수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애국심을 기반으로 국민을 속박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희생만을 강요하는 과거의 애국심을 압박하는 요즘의 변화된 국가관에선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군사 원조는 (그 군사 원조를 받는 국가의) 국민의 행복과 안녕에 얼마나 이바지하는가? 혹은, 국민에게 있어 전쟁의 승패가 중요한가? 아니면 죽음과 파괴에 대한 두려움 없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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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병들은 천국에 갔을까?

오로지 전쟁 이야기로만 가득 차서 그런지, 혹은 인터넷과 TV엔 전쟁 관련 뉴스가 아우성처럼 시끌벅적해서 그런지, 아무튼 책 속에 빠져들다 보면 내가 무명의 군인이 되어 창칼이 난무하는, 혹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눈앞에 있는 적군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퍼즐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전우 등을 상상하면 삶의 끝자락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포가 꿈을 꾸듯 몽롱하게 느껴진다. 세로토닌이 흘러넘칠 땐 기분 좋은 나른함에 잠기듯, 전장 한복판에 뛰어든 병사가 되는 악몽 같은 환상이 흘러넘치면 우울하고 꺼림칙한 기분에 잠긴다. 오싹하다. 오장육부를 꺼내 북극해에 담금질한 것 같은 한기가 몸 안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때론 갈고 닦은 무공(武功)으로 공훈을 올릴 수 있는 과거의 전쟁과 개인의 무공과는 무관하게 대량 파괴 무기 한 방으로 병사들이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현대전 중 어느 전쟁이 그나마 인간적인지 고민도 해본다. 전쟁에 끌려가야 한다면, 사람 목숨이 드론이나 미사일에 의해 허망하게 증발해 버리는 현대전보단 최후의 숨을 헐떡이는 나의 심장으로 욱여넣듯 칼을 찌르는 상대의 핏발선 망막에 흐릿하게나마 연민이 비치는 옛 전쟁이 그나마 인간적이기는 하다.

『전쟁 이야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이고, 여기엔 소년병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소년병‘이라고 하니 애국심을 고취하는 훈훈한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하는 독자들이 있을법한데, 사실은 정반대다. 이란은 부족한 전투력을 메우려고 10살 안팎의 소년들을 ’순교‘라는 이름으로 지뢰밭으로 내몬다. 아무런 무장도 없이 몸으로 지뢰를 해체하고자 뛰어가는 소년들의 목엔 천국의 열쇠를 상징하는 작은 플라스틱 열쇠가 걸려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못해 뜨거운 눈물에 눈알이 익는 것 같았다. 그 소년병들은 선지자의 말대로 천국에 갔을까? 그렇다면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만큼 허무하고도 안타깝고 비참하고 슬픈 죽음도 없을 것이다.

내 짧은 식견으론, 전쟁으로 득을 보는 무리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그 무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인류는 영원히 전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론, 세계 대전은 유행병처럼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와 후세에게 한시적으로나마 한숨 돌릴 틈을 준다는 점에서 필요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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