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 1998) | 단 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
<그 누가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건들건들하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다. 하체를 잃은 남자가 거북이처럼 해변을 기어간다. 1919년 3월 1일 그날, 일제의 기세에 눌려 잔뜩 웅크리고 있던 한민족이 만세삼창을 외치며 사방팔방으로 우르르 퍼져나가듯 복부 근육 아래 눌려있던 오장육부가 해방을 맞아 너도나도 자유를 외치며 세상으로 뛰쳐나온다. 그동안 오장육부의 주인 행세를 하던 사람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른다. 그의 불안정한 눈빛은 화타가 와도 치료할 수 없다는 절망감과 곧 죽음에 다다를 것이라는 공포감으로 사시나무 떨듯 한다. 팔뚝에 적십자 완장을 두른 사람이 달려와도 이런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선 별수가 없다. 그는 사신이 달콤 쌉싸름한 안식의 키스로 죽음을 인도하듯 모르핀 주사를 놓는다.
마치 좀비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으스스한 광경이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좀비영화도, 공포영화도 아니다. 바로 전쟁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중 도입부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영상 중 극히 일부분이다. 아마 이런 장면이 계속되었다면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재생 중지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복 받은 사람들이다> |
과감하게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동원한 영화는 마치 관객이 총탄이 빗발처럼 몰아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사신과 숨바꼭질하는 병사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영화관 밖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현장감이지만, 요즘처럼 대형 TV와 입체 음향 시스템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주입한다. 98 군번이었던 것을 떠올리니 세월의 무심함에 주눅만 든다.
하지만, 충격적이고 불편한 영상으로 한가득한 도입부와는 달리 이후는 매우 인간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랄까? 알다시피 이후는 참전한 4형제 중 유일하게 전사하지 않는 막내 라이언을 엄마의 품으로, 그리고 당연히 살아 있는 몸으로 귀환시키는 이야기다.
<생판 모르는 병사를 위해 전우를 희생당한다? 어떤 기분일까?> |
‘라이언’을 찾는 여정에 빠져 있다 보면 이런 의문이 한 번쯤 들만하다.
다른 사람을 여럿 희생시키면서까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모두를 ‘병력’이라는 통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비슷비슷한 병사로 본다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은 수학적으로도,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때론 민주주의에서도 집단과 개인 중 집단을 우선시해야 할 때도 있다. 하물며 매우 특수한 상황인 전쟁에선 단연코 개인보단 집단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어쩌면 여기에 미국이 2차대전에서 승전할 수 있었던 숨겨진 가치가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전장에 있는 군인을, 이름도 모르는 일개 병사일지라도 단 한 사람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병사들의 사기와 애국심을 진작시킨다?
인류 역사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듯 사람은 단순하고 우습게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곤 했다. 영악하게도 미국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독일과 일본은 다행스럽게도 역사의 교훈을 망각했다.
<폭풍 전의 고요 같은 찰나의 평화를 만끽하는 병사들> |
그런데 좀 더 현실적으로 따지고 보면 4형제 모두를 징집한 것 자체가 부모 입장에선 매우 비극적이다. 물론 실제론 (자발적으로 참전하지 않는 이상) 그러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참전한 4형제 중 3형제를 전사시키고 그중 한 명을 우여곡절 끝에 살려서 귀환시킨다? 이것도 역시 일종의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에서 가장 증오해야 할 대상은 적군이 아니다. 바로 전쟁을 일으킨 극소수의 위선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똥구멍이 닳도록 열심히 빠는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쟁이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는 것처럼 상황을 막다른 길로 몰아간다. 그들은 전쟁을 필연적인 것처럼 선전하고 선동하지만, 막상 전쟁엔 참여하지 않는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의 평화가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
하지만, 승전국 영화답게 영화는 독일군은 벌레처럼 보이는 대로 짓밟아야 할 짐승보다 못한 사물로(밀러 대위가 살려준 독일군이 결국 배덕함으로써 '독일군은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것이 낫더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군인은 어떤 명령에도 복종해야만 하는 인격 없는 로봇으로 표현된다. 전쟁이 터졌다면 그저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면 좋은 것이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 일단 일어난 일이니만큼 현실로 받아들이자, 뭐 그런 것 같다.
내 생각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은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묘사한 영상 때문이지 영화의 이야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대단해서는 아니다. 「반딧불이의 묘」만큼 역겹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국식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조금 아쉽다(그랬다면 흥행에는 실패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잘 만든 전쟁영화로써 한 번 이상은 볼만한 대단한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전쟁에 희생된 모든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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