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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1일 금요일

[책 리뷰] 종말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문화 혁명’... ~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하랄트 벨처 외)

종말에 대한 무지, 그리고 ‘문화 혁명’을 통한 극복

원제: Das Ende der Welt, wie wir sie kannten by Claus Leggewie, Harald Welzer
문화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즉, 세계가 내적으로 어떤 특징을 띠고 있는지, 세계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계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 것인지.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22쪽)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Das Ende der Welt)’,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제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관심이 있건 없건 귀가 따갑도록 듣는 유행어처럼 되었지만, 기후변화가 세상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대담한 발언은 여전히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후변화’가 ‘기후재앙’을 일으켜 인류와 문명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말이 과격한 환경주의자들이 아닌 냉철하고 논리적인 과학자들의 입에서까지 조금씩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예측이 기정사실화되었다. 과장하고 떠벌리기 좋아하는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아닌 과학자들의 입으로써 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과학자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책 제목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그런 파국적인 ‘종말’의 뜻도 있다. 한편으론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 대책이 ‘종말’이란 파국적인 단어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미흡함을 질타하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에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다. 여기서 ‘종말’은 인류와 문명의 종말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지구를 지배했던 비(非)지속적이고 반(反)생태적인 모든 시스템의 총체적인 종말을 의미한다. 이후 새롭게 등장할 시스템은 모든 요소요소에 지속가능성을 기본 전제로 한 혁명적이고 획기적인,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인류와 문명을 구할 구세주가 될 것이다.

책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 기후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기회』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국가, 정치, 경제, 기술, 사회, 개인 등 각각의 요인에서 찾기보다는 이 모든 요인을 아우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에서 찾고 있다. 개인의 자발적인 실천, 탈탄소화를 지향하는 사회,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기술의 개발, 성장 제일주의 경제의 종말, 민주주의의 현대화, 초국가적인 협력 체제의 등장 등 이 모두가 기후변화를 대비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지만, 개별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크게 성과를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인 일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회, 한 국가의 변화만으로는 지금의 기후변화를 불러온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시스템의 일부 녹슨 부품을 교체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전 지구적인 잔치인 피파 월드컵처럼 세계의 모든 사람과 사회, 국가가 참여하는 ‘문화 혁명’을 통한 가치관의 대전환과 동시다발적인 변혁만이 기후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이 새로운 문화에서는 가까운 거리조차 자가용으로 이동하는 사람, 빈번하게 외국여행을 하는 사람, 낡은 에너지 체계를 옹호하거나 그것을 교체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 등 생태 발자국을 깊게 남기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지탄받는다. 반면에 체계적인 계획과 모범적인 실천으로 생태 발자국을 적게 남기는 사람일수록 존경과 부러움의 눈길을 받는다. 또한, 이 새로운 문화에서는 개인, 사회, 경제, 기술, 정치, 국가 등 인류가 관여하는 모든 분야의 구석구석에 지속가능성은 필수적으로 고려된다. 반대로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상품, 기술, 제도, 협약, 법 등은 철저하게 배제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새로운 문화에서는 현재 우리가 개인의 이기적인 행복과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것과는 다르게 소비를 통해 지속가능성에 얼마나 이바지하느냐가 개인의 행복과 만족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10년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류에게 20년, 50년을 내다보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요구일 수도 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현대의 물질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간 개념이 미국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홀은 아시아의 문화는 정반대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수세기를 내다보기도 하는 남아시아인들의 문화를 수용한다면, 현재 인류는 미래 세대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풍요와 안락함, 깨끗한 환경을 특별한 대책이나 고민 없이 마구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저자는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를 경로의존성, 인지부조화, 바탕 교체 등의 사회과학적 사유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인류는 봉건제, 전체주의, 식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그들이 알던 세계의 종말’을 통해 더욱 나은 자유민주주의를 배웠고, 실패, 실수의 소중한 경험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 실천적 학습을 통한 회복탄력성은 인류가 좀 더 나은 세계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인류는 기후변화 앞에 무릎을 꿇고 재앙을 순수히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과 분에 넘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위기를 기회로 새로운 세계, 즉 지금보다 나은 지속가능한 세계로 탈바꿈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말과 함께 인류 문명의 또 다른 도약을 일으킬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먼 훗날 인류는 자신들의 문명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원시 문명, 그 이후의 산업문명, 그리고 현재의 지속가능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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