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 티모시 메이슨 | 등에 칼을 맞을 맞았다는 전설에 스스로 발목이 잡힌
나치스 시대의 노동계급은 강화된 착취와 억압에 의하여 정의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시대의 노동계급이 그들에게 닥쳐온 것에 의하여 규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나치스의 사회정책과 선전 선동은 노동계급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바로 그 사회정책과 선전 속에 노동계급의 특수한 지위가 발견된다. 즉 노동계급은 1933년 이후에도 너무도 위협적인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7쪽)
독일은 1933년 나치가 집권했을 때부터 히틀러의 팽창 정책을 수행하고자 사회 • 경제력을 국방력 증강과 군수 산업 확장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독일 경제는 침략적 전쟁을 결정하고 그것을 준비하던 기간과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몇 년 동안에도 ‘전시경제’와 ‘평시경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전시경제이면서도 동시에 평시경제였던 어중간한 정책의 후유증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폴란드 진격이 단기간에 끝나고 난 뒤, 폭탄과 차량 물량의 부족분이 너무 커서 몇 달간의 전쟁 수행조차 불가능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939년 10월로 예정된 히틀러의 프랑스 침공 계획도 군의 무장 상태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장군들의 반대로 말미암아 포기해야 했다.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Sozialpolitik im Dritten Reich): 히틀러 이데올로기 전시경제 노동계급』의 저자 티모시 메이슨(Timothy W. Mason)은 이 문제, 즉 오래전부터 전쟁을 계획하고 준비해왔던 나라의 군수물자가 막상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 그렇게 열악했던 이유와 그렇게 군수물자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치스 사회 • 경제 체제의 내적 모순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나치스와 노동계급의 갈등이다 .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잡자마자 노조와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세력 등의 노동자 정당과 조직은 괴멸되었다. 노동계급 자체가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노동자들은 나치의 전쟁 계획에 맞추어 철저하게 탈권화되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권리를 대변해주던 노조가 눈앞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무너지는 것을 뜬눈으로 멍하게 지켜다 볼 수밖에 없었다. 대공황의 여파로 빈곤과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없었고, 치열한 생존 경쟁 때문에 조직화된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군수 경제를 밀어붙이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전쟁 준비로 독일 경제가 완전가동되는 상황에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고,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뇌물까지 받치는 상황이 되자, 노동자들은 위장된 파업, 결근, 작업장 이탈, 병가, 작업 중의 부주의, 명령 불복종 등 수동적으로 나치에 저항했다.
그럼에도, 나치는 곧바로 게슈타포 등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것은 주저했다. 1938년에서 1941년의 ‘무늬만 전쟁인 전쟁’ 시기, 즉 독일이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고 여전히 영국은 미적지근하게 나오고 그래서 전쟁이 주는 압력과 위기감이 미약한 가운데 군수 목표치를 달성하고자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1차 대전 패전에 대한 히틀러의 자의적 해석이 낳은 트라우마가 생생하게 떠올랐기도 했다. 즉, 1차 대전 패전의 원인은 연합군의 압도적인 물량 때문이 아니라 11월 혁명으로 노동운동과 유대인이 배신함으로써 전쟁의 와중에 내부의 적에게 등에 칼을 맞았다는 논리다.
나치는 전쟁준비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을 탈권화시키고 억압하며 가차없이 착취해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충성도 확보해야 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구상은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었다
고 메이슨은 설명한다. 즉,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를 일일이 받아들이면 군수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그렇다고 게슈타포 등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였다가는
또다시 ‘등에 칼을 맞을’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다.
<좀비 같은 나치, 나치 같은 좀비?, ZombieHorrorMovie13 / CC BY-SA> |
히틀러의 불굴의 의지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는 나치와 노동계급의 갈등에서는 그 효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릇 백성을 다스림에 식(食)이 최우선이지만, 밥이 충족되면 의(衣), 주(宙) 등 백성의 요구는 하나둘씩 늘어난다. 어느 정도는 이 요구들을 선전과 사상 교육으로 억누르거나 완화할 수 있다지만, 이들의 요구가 터무니없이 무시되면 종종 폭동이나 혁명이 일어나 정부가 전복되거나 왕이 바뀌기도 한다. 나치의 염려가 전혀 쓸데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히틀러가 그토록 공산주의를 싫어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만약 독일에 공산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면, 나치는 좀 더 많은 노동자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절대권력을 확보한 것처럼 보였던 히틀러와 나치도 막상 전쟁을 준비하는 데 있어 수많은 장애와 난관에 부딪혔고, 더군다나 이들은 이러한 복잡한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갈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하기에 나치와 정부는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도 덮어놓고 도박적이며 도피적인 선동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히틀러에게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몸을 내맡겨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급진성은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미래에 펼쳐질 유토피아가 마치 눈앞에 도래된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해 현실의 문제들을 직시하지 못하게 가리고 덮어두는데 더 탁월하게 작용했다 . 어쩌면 그들이 권력을 차지했을 땐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급진성에 제동을 걸기에는 늦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급진성은 나치가 일으킨 소용돌이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원이었고, 이런 상태에서 나치가 스스로 급진성에 제동을 건다는 것은 소용돌이의 소멸, 즉 나치의 자살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신(死神)에게 쫓기듯 무작정 앞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언젠가는 지칠 수밖에 없었고, 사람인 이상 신에 맞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들의 파멸은 등 뒤에 칼을 맞은 내부의 배신이 아니라 급진성에 모든 것을 의존한 자들의 예정된 운명이었다 .
옮긴이(김학이)는 티모시 메이슨의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을 한국에 출간된 수많은 나치즘 관련 서적 가운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책 여섯 권 중에서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 국가』(김학이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1) 다음으로 읽어볼 책으로 추천했다. 처음엔 두 책의 옮긴이가 같은 것을 보고 왠지 광고를 하는 것 같아 약간은 미심쩍었으나, 막상 읽어보니 나치와 당시 독일의 사회 • 경제적 관계, 특히 나치와 노동계급의 역학 관계에 대한 좀 더 깊은 안목과 풍부한 이해를 제공해주는 탁월한 학술서였다. 학술서이니만큼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나치 신화의 허울을 요모조모 파헤치는 통쾌함이 느껴질 정도로 절대 지루하지는 않은 시간이었다. 또한,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처럼 읽고 나면 상당한 지적 만족감을 채워주면서 또 다른 호기심을 발동시켜주기도 하는 좋은 책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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