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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2017

[책 리뷰] ‘이중 국가’의 ‘자의적 국가’를 지탱하는 도구 ~ 게슈타포: 히틀러 비밀국가경찰의 역사

‘이중 국가’의 ‘자의적 국가’를 지탱하는 도구 게슈타포

The Gestapo: A History of Hitler's Secret Police 1933–45 by Rupert Butler
그것들은 독재 정권, 특히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억압적인 비밀경찰을 둔 독재 정권의 위험성과 폐해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처럼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 있다. (『게슈타포』, 341쪽)

제정 러시아 시대의 오흐라나(Okhrana),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소련의 체카(Cheka)와 KGB, 그리고 제3제국의 게슈타포(Geheime Staatspolizei)와 2차 대전 후 그 뒤를 이은 동독의 슈타지(Stasi) 등 독재 정권 밑에는 굶주린 개처럼 그 뒤를 충실히 따르며 한편으로는 정권을 유지하는 폭압의 도구로 작용한 비밀경찰이 존재해왔다. 이들은 명목상 반체제적인 범죄를 적발하고 차단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나, ‘반체제적’의 정의와 해석에 대한 모호함을 이용하여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수많은 정보원과 밀고자로 구성된 이들의 촘촘한 그물망에 누구라도 걸려들면 그 사람은 이웃, 또는 친구들의 삶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웃이나 친구들도 사라진 사람, 또는 가족을 구태여 찾지 않았다. 이들 앞에선 법조차 무색했기 때문에 한 번 이들에게 걸려들면 빛, 음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음습한 감방에 갇혀 시도 때도 없는 구타와 가혹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다행이었다.

『게슈타포: 히틀러 비밀국가경찰의 역사(The Gestapo: A History of Hitler's Secret Police 1933–45 by Rupert Butler)』 이 책은 그중에서도 홀로코스트의 집행자로 악명 높은 제3제국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관한 책이다. 프로이센 주의 내무장관 헤르만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의 고안으로 프로이센 주 경찰의 정치경찰로 시작한 게슈타포는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Luitpold Himmler)에게 이양되면서 내무행정으로부터 분리되어 제도적으로 독립한다. 히틀러는 체제 유지에 불가결한 막강한 권력기관을 자신이 직접 행사하거나 그에게 사적인 충성을 바치는 수하(히믈러)에게 맡겼다. 이것은 나치즘 특유의 작동 방식인 ‘사적인 지도자 - 추종자 관계’를 권력기관의 구조적 요소로 자리 잡게 함으로써 당과 국가의 외부에 존재하는 ‘지도자 권력’을 현실화시켰다. ‘토트건설총국’, ‘무장친위대’ 역시 나치당과 국가에 기반을 두면서도 양자에게서 벗어나 히틀러와 직속으로 연결된 특수 권력 기관의 예이다(참고 문헌: 『히틀러 국가』, 마르틴 브로샤트, 김학이 옮김, 문학과 지성사).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노동법 법학자이자 노조 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38년에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프렝켈(Ernst Fraenkel)은 1941년에 발표한 자신의 저서 『이중국가(The Dual State: A Contribution to the Theory of Dictatorship)』에서 나치 국가를 ‘규범적 국가’인 동시에 ‘자의적 국가’였다고 파악했다. 규범적 국가는 법적 규범과 일관성에 입각한 법치주의적 국가로서 나치 체제가 자본주의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국가이고, 자의적 국가는 나치에 반대하는 세력을 법외적 수단으로 억압하는 국가다(참고 문헌: 『히틀러 국가』, 마르틴 브로샤트, 김학이 옮김, 문학과 지성사).

바로 게슈타포가 ‘자의적 국가’에서 나치에 반대하는 세력을 법외적 수단으로 억압하는 핵심 장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법’을 마치 기업이 상품을 기획하고 대량 생산하는 것처럼 능률적으로 거침없이 착착 진행할 수 있었다.

The Gestapo: A History of Hitler's Secret Police 1933–45 by Rupert Butler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제3제국이나 동독, 구소련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는 국가 질서를 전복하고 해치는 음모나 위협을 적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국의 국가정보원(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같은 비밀스런 기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버틀러는 정부가 독재적일수록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거칠고 가혹해지는 경향이 크다고 말한다. 굳이 게슈타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 때의 중앙정보부(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와 안전기획부(National Security Planning Agency)를 떠올리면 그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밀경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분야에서나 발산하는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을 대변하는 듯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진 저주스럽고 가혹한 고문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참기 어려울 정도로 궁금한 점은 고문자들도 가족이 있고 때론 아이까지 둔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고문을 마치면 어느 회사원처럼 귀가하고 열심히 일한 그 손으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을 만지고 같이 식사한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어떻게 이토록 쉽게 피를 씻고 잊을 수 있을까. 한 인간을 능욕하고 고문하는 것조차 일상 반복되는 다른 일들처럼 무미건조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것일까.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 by J. M. Coetzee』(왕은철 옮김, 들녘)에서는 고문당한 ‘나’가 자신을 고문한 사람에게 진지하게 (내가 품은 의문과 같은 뜻으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염치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면,날 용서하게.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이 질문을 하고 싶네그려. 이건 사형집행인들과 그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늘 물어보고 싶었던 걸세 … 나는 단지 이해하고 싶은 것뿐이네. 난 자네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네. 나는 자네가 날마다 어떻게 숨을 쉬고 먹고 사는지 상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네. 그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네!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곤 하네. 만일 내가 저 사람이라면,내 손이 너무 더럽게 느껴져,나를 질식시킬…….” (『야만인을 기다리며』, 215~216쪽)

질문은 받은 사람의 대답은 신기하게도 나의 예상과 같았다.

“너,이 미친 씨발놈의 새끼! 썩 꺼져버려! 어디 가서 뒈져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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