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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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국가 | 다중지배와 지도자의 즉흥적 명령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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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국가 | 마르틴 브로샤트 | 다중지배와 지도자의 즉흥적 명령 체제가 빚어낸 국가

나치 정권의 복합적인 내부 구조, 나치 정권의 짧았지만 전복적이었던 힘, 나치 이데올로기의 선동적 성격, 나치 정권이 유발한 장기적인 사회적 • 사회심리적 탈구, 나치 지배의 무정형적 모습과 그 권력의 이례적인 팽창 사이의 모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단순한 틀은 없다. (『히틀러 국가』, 475쪽)

히틀러와 나치 추종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패전까지의 독일은 독재, 전체주의, 군국주의, 일당 지배 등 기존의 개념으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후반부로 갈수록 히틀러의 사적인 영향력과 ‘위대한 지도자’라는 신화와 무관하지 않은 절대주의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만, 아무리 한 개인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국가 대사 모든 일을 살피면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명령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히틀러는 꼼꼼하고 섬세한 인물은 아니었으며 지적이고 논리적인 통찰보다는 정열적인 감정과 즉흥적 의지에 의존하는 선동가였다. 그래서 히틀러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괴링(Hermann Wilhelm Göring), 보어만(Martin Ludwig Bormann), 힘러(Heinrich Luitpold Himmler) 같은 나치 거물들이나 토트조직(Organisation Todt), 친위대(Schutzstaffel) 같은 특수 조직들이 히틀러를 대신에 권력을 행사하고 법질서를 파괴하며 지도자의 의지를 대리했으며, 이들은 그러한 명분 아래 개인적 의지도 관철할 수가 있었다. 그럼으로써 국가와 사회질서의 총체적인 전복을 목표로 하던 급진적인 나치당과 나치의 지나친 간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보수적인 중앙집권적인 정부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었다. 즉, 나치당의 일당 지배, 중앙집권적인 정부 독재, 그리고 히틀러의 사적인 지도자 절대주의 등 세 개의 권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한편으로는 발전적이면서도 상호 파괴적이기도 한 경쟁과 협력체제가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조화 속에 자리 잡으면서 불안정한 공존을 유지했던 국가가 바로 ‘히틀러 국가’다 .

Der Staat Hitlers: Grundlegung und Entwicklung seiner inneren Verfassung by Martin Broszat
<Neuaubing 강제 노동 수용소(User:H-stt) / CC BY-SA>

마르틴 브로샤트(Martin Broszat)는 『히틀러 국가: 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Der Staat Hitlers: Grundlegung und Entwicklung seiner inneren Verfassung)』에서 전통적인 보수적 관리들의 지지를 받았던 내무장관 프리크(Wilhelm Frick)가 대표하던 권위적 질서국가라는 나치 국가의 판본이 분권적인 나치 권력자들의 독자적인 의지와 특수 조직들의 예외적 지배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예외상태 곁에서 행정국가의 질서를 나름 유지함으로써, 특수 권력에 의해 초래된 법적 진공 상태가 나치 체제를 파탄으로 몰아갈 정도는 되지 않도록 했다는 점, 그래서 중앙집권적 국가와 분권적 지배의 ‘병존’이 가능했다는 점이야말로(법적 통일성과 예외법의 공존과 마찬가지로) 히틀러 국가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

나치즘과 제3제국의 복합적인 내부를 깊이와 세밀함을 유지한 채 분석함으로써 표면적인 사건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나치 체제의 헌정 및 그 구조의 역사를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분석한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 국가』는 나치, 그리고 나치와 히틀러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또한, 나치 이데올로기가 유대인, 마르크스주의, 평화주의,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구질서를 파괴하고 새로 건설한 유토피아적인 신질서에 대한 구상과 목표가 매우 모호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의도주의적인 해석보다는 마르틴 브로샤트의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분석은 단연코 돋보인다. 히틀러 국가의 역동성과 파괴력은 나치 이데올로기 자체에서 파생된 것이라기보다는 나치 체제의 다중지배와 지도자의 즉흥적이고 비효율적인 연속된 명령 체제가 빚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학술서이니만큼 어렵고 딱딱한 책이지만 뜻밖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학술서를 이만큼 의욕적으로 읽은 기억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런 분야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책이다. 『히틀러 국가』는 읽고 나면 얻을 것도 많은 책이지만, 아둔하게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던 나로서는 나치즘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그 위에서 히틀러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어떻게 나치 체제가 불안정하게나마 유지되었는지 대한 대략적인 개념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득은 옮긴이(김학이)의 나치즘 관련 추천서 이다.

옮긴이는 1969년에 처음 간행된 이 책을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생산된 가장 위대한 나치즘 연구서라고 평가하면서, 현재 한국에 출간된 수많은 나치즘 관련 서적 가운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책 여섯 권(티모시 메이슨의 『나치스 민족공동체와 노동계급』,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 라울 힐베르크의 『홀로코스트ᅳ유럽 유대인의 파괴』, 이언 커쇼의 『히틀러』,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이 중 맨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히틀러 국가』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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