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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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무협세계: 사조영웅전(金庸武侠世界·铁血丹心, 2024)

김용무협세계: 사조영웅전(金庸武侠世界·铁血丹心, 2024)

드라마 포스터
review rating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전진칠자(全眞七子)
<전진칠자(全眞七子)>

잊을만하면 나오는 김용 무협 드라마! 줄거리를 알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김용 팬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과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용 작품엔 노인이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노스탤지어 같은 뭉클함이 있고, 잃어버린 젊은 혈기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격동도 있고, ‘힘’이 곧 ‘정의’인 피비린내 나는 강호 세계에 대한 원시적 갈망이 있다. 세상을 유유자적 방랑하면서 악을 처벌하고 의리를 행하는 줄거리는 모험심과 정의감을 심히 자극한다. 강호를 종횡무진 누비며 기연을 얻고 시련을 헤쳐 나가고 다양한 인연을 경험하는 주인공에게 몰입하다 보면 현실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잊을 수 있다.

마음의 고민과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 같은 중독성과 마치 오래된 친구와 만나는 것 같은 익숙하면서도 매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오는 그런 감성, 원작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리메이크

황용과 곽정의 첫 만남
<황용과 곽정의 첫 만남>

2024년도 ‘사조영웅전‘의 진짜 제목은 ‘김용무협세계(金庸武侠世界)’이다. 제목이 꽤 거창하지 않은가? 제목만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각색과 (원작에 대한) 재해석도 이전 리메이크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횟수가 대폭 줄었다. 2017년 작품은 52편, 2008년 작품은 50편인데 반해 2024년도 작품은 그 절반 살짝 넘는 30편이다. 두꺼운 책을 좋아하듯 ‘긴’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로선 아쉬운 점이었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같은 이야기들을 (특히 곽정, 황용이 등장하지 않는 대목) 대거 삭제해서 몰입도와 재미는 더더욱 도드라진다. 보통 하루에 많이 봐야 1편 정도였는데, 이번 같은 경우는 한 번 재생하면 기본이 2편 이상이었다. 1편을 보고 나면 뒷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고 있음에도 왜 그렇게 구미가 당기는지 모르겠다.

횟수가 준 만큼 빠진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과거 이야기들은 전부 다 메인에서 빼버렸다. 대신 곽정, 황용, 양강, 구양극의 성장 이야기와 지난 일들은 에피소드 막간에 플래시백 형태로 등장한다. 스피드한 시대에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 이야기들을 깔끔하게 잘 처리했다는 감탄과 함께 (원작에서 제거된 일화들로 인해) 등장인물 배경에 대해 공백으로 남는 부분을 독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채워나갈 수 있는 여지를 준 꽤 괜찮은 각색이라는 느낌이 든다.

‘대의를 위한 협객’에서 ‘무예를 통한 개인의 성장’으로

심마에 빠진 곽정을 구원하는 단황야
<심마에 빠진 곽정을 구원하는 단황야>

「베이징청년일보(北京青年报)」 리뷰를 보면 각색의 관점이 ‘대의를 위한 협객’에서 ‘무예를 통한 개인의 성장’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러한 논평은 마지막 에피소드를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30회에서 곽정은 절세무공을 배웠음에도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도 못 구한 자신의 무능을 원망하며 무공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고 토로한다. 원작에선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뒤집을 수도 있는 법.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는 등등 이런저런 좋은 말로 곽정을 어르고 달래는 일은 구처기가 담당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단황야(허룬동:何潤東, 「비호외전(2022)」에서 전귀농 역)가 원작엔 없는 대사로 곽정을 일깨운다. 그는 곽정의 고민은 무학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수련자의 마음가짐 문제라고 설명하면서 이 심마를 극복해야 왕중양 같은 무학의 대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구처기는 곽정이 겪는 딜레마를 도교의 ‘道’에 근거한 행위의 문제로 해석했다면, 단황야는 불교의 ‘禪’의 근거해 마음가짐과 수양의 문제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으려나.

‘악한 행위를 일삼는’ 악인 231명을 죽였다는 홍칠공이 ‘대의를 위한 협객’이라면 ‘무술을 배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천착한 곽정은 ‘무예를 통한 개인의 성장’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고뇌는 무공을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힘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가 (마지막 편) 화산논검에서 황약사와 홍칠공을 상대로 한 2:1 대결도 가능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황야의 가르침대로 자기 성찰 끝에 심마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재밌게 깜찍한 배우, 바오샹겐

황용 역을 맡은 바오샹겐
<황용 역을 맡은 바오샹겐(包上恩)>

어찌 되었든, ‘사조영웅전’ 감상 포인트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황용이다.

황용 역은 2021년에 데뷔한 풋풋한 배우 바오샹겐(包上恩)이 맡았다. 황용을 보는 순간 첫 느낌은 ‘어디서 이런 배우를 잘도 구했구나?’하는 감탄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었다. 표정이 크게 변하면서 얼굴이 위아래로 늘어질 때마다 순간순간 코미디언 김명덕 씨를 연상케 하는 깜찍한 연기가 황용의 개구쟁이 기질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웃기면서도 예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표정 연기가 과했다고 생각되었는지 중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촬영 초반 땐 의욕이 넘쳐흘러, 혹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잘해보려는 욕심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과한 표정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참 보기 좋았는데 아쉽게 되었다. 말할 때나 표정 연기할 때 입술을 크게 사용하는 특징이 연출된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바오샹겐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어진다.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의 저주라고 말하는 것일까?

양강과 목염자(좌), 구처기와 매초풍(우)
<양강과 목염자(좌), 구처기와 매초풍(우)>

양강 역은 왕홍이(王弘毅)가 맡았다.

황용의 말처럼 살아있을 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는데, 죽고 나니 남은 건 몸에 덮인 거적때기뿐이었다는 양강의 인생은 말 그대로 우여곡절 많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악랄한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생부 양철심을 모른 채 살았다면 그는 그저 약간의 재주와 권세를 믿고 설치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처럼 오만방자한 소왕야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 치듯 나타난 생부,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가 사실은 생부와 어머니를 헤어지게 만든 원수였다는 사실 등 추리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충격적인 반전은 양강의 평온한 삶을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내버린다. 이후 그는 극심한 내적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생부를 따라 농사꾼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길러준 아버지를 따라 소왕야의 삶을 살 것인가? 왕자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생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거지 나부랭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자기가 친아버지라고 주장하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아니 믿고 싶겠는가?

양강이 잠시 마음을 다잡고 곽정과 의형제를 맺으며 원수를 갚겠다고 말한 것도 일부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강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보단 부정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평온했던 인생에 느닷없이 등장한 ‘과거’, ‘양철심’ 등을 생각하면 운명이 그를 그렇게 몰아갔다는 느낌도 강하게 남는다. 양강의 굴곡진 삶은 운명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로 볼 수 있으며, 개인의 선택과 외부의 힘이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인생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후 양강의 행적은 악랄한 악당의 교과서가 무엇인지를 절실히 보여주었고, 그런 악행에 걸맞은 비참한 죽음으로 최후를 맞는다. 그럼에도 그를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 수가 없다.

참고로 양강의 사부 매초풍은 멍쯔이(孟子義)가 열연했는데, 그녀는 리이통(李一桐)이 황용 역을 맡은 「사조영웅전(2017)」에서 목염자 역을 맡았었다. 같은 리메이크 작품에 연달아 두 번 출연한 것도 드문 일인데, 두 작품에서 맡은 역할 모두 양강과 관계된 인물이라니,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그런데 나 같아도 구린내 풀풀 풍기는 고리타분한 도사보단 요녀일지라도 예쁜 매초풍을 사부로 삼겠다.

기타 캐스팅과 액션

양과, 그리고 홍칠공, 황약사, 구양극, 주백통
<양과, 그리고 홍칠공, 황약사, 구양극, 주백통>

주백통, 홍칠공, 황약사, 구양극, 단황야, 구천인 등의 ‘일대종사‘ 캐스팅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극의 분위기나 감정에 따라 화면의 채도를 따뜻하게, 혹은 차갑게 변화시키는 연출과 의상 • 소품 • 로케이션 • 세트도 볼만하다. 역시 중드의 시대극은 볼거리가 풍성하다.

액션은 주성치 감독의 「쿵푸 허슬(功夫, 2004)」과 「장강 7호(长江7号, 2008)」에서 무술 감독을 맡았던, 그리고 더 오래전엔 성룡과 이연걸과도 함께 영화를 촬영한 경력이 있는 구쉬안자오(谷轩昭)가 담당했다. 정통 무협 소설에 걸맞게 특수효과는 (참고로 곽정이 뭔가 각성할 때마다 나오는 싸구려틱한 CG는 최악) 최대한 배제하고 배우들이 직접 무술 액션을 소화해 냈는데, 70년대 홍콩 무술영화 「소권괴초」보다 조금 빠른 무술 액션은 성룡 • 견자단 • 이연걸 같은 무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 액션만큼 화려하거나 스피드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절도는 느낄 수 있다. 무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그 이상의 액션은 요구할 수도 없고 연기할 수도 없는 법. 완성도는 둘째치고 배우들이 진지하게 무술 액션에 임했다는 그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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