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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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와 오맹달의 개세호협(蓋世豪俠, 1989)

주성치와 오맹달의 개세호협(蓋世豪俠, 1989)

개세호협(蓋世豪俠, 1989)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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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와 오맹달의 무협 코미디

주성치와 오맹달

타래자강호(他來自江湖, 1989)」에 이은 주성치(周星驰)와 오맹달(吴孟达) 콤비가 등장하는 또 다른 드라마 「개세호협(蓋世豪俠)」. 「타래자강호」에서 주성치는 주연급 조연이었다면, 「개세호협」에선 명실상부한 주연으로 등장하고(더불어 오맹달은 1인 2역), 주성치만의 독특한 코미디 연기도 이미 슬슬 엿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주성치 • 오맹달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어렸을 때 영춘권을 배운 주성치는 80 • 90년대 홍콩 영화 팬이라면 낯익은 액션 배우인 고웅(高雄, 「지존무상(1989)」, 「심사관(1992)」, 「성룡의 홍번구(1995)」, 「견자단의 정무문(1995)」 등에 출연)과 함께 대다수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함으로써 자신의 무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젊은 시절 주성치의 유연한 몸놀림과 날렵한 발차기를 감상하는 것도 쏠쏠하다.

줄거리는 기구한 운명, 복잡한 혈연관계, 얽히고설킨 사연, 기연과 무공 비급, 정파와 사파의 대립, 복수와 원한, 삼각관계 등 정통 무협 드라마에 걸맞은 요소들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주성치 • 오맹달 팬이라면) 김용 무협소설에 빠진 듯한 몰입감을 잃지 않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단비(段飞)의 껄렁한 무림 열전

단비(段飞)의 껄렁한 무림 열전

강호를 호령하는 명문 정파인 궁창파 장문 단해(段海)의 둘째 아들 단비 역은 주성치가 열연했다.

단비는 주성치가 숱하게 연기했던 껄렁한 인물들을 떠올리면 어떤 인물인지 단박에 파악될 것이다. 유명 문파 장문의 아들이지만 무공이나 강호의 복잡한 은원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단비는 어떻게 하면 돈 벌고 도박할 궁리만 하는 말썽꾸러기다. 골탕 먹이기, 약 올리기, 발뺌하기, 허풍 떨기, 뻔뻔함, 능청 떨기, 막 말하기 등 주성치 팬이라면 익숙하면서도 기대하기 마련인 그런 망나니 개구쟁이 같은 캐릭터다가 바로 단비.

그런데도 주인공이라는 미덥지 못한 이유로 살겁에서 무림을 구하기 위해 무수한 역경과 고난을 견뎌야 하는 가련한 숙명을 타고난 자이기도 하다. 그는 무림을 구해야 할 큰 운명을 마지못해 짊어지고, 한편으론 절세미인 설안과 절세추녀 아주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로맨스도 해결해야 할 작은 운명도 짊어진다.

사파를 대표하는 마두, 고염양(古艳阳)

사파를 대표하는 마두, 고염양(古艳阳)

사파를 대표하는 현빙궁(玄冰宫)의 주인 고염양은 오맹달이 열연했다.

설안의 양아버지이기도 한 고염양은 여자가 배워야 하는 음기가 강한 옥녀신공을 익힘으로써 동방불패처럼 여자도 남자도 아닌 마두가 된다. 자신에게 맞서는 모든 것들을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는 등 성정이 잔인한 그는 옥녀신공을 마지막 단계까지 연성해 궁창파를 살육하고, 무림에 피비린내 나는 살겁을 일으키려는 잔인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옥녀신공을 파쇄할 수 있는 무공은 궁창파 절기인 극락신공뿐이고, 극락신공은 음기가 겹친 날 태어난 단비만이 익힐 수 있지만, 단비는 무공 배우는 것을 극력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극락신공을 한 번이라도 펼친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배우기도 권하기도 어려운 무공이다.

2004년 주성치가 영화 「쿵푸 허슬」을 촬영할 때 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 때문인지, 「소림 축구(2001)」 끝으로 두 사람의 콤비는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20년 후 오맹달은 타계했다.

단비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는 고봉(古峰)

단비를 정의의 길로 인도하는 고봉(古峰)

현빙궁 궁주 고염양의 쌍둥이 동생이자 궁창파 장문 단해의 사형인 고봉 역도 오맹달이 맡았다. 오맹달의 보기 드문 1인 2역.

형 고염양과는 달리 불같은 의협심을 가진 고봉은 그 누구보다 사악한 형과 강렬하게 맞서는 정파 인물이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형을 이기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난 그는 단비가 태어나던 날, 사이가 좋던 사제 단해와 함께 장문 몰래 극락신공을 훔치는 계획을 실행하다가 단해의 배반으로 계획은 실패할 뿐만 아니라 배신자로 낙인찍혀 문파에서 추방된다.

훗날 우연히 단비와 만나게 되는 고봉은 단비의 까불거리는 기질을 다스리거나 무공을 익히게 하는 등 단비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듬직한 강호 선배가 된다.

야망의 화신, 단옥루(段玉楼)

야망의 화신, 단옥루(段玉楼)

단해의 뒤를 잇는 새 장문이자 무림의 새 맹주로 추대되는 강호의 떠오르는 샛별 단옥루는 이연걸 • 구숙정 • 홍금보가 출연한 「의천도룡기(1993)」에서 장취산 역을 맡은 살짝 낯익은 배우 오진우(吴镇宇)가 맡았다.

단옥루는 원래 고봉의 아들이지만, 문파에서 추방당한 남편 고봉이 죽은 것으로 착각한 고봉의 아내가 자살함에 따라 천애 고아가 된다. 하지만, 사형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인 단해가 남몰래 거둠으로써 단비의 형으로 성장한다.

단비와는 달리 뛰어난 자질을 갖춘 단옥루는 12 문파를 다스리는 무림 맹주가 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다. 초반엔 동생 단비가 저지른 장난질의 뒷수습을 하기 위해 몸소 나설 정도로 든든한 형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하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본모습을 드러낸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그의 악랄함을 보면 김용 소설 『소오강호』의 유정풍(劉正風)과 곡양(曲洋), 그리고 겉모습은 군자 같으면서도 속으론 음흉한 마음을 품은 악불군(岳不羣)이 떠오른다. 정파와 사파 간의 무의미한 선악 시비 위에 능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고, 착하다고 봐주지 않는 무정한 현실이 묘하게 겹친다.

드라마 속 로맨스가 현실로, 아주(李珠)

드라마 속 로맨스가 현실로, 아주(李珠)

선머슴 같은 아주 역은 나혜연(罗慧娟)이 열연했다.

어머니 이교와 함께 술집을 운영하는 아주는 스테로이드 금지 약물처럼 순간적으로 힘을 솟구치게 하는 금강주를 몰래 마시고 남자 손님들과 팔씨름 내기를 하는 도중에 단비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알 수 있듯 아주는 괄괄하고 우악스러운 여자다. 아주는 일이 꼬이면서 단비와는 티격태격하는 견원지간이 되지만,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단비를 남몰래 흠모하는 시집이 고픈 처녀의 솔직함을 서서히 드러낸다. 선녀 같은 설안을 짝사랑하는 단비에게 선머슴 같은 아주는 귀찮고 짜증 나는 존재일 뿐이다. 아주는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매몰찬 단비 앞에서 노골적으로 거절당하지만, 끝끝내 단비를 향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다.

나혜연과 주성치는 이후 3년 동안 드라마 속 연애를 현실에서도 비밀리에 이어나갔다고 한다. 설안 역을 맡은 남결영보다 3년 늦게 태어난 나혜연은 2012년 췌장암으로 남결영보다 6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 45세.

얼음 속에 핀 꽃, 설안(雪雁)

얼음 속에 핀 꽃, 설안(雪雁)

자두처럼 아름답고 얼음처럼 차가운 여자 설안 역은 「서유기 선리기연」, 「서유기 월광보합」, 「백발마녀전」, 「당백호점추향」 등에 출연해 주성치 팬에게 친숙한 남결영(蓝洁瑛)이 맡았다.

그녀는 무협 장르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절세미인 역을 맡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미모는 1980년대 홍콩에서 ‘오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靓绝五台山)’이라 불릴 정도로 확실히 출중하다. 여기서 ‘오대산(五台山)’은 당시 홍콩의 주요 방송사 5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그 다섯 방송사는 TVB(無綫電視), RTV(麗的電視, 후에 ATV로 변경), 香港電台(RTHK), 商業電台(Commercial Radio), 佳藝電視(Commercial Television, 이후 폐국)를 일컫는다.

갓난아기 때 고염양에게 입양되어 한빙궁에서 성장한 설안은 13살 때부터 살인을 일삼았을 정도로 냉혹한 살인마지만, 단옥루와 단비 형제를 알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녀는 과거의 악행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지만, 이를 눈치챈 고염양은 그녀를 놔주려고 하지 않는다. 설안을 준수한 용모를 지닌 젊은 맹주 단옥루를 좋아하고, 단옥루는 설안을 이용해 고염양을 처치할 음모를 꾸민다. 남결영은 2018년 향년 55세로 세상을 마감했다.

화려함이 아닌 본질에 충실한 무협 드라마

화려함이 아닌 본질에 충실한 무협 드라마

주성치 • 오맹달 외에는 볼 것 없겠지, 하고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곡절이 상당한 덕분에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는 몰입감을 시종일관 놓치지 않을 수가 있었다. 오죽했으면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개세호협」은 요즘 중국 드라마의 화려한 의상과 으리으리한 세트장에 비하면 유치하고 싸구려틱한 겉모습을 보여주지만, 정통 무협지를 읽는 듯한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들 간의 복잡한 인물 설정과 고전 무협 세계관에 충실한 소재 등을 통해 올드 무협 팬들을 사로잡을만한 작품이다.

역시 장편 콘텐츠엔 화려한 눈요깃거리보단 알찬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일지라도 내용이 빈약하면 금방 질리는 것처럼 말이다. 「개세호협」은 진정한 재미는 화려한 외양보다 내실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드라마라고 할까나? 물론 「장안12시진」처럼 겉과 속 둘 다 만족스러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지만 말이다.

살짝 아쉬운 점은 유종의 미를 장식해야 할 마지막 30편이 ‘주성치식 막간극’이라도 보여주려는 듯 그때까지의 진지함을 훌훌 벗어던졌다는 점이다. 다소 의외의 전개였지만, 그 중심엔 주성치가 있었으므로 딱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개도 아니리라. 사실 예상할 수 있듯 마지막 편은 단비의 절정에 오른 무공 실력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주성치 액션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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