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십각관의 살인(十角館の殺人, 2024)
나머지 ‘관 시리즈’도 기대할 수 있을까?
<츠노시마 섬의 십각관> |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十角館の殺人)』(이하 ‘십각관’)은 마쓰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더불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십각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추리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범인’ 관련된 트릭이다. 원작의 팬들이나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발한 트릭이 영상화될 때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한 궁금증과 우려가 존재한다. 바로 ‘십각관’에서 범인을 숨기는 트릭이 그러하다. 이 트릭은 글로 설명했을 때나 유효한 것이지 영상으로 보여주면 단박에 탄로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보면 알겠지만) 이 정도면 나름 잘 처리(?)했다고 생각된다.
‘십각관’의 드라마화를 본격 미스터리 장르의 복잡하고 기발한 트릭을 시각적 매체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 훌륭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면, 나머지 ‘관 시리즈’도 기대해 볼 만하다.
영상에선 숨길 수 없는 트릭
<어느 컵에 독이 있을까?> |
드라마는 원작에 아주 충실하다. 하지만, ‘글’과 ‘영상’은 염연히 다르다. 글은 특정 정보를 제공하거나 숨기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작가는 이런 점을 활용해 미스터리 전개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은 꼭꼭 숨길 수가 있다. 하지만, 물리적 실재를 기록하는 매체적 특징을 가진 영상은 꼭 그렇지는 않다. 보여주기 싫은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함으로써 아예 안 보여줄 수 있지만, 일단 관객 앞에 공개된 샷에서, 즉 우리가 보는 ‘드라마’라는 영상에서 어떤 물리적 실재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 희생자인 카의 독살 장면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원작에선 ‘어떻게 카에게만 독이 든 잔을 줄 수 있었는가?’하는 의문을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가지만 ‘십일각형 머그잔’이라는 트릭은 나중에야 발견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관객은 해당 샷을 정지해 놓고 유심해 관찰하면 범인이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발견할 수 있다.
영상만의 서사 기법
<오르치의 반지> |
또한, 영상은 특정 물리적 실체를 클로즈업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한 실체에 집중시키고 그 실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K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의 7명의 멤버가 무인도 츠노시마에 있는 십각관에 도착한 첫날 애거사와 오르치가 부엌에서 주고받는 대화에 잠깐 등장하는 오르치의 반지는 원작에선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특별한 의미 없이 지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클로즈업까지 하면서 오르치의 손가락에 낀 반지에 의미를 둔다.
이는 시각적 요소를 사용하는 드라마가 원작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의 세부 사항에 깊이와 의미를 더하는 좋은 예시이다. 원작에선 놓치기 쉬운 장면을 반드시 보게 함으로써 결말에서 느끼게 될 감흥에 윤기를 더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범인이다!
<(왼쪽부터) 밴, 르루, 포, 카> |
‘머그잔’, ‘오르치의 반지’, 이 두 실체를 신혼 첫날밤의 일처럼 머릿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어도 진범을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드라마는 부담 없이 이 두 샷을 삽입한 것이다. 반지 안쪽에 새겨진 이니셜은 단박에 범인이 누구인지와 그 범행 동기까지 밝힐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지만, 드라마는 그것까지는 차마 보여줄 수가 없을 것이다.
사실 십각관에서 다섯 명의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누군가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다섯 건의 살인에 대해 전원 알리바이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모두가 가능했다. 이런 점이 신본격이 중시하는 ‘독자 vs 작가’ 마니아들에겐 다소 아쉬운 점일 수 있지만, 반면에 지적 부담 없이 순수하게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도 된다.
미스터리 너머의 추리
<시마다와 가와미나미> |
앞에서도 말했듯 ‘십각관’의 재미는 ‘범인 맞추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미스터리 마니아를 위한 ’진지한 추론 과정‘은 누구에 의해 추동되는가? 육지에선 (시마다 소지와 그의 유명작 『점성술 살인사건(占星術殺人事件)』에 등장하는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에서 이름을 따온 듯한) ‘시마다 기요시’와 츠노시마 섬에선 엘러리가 ‘동양 vs 서양’이란 비공식 경쟁 구도를 이루며 탐정 역할을 소화해 낸다. 그들은 1년 전 미스터리 연구회에서 일어난 신입생의 불미스러운 사망 사건, 반년 전 츠노시마 섬 청옥부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그리고 엘러리 같은 경우는 여기에 더해 현재 십각관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까지 추리하게 된다.
그들은 추리를 통해 몇 가지 진실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결국엔 훌륭한 미스디렉션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런 미스디렉션과 진실 사이의 복잡한 놀이야말로 단순한 해답 찾기를 넘어서는 ‘십각관’만의 매력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도달한 결론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물적 증거가 거의 없는 처지에서 정황 증거만으로 끌어낸 그들의 추리는 나름 합당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객은 이름도 심상치 않은 두 사람이지만, 추리도 심상치 않은 두 사람과 호흡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마치면서
<엘러리와 애거사> |
‘십각관’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범인을 알고 있어도 꽤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십각관’의 묘미는 누가 진범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작가 vs 독자’의 공정한 추리 대결에 있다기보다는 기발한 트릭, 진지한 추론, 클로즈드 서클 등 이런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추리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완전범죄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하는 난제에 대한 사유이다. 범인도 인정했듯, 그리고 인간은 완전하지 않듯 범죄 계획은 완벽할 수 없다. 특히 7명의 젊은이가 외부와 단절된 무인도에서 7일간 합숙했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불완전한 계획을 완벽한 계획으로 탈바꿈시켰을까? 당신이라면 이 여섯 명을 어떻게 죽이고 어떻게 용의자에서 제외될 것인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것도 ‘십각관’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그리고 다소 미흡하게 묘사되지만, 같이 있던 친구들이 한 사람씩 죽어 나가면서 발생하는 심리적 동요도 볼 만하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단점은 원작이 너무 유명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장단점이 교과서처럼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럼에도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십각관’을 찬양하듯 떠받드는 이유는 본격 미스터리의 부활을 알렸다는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앞에서 열거한 특징을 제외하고도 어떤 가능성도 부정하지 않는 열린 추리, 작가와의 경쟁 부담이 없는 미스터리,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발 들이면 끝장을 볼 때까지 쉴 틈을 주지 않는 긴장감 가득한 전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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