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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6.

[영화 리뷰]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Minority-Report-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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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삶의 진정한 가치

세 명의 예지자가 미래의 살인 사건을 예측하는 능력을 이용해 범죄 예방 수사국을 운영하던 워싱턴 경찰은 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구상 중이고, 연방정부는 워트워 요원을 파견하여 시스템을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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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년 전 아직 잡히지 않은 납치범에게 아들을 잃은 범죄 예방 수사국 팀장 존 앤더튼은 현재의 범죄 예방 시스템만 있었다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며 모든 노력을 미래의 살인자를 추적하는데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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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시스템은 앤더튼이 살인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예지자들이 예견한 피살자의 이름조차 모르던 앤더튼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에 수사국을 뛰쳐나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경찰에 쫓기면서 피살자를 찾아나선 앤더튼은 결국 예지자들이 본 미래대로 피살자에게 자신의 총을 겨누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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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을 쓴 필립 K. 딕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직 원작을 못 봤지만, SF 장르에 철학적 요소를 훌륭하게 배합한 필립 특유의 작품 성향이 영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유 의지의 불확실성이야말로 사람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아닐까?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미래가 예측될 수 있다면, 사람의 삶은 노예, 로봇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브라더 시대가 무서운 것.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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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6.

[영화 리뷰] 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 차가운 열대어(Cold Fis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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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짓을 하든 안 걸리면 장땡이야

“너같이 선한 인간인 척하는 거 밥맛이야.”

이제 기력이 달리는지 (비록 형편없는 문장과 유치한 내용으로 뒤범벅된 최악일지라도) ‘책 리뷰’ 한 편 쓰고 나면 뭔가 대단한 임무라도 완수한 것처럼 맥이 탁 풀린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만, 사정이 그러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매일 무대에 섰던 밤무대 가수가 피로를 못 이겨 제풀에 몇 개의 공연을 끊듯 나 역시 ‘영화 리뷰’를 끊었다. 밤무대 가수처럼 무대에 선만큼 돈이라도 더 벌 수 있는 거였다면, 이까지 쫌이야 별것 아니지만, 적막한 곳에서 쓸쓸하게 놀려니 아무래도 힘에 겹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유지되었던 보잘것없는 필력마저 분산되다 보니 ‘책 리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시원섭섭함과 해방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이후로는 정말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영화만 리뷰를 쓰기로 했다. 「차가운 열대어」는 그런 영화 중 세 번째 영화다. 참고로 이번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달리 원칙을 깨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열대어」가 ‘살인’이라는 원초적이면서도 문명에 의해 억제된 욕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무라타처럼 법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살인은 견실한 이익을 남겨주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안 걸리면 장땡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론 살인은 억제된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마치 타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거나 심판하는 신처럼 착각하게 하는 살인은 그 어떤 신약도 성공하지 못한 불굴의 자신감마저 불어넣어 준다.

그래서 영화는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는 무라타와 그의 대조적인 짝으로 딸과 아내 눈치 보기에 바쁜 샤모토를 등장시킨다. 샤모토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빈번히 잠자리를 거절당하지만 이에 대해 한마디 대꾸도 못 할 뿐만 아니라 탈선하는 딸조차 나무라지 못할 정도로 매사에 주눅이 들어있고 소심한 가장이자 아버지다.

Cold-Fish-2010-movie-scene-01

기계처럼 살아가던 샤모토는 우연히 만난 무라타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에 본의 아니게 꼽사리로 끼게 되고, 역시나 그가 파는 물고기처럼 한마디 벙긋 못하고 무라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태연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태연스럽게 시체를 처리하는 와중에도 철두철미하게 증거를 인멸하는 무라타 앞에서 샤모토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렇게 샤모토는 무라타의 살인 놀이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게 되고, 겨우 며칠 만에 무라타는 매우 좋은 실력을 갖춘 스승임이 밝혀진다.

나라를 통째로 잃은 것처럼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던 샤모토가 무라타의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포악한 늑대로 돌변한 것이다. 복받쳐 오르는 기운을 어찌할 수 없던 샤모토는 그 즉시 집으로 달려가 남편 앞에서만 옷을 벗지 않았던 아내를 강간하려 들고, 아빠의 말을 개똥만큼도 여기지 않던 시원치 않은 딸을 시원하게 짓밟아버린다.

재밌는 것은 샤모토의 분노 어린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의 얼굴에서 그동안 그의 소심함과 무력함의 상징처럼 보였던 안경이 벗겨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클라크 켄트가 슈퍼맨으로 변신하게 전에 안경을 벗는 것과 같은 맥락일까? 안경이 그동안 샤모토의 잠겨진 분노를 잠근 자물쇠라도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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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살인에서만큼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 할 수 있는 샤모토는 무라타 같은 무한한 뻔뻔스러움과 ‘살인 철학’이라는 무시무시한 자기 합리화라는 무기까진 갖추지를 못했다. 샤모토는 보통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약간은 정직하고 약간은 양심적인 사람이었기에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환경에 지배되어 일탈했을망정 자신의 광기를 더는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는 무라타의 뒤를 잇는 훌륭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무라타의 지배를 끝장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된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이 교묘하게 조정된 권위와 상황의 힘으로 평범한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악행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음을 증명했던 것처럼 샤모토의 일탈은 ‘일탈’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나 당신이 샤모토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의 길로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를 범죄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점에서 가까이해서는 아니 될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상황의 힘에 굴복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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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아무리 진보해도 무라타처럼 누군가에게 살인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것도 그냥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순간의 실수로 저지르는 그런 살인이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저지르는 계산적 살인을 한 차원 뛰어넘어 삶에 활력을 더해주는 강장제로서의 살인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무라타 부부의 살인 행각이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실화를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흉악한 짓이라도 역시 안 걸리면 장땡이다. 살인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보편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름의 도덕 철학으로 무장한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일과 중 하나이자 즐거운 취미 생활의 한 방편일 뿐이다.

샤모토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무라타 같은 사람에게 살인은 재밌고 짜릿한 일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것이 불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샤모토처럼?) 살인을 무시무시한 그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무라타와 엮이게 된 것 같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어느새 살인자가 되어 있다. 인정하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많다. 하나 아직 그러하질 못했다. 단지 그런 막다른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의지와 용기와 실천의 문제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게 하는 상황의 힘은 운명의 얄궂은 장난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를 덮쳐오지만 두 손에 피를 묻히기 전에는 그것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한편으론 샤모토는 가족들에게 이유 없이 무시당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일본 아버지들의 씁쓸한 자화상이면서도, 파렴치한 문명과 되먹지도 않은 교육으로 자꾸 무언가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축 처진 뒷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움과 그것을 안다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서글픔이 소리소문없이 가슴을 저미어온다.

끝으로 무라타 부부가 사람의 몸통을 토막 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물고기들이 먹기 편하게 살코기를 잘게 써는 작업 모습은 돼지를 잡고 부위별로 썰어내어 진열대에 올려놓으면서 손님들이 그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상상해 절로 흥분에 겨워하는, 그렇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성실한 푸줏간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라타 부부가 시체를 해체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만한 장면임에도 웬일인지 거부감은 없다. 마치 ‘극한 직업’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존경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죽으면 결국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깃덩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얼마나 많은 탐욕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차가운 열대어(冷たい熱帯魚, 2010)」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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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5.

[영화 리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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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도 보지도 못한 1인 7역의 맹활약

"너희들이 지금껏 다른 애들한테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빼앗았는지 알아? 모두가 테렌스 셋맨처럼 이 세상은 곧 멸망하고 말 거야."

가까운 미래, 인류와 문명의 번영이 폭발적인 인구 과잉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자 인류는 ‘1가구 1자녀’라는 ‘아동제한법’을 통과시켜 무지막지한 인구 증가에 무지막지한 제동을 건다. 법을 위반하여 초과 생산된 아이는 먼 훗날, 지금보다 덜 붐비는 시기까지 냉동 창고에 보관된 생선처럼 강제로 냉동수면 처리된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자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량을 남발한 인류는 그 대가로 급격한 기형아 출산 시대로 접어든다. 사랑도 매우 조심스럽게 나누어야 하고 먹거리조차 안전하지 못한 불운의 시대에 최고의 불행은 따로 있으니 바로 재앙과도 같은 쌍둥이 출산이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그러던 어느 날 테렌스 셋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딸이 출산 도중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서슬 퍼런 ‘아동제한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다산을 딸이 어기고 만 것인데, 그것도 두세 명이 아니라 무려 일곱 명의 쌍둥이를 낳은 것!

하루아침에 6명의 불법 자녀를 둔 범법자가 된 테렌스 셋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이 낳은 7명의 쌍둥이를 모두 감당하기로 하는 독한 마음을 먹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먼데이, 튜즈데이, 웬즈데이, 써스데이, 프라이데이, 새터데이, 선데이’라는 가족 내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을 정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에서는 ‘카렌 셋맨’이라는 단 한 명의 인물로만 살아갈 것을 명한다. ‘먼데이’가 ‘월요일’날 외출해 보고 들은 모든 정보를 다른 자매들과 공유해야 하고, 만약 한 명이 다쳐 손가락을 잃는다면 나머지 6명 모두 똑같이 손가락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엄격한 할아버지의 훈육 덕분에 무사히 30년이 지난 어느 날, ‘먼데이’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What Happened to Monday 2017 screen shot

인구 과잉으로 인한 식량 문제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의 부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다. 영화도 그런 점을 반영해서 그런지 화면에 시종일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대홍수가 난 것처럼 철철 흘러넘치는 인구를 생각하면 어쩔 땐 사람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영화처럼 중국조차 성공하지 못한 ‘산아제한’으로 인구 문제를 다스리기에는 사람의 번식 본능이 미련스럽게도 강렬하다. 내 생각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면 참혹하고 잔인하고 슬픈 시련의 시기가 되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쟁과 기아가 결국 인구 증가에 제동을 걸 걸면서 인류는 급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자처럼 비명을 아주 긴 시간 내지를 것이다.

사실 영화처럼 끔찍한 사기 행각이 아니라면, 냉동인간이 되어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후로 현재의 삶을 연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병들고 늙는 것을 극복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내가 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쓴 이유는 인구 과잉이라는 지긋지긋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영화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 1인 4역이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마이크 마이어스(Michael John Myers)를 뛰어넘는 누미 라파스(Noomi Rapace)의 1인 7역을 한 번쯤은 언급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보면서 설마 했는데, 영화 정보를 보니 1인 7역이 맞았다. 출연료도 7인분으로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미 라파스의 아름답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뇌리에 각인시키는 조각상 같은 인상적인 얼굴이 내뿜는 이상야릇한 매력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의 7배는 넘어선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운이 다한다면 영화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해 수억, 혹은 그 이상의 목숨을 희생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택한다면, 우리의 선택이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아주 먼 훗날, 살아남은 인류는 이 두 선택을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What Happened to Monday?,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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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20.

[영화 리뷰]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Infernal Affairs II 200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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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경찰 여러분! 놈이 날 죽이면 맘대로 쏘시오. 뿌린 만큼 거두게 될 것이다” - 한침

「무간도」 1편에 이어 2편도 다시 봤다.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꽉 짜인 이야기로 관객의 숨통을 틀어잡고, 명불허전 명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로 관객의 혼마저 빼놓는, 마치 죄업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지옥처럼 완전무결한 1편을 봤으니, 감성과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2편을 보는 것이 도리다. ‘도리도리 짝짜꿍’의 즐거운 도리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그 진중한 ‘도리’ 말이다.

「무간도」 2편은 1편보다 약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범죄조직의 경찰 쪽 첩자로서의 임무를 시작하는 그 전후를 시작으로 한침이 홍콩 범죄 조직의 거두로 부상하고 진영인이 그 밑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고로 1편의 경찰학교 장면에서 잠깐 등장했던 두 배우 진관희, 여문락이 유덕화와 양조위를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 진영인이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이유도 밝혀진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1

영화는 황 국장과 한침이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한침이 작은 보스 정도로 대우받는 시절이었고, 경찰은 ‘삼합회’ 보스 예곤을 주요 목표로 삼았기에 두 사람은 거창하게 우정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는, 그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만남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예곤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암살당한다. 조직은 순신 간에 혼란에 휩싸이고 이 기회를 틈타 회동을 한 한침을 제외한 네 명의 작은 두목들은 예가(倪家)에게 더는 세금을 내지 않기로 하면서 배신을 예고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보스 자리에 오른 예영호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곧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하나로 네 명의 작은 보스들을 무참히 사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부터 예곤에게 충성했던 한침마저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2

한편, 한침의 부하인 유건명은 한침이 제공하는 자잘한 정보로 꾸준히 성과를 올리며 경찰로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 유건명의 동기생 진영인은 예영호의 이복동생이라는 이유로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다. 하지만, 황 국장은 전교 1등의 수재를 이대로 썩힐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삼합회의 새로운 보스 예영호의 동생이다. 그가 만약 예영호 밑으로 들어가 경찰 첩자로 활약해 준다면 예가를 일망타진한다는 학수고대도 시간문제다. 하지만, 진영호가 이 어려운 제안을 받아줄지가 문제였다. 뜻밖에도 진영호는 선뜻 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예영호 밑에서 차근차근 보스 수업을 받으면서 한편으론 예영호를 무너트릴 정보를 모은다.

Infernal Affairs II 2003 scene 03

영화 속 대사에서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온다. 사실 진짜 뿌린 만큼 거둘 것 같은 농사일도 일조량, 강수량 등 기후 변화와 병충해 발생 정도에 따라 뿌린 만큼 거둘 때도 있고, 그보다 더 거둘 때도 있고, 때론 본전도 못 뽑을 때도 있다. 세상일이 영화 속 대사처럼 뿌린 만큼 거둔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공평할 것이다. 뿌린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뿌린 것을 싹 쓸어 가는 짜증 나는 사람들은 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많은 사람이 매우 드문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하니, 이를 예외로 인정한다면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최소한 영화에서만큼은 나름 의미가 있다. 영화에서 암살당한 보스가 자주 했다는 이 말은 딱 두 사람만이 들먹이고 있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한침과 예영호다. 두 사람 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는 웃지 못할 공통점이 있는데, 그 격언을 자주 들먹인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죽음으로 격언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니 결국 영화는 그렇게 비비 꼬아가며 현란하게 전개한 이야기를 통해 ‘권선징악’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뿐만 아니라 범죄 조직을 와해시키고픈 의욕에 도를 넘어선 짓까지 자행한 황 국장, 잠입경찰로서 조직범죄에 깊숙이 가담한 진영호도 죽는다. 주요 등장인물이 뿌린 만큼 거둔 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들 자신의 출세와 입지를 굳히고자 보스와 동료를 배신한 유건명 역시 죽어야 한다. 아직 3편은 못 봤지만 말이다. 뭐, 안 죽으면 그만이고. 아무튼, 죄업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물론 영화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오늘따라 머릿속이 왜 이리 둔탁한지, 영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단박에 증명하듯 나의 횡성수설로 어질러진 리뷰가 되고 말았다. 1편보다는 아주아주 조금 부족하지만, 내 졸렬한 문장으로 선뜻 표현하기 어려운 감흥과 감개가 확실히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200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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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18.

[영화 리뷰] 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Infernal Affairs 2002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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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운명, 과연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옛말에.. 영웅이 있기까지는 희생이 따른다 했다. 하지만, 난 달라. 이 바닥 규칙은 생과 사를 자신이 결정한다!" - 한침

아마 「무간도」1편은 오늘이 두 번째 감상일 것이다. 첫 번째 감상은 불법복제판 비디오의 상징이었던 ‘디빅’이 한창 인터넷에 봇물처럼 넘치던 2000년대 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때 감상했던 시디 세 장짜리 릴이 DVD에 구워진 채 이미 자신들은 퇴물이 되었다는 세월의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상자 속에 잠들어 있다. 그때는 언제가 다시 꺼내볼 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변변치 않은 수집 욕구가 더해져 괜찮은 작품이라 판단되는 영화는 CD나 DVD에 구워 보관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DVD도 꽤 괜찮은 화질이라고 치부되었는데, 시대가 변화고 기술이 발전하니 아무도 찾지 않는 늙은 기생처럼 퇴물이 되어버렸다. 퇴물이 되어버리다 못해 이제는 계륵 같은 곤란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영화를 굽는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요즘은 바이두 클라우드의 [오프라인 다운로드] 기능을 이용하면 웬만한 영화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이며 두 번, 세 번 감상할 가치가 있는 작품들은 잊을만하면 알아서 누군가가 재공유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다. 그렇게 다시 눈에 띈 고전 중 하나도 「무간도」였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1

사실 「무간도」를 처음 감상했을 때의 느낌을 애써 떠올려보면 한마디로 ‘무지’와 ‘이해불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성이 자자한 두 명배우 양조위와 유덕화가 등장하니 당연히 멋있는 영화였다고 인정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영화의 이야기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의 깊은 의식 속에 잠재된 배경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하니 영화의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재밌게 봤다. 아니 주변 평가에 휩쓸린 나머지 재밌게 봐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지 연유도 모르면서, 남들 장단에 춤을 추는 격이니 줏대 없는 바보가 따로 없다. 굳이 발병하자면, 그때는 하루에 영화를 두세 편씩 밥 멋 듯 감상했던 시절이라 영화 한 편 한 편에 깊이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위대한 명작을 오늘날 다시 봤고, (완벽하게 영화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처음 봤을 때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2

‘홍콩 누아르’는 홍콩 경찰의 부패가 극에 달했던 60, 70년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의 유착 관계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이 장르에는 범죄 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부패한 경찰이 반드시 등장해야 제맛이다. 그렇다면 조직 입장에서 안심하고 부릴 수 있는 경찰은 어떤 경찰일까?

일반적인 부패 경찰은 조직에서 달마다 일정한 액수의 돈을 받고 조직의 뒤를 봐주는 탐욕스러운 경찰인데, 이들이 조직의 뒷배를 봐주는 목적은 충성심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기에 그만큼 틀어지기도 쉽다. 상납금의 액수를 두고 조직과 마찰을 빚으며 사단을 일으키기 일쑤다. 잠시 이용할 수는 있지만, 큰일을 믿고 맡기기에는 터무니없다.

좀 더 지능적이고 치밀한 수법으로는 조직원을 아예 경찰로 심어놓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무간도」에 등장하는 수법인데, 경찰이 조직원으로 침투하는 ‘잠입수사’의 그 반대 격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조직원들은 다른 지망생들과 똑같이 경찰학교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간다. 이런 식으로 여러 명 경찰학교에 조직원을 보내다 보면 그 중 하나는 간부가 되어 조직의 뒷배를 든든히 봐줄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침(증지위)의 부하 유건명(유덕화)다. 태생이 (경찰로 둔갑한) 조직원이니 부패 경찰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정쩡하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돈만 밝히는 부패 경찰보다 부리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나 다름없는 경찰이다.

다른 방법으로 간부 경찰이 직접 조직을 만들어 운영할 수가 있다. 현재처럼 엄격하게 법질서가 잡힌 홍콩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60년대라면 가능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재밌게도 이 영화에서 그 간부 경찰 역도 유덕화다).

영화는 유건명에 대립하는 인물로 진영인(양조위)을 내세운다. 유건명의 경찰학교 동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영인은 경찰학교를 퇴학당한 다음 무려 10여 년 동안이나 조직원으로서 잠입활동을 벌인다. 그가 경찰임을 아는 것은 두 사람뿐인데, 그마저도 하나둘씩 죽어 사라진다. 고립무원에 처한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으로 선택받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직에 잠입한 비밀경찰을 찾아내라는 두목 한침의 지시를 받은 유건명이다. 반대로 진영인 역시 경찰 조직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찾는 중이었으니,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과 대립이야말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Infernal Affairs 2002 scene 03

자신의 경찰 신분이 영원히 말소되는 절망적 상황에 부닥친 진영인이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무이한 존재를 만났지만, 그 사람이 바로 자신이 찾던 배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진영인이 받은 당혹감과 충격, 실망감이 스크린을 통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관객은 조직과의 관계를 끊고 ‘좋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유건명의 의사를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그가 두목 한침을 죽인 것은 배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에 대비한 공격적 방어는 아닐까? 그는 영화 ‘추룡’의 주인공 록(유덕화)처럼 자신이 직접 범죄 조직을 운영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가 진영인의 신원을 회복시켜준 것은 승리자가 간간이 베푸는 자기만족적인 아량은 아닐까? 유건명의 (영악한 위장처럼 보이기도 하는) 개과천선을 두고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은 U턴 같은 정체성의 급격한 변화는 실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유건명은 음지를 털어내고 양지로 올라서고자 동료 두 명을 살해한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면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대략 15년 만에 다시 본 영화이고 이 말은 그만큼 오래된 영화라는 뜻이지만, 역시 명작은 다르다. 볼 때마다 감흥이 다르고 거듭 볼수록 재미도 거듭나는 것이 명작만이 품을 수 있는 오묘한 이치 아니었던가? 이 때문에 다시 2편이 보고 싶어진다. 2편 역시 10여 년 전과는 다른 어떤 감개를 어떤 이해를 안겨줄지 사뭇 기대될 뿐만 아니라 선 보는 노총각처럼 내 팍팍한 심장마저 떨리게 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무간도(Infernal Affairs 2002)」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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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5.

[영화 리뷰] 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 추룡(Chasing the Dragon, 2017)

Chasing the Dragon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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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영국인들의 적이 되려는 거야? 우린 놈들을 못 이겨!” - 록

“누가 그래요? 난 홍콩의 마약 거래를 장악하고 있어요. 홍콩 경찰들이 내 돈을 먹고산다고요! 내 말 한마디면 경찰청도 불 지를 수 있어요!” - 오세호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오세호(견자단)의 목소리를 빌려 ‘1974년 이전의 홍콩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문장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HongKong: Independent Commission)’였다. 염정공서는 1974년 홍콩 경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 문제가 비대해지자 정부가 내린 특별 조치로 탄생한 부패 척결 기구다.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암투와 그들의 피 비린내 진동하는 비정한 세계를 다룬 ‘홍콩 느와르’도 염정공서 탄생 이전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그 당시 홍콩 경찰은 썩을 대로 썩었다는 말이다. 그러하니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사다. 참고로 작가 찬호께이(陳浩基)는 2013년의 홍콩 경찰도 1967년의 홍콩 경찰처럼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염려를 자신의 추리소설 (내가 ‘염정공서’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한) 『13.67』을 통해 나타냈다. 이 소설에는 홍콩 경찰을 은유하는 전설적인 형사 관전둬를 통해 홍콩 경찰의 암울한 현재를 떨쳐버리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홍콩 경찰의 어두운 역사와 함께 추리소설의 묘미를 온전히 갖춘 수작이니 이 자리를 빌려 추천한다.

아무튼, 「추룡」은 적당히 부패한 경찰 락(유덕화)과 새로운 마약 범죄 조직의 두목으로 떠오를 오세호 사이의 야릇한 우정의 시작으로 펼쳐 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1

경무관 자리를 놓고 고참 안과 경쟁 중인 록은 안의 생일 파티에서 평소 홍콩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헌터 치안감이 행패를 부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압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안에게 뺨을 얻어맞는 치욕이었다. 헌터가 무슨 짓을 해도 그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홍콩 경찰은 손을 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 냉정함을 되찾은 록은 파티장을 빠져나온다.

한편, 본토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오세호 일당은 몇 년째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울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들은 ‘광대’와 ‘회색곰’이라는 두 조직 간의 싸움에 일당을 받고 인원수를 채워주는 부하로 고용된다. 그런데 평소처럼 말싸움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이날은 누군가의 도발로 진짜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마치 불구경하듯 관망하던 경찰 간부들은 싸움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부하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다. 곧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싸움판을 덮쳐오고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이 무자비하게 조직원들을 내리찍는 가운데, 오세호 일당은 용케 난장판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재미난 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사냥 나온 헌터에게 뒷덜미가 잡힌다. 영국인이라고 순순히 붙잡힐 오세호가 아니었으니, 오세호는 날렵한 무술 실력을 발휘하여 헌터를 두들겨팬다. 록이 상황을 제압하고 나서야 구겨질 대로 구겨진 헌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2

록은 자기를 대신해 헌터를 두들겨 팬 오세호가 고맙기도 하고 그의 무술 실력이 대견하기도 해서 자신이 구상하는 새로운 계획에 오세호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록은 현재 홍콩의 어수선한 범죄 조직을 정리하고 자신이 통제하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거침없는 오세호의 합세로 일은 급물살을 타듯 신속하게 진행된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홍콩의 떠오르는 실세가 된다. 홍콩법이 미치지 않는 무법천지의 ‘구룡’을 독차지한 오세호는 기세등등한 나머지 록이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경찰 조직에 너무 많은 뇌물을 주는가 하면, 경찰서에 정보원을 심어놓기도 해 록의 의심을 산다.

한편,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낀 록은 마약 공급자를 두 배로 늘려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마약을 공급받을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고자 오세호를 태국으로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 쳐 놓은 함정에 빠진 오세호는 목숨은 겨우 건지지만, 총격전으로 친구 한 명을 잃는 비통함을 맛본다. 오세호는 이번 일의 배후에 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는데….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3

「추룡」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두목 사이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다룬 영화지만, 보통의 범죄 영화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는 복수극 같은 통쾌한 맛이나 우정 어린 의리가 자아내는 진한 감동 같은 것은 없다. 암울했던 시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그런 인위적이고 극적인 요소는 일부러 절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미친 말처럼 앞으로만 내달리는 오세호와 그런 오세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사태를 제어하려는 록의 냉철함이 시종일관 관객의 뇌리를 자극한다. 언제 어디 어느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의 표본 격인 록은 ‘엄정공서’의 칼날이 미치기 전에 도피에 성공하고, 화를 못 참고 날뛰는 망나니의 예정된 결말처럼 오세호는 그 대가를 치르면서 영화 「추룡」은 막을 내린다. 현실처럼 머리 좋은 악당은 끝내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는 음울하면서도 개운하지 못한 뒷맛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에 상투적으로 따라붙는 비정함과는 또 다른 감상평을 제공해준다. 참고로 이 영화는 「To Be Number One (跛豪, 1991)」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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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23.

[영화 리뷰] 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 마약전쟁(Drug War, 2013)

Drug War 201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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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상극이 빚어내는 한 편의 잔혹사

"제발 살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형님…. 형님. 죽고 싶지 않아요. 제가 필요하잖아요. 아직 쓸모가 있을 거예요." - 차이톈밍

수많은 범죄영화를 보아왔지만, 「마약전쟁(毒戰 Drug War, 2013)」처럼 살육과 피로 얼룩진 잔혹하고 처참한 결말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영화는 참말로 오랜만인 것 같다. 「마약전쟁」은 마약 범죄 세계의 비정함을 숨김없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는 일말의 자비심도,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눈에 익은 등장인물들은 장 반장을 포함해 모조리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아 버린다. 사선이 교차하는 총격전처럼 죽음과 운명의 가혹함이 교차하는 범죄 현장에서 그 누구도 최후의 안식을 빗겨갈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가혹하게도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사형만은 모면하고자 경찰에 자진 협력했던 쥐새끼 같은 한 범죄자에게 농락당한 결과라니, 영화는 무디지만, 살갗 정도는 뚫을 정도로 날이 선 허무함의 삼지창으로 관객의 가슴 한복판을 내리꽂는 격이 아닌가! RottenTomatoes의 높은 점수만 봐도 이 영화가 보는 이마다 각자 다른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냉혹한 허무함이었다면, 당신은 무엇인가?

Drug War 2013 scene 01

「마약전쟁」은 마약에 취한 채 자동차를 운전하다 상점으로 돌진하고 마는 차이톈밍이라는 마약 딜러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사고 직전에 자신이 운영하던 마약 제조 공장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폭발하는 바람에 아내와 처남들을 잃었다. 너무 놀란 그는 가족들의 시신을 챙길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차를 타고 도망쳐 나오다 변을 당한 것이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간 차이톈밍은 운이 없게도 진하이 마약단속반 반장 장레이와 딱 마주친다. 장 반장은 좀 전에 인체에 마약을 숨겨 밀반입하던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그 용의자들의 신체를 검사하고자 병원에 있었던 것인데, 우연히 병원 침대에서 자고 있던 차이톈밍의 용태를 보자마자 마약중독자임을 간파해낸다. 깨어나자마자 경찰의 감시가 붙어 있는 걸 눈치챈 차이톈밍은 민첩하게 병실을 빠져나가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곧 영안실에서 붙잡히고 만다.

Drug War 2013 scene 02

차이톈밍의 신상을 파악한 경찰은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는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률로 압박하고, 곧바로 꼬리를 내린 차이톈밍은 형량을 줄이는 조건으로 자진해서 경찰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경찰은 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약 밀매 조직의 거물 리전뱌오 일당을 잡아들일 작전을 추진한다. 차이톈밍은 자신이 리전뱌오의 조카 리슈창과 진하이 항구에서 대규모 선박을 보유한 운송업자인 하하를 막 연결해줄 참이었다고 진술한다. 이미 하하에게 전달할 마약이 트럭에 한가득 실린 채 진하이로 향하고 있었다. 장 반장은 리슈창과 하하가 지금까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에서 착안한, 즉 자신이 ‘리슈창’과 ‘하하’로 위장하여 두 사람을 속이면서 차근차근 리전뱌오에 접근하기로 하는 한편, 차이톈밍이 알려준 벙어리 형제들이 운영하는 또 다른 마약 제조 공장을 급습할 계획도 세운다.

Drug War 2013 scene 03

숨 가쁘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범죄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경찰들의 일사불란함을 대견하게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고, 한편으로는 배우들의 극진한 연기에 감탄할 틈도 주지 않고 궁극스럽게 참혹한 결말로 밀어붙이는 「마약전쟁」이 얄궂기만 하다. 어떻게든 마약 조직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싶은 남자의 의지와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남자의 의지가 엇갈리며 빚어내는 이 한 편의 잔혹사는 마치 운명의 혹박함을 대변해주는 듯해 소름 돋는다. 그럼에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단숨에 정신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마약 같은 흡입력을 발휘하는 대단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50g 이상의 필로폰 제조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중국의 법은 역시 무시무시하다. 법이 무시무시하니 사형 방법도 옛날처럼 총살로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매우 현대적이게도 약물주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가 무거우면 ‘즉시’ 처형할 수 있다. 실제로 마약사범을 운동장에서 공개심판하고 선고 뒤 즉시 장소를 옮겨 처형된 일화가 있다고 한다. 난 공포정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 강도나 뇌물, 청탁 등의 공무원 부패 관련 범죄는 계획적인 범죄(즉,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범죄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범죄)는 즉결 처형되었으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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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7.

[영화 리뷰] 스타들의 옛 풋풋함과 함량 미달 연기를 보는 즐거움 ~ 특경도룡(Tiger Cage, 1988)

Tiger Cage 1988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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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의 옛 풋풋함과 함량 미달 연기를 보는 즐거움

“잘 들어!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랑 황 반장” - 신유

“그리고 나!” - 테리

“그래, 명심해! 개인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 알았어?” - 신유

어느새 불혹을 뛰어넘고 지천명을 지나 갑 언저리를 배회하는 스타들의 풋풋했던 옛 홍콩 배우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 「특경도룡(Tiger Cage, 1988)」. 그 중 견자단, 임달화는 여전히 중견배우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고, 최근에 출연한 영화가 없는 장학우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듯하다. 한때 주성치와 명콤비를 이루며 많은 팬에게 웃음바다를 안겨줬던 오맹달이 진지한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인 것 같다. 얼마 전에 감상한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에서 관음증에 도취한 정신병자로서 미친 듯한 연기를 펼쳤던 임달화의 조각상 같은 젊은 시절 모습은 왠지 장국영을 닮은 것 같아 서글픔을 자아내기도 한다. 장학우와 견자단의 홍콩 배우 시절 모습은 한 사람은 말썽꾸러기, 한 사람은 불량 청소년 같다. 그 밖에도 그때 그 시절 홍콩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악역으로 등장하여 뭇 관객들의 악의 없는 욕을 한몸에 받았던 몇몇 배우들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특경도룡」의 이야기는 배우들에서 그윽하게 퍼져나오는 추억의 달콤함과는 달리 당시 유행했던 홍콩 누아르처럼 무자비하기 그지없다.

영화 「특경도룡」은 홍콩 경찰의 특수 마약반원들이 마약 조직을 급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황 반장 휘하의 혈기왕성한 젊은 형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작전에서 경찰은 마약 조직을 타진하는 데는 성과를 거두지만 쌍권총을 난사하며 끈질기게 도망친 두목 제두홍은 그만 놓치고 만다. 무사히 아지트로 돌아온 제두홍은 복수를 다짐하고, 한바탕 몸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마약반원들은 형사 커플인 서형과 셀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조촐한 파티를 연다. 파티를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던 때, 장난꾸러기 기질이 발동한 신유는 서형의 자동차에 최루가스를 몰래 장착한다. 셀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차에 올라탄 서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동차 키를 돌려 시동을 건다. 엔진이 점화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안은 자욱한 최루가스로 가득 차고 당황한 서형은 재빨리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때 어디선가 '홍반장'처럼 갑자기 나타난 제두홍이 서형 앞에 타고 온 차를 세우고 총을 난사한다. 최루가스 때문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서형은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한다.

Tiger Cage 1988 scene 01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에 눈이 먼 서형의 동료들은 경찰이란 신분도 잊은 채 오로지 복수하고픈 일념으로 경찰로서는 해서는 안 될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먹이를 쫓는 늑대처럼 제두홍을 찾아 나선다. 국장의 심한 질책 속에도 수사는 결실을 보아 배를 타고 홍콩을 떠나려는 제두홍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제두홍이 자신을 끌고 가는 타숙에게 알쏭달쏭한 말을 넌지시 건네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타숙은 제두홍에게 총을 빼앗긴 것 같은 사고를 꾸미고, 이를 위험한 상황으로 인지한 동료는 제두홍을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Tiger Cage 1988 scene 02

한편, 신유는 우연히 타숙이 마약 조직과 밀거래를 하는 현장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경찰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타숙에게 배신감을 느낀 신유는 이 사실을 곧 황 반장에게 알린다. 신유가 황 반장에게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하려고 가던 중 여자친구 에이미 때문에 일이 잠시 지체되면서 본의 아니게 타숙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테리가 비디오를 보게 된다. 자신과 타숙을 한편으로 의심해 일부러 이 사실을 숨겼다고 오해한 테리가 신유를 호되게 비난한다. 두 사람은 위험천만하게 도로 한복판에서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지만, 아무리 아버지 같은 타숙이라도 부패 경찰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한다. 이들이 모르는 다른 상황에서는 죽은 서형의 유품을 정리하던 황 반장과 셀리가 거액이 든 통장과 신분 위장용 여권들을 발견하면서 서형이 마약 조직과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Tiger Cage 1988 scene 03

초장부터 권총을 난사하는 처참한 액션장면이 관객을 자극하지만, 그 당시 홍콩 영화가 그러하듯, 악당의 권총 탄알은 모드(Mod)된 게임처럼 무한으로 형사들을 쏘아붙이고, 형사의 권총은 하필 중요한 순간에서 곤란하게 총알이 떨어지는, 요즘 영화처럼 사실적인 맛은 가히 떨어지는 액션 범죄 영화다. 내용도 그야말로 무법천지를 보는 것 같아 잔혹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려고 애써 노력한 임달화와 (내겐) 처음으로 코믹 연기가 아닌 다른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오맹달, 견자단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대일 무술 장면, 무법천지의 비정한 세계다운 화끈한 결말은 나름 괜찮았다. 이쯤 결말을 짓자면, 「특경도룡」은 그 당시 흔하고 흔했던 고만고만한 홍콩 액션 영화 중 하나지만, 주연배우들이 여전히 스타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의 풋풋한 옛 모습과 지금의 원숙한 연기와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비교되는 함량 미달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특경도룡(Tiger Cage, 1988)」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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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0.

[영화 리뷰] 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

The Tenants Downstairs 2016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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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표현한

“그래서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 잉루

“왜 머무는 거죠?” - 주인 남자

“다른 사람과 다른 걸 두려워하니까요. 그래서 그 끝에 머물면서 꼼짝도 못 하는 거에요” - 잉루

와우, 간만에 소름끼치는 연기,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연기에 걸맞은 소름끼치는 반전을 소름끼치는 영상에 진득하게 담은 괴물 같은 영화를 만났다.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을 보노라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그 유명한 경구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가 절로 떠오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가 없지만, 「아래층 사람들」는 광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섬뜩하지만 엄연한 현실을 소름끼치는 연기, 빈틈없는 이야기, 그리고 음침한 영상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영화에는 사디즘, 카니발리즘, 동성연애, 비역질, 고문, 관음증, 씨오메이니어(Theomania), 강간, 토막 살인 등 사드 후작도 울고 갈 정도의 변태적이고 광기적인 요소가 고장 난 공중화장실 변기에 고여 있는 오물처럼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고로 잠시 광기의 역겹게 매혹적인 세계를 탐험하기에 앞서 알아서 판단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바란다. 참고로 뭇 남자들의 무른 방망이가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선정적인 장면도 다분하다.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심문실에서 한 남자가 형사 한 명을 앞에 두고 변호사 없이 자신이 겪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먼 친척으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은 남자는 세입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한다. 첫 입주자는 수상쩍은 눈빛으로 어린 딸을 바라보는 막 이혼한 왕 씨와 그의 어린 딸이었다. 두 번째 입주자는 게이 연인이다. 그다음으로 초능력에 빠져 있는 괴상한 대학생,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의 장점을 이용할 줄 아는 평범한 직장인 진소저,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즐겨 마시는 막 이혼한 체육선생 장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간 여행가방으로 가득 찬 방에서 홀로 존재감이 없이 사는 여자 잉루가 입주한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1

기가 막히게도 세입자들의 방에는 몰래카메라가 심어져 있었고, 당연히 주인 남자가 거주하는 방에는 세입자들의 모든 방을 훔쳐볼 수 있는 모니터가 일사불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임대료를 받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세입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훔쳐보면서 그들의 일상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자료가 쌓이자 남자는 세입자들의 일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생활기록부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채 새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 세입자는 존재감이 없는 여자 잉루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자는 잉루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여벌 열쇠를 사용해 그녀의 방을 수색한다. 그녀의 방에는 여전히 빨간 여행가방들로 가득했다. 한 남자가 들기 버거운 가방 하나를 막 열어 살펴보려는 찰나에 예기치 않게 잉루가 한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급해진 주인 남자는 침대 밑으로 숨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녀는 남자 앞에서 훌러덩 옷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된 다음 남자를 유혹하듯 욕조로 데리고 간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2

두 사람이 욕조로 간 틈을 타 재빨리 자기 방으로 돌아온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두 사람이 욕조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지 훔쳐본다. 놀랍게도 그가 본 것은 젊은 남녀가 욕조에서 일반적으로 행할 것이라는 상상하는 흐뭇한 것이 아니라 잔혹한 고문의 현장이었다. 남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잉루는 뭔가 고상한 취미라도 즐기듯 침착하고 차분하게 남자를 고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 남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 남자의 목은 거북이처럼 늘어난 채 화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구름 낀 어느 날, 주인 남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잉루와 가벼운 티타임을 갖는다. 소녀처럼 순수하고 조각상처럼 섬세한 미모를 소유한 그녀는 젊음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끝자락’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끝자락이란 아무런 파랑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아무 가능성도 없는 삶을 사는 거라고 설명한 그녀는 자신은 그것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말에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주인 남자는 ‘끝자락’의 경계를 넘어서게 할 대담한 계획을 세워 세입자들의 운명에 개입한다. 마치 자신이 운명의 여신이라도 된듯 말이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3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Giddens Ko(구바도)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것 같다. 영화가 매우 인상적인지라, 원작도 꼭 읽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광기를 다룬 영화나 책을 읽다 보면, 그리고 덤으로 사드 후작과 관련된 책도 읽다 보면 광인에 대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소위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즉,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직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타인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친 사람’은 ‘정상’인 사람들이 빨간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빨간색인 것은 그것이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 다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빨간색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주 어딘가에는 그것을 파란색이라 명명하는 존재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아래층 사람들」은 이런 극명할 것 같은 차이를 께름칙한 영상으로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설득한다. 당연히 보는 사람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은 우리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불쾌함 없이 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회가 내뱉듯 진단해 버리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인가? 알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정상’인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미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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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5.

[영화 리뷰] 화려한 '도둑질’과 '출연진', 그러나 ~ 협도연맹(俠盜聯盟, The Adventurers, 2017)

The.Adventurers 2017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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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둑질’과 '출연진', 그러나

"내가 그를 잡으려는 이유를 알아요? 그는 최악의 도둑이지만 인내심과 기품이 있고 이번에 그를 잡지 못하면 영원히 잡지 못할 것 같거든요." - 피에르 형사

‘운명의 날개’, ‘생명선’과 함께 ‘가이아’로 알려진 진귀한 목걸이 세트 중 하나인 ‘숲의 눈’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한다. 범인은 유명한 도둑 ‘장단’이었다. 장단은 ‘숲의 눈’을 훔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망치는 도중 누군가의 배신으로 ‘숲의 눈’도 빼앗기고 자신은 감옥에서 5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된다.

The.Adventurers 2017 scene 01

장단은 출옥하자마자 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천재 해커 ‘진소보’와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도둑이자 새로운 멤버인 ‘엽홍’과 함께 경매에 출품된 ‘운명의 날개’를 멋지게 훔쳐내는 데 성공한다. 장단은 이번 일을 마지막 건수로 여길 생각이었지만,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자 조직의 두목인 ‘콩’은 ‘생명선’마저 훔쳐 ‘가이아’ 세트를 완성하길 원했다. 은퇴하기 전에 크게 한 건 할 기회로 여긴 장단은 유서 깊은 성 깊숙한 곳에 최신 보안 시설의 삼엄한 감시 아래 보관 중인 ‘생명선’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The.Adventurers 2017 scene 02

한편, 오래전부터 장단을 추적해오던 프랑스 형사 ‘피에르’는 혼자서는 장단을 감당할 수 없자 오래전에 장단과 헤어진 장단의 애인 ‘앰버’를 찾아 도움을 구한다. 장단은 앰버가 가진 정보를 이용해 ‘숲의 눈’을 훔쳐낼 수 있었고, 이런 일로 앰버는 장단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앰버는 이번 일이 끝나면 장단을 영원히 가둬달라는 조건으로 피에르 형사와 함께 장단을 추적한다.

The.Adventurers 2017 scene 03

「협도연맹(俠盜聯盟, 2017) 」에서 형사 피에르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장단을 마중하며 몸 관리를 잘한 것 같다는 인사말을 건넨다. 그의 말대로 유덕화의 몸은 젊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나처럼 살이 안 찌는 체질인지, 아니면 철저한 몸 관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늘씬하다. 물론 그도 얼굴에 스며든 세월의 눅눅한 흔적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사실 유덕화 영화는 적극적으로 찾아보지는 않더라도 발견하는 족족 찾아보는 소심한 팬인데, 이 영화 「협도연맹」을 보면서 그도 우리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서글프고 씁쓸한 느낌을 유독 많이 받았다. 영화 「천장지구」에서 오천련을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야생마처럼 질주하는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역력한데 말이다. 세월의 무상함이란……. 무엇을 하든지 머릿속에서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는가보다. 한편, 서기의 악동적인 매력은 여전하다.

원래는 「협도연맹」에 「몽키킹 2」의 삼장법사 역으로 출연한 풍소봉(馮紹峰)과 장천애(张天爱)라는 배우가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풍소봉은 다리 부상으로, 정천애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출연할 수가 없었고, 대신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유덕화와 서기가 차지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프랑스 칸에서 체코의 프라하,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로 마무리되는 이국적 로케이션이 펼쳐내는 아름답고 고아한 배경이 볼만하지만, 출연진과 ‘도둑질’의 화려함에 비하면 내용은 좀 평범한 편이다. 마지막에 진짜 배신자를 걸러내는 억지스러운 반전 같지 않은 반전은 ‘옥에 티’라고 생각될 정도로 엉성하다. 이런 유의 영화를 몇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장단을 배신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대뜸 짐작이 가는데, 말이다. 그래도 간편하게 시간 보내는 용도로는 괜찮은 영화 「협도연맹」.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협도연맹(俠盜聯盟, 2017) 」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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