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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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암행록(康熙微服私访记) | 황제의 좌충우돌 민생 탐방기

강희암행록(康熙微服私访记, 1997) | 황제의 좌충우돌 민생 탐방기

드라마 강희암행록(康熙微服私访记, 1997)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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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의 좌충우돌 민생 탐방기

거지로 변장해 구걸하는 강희제

1997년 시즌1을 시작으로 2006년 시즌5까지 9년 동안 총 144화에 걸쳐 방영된, 어떤 면에선 ‘대작’이라 칭할만한 드라마다. 다만, 시즌5 같은 경우 강희제, 의비(宜妃) 곽락라(郭絡羅) 씨, 의비의 시녀 소도홍(小桃红), 총관 태감 삼덕자(三德子), 황제를 보필하는 스님 법인(法印) 등 네 명의 주인공 모두 교체되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시즌5’로 불리기는 다소 격이 안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시즌6이 안 나온 걸 보면 시즌5는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해? 혹은 인기에 편승하여 얼렁뚱땅 한몫보려다가 새로운 이야기와 주인공이 지금까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시즌6 제작 열망마저 완전히 물거품으로 만드는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즌5는 또우반 평점도 가장 낮다. 시즌4까지만 감상했지만, 왠지 그런 불행한 사연이 느껴진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드라마 「강희암행록(康熙微服私访记)」은 청나라 강희황제가 백성으로 변장하고 의비, 소도홍, 삼덕자, 법인 등 네 명의 수행원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었던 탐관오리, 악질 토호, 악덕 상인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충을 우여곡절 끝에 해결한다는 사건들로 엮여 있다.

사실 제목만 보고, 얼웨허(二月河)의 대작 역사소설 『제왕삼부곡(落霞三部曲)』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밀물처럼 들었으나 첫 편을 보고 나서 바로 그런 기대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소설보다 이 드라마가 먼저 제작되었다). 다름 아니라 국가 일급 배우(国家一级演员) 첸다오밍(陈道明)이 강희제 역을 맡은 「강희왕조(康熙王朝, 2001)」 같은 진지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고, (강희가 등장하는 또 다른 드라마 중에서) 「녹정기(鹿鼎记, 2020)」처럼 아주 희희낙락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비슷하게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을에서 황제처럼 군림하는 탐관오리나 악덕 상인 같은 악당들과 고군분투 끝에 정의를 실현한다는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단순한 통쾌함 때문에 오히려 계속 보게 되는 오락적 요소가 다분한 드라마다.

천하제일 성군에서 천하제일 호구로

미녀를 보면 헤벌쭉한 강희제

강희제 역은 첸다오밍과 같은 일급 배우인 장궈리(张国立)가 열연했다(사람의 능력을 ‘등급’ 같은 단어로 표현하려니까 왠지 ‘한우’를 보는 것 같다는). 중국 드라마에선 주연이라 해도 음성은 전문 성우 목소리로 더빙하는 경우가 많은데, 꽤 오래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강희암행록」에서만큼은 장궈리 본인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목소리 연기도 일급이라는 말이리라. 이러한 사실은 시즌4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채롭게도 시즌4는 동시녹음으로 제작되었다. 이것은 모니터 스피커로도 단박에 눈치챌 정도로 고르지 않은 음향 상태 때문이리라.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런 흠이 오히려 현장감을 살리는 묘한 연출 아닌 연출이 되었다.

강희제가 인류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성군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래서 중국인들에겐 ‘중국의 자부심’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현명하고 인자할 뿐만 아니라 용기와 결단력 있는 군주가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속 강희제였다면, 드라마에선 세상물정은 도통 모르고 마음씨만 하염없이 좋아서,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사기당하고 이용당하는 천하제일 호구로 나온다. 또한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호색가 기질도 보여준다(50명 이상의 아내를 거느리고 55명의 자식을 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기질만큼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근엄하고 위엄 있는, 그래서 경외의 눈으로만 바라봤던 위대한 황제를 하루아침에 철없는 갑부집 자녀 같은 한량으로, 때론 구걸하는 거지로, 때론 밥을 짓고 차를 따르는 장사꾼으로, 때론 강제노역에 끌려간 부랑자로, 때론 사람들 앞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시정잡배로 탈바꿈시킨 희극적인 요소 때문에 뭇 시청자의 엉큼한 관심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황제 뒤치다꺼리에 바람 잘 날 없는 의비

황제 뒤치다꺼리에 바람 잘 날 없는 의비

황제와 동행하는 의비 곽락라 씨 역은 덩지에(邓婕)가 열연했다.

곽락라 씨는 입궁한 뒤 학식과 미모로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던 실존 인물이다. 그녀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두 명은 성년이 되기 전에 요절했고 한 명은 장성한 후에 여덟째 황자 윤사(胤禩)와 결탁하여 황위 계승 싸움에 뛰어든 그 유명한 윤당(胤禟)이다.

아무튼, 의비는 수많은 후궁 중 유일하게 황제의 암행에 동행하는 유일무이한 후궁으로 등장한다. 황제가 팔불출처럼 면박을 받으면서까지 여자에게 헤벌쭉 추파를 던지는 것을 소 닭 보듯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속은 하루라도 바짝 타들어 가는 날이 없다. 하지만, 질투도 분별 있게 한다는, 그래서 그 누구보다 도량 있고 의젓하고 선량하고 대범한 의비는 백성의 삶을 보살핀다는 암행의 목적을 완전히 잊은 채 발정 난 원숭이처럼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황제가 여기저기 싸지른 똥을 부단히 치우면서 사건을 끝끝내 종결로 이끄는 꿋꿋한 안사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반면에 강희는 실컷 여자 꽁무니 뒤쫓다가 막판에 가서야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기 식으로 ‘황제 폐하 납시오’하고 등장하는 격이랄까.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셈. 시청자들은 의비의 눈부신 암중비약에 힘입어 덩지에의 열연에도 감화되었던 것 같다. 의비가 시즌3에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덩지에의 열연도 여기서 끝나는 듯했지만, 덩지에는 시즌4에서 (의비와는 성격도 출신도 완전히 다른) 협객으로 재등장해 또다시 황제의 총애를 받기 때문이다.

암행의 감초 같은 세 측근

틈만 나면 티격태격 싸우는 삼덕자와 법인

황제와 의비의 시중을 들면서, 한편으론 황제 몰래 의비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황제가 싸지른 똥을 치우는데 협력하는 세 명의 조연으로 소덕자, 법인, 소도홍이 등장한다.

귀여운 밉상인 외모가 은은한 친근감을 풍기는 꾀바른 내시 삼덕자 역은 자오량(赵亮)이 맡았다. 시즌2에 잠시 우준(吴军)으로 교체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만, (아마도?) 나를 포함한 뭇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견디지 못했는지 시즌3에선 다시 자오량이 복귀했다. 삼덕자와 함께 황제를 보필하는 우직한 땡중 법인은 허어쿤(侯堃)이 맡았다. 툭하면 견원지간처럼 다투는 두 사람이지만, 황제를 위한 헌신만큼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황제가 미녀에게 한눈파는 사이 의비의 수족이 되어 사건 해결에 온몸을 내던져야 하는 고행 같은 임무를 기꺼이 짊어진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다투는 것이나, 좌충우돌 모험 같은 ‘황제 뒤치다꺼리’는 동정심보다는 웃음을 자아내기 일쑤인데, 그만큼 두 사람의 콤비가 꽤 좋다는 뜻.

소도홍은 내시와 스님이라는 다소 싱숭생숭한 조합으로 인해 우중충해진 화면을 의비와 더불어 화사하게 장식해 주는 꽃 같은 역할이랄까.

‘포청천’ 식의 정의 구현

황제의 연설을 듣는 마을 사람들, 단역 배우들의 표정이 압권

인기가 좋았던 것에 반해 옛 중국 드라마나 홍콩 영화(특히 무협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단역들의 ‘멀뚱멀뚱’, 다시 말해 (바로 위 사진처럼)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성의 없는 연기는 여전했다. 드라마에 한창 몰입해 있는데, 저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표정을 보면 끙끙대다 풍덩하고 대변을 본 직후처럼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확 풀어져 버린다. 그런 것도 한두 번이고 자주 보다 보면 적응돼서이지 그저 실소만 남는다. 단역조차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는 다른 국가 드라마에선 결코 볼 수 있는 비상한 열정에 반해 단역 배우들의 연기력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주요 등장인물들, 그중에서도 악역을 맡은 배우들의 악질 연기가 제법 감질나는 덕분에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뭔가 ‘역사적’인 진지한 것을 갈망하는 시청자라면 여자나 내시 따위가 황제 앞에서 사사건건 말대꾸하거나 황제를 비꼰다? 혹은 황제 혼자 걸식하며 방랑하고, 때론 몰매도 맞는 등 말도 안 되는 전개에 혀를 끌끌 찰 수 있지만, 「강희암행록」의 콘셉트는 역사적 사실 따위는 활활 태워버리고, ‘강희’라는 아이템에서 명성이 주는 친근함만을 빼 온 다음 여기에 오락적이고 권선징악적인 양념을 흠뻑 뿌린 통속극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맘 편하게 감상한다면, 에피소드마다 독립적으로 펼쳐지는 ‘포청천’ 식의 정의 구현에서 나름 단순하고 명쾌한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포청천(包靑天)」에서 공명, 마한 등의 포청천의 충실한 부하들이 각기 나름의 개성과 실력을 발휘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강희암행록」에서 황제의 최측근인 의비, 삼덕자, 법인이 우당탕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과 얼추 비슷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비슷한 구성은 당시 한창 인기를 누렸던 ‘포청천’에서 따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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