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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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평전 | 마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그는 패자인가?

Chiang Kai Shek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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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평전 | 조너선 펜비 | 마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그는 패자인가?

Original Title: Chiang Kai Shek: China's Generalissimo and the Nation He Lost by Jonathan Fenby
이 모든 점을 고려할지라도, 그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나날이 통일되어 가는 중국의 최전면에서 그토록 오래 생존했다는 것이다. 중국 통일이 최종적으로는 그의 가장 큰 적수의 무대가 되었더라도 말이다. (『장제스 평전』 , p617)

‘부재’로써 그의 역사적 의의를 추론하다

역사가 승자의 전리품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실패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굳게 자리 잡은 장제스(蔣介石, Chiang Kai-shek)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역사라는 학문에 객관성과 엄밀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탐구 방법이 접목될 수 있다면, 아무리 잘못이 크고 결점이 많더라도 어찌 되었든 그는 격동과 혼돈의 시대에 (잠시나마) 우뚝 선 지도자이자, 타이완으로 도망하기 전까지 중국을 대표하면서 실재적으로도 명목상으로도 중국을 통치한 지배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장제스의 역사적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장제스의 역사적 사명과 중요성, 그리고 그가 끼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더욱더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좋든 나쁘든 만약 그가 부재했더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고려해 보는 것만큼 확실한 일은 없다.

조너선 펜비(Jonathan Fenby)의 『장제스 평전(Chiang Kai Shek: China's Generalissimo and the Nation He Lost)』은 그의 부재를 가상했을 때, 역사의 진로가 어떻게 방향을 바뀌어 지금과 다른 세상을 그려냈을지를 독자의 머릿속에서 추론하고 유추하는 데 필요한 모든 소스가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대하고 광범위한 자료를 기반으로 (저자가 밝힌 바대로) 30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전격적인’ 장제스 평전이다. 저자 조너선 펜비가 참고한 수많은 자료 중 최초로 장제스의 일기를 참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큰 의미와 가치가 있는데, 왜냐하면 장제스는 매일 여명 전에 기상해 체조했던 것처럼 날마다 일기에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앞으로의 목표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고로 일기는 그의 외면적 언행 뒤에 숨은 진의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료다.

만약 중국에 장제스가 없었다면?

조너선 펜비는 만약 중국에 장제스가 없었다면, 군벌 시대와 중국의 분열은 지배 범위를 놓고 끝없이 싸우는 봉건 할거 국면으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또한, 1936년 장제스가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에게 납치되었던 시안에서 그대로 피살되었다면, 국민당 정부 내의 친일파가 도쿄와 동맹을 맺고 중국 군대가 일본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짙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히틀러가 서쪽으로부터 소련을 침공할 때 일본군은 동쪽으로부터 소련을 침공해 제2차 세계 대전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는 조너선 펜비의 의견에도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예상해 본다. 만약 반일감정보다 반공감정이 더 압도적이었던 장제스가 없었다면, 상하이 대숙청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공산당 봉기도 국민당이 진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국민당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대중 세력의 지지를 얻게 해줄 장제스라는 구심력이 없었다면, 국민당 세력은 쑨원(孙文, Sun Yat-sen) 사후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대신 주도권을 잡는 시간이 더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누군가 우격다짐으로 국민당을 이끌어갔더라도 극단적으로 공산당을 혐오했던 장제스가 없었고, 세력 확장보다는 수성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군벌들의 특성이나 동족끼리의 전쟁을 혐오했던 청년 원수 장쉐량(張學良,Zhang Xueliang) 등을 고려하면 국공합작이 큰 파탄 없이 꽤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조로운 국공합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엄청난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한반도와 유사한 상황으로써 일본의 패전 후 제기될 수 있는 중국의 분단 가능성이다. 양쯔강을 경계로 북쪽의 공산당과 남쪽의 국민당으로 예상할 수 있는 중국의 분단은 이후 냉전의 역사를 통째로 바꿨을 것이며, 어쩌면 이로 말미암아 한국전쟁이 중국전쟁으로 불똥이 튀어 세계 3차대전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조너선 펜비가 내린 결론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최전선에서 장제스가 그토록 오래 생존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위대한 공적이다.

Chiang Kai Shek: China's Generalissimo and the Nation He Lost by Jonathan Fenby
<장제스(가운데), Sgt. Bell / Public domain>

철학처럼 논리적이고 명징하게, 문학처럼 우아하고 생동감 있게

사심이 깃들기도 하고 특별한 목적도 없고, 개인적 혹은 역사적으로 억압된 감정이나 분노를 분풀이하여 카타르시스를 얻고자 하는 치졸한 상상력에서 기인한 역사에서의 ‘만약’이라는 가정(假定)은 시간과 사고력의 낭비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만약 역사의 이해와 통찰력 증대라는 합목적성과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적 자료에 기반을 둔 가설은 역사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하고 그에 비추어 현실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역사를 논함에서 ‘만약’이라는 가정(假定)이 꼭 금단의 열매가 될 필요는 없다. 또한, 곁에 있으면 그것의 소중함을 인지하기 어렵고 막상 그것이 사라져야 그것의 중요성이나 영향력이 드러나듯, 그동안 간과해 온 장제스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현실감 있게 부각시키고자 그의 부재를 가상한 것은 참신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장제스의 부재를 상상함으로써 그의 중요성이 드러나더라도 그와 그가 이끌었던 국민당의 부정, 부패, 혼란, 무능, 무지 등의 부정적 평가가 희석되는 것도 아니다.

『장제스 평전』은 장제스의 부재를 가정함으로써 그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책이지 그러한 재조명 속에서 부각될 수 있는 장제스의 중요성으로 그의 정책적 오류나 개인적 결점을 변명하거나 슬쩍 덮어보려는 그런 불순한 의도로 쓴 책은 아니다. 자신이 보편적인 도덕을 강조했음에도 친인척뿐만 아니라 당원들의 부정부패를 눈감아 주었던 장제스의 치명적 결점과 모순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등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장제스와 그의 국민당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장제스를 변호하거나 미화하고자 나온 책이 아님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서방 기자로는 최초로 옌안 시절의 공산당을 방문한 에드거 스노(Edgar Snow)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공산당이 아편을 취급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등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공산당도 비껴갈 수는 없다. 이런 균형 잡힌 날카로운 시각은 장제스에 대한 면죄부나 영웅화에 대한 약간의 가능성조차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굳이 장제스의 부재를 들먹임으로써 그의 영향력을 반추해 보는 것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장제스에 대한 가혹한 평가를 동정한다거나 그것의 부당함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역사를 서술하고 한 인물을 평가하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조너선 펜비의 현명한 고집이다. 그럼으로써 15세에 장제스와 결혼해서 장제스가 쑹메이링(宋美齡, Soong May-ling)를 만나고 나서 그로부터 버림받을 때까지 장제스의 아내였던 천제루(陳潔如, Chen Jieru)가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한 것처럼 평범한 한 남자가 어떻게 하늘이 준 기회를 끈질기게 부여잡고 마침내 한 나라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올라섰는지를 철학처럼 논리적이고 명징하게, 그리고 문학처럼 우아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조너선 펜비에게 총사령관의 고향 마을을 안내해 준 어느 대학원생은 장제스를 크나큰 실수들을 저지른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말하고 나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마오 주석(毛泽东, Mao Zedong)처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과거와 사뭇 다른 이러한 평가가 이제 어느 정도 살 만한 해진 경제적 여유에서, 또는 승자의 관용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오류와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으려는 역사 이해의 발전적 과정과 그로 말미암은 역사 인식 변화의 일부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패배자’, ‘실패자’라는 어둡고 깊은 무덤 속에 묻힌 채 퇴보도 전진도 없이 고정되어 버린 장제스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뒤로하고 새로운 자료와 새로운 방법으로 재평가를 시도하는 이 책이야말로 역사의 부단한 정진이 일구어낸 소중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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