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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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년 | 이웃에 의해 저질러진 영혼의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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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년 | 펑지차이 | 이웃에 의해 저질러진 영혼의 학살

파시스트 폭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체를 남겼다면, 문혁이 남긴 것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겹겹의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무수한 영혼들이다. (『백 사람의 십년』, 10쪽)

늑대의 젖으로 자란 세대’들에 의한 홀로코스트

이 책 『백 사람의 십년(一百个人的十年): 문화대혁명, 그 집단 열정의 부조리에 대한 증언』은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을 겪은 평범한 인민들의 평범하지 않은 체험을 기록한 문학이다.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평소에 중국현대사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그들에게 가해진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던 그날의 처참했던 기억과 아픔도 이제는 눈부신 경제 성장이라는 찬란한 역사의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은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것을, 무덤에서라도 상기하고 싶지 않은 그 끔찍했던 기억을, 그리고 언제 피와 고름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느냐는 듯 이미 희미해져 가는 흉터로 남은 옛 상처들을 이 책은 조심스럽지만 과감하게 파헤치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일부 심술궂은 독자들의 호기심이나 충족시켜 돈 몇 푼 벌어보자거나, 혹은 그때 그 사건들을 들춰내 잘잘못을 따진 다음 보상이나 몇 푼 더 받아보자는 천박한 의도는 절대 아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자연재해가 아닌 순전히 인재에 의해 저질러진 문혁의 역사적 잘못은 얻기 어려운 재산이고, 그 재산을 잃어버리면 중국은 새로운 맹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는 저자 펑지차이(冯骥才)의 염려와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펑지차이는 ‘늑대의 젖으로 자란 세대’들에 의해 홀로코스트처럼 인민들의 영혼이 학살된 전대미문의 재난인 문혁의 진상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고, 그러한 의지와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백 사람의 십년: 문화대혁명, 그 집단 열정의 부조리에 대한 증언』이다.

Cultural revolution
<Tsering Dorjee / Public domain>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참혹한 영혼의 학살

저자 펑지차이는 『백 사람의 십년』을 읽으려면 충만한 정의감과 도덕적인 양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뭔가 까다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참혹한 영혼의 학살을 기록한 책이기에 영혼이 깨끗하거나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그저 한 편의 범죄소설이나 공포소설 같은 자극적인 간식거리 정도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가 몇 가지 더 보탠다면, 될 수 있으면 홀가분하게 눈물샘을 비우고, 혹은 결전에 임하는 용사처럼 마음을 냉정하고 굳게 다잡거나 아니면 수양하는 도사처럼 깨끗하게 비우고 책장을 넘기기를 권고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숨 막힐 정도로 처참한 고난과 비극의 여정은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폭포처럼 쏟아내리는 눈물에 질식하거나 솟구치는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는 도저히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산촌 마을 교사였던 남편이 마오 주석을 찬양한 책 속의 일화를 인용했다가 오히려 그를 욕보였다며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 글자를 모름에도 교사의 아내는 남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꼬박 7~8년 동안 길거리의 온갖 종이를 주우며 남편이 인용한 그 책을 찾으려다가 그 종이가 화근이 되어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불에 타 죽었다는 이야기가 자아내는 가슴 저미는 슬픔은 눈물만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묵직한 맷돌이 되어 마음마저도 무겁게 짓누른다. 또한, 홍위병들에게 박해받는 고통에서 탈출시켜주고자 딸이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 쉽게 자살하지 못하게 날카로운 도구들을 감옥에서 다 치우자 죽기 위한 필사적인 마음에 다량의 파리를 먹거나 벽돌을 망치 삼아 자기 머리에 못을 박은 이야기들과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울고 갈 정도로 창의적이고 참혹하며 기이한 고문들은 또 어떠한가? 그렇지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박해받던 인민들은 문혁이 끝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명예회복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혁 당시 그들은 무슨 천인공노할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것처럼 가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혀 고문과 학대를 받았지만, 사실 그들의 혐의는 소문과 비방, 뒷공론, 그리고 시기와 질투와 야심으로 채워진 형편없는 고발 내용이 전부였기에 문혁이 끝나고 나서 명예회복도 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증거를 제시해야 할 공안 요원이 오히려 피의자에게 증거를 대라고 윽박지르며 고문했을까. 가해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죄와 증거를 조작해 가면서까지 피해자들의 영혼과 육체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영원히 벗겨지지 않는 올가미를 씌웠지만, 훗날 쉽게 명예회복이 되었듯 그것은 그들이 전혀 겪을 필요가 없었던 지옥의 10년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문혁을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도 말하지만, 이 책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문혁이라는 지옥에 한 번이라도 빠져본 인민들은 10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유린당한 삶을 거북의 등딱지처럼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마치면서...

올챙이가 헤엄쳐 다니고 수초가 자랄 정도로 눈물과 땀으로 흥건해진 손으로 『백 사람의 십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이면 문혁이 중국에서만 일어나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한 온갖 고문과 학대에서 드러난 사람의 악랄한 심정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비단 중국인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중국인에게는 역사적 성찰과 이해를 제공한다면, 우리 같은 제삼자에게는 무방비 상태로 역사적 비극이라는 절구통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운명적 불행이라는 절굿공이에 짓이겨진 한 민족의 고통 어린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를 도모하는 진중한 시간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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