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붉은 별 | 에드거 스노 |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지는 진중한 기록
결국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운동을 태동시킨 기본적인 조건들이 역동적인 승리의 필연성을 그 자체 속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붉은 별』, 550쪽)
도적떼, 불한당에서 혁명군으로
마오,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중국 혁명 1세대들은 1차 국공합작이 진행 중이던 1927년 장제스의 상하이 배반으로 5만 명이던 당원이 1만 명으로 대폭 줄은 위기에도 살아남았다. 생존자들은 공개적인 지상 투쟁을 잠시 뒤로하고 지하로 잠입해 소생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장제스는 쉽사리 틈을 주지 않았다. 몇몇 제국주의 국가의 원조에 힘입은 장제스는 집요하게 초공전을 펼쳤고 공산당은 결국 실로 기나긴 고난의 연속이자 국가의 대이동이라 할 수 있는 9,600킬로미터 대장정에 들어섰다. 피로와 굶주림, 국민당과의 간헐적인 전투로 출발 인원의 절반 정도가 사망하거나 이탈하였음에도 이들은 당시 중국의 서북 변방인 산시성의 바오안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어떠한 시련에도 결코 꺼진 적이 없었던 혁명의 불씨를 다시 크게 지필 수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혁명의 결실을 감격과 뿌듯함 속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의 중심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국민당과 제국주의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국민당의 철옹성처럼 빈틈없는 언론 봉쇄망에 갇혀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었다. 국민당은 홍군을 비적, 도적, 다루기 어려운 무법자와 불만분자들의 집단이라고 선전했고,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 주요 인물들의 사망 기사는 수시로 신문의 지면을 낭비했다. 에드거 스노(Edgar Snow) 역시 홍군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국민당 거짓 선전에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그리고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1937년에는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을 입증할 만한 증빙 자료가 사실상 하나도 없었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실체에 대해 세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베일에 싸인 신비롭고도 괴이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국민당 말대로 도적떼이고 불한당이었다.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다
자칫 했으면 국민당의 계산된 은폐와 허위 선전으로 역사 속에 묻히거나 오명을 뒤집어썼을지도 모르는 중국 공산당과 홍군의 초창기 역사는 한 사람의 투철한 기자 정신의 부단한 성과인 『중국의 붉은 별』을 통해 일부분이나마 드러날 수 있었다. 홍군은 비적, 도적, 부랑자가 아닌 뚜렷한 정체성과 확고한 신념을 지닌 혁명군이었고, 글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투쟁과 기나긴 시련의 시간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속에서도 에드거 스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선 좌절이나 초조함, 피로, 슬픔 등 어둡고 절망적인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불굴의 의지에 걸맞은 눈부신 낙관주의로 똘똘 뭉친 그들은 당시 암울했던 중국의 마지막 남은 빛이자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드거 스노는 홍군의 정체를 파악하고 서양 기자로서는 최초로 마오를 인터뷰하고자 1936년 6월, 공산당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국민당 쪽의 민단과 진짜 비적들이 호시탐탐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장정의 마침표가 찍힌 바오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저우언라이가 짠 계획에 따라, 때론 그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노동자, 농민, 홍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그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그들의 정치 집회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운동경기도 했다. 서양인의 눈에는 낯설고 이질적인 이념과 문화를 가진 그들이었지만, 에드거 스노는 개의치않고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홍군이 흘린 피와 땀이 식기도 전에, 그들의 벅차고 우렁찬 외침이 황야의 건조하고 맑은 공기를 가르며 황무지 너머로 사라지기도 전에 단호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그들의 혁명적 삶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아직도 혁명의 퀴퀴하면서도 구수하고 진득한 체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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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끝나고 사회가 품어야 할 이상도 사라지다
중국이 개방되고 새로운 사료도 발굴되면서 어느 정도 완성된 중국 혁명사는 이미 세상 곳곳에 흔해졌다. 그러나 대장정의 위업을 막 끝낸 직후 혁명의 크나큰 도약을 위해 잔뜩 웅크리고 있던 당시의 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것을 세상에 중계한 사람은 에드거 스노뿐이다. 우리는 중국 혁명의 결과는 알고 있지만, 그들이 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고 죽음도 무릅쓴 채 그런 고군분투에 뛰어들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할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렵다. 수많은 중국 인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혁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현실, 인민의 신뢰를 받는 데 성공한 공산당의 부단한 노력, 어떠한 상황에도 꺾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홍군의 낙관주의, 그리고 이들이 품었던 혁명적 이상과 대의를 위해 대가 없이 희생한 그 모든 것들이 역사의 고전으로서 『중국의 붉은 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요즘의 중국을 보면 혁명 세대들이 품은 벅찬 이상과 뜨거운 대의가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중국은 미국의 뒤를 바짝 쫓는 명실상부한 경제 대국이지만,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몸살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환경오염, 인플레이션, 청년 실업,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 범죄, 도덕적 가치 상실, 세대 간 단절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했으며, 특히 도시와 농촌 간의 극심한 소득 격차와 지역 간 성장 불균형, 그로 말미암은 삶의 질적 차이는 인민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홍군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회주의 이상과 대의, 덕목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over China)』은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인에게 중요한 거울이 될 수 있다. 현재의 중국을 있게 한 혁명 세대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뜨거운 피와 눈물을 흘리고 기꺼이 목숨을 바쳤는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이 책은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기회와 양식을 제공한다. 또한, OECD의 불명예스러운 통계 49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력에 걸맞지 않은 매우 저조한 국민행복지수를 보여주는,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품어야 할 이상을 잃고 어둠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는 검은 밤하늘의 북두칠성 같은 한 가닥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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