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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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 | 혁명 소년에서 반동분자로

Gang of On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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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 | 션판 | 혁명 소년에서 숨은 반동분자로, 그리고 탈출!

6개월 동안이나 거짓말을 하고 환자 행세를 하고 사람들을 조종하고 이중생활을 한 것이, 그리고 걸쭉한 배설물 제조 기술까지 익힌 것이 모두 그 순간을 위한 노력이었다. (『홍위병』, 395쪽)

인류 최대의 감옥 중국을 탈출하다

1966년은 세기적인 관심을 이끈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된 해이다. 비록 훗날 중국공산당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시킨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은 철저하게 부정되었고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전락했지만, 당시에는 만연했던 마오쩌둥(毛澤東) 개인숭배라는 광신적인 배경을 등에 업은 좌경 오류로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거침없이 광활한 중국 전역을 휩쓸며 파란을 일으켰으며 그 시발점은 바로 홍위병(紅衛兵)이었다.

『홍위병(Gang of One: Memoirs of a Red Guard)』의 저자 션판(Fan Shen)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해에는 열두 살이었다. 열네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로 의화단 운동에 참여하였고, 사망했을 때는 위대한 지도자의 화환과 함께 국장을 치른 할아버지와 열두 살에 게릴라가 되어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던 아버지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혁명가족에서 자란 션판은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마자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음에도 문화대혁명의 분서갱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집안의 책을 모조리 불태운다. 그것도 모자라 가혹한 인민재판을 받고 거리를 끌려다니며 조리돌림을 당하는 옛 장군의 상처를 꼬챙이로 쑤시는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았고, 친구들과는 ‘만리장성 투쟁조’라는 홍위병 조직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정말이지 그는 ‘혁명 소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의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에서 션판은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깨닫고 문화대혁명의 진짜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는 참회하는 고통 속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색출을 명한 숨은 적은 허구였으며 문화대혁명에는 가치 있는 목표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자아비판 시간에 가장 무섭게 비난받는 대상이자 혁명가로서는 절대 떠올려서는 안 될 ‘야심’을 품기 시작한다. 인민과 당, 그리고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중국식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인적 야심을 품는다는 것은 반동분자의 길로 뛰어드는 정치적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션판은 겉으로는 여전히 열심히 혁명가 행세를 하며 주위 사람들을 속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공과 탈출을 위해 불굴의 투지와 의지를 발휘하고 갖은 계략을 짜낸 끝에 미국 유학에 성공하면서 인생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다.

<孟昭瑞 / Public domain>

피눈물나는 ‘인간 승리’ 같은 탈출 과정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저속하고 위선적인 당 간부들이 득실대는 관료주의 앞에 한 개인은 너무나 볼품없는 존재였으며, 비대한 당 앞에서 정공법이란 바위에 계란 치기였다.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찬 중국이라는 거대한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정정당당한 방법과 양심적인 수단으로는 도무지 가능하지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션판은 탁월한 계략꾼이자 탁월한 연기자였으며, 한편으론 파렴치한 철면피이기도 했다.

속으로는 지독히도 싫어하는 당이지만, 입당 준비를 할 때는 혁명적 사상과 당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찬 일기장을 일부러 남의 눈에 쉽게 띄도록 살짝 흘리기도 하는가 하면, 대변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설사병을 만들어 죽어가는 환자로 위장한 다음 찰거머리처럼 매일 같이 당 간부들을 찾아가 갖은 아첨으로 구슬리고 설득하여 당 간부와 의사들을 속인 끝에 ‘12년 만에 처음으로 탕구 탈출에 성공한 사람’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면서 탕구의 우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가능한 모든 연줄을 동원하고 가능한 모든 뇌물을 먹이는 것은 든든한 배경 없는 나약한 한 개인이 만리장성처럼 옴짝달싹 않는 당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이 덕분에 다른 사람은 8개월이 넘도록 발급받지 못한 여권을 몇 주 만에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때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영어를 배웠던 스승을 비난하고 부정했으며, 비밀경찰 앞에선 야심에 방해되는 당 간부들을 중상모략하기도 한다.

다사다난했던 션판의 중국 탈출 과정은 실로 피눈물나는 ‘인간 승리’그 자체였다. 비록 그 수단과 방법이 깨끗하지는 못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충분히 눈 감아 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비열하고 야멸치게 느껴지기도 했던 인정사정없는 계략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에서 야심을 이루고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자 션판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여기에 빈틈없고 치밀한 계략을 짜고 완수할 수 있는 노련한 기지,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투지야말로 보통 사람은 감히 거스르지 못한, 아예 거스를 엄두로 못 내는 혁명의 풍파와 당 앞에서도 쓰러지거나 표류하지 않고 도착지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 끝내 ‘인간 승리’의 기적을 이루어냈던 원동력일 것이다.

선전과 현실의 끝없이 깊은 괴리, 그것이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체

그러나 이 책 『홍위병(Gang of One: Memoirs of a Red Guard)』의 묘미는 한 개인의 인간 승리 드라마 외에도 또 한가지가 있다. 바로 그것은 중국식 사회주의를 설명하는 이론과 실제 현실 사이의 모순과 괴리 등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체를 션판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이란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50세로 죽을 것을 51세까지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고귀한 두뇌와 거액의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 어쩌면 51세까지 살지도 모를 생명을 50세에서 버려야 하는 가난한 대중의 전반적 치료와 보건을 위한 인간의 기술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전환시대의 논리』, 106쪽, 리영희)

당시 중국의 공중 보건 시스템이 지향하는 바를 설명한 고(故) 리영희 선생의 말은 이론적으로도 합리적이고 이치에도 맞는 말이다. 소수인 부자보다 다수이며 가난한 인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민주적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에 따라 그들은 최저한의 의료혜택을 넓은 대륙에 보급하기 위해 ‘맨발 의사’라는, 노동하면서 공부하고 병도 고치는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정책을 실행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따르면 이 맨발 의사는 2년 정도의 의학 교육과 훈련을 받은 노동자라고 하지만, 션판이 직접 체험한 바로는 기껏 3개월 교육을 받고 산촌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가 대학 졸업 후 치열한 배치 고사 전쟁에서 힘겹게 승리하여 악몽의 티베트가 아닌 고향 베이징에서 가까운 탕구(塘沽)로 배치받았을 때, 그가 만난 탕구 사람의 치아는 온통 검거나 갈색으로 뒤틀린 채 썩어 있었다. 이것은 오염된 식수 때문이었는데 당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내버려둔 상태였다. 한때 베이징의 큰 병원에 몸담았던 유명한 외과의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탕구에서 의사가 아닌 일반 노동자로 썩고 있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친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전투기 엔진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달에 한두 명꼴로 자살자가 속출해도 당은 속수무책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어느 노동자는 26년이나 나라를 위해 일했음에도 연금이나 보험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지방의 기숙사에는 난방 시설이 없었으며, 주먹구구식 설계와 턱없이 부족한 중장비로 각종 건설 사업에서 노동자의 애꿎은 희생은 일상 다반사였으며 혹은 완성되더라도 제 구실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말과 이론은 황하처럼 막힘 없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당 간부의 얼굴처럼 번지르르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인민, 즉 개인의 생명은 당과 국가를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할 파리 목숨 따위였으며 인민을 보살펴야 할 당은 관료주의 타성에 젖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사실상 당의 독재로 인민의 자유의지와 생명, 그리고 개성은 철저하게 억압했다. 그것이 『홍위병』의 저자 션판이 살았던 중국의 어두운 현실이었으며 그가 이 책을 통해 고발한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체였다.

마치면서...

문화대혁명의 쓰디쓴 고배를 마신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했다. 마오쩌둥은 경제발전보다 인간개조를 우선시했지만, 지금의 중국은 ‘사회주의건설은 반드시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절대 계급투쟁이 중심이 될 수는 없다’라는 각오 아래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국을 마오쩌둥이 그렇게도 혐오했던 수정주의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3억이라는, 또 다른 ‘션판’을 포함한 무수한 ‘이기적’ 인간들을 데리고 ‘근본적으로 착취를 없애는 것이고, 처음으로 가장 많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건설해서 마침내 모두 부유한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건설하려는’ 혁명의 이상을 앞으로 어떻게 건설하고 어떤 식으로 완성할지 정말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인민이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대의 아래 희생되고 짓밟힐 것이며 또한, 쓰나미처럼 몰아칠 수도 있는 그러한 풍파가 한반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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