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2 암흑의 숲 | 류츠신 | 엄밀한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이 일궈낸 놀라운 소설
“아이가 품에서 굶어 죽는 것과 인류의 문명을 존속시키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할까요?” (『삼체 2부: 암흑의 숲』, 510쪽)
생존의 딜레마에 빠진 우주 문명
삼체(三體, three-body) 세계에는 ‘우주를 있는 그대로 비춤으로써 자신을 감추는 것이 영원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우주에서 문명을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주의 다른 문명에 위치나 정체가 발각되지 않게 마치 투명인간처럼 꼭꼭 숨으라는 말이다 . 이것은 생존의 딜레마 때문에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우주라는 ‘암흑의 숲’의 본질을 꿰뚫는 명언이다. 생존의 딜레마 개념은, 첫째, 생존은 문명의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둘째, 문명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한다는 우주사회학(Astrosociology)의 공리에서 출발한다. 우주의 물질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생명은 지수적으로 증가한다. 고로 서로 다른 문명이 생존을 두고서 벌이는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삼체 문명(Trisolarans)처럼 우주 공간을 장기간 항해할 수 있는, 아니면 최소한 인류처럼 우주를 탐색할 정도의 기술과 지능을 보유한 문명이라면 언어와 문화를 이용한 다양한 소통으로 파국적인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 사회나 이웃끼리도 소통의 어려움을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인류의 현주소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 간에 발생하는 사소한 마찰도 소통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전쟁도 불사하지 않는 것이 인류다. 그런 인류가 인류 문명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진화사와 문화를 가진 외계 문명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주사회학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의심의 사슬’, 모든 문명이 사슬의 양 끝점에 놓인다
지구 문명이 안드로메다 문명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안드로메다 문명이 지구 문명을 착한 문명으로 생각하더라도, 우주사회학 첫 번째 공리에 따라 지구 문명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안드로메다 문명을 착한 문명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안드로메다 문명은 지구 문명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만약 안드로메다 문명이 지구 문명을 착한 문명으로 생각하고 지구 문명도 안드로메다 문명이 지구 문명을 착한 문명으로 여긴다는 것을 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지구 문명이 안드로메다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안드로메다 문명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구 문명은 알 수 없다. 이러한 의심의 고리는 계속 늘어나면서 ‘의심의 사슬’이라는 우주사회학의 또 다른 개념을 이룬다. 착한 문명이든 악한 문명이든, 문명의 특징과 사회 형태, 도덕 성향과는 다르게 모든 문명이 사슬의 양 끝점에 놓이는 것이 ‘의심의 사슬’이다 .
<Three-body Problem Animation with COM Dnttllthmmnm / CC BY-SA> |
기술 폭발’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지자(Sophon)
한편, 우연히 만난 두 문명의 발전 정도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인류와 삼체 문명처럼 한쪽은 아주 강하고 한쪽은 아주 약해서 서로 위협이 안 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우주사회학의 마지막 개념 ‘기술 폭발’로 무시될 수 있다 . 5,000년이라는 인류 문명사에서 현대 기술은 고작 300년 사이에 급속하게 발전했다. 우주의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그건 발전이 아니라 폭발이다. 이것은 모든 문명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준다. 인류의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데 걸린 300년이라는 시간이 우주의 다른 문명보다 느리다고, 그렇다고 빠르다고도 말할 수 없다면, 다른 문명의 기술 폭발은 더 맹렬할 수도 있다. 만약 삼체 문명이 인류와의 소통을 선택하고, 인류에게 자신들이 이룩한 기술과 정보를 전수한다면 인류의 기술 폭발은 지금보다 더 맹렬해질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출어람이 되어 인류의 과학 기술이 삼체 문명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삼체 문명은 지구에 수많은 지자(Sophon: 삼체 문명이 지구에 심어놓은 소립자 스파이)를 파견하여 인류의 기초 물리학 발전을 동결시킨다. 지자는 삼체 문명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400년이란 시간 동안 인류의 ‘기술 폭발’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침묵’도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침묵은 어떨까? 인류가 발견한 외계 문명의 기술 수준이 원시적인 수준이라면 침묵도 답이 되지 않을까? 침묵이 침묵하는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들도 언젠가는 지구가 자신들을 발견한 것처럼 지구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술 수준이 지금은 원시적이라도 언제까지 그 상태로 머무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문명이 현재는 지구보다 약하더라도 언제든 기술 폭발이 일어나 인류를 앞지를 수 있다는 의심의 사슬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존재, 즉 다른 문명의 존재가 인류 문명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문명이 다른 문명의 존재를 알게 되면 교류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다. 오직 한가지 선택밖에 없다 .
‘암흑의 숲(The Dark Forest)’을 유랑하는 순진한 아이, 인류
암울하고 어두운 우주의 냉혹한 적자생존 논리를 『삼체 2부: 암흑의 숲』의 주인공 뤄지는 간단하게 ‘암흑의 숲(The Dark Forest)’이라고 명명한다. 삼체 문명으로부터 인류의 구원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진 면벽자(面壁者, Wallfacer) 뤄지(Luo Ji)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주는 암흑의 숲이에요. 모든 문명이 총을 든 사냥꾼이죠. 그들이 유령처럼 숲 속을 누비고 있어요. 길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살며시 치우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고 숨소리조차 낮추고……. 조심해야 해요. 숲 속에 곳곳에 사냥꾼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다른 생명을 발견하면 그게 사냥꾼이든 아니든, 천사든 악마든, 갓난아기든 꼬부랑 노인이든, 소녀든 소년이든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총을 쏴서 없애버리는 거죠. 이 숲에서 타인은 그 자체만으로 지옥이고 영원한 위협이에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 어떤 생명도 곧바로 없애버려야 해요. 이것이 바로 우주 문명이고 페르미 역설에 대한 해석이에요.” (『삼체 2부: 암흑의 숲』, 669~670)
이러한 ‘암흑의 숲’에서 우주로 신호를 보내는 일은 ‘나 여기 있어요. 나 잡아보세요.’라고 순진하게 외치는 꼴이다. 우주에 있을 수많은 문명은 이런 신호를 무시하겠지만, 반대로 수많은 문명은 만약을 위한 조처를 할 가능성도 있다. 『삼체 2부: 암흑의 숲』의 논리를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면 외계 지적생명탐사(SETI)는 자칫 잘못하면 자살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우주는 공허하리만큼 조용하다. 어딘가에 있을 외계 문명은 일찌감치 ‘생존의 딜레마’ 문제를 깨닫고 자신들 문명의 존속을 위해 맨 앞에서 언급은 삼체 문명의 격언을 본받아 투명한 존재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어쩌면 차갑고 어둡고 생명에 적대적인 광활한 우주 공간 자체가 문명과 문명을 보호해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그 장벽을 허물고 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염원이기도 하다. 인류는 그 장벽 밖의 세상을 꿈꾸어왔다. 인류는 그 장벽 밖의 아득한 어둠과 그 어둠에 외로이 저항하는 무수한 별빛이 자아내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류츠신은 인류에게 자신의 소설 『삼체』 시리즈를 통해 조심스럽지만, 엄중하게 경고한다. 인류의 오랜 꿈이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
엄밀한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
우주사회학은 류츠신(刘慈欣, Cixin Liu)이 『삼체 2부: 암흑의 숲』을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낯설지 않은 명칭을 가진 이 학문은 우주 곳곳에 거대 문명이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별만큼이나 많이 존재하고 그 문명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아직도 많은 과학자가 우주 어딘가에 인류 같은 지적생명체 존재하리라는 것에 회의적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우주사회학이 당장 대학의 한 강단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우리들의 사회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존재 가능성이 희박한 외계 문명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류의 능력을 한참이나 넘어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체 2부』가 은유하는 진중한 심연의 메시지는 그냥 재미있는 소설로만 읽고 흘려보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현실성이 은근히 다분하다. 마치 오늘날 일어나는 눈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것은 엄밀하고 논리적인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엄격하게 완성된 이 작품이 현실과 작품 속 세계를 혼동시킬 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몇몇 뛰어난 작품들이 예지력과 선견지명을 보여준 사실을 떠올려 보면,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인류와 외계 문명과의 첫 접촉이 실현될지 모르는 미래에는 우주사회학이 대세가 될지도. 그런 세상이 오면 아마도 이 작품은 미래의 성경이 될 것이다.
마치면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과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창작력이 이처럼 조화를 이루며 독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작품은 정말 흔치 않다. 정말 놀라운 흡입력이고, 엄청난 상상력과 창의성의 결합이 나은 엄청난 이야기다. 이삼일이면 읽기를 끝낼 수 있었지만, 『삼체 2부』랑 일찍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하루 독서량을 엄격하게 정해놓고 천천히 읽었다. 줄어드는 페이지를 볼 때마다 내 남은 생의 하루하루가 소진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을 통해 살포시 저며왔다. 마지막 장을 향해 한장 한장 다가서는 나는 종말을 향해 떠밀려 가는 작품 속의 인류처럼 아득한 절망감에 사무쳐 나도 모르게 책장을 덮곤 했다. 그리고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미래를 구할 계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또는 만약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다면, 인류의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어떻게 마음을 준비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를 골몰히 구상해 본다. 물론 소기의 성과는 없었다. 이처럼 독자가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도 작품이 창조해낸 상상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중력이 작용하는 작품은 절대 흔하지 않다 .
마지막으로 결말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과정은 서두르는 것 같아 약간은 아쉬웠고, 두 문명의 극적인 화해의 축을 이루게 하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만, 극적인 화해는 이야기의 뒤를 잇는 작품이자 ‘지구의 과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사신의 영생(死神永生 Death's End)』 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굉장한 이야깃거리를 탄생시킬 초석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석처럼 단단한 작품의 재미와 흡입력에 일말의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다. 평소 공상과학 소설을 탐독하는 독자라면 평생에 걸쳐 꼭 한번 이상은 읽어야 할 작품이지만, 문학적으로도 충분히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기 때문에 독서 불감증에 빠진 일반 독자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삼체 1부 | 류츠신 | 외계 지적생명체, 인류의 구원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삼체 3부 |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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