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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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上杉鷹山) | 사랑과 신뢰로 이룬 개혁

불씨 | 도몬 후유지 | 사랑과 신뢰로 이룬 개혁

불씨(上杉鷹山)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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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감동 실화’의 표본 같은 역사소설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의 ‘미야베 월드 제2막’ 시리즈에 유별나게 감응한 덕분에 ‘에도 시대’와 관련해서 읽을만한 책은 없는지,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가 묘사한 ‘에도’가 살짝 미화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므로 그 시대의 실상을 좀 더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은 없는지, 하는 호기심으로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먹거리를 탐색하듯 인터넷과 도서관을 킁킁거리며 수소문하다가 우연히 어느 전자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도몬 후유지(童門 冬二)의 『불씨』다.

소설 『불씨』의 줄거리는 별거 없다. 재정이 극도로 빈곤한 요네자와 번(米澤藩)에 양자로 온 새 번주(蕃主) 우에스기 하루노리(上杉治憲)의 번정 개혁을 다루고 있다.

번사(藩士)들은 형식주의와 사대주의라는 악습에 뿌리까지 물들었다. 번의 재정은 번정(蕃政)을 막부에 반환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파탄 직전이다. 신생아를 죽이는 일이 성행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웃 번으로 도망가 버릴 정도로 번민의 삶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다. 이때 번주 자리를 계승한 청년 번주가 ‘사랑과 신뢰’라는 기치 아래 개혁을 단행한다. 번주와 번주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개혁파는 벽창호 같은 반대파들의 갖은 방해 공작과 악습을 근절하고 상업을 부흥시킨다.

영웅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난관을 극복하고 만다는 닳고 닳은 주제만 놓고 보면 개혁을 소재로 한 삼류소설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어느 책이든 첫 장을 펼치면 반드시 느끼게 마련인 필력에 대한 첫인상도 평범하다. 일본 전체가 아닌 2백60개의 번 중 하나를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얼웨허(二月河)의 ‘제왕삼부곡(落霞三部曲)’ 시리즈 같은 스펙터클은 없다. 그렇다고 한 우물을 파는 것 같은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처럼 띄엄띄엄 진행되고, 시간적 규모에 비해 책 분량은 적어서 그런지 ‘간추린’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런 이유로 만약 이 소설이 100% 허구였다면, 나로선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씨』는 실화다. 또한, 다른 역사소설들처럼 역사에서 핵심 소재만 빌린 다음 나머지를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꾸역꾸역 채운 것이 아니라 ‘우에스기 요잔 전기’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로 (사실 원제는 ‘불씨’가 아니라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이다!)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리고 밝혀진 사실만으로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흔히 말하는 ‘감동 실화’. 그래서 놀랍다.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인물이 소설 속에서나 성공할 법한 낭만적인 개혁에 실제로 성공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놀랍다. 그것도 훗날 ‘쇼와 육군‘이라는 벽창호 엘리트 집단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될 일본에서!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생성

괭이를 들 바엔 할복하겠다!

우에스기 요잔은 양자 하루히로에게 번주 자리를 물러주면서 ‘번주의 마음가짐’이라는 (이후 ‘전국의 사(伝国 辞)’라고 불리게 될) 3조를 제시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ㆍ국가(요네자와 번을 지칭)는 선조로부터 자손에게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결코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ㆍ백성은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 결코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ㆍ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번주이어야 하며, 번주를 위해 백성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율곡전서(栗谷全書)』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爲邦本 本固邦寧)”라는 말이 나온다. 『사기』의 「역생육가(酈生陸賈) 열전」에는 “왕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라는 말도 있다. 모든 백성이 군주의 신하였던 전제주의 정치에서도 이론적으로 백성은 중요시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을 보면 백성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을 절실히 보여준다. 백성은 국가 재정을 채워주는 세원이거나 전쟁놀이에 소비되는 소모품이거나 소수 권력자의 탐욕을 채워주기 위한 수탈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군주에게 ‘애민’은 작금의 선거 공약처럼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강제성 없는 선전 문구 정도였다.

그것은 봉건제 사회였던 에도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총 15만 석 영지에서 가신의 봉록 합계만 무려 13만 5천 석, (200년 넘게 전쟁이 없었던 시기임에도) 무사와 서민의 비율이 54 대 46, 그리고 그 무사들은 백성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 곧 무사들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요네자와 번민은 사농공상의 정점에서 무위도식하는 무사들을 봉양하느냐 등허리가 활시위처럼 휘어지다 못해 ‘뚝’ 하고 부러지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현실에 실천하려고 했던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괭이를 들 바엔 차라리 할복하겠다’라는 완고하고 고지식한 무사들을 데리고 진정한 개혁은 ‘사랑’, 즉 타인에 대한 헤아림과 자상함으로 실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인 사상을 관찰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랍다.

언행일치의 청년 개혁 군주

윤석열의 ‘3시간 계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그리고 실제로도 옳은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반대하는 자들을 무력으로 누르고 싶은 마음은 억제하고 억제해도 오뚝이처럼 끊임없이 일어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 같은 범인은 사소한 마찰에도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욱하는 성질이 일어나는데,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군주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특히 새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정쟁 수준에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년 병장이 짬밥 좀 먹었다고 신임 하사를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새 번주가 젊다고, 그리고 다른 작은 번에서 온 양자라도 대놓고 깔보고 빈정대는 무사들을 앞에 두고도 분노를 터트리기는커녕 겸허히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반대파를 포용하는 관대함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우에스기 요잔의 인품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경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만담가처럼 말만 많고 빛 좋은 개살구처럼 실속은 없는 요즘의 지식인 • 정치인들처럼 말로만 ‘사랑, 신뢰’를 외친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줬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혁가이다. 태어날 때부터 뇌와 발육에 장애가 있었던 아내가 30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10년을 넘게 놀이 상대가 되어주었을 정도로 우에스기 요잔이 외친 ‘사랑’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런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런 따뜻한 사랑이었다.

한 토막거리도 안 될 정도로 짧게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 우에스기 요잔과 그의 첫 번째 아내 사이의 이야기가 가장 감명 깊었다. 요잔이 가법 때문에 지체 장애인인 유키히메(幸姫)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한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무리 측은지심으로 아내를 보살폈다고 해도 보통 측은지심이란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발동하기도 하고 그렇게 발동되더라도 냄비처럼 쉽게 끓고 쉽게 식기 마련이라 기아 • 생태계 파괴 같은 만성 질환 해결에 별 보탬이 안 된다. 더군다나 제구실 못 하는 아내를 대신할 측실을 둘 것을 권유하는 측근들이 있었고, 또한 측실을 두는 일이 군주의 체통에 손상이 간다거나 관례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내를 향한 요잔의 마음은 측은지심 이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측실 여럿 두어도 이상한 것 하나 없는 혈기 왕성한 청년 군주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교감하기 어려운 지체 장애인 아내를 정성껏 보살핀다는 것이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행한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살아 있는 부처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요네자와 번민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아무튼, 그는 정직, 관대함, 배려, 사랑, 근검절약 등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주장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었으니 개혁의 실패 여부를 떠나 그 하나만으로도 응당 존경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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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자신을 바꾸는 것!

도쿠가와 막부에 의한 3대 개혁 중 ‘간세이(寬政) 개혁’과 ‘텐포(天保) 개혁’은 실패했지만, 우에스기 요잔의 개혁은 성공했다. 그것은 단 한 가지 사례만 봐도 명확하다. 김시덕의 『일본인 이야기 2』에 따르면 요네자와 번은 호레키(寶曆) 기근 때 1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텐메이(天明) 기근 때는 개혁으로 확보한 비축미 덕분에 사망자를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에도 시대에 기근이 여러 차례 발생한 이유는 번이 비축했던 쌀에다 농민들이 그 전해에 수확한 쌀까지 전부 교토, 에도 같은 대도시로 보내어 팔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이듬해에 기근이 발생해도 구호 식량을 방출할 수 없다. 중세 때 하루 두 끼였던 일상이 에도 시대에는 하루 세 끼 먹는 일상으로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듯, 에도 시대가 이전보다 풍족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에 무위도식하는 무사 집단과 거대해져 가는 도시를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 때문에 농민들은 (굶주린 것은 아니지만) 기근에 취약했다. 미야베 미유키가 묘사한 에도가 상업적으로 왕성하고, 또한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그리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될 수 있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농민들에 대한 일정 수준의 착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개혁의 성공 여부는 사람이 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개혁이 성공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어떤 관성에 젖어 들면, 그 관성에서 벗어나게 하기는 축구공을 한입에 삼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을 살펴보면 된다. 하루 세 끼를 배달 음식, 외식, 즉석식품 등 남이 해 주는 음식으로 편하게 해결하는 사람에게 그중 두 끼만이라도 집밥을 먹어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알다시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집밥이 사 먹는 음식보다 좋은 것은 알지만, 그의 정신은 ‘편리함’과 ‘자극적인 맛’에 길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 대부분이 다이어트에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식습관과 깊은 연관이 있는 질병은 재발할 수밖에 없다. 암을 완치했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평소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오염되고 스트레스 많은 도시를 떠나 전원으로 낙향한다, 지금까지 먹지 않았던 채소 • 과일 위주로 식단을 개혁한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운동을 꾸준히 한다, 등등. 비슷한 이유로 한국인은 더더욱 책에서 멀어질 것이다. OTT, 게임, SNS 등 온라인으로 쉽고 재밌게 누릴 수 있는 즐길 거리가 많은데 왜 머리를 써가며 책을 읽겠는가? 천연자원도 없고 식량도 자급자족 못 하는 국민이 머리 쓰는 것마저 싫어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타국에 먹히거나 4류 국가로 전락하거나.

아무튼, 사람들은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변화를 거부하고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발악한다. 그 예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은 적이라고 몰아붙이거나, 흡연과 과음과 식탐 등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기보다는) 합리화하는 일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 새로운 것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그것을 거부하고 몰아내거나 지금까지 하던 것을 고수하기가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도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 것을 고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을수록 (죽을 날이 코앞에 다가오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기존 것을 고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은 번번이 실패한다. 공산주의가 선전과 교육으로 사람의 정신을 개조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가 큰코다친 것처럼 개혁도 그런 전제조건으로 몰아붙인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에 우에스기 요잔의 개혁은 성공했다. 그것은 요잔의 타고난 인품의 영향력이 두루 미칠 수 있는 한 개의 번 내에서 개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타인에 대한 헤아림, 자상함은 물론 반대파까지 포용한 관대함, 그리고 조급해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 않으면서 개혁 대상이 개혁의 취지를 이해하고 변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 준 인내심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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