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 생명은 흐름이다
원제: 生物と無生物のあいだ by 福岡 伸一
즉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흐름,그 자체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표층,즉 피부나 손톱이나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것을 밀어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표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장기나 조직에서뿐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인 것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조차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새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단백질뿐이 아니다. 저장물로 인식되던 체지방조차 다이내믹한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다. (141쪽)
‘생‘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뭔가 할 말이 많을 것 같고, 그래서 뭔가라도 말해보려고 애써 머리를 굴려보지만, 붕어처럼 입만 벙긋할 뿐 막상 소리는 나오지 않는가. 그렇다고 자신을 못났다고 책망할 필요는 없다. 각 분야의 대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분분한 것이 생명에 대한 정의니까. 하지만, 사람은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는 것보다는 미덥지 못하더라도 뭔가 딱 부러지는 설명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분분하다고 해서 생명에 대해 나름의 정의가 없는 것도 아니니 몇 가지를 살펴보면, 마르크스의 동료인 F.엥겔스는 “생명이란 단백질의 존재양식이다.”라고 정의했고,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진보를 이룬 20세기에 와서는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두 정의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이나 아름다움, 우아한 움직임과 유구한 질서를 떠올리기는 어려울뿐더러 생명 역시 하나의 기계일 뿐이며 화학과 전기의 문제라고 본 기계론적인 인식론의 차가움과 오만함만이 묻어나온다. 그렇다면 생명의 본질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정의는 무엇일까?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 즉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단백질은 제거되고 새로운 단백질로 대체되는 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됨으로써 잠재적인 폐기물을 시스템 밖으로 배출한다. 만약 폐기물의 축적 속도가 배출 속도보다 빠르면 생명은 위기 상태에 빠진다. 그 전형적인 예가 구조적인 단백질 질병인 알츠하이머병과 광우병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노화도 이러한 동적 평형 상태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노화가 동적 평형 상태의 질서를 깨뜨려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아니면 어떠한 이유로 동적 평형 상태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노화가 진행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를 나눌 때 보통 “여전하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반년 혹은 1년 정도 만나지 않았다면 분자차원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여전하지 않은 존재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과거 우리의 일부였던 단백질들은 오래전에 퇴출당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에서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단지 인간의 미약한 지각과 인지 능력, 그리고 그 짧은 수명으로는 미처 감지할 수 없을 뿐, 1분1초가 무섭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 천년만년 옴짝달싹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하고 묵직한 바위도 바람과 비, 그리고 세월이라는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풍랑 속에 조금씩 깎여나가 언젠가는 작은 모래알이 된다. 볼품없는 집들과 위압적인 회색 빌딩들로 가득 찬 도시를 지탱하는 이 땅도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으며, 태양도 나이를 먹으면서 노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 자연에 대한 착취를 당연시하는 어리석음, 동족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통계 내고 계산할 수 있다는 어리석음, 이 모든 것은 둘째치고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자연의 법칙이라 믿으며 공존과 공생의 진짜 자연의 법칙을 여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
그다지 잘 나가지도 못했으면서도 역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아무튼,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출판 당시 과학서로는 드물게 50만 부 판매라는 놀라운 히트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이 쉽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바쁜 현대인을 위해 책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에게 지적 충만감을 주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 속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 속에서 독자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가르는 ‘생명’의 본질은 ‘흐름’이며 이 흐름이야말로 자연을 바라보는 지적생명체가 느낄 수밖에 없는 경이로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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