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맨 이시카와 도모타케 | 재분배라는 명분 뒤에 숨은 복수의 집념
원제: グレイメン by 石川 智健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현실을 타파하고 강자의 지위에 올라선 자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 역시 혜택받은 자들이야. 그럴만한 환경이 갖춰졌거나 좋은 사람을 만났거나 남다르게 뛰어난 두뇌를 가졌거나 운이 좋았던 거지. 하지만 이 세상에는 진짜 약자들이 많아.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타박하는 것은 약자의 입장에 서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레이맨(グレイメン)』, 421쪽)
성(性)을 사고파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목숨까지 경매하는 타락한 세상, 유괴된 모녀가 성폭행당하고 살해되는 사건조차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구경거리가 되는 잔혹한 세상,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는 아리송한 세상, 약자의 하소연은 그대로 짓밟히는 비참한 세상.
부와 권력을 움켜쥔 채 정의와 법 위에서 군림하던 오만방자한 자들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회색 정장에 회색 조끼 등 온통 회색으로 도배한 ‘그레이맨’이 존재한다. 그는 돈과 권력, 그리고 무정한 사회에 치인 사람들이 겪는 ‘몸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 폐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이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절망감. 몸의 세포가 모조리 다 타버릴 듯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에 목이 졸려버린 슬픔. 어떻게도 해결할 수 없는 자기혐오’로 지옥 같은 이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을 때, 그들을 구원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어나가면서 하나의 거대한 조직을 만든다. 조직의 태생이 돈과 권력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은 배신이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조직이다.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이익’이듯 이 조직의 유일한 목표는 ‘재분배’다.
이시카와 도모타케(石川 智健)의 소설 『그레이맨(グレイメン)』의 일면에는 가부장적인 전통적 가치관의 도를 넘어선 붕괴가 가져온 아버지라는 존재의 말살과 그로 말미암은 일본 가정의 위기와 비극을 다루긴 했지만, 역시 이 소설의 묘미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농락하면서 안전하게 자신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채우는 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강자들을 향한, 그리고 이들을 묵인한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세상을 향한 ‘그레이맨’의 명쾌한 고발과 통쾌한 복수다. 누군가는 제멋대로인 것 같은 거칠고 난폭한 그들의 복수극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답답하고 제멋대로인 세상에 울분이 쌓인 독자에겐 나름의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충격적이면서도 시원시원한 작품이다. 혹자는 저자 이시키와 도모타케가 『그레이맨(グレイメン)』을 통해 고발한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 등을 과대 포장된 것으로 격하하며 자위할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들이 저지른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벗어난 온갖 범죄들이 소설이라는 가상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미처 알아챌 수가 없을 정도로 돈이라는 검은 안개와 권력이라는 튼튼한 친위대에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늘 회색으로 도배한 옷을 입고 다녀 붙여진 ‘그레이맨’이라는 명칭에 대해 작품은 외계인 같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달리 보면 ‘회색’은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바로 그 중간에 있는 색이다. 악을 지배하는 흑마법도 아니고 선을 지배하는 백마법도 아니다. 부와 권력이 지배하는 흑(黑)에 가까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난이 만연하는 백(白)에도 속해있지 않다. 즉 재분배를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인 공정과 평등을 의미하는 색, 검은색과 흰색을 섞어야만 나오는 색, 바로 그런 중용의 가치관을 지닌 색이 ‘그레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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